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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죽음을 앞둔 재벌회장의 두 모습

씁쓸한 마지막 인생 보낸 L회장과 미용사에게까지 고마움 표시하고 떠난 K회장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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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과 6월 재계 관계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상태였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이 회장이 한 달이 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재계 사람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재벌 회장의 건강’ 얘기로 흘러갔습니다. 요즘 H그룹 사람들은 신이 났습니다.
 
  “얼마 전 회장이 필드에 나갔는데 드라이버가 젊은 사람 뺨치게 나가더라”며 들뜬 듯이 얘기를 합니다. 자신이 속한 그룹 회장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좋은지를 ‘자랑’하는 말이죠. 반면 C그룹은 “이러다가 사람 잡겠다”면서 회장의 건강상태가 최악임을 유난히 강조합니다. 다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겠지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결론은 “죽을 때 보면 사람은 거기서 거기다”는 말로 끝납니다. 그 무렵 만난 P대표는 “재벌 회장의 말로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인보다 더 비참한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P대표의 친척은 L회장이 돌아가실 무렵에 그 병실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P대표가 이러더군요.
 
  “L회장이 불쌍해서 혼났다고 하데요. 막판에 회장의 의식이 들었다 안 들었다가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켰는데 L회장 의식이 잠시라도 돌아오면 서로 녹음기 들이대기 바빴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대권(大權)을 누구에게 물려줄 건지 정확히 말로 한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들 재산을 누구에게 줄 건가를 물어보려고 눈이 벌겠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연예인 H씨가 행여라도 병실에 올까 좌불안석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L회장이 H씨를 많이 좋아했거든요. 종종 같이 공도 치고 했는데, 만약에 L회장이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마지막 문병을 온 H씨를 보고 ‘골프장은 이 아이 줘라’라고 말이라도 하면 어쩝니까. L회장 입장에서 보면 마지막 가는 길에 좋아했던 사람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가는 것 아닙니까. 그 모습을 보면서 제 친척(의사)의 마음이 짠했다고 하데요.”
 
  P대표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검색을 해 보니, P대표의 친척이 그즈음에 그 병원에 근무했던 것, 또 L회장이 H씨를 예뻐했다는 것은 전부 사실이었습니다. 재벌 회장의 죽음이 꼭 이런 것만은 아닙니다.
 
  K회장이 죽음을 맞는 얘기는 기자가 여태 기억하는 가장 감동적인 얘기 중 하나입니다. K회장은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K회장은 매일 한 명씩 자신과 친한 이들을 병실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K회장의 아들에 따르면 그 얘기는 사업 얘기가 아니었답니다. K씨와 지인이 기생집 문턱을 처음 넘던 날의 기억, 같이 먹었던 맛있는 음식, 여행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K회장과 지인이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맞아, 그런 일도 있었지. 잊고 있었네”라는 얘기도 종종 오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K회장은 지인을 여러 번 만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K회장의 지인이 “다음 번에 또 문병 올게”라고 말하면 그는 “그냥 여기서 헤어지세. 나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거든. 그동안 고마웠네”라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하고는 끝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 그를 두 번 이상 본 사람은 몇 명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K회장이 아들을 부르더니 “3000만원만 찾아오라”고 했답니다. 병실에 계시면서 무슨 돈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어서 찾아오라”며 다그쳤답니다. 이후 K회장은 기력이 닿는 날마다 평소에 머리손질을 했던 미용실, 단골식당 등을 찾아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금일봉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막상 K회장이 세상을 뜬 후에 빈소에서 눈물을 많이 보인 이들은 바로 미용사, 식당 종업원 등이었다고 합니다. K회장의 아들은 “죽음 앞에 의연하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청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태 본 모습 중에 가장 존경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룹의 규모야 다르지만, 두 분 다 재벌 회장으로서 오랫동안 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친 분들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어쩜 이리 다를까요. 씁쓸하기도, 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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