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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현장

춘추전국시대 맞이한 하우스 맥주시장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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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8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1층에서 맥주 파티가 열렸다. 4월 1일 주세법(酒稅法)이 바뀐 것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참석자들에게 맥주를 나눠준 곳은 세븐브로이, 장앤크래프트비어, 바네하임 등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맥주 제조업체들. 일반적으로 이들을 일컬어 ‘하우스맥주업체’ ‘마이크로브루어리업체’ ‘수제맥주업체’라고 부른다. 이들로부터 맥주를 건네받은 참석자들은 “이런 맥주 맛은 처음” “꼭 외국 맥주 같다”며 맛을 음미했다. 기자가 직접 맛을 보니 맥주에서 과일 향이 나고, 맛이 진한 것이 흔히 접했던 ‘카스’ ‘하이트’ 등과 다른 맥주였다. 맥주잔마다 맛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것은 오히려 와인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태까지 이들 업체가 만들어온 하우스 맥주는 이들이 운영하는 식음료 업소 안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 개정된 법에 따라 앞으로는 외부에서도 이들 맥주를 살 수 있다. 소규모 맥주업체에서 만든 맥주를 유통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에 ‘하우스 맥주’가 허용된 이래 10년을 훌쩍 넘겨 이뤄진 일이다. 취재차 만난 하우스 맥주 관계자들은 “10년간의 시행착오는 끝났다. 이제 하우스 맥주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연간 4조원대의 맥주 시장에서는 지난 10년간 어떤 일이 있었을까. 맥주 시장은 어떻게 바뀌어 갈까.
 
 
  정부 허가 이후에도 하우스 맥주가 맥을 못 춘 이유
 
효모가 살아 있는 하우스 맥주. 거품이 풍성했을 때와 15분이 지난 모습(오른쪽).
  국내 전체 주류 시장은 약 8조2504억원(지난 2012년 기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으로, 이 중 맥주가 49.9%(4조1137억원)를 차지한다. 오비맥주(2조3446억원)와 하이트맥주(1조7690억원)가 맥주 시장을 양분해 왔다.
 
  소규모 업체들이 맥주를 제조할 수 있게 된 것은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지난 2002년. 서울 강남역 일대를 중심으로 하우스 맥주집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이들은 오비와 하이트가 주로 생산하는 ‘라거 스타일’(카스·하이트·맥스 등)의 맥주가 아닌 ‘에일 스타일’을 앞세워 기존의 양대 맥주 회사와 차별화했다.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아를 발효할 때 실내온도와 가까운 18~21도에서 발효시키면 ‘에일 스타일’이고, 2~10도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키면 ‘라거 스타일’이 된다. ‘에일’은 발효 과정에서 가미된 오렌지·배·딸기와 같은 과일 향과 맛 등, 진한 풍미가 특징으로 꼽히고, ‘라거’는 탄산의 시원한 느낌과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정부에서 허가가 나자마자 한때 하우스 맥주 가게는 130여 개를 웃돌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곳은 40여 곳 남짓하다. 정철 한국벤처대학원 양조학과 교수의 얘기다.
 
  “가게에서 만든 맥주를 그곳에서만 소비해야 하는 법에 묶여 외부 유통이 금지됐습니다. 하우스 맥주 가게 인지도가 낮고, 맥주 품질이 일정치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대기업은 저장고가 크지만 영세한 업체들은 저장고가 작아서, 손님이 적게 와 맥주가 팔리지 않으면 그냥 가게에 보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우스 맥주는 미생물이 살아 있는 제품이라서 맛이 변할 수밖에 없죠. 게다가 대기업과 똑같은 세금이 매겨지다 보니 맥주 한 잔 가격이 6000~7000원이었습니다. 맥주의 일정치 않은 퀄리티, 낮은 인지도, 비싼 가격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도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차보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장의 말이다.
 
  “일부 주류업자들이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납품받아 술을 팔아도 이윤이 남는데, 내가 직접 만들어서 팔면 더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하우스 맥주 시장에 뛰어든 겁니다. 대기업과 똑같은 세금이 매겨지고, 살아 있는 맥주를 관리해야 하는 등의 일들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했죠. 하지만 특이한 맥주에 대한 갈증은 높아 보입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수입 맥주 소비량은 600% 이상 늘었습니다. ‘다른 맥주 맛’을 찾는 소비자의 니즈가 폭발하고 있는 겁니다. 시행착오를 끝낸 국내 하우스 맥주업체의 노하우가 합쳐져 향후 이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징은 신선함과 다양함
 
초록색 홉은 맥주의 씁쓸한 맛을 내게 하는 성분이다.
  전북 순창군의 한 농공단지에는 자본금 50억원을 투자한 양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3월 26일에 방문한 하우스 맥주 생산업체 ‘장앤크래프트비어’에서는 한창 시험 설비가 가동 중이었다. 공장 안에는 1m 정도 길이의 은색통 7개가 한창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맥주 공정을 책임지는 차보윤 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차 회장에 따르면 맥주 공정의 시작은 보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보리는 두 줄·여섯 줄 보리 등 다양한 품종이 있는데, 대부분 맥주에 사용하는 보리는 두 줄 보리다. 싹튼 원맥 보리를 건조해 맥주의 주성분인 맥아를 만들어낸다. 장앤크래프트는 향후 16종류의 하우스 맥주를 출시할 계획인데, 사용하는 맥아 역시 다양하다. 맥아는 현재 전부 독일에서 수입한다. 차 회장의 설명이다.
 
  “보리를 볶으면 온도에 따라 다양한 맥아가 나옵니다. 노란색부터 검은색 맥아까지 전부 나오는데, 검은색 맥아가 흑맥주가 되듯이 맥아에 따라 전부 다른 맥주가 나옵니다. 맥아를 분쇄기에 갈아서 물을 부어 맥즙을 만듭니다. 전문 용어로 전분을 당분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맥아 찌꺼기는 버리고, 맥즙을 짜내서 여과시키는 데까지 8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맥즙에 쓴맛의 홉을 첨가하고, 이 맥즙이 냉각기를 통해서 탱크로 들어옵니다. 이때 효모를 첨가하는데, 효모가 맥즙의 당분을 먹으면서 알코올과 탄산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발효입니다. 이후 상면에서 2~3주, 하면에서 4~6주를 발효시키면 맥주가 됩니다.”
 
  —하우스 맥주는 일반 오비·하이트 맥주와 뭐가 다릅니까.
 
  “맥주를 만드는 기술은 세계적으로 공개가 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하우스 맥주의 특징은 신선하고 다양하다는 겁니다.”
 
  차 회장은 은색통의 밸브를 열어 ‘IPA’라는 맥주를 직접 따라줬다. 숙성한 지 3주 된, 효모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맥주라고 했다. 발효가 덜 끝난 맥주를 마셔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셔보니 일단 맛이 진했다. 맥주컵을 입에 댔을 때부터 꽃향기가 확 코를 타고 들어왔고, 일반 맥주보다 거품이 굉장히 많았다. 거품 반, 액체 반을 들이켰는데 목 넘김이 굉장히 부드럽고, 크림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 있는 은색통에는 짙은 노란색의 ‘IPA’뿐 아니라, 주황색, 검은색의 흑맥주 또한 가득했다. 조금씩 입을 대보니 맛과 알코올 농도가 다 달랐다.
 
  ‘장앤크래프트비어’의 다른 직원은 “지금 마시는 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는 제품”이라고 했다. 오비·하이트, 수입 맥주는 유통 기간이 길기 때문에 맥주 속에 있는 효모를 죽이는 필터링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하우스 맥주는 2~4주 동안 만든 맥주를 2~3일 만에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유통 기간이 길면 효모가 죽고, 그러면 풍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차 회장은 “앞으로 이곳에서 출시하는 맥주는 병에 넣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필터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하우스 맥주의 강점은 신선하고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맥주마다 맛이 다 다르고, 도수가 3~7도로 다양합니다. 대규모의 자동화 공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홉·효모 비율을 조정해서 여러 가지 종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맥주 품질을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장앤크래프트비어가 순창에 둥지를 튼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가까운 지역에 인삼, 복분자 등 지역특산물이 많아서입니다. 하우스 맥주는 소규모로 소량의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용량이 작은 설비로 인삼 맥주, 복분자 맥주 등 새로운 맥주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차보윤 회장으로부터 맥주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15분 뒤에 다시 아까 그 맥주를 마셔봤다. 맥주 위 거품의 양은 다소 줄었지만 맛은 처음 통에서 나왔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맥주를 마실 때마다 이런 ‘에일 스타일’을 찾지는 않겠지만, 이런 맥주가 없어서 대기업이 생산하는 ‘라거 스타일’만을 마신다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 맥주 실제 유통은 쉽지 않아
 
홈플러스에 입점된 세븐브로이가 생산하는 에일 스타일 맥주.
  지난 4월 1일 주세법 개정에 따라 하우스 맥주의 외부 유통이 전면 허용됐다. 그동안 생산공장이나 직영 판매점에서만 팔 수 있었던 하우스 맥주가 일반 호프집에서 생맥주로 유통될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병이나 캔에 담아서 수퍼·마트에도 납품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망을 뚫는 길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난 2012년 12월부터 ‘홈플러스’에 자사의 맥주를 납품해 온 세븐브로이 김교주 이사는 “대형업체들에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세븐브로이는 지난 2011년 10월 맥주제조 일반면허 1호를 획득한 국내 최초의 중소형 맥주 회사다. 그간 맥주제조 면허를 가진 곳은 오비와 하이트뿐이었다. 이태원·강남·홍대 등에서 생맥주를 선보여 마니아층을 형성해 온 세븐브로이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맥주제조 면허를 얻었다. 세븐브로이는 대형 맥주 회사와 이번에 외부 유통이 허락된 하우스 맥주 중간 즈음에 있는 중소형 맥주 회사다. 김 이사의 말이다.
 
  “맥주 품질에 자신 있고,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었지만 판매망을 뚫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브랜드가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유통업자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은 일상이었죠. 주류 유통은 일반 유통에 비해 까다롭습니다. 도매업소를 통해 소매점으로 나가는 형태여서 도매장에서 우리 브랜드를 선택해 주지 않으면 판로가 없습니다. 일반 호프집의 경우에도 1년씩 납품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주가 맥주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맥주 본연의 품질과 맛으로 승부하고, 끊임없이 브랜드를 알리는 기본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반인에게까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오늘날 세븐브로이는 전국 200여 곳에 생맥주를 공급하고 있고, ‘세븐브로이IPA’ 캔맥주를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백화점 등 식품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오비와 하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주류 면허를 취득한 세븐브로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영세한 하우스 맥주업체가 판로를 뚫을 수 있을까. 정철 교수는 “하우스 맥주가 마트 매대에 제품을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격 경쟁력, 영업력에서 밀리는 원천적 어려움이 있다. 마니아들에게 공급하거나 주위 식당에 납품하는 것이 1차 영업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주세법 개정이 실효를 거두는 것 이외에 외부 유통을 허용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도수 높은 술에 높은 세금, 낮은 술에 낮은 세금 적용해야”
 
  취재차 만난 하우스 맥주 제조업체들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세금’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오비나 하우스맥주업자나 공통적으로 제품 가격의 72%를 세금(여기에 교육세 30% 부과)으로 냈다. 지난 4월 1일 주세법 개정으로 하우스 맥주는 생산량 300㎘까지는 출고가격의 70%에만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우스맥주업자들은 “대형 맥주 제조업체와 중소형 업체에 세금을 차등적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가세’로 부과하는 세금을 ‘종량세’로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종가세’란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제조원가에는 맥주 생산 이외에 포장용기·영업비용·광고비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종량세’란 업체들이 생산한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맥주를 많이 생산하는 오비나 하이트 등에는 많은 세금이, 생산량이 적은 중소업체에는 적은 세금이 돌아가게 된다. 정철 교수는 “대부분의 선진국가는 주세(酒稅)를 부과할 때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종가세로 부과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OECD 국가는 알코올을 기준으로 100ℓ당 얼마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맥주가 발달한 독일은 1300여 개의 업체가 5000여 종의 맥주를 생산합니다. 독일 사람들조차 맥주 전부를 맛보지 못할 정도로 다양합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처럼 업체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세금을 매겼다면 이렇게 많은 업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독일은 규모가 작은 업체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세율을 적용할 정도입니다. 오늘날 맥주페스티벌을 열고, 맥주의 원료가 되는 보리, 맥주기기사업 등 연관 산업이 발달한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하우스 맥주는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한 병을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듭니다. 원천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 하이트와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면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소업체를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추세인 종량세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또 도수가 높은 제품과 낮은 제품에 대해 세금을 차등 부과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독일은 종량세를 기반으로 도수가 높은 고도주에는 고세율, 저도주에는 저세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고도주의 소비를 줄이고 저도주의 소비를 촉진시켜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정책입니다. 맥주에는 낮은 주세가 부과되고, 증류주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주세가 적용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도주나 저도주나 일괄적으로 72%입니다. 세수 확보를 쉽게 하려는 조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괄 세금을 매기는 것이 세금이 더 걷힐까요.
 
  “세수 확보 차원에서 종량세보다 종가세가 조금 더 유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맥주 판매로만 매년 2조3000억원의 세금이 꼬박꼬박 들어오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을 겁니다. 과거처럼 오비와 하이트로 양분화된 시장에서는 두 업체만 관리하면 조 단위의 세금이 들어오니 세원(稅源) 관리가 쉬웠겠죠. 오비 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가격이 아닙니다. 맛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죠. 최근 수입 맥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국 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 칼럼으로 맥주 맛 논란
 
  그간 끊임없이 거론됐던 ‘맥주 맛’은 지난 2012년 1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의 칼럼으로 정점을 찍었다. 대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칼럼에 “한국의 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썼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맥주업체 관계자들은 그의 이 기사가 오늘날 주세법 개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기자가 쓴 기사의 주요 내용은 “한국의 맥주는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4월 8일, 의원회관 제1 세미나실에서는 홍종학(洪鍾學) 의원 등이 주최한 ‘신맥주시대 맞이 주세법 세미나’가 열렸다. 홍 의원은 이번에 주세법 개정을 발의한 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선 다 하는 맥주 축제를 우리나라에선 할 수 없던 이유는 하우스 맥주를 지정된 판매장에서만 팔게 하는 규제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유학한 브루마스터의 ‘규제만 풀어주면 세계 최고의 맥주를 만들겠다’는 말을 듣고 주세법과 유통 채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법 개정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세미나에는 하우스 맥주 제조업체 대표 외에 오비맥주 대외정책팀장, 국세청 관계자,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세미나에서는 전혀 상반된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하우스 맥주가 활성화되면 다양한 맥주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맥주 마시는 정서는 ‘치맥(치킨과 맥주)’ 스타일이어서 오비나 하이트가 생산하는 라거 스타일이 맞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다른 관계자는 “선택은 소비자들이 하는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맥주를 갖도록 규제는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받아쳤다.
 
  하우스 맥주 시장이 커진다고 해서 당장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맥주 제조공정에 사용하는 보리와 홉, 효모는 물론 장비까지 국내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장앤크래프트비어’에서 사용하는 보리 맥아 전부는 독일 수입산이다. 맥아 1kg당 1000원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서다. 차보윤 회장은 “국산 보리를 가공해서 맥주용으로 만들면 1kg당 2000원 이상이라서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맥주의 씁쓸한 맛을 내는 홉과 효모 역시 독일과 미국 등 전체를 해외에서 조달해야 한다.
 
  양조학 전공인 정철 교수 역시 ‘원료 전체 수입’이라는 한계점이 오늘날 오비와 하이트 양대 회사가 더 커지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맥아에 부과하는 관세는 비싼 편입니다. 대신 업체들이 국산 보리를 수매하면 관세를 줄여줍니다. 국산 맥아는 퀄리티가 떨어지지만 가격은 3배 정도 비쌉니다. 할당 관세 때문에 대기업들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국산 보리를 쓴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FTA가 발효돼 관세가 철폐된 이후에도 대기업이 국산 보리를 수매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소기업은 1000원짜리 맥아를 800원에 사서 큰 이득을 볼 수 없지만, 대기업은 최대 수혜자가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세제 혜택으로 다양성을 꾀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쟁상대는 외국산 맥주
 
  지난 3월 29일에 찾은 강남역의 한 하우스 맥주 가게에서는 외국인 여럿과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치맥’이 아니라, 땅콩 접시를 앞에 두고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맥주 가게에 온다는 김성우(25·학생)씨는 평균 두 잔의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김씨는 “치킨과 함께 생맥주 500cc를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 모금씩 맛있게 마시면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우스 맥주를 즐겨 마신다”고 말했다. 맥주 가게에 2시간 이상 앉아 있었지만,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두 잔밖에 비우지 않았다. 서로 얘기를 하거나 한쪽 벽면에서 중계되는 경기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부어라 마셔라 식’의 음주 문화가 상당히 바뀌었다는 것이 현장에서 느껴졌다.
 
  하우스맥주업체 관계자들은 자신의 경쟁상대로 ‘해외 맥주’를 꼽았다. 오비와 하이트 같은 대형사가 아니라, 아사히나 기린(일본)·호가든(벨기에)·바이젠(독일) 등 해외 맥주가 주요 경쟁 제품이라는 것이다.
 
  오비와 하이트는 시원한 탄산을 기본으로 하는 ‘라거 스타일’의 맥주를 주로 출시하고, 하우스맥주업체들은 과일 향과 묽직함을 앞세운 ‘에일 스타일’을 주로 내놓는다. 오비가 에일 맥주를 못 만들어서도 아니고, 하우스맥주업체들이 라거 맥주를 못 만들어서 이런 것이 아니다. 〈주류산업정보 보고서〉(농림축산식품부 발간)에 따르면 전 세계 맥주의 95%가 라거 맥주다. 결국 오비와 하이트는 소비자들의 대세에 맞춰 ‘라거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고, 하우스맥주업체들은 대기업이 선점하지 않는 틈새 시장인 ‘에일 스타일’에 접근하는 것이다. 정철 한국벤처대학원 교수는 “라거가 좋으냐 에일이 좋으냐는 마치 배추김치가 낫느냐, 깍두기가 낫느냐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는 왜 우리는 똑같은 것을 먹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느냐에 대한 이슈”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하우스 맥주 관계자들은 “맥주 산업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세수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국세청이 전반적인 것을 담당하지만, 주류 위생관리는 식약청, 제조에 대한 허가는 기획재정부 등이 담당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관계자들은 “그나마 전통주는 농식품부가 전통주를 육성시킨다는 차원에서 관할하고 있지만 국내 맥주 시장은 육성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부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주세법 개정을 계기로 하우스 맥주 제조업자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하우스맥주업자들은 “지난 2000년대의 품질이 오락가락했던 하우스 맥주의 시대는 끝났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맥주를 손쉽게 마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기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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