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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上특강

안현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의 중국 베이징大 강의록

“韓中日 경쟁에서 한국이 가장 不利”

정리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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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14억명의 거대 내수시장 발판 삼아 세계적 기업 여럿 나타날 것
⊙ 일본, 경제력 하향 추세지만 부품·소재·장비 산업 세계 최고 수준 유지할 듯
⊙ 한국, 强小기업·高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하고 低부가가치 서비스업 구조전환해야 생존 가능

安玹鎬
⊙ 57세.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행시 25회.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과장·산업정책국장,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제1차관. 단국대 석좌교수. 現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한중일 경제 삼국지》 출간.
⊙ 황조근정훈장 수훈.
  안현호(安玹鎬)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北京)대학교를 방문, 경제학원(경제학부에 해당) 재학생 2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강의 주제는 ‘아시아의 미래와 한중(韓中)의 역할’이었다. 강의에는 샤오즈허(肖治合) 베이징대 경제학원 부원장을 비롯해 대학 주요 인사와 산웨이창 중국공산당 중앙국가기관공작위원회 고위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베이징대 경제학원은 중국 내 최고의 경제학부로 평가받고 있다.
 
  안 부회장의 특강은 그가 작년에 낸 《한중일 경제 삼국지》의 중국어 번역본 출간과 맞물려 이뤄졌다. 중국어판은 중국 최고 사회과학서적 출판사인 ‘중국경제출판사’가 맡았다. 국내 사회과학 서적이 중국 유명 출판사에서 번역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 고위 인사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베이징대학 특강과 《한중일 경제 삼국지》 중국어판 발간은 최근 중국 경제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고 국가 경제의 위기 가능성은 높아지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로 출판기념회는 베이징대 도서관의 번역본 기증행사로 대체됐다.
 
  안현호 부회장은 강의에서 “세계 경제는 아시아, 미국, 유럽연합 등 3대 지역경제권이 주도권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 아시아의 협력·통합 정도가 가장 약하다”며 “한·중·일(韓中日) 협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치인들로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라도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중 양국(兩國)은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시에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하는 공통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중진국 함정을 극복해야 하는 중국은 한국과 협력하는 것이 전략적인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고, 중산층 감소 등 기로에 직면한 한국은 새로운 성장동력과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중국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제, 산업 분야에서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는 산업구조가 유사해 향후 5~10년간 제조업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중국은 30년간 이어진 양적 성장을 마무리하고 질적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이며, 일본은 20년간의 장기 침체를 탈피해야 하는 시점이고,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안 부회장은 우리의 경제·산업 현실과 관련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이 현재 가장 불리하다”며 “앞으로 5년 안에 중국은 제조업의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큰 반면 한국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일본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안 부회장의 강의 내용은 한중FTA를 앞둔 시점에서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박근태(朴根太) CJ그룹 중국 본사 총재는 “중국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이미 우리를 앞서고 있다”며 “가전제품 분야의 경우 우위의 입장이었던 삼성과 LG는 사실상 적자로 돌아섰다.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현지에서 느낀 우리 기업인들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안 부회장은 우리의 대응 방안으로 “기존 성장동력인 조립완성품의 경쟁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도록 정부 차원의 입지경쟁력 강화 정책을 펴야 하며, 대기업 위주의 인력·금융 시장을 개혁해 중소·중견 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을 떠나고 있는 관련 기업을 인수·합병해야 하며, 부품·소재·장비 산업을 고도화하고, 자영업 가운데 생산성이 낮은 분야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강의 내용을 우리 현실에 맞게 수정, 게재한다.
 
 

 
중국 정부 고위 인사의 요청으로 이뤄진 베이징대 특강에서 안현호 부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에서 산업 전(全) 분야에 걸쳐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독일뿐이다. 제조업 상품 중 특히 한·중·일 3국에서 생산되는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는 철강(57.7%), 반도체 DRAM(63.3%), 디스플레이(71.5%), 선박(82.2%)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세 나라는 세계 경제의 제조업 생산기지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 기지로서의 명성은 과거 한·중·일의 상호보완적인 분업 구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일본은 하이엔드(High-end), 한국은 미드엔드(Mid-end), 중국은 로엔드(Low-end) 기술 제품에 특화하면서 협력적 분업 구조를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3국 간 분업 구조는 지난 30년간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협력보다는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3국의 주력산업이 철강, 석유화학 등 일관공정(단계별 생산조립) 산업과 IT, 조선, 자동차 등 가공·조립 산업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앞으로 5~10년 이내에 한·중·일은 세계 시장을 놓고 생존을 건 전면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결국 3국 간 경쟁에서 승리하면 세계 시장을 제패하게 될 것이고, 패배하면 세계 시장에서 철수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있어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이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3국 간 경쟁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유리할까?
 
 
  제조업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중국의 大약진
 
  제조업은 조립완성품, 부품, 소재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립, 부품, 소재 순으로 산업화가 어렵거나 경쟁력 보유가 쉽지 않다. 현재 조립완성품 분야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한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국은 개인용 컴퓨터, 가전, 반도체 DRAM, 디스플레이, 2차 전지, 선박 등의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했으며, 자동차 분야도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 우위는 점차 중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운 산업은 ▲조립부품 수가 적고 ▲표준화된 부품이 많으며 ▲블랙박스(Black box)식의 독자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현장의 암묵지(暗默知·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가 크게 필요하지 않아 기술의 도약이 가능하며 ▲대만의 산업협력을 받을 수 있는 분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가장 거센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큰 분야는 IT 산업이다. 반대로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기 힘든 대표적인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라 판단된다.
 
  중국 IT 산업의 거센 도전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IT 산업에서 위 다섯 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분야는 컴퓨터 산업으로, 부품 수가 적고 거의 모든 부품이 표준화돼 있으며, 큰 기술 없이 쉽게 조립이 가능하다. 따라서 컴퓨터 산업의 결정적인 경쟁력 요소는 가격이다. 컴퓨터 산업은 신발처럼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현재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컴퓨터 회사인 레노버(Lenovo)는 휼렛패커드(HP)를 꺾고 세계 1위 기업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컴퓨터 기업이 도산했다.
 
  컴퓨터 산업에 이어 TV, 냉장고, 에어컨과 같은 생활가전에서도 중국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0년 이내에 현재 정상(頂上)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자로 부상할 것이 확실하다. 현재 중국 내수시장에서 상위 10개사 중 중국 토종기업이 6~8개(에어컨의 경우 9개사)이다. 조만간 중국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도 삼성전자 제품과 거의 똑같은 기능을 갖춘 중국 제품이 최대 40%까지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가전 산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우리의 경우 1990년대 중반 국내시장에서 당시 가전 분야의 최강자였던 일본 제품과 한국 제품이 동일하게 인식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국산 제품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10여 년 후인 2008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가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된다.
 
 
  중국의 고속 성장으로 한국은 3重 충격받아
 
중국은 5년 이내에 제조업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서울 이마트 성수점에서 모델들이 49만9000원에 판매하는 레노버의 보급형 노트북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IT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휴대폰(피처폰) 분야는 이미 중국이 최강자이며, 디스플레이 분야도 한국과의 격차가 미미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2013년 3분기 기준)을 보면 삼성전자가 35.2%, 화웨이(5.1%)와 레노버(4.3%) 등 중국 기업이 21.2%, 애플이 13.4%를 차지했다. 중국 개별기업의 비중은 10% 미만이지만 전체 비중은 이미 애플을 추월한 것이다.
 
  중국 내수시장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2013년 3분기)을 보면 중국 기업의 도약이 더욱 위협적이다. 중국 기업들의 스마트폰 내수 비중은 78.1%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은 18.4%, 애플은 3.5%에 불과하다. 개별기업으로 보면 삼성이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2위 기업(화웨이 또는 레노버)과의 격차는 크지 않다. 이처럼 중국 IT 분야에는 화웨이, 하이얼, ZTE, 레노버, 샤오미와 같은 혁신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아직까지 초일류 다국적 기업과는 격차가 있으나 14억명의 소비시장을 발판으로 발전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화웨이, 하이얼과 같은 혁신기업의 등장은 한·중·일 분업 구조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민영기업이며, 시장 자체가 상당히 경쟁적이다. R&D·상품기획·생산·국내외 마케팅 전반에 걸친 조직 능력이 선진 다국적 기업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IT 분야의 혁신기업들은 중국 기업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또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그와 비슷한 기업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기업의 실력 상승은 한국 기업에는 궁극적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과 국내에 위치한 조립공장의 해외 이전을 촉발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비교우위를 확보한 중국 기업이 내수시장을 평정한 이후 해외로 진출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력 확보와 시장 개척이 용이한 지역으로 공장을 옮겨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국내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고 해당 품목의 수출 감소와 한국 경제의 GDP 축소라는 ‘3중(重) 충격’이 불가피하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업이 만드는 스마트폰의 해외 생산 비중이 2010년 15.9%에서 지난해 약 80%까지 상승했는데, 이는 삼성전자 등이 주력공장을 베트남, 중국 등으로 옮긴 탓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스마트폰 수출금액은 계속 줄어드는 기현상(奇現象)이 벌어지고 있다.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되고, 확산될 공산이 높다는 점이다.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인 중국이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까지 갖추면 전 세계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중국에 조립공장을 건설하고 핵심부품 협력업체들도 중국으로 동반 진출할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중국 서부 시안(西安)에 70억 달러를 들여 차세대 반도체 공정 공장을 완공한 것은 이런 움직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지금의 일본처럼 한국 내 제조기지는 공동화(空洞化)될 것이다. 부산 사상공단의 신발 클러스터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현재 흔적만 남아 있다. ‘제2, 제3의 사상공단’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추락하는 일본 경제
 
일본 경제가 추락하고 있지만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의 항공기 부품 생산공장.
  일본은 19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거친 후 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1991~2008년간 평균성장률은 1%, 향후 잠재성장률도 1% 내외인 일본 경제는 사실상 성장이 중단된 상태다. 명목 GDP의 정체나 감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가하락에 의한 착시(錯視) 때문이다. 실업률도 높을 뿐 아니라 국가채무도 심각한데, GDP 대비 부채비율이 무려 244%(2013년 기준)에 달한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제조업의 경쟁력과 제조기지로서의 명성이 지속적으로 퇴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소위 ‘6중고(重苦)’로 일컬어지는 엔고, 높은 법인세, 높은 인건비 부담, 급격한 환경·노동규제, FTA체결 지연 및 전력수급 불안과 함께 고령화에 따른 내수 부진 등으로 입지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지진은 일본 경제 전반과 산업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동일본 지진의 중·장기적 충격이다. 일본 산업의 미래전망에 있어 고령화와 함께 대지진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고령화 문제는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대지진은 새롭게 부각된 사안이다. 대지진이 빈번한 나라에서 제조업을 지속하는 것은 매우 위태로워 보이며, 따라서 일본의 제조기지로서의 역할은 더욱 약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증하고 있으며, 일본 기업의 약 70%가 해외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탈출은 과거와는 현격히 다른 모습이다. 과거에는 조립완성품 기업의 비용절감과 마케팅을 위한 해외 현지 생산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출기업에서 내수기업, 조립완성품뿐 아니라 부품·소재 기업, 서비스 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본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제조업 공동화 현상 때문에 ‘아베노믹스’에 의한 엔저 지속에도 불구하고 수출증대 효과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일본은 2011년 무역 적자로 전환된 이후 무역 적자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으며, 조만간 경상수지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과 함께 여전히 제조업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교우위가 확실한 분야가 많다. 가장 우수한 분야가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은 일본 기업들의 우수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는 분야이다. 이 산업의 특징은 첫째, 산업의 패러다임이 잘 변하지 않고, 둘째 순발력에 의한 단기간 혁신보다는 장기간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혁신이 중요하며, 셋째 기업 간 협력이 경쟁력을 좌우하고, 넷째 장기간에 걸친 현장의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분야로는 부품·소재·장비, 특히 높은 정밀도와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소재 및 장비 분야를 꼽을 수 있다. 일본 기업 중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무수히 많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 기업으로, 일본 산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부하지만, 제조공정을 들여다보면 자부심은 무색해진다. 왜냐하면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의 약 70~80%, 디스플레이 장비의 약 50%, 디스플레이 부품의 약 30~40%를 여전히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와 매출액 및 기술 수준에서 동등한 기업이 전무하다. 그러나 일본에는 매출액 규모가 비슷한 기업이 7개가량 있으며, 기술 수준에서 삼성전자와 대등한 기업은 수없이 많다. 또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强小·히든챔피언)은 약 1500개에서 2000개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기업은 중소기업이지만 기술 수준은 삼성전자와 대등하다고 평가된다. 이와 같이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기술 격차는 여전히 크며,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비록 IT 산업 등 조립완성품에서는 일본 기업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한국, 기존 성장동력의 약화와 불투명한 미래
 
아이폰5에 들어간 주요 일본메이커 부품.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스마트폰의 주요 부품도 일본산(産)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중진국 함정’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1990년대 후반에 IMF 위기를 겪었다. IMF 위기는 한국의 경제·산업·사회 등 여러 면에서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다른 하나의 변곡점이 됐다. 1980년대 말 요소투입형(노동·자본·에너지 등 생산에 필요한 모든 요소 투입) 성장이 한계에 달했을 때 대기업은 기술 혁신과 생산성 혁신으로 정면 승부하는 대신 자본을 더 많이 투입하는 사업 다각화(양적 성장의 확장)의 길을 선택했다가 결국 IMF 위기에 봉착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기술과 생산성 혁신에 매진했고, 이 같은 노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결실을 맺어 현재 조립완성품 분야(부품·소재·장비 제외)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2011년 세계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고 2013년에는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성장동력은 대기업의 제조업 조립완성품 분야의 수출이다.
 
  그렇다면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우리 대기업이 확보한 강점과 경쟁력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해외 경쟁 기업에 비해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신속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등 오너 중심의 발 빠른 추진력,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 능력(예를 들어 반도체 DRAM 미세공정 기준)이 바로 우리 대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조립완성품 분야에서만큼은 우리 기업이 정점에 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산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경쟁력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조립공장이 과거에는 일본과 같이 비용절감 또는 현지 마케팅을 위해 이전했지만 최근에는 입지경쟁력의 약화로 또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소수 대기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판단된다. 산업주기에 따르면, 우리 조립완성품 분야는 성숙기에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중국은 청년기를 지나 서서히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가 일본 기업과 동일한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산업 발전 단계상 일본과 우리가 약 20년, 우리와 중국이 약 20년의 격차가 있다고 판단된다.
 
  일본이 조립완성품 분야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으며,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후반, 즉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1995~1996년으로 추정된다. 소니, 마쓰시타(현재의 파나소닉), 도요타, 닛산 등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정상에 있을 때 일본을 꺾을 나라는 없었으며, 영원히 최강자의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꽃이 피면 지게 마련이듯 일본 제조업의 완성품 분야는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그 시작은 전기·전자 산업에서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본 전기·전자 산업의 약화 현상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또 다른 분야로 퍼지고 있다. 전기·전자 산업에 비해 약 10년의 시차는 있겠지만, 일본 자동차 산업도 쇠퇴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동차 산업은 일본의 비교우위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오래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자체 브랜드는 계속 가져가겠지만, ‘진짜’ 일본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고, 특히 일본의 고비용 구조로 생산공장의 탈출이 가속화하면서 생산량 감소세는 대세가 됐다. 최근 도요타가 일본 내 생산 규모를 적어도 4백만 대는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한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중소·중견 기업의 부재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우리 주력산업인 조립완성품 분야의 정점은 언제쯤일까? 대략 우리나라의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0년대 후반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정점에 머무르는 기간을 더욱 늘리려면 입지경쟁력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다양한 혁신을 통해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그러나 여러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결국 중국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 우리의 지위를 빼앗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불행하게도 중국이 우리를 추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 소요됐던 기간보다 짧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14억 인구의 소비시장을 배경으로 한 규모의 경제를 향유할 뿐 아니라 외자기업 등으로부터의 혁신 역량 이전 등 우리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점인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 생산기술 능력도 중국 등 후발국들이 모방하고 있어 새로운 경쟁력 원천을 발굴하는 게 시급하다. 지금까지 성장동력을 만든 유일한 주체는 소수 대기업이다. 이들이 중국에 정상의 위치를 내준다면 과연 일본처럼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소·중견 기업 등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성장동력 역할을 담당했던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이 약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어 이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중소·중견 기업(특히 부품·소재·장비)과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종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IMF 위기 이후 달라진 특징 중 하나는 대기업과 여타 부문(중소·중견 기업, 서비스 부문, 대학 부문, 출연연구소 등)의 경쟁력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R&D, 생산성 혁신을 통해 글로벌 정상에 오른 반면, 나머지 부문은 IMF 위기 이후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인 변화는 없는 상태다. 이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혁신 주도형 성장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독일과 일본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강소·강중 기업(히든챔피언)이 거의 없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에 대해 책을 낸 헤르몬 지몬 박사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히든챔피언은 10개 내외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2003년 당시 중소기업 중에서 2011년 현재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678개로 전체 중소기업의 0.2%에 불과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3년 당시 중소기업 중 2011년 현재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33개인데, 이 중 상호출자 제한집단 소속기업 19개, 외국인 기업 1개를 제외하면 중소기업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한 대기업은 13개(기업집단은 4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 층이 빈약하며, 규모별 업체 비중이 독일과 비교했을 때 극심한 첨탑형 구조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중소·중견 기업들이 IMF 위기 이후 대기업에서 일어났던 전반적이고 대대적인 혁신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중소·중견 기업의 전반적인 혁신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우리로서는 최대의 과제이며 창조경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인력·자금 시장에서 어려움 겪는 중소·중견 기업들
 
2014년 4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경제계 동반성장 실천계획 발표대회’에서 30대 그룹은 올해 중소ㆍ중견 협력사에 작년보다 7.6% 늘어난 1조7161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역대 정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중소·중견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구조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지속해 왔다. 상품 시장과 생산요소 시장 모두 대기업이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중소·중견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력 및 자금 등 생산요소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확보할 수 있으며,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 최고의 우수 인재와 자금이 있는데 어떠한 사업을 하더라도 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중소·중견 기업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우수한 인력 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며, 보통 수준의 대졸 직원도 구하기 어렵다. 우수 인력이 중소·중견 기업에 취업하지 않는 이유는 비단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중소기업에 취업하느니 재수를 해서라도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러한 사회풍조와 인식 속에서 중소·중견 기업이 R&D, 마케팅 등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어렵게 확보한 인력을 5년 넘게 장기 근무하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 5년 안에 대기업 경력직으로 이직(離職)한다.
 
  자금시장 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금융 산업이 낙후돼 있어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의 사업 분야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출 시 담보, 특히 부동산 담보를 요구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사업성이 우수해도 담보가 없으면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행은 IMF 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기술금융 분야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사실상 우리나라 기술금융 제도는 유명무실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초기에 필요한 엔젤제도, 그 이후 운영·시설 자금에 필요한 벤처 자금, 투자 후 회수할 수 있는 M&A제도 등 회수시스템,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의 생태계가 매우 취약하다. 기술혁신형 중소·중견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어떤 형태로든 공급받지 못한다면 이들의 정체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인력, 자금 시장에서 중소·중견 기업들의 소외 현상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신(新)성장동력의 씨앗은 결코 싹틀 수 없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 중에 새로운 성장동력의 대상으로 중요한 분야는 금융·보건·의료·교육·사업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수퍼마켓, 식당, 숙박업소, 부동산 등 자영업 위주의 저(低)부가가치 산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저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또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 국내외 투자가 적어도 5년 이상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세계 산업의 메가트렌드를 볼 때,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꼽을 수 있는 분야는 융합(convergence), 녹색(green energy), 바이오 산업이다. 정부는 이 분야도 집중 육성해야 한다.
 
 
  韓, 2025년 이전에 선진국 진입해야
 
안현호 부회장은 2012년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향후 5년을 대비한 무역ㆍ산업정책 제안서를 전달했다.
  결전을 앞둔 3국 간 경쟁에서 가장 불리한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소국(小國)이며, 상대적으로 확고한 비교우위도 없다. 3국의 비교우위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은 14억명이라는 인구수 자체가 확실한 비교우위다. 이를 배경으로 한 소비시장과 천문학적 R&D 규모가 중국 경제를 이끌어갈 힘의 원천이다. 이미 조립완성품 제조기지로서 자리매김을 한 중국은 향후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IT 산업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다. 다른 산업 분야로도 이런 추세가 확산될 것이다.
 
  일본의 비교우위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 기업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히든챔피언 기업이 일본에는 약 1500여 개가 있다. 특히 부품·소재·장비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제조업 생산기지 역할은 상당 수준 약화되겠지만 비교우위를 축적하고 있는 고기술, 고부가가치 부품·소재·장비 위주의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비교우위는 대기업의 빠른 의사결정에 의한 선제적인 대규모 투자와 제조기술을 중심으로 한 조립완성품 분야인데 이러한 비교우위는 중국 등 경쟁국의 학습에 의해 점차 축소, 경쟁력도 정점을 지나 점차 약화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은 삼성 등 소수 대기업의 제품에 국한되어 있다. 《일본경제신문》 조사에 따르면, 주요 50개 품목 중 한국 기업은 스마트폰·TV 등 8개 품목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중 삼성그룹이 7개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이 흔들릴 경우 한국 경제 전체가 좌초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한·중·일 분업 구조가 이와 같은 구도로 진행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조립완성품은 중국이,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일본이 경쟁력을 확보해 우리나라는 양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 모른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적 제약도 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6~2017년경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후 2025년경에는 초(超)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역동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2025년 이전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문턱을 영영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다섯 가지 해결 방안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역동적인 신흥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 기존의 성장동력인 조립완성품의 경쟁력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 제품에 이길 수 있도록 기술력 향상에 매진해야 할 뿐 아니라 최고 수준에 도달한 기술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입지경쟁력을 강화해 일본과 같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중소·중견 기업 육성을 우리나라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중소·중견 기업군이 우리나라의 성장동력 주체가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몇 가지 프로그램과 생색내기 식의 예산증액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력,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더라도 변화된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의 1순위는 부품·소재·장비 분야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과거 우리의 조립완성품 분야가 일본의 부품·소재·장비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키워 발전했듯이, 중국의 조립완성품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부품·소재·장비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20~30년 동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경우 조립완성품 분야뿐 아니라 부품·소재·장비 기업들이 일본을 떠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이다.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한편 한일(韓日) 양국 기업의 기술협력, 인력 교류 등을 강화하고 일본 기업에 대한 M&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넷째,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경제성장의 보조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은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반드시 발전해야 할 분야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 개선해 내외국인의 대대적인 투자가 적어도 5~10년 동안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자영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사실 자영업의 낮은 생산성은 중소·중견 기업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 이 분야에 대해 그동안 정부 정책의 중심에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저생산성 해소뿐 아니라 ‘중산층 복원’ 또는 ‘고루 잘사는 사회건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인식과 뜨거운 열정
 
  마지막으로 내수시장이 좁은 우리나라는 14억명의 중국 소비시장과 인도(12억명), 아세안(6억명)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을 우리의 제2 내수시장으로 인식해 이를 개척하기 위한 범국가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와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중국과의 FTA 대비 차원에서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가 1000년 이상 계속된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우수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기개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듯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이를 혁파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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