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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 ‘삼성 新경영’(1993~1996) (2) 新경영 정착시키기 위한 이건희의 처절한 死鬪

“지금 안 변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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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만 생각하고 만들어 재끼냐고. 불량품 내놓고 덤핑하고. 그런 거 산 사람들 이제 절대 삼성 거 안 산다는 거잖아. 팔면 팔수록 이미지 나빠지고 장사는 더 안 되는데 그렇게 단순한 계산이 안 돼? 90년부터 얘기한 게 왜 이렇게 안 고쳐져? 대체 뭐가 문제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공장 세우라고!”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를 하고 남는 시간에 취미를 하든 골프를 치든 낮잠을 자든 그림을 그리든 하라 이거지. 열심히 하면 개인 능력이 저절로 나오게 돼 있어. 이게 곧 자유경영이야.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거야. 이러면서 장기적으로는 8시간 아닌 6~7시간 내에도 일을 끝낼 수 있는 효율을 갖게 되는 거고.”

“거기다 우리는 보고한다고 보고서 만들고 팩스 보내고 하는데 그것도 하루 만에 안 되잖아. 제발 서류 만들지 마. 웬만하면 말로 전화로 메모로 다 해. 독일 사람이 하루 만에 할 걸 우리는 일주일 걸린다고. 인건비 생각하면 독일 갔다 오는 게 더 싸겠어.”

“21세기에는 창조성과 개성이 있는 업종과 사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데 젊은이들의 발상과 아이디어를 활용해야 돼. 젊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신바람 나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 이건희 회장 취임과 제2 창업선언(1988) 5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삼성 “내 생명과 내 재산 걸고 하는 사람 말을 왜 안 들어…”
⊙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序曲이 된 불량 세탁기 사건
⊙ 변화해야 하는 이유 “내 재산이 5000억에서 1조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 “공장에 전무 상무 의자 싹 치워버리고 사원들 쓰는 휴게실 안락의자를 더 좋은 걸로 갖다둬”
⊙ “20년 경력 골퍼가 스윙 자세 바꾸기 쉽지 않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돼”
⊙ 삼성과 반도체, 박정희-박근혜 父女와의 관계는…
  《월간조선》은 2020년 12월호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업무지시 육성테이프 30개를 단독 입수해 그 내용을 보도했다. 이번 호에는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을 담기 위해 제작한 테이프 10개를 추가로 입수해 그 내용을 소개한다. 전자는 1993~1996년 이 회장이 현명관 비서실장에게 업무지시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이고, 후자는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전후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비서실이 제작한 테이프다.
 
  이 회장은 임원들에게 여러 차례 “서류 만드는 데 시간 쓰지 마라” “보고는 서류 말고 전화, 녹음, 메모로 전달하라” “내 얘기 녹음해서 간부들에게 들려줘라”고 당부한다. 테이프가 여러 개 존재하는 이유다. 10개의 테이프는 각각 이 회장이 사장단 회의, 경제연구원 회의, 금융서비스사장단 회의, 신임 임원 교육 등 사내에서 한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각각의 테이프는 60분에서 120분 분량이다.
 

  회의라고는 하지만 이 회장은 거침없이 혼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회장이 실행한 삼성 신경영의 내용과 결과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만 이 회장이 얼마나 절박하고 처절한 심정으로 신경영을 부르짖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3년과 1994년 초까지 이 회장은 여러 차례 임원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특강을 갖고 ▲경영의 질이 좋아질 때까지 양은 중요하지 않다 ▲세기말, 세기초를 대비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을 제대로 배워라 등을 강조했다. 생생한 육성 녹취록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대체 왜 회장 말을 안 듣는 거야!”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임직원 교육 특강을 통한 신경영 선언,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나선 것은 미국과 유럽 전자상점에서 삼성 제품들이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이 격노해 임직원 교육에 나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7년부터 질(質) 중심의 경영을 강조해왔지만 수십 년째 ‘이병철 체제’의 삼성에서 일해온 삼성 임원들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1993년 6월 어느 날, 이 회장은 독일로 출장을 가던 길에 비디오테이프를 전달받는다. 테이프는 삼성사내방송(SBC)이 제작한 시리즈물의 1편이었다. 질 경영을 강조한 회장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 공장의 불량 공정을 보여주며 반성하자는 내용으로, 사내에서는 6월 초 방영됐고 출장 중인 이 회장에게는 인편으로 전달됐다.
 
  테이프에는 삼성 세탁기 공장에서 뚜껑이 잘 맞지 않는 불량품이 발생하자 직원들이 뚜껑 부분을 칼로 깎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이 장면을 보고 5년 이상 질 경영을 강조해왔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격노한다. 이어 과거의 양(量) 위주 인사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독일에서 서울의 이수빈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동안 화를 낸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서곡(序曲)이다. 40개의 테이프 중 이 회장이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경우로,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까지 낸다. 자신이 그렇게 수년간 강조했던 품질 경영, 양보다 질 위주의 인사가 왜 되지 않는지에 대한 질타로 통화는 시작된다.
 
  “나는 그때(회장 취임 직후인 88년)부터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어 정말. 내가 인사를 9(질)대 1(양) 또는 10대 1로 하라고 하지 않았어? 왜 9대 1로 안 가냐 말이야. 양보다 질이라고 그렇게 얘기했잖아. 엉터리 물건 만들어서 물품세는 내고. 불량품 재 놓고 그 손해를 보고. 왜 양이 필요하냐고. 질 위주로 하면 양이 줄고 마켓셰어가 줄 거라고 했는데. 그게 겁나나? 뭐가 겁나서 내 말이 안 들어먹히는 거요? 내 가슴이 터져.”
 
  비서실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인사 기준은 5대 5이지만 회장님 말씀대로 질에 더 가산점을 주도록 인사시스템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경영진 머리에 아직 양의 개념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그리고 SBC 테이프는 아픈 데를 찔러서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반성하려고 일부러 확대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지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회장의 화는 계속된다. “강조를 했든 안 했든 그런 사례가 있는 거잖아. 한 공장에서 열 대라도 나오면 죄악이야. 세탁기 깎아내는 거, 그런 라인은 완전히 스톱을 해야지 왜 깎는 거냐고. 깎지 말고 라인을 멈추고 돌려보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나게 해야지. 완전하게 다시 오면 딱 맞춰서 물건을 내보내야지 그게 왜 안 되느냐고. 라인 1~2주일 스톱시킨다고 생산 80%씩 날아가나? 아니잖아. 세탁기 같은 건 국내 판매인데 재고는 쌓여 있다고. 왜 양만 생각하고 만들어 재끼냐고. 불량품 내놓고 덤핑하고. 그런 거 산 사람들 이제 절대 삼성 거 안 산다는 거잖아. 팔면 팔수록 이미지 나빠지고 장사는 더 안 되는데 그렇게 단순한 계산이 안 돼? 90년부터 얘기한 게 왜 이렇게 안 고쳐져? 대체 뭐가 문제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공장 세우라고!”
 
  이어 이 회장은 50여 분에 걸쳐 ▲무조건 양보다 질에 더 높은 인사고과를 줘라 ▲양은 당분간 버려도 된다 ▲시장점유율 떨어져도 되니 질에 자신 없으면 공장을 멈춰라, 손해는 내가 책임진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한다.
 
  “내가 왼쪽으로 가는 걸 바로 가자 하는데도 안 가는 이유가 뭐냐 이거야. 4년 전에 하청업체까지 다 모아놓고 설명 다 했잖아. 나는 그때부터 계속하고 있는 줄 알았고 기술이 부족해서, 아랫사람들이 성의가 없어서 잘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들어보니 정말 울화통이 터져. 공장을 세우든지 양을 줄이든지 질 문제 해결해. 금성, 대우보다 떨어져도 좋아. 질 개선하면 1년 반 후에는 우리가 다시 올라갈 거야. 점유율 떨어져도 좋으니 일본 수준으로 탄탄하게 고장 안 나게 만들고 덤핑하지 말고 현금으로 제값 받고 팔란 말이야. 이거 안 되면 삼성 절대 안 돼.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이 회장은 비서실장을 향해 “내 얘기대로 하면 뭐가 손해가 있나? 지금 하는 것보다 나빠지나? 왜 이쪽으로 총력을 다하지 않나?”라며 감정이 격해진 듯 언성을 높인다. “전자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소학교 6학년 때부터 전자제품을 계속 샀어. 전자제품을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보고 제일 많이 써보고 돌려보고 만져본 사람이고 전자회사 사장, 회장을 한 사람이야. 왜 내 말을 안 듣냐 말이야. 내가 고문이라도 나 같은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데 회장인데 왜 안 듣냐고. 내 재산과 내 생명을 걸고 하는 사람 말을 왜 안 들어….”
 
  이 회장의 처절함과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말 사장단 회의에서 “더 강하게 바꿔야”
 
  1993년 연말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를 평가하는 자리가 됐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했던 이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개개인에 따라서 쇼크의 정도가 달랐겠지만, 이것(신경영)은 시대의 흐름이고 앞으로 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건 사실 사람의 본성이기도 해. 하지만 80~90년대의 변화는 과거 몇십 년의 변화와는 차원이 달라. 과거 20년간, 1970년부터 90년까지 삼성그룹이 1000배 컸다고. 과거 60년대 70년대 경영자라는 건 도장 찍고 섭외 좀 하고 부하들 잘하라고 격려해주면 통하던 시대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 돼. 경쟁자들이 앞서 가버리면 안 뛰는 사람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고 몇 년 내에 사라지게 된다고.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시대에 강대국들하고 경쟁해야 되는 사람들이야 여러분은.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가져. 애사심은 물론 국가와 사회도 좀 생각하고. 독재정권, 군사정권에서는 힘이 한곳에 몰려 있고 거기만 공략하면 일하기도 쉬웠지만 지금은 권력이 계속 평준화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고. 대충 넘어가고 잘해보자 하는 게 안 통하는 시대야. 그래서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인이 가져야 할 자세도 강조한다.
 
  “사회에서 나랑 삼성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 외부의 관심과 기대도 커졌고 부담도 커졌고. 내 말이 선대 회장보다도 더 강해져버렸지. 삼성의 임원이라면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오면 돼. 나는 늘 사람 키워라, 기술 중요시해라 강조하고 있어. 기술이 없으면 기술을 사 오든지 기술자나 고문을 데려오면 되는 거고. 그런데 이런 내 말을 한마디도 안 듣는 회사들은 대형 적자를 내고 사고를 낸다고.”
 
  이 회장은 임원들을 향해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 모습도 보였다.
 
  “위로 갈수록 책임이 커지지. 사람을 볼 때는 단기적으로 보지 말고 몇 달이 되든 몇 년이 되든 전체적으로 평가를 해. 아랫사람이 일하다 실수 좀 하는 건 야단도 치지 마. 근데 똑같은 실수가 계속되면 안 돼. 작은 일이 일어났을 때 집어내서 담당자한테 경고를 하면 본인도 반성하고 옆에도 교육이 되는 건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나지. 또 큰일이 났을 때면 실수가 아니고 반복된 일이라면 파면을 해버려. 그걸 못 해서 결국 큰 손해를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아.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걸 인심 잃기 싫어서 5년 10년 덮어놓다가 몇천억짜리 탈이 나버린다고. 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냐. 돈이 아까워서 내가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니거든. 그런 정신으로 일을 하면 젊은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돼. 열심히 일하고 뛰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게 여러분들의 일이야. 잘되는 회사는 공통점이 다 있어. 열심히 일하고, 불량품 없고, 연공서열 인사가 없지.”
 
 
  신경영 선언 후 첫 人事, 신임 임원들에게 한 이야기
 
신경영 선언 당시 52세던 이건희 회장.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후 첫 임원 인사인 1994년 1월 1일 자 삼성그룹 신임 임원 인사는 큰 의미를 갖는다. 여성 임원 및 고졸 임원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이때 이사가 된 임춘자 삼성생명 이사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삼성가(家) 여성을 제외하고는 삼성의 첫 여성 임원이다. 임 이사를 포함해 고졸 임원 4명이 탄생했고, 대부분이 40대였으며 30대 임원도 여러 명 나왔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도 이때 만 38세로 임원이 됐다.
 
  선대 회장 시절부터 있었던 기존 임원들이 신경영에 소극적인 데 실망했던 이 회장은 신임 임원들이 삼성 신경영을 실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이들 앞에서 1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한다.
 
  “매년 신임 이사가 나오지만 오늘 이 자리의 분들은 과거의 신임 이사하고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어. 제2 창업 신경영의 첫해 이사는 정말 엄선해 실력 위주로 연공서열 배제하고 발탁한 거야. 여성도 한 분 계시고. 고졸도. 과거에는 고졸 하면 과장, 부장이 최고였는데 앞으로는 고졸도 여성도 사장이 될 수 있어. 이게 21세기로 가는 기초야. 여러분은 축복받은 거고 운이 좋은 거지. 신경영, 변화를 하자고 하는데 딱 걸린 거니까. 책임감은 더 커졌지만.
 
  지금 이 자리엔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40대야. 아직 머리가 굳어지지 않아서 변화할 가능성이 있어. 다만 지난 15년여간 양 위주로 일했던 습성은 빨리 버려야 돼. 지금부터는 과거의 양 위주 경영은 무시해버리고 질과 이익을 봐야 한다고. 과거엔 외형만 늘리면, 매상 늘리면 고과 A가 나왔는데, 21세기를 대비하는 지금은 이런 사고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여러분이 곧 몇 년 후 삼성그룹의 실무 최고 책임자가 될 건데, 여러분 선배들은 안 변할 거고 여러분 밑의 사람들은 신인류에 가까워. 집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가운데 낀 세대라고. 과거 선배들은 과장, 부장, 이사 되면 전부 책상에 앉아 도장 찍으려 했는데, 그거 진짜 국력 낭비라고. 이사까지는 현장에서 뛰지 않으면 개인 손해, 회사 손해, 국민 손해야.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할지를 고민해 봐.”
 
  이 회장은 부서이기주의 탈피와 ‘복합화’를 강조했다.
 
  “그룹 안에서도 이상한 풍토가 있어. 기술자고 관리직이고 영업직이고 그런 계급이나 구분 짓지 말라고. 기본적으로 기술에 대한 개념은 다 알아야 되고 경영, 판매, 관리 이런 것도 서로 다 알아야 21세기에 살아남을 수가 있어. 여러분은 21세기에 상무, 전무 되고 중심이 될 사람들인데, 그때는 상무, 전무가 지금 사장이 하는 일을 다 해야 되는 때라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야 돼.”
 
 
  신임 임원들의 질문에 “현장 뛰어라”
 
  신임 임원 몇 명의 질문에는 공들여 답변을 한다. 삼성물산의 신임 이사가 ‘변화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이 회장은 “변화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7-4제(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는 제도)”라고 답한다.
 
  “러시아워를 피하고 일의 효율은 높이면서 개인시간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게 7-4제의 목적이야. 일단 원래 10시간, 12시간씩 하던 일을 선진국처럼 8시간에 끝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고. 일을 그렇게 해치우지 않으면 선진국을 따라갈 수가 없어. 근데 7-4제를 한다고 당장 효율이 나오진 않겠지. 5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7-4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 취미를 하든 골프를 치든 낮잠을 자든 그림을 그리든 하라 이거지. 뭐든지 철저히, 열심히 하면 개인 능력이 저절로 나오게 돼 있어. 이게 곧 자율경영이야.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거야. 이러면서 장기적으로는 8시간 아닌 6~7시간 내에도 일을 끝낼 수 있는 효율을 갖게 되는 거고.”
 
  다른 신임 이사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인프라”라고 답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부품과 원자재, 그리고 사람이 국제적으로 이동해야 되는데 이 과정에서 효율을 높여야 되거든. 독일의 예를 들어 보자고. 독일 큰 도시에는 전부 국제공항이 있어. 30분~1시간마다 비행기가 뜨고. 서울~부산이 400km가 좀 넘는데 부산 출장 가려면 하루 만에 안 되고 1박 해야 되잖아.
 
  그런데 독일에서는 700~800km 떨어져 있는 도시의 지점을 하루 만에 갔다 와. 아침에 집에서 공항 가서 비행기 한 시간 타고 지점 갔다가 회의 한 시간 하고 점심 먹고 본사 돌아와서 보고하고 퇴근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그에 비하면 24시간 늦게 가는 거지. 비효율적인 거야. 거기다 우리는 보고한다고 보고서 만들고 팩스 보내고 하는데 그것도 하루 만에 안 되잖아. 제발 서류 만들지 마. 웬만하면 말로 전화로 메모로 다 해. 독일 사람이 하루 만에 할 걸 우리는 일주일 걸린다고. 인건비 생각하면 독일 갔다 오는 게 더 싸겠어.”
 
  이 회장은 ‘소프트 인프라’도 강조했다.
 
  “도로나 항공 같은 ‘하드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교육, 통신 같은 소프트 인프라도 중요해. 21세기엔 개인이 전부 전화를 가지고 세계 어디로 가도 전화가 다 돼야 되거든. 미국은 전국에 망을 깔고 있고 곧 할 거야. 그런데 우리 정부는 맨날 5대 그룹 누를 생각만 하고 21세기 생각은 조금도 안 한단 말이야. 앞으로 정보화 사회에 바로바로 전화가 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임원들에게 부하직원을 다루는 노하우도 전수했다.
 
  “실수를 빨리 공개한 사람은 칭찬하고 상을 줘. 작은 사고라고 덮어두는 인간은 큰 사고 친다고. 뒷다리 잡는 녀석은 내쫓아버려. 꼭 자르라는 거 아니고 다른 연구를 시키던가. 사고치고 실수한 사람 계속 두는 건 회사에 손해 끼치고 이미지 손상시키고 신용 잃게 하는 거야. 부하직원 하나 제대로 못 다뤄서 자기 인생 날아가는 경우도 있어. 이 그룹에도 너무 많다고. 인사 기준 신상필벌 기준 회사가 제대로 할 테니 여러분도 평가 잘 해. 급하게 하지 말고 사람의 주기를 잘 보라고. 20대 꽃피는 사람도 있고 40대 반짝하는 사람도 있어. 다 필요해. 근데 윗사람한테 자잘한 선물하고 스케줄 잡고 인맥 리스트 만들고 이따위 짓 하는 인간들은 잡아내. 절대 파벌 만들지 말라고.”
 
  “21세기 초일류 기업에 걸맞은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신임 임원에게는 “젊은 사람, 신인류를 많이 연구하라”고 조언했다.
 
  “지금 한국은 30대 이하 인구가 더 많아. 그들이 우리의 소비자라고. 30년 사이 이 나라가 얼마나 많이 변했어. 50년대만 해도 굶어 죽는 사람 있었는데 지금은 전부 다이어트하잖아. 많이 변했다는 건 한국의 핸디캡이기도 해. 이런 상황에 옛날식으로 내가 사장입네 전무입네 하면 아무도 안 따라온다는 거야. 21세기에는 창조성과 개성이 있는 업종과 사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데 젊은이들의 발상과 아이디어를 활용해야 돼. 젊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신바람 나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이 회장은 신임 임원들에게 세심한 주의를 주기도 했다.
 
  “여사원한테 담배 사 오라 하면 미국에선 고소당하는 거 알지? 여비서한테도 예쁘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3세 오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과제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20년 10월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의 49재가 같은 해 12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엄수되면서 이 회장의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본격적인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2월 초에 2021년 1월 1일 자 삼성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마무리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 31명을 비롯해 전체 임원 승진자 214명을 배출했다. 2017년 221명 이후 3년 만에 대규모로 성과 보상에 나선 것이다. 발탁 인사도 25명에 달했고 최연소 임원은 만 41세였다. 인사에서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및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2건의 재판을 받고 있어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차세대 사업 육성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 선고가 2021년 1월 하순께로 예상되는 만큼 선고 이후 취임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 상속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 가치는 별세 당시 18조원 수준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으로 2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유족들이 이를 어떤 비율로 상속하고 어떤 방법으로 상속세를 낼 것인지, 상속세가 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非제조업 간부들에게 ‘업의 개념’과 친절 당부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반도체의 성장으로 삼성그룹이 단기간에 성장하긴 했지만 비(非)제조업 부문은 삼성에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회장은 금융 및 서비스 계열 사장단을 소집해 1시간 동안 특강을 갖고 신경영을 당부했다.
 
  그는 금융・서비스 계열사의 변화하지 않는 기업문화를 지적하며 신속한 국제화를 주문했다.
 
  “제조업은 그래도 수출을 하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뛰어야 되고 국제화의 개념은 알고 있는데 금융, 보험 이쪽은 국제화 수준이 제로에 가까워. 1~2년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니거든. 5~6년 전부터 박사학위 받은 고급 인력을 데려와서 기본을 연구시키라고 했는데 알아보니 몇 명밖에 없다네. 충고를 이렇게밖에 못 알아듣나? 또 박사를 뽑아놨으면 사장이 일 년에 서너 번 만나서 얘기도 듣고 격려하고 해야지 뽑아만 놓으면 뭐 하냐고. 1~2년 사이에 나가잖아. 제발 전문가 활용하고 연공서열 없애고 실력 위주 인사 하라고.”
 
  이어 해외 서비스 기업에서 ‘제대로’ 배우고 오라고 당부했다.
 
  “외국 나가서 배우고 오라고 연수를 보내고 출장을 보내면 돌아와서 전파를 해야 되는데 그것도 제대로 안 돼. 애초 열심히 배우고 돌아와서 노하우를 전파할 인물을 보내야 되고 가기 전부터 철저하게 공부를 해야 되는데 그게 안 돼. A급 인재를 보내라고. 출장 간다고 가서 임원 한두 명 만나고 시내 관광이나 할 거면 아예 가지를 마. 한번 가면 기술자들, 여사원들까지 만나보고 어떻게 일하는지 다 보고 와야 될 거 아냐. 우리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완전히 파악을 한 다음에 남의 걸 봐야지.”
 
  그는 부끄러웠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신세계에서 일본 미쓰코시(三越: 일본 최초의 백화점)에 배우러 갔는데, 어느 날은 그쪽에서 전화가 왔어. 삼성, 신세계 얼마든지 도와드리고 싶지만 열 번 오는데 어떻게 열 번 똑같은 질문을 하느냐고, 시간낭비를 하느냐고 하더라고. 보내지 말란 얘기잖아. 내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지만 앞으로도 또 그런 사건은 나올 거야. 연수를 왜 가는 거야? 목적 없이 회장이 가라니까 가는 거면, 가서 슬렁슬렁 보고 올 거면 가지 말라고.”
 
  친절의 개념도 설파했다.
 
  “고객에 대한 친절이 뭔지 알고는 있나? 잘 차려입고 미소짓고 절하는 게 친절이 아니라고. 손님이 알고 싶어 하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줄 아는 것, 그게 친절이야. 또 상대방을 잘 파악해서 제대로 된 상품을 추천하는 게 친절이거든. 일본 기업이 인사 잘해서 친절하다고 하는 줄 아나? 해외 전문가들 불러서 들어보라고.
 
  업(業)의 개념을 이해하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했는데 이해하고 있나? 자기 회사가 어떻게 시작했고 발전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전략을 세울 수 있어. 보험이든 호텔이든 그 업이 지구상에서 언제 시작됐는지, 한국은 언제 시작했는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어떤 규제가 있는지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돼. 이런 기본적인 걸 모르는 상황에서 회장이 소리 지른다고 연수니 교육이니 한들 뭐해. 오히려 낭비야.”
 
  회사별로도 주의를 줬다. 제조업에서 뼈가 굵은 이 회장에게 금융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오래된 회사일수록 권위주의,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나태해. 예를 들면 삼성 금융 계열사에서 삼성전자 직원 주택대출 해주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생각을 바꾸라고. 광고도 그래. 삼성그룹 광고가 한 회사(제일기획)에 다 몰려 있으니까 공무원 예산 타듯이 하다 보니 위기의식이 없고 아이디어도 없어. 사람은 고급 인력 뽑아놓고 시간은 남아돌고 돈은 돈대로 쓰면서 좋은 광고는 안 나온다고. 이런 꼴은 안 된다고. 젊은 사람들 팀을 만들어서 맡기고, 보너스도 히트하면 1000%, 10000% 이렇게 줘.”
 
  용인자연농원(現 에버랜드)과 신사업인 병원(삼성의료원)의 서비스도 강조했다.
 
  “업의 개념을 이해하라고. 자연농원은 그 안에서 애들이, 커플들이 줄을 서고 돈을 쓰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안 돼. 대한민국이나 용인이나 똑같은 상황이야. 돈 쓰려고 왔는데 살 게 없고 갈 데가 없고 볼 게 없다고. 10만원 쓰려고 왔다가 2만~3만원밖에 안 쓰고 가는 거야. 왜 그런지 기초부터 다시 연구해 봐. 새로운 3차산업인 병원 서비스는 처음부터 제대로 하라고. 병원에 백화점, 호텔, 스포츠센터, 대학원까지 복합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고. 특히 서비스업은 사람이 중요해. 인력에 돈을 아끼지 마. 서비스업은 보너스 개념이 달라야 된다고. A부터 F까지 차이를 크게 둬도 되고, 최저등급 보너스가 100%라면 맨 위에는 1000%, 10000% 줘도 돼.”
 
 
  “내가 뭐가 답답해서 변화하자고 고함을 치겠어”
 
  이 회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임원들을 부른 자리에서 1시간여 특강을 갖고 변화와 경쟁의 논리를 당부한다. 신경영이 아직 임원들 사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소가 그룹 임원들의 ‘정신교육’을 위한 틀을 마련해주길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 중역들한테 방정식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어. 나가는 목소리는 하나여야 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 등등 분야 합쳐서 틀을 딱 만들어놓고 얘기할 땐 거기에 자기 회사나 자기 직급에 따라 살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거지. 삼성 임원은 이런 책임감과 도덕심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의사의 경우 해부학과 병리학 같은 기본은 다 같고 소아과냐 내과냐 나뉘는 것처럼 기본을 갖고 디테일은 자기가 만드는 거야.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맨날 그저 ‘밤잠 안 자고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해서야 남들이 이해가 되냐고. 혼자 알면 소용없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이 회장은 높은 수준의 변화를 요구한 계열사 임원 대상 강연과는 달리 연구소 대상 강연에서는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왜 변해야 하느냐는 거야. 솔직히 나 개인은 변할 필요 없어. 지금 내 재산 가지고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단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20만 삼성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야. 변화 없이는 안 돼. 나라가 망하게 돼 있어.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게 뭐야. 자유무역, 평등무역 하겠다는 건데 미국하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하고 어떻게 일대일로 붙냐고. 선진국이 텃세 부리고 후진국일수록 불리해져. 공정하다는 거 말은 좋지만 우리는 완전히 위기야. 미국에 반도체 수출 10%만 줄어도 우리 공장이 흔들흔들할 거라고.”
 
  정부의 대기업 규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연구소가 이를 극복할 연구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기업은 열심히 일하고 이익 내봤자 1000억, 2000억이지. 그런데 행정, 정치, 언론이 잘못하면 몇십조, 몇백조가 날아가버려.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숫자로 설득력 있게 연구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대한민국 모든 제도에 대해 비판도 하고 선도도 해야 되는 게 바로 연구소야.
 
  예를 들면 인센티브 없이는 자본주의가 발전을 안 해. 그런데 대한민국은 전부 규제라고. 상벌 중 상인 인센티브는 없고 벌만 있어. 잘못하는 걸 벌만 주니 다들 위축되고 할 일을 안 하잖아. 그나마 정부가 가만히 내버려둔 게 반도체와 조선업인데, 이 두 가지가 대한민국 수출 이끌고 있지.”
 
  정부 정책과 규제에 대한 불만과 어려움도 토로했다.
 
  “전기 많이 쓴다고 누진세 내는 나라가 어딨어? 인프라 투자를 안 해 놓으니까 전기값이 비싼 거 아냐. 또 1가구에 자동차가 두 대면 세금을 더 내라고? 3대가 사는 집도 있고 혼자 사는 집도 있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게다가 정부는 대기업이 땅 사고 은행 가지면 나라 망하는 줄 알아. 부동산 투기하고 투자를 그렇게 구별 못 하나.
 
  지금 소비자물가 왜 오르냐고. 농산품, 공산품 출고가격은 안 올랐는데 물가만 오르는 건 유통과 임금 문제잖아. 인프라를 안 해 놓으니 물가만 오른다고. 유통은 곧 땅, 금융하고 바로 관계가 있다고. 기업이 땅 사서 인프라 투자하면 물가 그렇게 안 올라. 기업에 맡겨놓으면 잘 될 걸 제일 부정 많은 정부가 다 가져가는 거 아냐. 국민들이 당장 월급 몇십% 오를 걸 기대하겠어? 물가만 안 오르길 바란다고. 이런 문제를 연구소가 좀 찾아내 봐. KDI처럼 국가가 하는 연구소하고 우리가 하는 연구소는 연구가 달라야 되잖아. 대기업 땅 못 사게 하는 거, 전기 누진세같이 기업 발목 잡는 거 좀 찾아내서 숫자로 연구해보라고.”
 
  그는 개인적인 심경도 토로한다.
 
  “삼성 회장이 뭐가 답답해서 변해야 된다고 하겠느냐고. 3대가 먹고살 게 있는데 왜 이렇게 밤새 고함을 지르고 있겠어. 우리나라의, 민족의,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내 재산 5%, 10% 느는 게 무슨 상관있냐고. 죽을 때까지 1000억, 2000억원 못 쓴다고. 보석 사고, 차 사고? 그건 돈이 이동하는 거지 쓰는 게 아니잖아. 재산 5000억이 1조 되는 게 무슨 뜻이 있겠어. 재산이 1억에서 2억 되는 건 큰 차이가 있겠지만 1조에서 2조 되는 건 뜻이 없어.
 
  지금 우리 나이, 40~50대가 변하느냐,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냐 이류국가냐가 판가름 나는 거야. 1950~1970년대에서 조금 늦는 거하고 1990~2000년에 조금 늦는 건 차원이 달라. 지금 늦으면 완전히 기회상실을 하는 거라고. 이런 걸 알면서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임원의 말에는 이렇게 답한다.
 
  “어떻게 바뀌냐고? 쉬운 거부터 바꿔봐. 수영을 시작하든 잠을 한 시간 줄이든. 방법을 알려줘도 모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자기가 안 변하려는 사람은 죽어도 못 변해. 자기 의지라고.”
 
삼성과 반도체, 박정희 父女의 관계
 
이건희 회장이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서명을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 임원들에게 ‘업의 개념’을 중시하며 회사의 시작과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는 애착이 지극했다. 지금의 삼성을 만든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여러 형제 중 중앙개발과 언론사 등 주력 계열사가 아닌 곳을 주로 맡고 있던 3남 이건희가 삼성을 물려받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산업을 맡아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임원들에게 삼성이 반도체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여러 차례 설명한다. 한국에 반도체 조립회사가 생긴 것은 1960년대 말로, 아남산업과 금성사는 외국의 반도체 조립기술을 배워와 기술자를 양성했다. 국내 최초의 반도체 생산 회사는 1974년 1월 설립된 한국반도체다. 미국에서 온 강기동 박사(삼성반도체 사장 역임)가 설립자이지만 그 뒤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부녀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 과정에서 전자공학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던 중 1966년 미국 모토로라 투자단으로 한국에 온 강기동 박사를 만나게 된다. 강 박사 등은 박 대통령에게 반도체 조립공장을 설립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이에 매료된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딸 박근혜를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시킨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부녀와 인연을 맺어온 강 박사는 한국으로 와 한국반도체를 설립한다. 박근혜의 서강대 스승인 임모 교수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반도체를 키워야 한다며 투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반도체는 설립한 지 몇 개월 만에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처지가 된다. 이때 이 회사에 주목한 사람이 이건희 회장이다. 그는 삼성 임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반도체가 어떤 경위로 생겨서 오늘날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지. 시작은 74년에 부천에 강(기동) 박사라는 사람이 세웠는데 자금이 없어서 공장을 세워두고 문 닫을 판이었어.”
 
  당시 이 회장은 동양방송·《중앙일보》 이사로 근무 중이었다. 이 회장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강진구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반도체를 사야 한다”고 이 회장에게 제안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지금의 위상과는 전혀 다른, 작은 회사였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 스승이 부탁한다며 한국반도체에 100억 넘게 투자를 했다더라고. 과잉투자가 돼 있어서 겁을 내서 아무도 못 사는 형편이었어. 삼성전자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거야. 내 개인 돈도 넣고 그랬어. 3~4년 계속 적자 났지. 강진구 회장(신경영 당시 삼성전자 회장)이 붙어살면서 다 만들어놓은 거야.”
 
  이 회장은 “첨단기업은 정부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보인다.
 
  “반도체도 정부에다 맡겨놨으면 지금 아무것도 아냐. 대통령이 과잉투자하고 아무도 손 안 대려는 거 내가 선대(이병철) 설득해서 사 온 거야. 처음엔 반도체가 뭔지도 정확히 몰랐는데 투자를 계속하다 보니 앞으로 이익이 계속 날 거라는 예측이 되더라.”
 
  기업인의 타고난 감(感)은 가장 적절할 때 빛을 발했다.
 
  종업원 만족도 향상을 위한 노력
 
2012년 11월 30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취임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신경영 선언 8개월 후인 1994년 2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신경영과 관련한 임직원 만족도 및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건희 회장과 비서실에 보고한다. 직원들의 만족도를 조사하고 교수단의 분석을 추가한 내용이다. 이 조사에서 만족도와 변화의 정도는 직급별로 임원급이 가장 높았고, 말단 직원과 생산직, 연구개발직, 여사원 사이에서는 만족도와 변화의 정도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장은 “내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적은 말단 직원들이 신경영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렇지만 회장이 이토록 추진하는 신경영에 무관심한 건 각사의 사장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사 이상은 내가 직접 불러놓고 얘기했지만 사원들은 들을 수가 없었지. 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경영 한다고 월급이 몇십%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신경영에 매력을 못 느낄 수밖에 없어. 또 신경영이다 변화다 하니까 전직하겠다는 사람도 많고, 실직에 대한 부담감도 갖게 되겠지. 이건 다 중역들 책임이라고. 사원들이 신이 나지 않는 건 사장 리더십이 문제야. 사원들에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정신교육을 하고, 질 경영이 잘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해야지. 여기(비서실 사장들) 공장 내려가 본 적 있나? 맨날 전화로 하거나 공장 사람 부르고, 가도 공장장 방 한번 갔다 오거나 그런 거 아니냐고. 각사별로 사장부터 인사 책임자가 현장에 몇 번 내려갔는지 조사해. 또 어느 회사 어느 직급이 불만이 많은지 조사해보고. 사장이 자주 가는 회사는 불만이 적을 거야.”
 
  또 말단 사원들을 위한 행동을 하라는 당부도 했다.
 
  “대리, 차장급보다 말단 사원들의 분위기가 중요해. 직원들한테는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걸 해줘야지. 공장에 운동장 만들어주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뭐가 힘들어서 아직 안 돼? 직원들한테는 자식이 제일 중요한데 애들 놀 데 하나 없잖아. 사람은 감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윗사람 지도력에 의해서 많이 좌우된다고. 비서실도 종업원 사기를 최우선으로 두고 방안을 생각해 봐. 공장 현장의 중역들은 상무건 전무건 의자도 싹 치워버려. 권위주의가 눈에 보이면 사기가 오르겠냐고. 중역 의자는 치우고 사원들 쓰는 휴게실 안락의자는 더 좋은 걸로 갖다둬.”
 
 
  미래는 복합화가 답이다
 
  이처럼 신경영의 피치를 올리던 1994년 2월의 어느 날, 이 회장은 비서실 임원들을 불러 1시간 반가량 ‘복합화’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는다. 서두는 ‘나라가 발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국에 다니면서 경험을 많이 했어. 일본에서 소학교 다닐 때는 조센징이라는 소리 들으면서 고약한 설움을 당했지. 1960년대 말 미국에 갔었는데, 행사 끝나고 불우이웃돕기 같은 기금을 모집하더라고. 근데 거기서 한국 아이 사진이 나오는 거야. 한국의 김○○양이래. 지금 우리가 방글라데시 아이들 보는 그런 분위기로. 참 약소국가라는 게 서럽더라고. 그 후에도 선대 회장 따라 외국 출장을 가보면, 우리는 회장이 가는데 저쪽에선 상무급 아니면 평이사가 나와. 그나마 삼성이 가서 그 정도지 한국 다른 기업 회장이 가면 평이사가 나오는 거야. 80년대 들어가서 좀 나아진 거지. 나라가 못살면 국민이 밖에서 인간 행세를 못 해. 내 회사가 잘되고 대우받으려면 우리나라가 발전해야 된다는 거, 이게 내 기본 의식이야.”
 
  그는 “변해서 잘사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맞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15년 후에는 카드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에서 신용카드도 되고 전화도 되는 세상이 온다고.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도 바로 집으로 전화할 수 있게 돼. 일제시대 태어나서 전쟁 겪고 굶주리던 시절 살던 사람들이 이런 시대에 살게 된다니 얼마나 변화가 빨라. 우리 경쟁력도 여기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이 회장은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삼위일체로 바뀌어야 한다며 ‘복합화된 국가’에 대한 구상을 펼쳤다. 서울 포함 수도권을 복합형으로 만들면 국가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출근하는 데 한 시간 반씩 걸리고 이런 거 너무 비생산적이잖아. 서울특별시는 인구는 전국의 25%지만 돈, 기업, 정보는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미국으로 말하면 뉴욕, 워싱턴DC, 시카고, 보스턴, 샌프란시스코를 다 합친 게 서울이고 서울이 잘 못되면 21세기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어. 그런데 서울은 도로점유율이 너무 부족해서 교통정체도 심하고 생활이나 업무 질도 문제라고.
 
  도로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 20여 개 구를 각각 복합화시키면 어떨까. 각 구에 사무실과 주택이 같이 있을 수 있는 복합공간을 마련하고 생활편의시설까지 반경 1km 안에 다 집어넣는 거지. -요샛말로 ‘직주근접(직장과 집 근접)’이다- 출퇴근도, 장보기도, 애들 교육도 반경 1~2km 안에서 다 해결하면 얼마나 시간과 비용, 노력이 절약되고 효율적이겠어. 일주일 동안은 그 구에서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거야. 한 빌딩 안에 사무실, 주택, 학교, 양로원, 병원까지 다 넣을 수도 있잖아.”
 
  그는 이런 복합화가 기업에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봤다.
 
  “우리 반도체가 성공한 이유가 설계・개발・생산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어서였어. 남들 3년 걸리는 걸 우린 2년 반 만에 만들었거든. 미국이나 일본은 도시 간 이동하는 데도 한참 걸리잖아. 삼성전자는 수원 기흥 공장에서 설계・개발・생산자가 한자리에 모여 회의하는 게 가능했지. 앞으로 국가경쟁력도 이런 식으로 갈 거야.”
 
  이즈음 이 회장은 김우석 당시 건설부 장관과 대화하며 “분당에 200만~300만 평 규모의 삼성복합단지를 만들고 싶다”고 하고, “수도권과 지방에 비행장 또는 헬기장을 여러 개 만들어 이동시간과 비용을 줄여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변가·혁명가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아니 최소한 신경영을 추진한 90년대의 이건희 회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말 없는 사람’ ‘절제된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닌 다변가(多辯家)였다. 어린 시절 겪었던 약소국민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혁신 아이디어를 짜내며 20만 삼성 가족을 이끌어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가 기업의 미래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토해낸 날것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인물이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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