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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 올린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정몽구,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사의 주인공 되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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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로 美 디트로이트 자동차 전당에 헌액
⊙ 품질에서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던 ‘자동차王’
⊙ “현대차 로고 떼라. 이제 제네시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라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고작 10위권인 자동차 회사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글로벌 톱5 업체를 빼고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숨이 끊어질 뻔하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이복동생’ 기아차도 챙겨야 했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명예회장의 현실이었다.
 
  20년 뒤 현대차는 ‘글로벌 톱5 완성차’ 업체가 됐다. ‘K3’ ‘K7’ ‘K9’을 앞세운 기아차의 K시리즈는 ‘효자’가 됐다. 2010년에 10만 대, 2013년에 14만4000대가 팔렸다. 2020년에는 15만6000대나 팔렸다. 분가할 때 36조원대던 그룹 자산은 234조원(2020년 기준)대로 불어났다. 이 기적의 중심에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있다.
 
 
  헨리 포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정몽구
 
  전(全) 세계 자동차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미국 디트로이트에는 1939년 설립된 ‘자동차 명예의 전당’이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기념물과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의 명판이 전시된 곳이다. 미국 크라이슬러 창립자인 월터 크라이슬러, 토머스 에디슨, 포드자동차 창업주 헨리 포드의 대리석 명판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2020년 인물로 정몽구 명예회장을 뽑았다. 주최 측은 “현대자동차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글로벌 업계 리더다. 기아차의 성공적 회생,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 고효율 사업구조 구축 등 정몽구 명예회장의 수많은 성과는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주최 측으로부터 2001년에 ‘자동차 산업 공헌상’을 받은 데 이어 19년 만에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뽑혀 세계로부터 자동차 산업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정몽구 명예회장 개인의 쾌거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자동차가 세계 속에서 인정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을 대신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브랜드 부문 사장,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 등 정씨 일가가 총출동했다. 공영운 현대차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북미권역 본부장, 윤승규 기아 북미권역 본부장, 존 롭 미국기술연구소장 등이 함께했다.
 
  헌액식에는 정 명예회장의 경영 활동과 업적을 조명한 헌정 영상이 상영됐고, 정 명예회장의 수소전기차 세계 최초 양산을 상징하는 수소전기차 ‘넥쏘’와 전기차 ‘아이오닉5’가 전시됐다. 주최 측은 자체 제작한 영상에서 정 명예회장의 인터뷰와 함께 기아의 성공적 회생,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공장 건설 등 그의 굵직한 경영 활동을 조명했다.
 
 
  존재감 없던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대리 수상한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는 현대차그룹을 존재감이 없던 자동차 회사에서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탁월한 품질과 성능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은 현대차그룹의 제품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토대가 됐다. 수많은 위기와 도전을 이겨내고, 독자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창업자 정주영(鄭周永) 선대회장의 꿈에 결실을 보았고, 현대차그룹을 직원들과 고객, 딜러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로 도약시키기 위해 평생 헌신했다”고 존경심을 나타냈다.
 
  존 크래프칙 전(前)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CEO는 “정 명예회장은 모든 직원이 최고 품질의 자동차 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감을 갖고 업무를 추진하게 하였다. 제품에 집중했고, 모든 차량이 뛰어난 품질과 안전성을 갖추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이형근 현대차 정몽구재단 부이사장(기아 전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 집무실에 있는 커다란 세계지도에는 곳곳마다 현대차와 기아를 나타내는 스티커들이 부착돼 있었다. 그는 회의 때마다 지도를 가리키며 질문을 쏟아냈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곳곳에 위치한 거점들을 자주 방문했고, 언제나 직원들을 따뜻하게 살폈다”고 말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정몽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10위였던 현대차를 10년 만에 글로벌 ‘톱5’ 회사로 키워냈다. 2016년 시무식 때 모습. 사진=조선DB
  정몽구 명예회장에 대해 쏟아지는 찬사는 괜한 얘기가 아니다. 그는 세계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짧은 기간에 10위권인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5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현대기아차 회장에 취임했다. 탄탄하다고 믿었던 10대 재벌그룹이 맥없이 도산했고,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때였다. 개인이나 기업, 사회, 국가 모두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2000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동차 전문그룹’을 출범시켰다.
 
  건설·중공업·종합상사 등이 망라돼야 재벌그룹이었던 우리나라의 재계 환경에서 자동차 전문그룹이라는 단어는 어색했다. 자동차가 재벌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될 수는 있으나, 자동차 하나만으로 그룹을 일군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갔다. 하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은 확고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경제성장률을 능가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주도했고,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세계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뤄냈다. 2010년 건설경기 침체 때에는 주변의 우려에도 현대건설을 인수해 주력 부문으로 육성, 현대가(家)의 적통을 이어갔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품질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장을 사랑했다. 말쑥한 정장 차림보다는 회색 작업복에 흰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공장을 누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힌다.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도약을 선언했을 때도 그는 1년에 몇 번씩 해외 법인을 방문했다.
 
  ‘현대라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유럽 등 해외시장을 둘러보던 그는 품질 불량 차종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곧바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이는 판매 급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정 명예회장은 ‘품질 우선론’을 들고나왔다.
 
  “자동차 품질이 제일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믿고 탈 수 있어야 한다.”
 
  훗날 ‘정몽구의 품질경영’이라고 이름 붙은 원칙은, 그가 해외를 돌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속 깊이 들여다봐서 나온 것이었다. 현대차가 앞서 미국에 내놓은 ‘10년 10만 마일 제도’(10년 동안 주행기간 10만 마일까지 무상 서비스 제공)도 새롭게 관심받았다. 도요타가 ‘3년 3만 마일’ 무상 보장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내놓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오너의 강력한 주문에 현대차가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이를 눈여겨봤다. 《타임》지는 ‘현대차의 고속 질주’라는 제목으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 제공을 통해 현대차의 품질 자신감을 엿볼 수 있고, 소비자의 만족도 역시 향상됐다”고 2001년 7월 보도했다. 같은 해 12월 《비즈니스위크》는 ‘현대차의 쾌속질주’라는 제목으로 “미국 소비자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선보여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고의 인력이 필요하다”
 
2006년 9월 현대차 인도공장을 방문한 정몽구 명예회장. 사진=현대차 제공
  정몽구 회장은 확고했다. 자동차 전문그룹 출범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현대차의 사사(社史)는 ‘품질과의 전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며 그 기본은 품질이다.”(2005년)
 
  “품질은 제품의 근본적인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감성적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다. 품질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새롭게 다져달라.”(2006년)
 
  정 명예회장 품질경영의 결과는 2004년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차 품질 및 내구 품질 조사에서 현대자동차가 호평을 받은 것이다. 현대차는 2004년 미국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요타를 제쳤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는 ‘사람이 개를 물었다’ ‘지구는 평평하다’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 《USA투데이》도 신차품질조사 소식을 보도했다.
 
  사람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사(社)들과 경쟁하려면 연구개발이 필수고, 이를 수행할 인재가 있어야 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5년 신년사에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기술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수한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연구인력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가 품질,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상황에서 이제는 심층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했다.
 
  정 명예회장의 신년사에 대해 외부 반응은 싸늘했다. ‘불확실성이 있는 미래 투자로 막 탄력을 받기 시작한 현대차의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자동차와 관련된 인재들을 수소문해 모았고, 이후 현대차는 친환경차 개발, 연비기술 향상 등에 온 회사가 심혈을 기울였다. 전 세계 최초로 병렬형 하드 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쏘나타 하이브리드’, 동급 최고의 성능을 구현한 ‘쏘울 EV’ 수소연료전지차가 세계 최초 양산의 성과로 이어졌다.
 
 
  중국 진출 1년5개월 만에 현대차 10만 대 생산
 
  북미·유럽 시장 공략과 함께 정 명예회장은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현대차가 품질에 열을 올리고 있던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에 진출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레드오션’. 하지만 현대차가 조금 늦었을지언정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현대차는 중국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2002년 중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2년 하반기 중국 정부의 비준과 동시에 공장 전면 개보수 작업에 들어갔고, 단 2개월 만에 ‘쏘나타 1호차’를 생산했다. 현대차는 하나의 프로세스로 각기 다른 차종을 생산하는 첨단 시스템을 적용해 중국에 진출한 지 불과 1년5개월 만에 중국 내 자동차 회사 중 최단기간 1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철저히 차별화된 전략 덕분에 가능했다. 다른 글로벌 회사들은 중국의 인건비가 싸다는 점에 착안해 중국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동차 생산 공장의 자동화율을 낮춰서 초기 투자비용을 아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달랐다. 그는 중국 공장을 지으면서 중국 사람을 많이 쓰기보다 최첨단 설비를 갖춰 자동화율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현대기아차는 “정 명예회장의 품질과 생산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역발상 결단은 지금까지 현대기아차가 중국 내에서 우수한 품질을 갖춘 브랜드로 인식하게 한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당시 중국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던 폴크스바겐, GM, 도요타 등은 북미나 유럽에서 이미 판매 철이 지난, 소위 ‘한물간’ 구형 모델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들은 관용차 시장을 겨냥해 대형의 고가 모델을 고집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달랐다. 대중 자가용 시장을 겨냥해 당시 최신 차종인 ‘EF쏘나타’ ‘아반떼XD’를 투입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역발상으로 5.4% 점유율이 2년 만에 7.7%로
 
2006년 3월 기아차가 미국 조지아공장에 투자키로 한 계약식에서 정의선 당시 부회장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몽구 명예회장. 사진=현대차 제공
  역발상은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쉬운 결정이 아니다. 다른 동료 또는 경쟁자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홀로 뒤돌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하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은 그랬다. 바야흐로 2008년 금융위기 시절,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내로라하는 금융 회사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도산했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꽁꽁 닫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련이 또다시 시작됐다.
 
  2008년 이후 유럽 자동차 시장도 꾸준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에게는 기회였다. 그는 유럽 시장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현지화 모델을 출시해 유럽 시장의 공략 강화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2008년 체코 노소비체 지역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고 ‘i30’ 등 현지 전략 모델을 출시했다. 기아차는 2007년 슬로바키아 질리나 지역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완공, 현지 모델 ‘씨드’를 내놨다. 현대기아차의 유럽 판매는 2008년 50만6000여 대에서 2020년 85만5000여 대로 많이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과감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인데, 현대차를 산 후 1년 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먹혔는지는 숫자가 알려준다. 2008년 5.4%였던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09년 7%대로 올랐고, 2010년에는 7.7%까지 치솟았다.
 
 
  50년 걸린다던 일, 20년 만에 해치웠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력은 금세 시장에서 평가를 받았다. 2009년 그는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 매체인 《모터트렌드》가 선정한 ‘세계 자동차 산업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올랐다. 《포천》지는 2010년 신년호 커버스토리로 ‘자동차 업계 최고 강자’라는 제목으로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경영, 공격적이면서도 신속한 의사결정 등 현대차 성공의 핵심 요인에 대해 10페이지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현대-기아차의 최고급 엔진인 ‘타우엔진’은 2009년부터 3년 연속 세계 10대 엔진에 뽑혔고, 2011년에는 감마 1.6 GDI 가솔린 엔진이 ‘2012년 10대 엔진’으로 선정됐다. 현대차 엔진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제네시스’가 2009년 ‘미국 올해의 차’로 뽑혔다. 현대차의 만년 베스트셀러인 ‘아반떼’는 201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발표된 ‘북미 올해의 차’를 시작으로 캐나다·남아공 등 주요 지역에서 잇따라 ‘올해의 차’로 뽑혔다.
 

  현대차 앞에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1970년 고유 모델 개발’ ‘1980년 미국 첫 진출’ ‘1990년대 엔진 자체 개발’ 그리고 ‘2009년 최고의 자동차’.
 
  정몽구 명예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쾌거가 알려진 뒤 “짧은 기간에 800만 대 판매를 달성하고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통 50년, 70년은 돼야 가능하다고 한다. 전례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룹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래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말, 말, 말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잘해왔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자동차 산업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위기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세계 경제 추이를 볼 때 누구도 미래를 자신할 수 없다. 상황을 직시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2011년 12월 해외법인장 회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장 환경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뿐이다. 성과에 취하거나 불안한 세계 경제 전망에 위축되지 말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2014년 12월 해외법인장 회의)
 
  ▲“어려운 외부 환경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끊임없는 혁신만이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2016년 7월 해외법인장 회의)
 
  미국·유럽·중국·인도·러시아·터키·멕시코·브라질에 생산공장
 
  현대차를 더 이상 ‘가격 대비 탈 만한 차’라고 여기는 이는 없었다. 정 회장은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자동차 산업 기술 혁신 주도 ▲미래 기술개발 역량 획기적 강화 ▲친환경 경쟁 우위 기술력 확보 ▲최고 품질 신차로 브랜드 가치 제고 ▲‘제네시스’ 브랜드 글로벌 고급차 시장 안착 ▲글로벌 생산·판매 체계 효율적 운영 ▲철강·건설 분야 등 그룹사 경쟁력 강화 ▲청년 일자리 창출
 
  정 명예회장의 비전은 10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글로벌 생산·판매 체계의 효율적 운영은 오늘날 현대기아차 생산 거점을 살펴보면 이미 현실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 명예회장이 자동차 전문기업 출범을 알린 2001년에 현대기아차는 인도·터키·중국에만 생산공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미국·유럽·중국·인도·러시아·터키·멕시코·브라질 등에 생산 거점을 거느리고 있다. 2010년 9월 연산 15만 대 규모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을 완공했고, 2013년 10월에는 세계 4대 시장으로 부상한 브라질에 연산 15만 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세웠다. 기아차는 2016년 북미와 중남미 시장을 겨냥해 연산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멕시코 공장을 완공했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도에 11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30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완공했다.
 
  자동차 산업 기술의 혁신을 주도한다는 계획 역시 현실이 됐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앨라배마주(州) 몽고메리시(市)에 주행시험장,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 디자인센터를 갖고 있다. 디트로이트시(市)에 자동차연구소, 유럽 전략 차종을 개발하는 유럽기술연구소, 인도의 IT인력을 활용하는 인도기술연구소 등 전 세계 주요 거점에 글로벌 R&D 센터를 갖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요 시장의 생산공장 및 R&D 센터를 바탕으로 현지에서 수집된 시장 정보를 분석해 현지 상황에 맞는 ‘현지 전략형 차종’을 개발·판매해 시장 확대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못다 이룬 선친의 꿈, 2代에서 완성
 
정몽구 명예회장이 2010년 4월 8일,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철강·건설 등 그룹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도 일찌감치 목표를 달성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고품질의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서 고품질의 자동차 강판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2005년 한보철강을 인수해, 고로 건설을 통한 일관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린다. 현대차그룹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제철소가 반드시 필요했다.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는 2010년 화입식을 거행하며 본격적으로 고로 가동에 들어갔고, 2013년 3고로를 완공해 연산 24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해 세계 10위권 대형 철강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친환경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이뤘다.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제철은 원료 처리에서 철강 생산에 이르는 전 공정에 친환경 설비를 갖춤으로써 제철산업의 새로운 친환경 기준을 제시했다.
 
  철강 진출의 꿈은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창업회장의 오랜 꿈이었다. 정 창업회장은 생전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정몽구 회장이 선친의 오랜 숙원인 ‘민간기업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이뤘다. 그는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를 완공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매주 두세 번씩 직접 건설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2015년 국내외 판매대수 1억 대 돌파
 
정몽구 명예회장이 2015년 12월 ‘제네시스EQ900’ 신차 발표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조선DB
  ‘현대차’라는 브랜드 없이 자동차 이름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현대차 직원들조차 이 질문에 반신반의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2010년대 초부터 ‘브랜드화’로 세계 고급화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물론 벤츠의 ‘C·E·S클래스’와 BMW의 ‘3·5·7시리즈’, 도요타의 ‘렉서스’가 있지만 현대차가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데 의아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 실현시켜줄 자동차로 ‘제네시스’가 낙점됐다.
 
  정 명예회장은 2008년 제네시스 출시 때부터 유독 관심을 보였다. 신차 발표회 때 행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개발해온 협력업체 사장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가슴 벅차 한 그였다. 정 명예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조기 안착시키고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전사적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차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년 뒤 현실이 됐다. 단일 럭셔리 모델이던 제네시스는 2015년 현대 로고를 떼고 자체 로고와 엠블럼을 사용하기로 했다. 출시 7년 만에 독자 브랜드가 된 제네시스를 알리는 행사에는 정의선 당시 현대차 부회장이 나섰다. 정의선 부회장은 “급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에 대응력을 높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명차 브랜드를 육성해 세계 유수 브랜드와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 제네시스를 론칭한다”고 했다. 제네시스는 미국에서 지난 7월 한 달간 5000여 대가 팔리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호(號)의 키를 쥐었을 때 연간 판매 대수는 240만 대에 불과했다. 이후 2014년과 2015년 연간 800만 대 이상을 판매했고, 2015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국내외 누적 판매대수 1억 대를 돌파했다. 현대차의 빠른 성장에 대한 분석은 제 각각이나 확실한 것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할 기록이라는 점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역사의 주인공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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