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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개성공단 추진에서 전면 중단까지

“北 김정일·南 햇볕정책이 만들어 낸 어설픈 합작품”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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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7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개성공단 얘기 처음 들어… 국정원 간부 多數의 반대에도
    당시 국정원장이 밀어붙여”
⊙ 이근영 당시 産銀총재, 현대에 대출하라는 얘기 듣고 “청와대 지시로 알겠다”
⊙ “개성공단 통해 6160억원 지급… 대부분 노동당 지도부로 들어가”(박근혜 대통령)
개성공단은 2000년 6월 ‘불법 대북 송금’으로 이뤄진 김대중·김정일 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정권과 기업이 각자의 ‘사익’을 위해 만든 ‘어설픈 합작품’이었다.
  돌이켜보면 개성공단이라는 남북(南北) 합작 경제모델은 그럴싸한 업적을 남기려는 김대중(金大中) 정부와 경제적 난관을 꼼수로 풀어내려는 현대가(家) 욕심의 산물이었을지 모른다. 개성공단 탄생의 총괄 기획자는 북한 김정일(金正日)과 고 김대중 전(前) 대통령,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주, 실무책임자는 박지원(朴智元) 전 비서실장,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그룹 회장,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개성공단 건설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 직후다. 당시 국가정보원 국내 정보조직을 총괄 지휘했던 김은성(金銀星) 전 차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갑자기 개성공단 건설이 주요 이슈가 됐다”고 털어놨다. 김 전 차장의 증언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뒤 두 달 뒤(2000년 7월 말)에 현대가 북측과 공동으로 개성 근처에 산업공단을 만든다는 보고서를 처음 접했습니다. 생(生) 첩보였어요. 국정원 소속 국장들을 소집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카더라’ 방송 수준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접한 뒤 임동원 원장이 주재하는 차장 회의 때(2000년 8월 초) 개성공단 얘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개성공단 얘기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 간에 반대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임 원장이 잠시 남으라며 별도의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큰 지도가 하나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개성 지역에 들어설 산업공단이 표시돼 있었습니다.”
 
 
  ‘북측은 외화벌이 하면 된다’(김정일)
 
  김은성 차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소상히 밝혔다.
 
  〈김: 어느 기업이 참여합니까.
 
  임: 아, 그냥 다 잘될 테니 너무 반대하지 마세요. 경제적으로 효과가 크고 인건비도 적게 드니 우리 기업에 이득입니다. 경협이 잘되면 남북 평화도 빨리 온다 했습니다.
 
  김: 말씀이야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한 안보 차원에서 봤을 때 우리 측 근로자는 인질이 될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이 개성공단에 투입될 텐데 전쟁이 나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합니까. 그들로 인해 군사 작전도 제대로 못 할 겁니다. 심각하게 고려하셔야 합니다.
 
  임: 남북한 간에 상호 이익이 있는데, 평화에 기여하면 했지,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김: 경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 나라의 운명입니다. 안보 조직이 경제 위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임: 북측이 전쟁까지 못 할 겁니다. 김 차장, 걱정이 너무 앞서고 있어요.〉
 
  김은성 전 차장의 기억 속에 있는 대화를 보면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의 수장의 머릿속이 경제적 관점으로 꽉 차 있다는 것과 개성공단 건설은 벌써 착공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자신도 뒤늦게 ‘개성공단 추진 프로젝트’를 알았다고 밝혔다. 임 전 원장은 지난 2008년 자서전 《피스메이커》를 내놨다. 책의 한 대목이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6월 말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일행이 원산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경협사업 문제를 협의했다. 김 위원장은 산업공단 후보지로 우리 측이 원했던 해주 지역이 아니라 개성 지역을 지정했다. 김 위원장은 ‘개성이 6·25전쟁 전에는 원래 남측 땅이었으니 남측에 돌려주는 셈치고 북측은 나름대로 외화벌이를 하면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두 달 후 현대는 ‘개성 지역 산업공단 조성계획’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설명해 동의를 얻게 된다. 나는 사전에 이 계획을 보고받고, 그 웅장하고 야심 찬 사업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총 책임자인 임동원 전 원장은 적국 수장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이후 현대가의 가신그룹과 함께 개성공단 건설 프로젝트에 앞장선다.
 
 
  “북한에 보낸 소 값의 100배를 남한에서 받아내겠다는 정주영 회장의 베팅”
 
통일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인 2월 11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 북한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계자들을 전원 추방하고, 모든 자산을 동결했다.
  김대중 정부가 그럴싸한 ‘업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그렇다 치고, 왜 현대가는 개성공단 건설을 비롯, 대북(對北) 사업에 열을 올렸을까. 과거 《월간조선》에 증언한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북사업은 초창기에는 철저하게 경제적 난관을 피하고자, 후반기에는 약간의 감성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때마침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으려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눈물겨운 ‘효심’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맞는 평가일 듯 싶다.
 
  《월간조선》 2003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 중 일부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아는 한 기업인의 증언이다.
 
  〈소떼 방북(訪北)을 일각에서는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쾌거라고 칭송하지만 저는 정주영 회장의 일대 도박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조선을 제외한 현대건설·현대전자 등은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대가 망하느냐, 대우가 망하느냐며 촌각을 다투는 판에 사업성이라곤 하나 없는 북한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경영이 아닙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경영이 정주영 식(式) 경영입니다. 외환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자체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단이 없었던 현대 왕 회장은 그 돌파구를 북에서 찾은 겁니다. 북에서 사업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에 보낸 소 값의 10배, 100배를 남(정부)에서 받아내겠다는 게 왕 회장의 계산입니다.〉
 
  현대는 어쩌다 자금 위기에 몰렸던 것일까. 현대 계열사 사장단급 임원의 증언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현대그룹은 신규 사업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2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 당시 후보에게 패했다.) 현대가 하고자 했던 사업은 정부가 다 막았고, 정부의 실세들은 현대 맨들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시중에 돈은 풍부했지만, 현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쓸 수가 없었습니다. 금리가 싼 1금융권을 쳐다보지 못하고, 금리가 비싼 제2 금융권의 돈을 끌어쓰면서 금융비용이 커지고, 부채는 계속 늘었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5년 동안 계속되면서 김영삼 정부 말기에 이르자 겉으론 멀쩡했지만, 속으론 심한 골병이 들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까지 터졌습니다.〉
 
  현대가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건설이 집중 논의되는 상황에서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도 간파했다. 김대중 정권 핵심부에서 개성공단 건설 논의가 한창이던 때,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김은성 전 차장, 박○○ 국정원 경제분석 과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전 현대건설 이사회 의장이 국정원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는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박 과장이 개성공단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가고, 김윤규, 이익치씨가 반박을 했습니다. 대화는 어느새 현대그룹 자금난 쪽으로 번졌습니다. 흥분한 이익치씨가 신문지를 돌돌 말아 탁탁 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박 과장도 물러서지 않았죠. ‘현대건설이 금융계에 거액 대출을 요청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익치씨는 ‘무슨 소리냐. 현대건설 자금은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박 과장은 ‘그렇다면 또 다른 은행에서 돈을 꿔 간 이유는 뭐냐’며 제3의 은행까지 거론했습니다. 그래도 이익치씨는 ‘문제될 거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돈’이 급했던 현대가 의외로 ‘돈’에 있어서는 큰 우려를 하지 않은 듯 보인다.
 
 
  현대家를 위해 대출 압력 넣은 DJ청와대
 
  현대가가 느긋했던 것에 대한 답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 전 수석의 특검(特檢) 신문조서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 2003년 6월 16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사무소 1506호.
 
  〈문: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 경위는 어떤가요.
 
  답: 박지원 특사와 임동원 국정원장의 요구를 받고, 지난 2000년 6월 3일 이용근(李容根) 금감위원장과 이근영(李瑾榮) 산업은행 총재를 롯데호텔 지하에 있는 일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박지원 특사와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현대가 유동성 문제로 대단히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으니, 현대가 어렵게 되면 대북사업 추진도 어렵게 되고, 특히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그러니 현대에 대한 지원을 검토해 보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다고 하면서, 현대건설 등 현대 계열사에 대한 여신지원을 해달라고 지시나 다름없는 강력한 요청을 하였고, 이에 대해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는 ‘알겠습니다. 청와대의 지시로 알고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문: 이후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았나요.
 
  답: 월요일경(2000년 6월 5일) 이근영 위원장이 저에게 전화하여 현대건설에 대한 여신지원은 어렵고, 상환능력이 있는 현대상선에 대해 대출을 하기로 하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은 하였지만 내심 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현대건설에 대출이 되어야지 하는 아쉬움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상선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상선에 해줘도 현대건설에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 대출될 돈이 북한에 송금될 사실을 알고 대출 지시를 한 건가요.
 
  답: 지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본인은 2000년 5월 초순경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지원 특사로부터 현대가 정부 몫 1억 불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즈음에서 현대가 당연히 자체 자금으로 대북 송금을 했거나, 아니면 현대가 대북 사업권의 대가로 총 5억 불에 포함해서 이 문제를 처리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중략)
 
  문: 현대가 단기 유동성을 겪고 있었는데, 어떻게 자체 자금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요.
 
  답: 2000년 4월 말에는 현대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고 봤습니다.
 
  문: 단순히 유동성 문제로 그렇게 긴급히 국정원과 박지원 장관이 지원을 수차례에 걸쳐서 강력하게 요청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햇볕정책이 중요정책이었고 현대가 거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된 겁니다.〉
 
  결국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이라는 허황된 꿈을 좇았던 정부와 여기에 교묘하게 숟가락을 얹은 기업에 의해 탄생된 셈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한 노무현 정부 시절에 개성공단 1단계 건설 착공식(2003년 6월)이 있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한 업체는 삼덕통상(신발제조)·신원(의류업체)·로만손(손목시계 제조) 등 총 15개 업체였다. 당시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는 4600여 명, 한 달 월급은 57.7달러였다. 첫 번째 ‘메이드 인 개성공단’ 제품은 주방기기 전문업체인 ‘리빙아트’의 냄비(2004년 12월 15일)였다. 당시 ‘리빙아트’의 매출은 143억원(2003년), 72억원(2004년)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불과 2년여 만에 철수했다. 당시 높은 인건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소기업들의 대다수는 ‘개성공단 행(行)’을 검토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이전에 과거 남북경협사업을 했던 업체들은 이들에게 우려를 보냈다. 대우남포공단에 회사를 차렸던 한 관계자는 《월간조선》 2006년 9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은 무릉도원 아니다’고 했던 대우남포공단 입주 사장
 
  ―왜 남포공단에서 철수했습니까.
 
  “정확한 이유는 없어요. 북한에서 어느 날 우리한테 나가달라고 했는데,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죠. 그즈음 대우 사태도 겹쳤고요. 아직도 남포에 우리가 지은 공장이 그대로 있을 텐데, 한 번 가보고 싶고 그래요.”
 
  ―북한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그냥 나왔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랑 달라요. 그냥 어느 날, ‘이견이 있으니, 좀 나가줬으면 좋겠다’ 그래요. 그러면 직원들은 짐 싸서 일단 나오는 거예요. 그런 일이 1년에 대여섯 번이죠.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북한은 이유도 없고, 원칙도 없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했죠.”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의 조기 입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북 사업을 했던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어요. 특히 개성에 올인하겠다는 분들은요. 개성공단은 무릉도원이 아니에요. 북한은 국제협약도 지키지 않는 국가예요. 설령 우리 정부와 약속을 했다 쳐도,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곳입니다. ‘미사일을 쐈지만 개성공단과 관련 없다’는 정부의 논리를 맹신하지 마세요.”
 
  이즈음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조기 입성하겠다며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사실이다. 기자는 지난 2006년 8월, 중소기업들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창신섬유’ 측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개성공단에 진출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제품단가는 내려가고 인건비는 상승해요. 염색업계는 거의 고사상태예요. 당장 문을 닫을 수 없어서 그냥 운영하는 것뿐이에요. 개성공단에 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인건비 싸고, 공장부지 커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잖아요. 땅값도 평당 11만4000원 정도로 저렴하고요. 우리는 50%는 자사에서 부담하고, 50%는 대출받을 예정이에요.”
 
  ―공장 운영이 힘들다면서 새로 개성공단에 공장 짓는 것이 부담되지 않나요.
 
  “대북 지원자금 있잖아요. 대북협력기금에서 최대 70%까지 지원해 준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개성공단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는 듯 싶었지만, 남포공단 입주업체 사장의 ‘예상’대로 북한은 개성공단을 두고 여러 협박을 해온다. 북한은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는 조치(2008년)를 취했고, 한미연합(키 리졸브) 훈련을 트집 잡아 육로 통행을 차단(2009년)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이 오픈한 지 4년여 지난 2009년에는 노골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북한은 지난 2013년 또다시 ‘단골메뉴’인 공단 폐쇄 카드를 들이밀었다. 당시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은 123개, 기업 투자액은 5568억원, 정부·공공부문은 3927억원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북측 노동자 수는 5만4000명으로, 누적 임금(2004~2012년)은 약 3억 달러였다. 북한은 2013년 4월, 한미 군사훈련을 트집 잡으며 공장 가동을 160일 동안 중단시켰다.
 
 
  개성공단, 北韓의 ‘현금 인출기’에 불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남북 긴장 관계가 최고조로 향하던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에 개성공단 방북이 일시 금지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우리 정부가 먼저 중단 조치를 취한 것은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6일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지금까지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달러로 지급됐는데 대부분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앞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제 ‘남남갈등’만을 유발하는 목소리를 최소화하면서, 탄생에서부터 운영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치적 산물’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 시작은 개성공단 입주 업자들의 실제 ‘피해’를 ‘정확’하게 조사한 뒤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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