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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글로벌 通商 전쟁의 내막

美, TPP와 TTIP 앞세워 通商질서 재편 추진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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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사실상의 美·日 FTA
⊙ ‌美·EU와 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日·EU EPA(경제동반자협정)도 추진 중
⊙ 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韓·中·日 FTA로 맞불

李長勳
⊙ 56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TPP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美·日은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일러스트 :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제임스 베이커 3세 미국 재무부장관, 나이절 로슨 영국 재무부장관,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서독(현 독일) 재무부장관, 피에르 베레고부아 프랑스 재정경제부장관,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대장상(大藏相)이 모였다.
 
  이들은 환율(換率)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했다. 미국은 일본 엔화의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돼 무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며 엔화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黑字) 등에 힘입어 미국의 기업과 부동산을 마구 사들이는 등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인 미국을 위협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赤字)는 1984년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은 100년 만에 채무국이 됐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에서 37.2%를 차지했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영국·프랑스가 적극 지지했고 일본과 독일은 마지못해 통화 가치 절상(切上)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미국 달러화를 제외한 주요 통화를 절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담은 이른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잘나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일본이 미국의 통화 절상 요구에 굴복한 것은 미국이 각종 무역장벽을 높이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엔화 값은 236엔에서 1987년 12월 128엔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일본은 수출경쟁력을 서서히 상실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만 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려던 일본의 꿈도 깨지고 말았다.
 
 
  換率전쟁
 
  일본이 환율전쟁의 패자(敗者)라면 승자(勝者)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1994년 1월 하루아침에 위안화 가치를 30% 이상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평가절하(切下)를 단행했다. 이후 최근까지 20년 가까이 저(低)평가된 위안화를 무기로 수출 주도형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浮上)했다. 또 위안화 저평가에 힘입어 그동안 2조 달러가 넘는 대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외환보유고는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위안화의 대폭적인 평가절하는 고도성장과 경제대국이 되는 일등공신이었고, 이제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야심 찬 ‘중국몽(中國夢)’까지 꾸고 있다.
 
  미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의 지위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도전자인 중국과 ‘거대한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전략 중 하나는 바로 환율 전쟁(Currency War)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폭락과 제조업 붕괴, 실업률 급등 등 최악의 경제 상황에 빠진 미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제한 달러화를 찍어내는 양적(量的) 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는 2008년 말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2조3000억 달러를 찍어냈고, 이도 모자라 지난해 9월부터 매달 850억 달러를 푸는 등 양적 완화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양적 완화 조치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 총리는 물가상승률이 2% 오를 때까지 돈을 찍어내겠다며 무차별적인 엔저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베 총리는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인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일종의 ‘리플레이션(reflation·통화 재팽창)’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리플레이션은 경기불황 때 경기회복을 위해 심각한 물가상승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통화량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아베 총리의 디플레이션 타개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아베 총리의 양적 완화 정책에 손을 들어준 이유는 자국이 추진하는 또 다른 전략에 일본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TPP와 TTIP 추진 선언
 
TPP 참가국의 GDP 규모. TPP는 사실상의 美·日 FTA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중국 견제 전략은 글로벌 통상전쟁(Trade War)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2일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집권 2기 임기 첫 국정연설을 통해 앞으로 4년간의 최우선 국정목표로 미국 경제의 성장엔진 재점화를 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중산층을 일으켜 세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의 일종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Agreement)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수출 증대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TPP 협상을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올해 중 유럽연합(EU)과 TTIP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전략은 플라자 합의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세력들을 일종의 경제동맹으로 묶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레야 솔리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경제동맹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TPP와 TTIP를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경제는 지정학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분석했다(4월1일자).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항하는 서방권의 대동단결이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미국의 FTA 전략이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TPP와 TTIP 협상 내용에는 정부의 기업 보조금 금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핵심 이슈들이 망라돼 있다. 미국이 TPP와 TTIP를 타결한다면 중국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국제규범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도 한사코 개방을 거부하고 있는 정부 조달 시장 개방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이 자유교역 정신을 훼손하는 무례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의 상대방 교역 비밀 빼오기에도 재갈을 물릴 수 있다.
 
 
  TPP는 가장 급진적인 경제통합협정
 
  TPP는 환태평양 지역의 11개국이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다자간(多者間) 자유무역협정을 말한다. TPP는 미국이 처음부터 구상한 경제통합체가 아니었다. TPP는 애초 2005년 6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 4개국이 체결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었다. 이 협정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미국이 2008년 2월 이 협정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호주, 베트남, 페루가 참여 의사를 밝혔고 말레이시아가 2010년 10월, 캐나다와 멕시코가 2012년 6월 각각 참여를 선언했다.
 
  TPP는 2015년까지 상품의 관세 철폐뿐 아니라 지적재산·노동규제·금융·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원칙적으로 관세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인 FTA는 서명국들의 협상에 따라 농산물 등에 일부 예외 조항을 인정하고 있지만, TPP는 100% 자유화 협정이기 때문에 가장 급진적인 경제통합 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TPP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보여 왔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세적인 FTA 정책을 추진해 왔다. 중국은 이미 타이완, 마카오, 홍콩 등과 사실상 FTA를 체결해 중화(中華)경제권을 구축했고, 아세안과도 FTA를 체결한 바 있다. 중국은 나아가 아세안과 우리나라, 일본 등을 묶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창설하겠다는 야심을 보여 왔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경우 자칫하면 경제는 물론 정치, 외교, 군사 등까지 영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행보다. 미국은 이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현재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TPP를 적극 추진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통합에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미국을 연결해 주는 고리”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美, 日 끌어들이려 양보 제스처
 
  TPP가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대로 중국을 견제하는 적절한 수단이 되려면 일본이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왔지만, 일본은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그 이유는 농업 분야를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인 2011년 당시 노다 요시히토 총리가 TPP 교섭 참여를 위한 협의를 미국과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농촌 출신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미·일(美日) 양국은 협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이 바뀐 이후 아베 총리는 3월 15일 고심 끝에 TPP 교섭 참여를 선언했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수출을 늘리고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TPP에 참여할 경우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권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데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또 TPP에 참여할 경우 수출 증가 등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66% 증가될 것으로 전망한다.
 
  두 번째 이유는 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아베 총리는 “TPP 교섭 참가는 일본의 안전보장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에 매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안보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해 왔다.
 
  미국도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히 양보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일본의 양적 완화 조치를 지지하는가 하면 일본의 농산물에 대한 예외 조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2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모든 물품이 다 관세 철폐의 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미·일 동맹 관계에서의 신뢰와 유대(the trust and the bond)가 회복됐다고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미국이 TPP가 모든 분야에서 관세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도 농업 분야에서 일부 양보한 것은 일본이 참여할 경우 TPP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版 ‘경제적 애치슨 라인’
 
  TPP가 출범할 경우, 초대형 자유무역권이 구축될 수 있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3위인 일본, 나머지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27조 달러(우리나라 돈으로 2경3000조원)로 전 세계의 40%에 달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GDP 비중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미·일 FTA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TPP 참여국들은 지난 3월 13일 싱가포르에서 16번째 협상을 벌였으며, 원칙적으로 올 연말까지 협상을 타결할 계획이다. 일본의 협상 참여는 90일 이내에 TPP를 주도하는 미국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친 뒤 나머지 10개국의 합의를 통해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의 협상 참가는 이르면 7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을 겨냥해 봉쇄망을 펼치듯 오바마 대통령도 TPP 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루먼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소련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 바 있다. 이 선이 그 유명한 ‘애치슨 라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21세기판 ‘경제적 애치슨 라인’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TTIP는 경제적 NATO”
 
  TPP처럼 글로벌 통상 체제의 중심축(軸)은 거대 블록화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EU·중국 등이 자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을 연결해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157개 회원국을 거느린 WTO 중심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도하 라운드(DDA)가 2001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13년이 지나도 타결을 보지 못한 채 빈사(瀕死)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자주의(多者主義) 모델의 성사 가능성에 회의를 품은 각 나라들은 쌍무 또는 인접 국가끼리 소규모로 FTA를 진행해 왔지만, 최근엔 보다 많은 나라와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FTA를 확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다발적 FTA 체결에서 비롯되는 스파게티볼 현상(Spaghetti Bowl·삶은 국수가 그릇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것) 때문이다. 즉 원산지(原産地)나 통관(通關) 혹은 표준 등에 있어서 FTA별로 상이한 규정과 절차 때문에 교역 비용이 되레 증가하는 현상을 광역 FTA를 활용하여 해소해 보자는 것이다.
 
  둘째, FTA 회원국을 늘리면 생산 네트워크를 보다 효과적으로 구축하여 산업 고도화를 추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내(域內) 소비시장을 확대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국제사회의 헤게모니를 거머쥐고, 외교·안보적으로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선 거대 지역 통합체를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맥락에서 유럽연합(EU)과의 TTIP도 추진 중이다. 미국과 EU는 지난 2월 13일 공동 성명을 통해 TTIP 협상을 오는 6월부터 시작해 내년 말까지 타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양측은 대서양 간 자유무역 협상을 통해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규율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면서 “양측이 협상을 타결할 경우 무역과 투자, 규제는 물론 세계 무역 규범에 대한 새 기준을 만드는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틴 실버버그 전 EU 주재 미국대사는 “TTIP는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EU의 경제적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토는 1949년 미국과 서유럽이 소련에 대항해 맺은 군사협력기구이다. 나토는 냉전(冷戰)시대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TTIP가 ‘경제적 나토’가 된다는 말은 바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EU가 TTIP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EU의 경우 재정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교역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EU는 현재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국산 제품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美-EU 간 TTIP는 세계 최대의 단일 자유무역지대
 
  TTIP가 타결될 경우 세계 최대의 단일 자유무역지대가 탄생된다. 미국과 EU의 교역 규모는 연(年) 6130억 달러로 세계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의 GDP는 14조2646억 달러이고, EU의 GDP는 16조4144억 달러이다. 양측의 GDP를 합치면 무려 30조6790억 달러로, 세계 전체 GDP의 53%를 차지하게 된다.
 
  바호주 위원장은 TTIP가 체결될 경우 2027년까지 EU 경제는 매년 0.5%, 미국 경제는 매년 0.4%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환산하면 EU에서 연간 860억 유로(125조330억원), 미국에서 650억 유로(94조5000억원)가 새로 창출된다.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양측의 교역이 국제무역의 새로운 게임 룰이 될 수 있다. 두 시장이 관세 없는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될 경우, 국제 통상질서는 큰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기존 글로벌 스탠더드가 중국 등 신흥개도국들의 도전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양측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해 기득권(旣得權)을 유지할 수도 있다. 미국과 EU는 위생·검역과 기술 장벽, 비(非)관세 장벽이 심한 화장품·화학·자동차·의료장비·제약 산업 관련 규제의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 신흥국들을 견제하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또 지식재산권, 환경, 노동, 경쟁정책, 국영기업 등에 대한 공통의 무역 규범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다자간 혹은 지역 무역협상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점(先占)하겠다는 야심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과 EU는 국제사회에서 공룡으로 성장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日·EU 간 EPA도 추진
 
  양측의 TTIP 협상에서 가장 난제는 농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FTA 협상을 벌였지만 농업 부문에 의견이 부딪혀 협상에 실패했다. 특히 EU의 제2위 경제국인 프랑스가 자국의 농업 경쟁력이 하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U는 미국의 최대 수출품 가운데 하나인 유전자변형작물(GMO) 수입에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또 지식재산권, 환경규제, 문화 다양성, 소비자 주권, 산업 보조금 등도 어려운 협상 과제가 될 것이다. 자국 문화보호에 주력해 온 프랑스의 경우 ‘문화 예외조항’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는 TV 방송시간의 자국산 40%를 포함해 총 60%를 유럽 콘텐츠로 채우도록 의무 규정하고 있다. 라디오 방송시간도 40%는 프랑스 음악을 편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TTIP 협상을 반드시 타결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제 통상 질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본과 EU가 추진하는 경제동반자협정(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다. EPA는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인하 외에 투자와 서비스·지적재산·인적재산의 이동까지 포괄하는 협정을 말한다.
 
  아베 일본 총리와 헤르만 반 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월 25일 EPA 협상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양측이 EPA를 체결하면 GDP 규모로 볼 때 전 세계의 32%를 차지한다.
 
  양측이 EPA 협상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와 농업이다. 일본은 값싼 유럽산 농산물이 들어올 경우 자국 농업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EU는 일본의 자동차가 경계 대상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몇몇 유럽 국가들은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가 자국 자동차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수입이 급증할 경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는 조건을 내걸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현재로선 양측의 EPA가 체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아무튼 세계 경제의 기존 질서를 대표하는 3대 축인 미국, EU, 일본이 모두 FTA를 연결고리로 해서 새로운 동맹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中의 대응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각각 세계 각국과 맺고 있는 FTA 현황.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와 TTIP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TPP 협상에서 미국이 자국(自國)을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있다는 것에 불쾌감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은 TPP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자국 경제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중국과 경쟁관계인 개발도상국 참가국들이 TPP 참여로 특혜를 입을 경우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수출이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아세안 국가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역내에서 중국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TPP 협상에선 국유 기업의 불공정한 지위나 행위에 대한 규제와 정부 구매, 지식재산권, 노동권 및 환경보호 등 정부 주도 경제인 중국이 아직 감당하기 힘든 내용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참여하기도 어렵다. 또 TPP 협상 참가국들 중 한 국가만 반대해도 중국은 참여할 수 없다.
 
  중국은 현재 동아시아 16개국들을 하나로 묶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추진하고 있다. 16개국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이들 16개국은 2015년 말까지 역내 관세 장벽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RCEP가 체결될 경우 무역규모 10조1310억 달러, GDP 19조7640억 달러의 초대형 경제블록이 출범된다. 중국은 RCEP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의 맹주(盟主)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또 한국 및 일본과의 FTA도 추진하고 있다. 한·중·일 FTA가 성사된다면 동북아 지역공동체 논의 과정에서 미국을 배제시킬 수 있다. 한·중·일 FTA가 타결되면 인구 15억2200만명, GDP 14조3000억 달러의 시장이 탄생한다.
 
  스인훙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맞서고 경제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일본과의 FTA와 RCEP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국제무역연구실 쑹홍 주임은 “3국 FTA는 투자, 무역,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능을 분담하는 것”이라며 “경제적 이익의 융합은 정치와 외교 등에서도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국제화폐연구센터 쑨화위 주임도 “한·중·일이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미국 TPP에 대항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와 함께 타이완과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매듭지을 계획이다.
 
 
  美, 한국의 TPP 참여 희망
 
지난 3월 26일 한중일FTA중단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한·중·일 FTA 1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국제 통상 질서를 놓고 벌이는 샅바 싸움은 이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시장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등 지정학적 갈등, 대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로서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한·중·일 FTA뿐만 아니라 한·중 FTA를 추진 중이고, RCEP 협상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 EU와 FTA를 각각 맺은 상태이다.
 
  미국은 벌써부터 우리나라에 TPP 참여를 요청해 왔다.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과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한국이 TPP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로선 한·미 군사동맹이나 그동안의 우방으로서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어떻게 보면 당연히 TPP에 참여해야 한다.
 
  반면 중국은 현재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데다 북한 핵 문제나 남북한 통일을 고려할 때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이 RCEP와 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서 ‘박쥐’처럼 양다리를 걸친 셈이다. 아세안 회원국들 대부분 경제협력 측면에서 중국과 ‘친구’지만,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때문에 중국과 ‘적’이다. 그런데도 베트남과 필리핀은 RCEP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호주,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이며, 인도,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핵심 파트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
 
 
  日, 韓·中·日 FTA보다 TPP에 관심
 
  현재 우리나라는 TPP 참여 여부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TPP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만큼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로선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우리나라로서는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 EU와 모두 FTA를 체결한 우리나라로선 TPP에 합류할 경우 양자 FTA 체결에 따른 시장선점 효과가 크게 줄어든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 TPP에 참여할 경우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FTA를 간접적으로 타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FTA를 맺지 않은 TPP 참가국들과도 FTA를 맺게 되는 셈이다. 그만큼 시장 확대의 실익이 있다. 또 TPP 협상에서 구축될 글로벌 교역규범과 질서에 우리나라의 입장을 적극 반영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과의 안보 동맹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데다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은 현재 한·중·일 FTA와 RCEP보다는 TPP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로선 어떤 선택을 할지 전략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최대한 이익을 보기 위해선 ‘양다리(double deal)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로선 양다리를 걸쳐도 전혀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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