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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사이드

창립 50주년 맞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부자(父子)의 30년 집념이 세계 5위 초고층 건물 완공했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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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일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하늘로 불꽃 3만개 치솟아
⊙ 4월 3일은 롯데 창립 50주년이자 매직아일랜드 개관일
⊙ 청년 신격호 1942년 관부연락선 타고 도일 … 아르바이트하며 고학(苦學)
⊙ 성실성 지켜본 일본인의 투자로 첫 사업 … 미군기 폭격으로 잇달아 좌절
⊙ 껌과 초콜릿 시장 제패하며 자수성가형 한국기업가로 우뚝
⊙ 한일수교 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쇼핑·유통·중화학공업까지 투자
⊙ “한국 찾은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며 매직아일랜드 구상 밀여붙여
⊙ 10조원의 경제창출 효과에 청년 일자리의 산실(産室)
4월 3일 개장한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5위의 초고층빌딩으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4월 2일 저녁 서울 잠실 일대가 불야성(不夜城)처럼 환하게 변했다. 3만여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은 것이다. 이 불꽃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몰린 인파만 30만명이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를 질주하던 차량들이 10분간 멈춰섰을 정도였다. 주변 관람인구까지 합치면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불꽃축제가 열린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이 벅찹니다. 드디어 (신격호 총괄)회장님께서 그토록 염원하고 고대하시던, 대한민국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의 완성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4월 2일 밤 롯데월드타워의 개관을 축하하는 불꽃축제에는 3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다음 날인 3일은 롯데그룹에 뜻깊은 날이다. 롯데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롯데는 재계 5위, 매출 100조원에 달하는 거인으로 성장했다. 또 이날은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30년 숙원이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돼 개관한 날이기도 하다.
 
  신동빈 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게 돼 가슴이 벅차다. 1967년, 50년 전 오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님이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롯데는 고객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4월 3일 개관한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30년 염원의 결과물이다.
 
  롯데 창립 50년사
 
  롯데그룹은 1967년 롯데제과를 창립해 식품 산업에 진출한 이후, 호텔과 백화점을 설립해 국내 관광·유통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석유화학 및 건설 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 왔다. 지금의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빼놓으면 설명할 수 없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 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일 수교 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통로가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관부(關釜) 연락선을 타고 도일(渡日),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를 눈여겨 지켜보던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오늘날의 롯데신화를 창조해 냈다. 신 총괄회장이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시간이 한결같았다. 소문이 나다 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총괄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권유하며 당시 돈 5만 엔을 내주었다. 이 돈으로 시작한 공장이 미군기 폭격으로 가동도 못해 본 채 전소(全燒)하고 말았다. 어렵게 재기했는데 다시 폭격을 당했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신 총괄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
 
 
  롯데의 탄생
 
신격호 총괄회장 젊은 시절 모습.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청년 신격호는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 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 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격호는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 총괄회장은 큰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됐고, 이때 회사이름 ‘롯데’가 탄생했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샤롯데)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 왔다. 신 총괄회장의 감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천재적 마케팅 감각 - 풍선껌과 초콜릿 시장 제패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였다. 롯데는 비판에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여서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사례는 무수히 많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자에게 1000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제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 같은 천재적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배운 게 아니라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61년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를 포착했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을 장악했다. 이것은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고국투자 - 현해탄 경영의 시작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제과 공장을 순시하고있다.
  “새롭게 한국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롯데 사장 인사말)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라는 기치 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 주고 싶었다. 한일 수교로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제과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을 짓는 데 6년여 기간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가 투자됐다.
 
  그 당시에도 막대한 투자자금을 한 개 회사가 감당할 수 없어 일본에 설립된 롯데제과를 포함한 다수의 일본 롯데 계열 기업이 투자회사 형식으로 롯데호텔 건설에 공동투자했다. 이때 투자된 자금들은 다시금 롯데 계열 기업들에 투자되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호텔사업 구상은 신 총괄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 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상품도 별로 없었다. 관광업은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순위였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게 신 총괄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런 결단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롯데쇼핑의 탄생
 
신격호 총괄회장이 1979년 12월 17일 롯데쇼핑센터 개장식에서 테이프를 커팅하고있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7~1981)을 진행했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욕구와 구매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영세하고 운영방식이 전근대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롯데쇼핑센터(현재의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7438m², 영업면적 1만9835m²의 지하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으로의 진출
 
1989년 7월 12일 개관한 서울 잠심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총괄회장.
  애초에 신 총괄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모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제철사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부가 제철사업은 국영화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러한 희망을 접었다.
 
  이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비로소 신 총괄회장은 중화학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었다. 단지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1979년 이를 인수했다.
 
  그해 호남석유화학은 여천단지 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고 전선 등에 사용되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보온병 등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 화장품 재료가 되는 에틸렌글리콜(EG)의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1990년 3월 24일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는 김대중, 김종필,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한국과 일본의 정계 요인들이 참석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취임 이후 철저한 내실경영을 바탕으로 주력업종과 연관산업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를 실행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2009년 ‘Asia Top 10 글로벌 그룹’이라는 비전을 발표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확장과 해외진출 가속화를 통해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춰 오고 있다.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잇달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핵심사업 경쟁력을 강화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에 현지 진출한 사업을 안정궤도에 올려놨다.
 
  롯데그룹의 변화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거버넌스(governance) 강화를 중점전략으로 삼아 미래성장을 준비하고 각 사업 부문별로 옴니채널, AI 기술 도입 등 4차 산업혁명 대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룹사 간 사업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자의 집념이 만들어 낸 롯데월드타워
 
신동빈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서 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된 30년의 경과는 롯데 50년의 역사와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후 지난 4월 3일 30여년 만에 서울 하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염원과 관광산업에 대한 식견, 신동빈 회장의 강한 집념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던 프로젝트다. 1987년 사업 부지를 매입한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은 수시로 사업진행 상황을 챙기며 “서울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궁궐만 보여줄 수 없다. 세계적인 명소 하나쯤 있어야 뉴욕이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롯데월드타워 프로젝트는 마스터플랜만 23번,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들이 제안한 디자인도 수십 번 바꿔 가며 ‘자랑스러운 명소’ 만들기로 진행됐다. 사업 진행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간의 이견도 있었다.
 
  신동빈 회장은 “초고층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 대신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면 수조 원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후세까지 길이길이 남을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워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신동빈 회장도 뜻을 굽혔다고 한다.
 
 
  대(代)를 이은 롯데월드타워 사랑
 
롯데월드타워는 2010년 착공 이후 완공까지 6년 3개월이 걸렸다.
  이후 신동빈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매진했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공사 중 안전문제가 한창 불거졌을 때 직접 장비를 착용하고 건설현장을 수시로 찾아 점검하며 작업자들에게 안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경영권 사태가 한창이던 2015년 8월에는 일본에서 현안을 정리하고 일주일 만에 귀국한 후 가장 먼저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현장을 챙겼다. 또한 자신의 모교인 미국 컬럼비아 MBA 학생들을 매년 롯데월드타워로 초청해 견학시키고 국내외 귀빈들도 수시로 현장에 초청하기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이후 2010년 11월 착공해 연인원 500만명 이상이 투입되어 지난 2월 9일 서울시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을 때까지 만 6년3개월, 2280일이 걸렸다.
 
  롯데월드타워는 2014년 4월 국내 건축물 최고 높이인 305m에 달하고 2015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100층(413m)을 돌파하며 우리 건축사를 매번 새롭게 써 왔다. 2015년 12월 22일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123층에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지난해 10월엔 2만개 이상의 커튼월로 외관을 완성했다.
 
  단지 전체의 연면적은 80만m²로 축구경기장 115개를 합친 규모며 75만톤의 타워 무게는 서울시 인구 1000만명과 맞먹는다. 타워 123층 전망대(500m)인 ‘서울스카이’에서는 맑은 날이면 서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인천 앞바다나 송도 신도시, 남쪽으로는 아산만 당진 제철소 공장을 볼 수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최상부인 117층부터 123층까지는 전망대인 ‘서울스카이’가 들어서며 108층부터 114층까지 7개 층은 1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프라이빗 오피스인 ‘프리미어7’이 들어선다. 76층부터 101층까지는 국내 최고 높이, 최고급 랜드마크 호텔인 ‘시그니엘서울’이, 42층부터 71층은 업무와 사교, 거주와 휴식을 겸하는 ‘시그니엘 레지던스’ 223세대가 분양 진행 중이다.
 
  14층부터 38층까지는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해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가 될 ‘프라임 오피스(PRIME OFFICE)’로 구성되며, 롯데물산은 지난 2월 13일 최초로 19층에 입주했다. 1층부터 12층까지는 로비이자 원스톱 리빙이 가능한 ‘포디움(PODIUM)’으로 금융센터, 메디컬센터, 피트니스센터 및 갤러리 등이 입점할 예정이며 기존 롯데월드몰 8층과 9층의 면세점이 확장할 계획이다.
 
  롯데가 총 4조원가량을 투자한 롯데월드타워는 건설 단계에서 일 평균 3500여 명의 근로자가 투입됐다. 당시 생산유발 효과만 4조4000억원에 이른다. 2014년 10월 오픈한 국내 최고의 복합쇼핑몰인 롯데월드몰에서는 파트너사를 포함해 6000명가량의 고용이 창출됐으며 이 중 15~29세의 인원만 60%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롯데월드타워는 기존 롯데월드몰과의 시너지로 생산유발효과 2조1000억원과 부가가치 유발효과 1조원, 취업유발 인원도 2만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효과는 연간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오픈 후 2021년까지 연 평균 500만명의 해외 관광객들을 잠실과 송파구로 불러모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의 체류기간을 증가시키고 소비지출액을 늘리는 등 지역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외 관광객을 모두 합치면 연간 5000만명 이상이 롯데월드타워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평생 집념을 쏟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2015년 4월과 12월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한 이후 건강악화로 더이상 찾지 못하자 신동빈 회장은 그 뒤를 이어 막중한 책임감으로 끝까지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불꽃의 의미와 감격이 더욱 남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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