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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중국대륙을 달리는 현대·기아자동차

중국 사업 시작 10년 만에 현대 4위, 기아 8위 올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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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에는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 왔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위안화를 벌어 온다”
⊙ 현지에 맞게 개량한 모델과 신형 모델로 접근, 액센트·K2는 국내보다 먼저 출시
북경현대 베이징 2공장의 의장라인. 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25세에 불과하다.
  중국의 국가 싱크탱크인 중국과학원은 지난 1월 8일 <국가건강보고>라는 것을 발표했다. 중국과학원은 이 보고서에서 국가건강지수(NHI)라는 개념을 사용, 2019년 중국이 경제총량 면에서 미국을 넘어서고, 2049년이 되면 종합국력 면에서도 미국을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과학원의 전망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과연 그게 들어맞을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경제와 관련된 각종 수치에서 중국이 미국을 하나둘 추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09년 세계 자동차 생산량 및 판매량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2011년에도 중국은 생산량 1842만대(승용차 1449만대), 판매량 1851만대(1447만대)를 기록했다. 2위인 미국은 865만대를 생산하고, 1278만대를 판매했다. 2020년 중국의 자동차시장 규모는 3371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22.3%에서 2020년에는 30.5%로 증가하게 된다.
 
  때문에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시장인 중국은 전(全) 세계 자동차기업의 각축장(角逐場)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GM, 닛산, 도요타, 혼다, 포드, 시트로앵 등 쟁쟁한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국기업과의 합자(合資)회사 형태로 들어와 있다. 여기에 중국 로컬(local) 기업들까지 더하면 중국 완성차 생산업체는 12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승용차 업체만도 53개나 된다.
 
  이 치열한 전장(戰場)에서 현대·기아차가 선전(善戰)하고 있다. 작년에 현대자동차의 중국 현지 합자회사인 북경현대와 동풍열달기아(이하 DYK)는 모두 133만6571대의 승용차를 판매했다. 이는 폭스바겐(이치폭스바겐+상하이폭스바겐)과 GM에 이어 중국 내 3위에 해당한다. 이로써 현대·기아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2011년 9.8%에서 작년에는 10.5%로 뛰어올랐다. 중국사업 시작 10주년을 맞는 올해 북경현대는 97만대, DYK는 50만대의 승용차를 중국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기자는 지난 1월 7일부터 사흘간 베이징, 장쑤성(江蘇省) 옌청(鹽城)과 난징(南京)의 현대·기아자동차 공장 및 판매본부들을 돌아보았다.
 
 
  舊型모델도 竝行 생산
 
완전자동화된 차체제작공정. 여기 사용되는 로봇은 현대로템에서 제작한 것이다.
  북경현대는 2002년 현대자동차와 북경기차(北京汽車·중국에서는 자동차를 ‘汽車’라고 함)가 50대 50으로 설립한 회사다. 북경현대는 베이징 순이구(順義區)에 3개의 공장을 갖고 있는데, 3개 공장 모두 각각 3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작년에 북경현대는 85만5995대를 판매해 중국시장에서 상하이GM, 이치(一汽)폭스바겐, 상하이폭스바겐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일본계 합자회사인 동풍닛산과 이치도요타가 그 뒤를 이었다.
 
  기자가 돌아본 공장은 북경현대 제2공장. 2008년 4월 8일 제2공장 준공 당시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자칭린(賈慶林) 당시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미국, 유럽, 일본 등 모든 글로벌 업체들이 진출한 자동차 격전장인 만큼, 중국에서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고는 현대·기아차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조근희(趙槿熙) 북경현대 홍보부 과장의 안내로 돌아본 2공장은 마지막 공정(工程)인 의장(艤裝)공정을 제외하면 거의 전 공정에서 노동자들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동화되어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위에동(아반떼HD), i30, ix35, YF쏘나타 4종류의 차량들을 한 라인에서 뽑아 내는 혼류(混流)생산라인이었다. 순간 10년 전 보았던 독일 딩골핑의 BMW 공장 모습이 떠올랐다. 북경현대는 이외에도 모니카(EF쏘나타), 엘란트라(아반떼XD), 투싼, 베르나(액센트), 랑동(아반떼MD), 싼타페 등 모두 12개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단종(斷種)된 구형 모델들도 여전히 생산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중국에 자동차 수요층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징(南京)에 있는 DYK의 김형곤(金炯坤) 판매본부 부본부장(이사대우)은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단돈 2000~3000위안이라도 싸면 구형모델이라도 그쪽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노동자 평균 연령 25세
 
  노동자들 대부분이 국내 공장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25세라고 한다. 국내 현대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0대 중반인 것과 비교된다. 평균 임금은 7000위안(약 119만원) 수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보장되며, 국내와 같은 개념의 비정규직이나 사내(社內)하청노동자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자들보다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이들은 일종의 ‘조건부 계약직’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고용시(時)에는 3년, 2차 고용시에는 5년 기한으로 고용하며, 그 이후에야 종신(終身)고용으로 전환하는데, 이유 없는 해고나 계약갱신 거부는 안 한다고 한다. 종래에는 1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했으나, 2008년부터 노동자들을 한층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한 것이다. 노동자 권익보호, 복지제도의 확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근희 과장은 “중국 노동자들은 한 회사에 종신고용되는 것보다는 현재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몸값을 높인 후 외국계 합자기업 등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어 가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노조(勞組) 격인 공회(工會). 조 과장에 의하면 공회는 생산성 향상 결의대회 등을 앞장서서 여는 등 회사 발전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10년 전 옌타이(煙台)의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이나 장자항(張家港)에 있는 포스코공장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세대 중국 노동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들었는데, 공회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공회가 중국공산당 산하조직이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
 
 
  ‘중국 전략형 모델’ 출시
 
북경현대 베이징 2공장 본관에 전시된 위에동 1호차. 정몽구 회장, 궈진룽(郭金龍) 당시 베이징시장 등의 사인이 보인다.
  북경현대는 회사 설립 이듬해이자 사업을 시작한 첫해인 2003년 5만대를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 12월까지 누계 411만5000여대를 판매했다. 이는 중국 내 자동차 회사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라고 한다. 북경현대 관계자들은 이를 ‘현대속도’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에 따라 북경현대의 매출액도 2003년 10억 달러에서 2013년 124억 달러로 늘어났다.
 
  북경현대 본사에서 만난 북경현대의 권혁동(權赫東) 판매본부장(상무)은 북경현대의 성공요인으로 품질을 최우선시하면서 시장상황에 맞게 적기(適期)에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중국 전략형 상품’을 내놓은 점을 꼽았다. ‘중국 전략형 상품’이란 중국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개량한 모델을 말하는데, 예컨대 2008년 출시한 위에동의 경우 국내 모델인 아반떼XD보다 차체 길이, 너비, 높이를 각각 17㎜, 50㎜, 60㎜ 크게 설계했으며 고급제품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크롬 도금(鍍金)을 했다. 랑동은 국내 아반떼MD보다 폭을 40㎜ 키웠다(기아의 K3도 국내 모델보다 폭을 40㎜ 키웠다). 이는 차체가 크고 번쩍이는 차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기호(嗜好)에 따른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중국인들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에서 경차(輕車)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북경현대 본사에 전시된 신형 싼타페는 머플러가 두 개였는데, 이것도 머플러 개수가 많으면 차가 힘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상하이 소재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 창립자 겸 전무인 숀 레인(Shaun Rein)은 그의 책 《값싼 중국의 종말(The end of cheap China)》에서 “글로벌 브랜드라 할지라도 중국시장에 진출할 때는 이미지를 현지에 맞게 조정하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중국 소비자들은 고급 제품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중국 진출 브랜드들은 고급화를 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경현대는 이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準중형 승용차들이 주력
 
  북경현대의 주력 차종은 중국에서 ‘C급’(한국의 소형~준중형)으로 통칭되는 베르나(한국의 액센트), 위에동 등이다. 베르나는 작년에 20만3589대, 위에동은 21만3974대를 팔았다. 금년도 판매 목표는 베르나 19만대, 위에동 17만대다.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1600cc급 이하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3.2%에 달하는데, 북경현대는 바로 이 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이다. 특히 폭스바겐 등 선발(先發)주자들이 중국시장에서 구형(舊型)모델에 안주하고 있을 때, 신형(新型)모델을 과감히 투입한 것이 주효했다.
 
  국내에서 작년 4월 출시한 싼타페는 중국에서는 그리 늦지 않은 12월에 출시했다. 심지어 국내에서 2010년 11월 출시한 베르나(액센트)의 경우, 중국에서는 2010년 8월에 출시했다. 중국시장에 먼저 내놓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경영컨설턴트 숀 레인은 “중국 내 신제품 출시를 너무 늦추는 실수를 저지르는 회사가 많다”면서 “다른 시장에서 출시하기 전에 중국시장에서 출시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경현대가 C급 승용차 시장에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작년에 YF쏘나타는 10만454대, 그리고 중국에서 수요가 늘어 가고 있는 SUV차량인 뉴싼타페는 7000대, 투싼은 5만6176대가 팔렸다.
 
  권혁동 판매본부장은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단계에서는 C급 차종에 주력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면서 “2009년부터는 중고급차 확대전략을 추진, D(중형)+S(SUV)급 차종의 판매 비중을 작년에는 36%까지 끌어올렸으며, 금년에는 이 비율을 40%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경현대가 중국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지만,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중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판매하고, 중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중국에 세금을 내고, 거기서 번 돈을 다시 중국에 투자하는 구조라면, 현대자동차는 과연 ‘한국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례로 북경현대는 1만1706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이 중에서 한국에서 나간 주재원은 110명에 불과하다.
 
  이런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발상’에 대해 북경현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로 현대자동차가 중국시장에서 살아남아야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국내의 회사와 일자리도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중국 사업의 의미
 
  임성봉(林成峰) 브랜드전략과장은 “합자회사여서 수익을 중국측과 50대 50으로 나누고 있고, 얼마나 국내로 송금하는지는 밝히기 어렵지만, 그중 상당한 액수가 한국으로 가고 있다”면서 “언젠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던 한 언론인은 얘기를 듣고 나더니 ‘1970년대에 중동(中東)에서 달러를 벌어 왔듯이 지금은 중국에서 위안화를 벌어 오는 것이군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단은 옌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숀 레인의 《값싼 중국의 종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한 이탈리아인 사업가의 사례를 소개한다.
 
  <내가 인터뷰했던 한 이탈리아 기업가는 패션 액서서리 브랜드 제조시설을 중국에 세움으로써 이탈리아의 일자리를 보존하였고, 심지어 늘리기까지 했다.
 
  그는 마케팅 목적으로 브랜드 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급 제품 생산은 계속 이탈리아에서 하고, 비교적 저가 제품은 중국에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생산 부문이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생산하는 저가라인 제품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이탈리아의 생산시설을 보존했다. (중략) 이 기업가의 예는 중국의 부상이 폴 크루그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자리를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전하는 회사에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북경현대와 DYK가 국내 산업을 공동화(空洞化)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국내의 현대·기아자동차와 국내 일자리를 보존하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랄 뿐 ….
 
  문득 전날 중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조선일보》 기사가 떠올랐다. 작년에 현대·기아차의 한국 내 판매량이 사상(史上) 처음으로 중국·미국에 밀렸다는 내용이었다. 현대·기아차는 작년에 중국에서 134만대, 미국에서 126만대를 판매한 반면, 국내 판매대수는 115만대에 그쳤다. 2011년에는 한국>중국>미국의 순이었다.
 
 
  기아車 유치 위해 공항 개설
 
베이징 시내 택시의 90%이상은 북경현대에서 만든 것이다.
  1월 8일 아침 중국 국내선 비행기 편으로 DYK 공장이 있는 장쑤성 옌청으로 이동하기 위해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으로 향했다. 북경현대의 엘란트라, EF쏘나타급 택시들이 아침의 베이징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 번 봤던 풍경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달랐다. 북경현대는 2005년부터 베이징시에 택시를 공급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6만6000여대를 공급했다. 현재 북경현대가 만든 택시는 베이징 택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으며, 2014년말이면 그 비율은 95%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옌청은 상하이(上海)에서 북쪽으로 280㎞ 떨어진 위치에 있는 도시. 황효순 한양대 교수에 의하면 옌청은 그 이름처럼 과거 소금 산지(産地)로 이름났던 곳으로, 명·청(明淸)시대에는 소금판매로 부(富)를 축적한 상인들이 자식들을 공부시켜 과거급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공산측 주력 중 하나였던 신사군(新四軍)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비행기가 옌청공항에 내리기 전 창밖을 보니 중국공군 전투기들이 보였다. 활주로를 오가는 차량들에는 ‘鹽城民航站’ 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장(機場·공항의 중국식 표기)’이 아니라 ‘민항참’이라니, 생소했다. 공항은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작았다.
 
  나중에 DYK 관계자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옌청공항은 원래 중국공군기지였다고 한다. 기아자동차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시 당국에 항공편 개설을 요구해서 공군비행장에 민간공항 기능을 덧붙였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1주일에 네 편 전세기가 취항하고 있다고 한다. DYK가 내는 세금이 옌청시 세수(稅收)의 40%에 달한다고 하니,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호판 전쟁
 
장쑤성 옌청의 DYK공장에서는 작년에 누계 200만대의 승용차를 생산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차량을 보니 번호판이 ‘魯(로)’로 시작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있는 대부분의 차량들은 장쑤성을 의미하는 ‘蘇(소)’로 시작하고 있었다.
 
  가이드인 조선족 이람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상하이나 장쑤성에서는 새로 번호판을 취득하기가 어려워서 산둥성 번호판을 취득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나, 경제가 발전한 동부 해안의 성(省)들에서는 교통체증과 공해 때문에 자동차 신규등록을 억제하고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베이징에서는 폐차(廢車)되는 차량 대수의 범위 내에서 추첨으로 신규등록을 받아 주는데, 그 수는 연간 24만대 정도라고 한다. 상하이에서는 번호판을 경매(競賣)로 취득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내수(內需)진작과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자동차 하향(下鄕)정책, 즉 농촌지역에 대한 자동차보급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이익단체나 지방 및 지역 공무원들, 그리고 다양한 정부 부처들이 중앙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서로 경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당연히 단일구조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숀 레인의 충고가 생각났다.
 
  공장으로 향하는 도로에서는 기아 옵티마 택시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기는 역시 DYK의 안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옌청의 기아공장, 베이징 임금의 60% 수준
 
  DYK는 기아자동차 50%, 강소열달투자유한공사와 동풍기차유한공사가 각각 25%의 지분을 가지고 2002년 7월 설립한 회사다. 이듬해인 2003년 5만대를 생산,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누계 200만대를 생산, 판매했다. 작년에는 48만566대를 판매, 중국시장에서 8위를 차지했다.
 
  DYK는 옌청에 2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제1공장에서는 5개 차종 14만대를, 제2공장에서는 4개 차종 30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직원 수는 4433명, 그중 기아 본사에서 나간 주재원은 45명이다.
 
  기자가 둘러본 제2공장에서는 K5, K3, K2, 포르테 등 4개의 차종을 생산하고 있었다. 북경현대 공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장 공정을 제외하면 노동자들을 보기 힘들 정도로 자동화되어 있었다.
 
  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26세, 월급은 북경현대의 60% 수준이라고 한다. 임금뿐 아니라 택시 기본요금 등 모든 물가 수준이 베이징 등 대도시의 60% 선이라고 한다.
 
  근무 형태는 10시간씩 주야 2교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8시간씩 3교대, 일본에서는 공장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역시 주야 10시간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국내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노조의 요구로 9+8시간 주간 2교대제를 지난 1월 7일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근무시간은 적어지고,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도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한순간 ‘이러니 중국으로 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DYK는 현재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제3공장을 짓고 있다. 제3공장이 완공되면 DYK의 생산능력은 74만대로 늘어난다. 제3공장 조감도를 보니 제1, 제2공장과는 달리 기술센터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북경현대 역시 제3공장에는 기술센터가 들어 있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제3공장 설립을 허가하면서 조건으로 단 것이라고 한다. “시장과 기술을 맞바꾼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의지가 느껴졌다.
 
 
  난징의 反日감정
 
저우샤오쥔 사장(원안)이 경영하는 난징의 기아 딜러숍. 기자환영 전광판이 눈에 띈다.
  DYK의 옌청2공장을 돌아본 후 이 회사의 판매본부가 있는 난징(南京)으로 향했다. 난징까지의 거리는 300㎞. 고속도로를 한 번도 막히지 않고 씽씽 달렸는데도 3시간30분이 걸렸다.
 
  난징은 《삼국지》의 오(吳)나라 손권이 도읍했던 곳이자, 명(明)나라의 초기 도읍지였다. 지금은 타이완으로 밀려난 중화민국의 공식 수도이기도 했다. 중·일(中日)전쟁 당시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30여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곳이기도 하다. 가이드인 이람씨는 “난징에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택시를 타려고 하면, 기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본 후 일본인이라면 승차를 거부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일(反日)감정은 중국 자동차시장에 그대로 반영된다.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분쟁으로 중·일관계가 악화됐던 작년에 중국의 일본계 합자 자동차회사들의 시장점유율은 2011년 21.4%에서 2012년 19.2%로 하락했다. 작년 11월 통계를 보면, 일본계 업체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평균 32.7% 줄어들었다. 작년에 한국이나 유럽계 회사들이 다소 성장한 것은 그로 인한 반사적 이익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1월 9일 아침. 난징시 강녕동산기차원(江寧東山汽車園)에 있는 기아자동차 딜러숍을 방문했다. 강녕동산기차원은 난징에 들어와 있는 세계유명자동차메이커의 딜러숍들이 집결한 곳이다. 도요타, 뷰익, 시보레, 캐딜락, 벤츠, BMW, 렉서스 등 쟁쟁한 브랜드의 외국차 딜러숍들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기아딜러숍이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전광판(電光板)에 간체자로 ‘열렬환영 월간조선 잡지사 배진영 기자’라는 문구가 흐르고 있었다. 가죽점퍼 차림의 저우샤오쥔(周曉軍·45) 사장에게 “이런 대단한 환영은 난생 처음 받는다”고 하자 환하게 웃었다.
 
 
  신부가 혼수로 자동차 사와
 
DYK의 K3 광고. 2012런던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인 장지커(張繼科)를 모델로 기용했다.
  매장을 둘러보았다. 쏘울, 포르테, K3, K5, 스포티지 …. 가격은 국내보다 오히려 더 비쌌다. ‘K2’라는 자동차가 보였다. 생소한 이름이어서 다시 보니, 프라이드였다. ‘프라이드가 이렇게 크고 좋은 차였나. 이 역시 크롬도금을 한 덕분인가’ 싶었다.
 
  이 딜러숍은 4S딜러숍. 판매(sales)와 서비스(service)는 물론 시장조사(survey), 부품(spare) 등까지 처리한다. 딜러숍 뒤에는 정비센터가 있었다. DYK는 중국 전역에 이런 4S 딜러숍 510개를 포함해 670개의 딜러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우 사장은 중국 트럭 메이커인 동풍과 일본 마쓰다자동차의 딜러를 하다가 2년 전 기아딜러숍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 딜러숍을 여는 데 얼마나 들었느냐”고 묻자, 저우 사장은 “3000만 위안”이라고 답했다. 우리 돈으로 약 51억원. 직원은 정비공 30명을 포함해 100여명이라고 한다.
 
  저우 사장은 작년 한 해 동안 난징시에서 2100대의 기아차를 팔았다고 했다. 인기모델은 K시리즈로 작년 12월에는 K2 50대, K3 70대, K5 50대, 그리고 요즘 중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SUV인 스포티지도 60대를 판매했다고 한다.
 
  DYK도 북경현대와 마찬가지로 신차를 조기에 투입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작년 9월 출시한 K3는 중국에서는 다음 달인 10월에 출시했다. 국내에서 2011년 9월 출시한 K2(프라이드)는 중국에서는 그해 6월에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딜러의 입장에서 기아차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그는 “중국자동차보다 기술력이 낫고, 같은 가격대의 자동차 가운데서 품질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통역을 하던 가이드 이람씨의 말에 의하면, 기아차는 신부가 마련해 가는 혼수(婚需)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중국에서 웬만큼 사는 집안에서 결혼을 할 때에는 신랑측에서 집을 장만하는 대신, 신부측에서 자동차를 마련합니다. 이때 대략 15만 위안(약 2550만원) 내외의 차를 사 가는데, 기아차는 이 가격대의 자동차들 가운데 인기가 높습니다.”
 
 
  할부판매 비율 낮아
 
  다만 중국에서는 아직 할부판매는 발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저우 사장은 “자동차 할부를 하려는 경우, 은행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할부업무 자체를 딜러숍에서는 처리하지 않고 은행에서만 취급한다”고 말했다.
 
  난징 시내에 있는 기아차 판매본부에서 만난 김형곤 부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할부판매 비율은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의 8.8% 정도이며, 기아차의 경우 12.7%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경현대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할부로 자동차 사라고 하면, ‘왜 자동차 사면서 이자를 내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었다. 경영컨설턴트 숀 레인은 “중국인 대부분은 서비스에 돈을 더 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도 그런 심리의 발로인지 모르겠다.
 
  다시 난징 시내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현대나 기아차가 눈에 들어왔다. 난징시 변두리에서는 엘란트라가, 시내에서는 쏘울과 스포티지가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라도 하려는 듯 개나리색 액센트 두 대가 나란히 달리는가 하면, 차체가 ‘K5’라고 데칼을 붙인 붉은 색 K5가 바로 우리 일행을 태운 차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기아차 판매본부의 김형곤 부본부장은 북경현대에서 5년간 근무하다가 6년 전 DYK로 옮겼다. 그동안 찾아갔던 중국 도시가 400여개에 이른다는 중국통(中國通)이다. 그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국토가 넓고, 기후·문화·발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다양하며, 신·구형차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둘째, 정부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셋째, 구매자의 70%가 신규 구입자이기 때문에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약한 반면,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난징성벽을 보며
 
  난징공항으로 가기 위해 시내를 빠져나오는 길에 멀리 난징성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벽돌로 쌓은 전형적인 중국성벽이었다. 문득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가 생각났다. 200년 전 중국을 다녀온 박제가는 중국의 모든 것-벽돌을 이용해 쌓은 성벽, 수레, 심지어 창호 바르는 방법-에 대해 찬탄했다. 그리고 우리의 풍습은 물론 언어까지 중국의 것으로 바꾸어 오랑캐 신세를 벗어나자고 역설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중국’과 ‘중국에서 만든 것’은 우리에게 선망(羨望)의 대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면 한 수 아래로 낮추어 보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런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지난 반(半)세기 동안 지속됐던 ‘잘살아 보려는 의지’였고, 그 의지를 구체화한 것은 바로 기업들의 힘이었다. 기업은 번영의 생장점(生長點)이었던 것이다. 그 번영의 생장점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것, 그게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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