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祕話

여배우 남편 살인사건의 顚末

유명 巨富 후손들의 재산 싸움에서 시작된 비극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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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 남편 살인교사로 무기징역 선고받은 곽○○은 정말 살인을 교사했나
⊙ “제 아들은 살인교사범이 아닙니다” 무기징역 수감자 母의 절규
⊙ 正犯의 일관된 ‘단독범행’ 진술… 거듭된 수사 후 ‘사주 받았다’ 번복
⊙ 청와대 감찰반장 출신 J변호사, 승소 후 檢에 ‘BBK 결정적 정보’ 건넨 의혹
⊙ 패소 변호인 “사법 시스템 죽었다”… 再審 준비 중
  이순(耳順·60)을 훌쩍 넘긴 한 여성이 말했다.
 
  “우리 동원(가명)이는 살인교사범이 아니에요. 애가 괄괄하긴 하지만, 사람을 시켜서 누굴 죽일 만큼 모질지는 않아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3월 26일, 강남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 여성은 곽동원(가명·42)씨의 모친이다.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곽씨는 세간에 ‘극악무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배우 S씨의 남편 고정석(가명)씨를 교사(敎唆)로 죽게 한 혐의다. 이 자리에는 곽씨의 변호인도 동석했다. 그는 부장판사 출신이다.
 
  “제가 (범죄자를) 많이 봤잖아요. 동원이 그 친구…. 그냥 잡범(雜犯)이에요, 잡범. 사람 죽일 배포도 없는 잡범이요.”
 
  이 변호사는 “수임 후 내막을 보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면서 “도저히 그런 판결이 나올 수 없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난 상황. 다음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나가려는 심산은 아닌 것 같았다.
 
  ‘할아버지 재산으로 사촌지간 다투다가, 사촌이 사람을 시켜 다른 일방을 살해한 사건.’ 우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억한다. 여기에 무슨 비화(秘話)가 있는 걸까. 전말부터 알아야겠다. 법원에서 인정한 객관적 사실과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불 곽씨 측의 부연설명도 일부 포함했다.
 
 
  재산 싸움의 시작
 
조부 곽지만(가명)씨는 국내외 부동산 등 재산이 1조원에 달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보기 드문 재력가였다. 재일교포 곽지만(가명)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거부(巨富)였다. 추산된 액수만 1조원을 육박했다. 일본 도심에 유명 호텔과 파친코까지 9000억원 상당의 재산에, 국내에서는 장학회를 세워 명예도 있었다. 그의 밑에는 몇 명의 손자가 있다. 그중 하나가 친손자 곽동원이다. 외손자는 고정석이다. 곽씨와 고씨는 여느 고종사촌지간처럼 잘 지냈다. 어느 날, 이들이 공분(公憤)할 일이 생긴다. 일본에 있는 할아버지 후처(後妻) 소생의 A씨가 할아버지 지분의 대부분을 가져간 것이다.
 
  고씨가 말했다. “내 매형이 변호사잖아. 같이 상담을 받아보자.” 2015년 12월, 둘은 변호사 J씨를 찾아갔다. 이들은 J변호사와 할아버지의 재산상황과 사망 이후 상속 문제를 논의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재산은 국내에도 많았다. 700억~8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이었다.
 
  이때 곽동원은 차츰 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장손(長孫)인 자신이 할아버지와 더 가깝다고 여겼다. 실제로 곽씨는 2012년 무렵 일본에서 할아버지와 2년간 같이 산 적도 있다. 곽씨는 ‘나머지 재산을 나 혼자 증여받겠다’고 결심했다. 그 길로 법무사를 찾아가 따로 상담을 받았고, 증여계약서 등에 할아버지 서명을 받기에 이른다. 2016년 11월, 그렇게 할아버지의 부동산 57필지가 곽씨에게로 이전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씨. 이때부터 둘의 ‘전쟁’이 시작됐다.
 
  재산 싸움에는 고씨의 어머니 곽은자(가명)씨도 가세했다. 은자씨는 자신의 아버지인 곽지만을 찾아가 “동원이에게 다 넘긴 게 사실이냐”고 물었고, 할아버지는 끝내 “착오였다”고 했다. 1918년생인 할아버지는 당시 100세에 가까웠다. 결국 할아버지는 모든 증여를 취소했다. 그러고 ‘모든 권한을 곽은자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썼다.
 
  그 시기, 고정석은 J변호사를 통해 곽씨를 ‘사문서위조 등’으로 고소했고,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곽씨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모처의 요양원에 들어가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말만 들려올 뿐이었다.
 
 
  살해범 조준환과의 만남
 
조부 곽지만(가명)씨 소유의 일본 호텔 전경. 사진=호텔 홈페이지
  곽동원은 일본에서 할아버지와 살 당시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그때 11세 어린 조준환(가명)과 친해졌고, 형 동생 하며 지냈다. 조씨는 가끔 곽씨가 살고 있는 할아버지 집에도 놀러왔다. 그때 ‘이 형 보통 부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곽씨가 한국으로 오면서 둘은 자연히 연락이 끊겼다.
 
  고정석과 재산 싸움 중이던 2017년 어느 날, 조준환이 느닷없이 곽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5년 만이었다. 조씨는 당시 해외 도박으로 1억원을 탕진하고 살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창원에 살고 있던 그는 “곽씨 종친회까지 모두 뒤져 형 연락처를 찾았다”고 했다. 둘은 그간의 안부를 나눴고, 곽씨는 “마침 잘됐다. 너 일 없으면 서울 올라와서 나 할아버지 찾는 것 좀 도와달라”고 했다. 찾으면 사례도 넉넉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 길로 조씨는 상경했다.
 
  서울로 올라온 조준환은 곽동원에게 ‘충성’을 다했다. 휴대폰에 ‘VIP’라고 저장했고, 운전기사 노릇까지 했다. 돈이 궁했던 조씨는 부자 할아버지를 찾아야 본인에게 수당이 온다는 걸 잘 알았다. 둘은 할아버지의 행방을 알려면 고정석 주변을 탐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혼자 수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조씨는 친한 후배 김경섭(가명)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경섭은 고씨 사무실 근처에 고시원을 잡고 그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고씨 집 앞에는 CCTV를, 차량에는 GPS를 달았다.
 
  조준환은 ‘할아버지 찾기’에 혈안이었다. 당시 휴대폰 기록에는 ‘흥신소’ ‘사람찾기’ ‘곽지만’ 등의 검색어가 남아 있다. 실제로 조씨는 흥신소 대표와 상담까지 했고, 그 무렵 막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채 전 총장이 이 사건을 맡았다면, 변호사로서 ‘첫 사건’이 될 뻔했다. 조씨 딴에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 잔고는 0원이었다. 차량할부금 약 70만원이 연체됐다는 캐피털사의 문자메시지도 왔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신용등급 하락 경고 문자도 받았다. 그런데 곽씨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후배 김경섭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그렇게 상경한 지 3개월여가 지났다. 조준환은 김경섭에게 ‘형님 맞추기 너무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곽동원이 자신의 쇼핑에는 몇백만, 몇천만씩 쓰면서 조준환에 대한 지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고정석과의 소송 관련,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법무사에 대해서 “재판만 끝나면 버리겠다”는 식의 말을 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조준환은 ‘나도 끝내 버려지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조씨는 곽동원 주변인들에게 눈을 돌렸다. “곽형 믿지 말라”며 이간질도 했다. 조준환은 급기야 고정석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준환과 고정석의 만남
 
  “곽동원씨와 소송 중이시죠. 최측근입니다. 곽씨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17일 밤 10시경. 조씨는 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통화 직후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만났다. 그 자리엔 낯선 남성도 함께 있었다. ‘정석이 형님 모시고 있는 목포 식구’라는 이 남성은 조씨가 도착하자 다짜고짜 그의 얼굴에 휴대폰을 갖다 대고 사진을 찍었다. 고정석은 “내 밑에 있는 동생인데, 신경 쓰지 말라”며 “(곽씨한테) 얼마 받고 일하냐”고 물었다. 조씨는 “나중에 가게를 차려주고 차도 사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수십 배 더 쳐줄 테니 우리 쪽으로 넘어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씨는 J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만나자”고 했다.
 
  셋은 만났고, 대화는 새벽 2시30분까지 이어졌다. 조씨는 ‘곽동원이 시켜서 그동안 CCTV와 GPS를 달았다’는 사실을 고백했고, 그간 곽씨와의 통화기록과 대화내용 등을 공유했다. 이날 고정석은 조씨를 데려다주며 “조만간 큰 거 한 장 주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 조준환은 곽동원과 함께 지내며 곽씨 동향을 몰래 고정석에게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재산 소송 관련, 그간의 곽씨 자료가 담긴 USB를 들고 고씨를 다시 만난다.
 
  “저 지금 목숨 걸고 나온 겁니다. 돈 문제는 확실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생각하냐?”
 
  “최소 2억에서 5억 정도 생각합니다.”
 
  “(휴대폰 사진첩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이 누군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경찰청장이랑 기무사령관이다. 나 이런 사람들이랑 어울려. 주변에 건달도 많아.”
 
  “…그때 말씀하신 ‘큰 거 한 장’은 얼마를 뜻한 겁니까.”
 
  “1000만원. 왜 적어?”
 
  “조금만 더 챙겨주십시오.”
 
  (묵묵부답)
 
  이 만남 후 조씨는 후배 김경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고정석을 만났는데 완전 양××다. 생각한 금액과 차이가 크다. 미치겠다”고 말했다.
 
 
  고씨 살해 당일 정황
 
조준환(가명)이 사건 초기 경찰에 제출한 6쪽 분량의 범행 진술서. “곽씨가 옷을 사는 데는 몇백, 몇천씩 펑펑 쓰면서 월급도 주지 않았다”는 등 곽씨를 배신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소상히 적혀 있다.
  2017년 8월 20일 새벽. 조씨는 친동생 조상원(가명)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최소 5억원은 받아야 되니까 네가 올라와서 협상을 도와달라. 혹시 모르니 사시미 칼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했다. 조씨는 후에 진술서에서 “‘첫 만남 때 고정석의 목포 동생이라는 사람에게 겁을 먹어, 이후 만남에서도 조폭들을 데리고 올까 봐 무서워서 (방어용으로) 칼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고 썼다.
 
  다음 날 아침 동생 조상원이 서울에 도착했고, 둘은 함께 ‘큰 거 한 장’을 받기 위해 고씨를 만났다. 고씨는 그 자리에서 1000만원을 건넸고, “나머지는 내일 오전 11시에 줄 테니 J변호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이날 곽동원은 조씨 동생이 서울에 올라온 사실을 알고, 강남의 한 호텔을 예약해줬다. 조씨는 그날 밤 동생에게 “(내가 배신한 것도 모르고) 곽형이 잘해주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침이 밝았다. 2017년 8월 21일, 오전 11시. 조준환은 이날 후배 김경섭도 불렀다. 조씨는 동생들에게 “곽형을 배신했기 때문에 돌아갈 곳도 없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정석에게)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경섭에게 ‘현장 녹음을 하라’고 지시했다.
 
  세 사람은 약속 장소로 갔다. 변호사 사무실 내 대회의실. 그 자리에는 고정석, J변호사 등 8명이 앉아 있었다. 조씨는 준비한 추가 자료를 건네면서 “대가를 달라”고 했고, 고씨 측은 “정보를 먼저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대치된 대화가 약 50분간 이어진다. 중간에 몇몇 사람이 나갔고, 회의실에는 조준환·고정석·J변호사 세 사람만 남았다. 조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돈 얘기를 꺼낸다. 그럴 때마다 J변호사는 말을 돌린다. 조씨는 “변호사님 없을 때 한 얘기가 있다”고 했다. J변호사는 “가지고 온 정보 중 대부분은 필요 없는 것일 수 있고, 사실 소송이 다 끝나 봐야 (당신의) 공헌도를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이 가족도 빚내서 소송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연신 한숨을 내쉬던 조씨. 갑자기 칼을 꺼내 옆에 있던 고정석의 목을 찌른다. 다음은 당시 현장 녹취록에 따른 조준환의 발언이다. 시간차를 두고 한 말인데, 연이어 쓴다.
 
  “××! 사람을 개×으로 보고. 사람 목숨 걸었다니까 장난이나 걸고. 돈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내 동생들 있는 데서, 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람 이용이나 해먹고. 정보 다 가져왔는데. 따로 불러내놓고. ×× 뭐, 얼마? 돈 없다고? 빚낸다고? ×× 나도 죽을 거니까, 상관없어. 당신들 집안 싸움에 사람들 다 끼워 들이고. 1000만원 주고 먹고 떨어지라고? 검사 출신이면 다요? 그렇게 간 보더니, 필요 없는 정보? 와, 나 ××.”
 
 
  줄곧 ‘단독범행’ 주장
 
  “곽형한테 연락 좀 해주라.”
 
  범행 직후 조씨는 연행되면서 김경섭에게 이같이 말했다. 한편 곽동원은 살해 발생 직후인 오후 1시36분부터 오후 6시56분까지 조씨에게 13차례나 전화했다. 통화가 되지 않자 곽씨는 오후 5시15분, ‘전화가 안 되네. 뭔 일 있냐?’고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날인 8월 22일. 김경섭과 통화에서 곽씨는 “준환이 미친 새끼 아니냐. 왜 그랬냐”고 말했다.
 
  수사를 받으며 조준환은 ‘본인의 단독범행이고 우발적 살인’임을 꾸준히 주장했다. 조씨가 같은 해 8월 29일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범행 과정이 소상히 적혀 있다. 여기에는 “살해 직전, J변호사가 나에게 ‘나는 지금 이거 안 해도 잘 먹고 잘산다. 곽동원 그놈이 괘씸해서 그놈 구속시키려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우발적 살인’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9월 7일, 여자친구 A씨가 접견 왔을 때 조씨는 울면서 “수십억 준다고 했는데 그냥 1000만원만 주고, 너무 사람 가지고 놀아서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 조씨는 3차 검찰 피의자 신문 조사를 받았다. 이때 조씨는 “우발적 살인임에도 검사가 계획 살인으로 몰고 간다”며 조서 열람 및 서명 날인을 거부했다. 이후 면회 온 한 지인은 “지금 모든 언론이 계획 범행이라고 보도하고 있다”고 알려줬고, 조씨는 이 지인에게 “검사가 계획 범행으로 몰고 가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9월 15일 4차 검찰 조사에서도 조씨는 조서 열람 및 날인을 거부했다. 다음 날인 9월 16일, 여자친구가 또 면회를 왔는데, 조씨는 “여기서 아무도 내 말을 안 믿는다. 사주(使嗾)받았다고 하면 감형되고, 아니면 평생 감옥에서 살 것이란다.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했다. 조씨는 같은 구치소에 있었던 김정환(가명)씨에게도 꾸준히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김정환은 이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구체적 진술도 했다. 다음은 당시 진술 내용 중 일부다.
 
  “조준환이 계속 말했던 게 사람 죽이는 자리에 어떤 ××놈이 친동생을 데리고 가느냐였다. 더 힘들어했던 건, 교사가 아닌데 검찰조사에서 계속 교사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곽형을 한 번 배신했는데 두 번 배신할 수 없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사가 갑자기 동생 조상원을 살인방조로 엮는다고 협박을 한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완고하던 조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매일 고민했다. 담당 검사 말고 더 높은 검사가 밤 11시에 찾아왔다는 말도 했다. ‘잘 생각해 봐. 곽동원이 시킨 거 맞잖아. 죽이고 오면 한 20억 준다고 하든?’이라며 떠봤다고 했다. 살인교사를 인정하면 배우 S에게 탄원서도 받아주겠다 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왜 검사가 탄원서를 받아준다고 하지?’ 의아했다.”
 
 
  진술의 번복
 
  이처럼 꾸준히 ‘우발적 살인’을 주장했지만, 9월 18일 조씨에게 ‘단독 계획 살인’으로 공소가 제기됐다. 다음 날 면회 온 삼촌에게 조씨는 또다시 “사주도 아니고 계획 범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관되던 진술은 9월 26일 이후 바뀐다. 참고인이던 친동생 조상원이 ‘살인예비 및 증거인멸죄’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다. 곽씨 측 변호인은 “조준환은 친동생을 끔찍이 아낀다. 우발살인이라 주장했지만 계획살인으로 공소된데다가, 참고인 신분이던 동생이 갑자기 피의자로 전환되니, 그 직후 조준환이 진술을 번복한 거다. 시기가 묘하다. 진술 번복 직후 동생 조상원은 다시 참고인으로 전환됐다”고 했다.
 
  검사 측은 이에 “검찰이 피고인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살해 현장에 있던 조상원, 김경섭을 자연스럽게 조사한 것이지 조준환을 압박하기 위해 조사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9월 27일, 조씨는 처음으로 ‘곽동원이 시켜서 살인했다’고 진술했다. 그 다음 날 곽씨는 즉시 호송됐다. 조씨는 호송 중인 곽씨를 보며 울먹이면서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씨의 번복 진술 내용은 이렇다.
 
  “2017년 7월 말 저녁 강남 P호텔 사우나에서 곽형이 ‘소송은 더 이상 답이 없다. 고정석을 죽여야겠다.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고씨를 죽이면 향후 현금 20억을 주겠다.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주겠다. 고씨에게 접근해 살해하라’고 말했다. 이후 고씨에게 유리한 소송 관련 자료를 주겠다고 그를 안심시키며 의도적으로 접근해 살해했다.”
 
  물론 이는 진술의 일부지만, 전체 내용도 사실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지은 진술분석가는 조씨의 진술을 이렇게 분석했다. 분석보고서 내용이다.
 
  “‘곽동원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조준환의 변경 진술은 세부 묘사가 매우 부족하다. 사건의 진행에 따라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곽동원과 상의를 했다’는 주장만 있을 뿐 세부적인 진술은 거의 없다. 실제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술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조준환의 변경 진술이 타당하려면, 사건 이전부터 조상원, 김경섭, 여자친구 등 주변인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변경하기 전뿐만 아니라 이후 만난 사람들에게도 계속 연기나 거짓말을 했다는 뜻인데, 이에 대해서도 조준환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더불어 사건 현장의 CCTV에서도 50여 분 동안 연기를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따라서 ‘조준환의 변경 진술은 의도적인 거짓말’이라는 가설은 유지된다.”
 
 
  대법원 판결의 대가
 
지난 2017년 10월 26일 서울중앙지검에서 담당 부장검사가 S씨 남편 살해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사는 당시 이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곽동원이 조준환에게 ‘나를 배신한 척 피해자에게 접근한 다음 J변호사가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살해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고, 이에 조준환은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소송 관련 정보를 주겠다고 하며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사전에 흉기를 구입한 다음, 피고인의 지시대로 J변호사가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범행장소로 선택하고, J변호사 앞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
 
  조씨의 모든 행적이 ‘시나리오가 있는 연기’라고 본 것이다. 곽씨 변호인 측은 “이 모든 게 연기고 20억을 받고 사람을 죽이기로 했다면, 조씨가 1000만원이 적다며 고씨와 갈등할 필요도 없었고, 백주대낮에 J변호사 사무실에서 50분간 시간을 끌 필요도, 김경섭에게 ‘녹취를 하라’고 시킬 이유도, 지인에게 ‘곽형을 배신하게 됐다’고 말할 필요도, 친동생에게 ‘곽형이 잘해줘서 불편하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 측과 재판부에서는 이 모든 것을 ‘치밀한 연기’로 봤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까지 났다. 재판마다 사건의 쟁점은 ‘곽씨가 조씨에게 살인을 교사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조씨의 최후 자백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살인청부’의 결정적 증거로는 ‘살인의 대가로 20억을 받기로 한 것’을 들었다. 하지만 20억원 이야기는 조준환의 증언 외에는 녹취나 거래 이력 등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곽씨 측 변호인은 “청부살인의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당시 재판부는 “우발적 범행이라면 직전에 언쟁이나 화를 내는 등 감정의 고조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범행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그런 게 전혀 없고, 조준환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범행을 저지른다”고 했다. 이어 “곽동원과 고정석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고씨가 살해를 당하면 당연히 곽씨가 의심받을 것이므로 공개된 장소에서 범행하라고 지시했다는 조씨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조씨의 경우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하는 것과 계획적 범행이라고 진술하는 것 사이에는 형량에 큰 차이가 있다”며 “훨씬 무거운 형량을 받는 것을 감수하면서 계획적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참고로 조준환은 범행 사실을 자백한 점이 참작돼 징역 22년에서 18년으로 감형된 상태다.
 
 
  변호인, 再審 준비 중
 
  이날 곽씨 변호인은 뜻밖의 말도 덧붙였다. 검사 출신인 ‘상대편 변호사’에 대한 얘기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고인이 된 고씨의 매형이다. 배우 S씨와는 시매부(媤妹夫) 사이다. 재산 다툼 때부터 줄곧 S씨 측 변호를 맡아왔다. ‘장자연 사건’ 당시에도 관련 인물로 언급된 S씨를 변호했다. 친노(親盧) 인사인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들어가 특별감찰반장을 지냈고, MB 임기 중에 나왔다.
 
  “이 사건을 승소하고 나서 J변호사는 검찰에 뭔가를 건넵니다. 바로 BBK 관련 ‘결정적인 제보’입니다. 저희는 이를 보은(報恩)의 뜻으로 보고 있어요. 그가 정보를 건넨 직후 BBK 수사가 급물살을 탄 겁니다.”
 
  실제로 이 내용은 한 기사에도 소개됐다. 2018년 10월 8일 ‘MB수사 접으려던 순간, ‘반전’ 제보가 날아들었다’는 제하의 《한겨레》 신문 기사 중 일부다.
 
  〈(중략) 앞서 그해 10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한 연기자의 남편이 청부살해를 당한 것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에서 우발적 살인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끈질긴 수사 끝에 뒤집은 것이다. 검찰에 빚을 졌다고 생각한 피해자 쪽 변호사는 평소 ‘친구’에게 들은 얘기를 검찰 간부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제1부속실장을 지낸 이 전 대통령의 심복 김희중씨가 그 변호사의 ‘친구’였다. “MB 수사의 결정적 장면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그 제보다.”(검찰 핵심 관계자)〉
 
  이 모든 내용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J변호사 측에 연락을 취했다. 지난 4월 8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내용을 설명하고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J씨 측은 끝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과연 곽동원은 조준환에게 ‘사촌을 죽이라’고 한 걸까. 양방(兩方)에서 치열하게 법리상 이치를 따져보긴 했지만 ‘진실’은 둘만이 안다. 곽씨 변호인 측은 재심(再審)을 고려 중이다. 재심 사유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조준환이 ‘위증(僞證)’했다는 걸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변호인 측은 조씨를 위증죄로 고소해놓은 상태다. 나머지 절차는 내부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고인(故人)의 죽음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정범(正犯)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무고(誣告)한 희생자는 없는지 한번쯤 경계(警戒)해보자는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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