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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새 박사’ 원병오와 박정희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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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鳥] 박사’로 유명한 원로 조류학자 원병오(元炳旿)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4월 9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원병오 박사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끈끈한 인연이 있다. 포병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3군단 포병사령관이던 박정희 대령의 부관(副官)으로 근무했던 것이다. 1953년 말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 박정희 준장은 원 중위에게 육영수 여사가 지낼 독채 전셋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원 중위는 사촌누이에게 어렵게 부탁해 좋은 조건으로 집을 구해주었다. 결혼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독채에 들게 된 박정희 부부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박정희 준장이 미국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육영수 여사는 집에 땔감이나 쌀이 떨어지면 원병오 중위에게 SOS를 쳤다. 원 중위는 김재춘(金在春) 등 옛 상관들에게 연락해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다.
 
  한 번은 육 여사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참한 규수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참한 규수’란 박정희의 전처(前妻) 소생인 박재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제대 후 학자의 길을 걸을 생각이었던 원 중위는 고민 끝에 완곡하게 거절했다. 육 여사는 박정희의 집안 살림이 곤궁해서 거절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우리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겠어요?”라며 아쉬워했다.
 
  1961년 말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원병오는 장충동 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박정희 의장에게 인사를 갔다. 박 의장은 그에게 “바라는 것 한 가지쯤은 꼭 들어주도록 하지”라고 말했다.
 
  10년 후 경희대 교수로 있던 원병오는 그 말에 의지해 청와대를 찾아갔다. 당시 그는 한국자연보존연구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원 교수가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며 지원을 요청하자 박 대통령은 “자연보호는 곧 나라사랑”이라고 화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2억원을 지원했다. 자연보호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 한국자연보존협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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