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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투자황제’에서 수배자가 된 라임 이종필

“라임 사태의 몸통은 따로 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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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필 측근들, “사교적이고 야심 있던 인물… ‘과시욕’은 단점”
⊙ 결혼식 때 국회의원 화환… “역시 JP는 다르구나”
⊙ 장장 5개월간 도피 생활, 어떻게 가능한가
⊙ 정기적으로 약 필요한 만성 피부병, 약 전달은 의사 부인이
⊙ 도피자금도 풍부, 지역 有志인 父… 추정재산만 100억원대
라임 사태 키맨으로 꼽히는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전 부사장. 지난해 11월 잠적 후 지금까지 도피 중이다.
  사람들은 그를 ‘부잣집 아들’로 기억했다. 동시에 사교적이고 야심이 대단하며, 과시욕도 있는 인물. 이종필(43) 주변인들은 공통적으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라임 사태 관련자들이 한 명씩 구속되고 있다. 하지만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은 아직이다. 이종필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전 부사장 또한 이번 사태의 ‘키맨’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잠적해 무려 5개월 동안 도피 생활 중이다. 지난 4월 13일, 이종필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그의 운전기사 성모씨가 구속 기소됐다. 이종필의 행방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지금, 그의 면면(面面)을 들여다봤다.
 
 
  ‘투자황제’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
 
라임자산운용 대신증권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라임펀드 환매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돌이켜보면, 그때가 ‘황금기’였다. 한때는 유능한 증권맨이었다. 이름 앞에는 늘 ‘스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14년에는 아시아 지역 최고 애널리스트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순위권 내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연봉도 최고 수준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증권사 연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돌던 때지만, 그는 예외였다. 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 정도였다”고 했다. 못해도 10억원이라는 말이다.
 
  그는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겼다. 여의도 소재 10억원대 주상복합아파트에 살며 외제 스포츠카를 탔다. ‘고가의 취미’로 꼽히는 무선 자동차도 수집했다. 인맥 관리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는 학생대표직을 맡았고, 틈틈이 사회인 야구 활동도 했다. 전직 동료 A씨는 그의 말버릇 중 하나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동료 사이에서 ‘부잣집 아들’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버지가 돈이 많다는 말을 하고 다녀서 뒤에서는 말이 많았다. 인맥 과시욕도 좀 있었다.”
 
  A씨는 “언젠가 그가 인터넷에 올린 자기 소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나로 인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길 꿈꾼다’ 같은 구절이 있어서 자기애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주식 관련 한 온라인 카페에서 자신을 ‘투자황제’라 일컬으며 활동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종필은 10년 전 5세 연하인 C씨와 결혼했다. 과거 그와 가까이 지냈다는 B씨는 2010년 10월, 이종필의 결혼식에 참석한 인물이다. 그의 짧은 회고다.
 
  “‘높으신 분’들 화환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국회의원이 보낸 것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끼리 ‘역시 JP(이종필 별명)는 다르구나’ 했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을 졸업한 이종필은 한국으로 돌아와 회계법인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퀀트(계량분석)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이후 LIG투자자문, IBK투자증권을 거쳐 HSBC증권 글로벌리서치센터 한국 투자전략 담당 및 퀀트 애널리스트를 지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이종필은 기관투자자들로부터 “펀드매니저의 구미를 잘 맞추는 몇 안 되는 인재”라는 호평을 받았다. 함께 일했던 A씨의 설명이다.
 
  “매일 새벽 5시, 늦어도 5시30분쯤 출근했다. 새벽부터 뭘 하는가 했더니 분석보고서를 일일이 요약해 펀드매니저들에게 보내고 있더라. 주가 상승, 하락한 종목과 그 이유, 실적 속보 등의 내용을 그들이 출근해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한 건데,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름 떨칠 만하다 싶었는데 참 인생무상이다. 지금은 도망자 신세가 됐으니….”
 
 
  펀드매니저로 2막 설계
 
  이렇게 펀드매니저의 ‘구미’를 맞추던 이종필은 직접 펀드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한다. 2015년 라임으로 옮기면서다. 라임은 원종준 대표가 2012년 설립한 회사다. 시작은 투자자문사였는데, 3년 뒤 전문 사모운용사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사세(社勢)를 확장해 전문인력을 필요로 했다. 원 대표는 이때 업계에서 ‘똑똑하다’고 정평이 나 있던 이종필에게 ‘러브콜’을 한다. A씨의 말이다.
 
  “그 무렵 종필이도 마침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산운용사를 직접 설립할까 고민도 했는데,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업계에서는 이종필이 너무 고연봉이라 사측에서 부담스러워한 게 이직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종필은 주변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직한다”고 말했다. 라임에 합류하며 연봉은 5분의 1 정도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펀드매니저는 실적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이기에 이종필은 이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는 얘기다. 이종필은 공격적으로 일했고, 라임은 승승장구했다. A씨는 “당시 후임들은 그의 밀어붙이는 불 같은 성격에 불만도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 자본금 338억원으로 시작한 라임의 수탁고(受託高)는 2019년 7월 6조원에 육박했다. 단숨에 헤지펀드 업계 1위에 등극했다. 이 과정에서 이종필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펀드 설계 및 전략 수립 등 실무 전반을 그가 담당했다. 원종준 대표는 이종필에게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일임하고 본인은 경영에 집중했다. 라임 사태 직후 원 대표가 “부사장이 모든 일처리를 하고 문제가 없다고 말해와,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불법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과욕이 부른 참사
 
지난 2월 19일 검찰은 라임자산운용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사진=뉴시스
  이종필의 영향력은 지배구조에서도 드러났다. 2019년 4월 그의 지분율은 25.81%였다. 이는 설립자인 원 대표와 동일한 비율이다. 그 무렵 이종필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라임의 경쟁력은 구조화다. ‘리스크가 높으니 하지 말자’가 아니라, ‘이 리스크 요인을 낮출 수 있는 구조화 방법을 계속 찾자’는 것이 라임 투자의 핵심이다. 가령 수익률 10% 딜(deal)이 있는데 부도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라임자산운용이 회수할 방법이 있다면 투자한다.”
 
  그의 투자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얼핏 봐도 지나치게 공격적이란 느낌이다. 이때 그가 설명한 ‘구조화 방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전직 자산운용사 대표 L씨의 설명이다.
 
  “라임 펀드는 기본적으로 모자(母子)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엄마 펀드에 레버리지(leverage)를 낀 자식 펀드를 주렁주렁 달아놓은 모양새다. 굉장히 복잡한 구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단기간에 몸집을 불리던 라임은 끝내 탈이 났다. 과욕이 부른 참사였다. 투자한 코스닥 기업이 상장 폐지 기로에 서거나 거래 정지 되는가 하면, 신주인수권부사채(BW·Bond with Warrant)를 다른 기관에 넘기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법적 시비도 뒤따랐다. 투자처와 주주들이 이종필을 미공개 정보 이용, 수재 혐의 등으로 고소하기 시작했다. L씨의 설명이다.
 
  “라임의 행태는 전형적인 기업사냥꾼의 모습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낸 쌈짓돈으로 코스닥 좀비기업의 부실 자산을 대량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채권의 보유 한도 규정을 피하기 위해 다른 회사 명의를 썼다. 일명 ‘파킹거래’다. 부실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면 펀드 수익률이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돌려막기’식으로 처분해 수익률을 의도적으로 높인 것이다.”
 
  금융 당국은 라임이 비상장 기업에 돈을 대주고, 그 돈을 받은 기업이 라임의 부실 자산을 인수하는 식으로 수익률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L씨는 “돈이 된다고 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니까 업계에서는 진작부터 ‘저러다 언젠가 터지지’ 했다”면서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모든 펀드가 수익 올리는 게 최대 목표라고 하지만, 차원이 달랐다”고 말했다.
 
  의도가 어찌 됐든, 이종필의 ‘구조화 방법’은 결과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를 뜻하게 됐다.
 
 
  ‘연평균 8% 이상 수익률’
 
  개인 투자자들은 이 같은 내부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이처럼 부실한 펀드는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마구 팔려 나갔다. 초저금리 시대. ‘평균 연 8% 이상 수익률’ 조건은 매력적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원금 손실이 없고 6개월 뒤 무조건 상환된다”는 판매사의 말을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펀드의 확정금리를 보장하는 것부터 불법이라는 걸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1조6000억원 펀드 중 무려 약 1조원이 개인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90% 이상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됐다. 인당 최소 가입액은 1억원으로, 개인 피해자는 4000명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자산가’가 대부분이지만, 이 중에는 평생 모은 노후자금을 부은 사람이나 집 보증금을 빼서 넣은 사람도 있다. 이런 돈을 빼내 ‘돈놀이’를 한 셈이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도박판’은 해외에서도 벌였다. 캄보디아 리조트, 미국 IIG 무역금융펀드에도 이들의 돈이 투입됐다. 이 두 투자처 모두 현재까지 실체가 불분명하며, 자금 추적도 힘든 상황이다.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라임 측에서 ‘우리도 IIG에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했지만, 애초 의도적으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실체가 불분명한 투자처를 물색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투자 계약을 맺게 된 배경을 묻기 위해 지난 4월 6일 IIG의 공동설립자 마틴 실버(Martin Silver)와 그 아래 직원 3명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이종필은 이 같은 조 단위 펀드의 모든 흐름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펀드 환매 지연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까지 이종필은 대안을 제시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11월, 돌연 종적을 감췄다. 코스닥 기업 리드에 펀드 자금 300억원을 투자한 뒤, 이 회사 경영진과 회삿돈 80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앞둔 상태였다.
 
 
  국내에 있을 가능성 높아
 
이종필의 카카오톡 현재 프로필 사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이종필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새겨진 말이다. 그는 라임 환매 지연 사태 직전인 지난해 10월 9일, 프로필 사진을 이 구절이 써 있는 이미지로 바꿨다. 앞날을 예측했던 거라면, 우롱의 느낌마저 드는 글귀다.
 
  현재 그의 휴대전화는 계속 켜져 있는 상태다. 지난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봤는데, 꺼진 적은 단 한 차례뿐이다. 세 번 연속 전화를 건 날이다. 그런데 다음 날 걸었을 때는 다시 켜져 있었다. 4월 13일, 이종필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운전기사 성모씨는 이종필에게 대포폰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인즉슨, 종전의 휴대전화는 이종필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누가 꾸준히 충전해가면서 이 전화를 가지고 있는 걸까. 전화번호는 ‘36’으로 시작한다. 이는 S통신사의 번호다. S통신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그의 전화기 연결음을 듣고 “로밍된 번호의 경우 별도의 안내메시지가 없어도 통화연결음이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데 이 전화기는 로밍된 것 같다”고 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에 “통신 추적 교란을 위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서 계속 켜놓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3월 26일 이종필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이는 중범(重犯)에게만 내리는 조치다. 이전까지는 지명수배자 신분이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공개수배도 아니고 그냥 수배자는 아무 효력이 없다”면서 “그냥 막 돌아다녀도 아무도 모른다. 본인이 수배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따라 ‘해외도피설’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는 국내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종필은 정기적으로 약이 필요한 피부병을 앓고 있다. 5개월이나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는 건, 어디선가 꾸준히 약을 공급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종필의 도피를 도운 성모씨는 이종필에게 약과 도피자금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약 공급처는 그의 아내로 추정된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아내 C씨는 현재 상급병원에 재직 중이며, 동문(同門)인 C씨의 언니는 약학을 전공하고 현재 병원에 소속된 약사다. ‘대리처방’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 셈이다.
 
 
  도피자금 출처는?
 
이종필 전 부사장 부친 소유의 건물. 대전 시내 중심가에 10층짜리다.
  도피자금은 어디서 났을까. 이종필은 결혼 후 약 2주 뒤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123.12m2)를 매입했다. 현재 매매가는 14억~20억원이다. 부인 C씨가 공동명의자로 올라 있다. 이종필이 잠적하기 2개월 전인 2019년 9월 C씨는 이 집을 담보로 6억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물론 용처(用處)는 특정할 수 없다. 이후 라임에서는 이 집에 가압류를 걸었다. 이종필이 도주하면서 라임자산운용 측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 11일 30억원 상당의 가압류를 한 상태다. 다만, 부인과 공동명의인 까닭에 라임이 건질 수 있는 자산 규모는 절반밖에 안 된다.
 
  설령 그가 전 재산을 날린다고 해도 자금 조달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종필은 캐나다로 유학 가기 전까지 학창시절을 대전에서 보냈다. 그의 부친은 이 지역 유지(有志)다. 충남 계룡 지역 내 주유소와 찜질방, 장비설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금싸라기인 대전시청 인근에 10층짜리 건물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은퇴한 공무원 A씨(63)는 부친 이모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지역 내 꽤 이름난 사람이다. 100억원대 자산가라는 얘기도 있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산악회 활동 등 친목회 활동도 열심히 한다. 지역발전 사업에 관심이 있어 지역예술제 지원도 하고, 공연이나 모임이 있을 때 본인 소유의 찜질방과 그 앞마당 공간을 대여해줘 ‘통이 큰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캐나다에 있는 사위 또한 주유소를 운영하는데, 그때도 자금을 일부 대준 걸로 안다.”
 
  이종필의 여동생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매제는 캐나다에서 주유소 두 곳과 정비소 등을 운영하며 풍족하게 살고 있다. A씨는 “이 회장이 이따금씩 캐나다로 건너가 경영 노하우 등을 전수해준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아들이 수배 중인데 너무 평온한 가족들
 
이종필의 가족들은 그가 잠적한 후에도 여행을 다니는 등 평온하게 살고 있다. 사진은 이종필 부친의 카카오스토리 지난해 11월 중 여행 기록.
  노란 원피스를 입은 꼬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사진, 그리고 그 밑에 쓰인 글귀다. “귀염둥이 애교 많은 손녀딸. 보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ㅋㅋ.” 이종필의 모친 정모씨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등재 시점은 지난해 12월 12일 새벽 5시경으로, 이종필이 잠적한 이후다. 현재는 삭제했지만, 이종필의 아내 C씨 또한 최근까지 소셜미디어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고 지인들과 웃음 섞인 안부를 주고받았다. 부친 이모씨는 아들이 잠적한 직후에 호주, 뉴질랜드를 일주하며 여행기를 카카오스토리에 올리기도 했다. ‘수배령’이 떨어진 아들과 남편을 둔 이들의 행적이라기에는 너무 태평하다.
 
  가족들은 그의 소재를 알고 있는 걸까. 이는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 소재를 알면서 묵인하고 있다고 해도, 법상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라임 피해자 변호를 맡고 있는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이에 “친족 간에는 책임조각사유가 인정돼 은닉죄나 도주방조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접촉한 증거를 다 숨겨도 처벌받지 않는다. 친족 간 특례가 적용되면 증거인멸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충남에 있는 그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이씨는 낯선 번호라 받지 않은 듯, 이후 문자로 ‘누구냐’고 확인했다. 내용을 설명하고 전화를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이씨는 끝내 회신하지 않았다. 이후 몇 차례 더 전화와 메시지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종필이 잡힌다면 형량은 어느 정도일까. 김정철 변호사는 특경 횡령·사기, 자본시장법 위반, 시세조정행위 등 최소 10년으로 보지만 다른 분석도 있다. 금융업계 한 인사는 “여러 가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여느 경제사범이 그랬듯이 생각보다 형량이 적게 나올 수도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 1년 미만으로도 본다. 그가 짜놓은 복잡한 설계 구조 때문에 죄를 입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끼리 ‘진짜 난 놈은 JP’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라고 했다.
 
  앞서 이종필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A씨는 “다른 사람의 ‘돈’을 다루는 금융업은 신뢰가 생명”이라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잠적했으니, 설령 나중에 ‘무죄’를 받는다고 해도 다신 이 업계에는 발을 못 디딜 것”이라고 했다. ‘난 놈’ 이종필. 법이 판단하는 죄의 경중이 어찌 됐든, 43세 젊은 나이에 그는 두 번 다시 자신의 ‘텃밭’에서 재기하기는 어렵게 됐다.
 
  한편 라임 수사와 관련해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人士)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종필은 필드에서 뛴 선수일 뿐 감독은 따로 있다. 진짜 ‘몸통’은 현재까지 거의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다. 라임 사태는 이종필이 잡힌 후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거대 금융사건에는 권력자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다른 말로, 권력자가 있어야 거대 금융사건도 터질 수 있다. 우리가 라임 사태를 끝까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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