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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개미들을 농락하는 주가조작꾼들의 세계

100억원대 판 벌리면 쩐주·기술자·딸깍이 20명 투입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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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명 소규모 세력에서 대형화·전문화 추세
⊙ 작전기간 동안 오피스텔에서 합숙하며 시세조종
⊙ 회사 속사정을 훤히 아는 코스닥 회사가 주요 타깃
  A: “한두 번 더 올리면 정리하려고 합니다, 형님.”
 
  B: “넣어 놓은 1억은 어떻게 안 할 거냐.”
 
  A: “며칠 전에 하나 들어간 게 있단 말입니다. 내일 들어가는 것은 의미없을 것 같아서 새로 판짜고 들어갈라고 말입니다.”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주가조작으로 상장(上場)이 폐지된 코스닥업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녹취록이다. A와 B는 조폭이다. A가 ‘한두 번 더 올리겠다’는 것은 주가가 높아지도록 조작한다는 뜻이고, ‘새로 판짜고 들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종목에 대한 조작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업이익 73억원짜리 회사가 1년 만에 상장폐지
 
  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녹취록에는 이들로 인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소액주주, 이른바 ‘개미’들이 피해를 입을 대목이 있다. 조폭 A는 모 회사의 주식을 감자(減資·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것)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식을 10분의 1로 감자한다는 것은 1000만원짜리 주식이 100만원짜리가 된다는 소리다. 어떤 회사가 조만간 감자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 회사의 주식을 사는 이는 없다. 해당 회사의 감자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조폭 B가 A에게 서운함을 드러낸다.
 
  B: “감자를 하면 어저께나 이야기를 해 주지.”
 
  A: “갑자기 정해진 겁니다, 형님. 감자하면 주식이 200원까지 빠집니다. 판이 빠지니까 200원대로 걷어서(사들여) 형님, 다시 올리면 됩니다.”
 
  B: “지금 갖고 있는 20만주는 어떻게 할 거나.”
 
  A: “내일 아침에 일찍 터는 게(파는 게) 낫습니다. 오늘 감자 나가면 우리가 막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B: “지금 계좌에 있는 것은 매매 안 허냐.”
 
  A: “다른 걸(종목)로 들어갈 겁니다. 물량 터는 것은 김○○가 털었고, 저희도 일부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미들이 받아간 것이 있습니다. 갸들은 감자를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A: “우리쪽 물량은 어차피 똑같다 이거지.”
 
  B: “감자를 하면 보름 뒤에 임총(임시주주총회)을 합니다, 형님. 임총에서 확정되고 거래정지되고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A: “아따, 다시 시작하면 어디서부터 되냐.”
 
  B: “기본 감자에 종가(終價) 정산해서 시초가로 올리면 따블까지는 갑니다.”
 
  이렇게 작전 모의를 했던 조폭 A와 B는 결국 돈 문제로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B는 A를 납치, 폭행한 이유로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들이 언급한 코스닥 회사 ‘네오퍼플’은 지난 5월, ‘에스비엠’은 지난 7월에 코스닥 상장이 폐지됐다.‘에스비엠’은 멀쩡한 회사가 1년 만에 망가진 케이스다. 이 회사는 국내 위폐 감별기 1위 업체로 지난 2012년 매출 278억원, 영업이익 73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1월 김 모씨가 새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이후 회사 사정은 어려워졌다. 김씨는 각종 명목으로 회사 돈 200억원을 빼돌렸고 그 과정에서 주가는 폭락했다. 현재 남은 것은 두 회사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수천 명의 소액주주들뿐이다.
 
 
  3~4명 소규모에서 쩐주·설계기술자 낀 조직으로 발전
 
지난 5월 2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증권범죄 합동수사단 현판식이 열렸다.
  한국증권거래소에서는 매일 120조원 이상의 돈이 거래된다. 코스피(KOSPI)시장에서 80조3455억원(한국증권거래소 2013년 8월 기준), 코스닥(KOSDAQ) 시장에서 40조555억원 정도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구는 손해를 본다. 본인이 무지(無知)해서 몇 배의 수익을 올리려는 욕심 때문에 돈을 까먹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가조작을 하는 ‘작전주’에 걸려들어 재산을 탕진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가조작은 엄중한 범죄행위다. 우리나라 증권거래법 제188조의 4는 시세조종(주가조작)을 중요한 범죄로 규정하고, 불공정행위를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증권거래법 제207조의 2)을 살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검찰 산하에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출범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국세청·예금보험공사와 서울중앙지검 검사 등 전문가 47명으로 꾸려져 100일 이상 증권 범죄자 소탕작전을 펼쳤다.
 
  문찬석(文燦晳) 합수단 단장은 “2000년대 초반에는 3~4명이 주식을 서로 사고팔면서 주가를 조작하는 단순한 형태였는데 요즘은 사채업자, 전문 조직이 합세해 대형화·조직화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원천 소스인 사채업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 설계기술자를 했던 사람, 이들을 쫓은 검찰 측에서 바라본 주가조작을 취재했다.
 
  몇해 전 5~6개 종목을 넉 달간 시세 조종했던 기술자 K씨에 따르면 주가조작의 축은 뒷돈을 대는 ‘쩐주’(사채업자 또는 큰손), 해당 회사의 ‘대주주’(또는 경영진), 조작을 설계하는 ‘기술자’, 기술자의 지시를 받는 ‘딸깍이’로 이뤄져 있다. ‘딸깍이’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로 주식 매수·매도 주문만 내는 이들로, 마우스를 움직일 때 딸깍딸깍 소리가 난다는 뜻에서 그들끼리 부르는 은어다.
 
 
  “대주주 모르는 주가조작은 없다”
 
증권범죄 합수단에서 밝힌 전형적인 주가조작 패턴.
  주가조작 시장에 사채업자들이 뒷돈을 대기 시작한 것은 부동산 경기가 하향세로 돌아서면서부터였다. 평소 사채를 자주 쓰고, 이들과 친분이 있는 C씨의 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사채가 증권으로 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그때 트렌드가 주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채는 나중에 벤처회사들이 있는 테헤란로까지 이동했습니다. 부동산은 제법 오랜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 반면, 증권은 짧으면 며칠 사이에 돈을 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채업자들 중에 관심 보이는 이가 많았습니다.”
 
  증권범죄합수단의 100일간의 성과 기록물 역시 주가조작의 출발점은 ‘사채업자’로 돼 있다. 사채업자가 회사 경영진에게 돈을 뀌어주거나, 2대 주주에게 뀌어준 경우가 많다.
 
  합수단이 내놓은 범죄유형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대주주·경영진과 주가조작 전문조직이 연계한 사례다. 범행 구조도를 보면 회사 경영진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 이후 경영진이 도곡동 브로커팀을 통해 작전세력을 소개받는다. 이후 사채업자, 회사 경영진, 브로커팀, 작전세력, 증권회사 직원 등 18명은 1년4개월(2008년 6월~2009년 9월)에 걸쳐 총 1만6147건의 시세조종 주문을 한다. 이들이 1년3개월 작전으로 벌어들인 돈은 총 95억1000만원이었다.
 
  문찬석 합수부 단장은 “대개 대주주 쪽에서 꾼(주가조작 세력)을 고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꾼들이 회사를 인수해 직접 주가조작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M&A라고 말한다”고 했다.
 
  대주주가 주가조작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는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주가조작 설계를 했던 기술자 K씨는 “대주주가 모르는 주가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대주주는 주식 소유자에 대해 민감합니다. 주주총회를 하면 지분 구성이 나오는데 뜬금없이 대량 지분을 사들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는 안 한다고 합니다. 얘들은 뭐냐? 100% 작전세력이죠. 과거에 회사 주식을 산 적이 없고, 회사 경영권에 관심 없으면 잠깐 시세조종하고 튀려는 조작꾼입니다. 재밌는 건 사실상 대주주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기술자가 설계를 해도 자기 의도대로 시세차익을 얻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령 회사 주식의 30%를 대주주가 보유하고, 특수관계인까지 합쳐서 지분이 50%라고 쳐 봅시다. 작전세력이 시장에 풀린 주식을 사고팔아 5000원짜리 주가를 1만원까지 올려놨다고 치죠. 만일 대주주가, 주가가 7000원일 때 자기가 보유한 물량을 시장에 확 풀면 순식간에 주가가 빠져 버립니다. 대주주가 물량을 쏟아내면 작전세력이라도 그걸 다 못 받아요(사들이지 못한다는 뜻). 작전세력 입장에서는 대주주를 끼고 하는 것이 마음 편하죠.”
 
  —작전세력이 대주주에게 먼저 접근합니까.
 
  “작전세력이 먼저 접근하기도 하고, 경영진이 세력한테 먼저 오퍼를 던지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작전세력이 대주주에게 먼저 실토를 합니다. ‘1만원짜리 주식을 1만5000원까지 올릴 테니까 중간에 주식을 팔지 말고 들고 있어라’라고 제안합니다. 대주주가 움직이지 않고 작전대로 되면 수익금 중 일부를 대주주에게 떼줍니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올랐다가 결국 개미들이 손해 보고 다시 원상 복귀되고, 자신은 그 과정을 묵과하는 것으로 돈을 버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죠.”
 
 
  겉모습은 회장, 속은 주가조작 쩐주?
 
  반대로 작전세력에게 먼저 오퍼를 던 진 코스닥 등록업체 대표도 있다. 문찬석 합수부 단장이 언급한 ‘꾼들이 회사를 인수해 직접 주가조작에 나서는 경우’다.
 
  사채를 자주 쓰고, 이들과 친분이 두터운 C씨는 “코스닥 기업 D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꾼들이 말아먹은 주식”이라고 말했다. C씨의 말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작전세력이 먼저 달려든 것이 아니다. 전직 대표였던 L씨가 증권가에 “나 좀 빼 달라”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C씨의 얘기다.
 
  “L대표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회사를 하다가 사업을 그만하고 싶은데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겁니다. 대주주가 지분을 파는 제스처만 취해도 회사 주식은 요동을 칩니다. 오늘 시세로 지분만큼 챙겨 나가고 싶은데 도리가 없으니 편법을 사용한 겁니다. 먼저 증권가에 사업정리 의사를 슬쩍 던진 거죠.”
 
  C씨의 얘기를 듣고 금융감독원 공시 시스템에서 이 회사를 확인했다. L대표이사는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장내에서 자신의 주식을 처분하고 있었다. 2009년에는 본인이 보유한 지분의 1%를 하루 만에 팔아치우기도 했다. 당시 이 회사의 자산은 1000억원대, 연매출 1000억원대, 순이익이 매출의 20%가량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L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체를 모 회사에 매각했고,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새로운 대표이사가 들어섰고 이 회사는 여러 차례 풍문에 시달렸다. 대주주가 다시 한 번 바뀐다, 해외 업체로부터 대형 물건을 수주했다는 등이었다. 거래소는 ‘풍문에 대한 확인’ 요청을 했고, 이 회사는 ‘불성실공시 회사’로 경고조치를 받아 주식거래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현재 이 회사의 주가는 L대표이사가 있을 때보다 3분의 1이 빠진 상태다. 다시 C씨의 얘기다.
 
  “D사가 알짜회사여서 작전세력이 덥석 물었습니다. 여의도 큰손이었던 C씨가 대표이사 주식을 그날 시가(時價)로 계산해 줬죠. 이후 C씨는 자기 자금으로 D사 주식을 싹 다 사들였습니다. 시장에 풀린 주식이 없으니까 주가가 계속 올랐고, 이 회사가 관심을 끌게 되자 개미들이 달라붙었습니다. C씨는 개미들이 달라붙자 주식을 일부 팔았고, 또 주가가 빠지면 매집(買集)을 반복했습니다. D사에는 바지사장 K씨를 앉혔습니다. K씨는 회사에 들어가서 회사 돈으로 본래 사업목적과 상관없는 사업 투자를 계속하죠. 결국은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겁니다. 전직 대표이사는 자기 몫을 챙겨 나갔고, 사채업자 C씨는 주식을 계속 사들여 개미들 돈을 먹었고, D씨는 회사 돈으로 다른 투자를 합니다. 손해를 보는 건 개미들뿐입니다. 과거 조폭이 끼었던 ‘에스비엠’과 동일한 형태죠.”
 
  그런데 쩐주 중에는 철저하게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도 있고, 그럴듯한 회사의 사장 혹은 회장이라는 명함을 가진 이도 있다.
 
  C씨는 “모 지역에 본사를 둔 L씨는 겉으로는 회장으로 돼 있지만 실은 주가조작 뒷돈을 대는 큰손이다. L회장의 회사는 실제로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인물 데이터를 검색한 결과, L씨는 지역 유지였다. 각종 지역단체의 회장, 간사를 맡고 있다. 〈네이버 지역뉴스〉 검색 결과, L씨는 올해 상반기에만 수십억 원의 주가수익을 올린 것으로 돼 있다. 이 수익은 L회장 소유의 모 건설회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절반 가량에 해당한다.
 
 
  J사 주가조작하려다 150억원 손해 본 쩐주
 
  물론 모든 대주주가 주가조작 세력과 연관돼 있거나, 돈만 받고 회사를 매각하려는 마음을 품는 것은 아니다. 증권가에서 꽤 큰손으로 꼽히는 K씨는 얼마 전 J사을 두고 조작을 하려다가 150억원 정도를 날렸다. J회사의 대표이사가 K씨의 검은 속을 사전에 알아서다. 설계기술자 K씨의 얘기인즉슨 이렇다.
 
  “J사의 대표이사가 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인 모양입니다. K씨가 이 양반한테 ‘회사에 투자하겠다’면서 250억원 정도를 투자한 겁니다. J사 대표이사는 이를 철석같이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K씨가 J사에 투자하기 전에 이미 주식을 많이 확보했던 겁니다. 차명계좌로 J사 주식을 대량 매입해 놓고 나중에 회사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은 속셈이 뻔하죠. 그 주식들로 작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J사 대표가 대량으로 BW(신주인수권부사채·일정한 기간이 지나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청구할 수 있는 사채)를 발행했습니다. 통상 회사가 BW를 대량 발행하면 주가가 떨어집니다. J사 대표의 이 같은 조치로 사채업자 K씨가 주가조작에 성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채업자의 돈 없이 자기들 자금만으로 주가조작을 전문으로 일삼는 이들도 있단다. 설계기술자 K씨는 ‘모 지역의 D패밀리’ 얘기를 전해 줬다.
 
  “증권가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가족인데, 14명 전체가 시세조종을 합니다. 그중 한 명이 금감원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들끼리 짜고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결국 아무 문제 없이 풀려났습니다. ‘정보만 공유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한 겁니다. D패밀리들은 대포폰으로 문자하고 전화하고, 서로 시세조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바닥에서는 그들이 한 해 최소 10억원은 벌어들인다고 보는데, 현재 진행형인 시세조종 전문 패밀리죠.”
 
 
  “100억원짜리 작업 하려면 20명 정도 필요”
 
명동의 사채업자들은 최근 과거의 ‘錢主’에 머물지 않고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채업자가 직접 설계를 하기도 하지만, 통상은 전문가들이 설계를 한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전직 설계기술자인 K씨는 국내 대형 증권회사 직원이었다. K씨는 “대학 선배가 펀드 자금을 많이 까먹자 한 번만 도와 달라고 해서 설계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자들 중에는 뒤에 쩐주를 낀 전직 금융맨이 많습니다. 스카이대 출신, 외국에서 석사 받은 사람들, 펀드매니저도 있고, 자기가 공부해서 금융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요. 사실 펀드매니저 수명이 얼마 안돼요. 만지는 돈은 수천억 원인데 연봉은 기껏 해 봐야 3~4억원입니다. 펀드매니저의 목적이 돈이잖습니까. 좋은 머리로 땀흘리기보다 책상에서 돈 벌려고 하는 건데요. 막상 해 보면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거든요.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남의 돈 굴려 주고 수익 내 줬는데, 내 손에 떨어지는 건 별거 없어요. 주위에서 예전에 나랑 같이 일한 사람이 작전해서 1년에 10억 벌었다 그러면 흔들립니다. 건달들이랑 비슷해요. 운동 좋아해서 계속 했는데 국가대표는 못 되고, 그러니까 깡패하는 사람들이 있는 식입니다.”
 
  —작전에 성공하면 보수는 얼마를 가져갑니까.
 
  “쩐주에게 50%를 주고, 자기가 50%를 갖습니다. 거기서 딸깍이들 돈 주고, 오피스텔 임대료 등을 다 정산해야 합니다.”
 
  —작전하려면 몇 명이나 필요한가요.
 
  “100억원 정도 하려면 투자자, 기술자, 딸깍이까지 해서 20명 정도 필요하죠.”
 
  —어떤 회사를 주로 작업합니까.
 
  “보통 코스닥을 많이 노려요. 당장 내일 망해도 탈없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런 회사는 20억원 정도만 투입하면 별탈 없이 작업 끝납니다. 코스닥은 50억만 있어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주식이 정말 많습니다. 설계기술자들이 공부 많이 합니다. 회사 실적이 어떤지 대표이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본사 근처에서 상황을 봅니다. 나가는 차보다 들어오는 차가 더 많다는 건, 회사에 재고가 많이 쌓인다는 겁니다. 그럼 다음해 실적이 안 좋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회사 자금에 유동성이 떨어지고, 결국 BW 발행하겠구나 싶죠. 그럼 주가가 밀리겠죠. 기다리다가 그 회사가 BW 발행하는 순간 주식을 사는 겁니다. 아무리 설계기술자라도 자기가 모르는 회사 주식을 살 수는 없죠. 예전에는 작전했던 회사의 재무이사가 동기여서, 내부 정보를 좀 받았습니다.”
 
  —작업 기간은요.
 
  “주식마다 다릅니다. 대주주 물량, 발행주식 숫자, 회사 실적 등을 따져봐야 하는데 통상 6개월 걸립니다. 찬스를 잘 잡으면 한 달 만에 올리기도 하고요. 주가가 파동 식으로 갑니다. 죽 올랐다가 잠깐 빠졌다가, 다시 죽 올랐다가 빠지기가 반복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미들이 따라붙습니다. 작업이 끝난 다음에 차트를 보면 결국 시작에서 끝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술자들도 급이 있습니까.
 
  “A급 기술자는 인맥이 좋은 사람입니다. 인맥이 좋으려면 당연히 학벌 좋고, 외모도 괜찮아야 합니다. 법조, 금융, 정계, 언론, 사방팔방에 아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죠. 요즘은 과거처럼 주식시세 조종만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기 힘듭니다. 사전 정보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들한테는 정권 바뀌는 시점, 정부의 대원칙이 바뀌는 때가 중요합니다. 가령 박근혜 정부가 어떤 산업을 육성한다는 고급 정보를 먼저 얻으면 관련 회사 주식을 매입하고, 증권방송, 애널리스트들을 동원해서 테마주로 한탕 하는 겁니다. 인맥이 많은 기술자가 A급이죠.”
 
  —기술자들끼리 교류가 있습니까.
 
  “최소 70~80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석 달에 한 번 만나는 그룹이 있습니다. 경기도 외곽 지역에 1박2일 야유회처럼 가는데, 그들이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100억원은 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자들의 연령대는, 성별은요.
 
  “연령대는 다양하고, 이 바닥은 여자들이 일하기가 험한 바닥이라 여자들은 없습니다.”
 
 
  조폭 출신이 설계하기도
 
  K씨의 얘기에 따르면, 이 바닥에서 L씨는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악질이란다. 지방대를 나온 그는 호남의 한 조폭 소속이었는데, 설계기술자로 변신한 경우다. 그는 한 회사를 작업할 때 주주명부부터 확보한다. L씨는 시세조종을 위해 필요한 주식 수량이 있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직접 주주들을 찾아가서 물량을 시장에 풀도록 협박을 한단다. K씨의 얘기다.
 
  “L씨가 수익은 확실하게 내 주니까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지간한 사람은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 바닥은 돈이 흐르고, 범법 행위를 하다 보니 건달들하고 연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여자가 설계기술자로 들어왔는데, L씨가 협박을 해서 나갔습니다. 건달들이 무기로 협박하고, 고양이 목 따서 집으로 보내는데 여자들이 보면 기절하죠. L씨 수하의 조폭이 모 회사 주주 자동차를 슬쩍 박아서 사고를 내고, 몇 분 뒤에 ‘주식을 던지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면 안 팔고 배깁니까. L씨는 이런 식으로 일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딸깍이’들은 작업 동안 전원 합숙
 
  설계기술자와 딸깍이. 이들은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사실상 합숙 생활을 한다. 그들의 합숙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이들이 증언해 줬다.
 
  합수부의 자료에 따르면, 회사 대주주가 회사 건물 지하실에 ‘시세조종 작업실’을 설치한 예가 있었다고 한다. 대주주는 시세조종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회사 건물에 시세조종 작업실을 만들어서 주가조작을 했다고 한다.
 
  또 검찰은 데이 트레이더인 두 명의 꾼을 주가조작 현장에서 범행 중 체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피스텔에 전문 사무실을 차려 놨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세조종 설계기술자 K씨는 과거 작업을 할 때, 책상을 중심으로 모니터 10개를 빙 둘러 놓고, 한꺼번에 7개의 종목을 살펴봤다고 한다. 그는 “한꺼번에 여러 개를 보는 것이 훈련이 되어, 밖에 나가면 내 옆을 지나간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한동안 기억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K씨는 모니터를 보다가 가령 A사의 주식이 밀리면 즉시 1번 딸깍이에게 전화를 건다. ‘3만원에 전체 물량 던지라’고 지시한다. 이후 2번 딸깍이에게 전화를 걸어 ‘2만9000원에 물량 다 잡고 올리라’고 한다. 이렇게 기술자의 지시를 받은 딸깍이들은 특정 회사 주식을 사고팔기를 계속한다. 설계기술자는 작전 동안에 나름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K씨는 “작전이지만 몰빵을 하면 당국의 레이더망에 쉽게 걸릴 수 있고, 위험성이 크다.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에 7개까지 나눠 작업한 적이 있다.
 
  재밌는 것은 딸깍이들은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K씨는 “얘들 딸깍할 땐 밖으로 못 나온다. 큰손들은 합숙시킨다”고 했다.
 
  —왜 못 나갑니까.
 
  “애들이 술이라도 마시다가 정보를 흘리면 어쩝니까. 주식에서 제일 경계하는 곳 중 하나가 강남 룸살롱이에요. 여러 얘기들이 포장되고, 부풀려져서 가장 많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혹여 실수라도 할까 싶어서 아주 긴 작업이 아니면 딸깍이들은 몇 달 동안 합숙합니다.”
 
  —딸깍이들의 전직은요.
 
  “홈트레이딩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컴퓨터로 순간 분봉, 초봉 다 보면서 개미들 던지는 타이밍에 맞춰 1원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죠. 개인적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돈 날리고, 주식 공부하고, 피시방 앉아 있고, 그러다가 좋은 손기술 이용해서 그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펀드 매니저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딸깍이 못하고요, 보통 기술자 한 명이 딸깍이 20명 정도를 포섭합니다.”
 
  —서로 존재를 압니까.
 
  “한 작전에 들어가 있을 때 한 오피스텔에서 생활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세력과 다른 종목을 작업합니다. 보통 4~5년 정도 딸깍이 생활 하면 거의 안면을 튼다고 보면 됩니다. 1년 정도 딸깍하고, 1억원 정도 챙기니까 주식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긴 작전 때는 휴식기 있어
 
한 증권사 트레이더들이 5~6대의 컴퓨터를 보면서 주문을 넣고 있다(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설계기술자들 역시 이들처럼 여러 대의 컴퓨터를 보며 주가조작을 한다.
  이들의 합숙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관계자가 증언했다. 그는 사채 시장 최고의 쩐주였던 C씨와 막역한 사이로, 직접 시세조종 현장을 가 봤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30평 규모의 오피스텔에 컴퓨터를 죽 놓고 사람들이 앉아 작업을 했습니다. 모니터 위에는 1, 2, 3, 4라는 숫자가 쓰여 있고요. 외부에서 전화가 와서 ‘1, 2번 지금 물량 다 던져’라는 지시가 들어오면 1, 2번 컴퓨터 앞에 있는 사람들의 손길이 빨라지더군요. 좀 있다가 다시 전화로 ‘3, 4번 물량 걷어’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그들이 바빠지고요. 그렇게 장이 종료되고 나니 오피스텔로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다 값이 굉장히 비싼 음식들이더군요. 오피스텔에서 합숙 생활이 길어지면 이들이 지루해하고, 또 주식매매 과정에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위로 차원에서 산해진미를 먹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전 중에는 긴 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다. 이럴 때 딸깍이는 한 달 정도 휴가가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다수 관계자의 증언이다. 물론 이때는 시세조종 주문 역시 확 줄어든다. 이들이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설계기술자는 다른 일을 한다. 기술자 K씨의 얘기다.
 
  “작전 주식을 쉬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기술자들은 홈트레이딩을 바꿉니다. 동일한 계좌로 사고팔면 금방 거래소 레이더에 걸리니까요. 계좌에서 주식을 현물로 찾습니다. 이후 그 현물 주식을 완전히 다른 계좌에 넣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작업하는 겁니다.”
 
  —여러 증권회사, 여러 계좌가 필요하겠군요.
 
  “전부 차명계좌입니다. 증권거래를 위해서는 보안카드가 있는데, 그 카드는 쩐주, 기술자만 갖고 있죠.”
 
  —차명계좌 통장 구하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던데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명동 가서 ‘깔별(은행별로라는 뜻)로 10개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예금 입출금 카드랑 같이 넘겨 줍니다.”
 
 
  “업종과 상관없는 신사업 진출, 공시 남발하면 의심”
 
  공무원 A씨는 스스로를 ‘상폐전문’이라고 했다. ‘상장폐지’되는 종목만 골라서 투자를 했다가 실패를 본 케이스란다. 그는 직업의 특성상 국세청, 금감원, 국정원, 국회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취득하는 업무를 한다. A씨는 “회사 업무에 관련된 얘기를 하지만 친해지면 개인적인 얘기를 하거나, 주식투자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곧 호재가 발표된다는 얘기를 듣고 코스닥 회사 주식을 샀다가 상장폐지된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합수단의 자료에 따르면 수십 회의 허위 보도자료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다. LED조명 사업체인 모 회사는 허위로 LED 공급계약을 발표하는 등 허위 보도자료를 12회 배포해 작전세력이 총 31억원(2011년 2~5월)을 챙겼다. 작전세력은 매출실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회사 주식을 매입했고, 이후 허위 홍보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켜 시세조종을 했다.
 
  설계기술자 K씨는 “증권투자를 할 때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목표한 수익률이 나면 빠져야 하는데 계속 붙들고 있다 결국 손해를 본다”며 “작전세력은 ‘찌라시맨’을 시켜 허위사실을 많이 유포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정보라며 얘기하는 것들의 진실 여부를 정확히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
 
  문찬석 합수단 단장 역시 “코스닥 투자자들 중에 투기성이 많다.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투자자들의 투기심리를 주가조작꾼들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합수부는 출범 후 100일 동안 주가조작에 참여한 사채업자 1명, 시세조종꾼 12명, 대표이사 8명, 대주주 1명 등 총 31명을 구속했다. 미미하다면 미미하다고 볼 수 있고, 처음 시도치고 괄목할 실적이라고 하면 그렇게 볼 수 있다.
 
  문 단장은 “증권범죄 수사의 핵심은 속도성”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증권범죄는 단선적으로 다뤄졌습니다. 거래소에서 주가조작 자료를 포착해서 금감원에 토스하면, 금감원이 조사했습니다. 금감원이 계좌는 영장 없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강제 조사권이 없다 보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데려와서 추궁하는 것이 힘든 겁니다. 거래소에서 징후를 포착해서 금융위 거쳐 검찰까지 오는 데 2~3년이 걸리다 보니, 한탕 하고 튄 꾼들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주가조작이 2~8명 정도로 소규모였는데 지금은 20명이 넘습니다. 사건을 할당받은 검사 한 명이 그 사람들 불러서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금감원, 금감위, 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등 부처별로 수행하던 기능을 합수단에 집어넣어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증권범죄의 핵심은 속도입니다. 단기간 내에,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서, 압축 수사를 해야 합니다.”
 
  —증권범죄가 중요 범죄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요.
 
  “시장경제의 핵심은 자본시장입니다. 돈이 공급되지 않으면 시장에 피가 돌지 않습니다. 증권시장은 그 핵이고, 시장경제를 형성하는 생태계입니다. 주가조작꾼들은 자본시장 생태계를 흐리는 일이죠. 주가조작을 하다가 적발되면 패가망신한다는 식의 선례가 남겨져야 합니다.”
 
  —이런 주식은 투자 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면요.
 
  “대주주가 자주 바뀌는 주식, 뜬금없이 회사의 업종과 상관없는 신사업을 한다거나, 공시를 남발하는 회사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어디에 광산·유전을 개발한다든지, 호재성 공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법당국의 이런 의지에 대해 헛웃음을 날리는 사람이 많았다. 전직 설계기술자 K씨는 “차명계좌 트고, 차명 오피스텔에서, 바지사장 앉히고 시세조종을 하기 때문에 실제 총괄책인 쩐주를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실 쩐주와 알고 지내는 C씨는 “주가조작의 두목인 사채업자는 타인 명의, 타인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실체를 밝혀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는, 범죄자는 24시간 범죄만 궁리하기 때문에, 사법부가 그들의 머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엄연히 범법행위를 궁리, 또는 실행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수천, 수만명의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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