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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30주년, 韓中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韓中갈등, 어떻게 풀어야 하나?

중국의 압력에 원칙 있게 대응한 호주를 통해 배워야

글 : 황효순  한양대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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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코로나19 책임론’ 제기 후 중국과 갈등… 미국 등과 안보협력 강화하고 對中 의존도 줄이는 계기로 삼아
⊙ “서로에 대해 과거에는 너무 몰라서, 지금은 너무 많이 알아서 反感”(중국공산당 간부)
⊙ 중국인들, 2000년에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가난하며, 중국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여겨
⊙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의 승리는 월드컵의 悲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인”이라며 한국 비방
⊙ 2030세대의 약 90%가 ‘중국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 여겨

黃孝淳
1965년생. 한양대 사학과 졸업, 한양대 문학박사 수료(중국경제사), 미국 동서문화센터 경제학 박사 / 중국 北京대학·財經대학 초빙교수, 미국 하버드 동아시아센터 초빙교수, (사)중국지역개발연구원 원장,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외국인 고문,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 한양대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 / 저서 《한비자의 독설》 《사마천이 찾아낸 사람들》 《중국근현대의 이해》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역서)
지난 2월 9일 나라지킴이고교연합 등 우파 시민단체들은 서울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인권 문제 해결, 올림픽 반대를 주장하는 반중 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한중(韓中) 관계는 1992년 수교(修交)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 양국 간 협력의 범위와 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중국 교역량은 1992년 63억 달러에서 2021년 3015억 달러로 46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을 기준으로 볼 때 최근 5년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수입국이다. 한국 역시 중국 교역 총액에서 6% 비중을 차지하는 3대 교역국이다. 중국 전체 수출·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5%, 8%다. 중국은 2013년 일본을 제치고 한국 수입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이래 2019년까지 7년 연속 한국의 최대 수입국 자리를 유지했다.
 
  한국의 대중국 투자액(실행액 기준)도 늘어나는 추세다. 1992년 수교 당시 1억4000만 달러에서 2021년 66억8000만 달러로 약 47배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이 한국에 집행한 투자신고금액은 2억1000만 달러로 1992년의 199배 수준에 달했다. 지난 30년간 누적 투자액도 169억 달러로 집계됐다.
 
 
  ‘한국 대통령은 김일성’
 
  동반자이기는 하지만 지난 3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때론 아픔도 위기도 분명히 존재했다. 수교 1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성경제연구원(SERI)에서 출간된 《중국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 보고서(2000)는 한중 양국이 10년을 함께 걸어왔지만, 여전히 양국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1100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인 87%가 1만2000달러를 훨씬 넘어선 한국에 대해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가난하며, 중국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라고 응답했다.
 
  당시 중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조종당하는 나약한 국가’이며 응답자의 60% 이상이 ‘한국의 역사와 정치, 사회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한국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중국에 사상·문화·정치·종교, 심지어 경제 분야에서 혜택을 입었고, 한국 문화의 기원은 중국에 전적으로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을 묻는 질문에는 무려 19%가 ‘김일성’이라고 대답을 했고, 약 38%가 ‘모른다’고 답했다.
 
  체계적인 학습이나 전반적인 교류가 부재(不在)한 상태에서 생길 수 있는 현상이라고 백번 양보를 한다 해도, 중국인이 한국을 여전히 변방의 ‘소국(小國)’으로 보는 중화주의(中華主義) 역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고, 자신들의 의지로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고질적인 착각과 오해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2002 월드컵의 기억
 
  한중수교 10주년 기념행사와 각종 문화 교류 행사가 한창이던 2002년 6월,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의 개최국으로서 전례 없는 ‘축구 열풍’이 일고 있었다.
 
  한국-이탈리아전이 열리던 날, 한국 문화계·교육계 주요 인사들과 중국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개최하는 수교 1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단에게는 중국과의 수교 10주년보다 축구 강국 이탈리아를 꺾고 8강(强)에 진출하는 것이 훨씬 더 큰 관심사였다. 화려하게 준비된 만찬장의 분위기는 그래서 어색했다. 이를 눈치챈 중국 측의 배려로 만찬은 일찍 종료되었다. 한국 대표단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숙소의 로비에 마련된 대형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이날 한국팀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한국인들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그런데 이 경기를 중계하던 중국국영방송(CCTV)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중계방송을 하던 진행자는 흥분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는 한국의 기쁨을 축하하는 눈물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패배 때문에 분함을 이기지 못해 흘린 눈물이었다. 나중에 강력한 항의를 받은 방송사는 사과방송을 하고 진행자를 교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중국국영방송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접한 중국의 각종 매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반자’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청년보》를 비롯한 각종 매체의 보도 내용, 중국인의 반응은 한국이 세계의 축구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한 사건보다 더 놀라운 것이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 ‘신랑망(新郞網)’은 “한국의 승리는 월드컵의 비애(悲哀)”라는 큼지막한 머리글을 올렸고, 이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인의 고귀한 품성을 배워야 하는가?” 등의 조롱과 비난의 글이 넘쳐났다. 심지어 중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매체인 《주간체육(週刊體育)》은 격앙된 어조로 “한국의 정치에 월드컵이 강간당했다”라는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오전에 방영된 뉴스에서는 “한국의 붉은 열풍이 마치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의 한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는 논평을 쏟아냈고, 이탈리아전이 진행될 때 중국 각 지역에서 한국인 유학생들과 중국인 사이에 벌어졌던 긴장된 순간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 유학생들의 다소 과도한 응원이 발단이긴 했지만, ‘중국 학생과 시민들이 한국 학생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를 불태울 정도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불과 하루 전 중국공산당과 중국 공청단 간부들이 한중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쏟아낸 무수한 우호적 표현과 중국 관영통신, 각종 매체, 그리고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한중수교는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누리꾼들을 통해 당시 중국의 비난과 조롱에 찬 표현들은 여과 없이, 혹은 증폭되어 한국에 전달되었고, 중국의 태도에 분개하는 여론이 국내에서 확산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한국과 중국은 불안한 10년을 지나고 있었다.
 
 
  불안한 동반자 관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함께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조선DB
  이러한 불안한 동반자 관계 속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해마다 새로운 수치를 갈아치우면서 무역과 투자 등 경제 분야는 물론 정부 간, 사회단체 간의 인적(人的) 교류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중국의 주요 지방정부는 앞다투어 한국의 여러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했고, 주요 대학들과 연구소는 한국의 교육기관 연구단체와 소통의 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공자학원과 같은 중국 정부의 전위(前衛) 역할을 하는 단체들이 한국의 주요 대학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기술 교류, 인적 교류의 명목으로 400여 곳의 기관과 매년 약 200만 명에 육박하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베이징 전승절(戰勝節)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동반자 관계는 양국 국방장관이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군사적 협력 관계 구축을 논의하는 등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면서 양국 관계는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듯했다. 중국은 당장 한한령(限韓令)을 발동, 중국인의 한국 여행 금지, 한국 여행상품의 판매 제한, 한류 문화의 중국 내 확산 저지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였다.
 
  중국은 과거 달라이 라마의 프랑스 공식 방문 때나, 일본이 센카쿠 열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했을 때와 2012년 센카쿠 열도의 국유화 정책을 발표했을 때, 그리고 몽골이 달라이 라마 방문을 허용했을 때에는 경제교류 중단까지 선언했었다. 그 때문에 한한령은 문화 부문에 국한된 다소 예외적인 조치였다고 스스로 안도하고, 그 피해의 정도가 미미하다고 판단하는 정치인이나 소위 지중파(知中派)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韓中 간 신뢰가 무너지다
 
사드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끊긴 2017년 3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所以等待)’라는 내용의 중국어 안내판이 나붙었다. 사진=조선DB
  하지만 중국의 한한령은 한중수교 25년을 앞둔 시점에서 동반자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분기점(分岐點)이 되었다. 중국이 한한령을 통해 문화 부문에만 제한을 둔 것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특정 산업 분야에 필요했고, 양국의 산업이 이미 벨류체인화되어 한국에 대한 무리한 경제 보복이 자국의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이외 분야인 문화제재를 선택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판단한 부분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던 호주 정부는 대중 정책으로 인한 부정적 기조를 우려하면서 “한국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한한령 발동으로 2017년 105억 호주달러(약 8조7000억원)의 경제 손실을 입었다”는 자료를 인용했다.
 
  당시 중국 관영통신은 한시적인 위협이든, 향후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 관계를 형성하는 궤도에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는 카드가 되었든 한한령은 중국 정부의 매우 효과적이고 강력한 제재라는 보도를 연일 이어갔다.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한국 드라마의 방영 중단은 물론, 대표적인 한류 스타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중국 최고 기업의 광고 모델이었던 한국 연예인들이 전격 교체되는 등 문화예술계에 냉랭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냉한(冷韓) 기류는 콘텐츠 산업에도 강력하게 적용되었다. 공동 제작하던 영화나 드라마의 한국인 배우들이 전격 교체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오락 프로그램의 허가 및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여행 및 인적 교류의 부문에서도 다양한 조치들이 추진되었다. 여행객의 비율을 축소하는 조치에서 한중 간의 전세기 운항이 전면 금지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한국의 여행·숙박·쇼핑업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중국인 유학생들로 넘쳐나던 한국의 주요 대학들은 급격히 감소한 중국 학생들의 빈자리로 인한 시름이 커져갔다.
 
 
  反中정서
 
  일반적으로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하고, 이와 관련하여 정부 차원의 강력한 조치가 시행될 때에도 민간 교류나 문화 교류의 영역은 여지를 남겨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한국에 대해서만은 보복 수단의 하나로 ‘문화(한류)’를 선택했다.
 
  이는 산업구조상 제조업이나 기타 서비스업의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가장 역동적인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고, 문화 전파의 영향력을 최고로 확대시킬 수 있는 문화 콘텐츠와 인적 교류 부문을 통제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즉각적인 압박의 효과를 올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압박은, 한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부분적으로 경제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중국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문화 콘텐츠에 민감한 2030세대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반감(反感)을 넘어 혐오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IT 강국의 젊은 세대들의 손가락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지구촌 곳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매년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국가별로 측정하는 퓨리서치의 보고서는 2017년 이후 중국에 대한 각국의 부정적 평가가 큰 폭으로 확대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지난 5년간 조사 결과의 평균을 구해보면 조사대상이 된 17개국의 중국을 보는 인식은 북미(北美)에서는 69%가, 유럽에서는 75%가 중국이 싫다고 답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는 폭이 넓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이보다 10% 이상 더 높은 반중(反中)정서를 보여줬다. 일본은 88%, 호주도 거의 80%에 육박하는 반중정서를 표시했다.
 
  한한령으로 촉발된 반중정서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의 6·25전쟁 참전과 같은 역사 문제, 한복이나 김치, 단오절 등의 문화 기원 문제로 확대되었다. 여기에 미세먼지, 서해상의 중국인들의 불법 어업 문제, 스포츠 분야에서의 판정 시비 등의 문제가 이어지면서 반중정서는 그 끝을 모르고 증폭되기 시작했다. 자유와 인권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한국의 미래 세대는 중국의 티베트·위구르 인권 탄압, 홍콩 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보며 중국을 ‘별종 집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최근 한 언론과 갤럽의 심층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반중정서는 전 연령대별로 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20대와 30대의 반중정서는 일본이나 심지어 북한에 대한 감정보다 더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88%는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78%가 중국이 향후 한국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거의 90%가 ‘중국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반한(反韓)감정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중국 정부나 한국과의 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각종 기관과 단체의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말을 아끼고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난세를 극복하는 자신들의 고유한 미덕으로 삼고 있는 ‘후흑[厚黑·‘후면흑심(厚面黑心)’의 약자로 ‘얼굴을 두껍게 하고, 검은 마음을 숨긴다’는 의미]’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과격한 표현을 보면 중국인들의 한국을 보는 시각이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훨씬 넘었다는 깊은 우려가 앞선다.
 
 
  中, 코로나19 책임론 제기한 호주에 보복
 
스콧 모리슨 전 호주 총리.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주의 명문대학 퀸즐랜드대학은 폐교(廢校)를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의 재정난에 봉착했다. 호주의 다른 주요 대학들 역시 전례(前例) 없는 운영난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하여 스콧 모리슨 당시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중국 정부의 발표에 신뢰감을 잃었기에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의 코로나19 책임론을 거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청징예(成競業) 호주 주재 중국 대사는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발생 원인 조사를 진행할 경우 중국 학생과 관광객의 호주 방문이 끊길 수 있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호주 전역의 중국 유학생들이 등록금 납부를 거부하거나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호주 정부관리는 물론 교육기관의 담당자들은 퀸즐랜드대학 총장의 “호주에 이렇게 많은 중국 유학생이 있다는 것은 충격”이라는 발언에 공감하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러한 조치로 호주의 대학들은 한 학기에 80억 호주달러(약 6조5000억원)의 등록금 손실을 떠안게 되었다.
 
  중국 정부 차원의 보복도 이어졌다. 우선 호주산 소고기 수입을 부분 중단했다. 호주 소고기 수출의 24%를 차지하는 중국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산 보리에 대해 최대 80%까지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 중국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중국은 국내 방적공장에 호주산 면화 사용 자제를 지시했고, 이어 호주산 석탄·목재·랍스터·와인·구리·설탕 수입을 제한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더 나아가 중국은 호주 내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인종 차별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자국민의 호주 여행 및 유학을 제한하고 나섰다. 또한 중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언론인과 학자를 대상으로 압수수색 및 입국 금지 등의 조치를 내놓으면서 양국의 갈등은 외교적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호주의 단호한 대응
 
  중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호주는 화웨이의 5G 장비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공식 반박하는 한편, 신장위구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사례를 공식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면서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는데, 이는 조작된 사진으로 밝혀졌다. 이는 호주 국민의 감정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호주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중국에 반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른 나라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리처드 맥그리거 로위연구소 연구원은 CNN에 “중국이 호주를 그토록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 다른 국가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직간접적으로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나라에 중요한 본보기를 제공했다. 단, 중국이 원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호주는 대중(對中) 갈등의 해법으로 우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중국의 횡포에 대해 공감대를 갖는 국가들과의 연대(連帶)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역사관·세계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무시하거나 용인한다면 파국(破局)은 물론 적대적 행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호주는 이를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다양한 반중협력체의 회원국으로 참여함으로써 국제협력을 통한 대중국 대응 전략을 세웠다. 안보를 위한 공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협의를 통해 기밀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대중 의회 간 동맹(Inter-Parliamentary Alliance on China·IPAC)’을 통해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원을 촉구했다. 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원료와 자원에 대해 상호 공급망을 확보할 목적으로 ‘공급망 복원구상(SCRI·Supply Chain Resilience Initiative)’을 통해 일본·인도와 공조(共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관련 학과 인기 급락
 
  한중수교 30주년을 정리해보고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 설정 방안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고 중국의 고위 관리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몇몇 중국인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했다.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한국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한반도의 전쟁을 거치며 오랜 적대와 단절의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세계는 변화하였고 중국과 한국 모두 미래를 향한 발전된 사회에 대한 염원 때문에 동반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3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과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서 오해와 반감을 가졌지만, 지금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에 반감을 갖는 상황이다. 당연히 지금의 오해와 반감이 훨씬 어려워 보인다.”
 

  한때 인문대학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고, 합격 가능 점수도 높았던 중국 관련 학과들은 이미 가장 경쟁력이 낮고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중국 유학이나 여행에 대한 관심도 급감했다. 중국 문화와 중국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금년 초 중국 베이징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코로나19 시국(時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스포츠를 통한 교류로써 한중 관계의 복원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한국의 많은 친중(親中)단체는 앞다투어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중수교 30년을 연결시켜보려는 행사를 개최했다.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올림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이 잇따르면서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최근 양국 정부나 무역단체, 대학에서 연이어 한중수교 30주년 기념포럼들을 개최하고 있지만 이러한 추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공개 장소에서 한국 정부·학자 질책한 중국 학자
 
  중국 정치 지도자나 중국 대사는 여전히 ‘화려한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한 압박과 위압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한국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국제문제연구원장 쉬부(徐步)는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보복할 게 아니라 북핵(北核)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의 한중 갈등의 원인은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와 대북 정책에 원인이 있다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와 한국 학자들을 질책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代案)이라는 것은 ‘북한을 믿고 인내하면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주장에 혹해서, 또 물질적 지원이나 화려한 문구로 포장된 환대에 중독된 친중 세력들은 여전히 ‘미국을 견제하고, 현재 한국에 가장 희망적 미래를 보장할 중국과의 균형 있는 외교’와 같은 소리를 되뇌고 있다.
 
  상호존중과 동반자의 관계는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겪어오면서 중국의 방대한 시장과 자본에 의한 의존도는 함께 높아졌고, 이에 비례하여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위협의 강도도 높아졌다. 내정(內政)간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를 향한 목소리에도 ‘중국 정부의 입장과 의중을 고려하라’는 선을 넘는 압박을 가해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국 중심의 세계질서 개편, 중화민족을 전면에 내세우고, 중국의 국익(國益)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민족주의적 애국주의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한 원만한 동반자의 관계는 요원해 보인다.
 
 
  三十而立
 
  호주와 중국은 그간의 갈등으로 인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호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제적 협력이 부분적으로 재개되고 있다. 중국에 대해 명확한 태도와 양보할 수 없는 선을 확고하게 보여준 호주의 대처 방안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한중수교 3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G20 회의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가 NATO 회의에 초대되어 외교적 행보를 막 마친 시점이다.
 
  이 행사를 앞두고 중국 정부 대변인은 “중국의 옛말에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다. 30년이 되면 뜻을 세운다는 말이다. 한국 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위압적 뉘앙스가 한껏 담겨 있는 논평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 교장은 “이립(而立)은 ‘입기이례이입인이례(立己以禮而立人以禮·먼저 자기를 일의 이치로써 세우고 그 후에 다른 사람을 일의 이치로써 세워준다)’의 압축적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상대방의 선택을 강요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걸맞은 자세와 태도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뜻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진주혼(眞珠婚·결혼 30주년)을 맞는 한중 양국의 각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주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는 ‘순결’ 내지 ‘순결을 바탕으로 한 신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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