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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기업인 단골 구속 메뉴 배임죄 논란

기업인 옥죄는 법인가, 소액주주 보호 장치인가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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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애매모호한 의미의 죄
⊙ “기업가 정신 위축” vs. “총수 일가만을 위하는 명백한 범죄”
⊙ 상법에 삽입하려는 조항을 두고 의견 분분
서초동 대검찰청 깃발이 대법원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재계에서 배임죄(背任罪) 논란이 뜨겁다.
 
  법원이 근래 들어 그룹 총수들에게 배임죄를 적용해 구속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연(金昇淵)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배임죄로 구속됐고, 최태원(崔泰元) SK그룹 회장은 지난 1월 횡령으로 법정 구속됐다. 배임과 횡령의 처벌 근거는 같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재물’을 횡령하는 경우이고,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한 경우이다.
 
  최근 15년간 국내 재벌 총수 중 상당수가 배임·횡령으로 처벌받았다. 이건희(李健熙)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999년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인수 사건’에서 배임·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2009년에는 배임·조세포탈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은 지난 2008년 비자금 조성 및 횡령으로, 조양호(趙亮鎬)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000년 횡령·배임으로, 박용성(朴容晟) 두산그룹 전 회장과 박용만(朴容晩) 두산 회장은 2006년 횡령으로, 김준기(金俊起) 동부그룹 회장은 특가법 배임 혐의로 지난 2009년 각각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담철곤(譚哲坤) 오리온그룹 회장은 특가법상 횡령·배임으로 지난 2011년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1400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를 받은 이호진(李豪鎭) 전 태광그룹 회장은 2심에서도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벌 총수들이 횡령·배임으로 재판을 받을 때마다 법조계에서는 ‘배임죄’를 두고 말이 많았다. 배임죄의 규정부터 적용 범위가 광범위한데다, 일부 총수는 감옥에서 ‘실형’을 사는 대신에 ‘집행유예(일정기간 형 집행을 유예하는 제도)’로 풀려나는 등 처벌 수위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되면서 물의를 끼친 경영인에게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이자, 다시 ‘배임죄 논란’이 법조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 ‘죄는 인정하나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서’라는 식(式)의 솜방망이 처벌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최근 배임죄를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한편은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모호한데다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으니 면책 조항을 두자”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경영자들의 숨통을 조금 터주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편은 “현재의 배임죄 적용은 큰 무리가 없으며, 면책 조항을 두면 소액주주들이 보호받을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느 주장이 타당할까.
 
 
  임무를 배반한 행위?
 
지난해 10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세미나 장면.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배임죄는 현재 법률상 네 군데에 근거가 나타나 있다. 형법 제355조(형법상 횡령·배임),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배임), 상법 제622조(발기인, 이사 기타 임원 등의 특별배임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이하 특가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등이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배임 행위라고 규정한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경우 등이다. 형법 제356조에는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해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상법 제622조는 회사의 발기인·이사·임원 등을 대상으로 배임죄를 적용한다. 특가법은 배임·횡령 금액이 높으면 가중처벌을 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7월에 특가법 개정안을 내놨다.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가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관련 첫 법안이다.
 
  개정안은 현행의 횡령·배임에 따른 재산 이득액 구간을 세분화하고, 형량을 두 배 이상 올렸다. 횡령·배임 규모가 5억원을 넘으면 최소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법안이 원안대로 개정된다면, 법원이 재벌 총수에 대해 정상을 참작해 주더라도 반드시 실형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관행이 뿌리박힌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학계 일각에서는 배임죄 때문에 기업인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며, ‘상법상 특별배임죄’에 면책 조항을 두자고 주장한다.
 
  최준선(崔埈璿)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장이다.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처벌은 과도한 형사적 개입입니다. 기업인의 창의성을 파괴시켜 국가 경제에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배임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상법에 ‘경영 판단 원칙’을 도입해야 합니다. 만약에 경영인이 선의(善意)로 경영상 판단을 했다면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아야 합니다.”
 
  미국 변호사인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위원의 주장은 정반대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 법리인 ‘경영 판단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기업인이 경영상 판단으로 어떤 결론을 내렸다면 무조건 배임죄를 면제해 주자는 식인데, 미국에서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배임죄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 원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영진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배임죄에 예외 조항을 둔다면, 이들로 인해 피해 입은 소액주주들이 법에 호소할 길 자체가 없어질 겁니다.”
 
  배임죄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법학자들과 배임죄 판결을 내린 판사, 배임 혐의로 수사받은 기업인까지 다양한 이들에게 이 죄목에 대해 물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배임죄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배임죄의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일반론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배임죄는 네 군데에서 언급되지만 현실적으로는 형사 소송에서 다뤄진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배임에서 말하는 임무 위반이라는 것은 광범위한 개념이다. 어떤 업무를 과도하게 해도 배임이고, 적게 해도 배임이다. 범죄 구성 요건이 너무 애매하다”고 말했다.
 
  이주원(李柱元) 고려대 법과대 교수의 얘기다.
 
  “배임에 대한 규정 자체가 애매모호합니다. 형법 제355조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것 역시 모호하죠. 자본주의 사회는 엄밀히 말하면 전부 돈과 연결됩니다. 배임죄 성립에 대한 법문은 추상적입니다. 다른 법은 비교적 명쾌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절도죠. 배임이 막연하다 보니 확대 해석됩니다. 수사 및 기소권을 행사하는 기관에서 걸면 다 걸리는 범죄입니다. 다른 범죄에 해당 사항이 없지만 처벌할 필요가 있을 때 배임죄를 적용하는 등은 문제가 있죠.”
 
  강동욱(姜東旭) 동국대 법학과 교수의 얘기다.
 
  “기업인이 잇달아 배임죄로 구속될 때 ‘사회적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라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대기업 두드리기’라는 인식이 있죠. 배임죄 적용이 자의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시각입니다. 혐의가 명백한 경우에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일단 적용하고 보는 죄목 중 하나입니다.”
 
  최근 논란거리인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위원조차 배임죄가 모호하다는 부분은 동의한다. 이 위원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수 있는 원인이 배임죄와 명예훼손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늘 적용될 수 있는 법률을 열어놓고 검찰이 솎아내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판결이 쉽지 않은 배임죄 재판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
  재벌 3세이자, 기업인 K대표이사는 몇 해 전 배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왔다. 사연은 이렇다.
 
  K씨는 개인적으로 한 벤처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그 회사가 적자가 났다. 이사회는 당시 대표이사였던 A씨를 해임했고, A씨를 대신해 대표를 맡은 K씨는 주식을 감자(減資·회사가 결손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본의 총액을 줄이는 일)했다. 회사가 본궤도에 오르자 이사회는 회사의 자본 증자(增資)를 결의했고, 자금 여력이 있던 K씨가 주식을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전직 대표이사였던 A씨는 K씨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K씨가 이 회사를 먹어 삼킬 의도로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 주식을 감자하고, 나중에 증자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K대표이사의 얘기다.
 
  “A씨는 회사 경영 적자에 대한 책임으로 해임된 사람입니다. 저는 회사 경영을 맡을 생각이 없었는데 이사회에서 선임됐습니다. 주식을 감자하고, 증자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사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과하게 한 부분이 없었는데 전직 대표가 저를 고발했고,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에 출두해 묻는 말에 답하고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배임죄 혐의로 수사를 받아 당황스러웠습니다.”
 
  경찰은 K대표를 조사했고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K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최준선 교수는 “범죄 구성 요건이 애매하다 보니 검찰에서 적극적으로 기소해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배임죄로 기소된 이의 무죄율이 일반 형사 범죄보다 5배 정도 높습니다. 검찰에서 일단 배임으로 걸어 너무 적극적으로 기소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실제로 무죄일 수 있는 범죄도 애매모호한 배임죄로 덮어씌워지는 것이죠.”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시각도 있다. 박상기(朴相基) 연세대 법학과 교수의 얘기다.
 
  “배임죄에서 무죄 판결이 많은 것은 배임죄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무리한 기소 때문입니다. 가령 무죄로 판결 난 정연주(鄭淵珠) 전(前) KBS사장의 배임죄 사건은 누가 봐도 무리한 기소였습니다. 검찰의 문제이지, 법 조항 때문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동안 법원은 기업주에 대해 다소 완화된 판결을 해왔습니다.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좀 봐줬다고나 할까요. 그런 이유로 인해 무죄율이 다소 높아진 겁니다.”
 
  —하지만 배임죄의 범주 자체가 모호하다고들 하는데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얘기인데 한편으로 모호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실 모든 법 규정이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딱히 배임죄만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배임죄 자체가 문제이든,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문제이든 상관없이 ‘배임죄’가 판사들 사이에서 어려운 재판은 분명하다.
 
  판사 출신 L변호사의 얘기다.
 
  “절도는 명확한데 배임·횡령·사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봐도 확실한 배임 행위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케이스는 대기업 구매 부서 직원이 1000만원짜리를 구매하면서 1500만원으로 서류를 작성해서, 500만원을 뒷돈으로 받는 등의 경우예요. 이때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정황, 이런 일을 한 의도가 확실하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합니다. 하지만 배임죄 사건 중 일부는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재판이 어렵습니다.”
 
 
  형사사건인가, 민사사건인가
 
지난 2011년 1월 31일, 서울서부지검에서 태광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배임죄는 기업인들에게 널리 적용되는 죄목이다.
  몇몇 학자들은 배임죄 성립이 모호하다는 것 외에 ‘배임죄를 형사사건으로 다뤄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그 이유는 ‘배임죄=배신’이라는 윤리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의 얘기다.
 
  “형법상 배임죄의 본질은 권한 남용설과 배신설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신설이 통설입니다. ‘배신=배임’인 겁니다. 누군가 배신을 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을까요. A가 B를 배신했다고 해서 과연 징역을 살리는 것이 올바르냐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배신은 윤리, 민사 문제이지 형사 문제는 아닙니다.”
 
  강동욱 동국대 교수는 ‘형벌권 남용’을 언급했다.
 
  “재벌 총수 몇 명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배임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특정 집단을 목표로 집행되면 안 됩니다. 대기업이니까 때려잡아야 하고, 중소기업은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곤란합니다. 법의 맹점이 일부 소수 때문에 선의의 다수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배임죄 역시 이 차원에서 논의돼야 합니다.”
 
  —반대로 다수를 위한 법을 소수가 악용해 법망을 피해갈 수 있잖습니까.
 
  “배임이 명백하면 대기업 총수든 중소기업 대표든 모두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법 집행이 무조건 형벌이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무조건 감옥 보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징역보다 차라리 이 사회에 해를 끼친 죗값으로 돈 몇백억 원을 내놓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경제 사범들 사이에서 ‘감옥에 가는 형벌’이 가장 두려운 것은 분명하다.
 
  국내 10대 재벌 그룹의 총수 C씨는 몇 년 전 업무상 배임으로 감옥살이를 한 후에 한동안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다. C씨는 회사 임원들과 대면해 회의를 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다른 그룹 회장들과의 만남 자리도 애써 회피했다. 결국 회사 비서실은 C회장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신입사원과의 대화’ 등 부담없는 자리를 만들어 C회장을 끌어냈고, 몇 개월 동안 대인 기피증을 없애는 연구를 했다. 재벌 3세인 K대표이사 지인 여럿은 실형을 살았다.
 
  K대표는 “감옥에 가두면 제일 먼저 혐의를 순순히 밝히는 것이 경제 사범”이라며 “사상범은 감방 생활을 버티지만 작은 성의 성주(城主)처럼 살아온 재벌 총수에게 감방 생활은 일반인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것이라 출소 후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주원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형벌 과잉국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외국에서는 비범죄화라고 해서 형벌 대신에 과태료, 과징금을 물리는 등 행정상 재정으로 돌립니다. 형벌은 여러 벌 중에서 가장 가혹한 벌입니다. 당연히 형벌권 사용은 제한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범죄자가 감옥에 가면 우선 속이 시원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를 제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먼저 사용하고, 마지막에 형벌을 투입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다수의 범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민사로 처리하고 제한적인 행위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민형사 책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사 책임의 범주보다 형사 책임의 범주가 작아야 하는데 반대인 거죠.”
 
 
  “배임죄를 민사로 다루는 건 재판하지 말자는 얘기”
 
지난 1995년, 미국 전역을 시끄럽게 했던 ‘OJ심슨 사건’에서 그에게 형사상 무죄가 선고됐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형벌권을 꼬집는 학자들은 대부분 배임죄는 민사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전직 판사 L변호사는 미국을 뒤흔들었던 ‘오제이심슨(O.J.Simpson) 사건’을 예로 들었다. ‘오제이심슨’ 사건은 1994년 6월, 미국 프로풋볼 선수 출신의 흑인 배우인 오제이심슨이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진행된 사건이다. 검찰은 심증만 가졌을 뿐 물증을 찾지 못했고, 유력 변호사를 대거 고용한 심슨은 인종 차별을 끌어들여 형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심슨은 부인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패해 배상금 850만 달러, 징벌적 배상금 25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L변호사의 얘기다.
 
  “미국은 민사상 손해보상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게 높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 수준입니다. 경영진의 문제를 형사가 아닌 민사로 하자는 주장은 우리 형편에서는 아예 재판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법조가 처한 환경, 그간의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얘기죠. 우리가 민사상 손해배상을 10억원 판결한다면, 미국은 1000억원 정도 내리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재판은 형사 판결을 기초로 민사 재판이 이뤄지기 때문에 구조상 민사 소송만 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법조인 생활을 한 이지수 위원은 절차법상에 나오는 ‘증거개시 제도’를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민사 재판에서 원고(가령 소액주주)가 피고(회사 경영진)를 고소하면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자료를 공유합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라고 하죠. 한국은 이 ‘증거개시 제도’가 사실 유명무실합니다. 원고가 민사 소송을 제기해도 피고의 자료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민사에서는 보완책으로 형사 사건의 결과를 기다립니다. 형사 사건을 지휘하는 검찰의 압수수색권을 앞세워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사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해 주면 민사에서는 그대로 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배임죄 문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민사로 다루자고 하면,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은 구제받을 길 자체가 막힙니다. 경영자들에게는 보호막을 덜렁 쳐주고, 소액주주들에게는 항의할 길 자체를 막는 것과 같습니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배임죄를 완화시키자는 움직임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배임 없이 기업 키울 수 없다?
 
  국내 재벌그룹의 총수들은 여지껏 배임·횡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벌의 모럴 해저드’ 문제와 엮여 배임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배임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정 법안은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배임 규모가 30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5년 이상의 징역을 살게 하려고 합니다. 이 조항이 적용된다면 규모가 큰 사업체의 사업가들이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대형 사업에서 실패할 경우, 배임죄가 당장 적용될 겁니다. 결국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될 겁니다.”
 
  강동욱 동국대 교수의 얘기는 이렇다.
 
  “기업인의 임무는 회사에 이익을 내고, 나라가 잘 돌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그에 대한 견제는 나중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항이 원칙이고 2항이 예외인데, 현재 원칙과 예외가 바뀌고 있습니다. 몇몇 재벌그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대한민국 대다수의 기업인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선 기업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중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엄벌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려 한’ 경영인에게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으로 한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인들이 ‘배임죄’라는 항목을 평소에 의식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연간 매출 2조원대의 회사 대표인 C씨는 평소 무리한 사업을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는 그에게 ‘정도(正道)를 걷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C씨의 얘기는 다르다.
 
  “경영인의 배임죄가 적용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그룹 계열사 간 내부자 거래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룹 총수 입장에서는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 당연히 자금 여유가 있는 계열사에서 출자(出資)하는 형식을 고민할 겁니다. 그렇다 보면 이 계열사가 다른 곳에, 또 다른 계열사가 이곳에 지급보증을 서는 등 얽히는 구조가 생깁니다. 만약에 이 과정에서 모든 계열사가 이익을 봐도 이 경영인은 지위를 남용한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구조상 ‘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필수적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저는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늘 고만고만하게 사업을 합니다. 가령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이 풀어지면, 다시 묶는 대신에 갓이 날아가도록 놔두는 겁니다. 하지만 사업을 늘리려는 욕심에 갓끈을 조여 묶으면 제재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쉽게 말해 재벌그룹으로 회사를 키우고 싶으면 일정 부분 배임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총수 일가를 위한 배임이 대부분”
 
  하지만 ‘배임죄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만만찮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업무상 배임죄 적용이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 경영이 잘못된 것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적용된 배임죄가 과도하게 적용됐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법의 처벌을 받은 재벌 총수들 중에 정말 회사를 열심히 운영했는데, 단지 경영 환경이 바뀌어서 배임죄로 처벌받은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또 총수 일가의 상속을 위해 저지른 범죄입니다. 형법과 사법 조항을 구체화하는 것은 좋지만, 배임죄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전직 판사 L변호사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사법부의 판단은 극히 상식적인 수준이다. 여태까지 죄없는 사람을 잡아들였거나 무리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이 ‘경제민주화’의 영향을 받은 판결을 내린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판사 역시 사람이고 트렌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관이 시류에 영합해서 재판하면 안 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해서도 안 됩니다. ‘시류에 따르느냐 아니냐’보다는 옮고 그름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트렌드가 맞다고 봅니까.
 
  “창피한 얘기지만 그동안 사법부가 범죄를 범한 재벌 총수들에게 솜방망이 식 제재를 가했다고 봅니다. 일반인에게 몇천만 원은 큰돈입니다. 경제 기여도가 있다손 치더라도 몇백억, 몇천억 원의 손실을 끼친 기업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배임죄는 심각한 중죄입니다.”
 
 
  ‘경영 판단 원칙’
 
  배임죄의 처리가 형사 소송이냐, 민사 소송이냐 논의되는 과정에서 상법학계에서는 ‘경영 판단 원칙’이라는 것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
 
  ‘경영 판단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은 미국에서 판례상 발달한 법리다. 그런데 이 원칙에 대해 학자들의 해석이 정반대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이 원칙을 상법에 적용할 경우 기업인들이 배임죄 처벌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배임죄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법에 ‘경영 판단 원칙’을 도입해서 이사 등이 경영상의 이유로 어떤 판단을 내려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면 특별배임죄에 따른 처벌을 면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원칙을 넣는 것과 현재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가령 회사에서 사무를 처리하는 이가 거래처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회사 돈을 횡령하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떤 실수 또는 의도치 않은 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도 배임죄로 기소해 처벌받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선한 의도에서 행해진 경영상의 일이라면 형사 처벌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강동욱 동국대 교수는 “법의 잣대는 경영자의 ‘고의성’을 따져서 집행돼야 한다. 경영자가 자신의 의무를 모두 지키고 노력을 한 상황에서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임죄에 높은 잣대 들이대야”
 
  그런데 미국 변호사인 이지수 경제개혁 연대위원과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이 원칙을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주식회사를 존중하는 이유는 신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여서입니다. 그 신뢰는 내 귀중한 자산을 맡겼을 때, 이사를 믿을 수 있다는 거죠. 만약 그 경영진이 사심(私心)을 보였다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이사(경영진)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주의 의무(duty of care)’와 ‘충성 의무(duty of loyalty)’입니다. 이 두 가지 의무가 ‘경영 판단 원칙’의 전제 조건입니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에게 이해 상충이 있었느냐’입니다. 관리자가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든지, 이해 상충이 있었다면 두 가지 의무 중 ‘충성 의무’를 어긴 겁니다. 미국에서는 ‘충성 의무’를 어긴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경영 판단 원칙’을 적용하지도 않고, 법으로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의사 결정에 참여한 자가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선의로 했는데 손해를 끼치면 ‘주의 의무’ 위반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법원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경영 판단 원칙’입니다. 우리나라 상법에 ‘경영 판단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배임죄가 면책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주의 의무’ 위반 사건에 대해 면책시키는 것은 동의합니까.
 
  “저는 반대합니다. ‘주의 의무 위반’ 사건도 법이 무조건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결정이 이성적, 합리적, 선의에 의해서인지, 모든 프로세스를 검토해야 합니다. 기업 이사의 기본인 ‘충성 의무’를 저버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미국 회사 이사회가 독립적이라면,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위원은 최근에 미국에서 있었던 ‘이베이(ebay) 민사 사건’을 예로 들었다. 사연은 이렇다. 이베이가 증시 상장을 준비하면서, 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끌어들였다. 골드만삭스 측이 이베이 임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자신들이 IPO(기업공개)를 추진하는 회사를 몇 군데 소개했다. 이베이 임원들은 개인 돈으로 그 회사 주식을 샀고 돈을 벌었다. 이베이 주주들은 임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베이 이사들 입장에서는 ‘회사 경영과 상관없이 개인 돈을 들여서 해당 회사의 주식을 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베이 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미 법원은 “이사들이 개인적으로 투자를 했지만, 정보 취득은 이베이 임원이어서 가능했다”며 “이사들의 수익은 회사로 귀속시키라”고 판결했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경영 판단 원칙’을 판례법에서 적용하는 것은 배임죄를 중범죄로 인식하고 강화하자는 취지”라며 “우리나라에서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고 주장했다.
 
  배임죄의 처벌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은 맞다. 그로 인해 경영자의 중요 결정이 방해를 받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없애면 경영자의 전횡을 막기 어렵다는 반론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경영자가 억울하고, 저렇게 하면 소액주주가 억울해지는 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억울한 사람이 없게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배임죄는 어떤 식으로든 재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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