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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실기시험 없앤 홍익대 美大의 교육실험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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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에 출범한 한국 미술인의 산실, 올해부터 실기고사 없이 학과성적만으로 신입생 전원 선발
⊙ 실기 없이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 기초 드로잉 실력 떨어져 학원 다니거나 휴학하는 경우 많아
⊙ “순수미술은 머리보다 재능이 중요, 대학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양성하는 곳”
    (남천우 전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 그림 실력이냐 성적이냐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회화과 실기실에서 4학년 학생이 과제를 하고 있다.
  올해 홍익대 미대(美大)에 입학한 K양은 요즘 교수들이 내주는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에 유학 와 있지만 주말이 되어도 고향에 갈 짬이 없다. K양은 “예고 나온 친구들에 비해 실기가 약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K양은 지방에 있는 인문계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부모는 사범대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화가가 되고 싶어 고집을 피워 미대에 지원했다. 그는 2013학년도 입시에서 홍익대 미대 수시 1·2차에 복수지원해 1차에서 떨어지고 2차에 합격했다. 수시 1차는 입학사정관 전형이다. 학생부 성적 100%로 4배수를 선발한 후 학생부 40%, 서류 30%, 면접 30%를 반영해 최종 합격자를 낸다. K양은 “수시 1차의 경우 서류 심사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류 심사는 수험생들이 제출하는 미술활동보고서를 토대로 입학사정관들이 진행한다. 미술활동보고서는 학교 안팎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을 학생이 적고 지도교사가 평가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교과활동과 비(非)교과활동으로 나뉘며 최대 10개 항목까지 작성할 수 있다. K양은 “저희 학교는 인문계라 미술 수업을 1학년 때 몰아서 했다”며 “3년 내내 미술 수업을 하는 예고 출신들에 비하면 미술활동보고서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양은 학생부 성적 100%로 선발하는 수시 2차에 합격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지방 소도시에 있는 조그마한 화실에 다니며 나름 기초를 다졌지만 예고 나온 친구들에 비하면 아마추어 수준”이라며 “예고 출신들보다 몇 배 노력해야 실기 수업에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K양이 전공하는 순수미술 학과에는 예고 출신이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 입학한 L군에 비하면 그래도 K양의 상황은 양호한 편이다. 수도권의 한 외국어고를 나온 L군은 고교 2학년 때 에드바르 뭉크의 평전을 읽고 감동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홍익대 미대가 절반의 학생을 실기고사 없이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K양처럼 학생부 성적 100%만으로 선발하는 수시 2차에 지원해 합격했다. 문제는 L군의 경우 법대를 지망하다 뒤늦게 진로를 바꾼 탓에 미술 실기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L군은 1학년 때부터 실기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서 미술학원에 다녔지만 결국 한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L군은 “입학하면 기초부터 가르쳐 주는 것으로 알았다”며 “제대 후 타 학과로 전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뿐 아니라 지도하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순수계열의 한 전공 교수는 “1, 2학년 학생 중에는 기초 조형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아이가 많아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하려거든 입학 후 기초 조형 훈련을 집중적으로 지도할 교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짐작하겠지만 홍익대가 미대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고의 엘리트 미술인 양성 교육기관인 홍익대 미대는 2010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실기고사 비중을 줄여 온 데 이어 올해 입학생부터는 전면 폐지했다. 말하자면 2013학년도 홍익대 미대 합격생은 전원 실기고사 없이 입학한 셈이다.
 
  올해로 시행 4년차에 접어든 홍익대 미대의 교육실험 결과를 중간 점검하는 차원에서 집중 취재했다.
 
 
  홍익대 미대 입시부정이 실기고사 폐지 계기?
 
왼쪽부터 이수홍 조소과 교수, 김종덕 시각디자인과 교수, 우관호 도예유리과 교수.
  “홍익대 미대는 올해부터 미술대학 실기고사를 단계별로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2009년 3월 11일 당시 홍익대 권명광(權明光) 총장은 파격적인 미대 입시개혁안을 발표했다. 2010학년도 미대 입시부터 실기고사 비중을 단계별로 줄여 2013학년도에는 전면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변혁안이었다. 권 총장은 “제한된 주제와 소재, 그리고 기법에만 얽매이는 종전의 실기고사는 오히려 학생들의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만 높일 뿐”이라며 “공교육을 충실히 받으면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 온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취지로 입시 제도를 바꾸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학원에서 실기고사를 준비해 오던 수험생들은 급작스런 이 발표에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미대 입시 특성상 수년 전부터 고액의 사설학원에서 실기고사 준비에 집중해 온 터라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입시 제도를 바꾸는 홍익대의 저의를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미술계와 학계에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을 낮추고 천편일률적 암기식 교육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홍익대 미대가 입시 부정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여론 잠재우기용으로 내놓은 고육지책(苦肉之策) 같다”고 폄하했다.
 
  홍익대 미대 입시 부정이란 2008년 4월 홍익대 미대에 재직 중인 한 교수가 “회화과 교수 6명, 판화과 교수 1명 등 7명의 교수가 학원가와 손잡고 입시 부정을 저질러 왔다”고 내부 고발한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해당 교수 전원을 조사한 후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학교 재단은 1명의 교수를 정직 처분하는 등 해당 교수 7명 모두를 징계했다.
 
  학교 측은 “미대 입시개혁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을 실천하는 것뿐”이라며 여론 잠재우기용 고육지책설을 일축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홍익대가 해마다 주최해 온 전국 중고생 대상의 미술실기대회를 입시개혁안 발표 후에도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이 실기대회는 입시와 같은 형태로 진행되는 데다 교수들이 직접 평가해 홍익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참가한다. 실기대회가 있는 날이면 전국에서 올라온 차량으로 홍익대 일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당시 전형료가 4만원이나 될 정도로 고가였지만 한 해 평균 1만여 명이 참가했고, 이로 인해 홍익대가 챙긴 전형료가 매년 수억 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입시 관계자들은 “홍익대가 오래 전부터 입시개혁을 준비해 왔다면 실기고사 폐지안을 발표하면서 실기대회를 개최하는 모순은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홍익대 측은 “개혁안 발표 훨씬 전에 약속된 것이라 취소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군색한 변명으로 비쳤다.
 
  이런저런 의혹과 잡음에 아랑곳없이 홍익대는 개혁안을 추진했다. 2010학년도 미대 입시에서 자율전공으로 100명을 실기고사 없이 선발한 것이다. 자율전공은 전공 없이 입학한 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홍익대 미술대학 전체 정원 860명 중 100명은 10%가 넘는 수치다.
 
  홍익대는 실기고사 없이 2011학년도에는 30%, 2012학년도에는 50%를 선발했다. 그리고 올해는 860명 전원을 실기고사 없이 뽑았다.
 
 
  홍익대의 경쟁력은 강한 실기
 
판화과 신입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찍어 내고 있다.
  “미술대에서 실기 테스트 없이 학생을 선발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수학과에서 수학 시험 없이 학생을 뽑는 격이잖아요.”
 
  올해 홍익대 미대가 신입생 전원을 실기고사 없이 선발했다는 말에 이 학교 동문인 한 작가가 흥분해서 한 말이다. 1970년대 학번인 그는 “홍익대는 전통적으로 실기가 강해서 국립 서울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이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작가를 배출해 왔다”고 말했다.
 
  “홍익대는 1980년대 초까지 후기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기인 서울대에 낙방한 학생들이 대거 홍익대로 유입됐죠. 이들은 본고사나 학력고사 성적에서 밀렸을망정 실기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파들이었습니다. 공부에 목을 매는 ‘범생이’보다는 도전과 자유를 꿈꾸는 ‘집시’ 기질이 강한 사람이 많았죠. 그게 홍익대 특유의 실험적이면서 자유로운 학풍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미술계에서는 흔히 서울대 미대를 온실형으로, 홍익대 미대를 야생형으로 비유하곤 한다. 온실형이 잘 다듬어진 반면 생명력이 약하다는 결점이 있는 데 비해 야생형은 거칠기는 하나 생명력이 강하다는 이점이 있다. 서울대가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하다면 홍익대는 진보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홍익대 미술학부 출신의 오광수(吳光洙) 전(前)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홍익대 미대의 경쟁력으로 ‘초기부터 형성된 우수한 교수진’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학풍’을 꼽는다.
 
  초기 홍익대 학풍을 만든 교수는 한국 산수화의 대가 이상범(李象範), 꽃과 영혼의 화가로 불려온 천경자(千鏡子), ‘바보산수’로 유명한 김기창(金基昶), 국내 최초의 도불(渡佛) 화가 이종우(李鍾禹), 한국 추상화의 거목 김환기(金煥基), 기하학적 추상의 대가 한묵(韓默), 인상주의 풍경화가 김원(金原), 자연주의 풍경화가 손응성(孫應星), 누드화의 대가 이종무(李種武), 전설적 미술평론가 이경성(李慶成), 조각가 윤효중(尹孝重), 김경승(金景承) 등 근현대 한국미술을 이끈 대가들이었다.
 
  이들의 가르침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들이 대거 탄생했다. 박서보(朴栖甫), 박석호(朴錫浩), 문우식(文友植), 김영환(金永煥), 김충선(金忠善), 이수헌( 李樹軒), 맹인재(孟仁在), 정건모(鄭健謨), 윤형근(尹亨根), 김종휘(金鍾輝), 이의주(李義柱), 황용엽(黃用燁), 김정숙(金正淑), 윤영자(尹英子), 김찬식(金燦植), 김뢰진(田礌鎭), 배형식(裴亨植), 김영중(金泳仲), 민복진(閔福鎭), 최기원(崔起源) 등이 그들이다.
 
  ‘축제’ 시리즈로 유명한 서양화가 이두식(李斗植), ‘소나무’ 시리즈로 이름을 떨친 사진작가 배병우(裵柄雨), 해외에서 더 유명한 영상설치미술가 김수자, 빡빡머리 설치미술가 최정화(崔正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자인 서양화가 강익중(姜益中)과 설치미술가 이불 등 홍익대 미대가 배출한 스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 원로화가는 “지난 60년 동안 홍익대가 이렇듯 많은 작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실기고사를 통해 기초 조형 능력이 탄탄한 학생들을 선발했기 때문”이라며 “실기고사 없이 뽑은 학생들이 선배들의 화맥(畵脈)을 이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기 폐지로 신입생 학과성적 향상
 
  동문들의 우려와 달리 학교 측은 입시개혁 결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김종덕(金鍾德)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는 시대에 석고소묘로 창의성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며 “디자인은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얘기다.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미대 입학생들의 학과성적이 기존보다 1, 2등급 향상된 것으로 압니다. 교육 현장에 있어 보니 실기고사 없이 들어온 학생들이 기초수업을 하는 1, 2학년 때는 실기에서 다소 밀리지만 전공수업을 하는 3, 4학년 때는 오히려 뛰어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내신이 좋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합니다. 어떤 목표가 주어졌을 때 꾸준히 공부하는 편이죠. 이런 아이들은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디자인 학부의 경우 실기가 뛰어난 학생과 머리가 좋은 학생이 섞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우관호(禹寬壕) 도예유리과 교수는 “교수마다 개인적인 시각 차이가 있겠지만 입체를 다루는 전공의 경우 어떤 틀이나 습관이 있는 학생보다는 아예 백지 상태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입시학원에서 하는 교육은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인을 양성하는 것이라 다니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우 교수는 “홍익대가 실기고사를 없앰으로써 공교육 정상화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우 교수의 말이다.
 
  “수시 1차의 경우 내신성적과 미술활동보고서의 비중이 큽니다. 이 때문에 홍익대 지원자는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열심히 듣는 등 학교생활에 충실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요.”
 
  이수홍(李樹泓) 조소과 교수는 “홍익대는 기본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교”라며 “입학생들의 실기저하 우려를 잠식하기 위해 실기고사 폐지안 시행 첫해부터 신입생 대상의 예비학교 프로그램과 멘토링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학 전 2주 동안 실시하는 예비학교에서는 교수와 강사들이 기초 조형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고, 멘토링 제도는 선배가 후배의 멘토가 되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고 한다.
 
 
  실기 안 본 입학생 기초소양 능력 부족
 
조소과 신입생들이 야외에서 실기 수업을 하고 있다.
  교수들이라고 해서 실기 폐지의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교수와 시간강사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참고로 이들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두는 바이다.
 
  순수계열의 한 교수는 “홍익대의 전통 입시는 학력 위주보다 실기 중심이었다”며 홍익대가 현행 입시제도로 바꾼 것 자체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입시행정의 편의상 실기고사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다.
 
  “홍익대는 전통적으로 기초실기인 소묘와 전공실기인 수채화, 수묵화, 소조, 평면구성 등으로 시험을 쳤습니다. 사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같은 시험 방식에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 소묘의 경우 인체가 나올지 석고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부지런히 드로잉 기초를 다져야 했고, 전공실기의 경우 다양한 소재나 주제를 접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었죠. 이 시스템이 깨진 것은 돈에 눈이 먼 일부 학원가와 교수들의 커넥션 때문입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일부 교수들이 금품을 받고 출제 문제를 학원가에 흘렸다. 당연히 이 정보를 입수한 학원은 합격생을 대거 배출함으로써 승승장구했고, 그렇지 못한 학원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이들은 입시문제 사전유출 의혹을 제기했고, 홍익대 측은 문제를 봉합하기 위해 출제 예상 문제를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학원가는 수험생들에게 출제 예상 소재와 주제만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기초실기 부문 출제 예상 소재가 기본 석고인 줄리앙, 아그리파, 비너스 중의 하나라고 하면 인체 소묘는 젖혀두고 이 세 석고만 파고든 것이다. 이때부터 미술학원들은 암기식 교육의 상징이 되었고, 기능인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전통적인 실기고사가 일부 비양심적인 교수들의 부정으로 변질됐다고 해서 폐지하는 것은 문제”라며 “좀 더 견고한 안전장치를 통해 최소한의 기초 조형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기고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기고사 없이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프로미술인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에서 고교 과정에 마스터해야 할 기초를 가르치고 있다”고 푸념했다.
 
 
  예고와 일반고 출신 현격히 달라
 
올해 홍익대 미대에 40명의 합격자를 배출한 선화예고.
  홍익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1, 2학년을 대상으로 기초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는 한 시간강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올해 실기고사 없이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실기 편차가 너무 심해서 어디에 기준해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난감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고 출신 학생들은 당장 전공수업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반면에 학생부 성적만으로 들어온 일부 학생들은 기초 조형 감각이 전혀 없어서 따로 붙들고 가르쳐야 할 형편이에요. 조형 감각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라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단시일에 익힐 수 없습니다. 학생들도 답답한지 몇몇은 저녁에 학원을 다니는 눈치이고, 몇몇은 포기했는지 수업에도 들어오지 않더군요.”
 
  홍익대 출신의 이 강사는 “디자인 계열은 몰라도 순수 계열만은 실기고사를 보고 선발했으면 한다”며 “그림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때 완성된다”는 말을 했다.
 
  수년 동안 홍익대에서 강의를 해 왔다는 또 다른 강사는 “홍익대 학생들의 실기 수준이 갈수록 떨어진다”며 “장미를 그리라 했더니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사진을 보고 모사하더라”며 기막혀했다. 이 강사의 말이다.
 
  “구도나 원근감조차 모르는 학생도 있어요. 이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지도를 해 주겠다고 하니까 ‘자기는 잭슨 폴록 같은 추상화를 할 것이기 때문에 필요없다’며 거부하더군요. 솔직히 좀 놀랍고 황당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듯 엉뚱한 생각으로 지원한 학생들을 따로 지도할 교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홍익대에서만 강의한 것이 벌써 15년째라는 한 서양화가 역시 1, 2학년 수업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실기고사 없이 들어온 학생들의 경우 기초 드로잉(소묘) 시간에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강사의 말이다.
 
  “실기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의 경우 드로잉 실력이 초등학교 수준입니다. 형태 해석이 전혀 되지 않아 비례나 구도가 맞지 않아요. 이런 학생들의 경우 기초 조형 원리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는데 무척 힘들어요. 시간도 부족하고요. MT나 축제 등 학교 행사들을 빼면 한 학기 실제 수업 시간이 15주도 채 되지 않은데, 기초 조형 원리는 단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미술에 그닥 애정도 없으면서 ‘홍익대 미대’라는 간판만 보고 오는 학생들의 경우 1년 내내 겉돌다 휴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 시간 강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순수 계열의 한 전공 교수에게 전했다. 이 교수는 “미술에 대한 이해 없이 성적만으로 들어온 학생은 극히 일부”라며 “그런 학생들이 자연 도태돼야 홍익대의 입시제도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머리만 있으면 뭐해요. 표현을 못하는데…”
 
  홍익대는 미술 특화 대학이다. 이를 상징하듯 미술대학은 홍익대 정문에서 봤을 때 가장 높은 건물인 문헌관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이론 강의실과 전시실, 실기작업실 등에서 재학생들을 여럿 만났다.
 
  문헌관 전시실에서는 금속조형 전공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합동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004학년도에 입학했다는 졸업생 김주연씨는 실기고사 없이 후배들을 뽑는 것에 대해 “솔직히 졸업하고 나니 학교에 큰 관심이 없다”면서도 “홍익대는 실기고사가 있을 때도 학과성적이 좋아야 지원할 수 있는 학교”라고 했다. 기자가 “요즘은 미대에 진학해서 중도에 다른 학과로 전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 했더니 김씨는 “우리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홍익대 미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최소 1~2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준비해 들어온 학생들이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거나 전과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화과 4학년 실기수업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실기고사를 치르고 입학했음에도 성적들이 좋았다. 이 학교 동양화과 문봉선(文鳳宣) 교수의 아들이라는 문성돈 군은 인천외고 출신으로 내신 2등급이었다고 했고, 안수민 양은 서인천고 출신으로 내신 수능 모두 1등급이었다고 했다.
 
  조각 작업실에서 만난 조소과 2학년 H양은 수도권에 있는 외고를 졸업했고, 내신과 수능 모두 1등급이었다고 했다. H양은 “교수님이 안 계시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다”며 홍익대 입시의 문제점을 짚어 냈다. H양의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각이 좋아 부모님의 반대에도 지원했는데, 학교에 와서 많이 실망했어요.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한 만큼 학교에 오면 교수님들이 기초부터 꼼꼼히 지도해 줄줄 알았는데 혼자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거든요. 예비학교나 멘토링 제도는 형식적이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만 있으면 뭐 해요, 표현을 못하는데…. 입시제도를 개혁했으면 그에 따라 학교 커리큘럼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H양은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미술활동보고서를 학생이 직접 작성하지 않고 학원 강사나 과외 선생이 대신 작성해 준다는 것이다. H양은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후 미술활동보고서 작성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홍익대가 입시제도를 개혁한 것은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기능적인 학생보다는 창의적인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목적이라면 서울대 방식으로 선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H양이 꼽은 서울대 미대는 홍익대와 달리 3차에 걸쳐 실기고사를 치르는 1단계에서 학생들을 거른 후 단계별로 내신과 수능, 면접 등으로 최종 선발한다.
 
 
  “실기 폐지는 결국 예고 출신을 우대하는 것”
 
  홍익대가 미대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하면서 가장 변화가 심한 곳은 홍익대 앞 미술학원 거리다. 과거에 비해 미술학원이 줄어들기도 했거니와 밤이면 학생들을 태워 가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던 학원버스 행렬도 사라졌다. 해마다 치르던 실기대회가 없어진 후 중고생이 많이 찾던 분식집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몇몇 학원에는 여전히 ‘홍익대 미술대학 ○○명 합격’이라는 광고 문구가 걸려 있었다. 이들 학원은 실기고사가 폐지되자 미술활동보고서 작성 요령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홍익대 입시 비리 사태가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이 학원가를 겨냥해서였을까. 미술학원 관계자들은 언론사라면 치가 떨린다는 듯 하나같이 취재를 거부했다.
 
  수소문한 끝에 디자인 전문 학원 한 곳을 어렵게 섭외했다. 홍익대 앞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이 학원 역시 입구에 올해 전국 대학에 합격한 원생들의 명단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서울대 합격생들만 빠져 있었다. 홍익대 출신의 원장은 “홍익대는 이제 예체능계가 아니라 인문계”라며 “이곳에서 논술 지도를 받고 합격한 학생이 몇 명 있지만 자존심 상해 합격자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이 학원 원장은 “홍익대 미대가 전체 정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수시 1차(입학사정관제) 전형은 예술고·미술고를 제외한 일반 고교 학생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한 경우 미술활동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학생은 교과활동과 비교과활동 내역을 각각 10개 항목까지 작성하고, 학생을 지도한 미술교사는 각 항목에 대한 품평을 작성해 홍익대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돼 있죠. 문제는 일반 고교의 경우 예체능 과목에 대해 집중 이수제를 실시하는 곳이 많다는 점입니다. 교과활동의 경우 두세 개 항목밖에 쓸 것이 없는 데다 한 학기 동안 잠깐 가르친 미술교사가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을 품평하기가 쉽지 않죠. 그나마 미술교사가 없는 곳도 여러 곳입니다.”
 
  미술교사가 없는 경우 담임교사가 품평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미술에 문외한일 경우 품평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도 미술활동보고서를 작성할 때 학원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학원장은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 몇 명의 미술활동보고서를 살짝 보여줬다. 내용이 많고 상당히 전문적이었다. 학원장은 “홍익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많은 예고의 경우 담임교사가 품평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또한 “올해 입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홍익대의 경우 예고 출신이 유리하다”며 “앞으로 예고 진학을 위한 중학교 입시 미술학원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공교육 정상화에 큰 도움 안 돼
 
  일선 교육현장에서 진학지도를 하고 있는 미술교사들은 홍익대 미대 입시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경북의 한 소읍에 있는 여학교 미술교사는 홍익대 측이 주장한 공교육 정상화 효과에 대해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공교육 정상화가 되려면 홍익대만이 아니라 미술 관련 학과가 있는 전국 대학이 모두 입시를 홍익대처럼 바꿔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저희 학교에 홍익대 미대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지원한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학생이 작성한 교과활동 몇 항목에 대한 품평을 해 달라는데, 솔직히 1학년 때 잠깐 본 학생에 대해 아는 것도 없거니와 문장력이 딸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다니는 미술학원 선생님께 부탁해 써 오면 내가 홈페이지에 올려 주겠다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지난해 학생 한 명을 홍익대 미대에 보냈습니다.”
 
  홍익대는 학생이 교과활동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리면 그 밑에 미술교사가 품평을 달도록 하고 있다. 이때 미술교사는 학생이 올린 보고서를 볼 수 있지만 학생은 교사가 올린 품평을 볼 수 없다.
 
  대전에 있는 한 인문계 고교에서는 올해 미대 입시에서 서울대 2명, 한양대 1명, 국민대 1명 등 총 4명이 서울 지역 대학에 진학했다. 전체 학생이 300명인 이 학교에 미술교사는 딱 한 명뿐이다. 이 학교 미술교사는 “아직은 실기고사를 보는 학교가 많아 미술반 아이들 전원이 전문 학원에 다녔다”고 말했다.
 
  “요즘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홍익대 역시 학과성적이 좋아야 갈 수 있습니다.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암기식 교육은 반대하지만 실기고사를 폐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림은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감각이 있어야 그릴 수 있거든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과성적은 좀 떨어지지만 미술 재능은 뛰어난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홍익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2013학년도 입시 예고 출신 강세
 
  정시 전형이 줄고 수시 전형이 증가한 올해 홍익대 미대 입시에서는 예술고·미술고 출신들이 강세를 띠었다. 서울예고(48명), 선화예고(40명), 덕원예고(13명), 계원예고(12명) 등 수도권에 있는 4개 예술고에서 100명이 넘는 합격자를 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서울예고 이덕한 미술부장은 “서울예고는 전통적으로 서울대에 더 많이 진학하는데 올해는 홍익대 진학생이 더 많다”며 “두 학교의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덕한 부장의 말이다.
 
  “지난해 서울대 입시(수시)의 경우 실기시험도 까다로웠지만 최저학력 기준이 너무 높아 상위권 학생이 아니면 합격권에 들기 힘들었어요. 반면 홍익대(입학사정관제)는 서울대에 비해 최저학력 기준도 낮은 데다 미술활동보고서가 있어서 예고 학생들에게 유리했던 것으로 압니다.”
 
  서울예고는 서울대에 떨어진 학생이 대거 홍익대로 이동했다고 한다. 서울대의 작년 최저학력 기준은 디자인과 서양화 전공의 경우 수능 4개 영역 중 3개 영역 이상 3등급 이내, 나머지 전공은 1개 영역 이상 3등급 이내였다. 반면 홍익대(서울 캠퍼스 기준)는 수능 4개 영역 중 3개 영역 평균이 3등급 이내이면 가능했다. 홍익대의 경우 수리 영역이 좀 약해도 언어나 외국어 영역이 강하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홍익대는 서울대와 달리 실기고사가 아니라 학생부 성적으로 1차에서 거른 후 내신 40%, 서류 30%, 면접 30%를 반영해 최종 선발했다. 실기고사가 폐지되면서 상대적으로 내신성적 반영 비율이 높아진 셈이다. 이것만 놓고 볼 때는 실기가 강한 예고 학생들이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2013학년도 홍익대 입시에서 예고 학생들이 강세를 보인 이유는 뭘까. 이덕한 부장은 “예고 학생들은 보정계수 때문에 내신 등급이 0.1~0.2등급 정도 상향 조정된다”며 “보정계수는 일반 학교에 비해 국·영·수 등의 주요 과목 이수 단위가 적은 예고 학생들을 보상해 주기 위해 홍익대가 적용하고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예고 출신들의 경우 내신을 국어, 영어, 미술 외에 수학, 과학, 사회탐구 중에서 자신 있는 과목 하나를 선택해 산출한다고 한다. 선화예고에 재직 중인 한 교사는 “예고 출신이건 인문계 출신이건 일반적으로 예체능 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수학이 약하다”며 “예고 학생들의 경우 내신 산정 시 수학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의 말이다.
 
  “내신에서 0.1~0.2등급은 상당히 큽니다. 당락이 달라질 수 있는 점수죠. 보정계수는 홍익대 미대만 적용하고 있는데, 실기고사 폐지 후 실기 우수자를 뽑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판단됩니다.”
 
  홍익대 출신이라는 그는 “기본적으로 미대 지망생이라면 기초 조형 능력은 갖춰야 할 것 같다”며 “실기고사를 폐지하기보다는 20% 정도로 축소해서라도 반영하는 쪽으로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맞춤형 실기고사 개발해야
 
판화과 출신의 남천우 전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남천우(南天祐) 전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역시 미대 학생을 뽑는데 실기 테스트가 없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는 홍익대 판화과 90학번이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우선적 요소는 타고난 재능입니다. 머리는 재능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지요. 어떤 학생이 미술 쪽으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든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든 실기 테스트를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 교수가 재직했던 인디애나주립대는 교수가 자신이 가르칠 학생을 포트폴리오를 보고 직접 뽑는다. 입학원서 접수가 시작되면 지역 내 미대 지망생들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교수를 찾아오는데, 학생이나 교수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평가하는 것의 목적이 입학만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전문가에게 확인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들고 교수를 찾습니다. 교수는 객관적인 기준과 입장에서 평가하고, 학생의 작품 성향에 따라 타 대학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본인들이 준비하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요. 한국처럼 전문가들이 개입하는 일이 없죠. 미국 학생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타인이 관여하려 들면 몹시 자존심 상해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져진 국민성이 우리와 다르죠.”
 
  한국에서 포트폴리오를 통해 입학생을 뽑겠다고 하면 포트폴리오 대행 학원이 성행할 것이다. 남 교수는 “한국은 국민성 자체가 포트폴리오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무작정 외국 대학을 따라 하기보다는 한국 여건에 맞는 평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기고사를 치르던 기존의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폐지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없는 쪽으로 개선을 해야죠.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의 입시미술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대를 다니다 뒤늦게 미대로 진로를 바꾼 저 같은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 조형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학원이 없었다면 내 안에 잠재돼 있던 재능을 살릴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암기식 교육이라 해도 재능이 있는 사람은 표가 나기 마련이라는 것이 남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재능과 머리를 동시에 보는 것이 입시”라며 “학생들의 잠재된 ‘끼’와 ‘열정’을 찾는 홍익대만의 맞춤형 입시가 개발되었으면 하는데, 그러려면 교수들이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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