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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한국은 왜 일본처럼 돈 풀어 경제 살리지 못할까?

글 :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sungchoi@korea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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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基軸通貨 아닌 원화는 量的완화 곤란
⊙ 量的완화정책은 外換위기,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무역보복 야기 가능성
⊙ 高환율정책은 수출에 유리하지만, 수출과 內需의 兩極化, 물가상승, 貧富격차 확대 등 부작용
⊙ “엔低 속에서 살아남아야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

崔聖煥
⊙ 57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역임.
    現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 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등.
미국, EU 일본 등과는 달리 기축통화를 발행하지 못하는 한국은 양적완화정책을 쓸 수 없다.
  지난 4월 중순 서울에서 개최된 한 국제세미나에서 일본 경제전문가를 만났다. 그에게 다짜고짜 요즘 일본 경제와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생명보험회사 임원인 그를 작년 11월 도쿄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일본 경제의 부활에 대해 서로 긴가민가하는 정도였던 데다 별달리 피부에 와 닿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5~6개월이 지난 지금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어서 그를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에다 최근에 나온 국내외 뉴스 또는 보고서 등을 필자가 나름대로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20여 년 동안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일본 경제에 아베 총리가 단비를 흠뻑 쏟아붓고 그 단비에 모든 일본 기업과 일본 사람이 뛰쳐나오면서 환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여태껏 이러지 못했을까?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럼, 우리가 왜 못해?” 하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76%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것만 봐도 이 같은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美·日보다 낮은 성장률
 
  반대로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기는 어떨까? 엔저에다 북한변수(變數)까지 겹치면서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엔저(低)의 악(惡)영향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 주가(株價)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일본 주가가 6개월여 만에 50% 이상 오르고 있다지만 코스피지수는 횡보세(橫步勢)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작년에 2.0%를 기록한 가운데 올해도 2% 중반 정도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작년 성장률 2.0%는 미국의 2.2%보다 낮은 것일 뿐 아니라 일본의 2.0%와 같은 수준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고 있는 선진국이 2% 성장을 하고 있는데 2만 달러 초반대의 우리나라가 기껏 2% 성장이라니. 어쩌다 한 해 정도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할 수 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 이후로 간다고 하더라도 2~3%대의 저성장세를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 경제가 최근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가를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한국은행이 성장률 통계를 내놓기 시작한 해는 1953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해는 모두 세 번으로 1956년(-1.3%, 농사 흉년), 1980년(-1.9%, 2차 오일쇼크), 1998년(-5.7%, 외환위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에는 그래도 0.3%로 간신히 마이너스를 피했다.
 
 
  3년 연속 2%대 低성장
 
  이전에 위기를 겪었을 때의 특징은 성장률이 한 해 마이너스 또는 0%대를 기록한 다음 해에는 성장률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5.7%를 기록했지만 다음 해인 1999년에는 성장률이 무려 10.7%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09년 0.3%에 이어 2010년에는 6.3%로 성장률이 뛰어올랐다.
 
  문제는 최근이다. 성장률이 2010년 6.3%에서 2011년에는 3.7%로 낮아지더니 2012년에는 2.0%로 더 낮아졌다. 더욱이 올해 성장률도 2%대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운 좋게 3%대로 올라선다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1953년 이후 처음으로 3년 내리 2~3%대의 저성장을 이어 가는 초유(初有)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더욱이 내년 성장률 또한 잘해야 3%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예측기관들의 전망이다. 만약 내년에도 성장률이 3%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기록을 4년으로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대의 나라가 성장률 2~3%대의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미흡한 정부대책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이 저성장의 고리를 끊겠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부가 나서서 재정지출도 늘리고 세금도 깎아 주는 동시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金利)를 인하하면서 시중(市中)에 돈도 팍팍 풀어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도 돈을 풀어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 새로 들어선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서면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17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재정지출을 늘리겠다고 한 데 이어 4·1 부동산종합대책과 5·1 투자활성화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5·1 투자활성화대책에서는 기업규제 개선 등을 통해 기업투자 12조원 이상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어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고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기 전에 투자를 활성화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맞는 방향이기는 하지만 17조원의 추경 투입과 이 정도의 투자지원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아베 총리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왕이면 화끈하게 전(全)방위적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추경 17조원 중 12조원은 세수(稅收)부족 충당재원으로 사용한다고 하니까 실제 늘어나는 재정지출은 5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경우 균형재정이라는 족쇄에 걸려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다가 결국 돈만 쓰고 경제는 살리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아베 총리 이전의 일본 역대 정부가 받아 왔던 비판을 똑같이 받고 있는 것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한국은행은 어떤가?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도 풀라고 하지만 과연 미국이나 일본처럼 제로금리 수준으로 가고 그에 더해 돈을 푸는 양적(量的)완화정책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가? 그 같은 정책을 통해 일본의 엔저(低)처럼 원화 가치의 하락, 즉 원저를 노릴 수는 없는 것인가?
 
  먼저 첫 번째 처방으로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은 작년 7월과 10월의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후 지난 4월까지 6개월 연속 동결(凍結)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 경기부양으로 경제정책방향을 선회했지만 한국은행은 여전히 경기보다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듯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5월 들어 유럽중앙은행(ECB)과 호주중앙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잇달아 금리를 인하하자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반면 미국은 3차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도 돈을 풀어서라도 재정위기를 헤쳐 나겠다고 하고 있고 일본은 앞서 언급한 대로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다.
 
  수출의존도 등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호주의 경우 2011년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7차례나 금리를 내리는 등 경기부양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멕시코와 폴란드, 헝가리, 인도, 베트남 등 신흥시장국들도 공격적으로 금리인하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우선시하는 듯하면서 금리인하에 미온적 태도를 견지해 온 것이다. 중앙은행이라고 해서 지금이 과연 물가안정을 운운할 때일까?
 
  무엇보다 1%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유(原油) 등 국제원자재 시장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서 가까운 장래에 물가압력이 높아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원화의 가치 하락, 즉 원화의 대미(對美)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계속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까지 金利 낮춰야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국은행은 금리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과연 그럴까? 너도나도 금리를 인하하고 그에 더해 돈을 풀고 있는데 한국은행만 과거의 사례 또는 과거의 통계분석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는 이미 전통적 또는 경제원론 교과서적 처방을 버리고 있는데 아직도 교과서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1년6개월 전인 2011년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껏 세 번의 금리인하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7개월 만에 한번 내려놓고 또 만지작거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금리를 연이어 몇 차례 더 인하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제때에 금리를 올려놓지 못해서, 즉 지금의 금리가 낮아서 더 이상 내리기는 어렵다고 항변한다. 또 더 큰 위기가 올 수도 있으므로 그때를 대비해서 금리인하 카드를 아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필자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겨울, 어떤 집에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벌어졌다. 땔감이 부족한데 추위가 닥쳐 왔기 때문이었다. 한쪽에서는 일단 있는 땔감이라도 쓰고 보자고 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더 큰 추위가 올 수 있으므로 이번에는 참고 넘어가자고 했다. 이런 가운데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다 얼어 죽고 말았다. 땔감을 아끼기로 한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 바람에 손을 채 써 보지도 못하고 다 얼어 죽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봐 가면서 현재의 2.5%인 기준금리를 2~3차례 내려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수준인 2% 안팎까지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경우 기준금리가 아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데도, 즉 땔감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아끼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금리를 내려서 경기를 살린 다음 필요할 경우 다시 금리를 올리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차례 주장하는 것이지만, 금리는 만지작거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내리고 올리라고 있는 것이다. 말은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내려야 한다면서 뒷북만 치고 있는 한국은행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量的완화란?
 
  두 번째 방안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와는 별도로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돈을 무한정 푼다고 해서 경기가 좋아지거나 원화 가치가 하락하지는 않겠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시중의 돈의 양(통화량)을 줄이고 늘리는 방식, 즉 전통적 정책을 벗어난 비(非)전통적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목표로 하는 시장금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면서 그에 따라 사고파는 국채(國債)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시중의 돈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반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를 내다 팖으로써 시중의 돈을 흡수하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도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금리 조절과 그에 따른 통화량 조절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때, 예를 들면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이어서 더 이상 전통적 정책 과정이 작동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비상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양적완화는 미국이나 일본이 하고 있는 것처럼 특정규모의 돈을 시중에 풀겠다고 발표하고 그에 따라 발권(發券)을 통해 돈을 푸는 것이다.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인쇄기로 무한정(?) 돈을 찍어 내서 시중에 뿌리는 것이다. 물론 이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채권 또는 회사채를 사들이거나 담보로 할 수도 있지만 그 효과 면에서는 발권과 다를 게 없다.
 

 
  量的완화와 基軸通貨
 
  똑같이 자국의 통화를 발권을 통해 찍어서 푸는 것인데 왜 미국과 유럽, 일본은 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된다는 것인가?
 
  먼저 미국의 달러를 보자. 달러는 세계 제1의 기축통화(基軸通貨)로 단일품목으로는 미국 제1의 수출품이다. 달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이 되면서 무역은 물론 원유와 같은 원자재가격 산정시 기준이 되며, 글로벌 기업들의 국제회계 시 기준이 되는 돈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주고받으면서 세계인들이 서로 갖고 싶어하는 돈이라는 말이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의 FRB는 미국의 중앙은행을 넘어 세계의 중앙은행으로서 발권에 따른 이익, 즉 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발행하는 유로 역시 미국 달러만은 못하지만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eurozone)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맞먹을 뿐 아니라 유로존 외에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등 범(汎)유럽권의 작은 나라들과 일부 산유국(産油國) 및 남미(南美)국가들이 외환결제(外換決濟) 시 유로를 선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지면서 유로 가치의 약세(弱勢)가 예상되자 유로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권에서는 기축통화의 지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엔화, 全세계 외환보유고의 4% 차지
 
  유럽 재정위기 또는 이란핵 사태와 같은 부정적 뉴스가 뜨면 일본 엔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엔화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을 기억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 안 좋은 뉴스가 뜨면 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는데 이때 단골 메뉴로 올라오는 것이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등이다.
 
  사실 일본의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2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부채의 90% 이상을 일본의 은행과 보험회사 등 일본 국내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어서 정부부채비율이 높아도 추가적 재정적자(赤字), 즉 일본국채의 발행 및 소화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일본은 미국, 유로존,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유로존을 국가별로 보면 3위)의 경제규모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2012년 말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액 10조9000억 달러 중 엔화의 비중이 4%에 달하고 있다. 달러(62%)와 유로(24%)에 비하면 크게 낮지만 가치 변동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보유외환의 다변화를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엔화를 꾸준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면에서 보면 엔화도 달러와 유로처럼 일정 부분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원화는 어떤가? 대한민국의 법정(法定)통화인 원화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면 다른 나라 통화와 교환이 되지 않는 돈, 심하게 이야기하면 종이쪽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발권을 통해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만 크게 부각될 것이다. 예를 들면 통화량의 급증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물론이고 원화 가치의 급락에 따른 후유증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한국은행의 양적완화로 원화 가치가 급락할 것이 예상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꺼번에 탈출을 시도할 경우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급등할 것을 예상한 외국인투자자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오석(玄旿錫) 경제부총리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양적완화정책을 펼 경우 외환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는 외환당국, 즉 정부와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 환율을 떠받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으면서 수출입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외환시장에의 직접적인 개입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 등 주요 무역대상국들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대대적인 보호무역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巨視건전성 3종 세트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달러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 즉 거시(巨視)건전성 3종 세트 등을 통해 단기(短期)자금 성격의 달러 유입을 최대한 억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선물환(先物換)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課稅),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를 말한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는 은행이 수출업체로부터 달러 선물환을 매입할 수 있는 한도를 줄이는 것이다. 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는 2011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채권 투자에서 발생한 이자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14%의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 또 은행의 외화차입금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보험·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학계에서 주장하는 토빈세 부과도 고려해 볼 일이다. 그간에는 브라질만 토빈세를 부과해 왔지만 지난 1월 22일 독일과 프랑스 등 유로존 11개국이 토빈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토빈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제임스 토빈(Tobin)이 1972년에 내놓은 개념이다. 환율안정을 위해 국경을 넘는 자본이동에 대해 모든 국가가 과세하자는 주장으로 세금을 매겨 외환거래의 비용을 높이면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토빈세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원低의 明暗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점 하나. 원저, 즉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긍정적인 효과만 있을까?
 
  물론 원화 환율이 올라가게 되면 우리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에 상당폭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고(高)환율, 즉 원저 현상이 수출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지만 내수(內需)를 살리지 못하면서 재임기간 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2.9%로 내려앉고 말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평균 7% 성장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1980년대 이후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낮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간신히 전 세계 평균 성장률 2.9%와 같은 수준에 그치고 만 것이었다.
 
  과도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침체 등으로 내수가 부진하기도 했지만 고환율로 인한 물가상승 부분도 가계(家計)의 소비여력을 크게 줄였다고 볼 수 있다. 환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원유 등 수입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2008년 원유가격이 배럴당 140달러대까지 급등하면서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대비 4.7%까지 치솟았었다. 유가급등에다 원저까지 겹치면서 이른바 ‘수입가격발 인플레이션’을 혹독하게 겪은 것이다. 다음 해부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로 다시 내려오기는 했지만 한번 오른 물가가 계속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고환율 현상이 우리 경제의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반면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兩極化), 물가상승, 빈부격차의 확대를 가져오면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원저를 유도하기보다는 급격한 원고를 억제함으로써 수출기업들이 적응할 시간을 벌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엔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신속하게 시행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물론 필요하다면 토빈세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엔저로 타격이 큰 중소기업과 수출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과도한 엔저를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의 신흥시장국들과 국제적 공조체제를 구축, 일본에 대한 비판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근본적으로 품질 및 브랜드 제고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환율의 영향을 덜 받거나 일본과 경합하지 않는 품목 개발 등에도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일본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기고와 리처드 돕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 소장의 충고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을 찾아보자.
 
  아소 부총리는 최근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아베노믹스의 모멘텀을 성장으로 직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감한 통화정책과 융통성 있는 재정정책을 통해 일본 경제와 금융시장이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경제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성장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엔저가 아니라 기업들의 근본적 경쟁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엔저가 진통제 또는 마약과 같은 임시방편적 처방이므로 그 효과가 끝나기 전에 경제의 엔진인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시켜야 보다 근본적으로 일본이 장기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도 같은 지적과 자가진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엔高의 이익 누린 행운아”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파트너를 겸임하고 있는 리처드 돕스 MGI 소장은 맥킨지가 4월 중순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성장동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내놓은 《제2의 한국 보고서: 신성장 공식》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돕스 소장은 《한국경제신문》(4월25일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다”면서 “한국은 그동안 엔고의 이익을 누린 행운아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엔저 속에서 살아남아야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면서 이 시점에서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고임금 구조와 엔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 혁신’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경쟁력 확보보다는 환율에 기대려는 마음이 더 큰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돕스 소장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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