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별기고

석유의 역사

석유의 시대, 아직은 제4막 계속중

글 : 김문환  국민대 명예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석유재벌의 탄생 → 7大오일 메이저 시대 → 석유의 자원민족주의化 → 셰일 오일 등장
⊙ 제5막은 신재생에너지·전기자동차의 시대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 현장. 사진=AP/뉴시스
  산업혁명을 촉발한 19세기 영국의 석탄혁명에 이어 20세기의 미국 석유혁명과 21세기 천연가스 시대가 왔으나, 아직은 원유가 주력인 세상이다. 최근 석유개발사를 연극에 비유하여 서막에서 제1막을 거쳐 현재 제3막이 끝나고 새로이 제4막이 전개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21세기 초 석유와 금융이 세계경제의 침체를 일으킨 유일한 두 산업임을 증명했듯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사막의 폭풍 작전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가 석유와 관련을 갖는다.
 
 
  서막의 전개
 
  현대문명은 석유문명이라고 할 정도로 석유는 인류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석유의 역사는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석유를 증류하여 등유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오일 러시(oil rush)가 급속하게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로 확산되자 모두가 〈자이언트〉 영화 속의 제임스 딘처럼 석유로 횡재하기를 바랐다. 당시에는 석유가 램프 연료로 사용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중 석유는 전쟁 필수품인 자동차와 항공기 연료로 사용되었다. 베네수엘라, 러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이어, 1938년에는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도 유전이 발견되었다.
 
  제1막 : 석유 재벌의 탄생
 
  제1막에서는 석유 재벌들의 부와 권력의 투쟁사가 펼쳐졌다. 이 다툼은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며 국가의 운명을 바꾸었다.
 
  록펠러가 온갖 수단으로 미국 정유공장의 90%와 운송회사의 80%를 장악하였고 강에 내버리던 가솔린을 처음으로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여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연방대법원이 1911년 록펠러 회사에 반(反)독점법을 적용하여 그의 회사를 34개로 분할하였다. 오늘날 미국 3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 셰브론과 코노코 필립은 물론 영국의 BP 일부도 록펠러와 관련을 가진다.
 
  오일 붐으로 한창이던 20세기 초 로스앤젤레스는 ‘재즈 시대의 쿠웨이트’였으며, 세계 최초로 자동차 문화가 시작된 도시이다. 석유로 고속도로가 생겼으며 할리우드가 탄생했다. 폴 게티가 석유로 재벌이 되었고, 에드워드 헤니가 뒤를 이었다. 알폰소 벨도 농장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벼락부자가 되어 벨 에어 항공사를 설립했다. 검은 황금을 캐는 시대적 배경 아래 1906년에 《정글(The Jungle)》이라는 고발 소설로 명성을 얻은 업턴 싱클레어는 석유재벌 에드워드 헤니를 풍자한 소설로 1926년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제2막 : 오일 메이저의 7자매
 
1937년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 근교 시그널힐(Signal Hill)의 유정탑(油井塔) 모습.
  제2막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승리사’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일곱 자매(Seven Sisters)’가 등장하여 1940년대부터 3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이들 석유 대기업은 1960년대에 원유가격을 좌지우지하면서 세계 석유의 85%를 장악했으나 1973년 오일 쇼크로 무너져 오늘날에는 10%로 줄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각국이 영토획득에 눈이 먼 석유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한 신병기인 비행기, 전차와 잠수함 등의 동력을 위해서 각국은 석유확보에 온갖 정성을 바쳤다. 유전이 풍부한 미국이나 넓은 식민지를 보유한 영국과 달리 추축국인 독일, 이탈리아와 일본은 석유가 없었다. 중동에서 석유를 확보한 연합군은 승리하였으나, 이란과 러시아를 침공하여 유전을 차지할 히틀러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태평양에서는 일본이 원유를 위해 버마와 인도네시아를 침공했으나 미국의 반격으로 쉽게 굴복하였다.
 
  제3막 : 자원민족주의 탄생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중동의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대 유전들이 발견되면서 세계는 안정된 가격으로 석유를 사용하였다. 독립한 신생국가들은 석유에 대한 자원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면서 1960년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를 결성했다. 이들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여 외국 기업들을 몰아내고 최근까지 국제유가를 결정하는 제3막을 열어 40년간 독주했다.
 
  오늘날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중국의 중국국가석유공사, 러시아의 가스프롬, 이란의 국영이란오일, 최근 말썽인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 베네수엘라의 PDVSA,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를 새로운 일곱 자매(New Seven Sisters)라고 하는데, 대개 OPEC 회원국이다.
 
  1973년 중동의 석유생산국들은 석유금수조처를 취하자 유가가 4배나 폭등하는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서 모든 상품의 어머니인 원유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원유는 오늘날에도 에너지의 왕좌를 차지하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 이후 주춧돌 지위를 상실했다.
 
  제4막 : 셰일 오일과 기후변화
 
  지난 10여 년 사이 두 가지의 상황변화로 우리는 새로운 원유의 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셰일 오일(shale oil) 혁명으로 석유가 풍부해졌으며, 2015년 기후변화협약의 체결로 화석연료의 장기적 전망이 불투명해진 모습이다. 또한 프래킹(fracking)이란 신기술로 셰일가스-오일이 생산되면서 세계 석유산업의 연극은 이제부터 ‘수요와 공급에 근거하여’ 석유가격이 책정되는 제4막이 열렸다. 그래서 ‘현실주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낡은 구(舊) 석유 질서에서 가격의 수용자로, 석유 정치는 물론 생산량 결정에서 구경꾼에 불과하였던 미국에서, 2008년에 시작된 셰일 오일 생산으로 에너지의 국제적 신질서가 전개되고 있다. 유가하락을 예언한 대니얼 여긴(Daniel Yergin)은 핵 협상에서 미국이 이란에 핵 협상 압력을 넣은 것도 셰일 오일의 힘이라고 했다. 세계가 소비하는 9500만 배럴에 비하면 미국이 생산하는 하루 200만 배럴이란 여분의 원유는 아주 적지만, 한계생산인 점에서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유가의 변동성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셰일 오일은 하루 500만 배럴이 생산된다. 5%의 적은 셰일 오일이 2014년 여름 유가하락을 불러왔다. 현재 유가는 40달러 내외이지만, 셰일 오일이 없었더라면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셰일 업체를 몰아내기 위하여 원유를 증산하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 둔화로 반등의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남아도는 석유
 

  OPEC의 지속적 생산 증가로 2016년에 매일 125만 배럴 내외의 석유가 과잉 생산되고 세계적 불황으로 수요가 감소하며, 현재 선진국이 290억 배럴의 원유를 저장하는 등의 영향으로 2017년까지 석유는 남아돈다. 네 가지 차원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 지난 35년간 인류는 1조 배럴의 원유를 소비하면서 신기술로 1조3320억 배럴이 넘는 매장량을 발견했다. 소비보다 매장량이 더 늘면서 석유 고갈의 우려가 감소했다. 현재의 화석연료를 모두 소비한다면 이산화탄소(CO₂)가 2조8000만 톤 발생하는데 지구 온도의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하려면 이산화탄소가 1조 톤 이상 증가하면 안 된다. 물론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CO₂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이는 불가능한 주문이다.
 
  둘째, 재래식 유전개발은 수백억 달러가 필요하나, 셰일 오일 개발은 1000만 달러면 족하다. 석유 생산비가 배럴당 20달러 내외인 중동에 비하여, 셰일 오일은 배럴당 50달러 언저리로 2배 이상 높다. 재래식 유정(油井)은 20년 이상 생산이 되지만, 첫 2년 사이에 절반이 생산되는 셰일 유정은 쉽게 생산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투자와 생산 간의 짧은 시차와 유정의 급속한 생산 감소로 셰일 오일은 재래식 원유보다 가격 반응이 빠르다. 가격이 낮아지면 투자와 생산이 줄고, 가격이 인상되면 투자와 생산이 증가하는 셰일 오일은 석유 가격의 충격 흡수자(shock absorber)가 될 수 있다.
 
 
  OPEC의 시장 안정화 능력 줄고 있어
 
셰일 오일(가스). 오랜 세월 모래·진흙이 쌓여 단단하게 굳은 암석(셰일)에 갇혀 있는 가스·원유를 뜻한다.
경제성 부족으로 개발이 안 됐지만 고유가와 기술 발전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셋째, 석유는 종래 중동에서 생산한 뒤 서구에 수출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연간 2조5000억 달러(최근은 유가 하락으로 연간 1조5000억 달러)의 원유대금은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원유는 주로 중동과 북부아프리카에 묻혀 있어, 매일 23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는 우리나라처럼 석유 비생산국은 석유의 확보에 안달했다.
 
  서방의 석유 수요는 10년 전에 피크였다가 북미에서 셰일 오일, 셰일 가스 공급과 오일 샌드의 증산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자동차 연료 효율의 향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적 석유 무역의 패턴이 변하여 2005년에 매일 1200만 배럴의 석유를 수입하던 미국이 2013년에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 지위를 중국에 내주었다. 서방의 석유 수요는 감소하지만, 중국은 2035년에 자국 석유 소비량의 4분의 3을 수입하게 되고, 인도는 소비의 90%를 수입하게 되면서, 두 인구 대국이 앞으로 20년 내에 세계 석유 소비량 증가의 60%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 무역적자가 중동의 원유 수입과 중국의 상품 수입으로 생기는데, 이러한 불균형이 앞으로 많이 시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으로서는 중동의 중요성이 많이 약화되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진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나 아시아투자은행(AIIB)의 설립이 이러한 필요의 산물로 생겨났다.
 
  넷째, 근래 중동 지역 밖에서 원유가 많이 생산되는 반면 소비는 증가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OPEC의 지배력이 약화되었으며, 심지어 석유 권력을 미국의 셰일 오일에 넘겼다고 보는 시각까지 있다. 최소한 OPEC는 국제 원유 시장의 안정보다 미국의 셰일 오일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처럼 비친다.
 
  하루 30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OPEC는 전 세계 생산량의 35% 정도를 차지하며, 이 중에서 사우디만 신축성을 가지고 생산량을 쉽게 증감할 수 있다. OPEC와 석유 대기업들이 앞으로 걱정할 것은 당장은 유가 하락이지만 이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심한 감기 같은 현상이다. 문제는 앞으로 보다 근본적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전기자동차와 화석연료 반대 등과 같은 변혁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셰일 오일과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OPEC가 아직은 주도권을 셰일 오일에 넘겨준 것은 아니지만 셰일 오일이란 복병으로 시장 안정화 능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유가가 일시적 충격으로 변화할 때는 OPEC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미국의 셰일 오일이나 전기자동차처럼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충격에 대한 OPEC의 시장 안정화 능력은 줄고 있다.
 
  최근 OPEC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고 러시아 등과 손잡고 원유 가격을 올리기 위해 2016년 1월 기준으로 감산 합의를 했다가 곧 취소했다. 전통적 생산자들이 원유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낡은 사고로 국제 원유 시장이 과연 균형을 이룰 것인지는 논쟁거리이다. OPEC 국가 중 싼값에 원유를 생산하는 나라와 일부 다른 재래식 생산국들은 시장의 힘을 거슬러 그들의 정치적 의지를 강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파격적인 셰일 오일 혁명이 그러한 생각을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다.
 
  현재까지는 석탄, 원유와 천연가스의 화석연료가 비중이 가장 큰 에너지원이다. 세계 에너지의 절반을 사용하는 미국과 중국이란 두 강대국이 협조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움직임은 이후 로마 교황까지 관심을 보였을 정도이다. 2015년 12월 파리의 기후변화협약에서는 모든 나라가 자국에 맞는 탄산가스 줄이기 목표를 세웠으나, 국제적 기후변화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앞으로는 석유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수십 년이 걸릴 에너지의 전환이 완료되는 시점에 제5막이 시작되겠지만, 우리는 아직 탄화수소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 이후에는 국제 유가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고 했지만,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OPEC 국가가 합심하여 감산을 하게 되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의 유가 하락은 글로벌 경기 하락에 따른 수요의 부진과 함께 공급 과잉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돈을 만지는 헤지펀드들의 동향도 유가에 영향을 준다.(금년 3월 초의 유가 상승은 이들의 장난이 컸다.) 그러한 점에서 유가는 대체로 ①수요와 공급의 법칙 ②글로벌 수요 ③산유국의 생산량 동결 여부 ④미국의 셰일 오일 ⑤헤지펀드의 동향이라는 5가지 변수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고 보면 된다.
 
 
  유가 예측, MUG게임과 같아
 
  그렇다면 앞으로 유가의 전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시장이란 원래 ‘무자비한 정부(情婦・cruel mistress)’라는 말이 있듯이, 올해는 석유 시장이 얼마나 변덕을 부릴지 두고볼 일로서, 이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에너지 가격에 대한 장기 예측을 하는 것은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컴퓨터 그래픽 게임’(머그 게임・Multi User Graphic)을 하는 것에 비유된다고 했다. 《석유 가격, 다시 상승할 것인가?》라는 OECD의 2013년 연구서에서는 2020년에 브렌트유는 2013년 달러 가치로 배럴당 190달러가 될 것이며, 이는 그때까지의 달러 가치의 하락 등을 감안하면 배럴당 270달러까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의 시각으로는 이는 틀린 분석이 될 가능성이 확실하다. 하지만 앞으로 유가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하버드대학의 케네디스쿨 연구원인 레오나르도 마우제리(Leonardo Maugeri) 이탈리아 에니(Eni)사(社)의 전 임원은 “미국의 원유 생산에서 스트레스 테스트의 실제 결과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유가 전망은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로열 더치 셸의 반 뷰어던(Van Beurden) 회장은 유가가 언제 오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모른다”고 하여 말을 아꼈다. 그런 뷰어던 회장이 반년 정도 지난 2016년 초에 유가가 한때 30달러 아래까지 내려가기도 한 상황에서 “2016년 후반부에 가면 유가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장의 힘이 작동하면서 저유가로 인하여 수요를 자극하여 석유 소비가 조금씩 늘어나 2016년이 되면 150만 배럴 내외의 잉여분의 석유가 소비 증가로 상쇄되면서 상승세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가격으로 균형을 찾을 것인가의 여부는 불명확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 거래상인 비톨(Vitol)의 이언 테일러(Ian Taylor) 회장은 2015년 가을에 “유가는 2016년 말에도 배럴당 48달러 선이 될 것이며, 앞으로 5~10년간 40~60달러를 맴돌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대니얼 여긴(Daniel Yergin)은 2016년의 유가는 30달러 언저리가 될 것으로 보았다. 종합하면, 올해의 유가는 30~40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말에는 40달러가 넘을 수도 있으나 2017년까지는 60달러를 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4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