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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音

5共 시절 국세청장 지낸 安武赫 전 안기부장

-1987년 6월사태의 평화적 해결 기여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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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혁(安武赫)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안기부장)이 지난 8월 26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4세.
 
  황해도 안악 출신인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반공의거를 모의하다가 고초를 겪은 뒤 형과 함께 월남(越南)했다.
 
  육군사관학교(14기)를 졸업한 후 공병 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공병여단장·건설공병단장 등을 지낸 후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건설분과위원이 되면서 5공 정권에 참여, 1981년 제2대 사회정화위원장을 맡았다.
 
  고인은 1982년 5월 제5대 국세청장으로 취임, 5년간 재직했다. 재임 중 이철희·장영자 사건, 명성그룹 사건 등을 처리했다. 강직한 성품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역대 국세청장 가운데 가장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5월 제14대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종철 고문치사(致死) 사건의 여파로 장세동 부장이 물러나면서 그 뒤를 잇게 된 것이다. 6월 민주화운동 중에 고인은 군(軍) 동원 등 강제력을 사용한 사태 수습에 반대해,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했다.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안기부장 자리를 계속 지켰으나, 당시 실세(實勢)던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의 정국 운영 방식에 대해 “각종 집단의 요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다가 1988년 5월 사표를 던졌다. 1992년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등원했지만, 1996년 12·12 및 5·17 특별법이 상정되자 의원직을 그만뒀다. 이후 안기부장 시절인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자금 모금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한국발전연구원을 설립해 20여 년간 운영하면서 강연, 《한국발전리뷰》 발간 등을 통해 보수담론을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황해도중앙도민회장·이북5도민회장으로 안보 및 북한인권운동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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