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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중국 다음은 베트남인가?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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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B, 올해 GDP 성장률 6.5%, 내년 성장률 6.6% 전망
⊙ PwC, ‘앞으로 35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할 나라’, TPP 최대 수혜국 될 전망
⊙ 한국, 베트남 투자국 중 1위… 삼성전자, 스마트폰 중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서 만들어
⊙ 중국과 해양영토 영유권 분쟁 벌이면서도 시진핑 주석 초청, 미국과도 頂上 외교

李長勳
⊙ 58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로 가득찬 베트남 하노이 시내 풍경. 젊은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베트남이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Good Morning, Vietnam!〉 베트남 전쟁을 그린 미국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미(美) 공군 방송병(放送兵)인 DJ의 눈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DJ 역할을 맡은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항상 ‘굿모닝 베트남!’이라는 멘트를 하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윌리엄스는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얼마나 멋진 세상인가)’라는 곡을 틀면서 전쟁으로 찌든 베트남의 모습을 반어적(反語的)으로 표현한다.
 
  이 노래의 제목처럼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현재 베트남이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땅이 되고 있다. 전(全)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각국이 고전(苦戰) 중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경제는 호황(好況)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상반기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2%로 지난 7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아시아 주요국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베트남의 GDP성장률 전망치는 6.5%로 종전 전망치 6.1%보다 높게 제시했다. 이는 인도(7.4%), 중국(6.8%)에 이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ADB는 내년에는 당초 전망치 6.2%를 웃도는 6.6%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5.4%, 2014년 6.0%였던 베트남의 연간 GDP성장률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중국발 경기둔화 쇼크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신흥국들이 맥을 못 추고 있지만 베트남은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지난 1~8월 산업생산지수(IIP)는 전년 동기보다 9.9% 상승하고 소매·서비스 매출은 10.1% 급증하는 등 실물경제지표도 좋아졌다. 수출은 1063억 달러(125조원)로 9%나 늘었다. 1988년 3억7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의 해외직접투자(FDI)는 2014년 202억3000만 달러로 50배 넘게 불어났다. 경제성장률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연평균 7.5%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법인 프라이스 워터 하우스 쿠퍼스(PwC)는 최근 ‘2050년 세계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4~2050년 사이 베트남의 1인당 연평균 실질 GDP 성장률을 5.0%로 예측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베트남은 앞으로 35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중국은 같은 기간 연평균 3.4%의 성장률을 보이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신흥시장의 그린필드 투자 중심지
 
  전쟁으로 각인된 나라 베트남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외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와 제조업의 발전 덕분이다.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베트남은 최근 들어 외국 기업들이 대거 공장 등을 건설하면서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1~8월 베트남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액은 133억30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同期) 대비 30.4%나 증가했다.
 
  특히 베트남은 신흥시장의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린필드 투자는 FDI 가운데 외국 자본이 직접 부지를 확보해 공장 등을 짓는 투자를 말한다. 베트남의 그린필드 투자 규모는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들 가운데 가장 컸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14개 주요 신흥국에 유입된 그린필드 투자를 분석한 결과, 베트남의 지수가 8.14로 가장 높았다. 2위인 루마니아(3.91)와 3위인 헝가리(3.80)보다 훨씬 높았다. 중국은 0.56에 그쳤다. 지수가 1이면 전 세계 그린필드 투자에서 한 나라가 차지한 비중이 이 나라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한 비중과 똑같다는 의미다. 지수가 1을 넘으면 경제규모에 비해 더 많은 투자를 받았다는 뜻이 된다. 베트남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한 몫에 비해 8.14배 많은 투자를 받은 셈이다. 실제로 각국의 대기업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를 들 수 있다. 베트남 생산기지는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폰 생산량(약 5억대)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요충지다. 갤럭시S6와 S6엣지 등 최신 스마트폰 역시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특히 베트남 북부 박닌성(옌퐁공장)과 타이응우옌성(옌빙공장) 두 곳에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30억 달러(3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 승인을 받아 내기도 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매출이나 자산규모 면에서 베트남 최대 기업 페트로베트남을 위협하고 있다. 응우옌 떤 중 베트남 총리가 삼성전자 생산설비 유치를 최대 업적으로 꼽을 정도다.
 
  LG전자도 지난 3월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에서 ‘하이퐁 캠퍼스(생산단지)’ 1차 준공식을 가졌다. LG전자는 2028년까지 생산시설을 확충해 스마트폰, TV, 자동차 부품 등을 제조하는 종합 생산단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공장 부지는 80만m² 규모로 15억 달러(1조6500억원)를 투자한다.
 
 
  양질의 젊은 노동력이 강점
 
갤럭시 S6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서 만든다.
  베트남 외국인투자청(FIA)에 따르면 올해 1~8월 각국별로 투자한 내역을 보면 우리나라가 52억6000만 달러로 전체의 39.5%를 차지, 55개국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영국(12억5000만 달러), 버진아일랜드(9억7000만 달러), 홍콩(8억7000만 달러) 등이 우리나라의 뒤를 이었다.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은 400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베트남의 FDI 승인금액을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77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고, 홍콩(30억 달러)·싱가포르(29억 달러)·일본(23억 달러)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의 노동자 임금이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조사를 보면 중국에서 생산성과 물가를 감안한 노동자 임금은 최근 10년 새 3배나 올랐다. 2004년 시간당 임금은 4.35달러였는데 2014년에는 12.47달러로 3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베트남의 최저임금(월급 기준)은 2015년 현재 145달러(연간 평균 환율 적용)로, 중국 280달러의 50% 수준이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2012년 98달러, 2013년 114달러, 2014년 128달러, 2015년 145달러로 상승세지만 중국과는 일정한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최저임금은 2012년 200달러, 2013년 229달러, 2014년 255달러, 2015년 280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오는 2019년 중국의 시간당 제조업 노동비용은 베트남의 177%에 이를 것으로 집계돼 지난 2012년의 147%보다 더욱 간극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베트남의 노동인구는 젊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인구 중 40%가 25세 미만으로 구성돼 있다. 또 베트남은 교육열과 인적자원의 질이 높고 문맹률이 낮다. 현재 60세 이상 인구는 불과 9%로, 13%에 이르는 중국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풍부한 경제활동인구와 양질의 노동력은 향후 베트남 경제성장의 바탕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제조업 공장으로서의 베트남의 역량은 최근 발표된 수치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영국은행 HSBC가 매월 측정하는 베트남의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19개월 연속 ‘경기확장’을 의미하는 50을 웃돌았다. 지난해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주변 아세안 국가를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세계은행의 베트남 담당자인 빅토리아 콰콰는 “베트남은 농업으로부터 제조업으로 경제구조를 탈바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화통일 후 10년간 마이너스 성장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반도 동쪽에 있는 국가이다. 북쪽은 중국, 서쪽은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남중국해와 면해 있다. 남북으로 해안선은 무려 3444km에 달한다. 세계 14위 규모의 인구(9200만)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토 면적(33만1210km²)은 우리나라의 3배가 넘는다. 해상운송로로서의 지정학적 이점과 더불어 젊은 노동인구 및 저임금 비용, 제조업으로의 산업지형 변화 등 매력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베트남이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비크람 네루 동남아시아 담당 연구원은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렵게 살아 온 베트남의 현대사를 볼 때 현재의 발전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4월 남베트남(월남) 정권의 항복으로 통일이 된 후, 베트남 공산정권은 대규모 숙청을 벌였다. 남베트남 출신의 하사관 이상 군인 수백만 명을 집단농장에 강제수용, 공산주의에 순응하도록 사상개조 교육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망했다. 또 미국 등 서방과 협력한 남베트남 정부의 전직 관리들과 기업인들을 대부분 숙청했다. 당시 즉결처분된 사람들을 포함해 희생자는 최소 30만명에서 최대 2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수치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살기 위해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하는 이른바 ‘보트 피플’이 양산됐다. 1976년부터 1992년 말까지 동남아 지역으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들의 수는 총 79만명이나 됐다.
 
  이처럼 강압적인 통치 때문에 베트남은 통일 이후 10년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는 등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특히 베트남 공산정권은 시장경제 체제를 완전히 부정했다. 이 기간의 경제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쌀 생산이다. 베트남은 태국과 함께 세계 쌀 수출에서 상위를 차지해 왔지만, 통일 이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당시 베트남 공산정권은 모든 농경지를 국가 소유인 집단농장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농촌은 완전히 파괴됐다. 베트남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실제로 1986년 베트남의 1인당 GDP는 84달러로 805달러였던 북한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도이 머이 정책의 明暗
 
  당시 베트남 공산정권은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민심(民心)이반으로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도부에서 나왔다. 결국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12월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 머이(Doi Moi)’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도이 머이’는 베트남 말로 ‘바꾼다’는 뜻의 ‘도이(Doi)’와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머이(Moi)’를 합친 말이다 ‘새롭게 한다’ 또는 ‘쇄신’을 뜻한다. 당시 회의에서 응우옌 반 린 서기장은 인플레가 587.2%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공산주의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시장경제 체제를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도이 머이’ 정책 도입 이후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농업개혁이다. 베트남 공산정권은 토지의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농민 개개인에게 장기 사용권을 부여함으로써 생산력 향상을 유도하는 토지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던 베트남은 다시 쌀 수출국이 됐다. 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해 외국 자본을 대거 유치했다. 또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이 없는 국영기업들을 도태시키는 등 경쟁력도 강화했다. 토지상속권과 담보권, 사용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토지법을 개정했으며, 파산법, 외국인투자법, 기업법 등도 도입했다.
 
  대외(對外)개방 상황에서 베트남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이 부각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이 베트남에 적극 진출했다. 외국 기업들은 섬유, 봉제, 신발, 가구 등 노동집약형 경공업에 주로 투자하다가 관광과 호텔 등 서비스업종과 가전·건설·기계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 갔다.
 
  ‘도이 머이’ 정책이 날개를 달게 된 것은 1998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가입과 2000년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이다. 또 2006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1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경제는 1997~1999년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높은 성장률을 보여 왔다.
 
  하지만 도이 머이 정책으로 상당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특히 공산당 간부를 비롯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심각할 정도이다. 부정부패 때문에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 왔다. 공산당 간부들과 공무원들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또 이들과 결탁한 일부 기업인들도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 지수를 보면 베트남은 187개국 가운데 119위에 그칠 정도로 부패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정부와 공산당은 앞으로 더욱 도약하기 위해 ‘제2의 도이 머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은 내년 초 열릴 전당대회에서 2016~2020년 평균 GDP 성장률 6.5~7%, 1인당 국민소득 3200~3500달러(2014년 2052달러)를 목표로 제시할 방침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을 통치하는 유일한 세력은 공산당이다. 440만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공산당은 헌법상 국가와 사회를 영도하며 정부, 국회의 활동을 지도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때문에 공무원들은 물론 국가 주요 공기업의 간부들은 공산당 엘리트 출신들이다. 공산당은 당원들을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교육하고 각종 직책과 경험을 쌓도록 해 미래의 지도자로 만들어 왔다. 공산당은 집단주의 지도체제의 만장일치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을 1930년 창설 이래 지금까지 지켜 왔다. 특히 전당대회는 당의 중요한 정책의 인준, 정책노선의 결정, 새로운 당 규약 등을 결정한다.
 
 
  공산당의 세대교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작년 10월 방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현재 베트남 권력구조는 공산당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데, 당 서기장이 최고 실권자이다. 국가주석은 군사와 외교를, 총리는 정치와 경제 전반을 관장한다.
 
  응우옌 푸 쫑 당 서기장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론가로 합리적이고 온건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들어 왔다. 응우옌 서기장은 공산당 기관지 편집장과 교수 출신으로 2011년 1월 제11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권력 서열 1위에 올랐다.
 
  1944년 북부 수도 하노이에서 태어난 응우옌 서기장은 1967년 하노이종합대학(현 하노이인문사회대)을 졸업하고, 공산당 기관지와 당 이념 관련부서 등에서 일했다. 1981년 구소련의 사회과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공산당 기관지 편집국장을 지내다 1994년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돼 1996년 하노이시당(市黨) 부서기에 올랐다. 1997년 당 정치국원(중앙위원회 교육문화 담당)과 2003년에는 하노이시 당 서기, 2006년 국회의장을 각각 역임했다. 응우옌 서기장은 국영기업이 구심체가 돼 경제발전을 견인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ist-oritented market economy)’라는 개념과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응우옌 서기장은 2006년 제10차 전당대회에서 65세 이상 지도자들은 스스로 은퇴한다는 결정에 따라 차기 전당대회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쯔엉 떤 상 국가주석도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1949년 남부 롱안성에서 태어난 쯔엉 주석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통일 이후인 1983년 호찌민시 신경제지구 개발국장을 맡으면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92년 호찌민시 당 위원장, 1996년 정치국원을 맡았다. 공산당 중앙당 경제위원장 시절엔 시장경제 요소를 적극 도입, 베트남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초석을 마련했다.
 
 
  ‘부패와의 전쟁’
 
베트남의 國父 호찌민.
  베트남 공산당의 특징은 국부인 호찌민(1890~1969년) 주석의 유지를 받들어 한 개인의 절대적 권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호 주석은 검소와 청렴으로 유명하다. 전쟁 당시 정글에서 몸에 밴 검소한 생활은 북베트남의 주석 자리에 오른 뒤에도 여전했다. 그의 거처는 조그만 오두막이었고 늘 같은 옷에 고무 샌들을 신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30여 년간 망명과 투옥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살았다. 주석이 된 뒤 누이를 딱 한 번 만났을 뿐 그 뒤 죽을 때까지 인연을 끊고 지냈다고 한다. 항상 나라의 일을 먼저 걱정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을 즐긴다는 신조를 철저히 실천한 것이다. 베트남 국민들은 권력을 통해 어떤 부귀도 누리지 않았던 그를 절대적으로 존경했지만 우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호(胡)아저씨로 부르며 친근하게 여겼을 뿐이다. 베트남의 실용주의자들이 공산당 지도부의 반열에 올라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호 주석의 유지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 공산당은 내년 초 제12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부패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방침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지난 9월 15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정치보고서 초안을 통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보고서는 부패가 베트남 정권 생존에 대한 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부정·부패 연루 사건들이 재판을 받고 있으나, 법과 정책 개혁을 비롯한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오는 2020년까지 베트남이 산업국가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그동안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원이 선출하는 중앙위원회 위원 정족수를 160명에서 200명으로 확대하고, 여성·소수민족·젊은층 등 상대적인 약자층의 당내 영입을 대폭 추진하고, 자본가들에 대한 선별적인 입당을 허용하는 등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해 왔다.
 
 
  EU와 FTA 체결
 
베트남에 있는 한국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들. TPP 체결로 베트남은 최대의 수혜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베트남은 경제발전을 위해 대외개방에 적극적이다. 지난 8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싱가포르에 이어 EU와 FTA를 맺는 두 번째 동남아 국가가 됐다. 베트남은 10년 안에 99% 이상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고 EU는 7년 안에 같은 품목의 관세를 철폐할 계획이다. 양측은 법률작업 등을 마친 뒤 올해 말까지는 FTA 협상을 최종 타결할 예정이다. 양측의 FTA 협정은 2017년 말이나 2018년 초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베트남의 2위 교역 파트너이며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EU의 4번째 교역 대상국이다. 지난해 양측의 무역규모는 280억 유로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지난 5월엔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FTA를 체결했다. EEU는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5개국이 지난 1월 출범시킨 경제공동체이다. 베트남은 그동안 러시아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베트남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와도 FTA를 체결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중국, 미국, 홍콩에 이어 4위 국가다. 지난해 6위였지만 올 들어 8월까지 수출실적이 일본과 싱가포르를 제치고 4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그만큼 베트남과의 교역 비중은 커지고 있다. 양국의 FTA가 국회 비준 절차를 거쳐 공식 발효되면 앞으로 교역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베트남이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타결로 상당한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TPP 타결로 12개 참여국 중 베트남이 최대 수혜국이라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베트남의 제조업이 수혜를 볼 것이라며 베트남이 TPP 가입국 중 유일한 중하위 소득(lower middle income)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TPP에 참여한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는 고소득(high income) 국가이고 말레이시아, 페루, 멕시코는 중상위소득(upper middle income) 국가이다.
 
 
  AIIB도 가입
 
  유라시아그룹도 보고서에서 베트남은 TPP 타결로 GDP 규모가 2025년까지 11%, 수출 규모는 28%가 증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예측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도 TPP가 발효되면 베트남의 수출이 2025년까지 29%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베트남의 주력 수출 상품은 IT 부품과 가전제품, 의류 및 신발 등이다.
 
  특히 섬유·의류 산업은 가격경쟁력과 TPP 내 ‘원사(原絲) 기준’ 덕에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원사 기준도 베트남 섬유·의류 업계에 유리한 조건 중 하나다. 미국은 그동안 FTA 등 무역협정에서 중국산 원사·원단을 사용한 의류제품에 관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사 기준을 ‘원산지 기준’으로 채택해 왔다. TPP에서도 원산지 기준으로 원사 기준이 채택됐기 때문에 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에서 원사부터 봉제까지 의류 생산의 모든 과정을 수행해야만 한다. 미국 의류·섬유 수입시장에서 베트남의 점유율은 중국(36.7%)에 이어 11.1%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경제정책연구소(VERP)는 TPP로 축산업 등 일부 업종의 경쟁력은 떨어지겠지만 섬유·의류, 신발, 건설 등의 분야에서는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고 수출이 증가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베트남은 TPP 타결로 앞으로 더욱 제조업 생산기지로서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 기업들은 TPP 회원국에 수출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더욱 많이 공장을 옮길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베트남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 세계의 공장’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베트남은 또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가입했다.
 
 
  實利외교
 
  베트남은 그동안 국익을 위해 철저하게 실리외교를 추진해 왔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때문에 미국·일본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중국과도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응우옌 서기장은 지난 9월 도쿄를 방문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에서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남중국해에서 활용 가능한 고성능 순시선과 순시정 등 경비용 선박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응우옌 서기장은 일본의 안보법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간척을 통해 인공 섬을 건설하는 것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은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의 관계 강화도 공고히 해 왔다. 올해는 미국과 베트남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한 지 20주년이 된다. 응우옌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 7월 6일부터 10일까지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미국을 방문한 것은 수교 이후 처음이다. 응우옌 서기장은 백악관을 방문해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 오벌 오피스는 상대국 정상이 상당히 친숙한 인물이거나 예우를 갖출 때 회담장으로 사용하는 장소다. 두 정상은 경제와 군사협력 문제 등을 논의했으며,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베트남 기업들은 중국보다는 기술이전을 통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의 생산협력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교역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양국 교역 규모는 2004년 62억 달러에서 지난해 377억 달러로 10년간 6배 이상 늘었다.
 
  베트남은 또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도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견제하고 남중국해를 비롯해 동남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베트남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이해관계를 볼 때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는 앞으로 밀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1월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을 방문할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2000년 11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15년 만이다.
 
 
  시진핑, 11월 베트남 방문 예정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11월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 서기장과 양국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인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은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이래 9년 만이다.
 
  베트남이 시 주석의 방문 요청을 수용한 것은 역시 실리적인 외교정책 때문이다. 베트남은 과거부터 중국과는 앙숙이었다. 베트남은 지난 1000여 년간 중국 역대 왕조와의 전쟁에서 패배, 조공(朝貢)을 바치는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복종하지 않고 정체성(正體性)을 지켜 왔다.
 
  양국은 1979년 2월 17일부터 약 한 달간 국경 지역에서 전쟁까지 벌였다. 당시 베트남은 이웃 나라인 캄보디아를 침공해 친중(親中) 성향의 크메르 루주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에 화가 난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보복으로 국경 지역을 공격했다. 하지만 중국은 베트남의 강력한 저항으로 결국 철군했다. 사실상 베트남의 승리였다.
 
  역사적으로 보나 전쟁했던 관계로 보나 베트남은 현재 아세안 10개 회원국들 중 가장 반중 정서가 강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국은 현재 남중국해에 있는 난사군도(베트남명 쯔엉사)와 시사군도(호앙사)를 놓고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현재 시사군도의 모든 섬을, 난사군도에선 8개 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난사군도에 있는 29개 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베트남은 과거에는 시사군도에서 3개 섬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74년 중국과의 해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이 섬들을 빼앗겼다.
 
  하지만 베트남은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군사적으로 볼 때 다윗인 베트남은 골리앗인 중국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이처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관계이지만 베트남으로선 중국을 외면할 수는 없다. 베트남에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중국과의 교역 규모는 319억 달러에 달한다. 베트남은 중국 윈난성·광시좡족 자치구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은 3개의 국제도로와 26개 국도로 연결돼 있다. 양국 국경에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베트남이 중국과도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책을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세안의 盟主’ 꿈꾸는 베트남
 
베트남 하노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휴대폰 상점. 사진=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베트남 최초의 중앙집권 체제 독립국가인 리(李) 왕조(1009~1226) 때문이다. 리 왕조의 시조인 태조 리 꽁 우언(李公蘊)은 1010년 하노이를 첫 도읍으로 정했다. 리 왕조 시대의 국호는 ‘다이 비엣(Dai Viet·大越)’이었으며, 중국은 안남국(安南國)이라고 불렀다. 리 왕조는 8대에서 내란으로 멸망했으며, 당시 마지막 왕손이었던 리 롱 뜨엉(李龍祥)이 화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을 탈출해 바다를 표류하다 고려 땅에 도착했다. 고려 고종은 그에게 황해도 옹진 화산에 식읍을 하사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으며, 그는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시조가 됐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1992년 수교하고 2009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이래 협력을 강화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6만여 명의 베트남 신부들도 있다. 양국은 혹독한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외세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는 쓰라린 아픔도 겪었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르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인 한류(韓流)가 가장 인기가 있는 곳도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꿈은 앞으로 아세안의 맹주(盟主)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베트남은 GDP 측면에서 아직 상당히 낮은 수준이지만 근면과 끈기라는 민족성과 실리주의를 통해 꿈을 실현할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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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2015-11-17) 찬성 : 119   반대 : 139
시작부터 중국이 아닌 베트남이어야했다 무시하지말자 재처리 할수있다(무엇을 재처리할수있는지 다들 아시죠)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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