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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박근혜 정부가 양성화하겠다는 지하경제의 세계

정부가 파면 더 숨는 습성을 없앨 수 있을까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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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침체와 함께 사채 시장 부침… 명동 vs.여의도 vs.테헤란로
⊙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과감한 페널티 물려 검은돈 차단해야
⊙ “국세청·금감원·검찰이 연계하면 잡을 수 있다”
국내 초기 사채시장을 이끌었던 명동의 모습. 과거의 ‘전주’에 머물지 않고 벤처투자의 돈도 대고 있다.
  “오늘부터 ‘차차차’(자동차를 담보로 사채를 빌려 주는 것) 시작한다고 칩시다. 돈 빌리려는 사람에게서 BMW를 담보 잡고 1억원을 빌려 줍니다. 선수 이자는 13%입니다. 선수를 뗄지 말지, 이율을 몇 % 받을지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차 담보 받고 통장으로 8700만원을 쏴 줍니다. 첫 번째 이자는 보름 후에 13%를 받습니다. 이자를 입금하면 다시 보름간 돈을 쓸 수 있습니다. 고로 사채업자는 차 담보로 1억원 빌려 주고 한 달에 이자 2600만원을 챙긴 겁니다. 이 과정에서 낸 세금은 한 푼도 없습니다. 휴대폰, 통장만 들고 있었고 둘이서 차용증 주고받고 끝났습니다. 어느 과정에서 세금을 물릴 겁니까. 만약 상대방이 사금융 피해로 신고하면 불법(不法) 사채업을 한 행위에 대해 벌금 300만원 정도를 내면 됩니다. 100명 중에 한 명이 구속될까 말까 합니다.”
 
  사채를 자주 이용하는 사업가 A씨는 ‘차차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공공연하게 불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 양성화돼도 年 5900억원 세금걷혀
 
  지하경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박근혜(朴槿惠) 새 대통령이 지하경제를 양성화시켜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조만간 조직을 개편해 지하경제에서 세수(稅收)를 확보하겠노라 말했다. 국세청은 금융위원회 소속인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료를 활용하면 연간 6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하경제의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지하경제의 양성화가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두고는 말들이 많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언급한 ‘단골 이슈’라는 시각도 있다.
 
  사전적 의미의 지하경제는 정부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탈법적인 경제활동을 뜻한다. 불법 사금융, 밀수나 마약, 매춘, 뇌물수수 등 범죄적인 경제활동과 세무 당국에 보고되지 않는 불법행위를 총망라한다.
 
  국내 지하경제 규모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의 28.8%(2005년 발표), 현대경제연구원은 GDP의 21%(2005년 발표), 조세연구원은 GDP의 19.2%(2011년 발표)로 봤다. 학자들마다 추정치가 다르다. 박근혜 새 대통령이 말하는 ‘GDP의 24%’는 한국조세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의 평균치와 오스트리아 빈츠대학 프리드리히 슈나이서 교수의 분석에 따른 것이다. 김재진(金裁鎭)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의 얘기다.
 
  “국내에서는 지하경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슈나이더 박사의 연구가 자주 인용되는 것은 우선 그가 지하경제와 관련한 연구를 많이 했고, 동일한 지하경제 추정 방법으로 150여개 국가들을 분석해 국가 간 랭킹을 매겼기 때문입니다. 지하경제 규모 추정법이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슈나이더 박사의 논문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슈나이더 박사는 지난 2010년을 기준으로 국내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4.7%라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3개국 중 5위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 2012년 GDP 1237조원 중에 305조원(24.7%) 정도가 지하경제라고 추산할 수 있다. 조세부담률(19.3%)을 감안하면 연간 약 59조원 정도가 세수로 들어온다”며 “지하경제의 1%만 양성화시켜도 추가로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연간 5900억원이라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사채 시장도 옛날과 다르다
 
  지하경제를 떠올리면 왠지 음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단골 배경인 으슥한 뒷골목과 경찰, 국세청을 조롱하듯 따돌리는 지하세계 인물들이 오버랩된다. 지하경제의 큰 축인 불법 사채 시장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사채 시장=명동’이라거나 ‘백할머니’ ‘광화문곰’(사채업계의 큰손들)을 얘기하면 한참 뒤처진 소리다.
 
  사채업자와 막역한 사업가 B씨는 “명동 사채 시장을 얘기하는 것은 촌스러운 얘기다. 산업의 발전과 함께 사채가 변화했고 최첨단으로 무장한 상태”라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최근 사채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모 교도소에 수감된 C씨다. 자본이 전혀 없었던 C씨는 성실함을 앞세워 법무사 사무실에 돈을 대 주는 ‘전주’(錢主)들과 친분을 쌓다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여느 사채업자들처럼 처음에 부동산 몇 건을 성공시켜 종잣돈을 마련했고, 이후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어 이 바닥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B씨가 전하는 C씨의 수법은 이렇다. C씨는 적당한 규모의 코스닥 상장업체를 찍어서 자기 사람들을 앞세워 그 회사의 주식(경영권)을 사들인다. 주식을 사들이는 돈은 물론 C씨가 댄다. C씨의 ‘자기 사람들’이란 룸살롱의 ‘바지사장’들과 같은 개념이다.
 
  C씨의 ‘바지사장’들이 회사 경영진으로 들어가면 C씨는 그들의 주식을 담보로 잡고, 회사 인감과 회사 통장을 10~20여 개 만든다. 이후 C씨의 돈으로 코스닥 회사의 주식을 사고 팔기를 반복해 주가를 몇 배 뛰게 하는 식(式)이다. C씨는 동일한 수법으로 1년에 4~5차례 기업 사냥을 반복했다. ‘100억 놓고 300억 먹는 식’의 장사였다. 덕분에 C씨는 한때 사채업계에서 황제로 군림했다. 사업가 B씨의 얘기다.
 
  “C씨가 이 과정에서 세금 10원 한 장 낸 것이 없습니다. 사채업자들끼리 ‘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C씨는 회사를 인수해서 회사 내부자금과 인감도장을 따내기 위한 목적이지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C씨가 앞세운 경영진은 룸살롱 바지사장과 똑같아서 세금을 추징할 수 없습니다. 한때 사채 시장에서 C씨 돈 안 쓰고는 기업 합병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6~7시간 만에 현금 1조원을 모을 수 있다고들 했죠.”
 
 
  여의도·테헤란로 중심의 최신형 사채업자들
 
  국내 사채 시장의 역사는 이승만(李承晩) 정권 이후 나라의 경제가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시작됐다.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땅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다. 그나마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물건을 교환한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돈이 흘러다니는 남대문 시장, 그리고 한국은행의 위치에 따라 명동이 자연스럽게 금융의 중심지가 됐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초창기 사채업자들은 권력을 낀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력자의 돈을 세탁해 주고 미(US)달러, 엔화를 바꿔 주는 역할이 명동 사채 시장의 초창기였습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하면서 은행이 지방으로 나가고, 현대・삼성 등 몇몇 회사가 기업의 틀을 갖췄습니다. 최초로 사채를 빌려 쓴 큰 기업인은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습니다. 정부의 계획에 맞춰 건설업을 하는데 은행에서 빌려 쓰는 자금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단 땅을 사려면 큰돈이 들어가니까 사채 시장에서 빌려 쓰고, 땅 담보로 다시 대출 일으켜 건물 짓는 식(式)이었습니다. 사채를 활용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부동산 매입자금으로 썼습니다. 그러면서 명동이 기업들을 상대로 ‘어음깡’(할인)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사채업이 활성화됐습니다.”
 
  —‘사채=명동’이라는 인식이 이때부터 생긴 겁니까.
 
  “시작은 사채였지만, 사채 중 일부는 여의도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큰 전주였던 L씨가 여의도에 돈을 들고 가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의도에 갑작스럽게 돈이 돌았습니다. 1980년대가 명동과 여의도가 사채 시장을 양분했던 시기였죠. 이때까지 사채 시장의 운명은 건설업과 궤를 함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1980년대가 끝나고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벤처기업을 육성하면서 순식간에 돈이 테헤란로로 이동했습니다.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를 주무대로 사채가 쏠렸죠. 비상장주식을 우회상장해서 기업을 M&A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그때 ‘작업용 전’이 사채였습니다. 강남 사채의 주목적은 M&A였죠.”
 
  —현재 사채 시장의 중심은 명동, 여의도, 테헤란로군요.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강남 돈 중 상당수가 빠져서 여의도로 갔고, 명동은 옛날 사채 방식을 고수하다가 M&A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입니다. 명동 사채업자들은 흔히 생각하는 촌스러운 편입니다. 꽤 큰 사채업자인 B씨는 2대째 사채업을 하니까 단골들이 있어서 쉽게 방향을 틀지 못합니다. 명동 사채는 안 쓰면서 벌었던 사채들이라 짜장면 하나를 못 먹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전철 타고 출퇴근하는 업자들입니다. 반면 강남, 여의도 사채는 ‘최신형 사채들’이라 돈을 펑펑 씁니다. 강남은 기업형으로 사채를 하고 있습니다.”
 
 
  트렌드 못 읽어 탕진한 큰손 여럿
 
  —일반인들은 ‘백할머니’ ‘광화문곰’ 등을 여전히 큰손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큰 부자들이 없던 초창기에는 사채업자, 부동산 시장의 큰손들이 자금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때 활동했던 분들인데, 이 중 일부는 사채의 트렌드를 잘 파악하지 못해서 말년에 돈을 전부 날린 케이스도 여럿입니다.”
 
  ‘광화문곰’으로 불렸던 고(故) 고성일(1999년 작고)씨는 전통적인 사채업자였다. 6·25 직후 염료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광화문, 남대문, 강남 일대의 땅을 사들이며 부동산으로 7000억원대의 자산을 형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 증권에 투자했다가 상당한 재산을 날린 것으로 전해진다.
 
  사채 시장의 대모인 ‘백할머니’ 고 백희엽(1995년 작고)씨는 6·25 직후 군복 등 의류사업에 뛰어들면서 돈을 벌었다. 백씨는 특이하게 국내에 주식 시장이 형성되자마자 주식에 올인했다. 우량주를 사서 보통 2~3년을 묻어 두는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한다. 현재는 자제들이 금융권에서 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금왕’ 고 단사천(2001년 작고)씨는 1980년대 당시에 하루에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3000억원 규모였다. 고 정주영 회장이 단씨에게 종종 돈을 빌려 썼고, 당시 재벌들 사이에서는 “단사천 돈 안 쓰면 사업 못한다”는 말이 회자했다고 한다.
 
  1982년 어음 사기 사건의 주인공인 장영자씨는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에 접근해 유리한 조건으로 대부해 주고, 대부 금액의 2배에 달하는 어음을 건네받아 시중에서 할인받는 수법으로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그런데 오늘날 ‘기업깡’은 사채 시장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업들이 ‘전자어음’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건설업자 C씨의 설명이다.
 
  “진성어음은 부가가치세, 법인세를 정상적으로 내는 어음입니다. 융통어음은 종이어음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회사는 융통어음을 돌려야 살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돈이 급하고 회사가 부도나게 생기면 재무팀장한테 ‘어음 100억짜리 몇 장만 끊어서 명동 다녀오라’고 합니다. 이 어음이 종이어음(융통어음)입니다. 이 어음으로 사채 시장에서 현금을 받으면 땅을 사는 겁니다. 땅을 매입한 다음에는 은행이 땅을 담보로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해 줍니다. 나중에 분양만 되면 아무 문제 없이 일이 돌아갑니다. 건설회사가 살아남았을 때는 융통어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하지만 대한민국에 땅 살 곳이 없고 건설업이 죽고, 100% 분양에 성공한 곳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융통어음이 명동에 돌지 않고 결국 사채 시장이 함께 쇠퇴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기업이 끊는 전자어음은 꼬리표가 있어서 ‘어음깡’이 불가능합니다.”
 
  C씨는 “벽산건설이 부도나면서 은행에서 3조원을 부러뜨렸는데 사채에서 물린 돈까지 합하면 최소 3배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쁜 여자 돈은 남자가 와서 갚아 준다”
 
국내 1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 영업점.
  하지만 아무리 불법 사채업자라고 쳐도 현금을 집에 쌓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건설업을 하면서 사채를 수시로 써 온 C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사채를 빌릴 때 현금 돈다발이 오가지 않습니다. 통장 거래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뱅킹 등 컴퓨터로 자금 추적이 가능하고, 거액의 자금 거래에 대해 스크리닝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가령 정부에서 하루에 1억원 이상씩 계좌이체를 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한 달 동안 꾸준히 추적하면 이 사람이 불법 고리대금업자인지,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사람인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 자금이 주식 매입자금으로 사용됐는지, 부동산 거래에 이용됐는지를 역추적하면 지하경제의 상당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금융감독원 혼자 이 일을 할 것이 아니라, 검찰·국세청과 같이 움직여야 추적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대부업을 싸잡아 ‘불법 사채’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전국 시·도에 등록된 대부업체는 지난 1월 25일을 기준으로 총 9100여 개다. 지난 2007년 말 1만8500여 개였는데 절반 가량이 줄어 들었다.
 
  대부업의 전체 규모는 2010년 12월을 기준으로 대출금 7조5655억원(금융감독원 발표), 거래자는 220만명 정도다.
 
  대부업계 1위는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명을 쓰는 에이앤피파이낸셜 대부다. 이 회사의 연결재무제표 자산은 2조2777억원(2011년 9월)에서 1조6673억원(2012년 9월)으로 27%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8000억원에서 6700억원으로 16% 정도 줄었다. 대부업 최고 금리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정식 등록 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 이율은 연간 66%(2007년 9월)에서 49%(2007년 10월 이후), 44%(2010년 7월 이후)였다가 지난 2011년 7월부터 연간 39%로 줄었다.
 
  정식 등록업체의 숫자나 거래 금액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조세연구원의 관계자는 “대부업체의 상당수가 사채 시장으로 숨어들어 불법 고금리 장사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가 최고 금리를 인하하고 과세 등 규제를 하면 순효과가 있지만 상당수의 대부업체가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TV를 켜면 ‘여자 우대’라는 대부업체의 광고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여성들에게는 까다로운 심사 없이 몇 분 이내에 통장으로 돈을 보내 준다는 식이다. 규모가 꽤 큰 대부업체의 관계자는 웃지 못할 얘기를 들려줬다.
 
  “대부업체에서 외모가 출중한 여자들에게는 한도 제한보다 많은 금액을 빌려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자들이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채권 추심이 쉬워서가 아니에요. 직접 업계에서 경험해 보니 외모가 뛰어난 여자들이 빌린 돈은 결국 남자들이 갚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여성 우대 등을 앞세운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불법 사채업자 가운데 여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업자도 여럿이다. 이들은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은행·저축은행에 이어, 사채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악용한다.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C씨는 “일반인들은 인터넷을 두드려서 ‘러시앤캐시’ 같은 곳을 이용하니까 별로 매력이 없고 룸살롱 아가씨들을 상대로 하는 사채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하고 들어올 때 ‘마이킹(가불)’을 해서 결국 올 곳이 사채 시장밖에 없습니다. 룸살롱 사장이 돈 빌릴 아가씨들을 대 주고, 나는 룸살롱 사장의 신용을 믿고 돈을 빌려 주는 식으로 거래를 하는 거죠. 보통 이런 대출은 일수(매일 이자 갚는 방식)나 일주일에 한 번씩 고리대금 이자를 갚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기업형 밀수 조직 증가
 
지난 1월 29일, 인천본부세관에서 직원들이 위조 명품시계, 가방 등 밀수품 20t을 폐기하고 있다.
  밀수, 마약도 대표적인 조세 탈루의 통로, 즉 지하경제의 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관세청이 단속한 불법·부정무역 금액(2012년 기준)은 총 6조5249억원이었다. 가장 큰 불법은 외환사범(4조3607억원)이었고, 지적재산권 위반사범(9332억원), 관세사범(8801억원), 대외무역사범(2873억원), 마약사범(636억원) 순(順)이었다.
 
  A사의 수법은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수입 가격을 낮게 신고해서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에 덜미가 잡혔다. A사가 수입 가격을 낮게 신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외에 있는 특수 관계회사와 거래한 덕분이다.
 
  A사는 특수 관계에 있는 해외 관계사로부터 고급 위스키를 수입해 국내에 팔았다. 해당 상표권을 국내에 등록했지만, 해외 관계사와 특수 관계인 점을 이용해 수입 가격에 제조원가 및 단순 임가공료만을 반영해 기존 수입 가격의 절반 이하로 신고를 했다. 이후 저가 신고를 통해 발생한 이익은 주주(株主) 배당금 명목으로 해외로 유출시켰다.
 
  고의로 신고를 누락해 탈세를 한 회사는 여럿이다.
 
  B사는 해외 계열사에서 니켈, 플라스틱 등 도금용 화합물과 도금 장비를 수입,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다. 이 회사가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지불한 연구개발 비용은 수입대금의 일부다. 하지만 B사는 이 비용을 수입물품과 관계없는 용역비용으로 둔갑시켰다. 의도적으로 누락해 관세 등 80억원을 탈루했다. 관세청은 신고 누락에 대해 탈루세액 80억원을 추징했다.
 
  농산물 탈세 사례도 여전하다.
 
  가장 흔한 수법은 품질이 좋은 물품을 나쁜 저가 물품으로 신고해 세금을 탈루하는 방법이다. 관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 시장 개방 협정에 따라 특정 농산물에 대해서는 일정 물량까지만 낮은 세율을 적용하게 됐습니다. 수입자가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참깨를 수입한 한 회사는 제3자 명의로 부당하게 저세율 추천(쿼터)을 받아 탈세를 했습니다.”
 
  과거 밀수의 역사는 조폭, 부패한 세관원과 연관이 깊었다. 주무대는 부산항구였다.
 
  검찰은 지난 1975년 부산지방의 밀수를 뿌리 뽑기 위해 본격적인 밀수조직 검거에 나섰다. 부산항이 개항한 이래 가장 강력한 밀수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부산항을 통해 대규모 금괴를 밀수해 온 부산 ‘문수파’, 다이아몬드·롤렉스 시계를 밀수한 부산 ‘국제스타파’가 붙잡혔다. 그러나 실제 당시 최대의 밀수 조직은 부산 ‘한라파’였다.
 
  이들 조직과 알고 지냈던 관계자는 “일제 양복지, 양장지, 참깨, 밍크목도리, 시계, 라디오 등 돈 되는 것들을 전부 다뤘다. 부산에서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지만 업계에서 손을 씻었다”고 말했다.
 
  한라파의 ‘참깨 밀수사건’은 여전히 밀수 분야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 1990년부터 컨테이너 선박을 이용해 한 번에 10t씩, 총 77억원(1000t)의 참깨를 밀수했다. 부산지법은 지난 1992년 이 사건으로 기소된 한라파 두목 및 이들을 비호해 준 부산본부 세관들에게 징역 1~3년과 추징금을 선고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런 식의 밀수가 행해지는지는 미지수다.
 
  관세청 관계자는 “가장 흔한 것은 기업을 운영하던 기업인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조금씩 탈루를 하다 경제 사범으로 발전하는 케이스가 많다”며 “외환 관련 사범이 많다 보니 조직폭력배보다는 변호사, M&A 전문가, 세법 전문가들을 끼고 기업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일본 관광객 상대하는 성형외과 탈세 규모 클 것
 
성형외과 등 일부 병원은 탈세의 온상이라는 의혹을 받고있다.
  불법 사채·밀수·마약과 같은 음지는 아니지만, 현금으로 거래를 하고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것도 엄연한 지하경제의 일부다. 때문에 성형외과·피부과·치과, 골프연습장, 대형음식점 등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은 늘 탈세의 온상지로 주목받는다. 그리고 국세청은 최근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 2월 초,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S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이 병원은 쌍꺼풀, 코 성형, 가슴 성형, 지방흡입 등 다양한 시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철저한 예약제다. 성형외과 문을 열고 이름을 말했더니 자신을 ‘실장’이라고 소개한 젊은 여성이 기자를 안내했다. 병원 한편에 상담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성형외과가 다른 병원과 다른 점, 수술 후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수술 전후의 사진이 담긴 브로셔를 보여주며 수술을 권했다. 복부 지방 흡입 비용은 250만원 선이라고 했다. ‘카드 할부가 가능하냐’고 묻자 표정이 달라졌다.
 
  “현금 계산은 힘드신가요? 사실 성형외과에서 카드 쓰시는 환자분은 거의 없어요. 간혹 20대 초반 학생들이 할부하기는 하는데 가격적으로 손해 나거든요. 현금 계산하시면 DC(할인)해 드리는데, 220만원까지 해 드릴 수 있어요.”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고 하자, 상담실 원장은 “정말 이 금액에는 해 드린 적이 없는데…”라며 200만원을 제시했다. 흡사 시장통에서 흥정을 하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을 한 번 만나 보고 결정하면 안 되냐”고 하자, 그는 “지금 진료 중이라 만나기 어렵고 상담 과정이 끝나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구역에 위치한 H성형외과의 반응도 비슷했다. 현금 계산이 당연한 양 얘기를 했고, 물론 의사 얼굴은 보지 못했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K씨는 의대 친구들 사이에서 ‘별종’으로 통한다. K씨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각 시술별 금액을 공개하고 있고 성실하게 소득을 신고한다. 그의 얘기다.
 
  “의대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한 번쯤 꼭 나오는 얘기가 ‘너 때문에 다른 친구들 피해 본다’는 겁니다. 제 병원의 소득을 공개하니까 그것이 기준점이 돼서, 다른 친구들이 매출을 너무 낮게 잡기는 어렵다는 얘기들입니다.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데 튄다는 얘기도 많고요. 지난주에는 한 환자가 찾아와서 ‘현금 결제를 할 테니 감안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병원은 카드 결제나 현금 결제나 똑같이 취급해서 곤란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의사라고 하더군요. ‘서로 아는 처지에 편하게 처리하자’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요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으로 의료 관광을 오는 중국·일본 관광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국내에서 성형외과·피부과 시술받는 중국인이 몇 만 명으로 추산된다는데, 당국에 정식으로 보고된 수치는 10%도 안 될 겁니다. 이들 외국인의 특징은 현금으로 거래하고 일회성 시술을 받습니다. 현금으로 거래하는 우리나라 환자라면 하다못해 이중장부라도 써야 하지만, 외국인 환자들은 차트 자체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국내에서 시술받은 외국 관광객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역추적해서 병원에 세금을 물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요즘은 이중장부보다 이 부분의 탈루액이 훨씬 클 겁니다.”
 
  물론 모든 성형외과, 피부과, 개인병원이 탈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강남에서 종합병원 형태의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K씨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병원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하다 보니 수가가 높고 현금거래 비중이 높지만, 대다수의 개인병원은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한다”며 “보험당국에 보고가 되기 때문에 탈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데 싸잡아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지하경제를 얘기하는 이유
 
  한국조세연구원이 발간한 《지하경제 규모의 측정과 정책 시사점》에 의하면 우리나라 소득세제는 개인 단위에 기초한 종합소득세제가 원칙이다. 종합소득은 이자소득, 배당소득, 부동산임대소득, 사업소득, 근로소득, 기타소득 등 6개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1년 국세청이 거둬들인 세수는 총 180조1000억원이었다. 부가가치세가 전체의 28.8%(51조9000억원), 법인세 24.8%(44조8000억원), 소득세 23.4%(42조2000억원), 환경·교통세 6.4%(11조5000억원) 정도다. 그런데 이 세수의 90%이상은 소비자가 자진 납세를 한 경우다.
 
  조세 업무를 10년 이상 해 온 정부 관료의 얘기다.
 
  “박근혜 당선인의 이미지가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니까 재원 조달은 반드시 해야 할 겁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증세는 없다’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세율 인상은 없다’는 말입니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조세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 세금은 3대 세목이 75% 정도인데 건드리기 힘듭니다. 법인세를 올리기 어렵고, 소득세는 밑의 계층을 올릴 수 없고 기껏해야 과표구간을 조정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고소득자의 감면 폭을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돌아올 수 있는 세수가 미미합니다. 제일 큰 부분이 부가세인데, 부가세는 잘못 건드리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조세 저항이 큰 항목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자영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결국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기관들의 협조입니다. 청와대 의지만으로 될 수 없고, 국세청, 금감원, 국회 등 모든 기관에서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에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신용카드 활성화 문제를 토의할 때 의견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저는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면 세수가 좀 더 투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메리트를 식당 업주가 아니라 신용카드를 내는 소비자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당 업주 입장에서야 어차피 현찰 거래가 가장 좋을 것이지만, 소비자는 다르거든요. 결과적으로 신용카드 소비 금액의 10%를 연말정산 때 환급해 주자 신용카드 사용자가 급증했습니다. 현찰 거래가 주였던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죠. 그런데 이 카드를 도입하는 데 무려 3년이 걸렸습니다. 각 부처별로 찬성·반대의 이유를 대고, 카드 사용으로 인한 폐해, 악용사례들을 늘어놓아서 탁상공론만 하다가 3년이 흘러버린 겁니다. 신용카드 시장을 확대한 다음에 직불·체크카드 사용을 권하는 큰 그림을 그렸는데 중간에서 흐지부지된 케이스였습니다. 지하경제 문제도 서로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성공할 겁니다.”
 
 
  “음식 사업자 중 탈세 안하는 사람 없다”
 
  서울 강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K씨는 연간 매출 8억원 정도다. 절반 정도가 비용으로 들어가지만, 그는 늘 매출의 90%가 비용이라고 당국에 신고를 한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다.
 
  K씨는 “음식 장사 하는 사람 중에서 탈세를 안하는 사람은 1%도 안 된다”며 말을 이어 갔다. K씨의 사례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요식업 자영업자의 사연일 것 같아 소개한다.
 
  “솔직히 세금 다 내면 너무 억울한 거죠. 직장인 지갑이야 ‘유리지갑’이라 치지만 우리보다 훨씬 돈 잘 버는 전문직들이 탈세하잖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하루하루 밥 팔아 돈 버는 사람들한테 세금 꼬박꼬박 내라는 건 너무하지 싶어요. 개인사업자는 ‘그림만 잘 그리면’(매출, 재료비, 인건비 등을 그럴듯하게 부풀려 작성한다는 뜻) 안 걸려요. 국세청이 찾는 건 불가능하죠. 국세청은 숫자만 보거든요. 동종지역 매출을 기준으로 늘 60~70%만 매출이 일어난다고 하고, ‘그림 잘 그리면’ 절대 안 걸려요.”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립니까.
 
  “가장 흔한 건 재료비를 부풀리는 겁니다. 매출 1억원이면 부가세 1000만원은 어쩔 수 없지만 재료비의 10%는 세금에서 까 줍니다. ‘매출- 비용’이 소득이잖습니까. 일단 현금 매출은 매출에서 전부 누락시키고요. 동네에 있는 배달 중국집은 거의 현찰 거래잖습니까. 그런 곳은 일단 매출 전부 줄이는 거죠. 개별 중국집에서 탈세하는 규모야 미미하겠지만 전국에 그런 곳이 몇 십만 개 있지 않을까요. 또 식당 운영 비용을 최대한 늘립니다. 월세 신고하고, 재료비를 늘리고 인건비를 최대한 높이죠. 아르바이트생에게 매일 현금을 지불하고 수십 명을 썼다고 신고해도 국세청이 알 방법이 없습니다. 자영업자의 세금은 자율신고이기 때문에 미리 적당히 신고하면 법망에 안 걸립니다. 매년 소득 속이면서 마음이 편한 건 아닙니다. 만약에 정부가 제대로 걷으면 소득세율을 더 낮출 수 있고, 소득세율을 낮추더라도 더 많은 세금이 걷힐 거라고 봅니다.”
 
 
  탈세 연구하는 ‘브레인’들 많아
 
  물론 국세청이 이런 중소 자영업자들에게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의 말이다.
 
  “국세청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 인원을 재배치하는 것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견 재벌 이상의 그룹이 주요 대상이고, 자영업자들 중에는 탈루 소지가 많은 몇 곳이 대상입니다. 또 현금거래가 많은 성형외과 등 의료분야나 현금거래가 큰 가짜석유 판매회사, 고리대금업, 유흥업소, 밀수 등이 대상입니다.”
 
  —범위가 상당히 모호한데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지하경제는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하면 지하경제가 아니죠. 따라서 국세청이 추진하는 일 역시 딱 떨어지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국세청 인력이 전문적으로 탈세하는 이들을 추적하기 역부족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계론을 얘기하는 것은 ‘범죄 예방을 못하면서 나중에 쫓아다니느라 바쁘냐’는 시각과 같은 얘기입니다. 목숨 걸고 탈세하는 사람을 직접 잡지 못하더라도 국세청의 조사가 탈세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예방 효과가 크고요.”
 
  —지하경제를 통해 정확히 얼마를 거둬들일 수 있습니까.
 
  “세수 기대치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정치권을 통해서 일부 수치가 흘러 나가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가 공개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국세청의 공식적 멘트와 달리 지역청에서 근무하는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늘 있어 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국세청 직원이 집중하면 서류가 있는 해외자금의 흐름 등에서 탈세 흔적을 잡아 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흔적이 없는 불법 무허가 사채는 사실 잡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관계자들은 “지하경제의 규모가 꽤 크며 브레인들이 포진해 법망을 피해 나간다”고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지하경제의 특성은 어떻게든 숨어드는 겁니다. 정부가 파면 그들은 또 숨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물이에요. 해외 자금반출, 밀수, 테러자금, 고리대금업은 지하경제 중에서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잡히느냐 안 잡히느냐에 따라 생사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거금이 오가기 때문에 최고 전문가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국세청 관계자, 변호사, 세무전문가, M&A 전문가, 대기업 전·현직 임원 등이 고도의 수법으로 치밀하게 범죄를 합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천민(賤民)자본주의다 보니까 한 건만 잘하면 얻는 돈이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최고 브레인들이 먹고 튀는 연구만 하는 겁니다. 국세청이 순환 보직을 하면서 자나 깨나 탈세만 연구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피라미는 잡을 수 있지만 진짜 악질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은행이 의심 자금 신고하도록 해야
 
  국세청이 중소 자영업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불똥이 이들에게 튀지 않을 리는 만무하다.
 
  금융계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기본이 ‘개인 금융정보 공유’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았다. 오늘날 핫이슈인 ‘FIU 자료의 국세청 이관’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한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 내역과 탈세 등이 의심되는 100만원 이상의 거래 내역은 금융위원회 산하 조직인 FIU에 보고된다.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FIU에 보고된 혐의 거래는 총 32만9463건이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다. 미국, 영국, 호주를 비롯해 대다수의 금융 선진국들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의 대학에서 조세를 연구하다 국내로 돌아온 한 연구원의 얘기다.
 
  “미국에서 탈세는 중범죄로 다뤄집니다. 탈세는 미 연방에서 다뤄지는데, 가령 탈세혐의가 포착되면 주(州) 경찰이 아니라 연방수사국(FBI)에서 출동해 혐의자를 즉시 체포합니다. 미국의 실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자기 집 침대 밑이며 앞마당을 파서 현금을 묻어 놓는 교민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화폐를 이런 식으로 보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 자금의 1차 판단은 금융기관 종사자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불법 자금을 추적하고 거둬들이는 일의 성공 관건은 금융기관 종사자의 역할이었습니다. 미국은 의심거래보호제도에 의해서 고객들이 은행에 돈을 입금할 때, 금융기관 종사자가 수상하다 싶으면 바로 신고를 해야 합니다. 만일 의심 가는 자금이 분명한데 신고를 하지 않으면 패널티가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자기 고객이 기분 나빠하면 안 되니까,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이런 관행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가령 금융기관 종사자가 불법 자금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 강한 패널티를 준다거나, 은행 지점장 등 고위급에서 검은돈에 대해 눈감는 행위 등이 있을 경우 제재를 해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1차 스크리닝을 제대로 하는 것이 검은돈을 찾아내는 첫걸음입니다.”
 
 
  FIU 자료 활용해 불법 자금 추려내야
 
지난 2012년 5월 17일, 국세청 브리핑실에서 ‘악덕 사채업자 세무조사 실적’을 발표하는 임환수 조사국장.
  개개인의 금융거래 내역 정보는 FIU가 갖고 있는데, 사실 이는 굉장히 파워풀하고 유용한 정보다. FIU는 거래 정보를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이 중 탈세혐의가 짙은 건수를 국세청에 넘겨 왔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FIU에 보고된 거래 중 2.3%(7468건)를 통보받았다. 국세청은 지난 2009년부터 3년 동안 이런 혐의거래 자료를 활용해서 세무조사를 벌였고, 총 4300여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FIU가 갖고 있는 자료를 모두 활용해서 세무조사를 할 경우 연간 4조원 이상은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한구(李漢久) 새누리당 의원은 고액 현금자료를 FIU가 모두 국세청에 넘겨 주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세청과 금융감독위원회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김재진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지하자금은 현금으로 거래되는 것이 특성이어서 FIU가 갖고 있는 정보가 꽤 유용합니다. 금융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개인 정보 보호에 위배된다는 것과 그래도 공유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 상충해 왔습니다. 정답은 없는데 세계적으로 개인 금융정보를 활용하자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은 1990년에 은행보호법을 만들면서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를 악용해서 탈세가 일어나자 법을 보완 중이었는데 9·11 테러가 터졌습니다. 결국 미국은 관련법을 강화하면서 개인 금융정보를 오픈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옛날과 달리 글로벌화가 지속돼 자금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외국으로 나갑니다. 전통적인 과세 인프라는 실물거래였는데 실물은 천천히 돌지만 돈은 빨리 이동합니다. 최종 목적은 돈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호주, 영국 등 선진국들이 먼저 정보 공유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에 앞서 금융실명제를 재정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때 세상은 핵폭탄을 맞은 양 흥분했습니다.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채 유지돼 왔습니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의 금융실명제는 금융차명법입니다. 은행에서 주민등록증만 복사하면 끝입니다.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가 1000개 이상 나왔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차명계좌를 사용해도 된다는 묵시적 허락을 해 준 것이나 같습니다. 차명거래가 들통나면 은행 임직원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실소유주나 명의를 빌려 준 사람이나 아무 패널티가 없습니다. 이 부분부터 손을 봐야 합니다. 실소유주, 명의를 빌려 준 사람에게 확실한 책임을 물으면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명의를 빌려 주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의 대부분은 “파면 팔수록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지하자금의 특성이지만, 관계 기관이 협업하면 이 중 상당수는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수시로 이동하는 거액의 자금흐름을 역추적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지하경제가 얼마나 양성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대한민국 GDP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사람이 태어나서 피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나머지 하나는 세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이 중의 하나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박근혜 정부와 지하경제인 중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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