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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30주년, 韓中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美中갈등과 한국의 선택

프랑켄슈타인이 민주주의 문명을 지배할 수는 없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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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中 디커플링 격화… 한국산 반도체를 美中에 동시에 파는 시대 끝나
⊙ 우크라이나 침공한 러시아는 중국에 비하면 ‘리틀 프랑켄슈타인’에 불과
⊙ “유럽이 어떻게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말은 무식한 소리… 나토는 글로벌 GDP의 6할 차지하는 선진국 집단
⊙ 中, 중국 내 외국 기업 제품의 제조·공정에 관한 기술 전부를 중국 정부에 넘기는 ‘국가표준’ 강행
⊙ 美, 미국산 첨단 제품이 포함된 물건의 중국 수출도 금지하는 ‘反중국 관련법’ 추진
⊙ 서방은 古代 그리스 이래 수평적 동맹 관계에 익숙… 아시아는 동맹 개념과 거리 멀어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지난 2월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국기가 게양대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조선DB
  “어쩌면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We may have created a Frankenstein).”
 
  리처드 닉슨 전(前) 미국 대통령이 1994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윌리엄 사파이어에게 남긴 말이다. 사파이어는 1960년대부터 닉슨 연설문 작성 스태프로 일했던 사람이다.
 
  여기서 ‘프랑켄슈타인’은 중국을 의미한다.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가 창조해낸 괴물 인조인간의 대명사다. 과학적 명성을 얻으려던 빅터 박사의 야심에 의해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난 괴물은 비관·저주에 사로잡혀 자신을 창조한 빅터 박사를 공격, 결국 죽음으로 내몬다.
 
  중국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인 것은 미국이다. 닉슨은 1972년 2월 21일 베이징(北京)을 전격 방문, 중국을 국제무대로 끌어냈다. 미국과 닉슨이 빅터 박사인 셈이다. 빅터 박사가 그러했듯이 미국도 괴물 인조인간의 복수로 사라질 수도 있다. 닉슨 최후의 메시지는 반성인 동시에 공포라 볼 수 있다.
 
  셸리의 소설 속의 괴물은 자신을 만든 빅터 박사를 죽이는 정도에서 끝난다. 중국이라는 이름의 프랑켄슈타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파괴할 수도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頂上)회의에 참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극동(極東)의 한반도까지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한국도 러시아에 맞설 수밖에 없다. 물론 고통 분담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중국에 비교해 보면 ‘리틀(little) 프랑켄슈타인’에 불과하다. 경제력이라는 측면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무역시장에서의 중국의 비중은 약 20% 정도다. 러시아는 2% 정도로, 한국보다도 낮다.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무기 수준도 핵무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빅(big) 프랑켄슈타인’ 중국이 움직일 경우 얼마나 큰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52년을 향한 한국인의 出師表
 
  올해는 한중(韓中)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런 해에는 보통 연초(年初)부터 양국을 오가며 갖가지 기념행사가 벌어지기 마련인데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한국 입장에서 한중수교 30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30년간 양국 간 수출이 몇백 배가 늘었고, 민간 교류가 수백만~수천만 명에 달한다거나, 양국이 얼마나 가깝고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칠 듯하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내일의 한중 관계는 결코 밝지 않다.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지만, 정치·경제·외교·군사·문화 어디 하나 희망적인 곳이 없다. 어두운 터널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준비가 필요하다. 산에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힘이 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중 관계와 관련해 이미 시작된 시련과 도전에 맞선 ‘국가적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 축하하고 덕담(德談)을 나눌 때가 아니다. 30년 뒤 펼쳐질 한중수교 60년을 맞는 2052년을 향한 ‘한국인의 출사표(出師表)’가 필요할 때다. 2052년에 가서 회고해도 부끄럽지 않을, 중국에 대한 한국의 결의가 올해 중에 마련돼야만 한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자유·인권·법치는 중국을 대하는 한국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는 자유무역보다 더 중요하다”
 
지난 6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정상회의에서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만났다. 사진=나토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정상회의를 통해 민주주의 세계가 어디로 흘러갈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팬데믹 이후 국제정치가 어떻게 변할지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눈앞의 현안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점(點)과 선(線)’에 불과하다. 2022년 여름, 자세히 보면, 점·선을 연결한 면(面)·입체(立體)의 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인물의 리더십을 통해 최근 세계의 변화를 읽어보자.
 
  첫째, 6월 말 나토정상회의를 주도한 인물인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사무총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보다 한 살 많은 62세인 그는 원래 노르웨이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노동당 출신 정치가다.
 
  “자유는 자유무역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은 스톨텐베르그의 리더십과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언(名言)이다. 이 말은 지난 5월 말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의 핵심 내용이다.
 
  간단히 말해 자유를 위해서라면 자유무역이 훼손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결의다. 정경분리(政經分離) 정책은 글로벌 시대의 이념 중 하나다. 체제와 가치가 다르더라도 ‘지구는 하나’를 외치며 상호 자유무역에 매진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 부(富)를 축적한 뒤에 거꾸로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들이 등장했다. 스톨텐베르그의 말은 정경분리가 아니라 정경일체(政經一體)를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침략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두 번째 주인공은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다. 지난 6월 27일,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을 보자.
 
  “우크라이나 침략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G7 회담은 독일이 주최국으로, 알프스의 엘마우성(城)에서 열렸다. 숄츠의 말은 ‘전쟁이 끝난다 해도 독일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전처럼 회복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은 러시아를 서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앞장선 나라다. 독일은 미국이 적극 반대하는 데도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유럽 수입을 주도했다.
 
  러시아산(産) 에너지 수입 프로젝트는 한국인 귀에도 익은, 선거철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뭔가 거창하고도 역사적 사명처럼 느껴지는, 시베리아-몽골-중국-북한-한국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파이프 프로젝트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통 큰 계획’의 근거는 독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소련)와 전쟁을 벌인 독일도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는데, 한국이라고 해서 못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식의 ‘환상적인’ 논리다.
 
  숄츠 발언의 핵심은 러시아산 가스·석유 수입 문제에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전면 재검토, 아니 장기적으로는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이 속내다. 러시아는 숄츠의 결의를 꺾으려고 선수를 쳤다. 푸틴 제재에 앞장서는 독일에 대한 보복 차원이기도 하지만, 베를린으로 향하는 에너지 파이프를 차단해나가고 있다.
 
  독일의 결론은 원전(原電) 재가동이다. 국민들도 원전 재가동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독일의 원전 정책은 문재인(文在寅)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모델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2011년 독일 내 원전 6개 가운데 3개의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이유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였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나머지 3개도 올해 중에 폐기될 계획이었다. 메르켈은 원전을 대신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확대에 나섰다. 그는 에너지 수입을 통해 러시아와 가까이 지내면서 독일제 물건도 팔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폐기 정책은 메르켈의 생각을 절반 정도 흉내 낸 것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도입을 위해 원전을 폐기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보다 파이프 경유지인 북한·중국과의 경제 일체화가 주목적이었다. 에너지 수입선이란 것은 한번 굳어지면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북한·한국이 에너지로 묶일 경우, 미국과의 관계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G7은 러시아에 맞선 서방 7개 선진국 결의대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독일의 근본적인 변화가 모두에게 천명됐기 때문이다. 독일은 GDP 대비 국방예산 2% 이상 증액을 약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추구해온 정치·외교·군사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日 기시다, 5년 내 국방예산 倍增 선언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 6월 1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IISS 회의에서 국방비 배증을 선언했다. 사진=AP/뉴시스
  세 번째 주인공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다. 6월 10일, 그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주최하는 안보 관련 아시아 최고위자급 회담이다.
 
  기시다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GDP 대비 일본의 국방예산을 5년 내로 100%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현재 연간 국방예산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약 500억 달러 정도다. 2027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의 국방예산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 기시다 연설의 핵심이다. 일본 국방예산 증액 뉴스는 사실 지난 3월 이후 계속되어 온 구문(舊聞)이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발표 장소가 싱가포르라는 점이다. 일본 국방예산 증액 방침과 결의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점령했던 싱가포르에서 발표했다는 것이 놀랍다. 좀 과장하자면, 서울에서 일본 국방예산 100% 증액을 발표하는 것과 같다. 일본이 조금만 움직여도 ‘군국주의 부활, 군사대국 야심’ 운운하는 소리가 스테레오 타입처럼 나오는 한국이 보기에는 흥미로울 정도로 일본의 국방예산 100% 증액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 과거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었던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도 반대는커녕 적극 환영했다. 기시다가 천명한 ‘자유·민주주의·법치에 기초한 항해의 자유’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물론 ‘빅 프랑켄슈타인 중국’ 때문이다. ‘군사대국 일본’은 남중국해 질서를 교란하는 중국에 맞서는 대항마이다.
 
  나토·독일·일본, 세 지도자들의 변화는 2022년의 ‘리틀 프랑켄슈타인’ 러시아와 2022년 이후에 밀려올 ‘빅 프랑켄슈타인’ 중국의 힘자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유럽에 맞서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 타파 국가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준수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평화와 번영을 유지해온 나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두 프랑켄슈타인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를 생각해도 중국보다 나토 선택해야
 
  그러나 일부에서는 듣기도 좋고 말하기도 편한 양비론(兩非論)이나 양시론(兩是論)에 매달리고 있다. 그들은 기존 질서 국가와 세력 타파 국가 양쪽에서의 줄타기도 주문한다. 독일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일본 군사화가 용인되는 상황인데도 ‘이쪽저쪽’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한가로운 주장’을 펼친다.
 
  7월 초 한국의 야당 지도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가에 대해 평가하면서 던진 발언은 무심하고 무책임한 양비론·양시론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그는 “신(新)냉전시대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중국이 자극받는데 참고 있다. 중국에 대해 추가적인 노력을 해서 진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를 통한 가치관의 공유(共有)라는 측면에서의 나토정상회담 참가 의미는 무시한다. ‘중국의 보복’을 암시하는 듯한 경고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던진다. 그가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제’이다. “유럽의 한 국가 인구가 500만~700만 명인데 어떻게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소리도 했다. 기본 팩트는 물론 국제정치의 현황도 알지 못하는 무식한 소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특정 국가와의 만남을 위해 유럽에 간 것이 아니다. 전부 37개 나라 정상이 모인 서방 나토회의, 즉 11억 인구에다 글로벌 GDP 총합 6할 정도의 선진국 집단의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중국·러시아와 그들을 따르는 국가들의 글로벌 GDP 총합은 3할 이하에 그친다. 민주주의 가치관이 아니라, ‘돈’이란 관점에서 선택한다고 해도 중국이 아닌 나토를 선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국가표준’
 
중국 주하이에 있는 반도체 공장. 중국은 ‘중국표준’을 강제하면서 외국의 기술을 탈취하려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경제 문제와 관련해 현재 중국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상황’을 보면, 양비론·양시론은 무지를 넘어선 ‘파멸’ 차원의 괴담(怪談)처럼 느껴진다.
 
  먼저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살벌한 상황부터 살펴보자. ‘국가표준(國家標準)’이란 말은 7월 이후 중국발(發) 경제 뉴스의 키워드 중 하나다. ‘국가표준’은 시진핑(習近平)이 내세운 이른바 ‘중국제조 2025’ 정책의 하부 방침으로, 현재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의 운명을 가를 비수(匕首)가 될 전망이다.
 
  중국 하이테크 제품을 전 세계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 기업들도 중국 정부에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어떤 협력일까? 중국 내 외국 기업 제품의 제조·공정에 관한 기술 전부를 중국 정부에 넘겨야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표준’에 따르면, 중국에서 만드는 한국 반도체의 설계에서부터 재료나 제조와 관련된 기술과 정보 전부를 중국 정부에 제출해야만 한다.
 
  만약 외국 기업이 응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벌금에서부터 추방에 이르는 무제한 제약을 가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반도체 설계도를 넘기지 않을 경우 중국에서 쫓아낸다는 의미다. 전기 자동차의 테슬라는 물론, 아이폰의 애플도 ‘국가표준’의 대상이 된다.
 
  그동안 외국 기업들은 ‘국가표준’ 계획을 설마설마하면서 방관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美中) 디커플링(Decoupling) 가속화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다. 큰일이 없는 한 내년부터 ‘국가표준’이 정식으로 발효될 전망이다. 정보·통신·자동차 같은 하이테크만이 아니라, 의료·에너지·금융 관련 외국 기업들도 그 대상이다. 정보와 기술을 전부 중국에 바치든지, 아니면 나가라는 의미다.
 
 
  ‘박쥐 국가’는 안 통한다
 
  시진핑의 국가표준 강행은 곧 시행될 미국의 ‘반(反)중국 관련법’에 맞선 보복책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의회의 초당적(超黨的) 지지하에 완성 단계에 들어서 있는 ‘반중국 관련법’은 미국 자본의 중국 내 하이테크 투자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심사에 따라 중국 내 투자 여부가 결정된다. 하이테크 산업 자체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나 핵심 부품 소재도 해당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어긋나는 법처럼 느껴지지만, 의원 대부분이 찬성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이미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제한법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미국 내 하이테크 기업의 투자·합병에 나설 경우 사전(事前)에 미국 정부에 보고하고 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검증 과정은 최하 1년이 걸린다. 투자·합병은 시간을 다투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 법에 의하면 사실상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가 불가능해진다.
 
  현재 진행 중인 반중국 관련법과 기존의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합병에 대한 심사권을 보면, 미국 정부가 지향하는 ‘분명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하이테크 산업에 관련된 중국과의 관계 자체를 ‘전부’ 끊겠다는 방침이다. 문자 그대로 디커플링이다.
 

  양비·양시론자들은 중국에서는 중국법에 맞게, 미국에서는 미국법에 맞게 행동하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박쥐 국가’로 나가자는 생각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 미국 의회의 ‘반중국 관련법’이 미국 기업만이 아닌, 외국 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 최첨단 반도체의 경우, 설계나 핵심 부품 일부에 ‘Made in USA’ 제품을 ‘반드시’ 사용한다. ‘반중국 관련법’은 미국산 첨단 제품이 포함된 물건의 중국 수출도 금지할 수 있다. 의류·신발과 같은 일용품은 예외겠지만, 혹여 ‘Made in USA’ 첨단 부품을 사용할 경우 중국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디까지 관여하면서 제동을 걸 것인가?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주무대가 될 것이다. IPEF는 독재정권·반인권 국가와의 경제 관계 차단에 주력할 것이다. 냉전(冷戰) 당시 맹위를 떨쳤던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코콤)’의 21세기 버전이라 보면 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유럽도 이에 참가할 전망이다.
 
  중국이라고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IPEF 강령을 통해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이 차단될 것이다. 만약 어길 경우 ‘강력한’ 벌금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Made in USA’ 첨단 부품 공급도 중단될 수 있다.
 
 
  델로스 동맹의 盛衰
 
  민주주의(Democracy)와 전제주의(Autocracy) 대결은 팬데믹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21세기 국제질서의 기본 프레임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진영의 위기 대응 방식의 차(差)이다.
 
  전제주의 대표주자인 중국과 러시아는 최고 지도자의 판단에 의해 서로의 이익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동맹이 아닌, 지도자 차원의 협력에 불과하다. 시진핑이나 푸틴이 사라질 경우 두 나라가 어떤 관계로 나갈지 알 수 없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 진영은 개인이 아닌, 복수(複數) 국가끼리의 집단안보동맹(Collective Security Alliance)을 통해 전제주의에 맞서고 있다. 법과 제도로 서로 간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 집단 차원의 군사 동맹이 기본이자 기반이다.
 
  서방 동맹은 2500여 년 전 고대(古代) 그리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스는 1000여 개의 도시국가(Polis)로 구성된 나라다. 바다를 낀 땅에 살기 때문에 식량 자급률도 평균 30%에 불과했다. 교역을 하거나, 아예 상대를 공격해 약탈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집단 동맹은 그 같은 상황에서 탄생된 결과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카오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이 동맹이다.
 
  집단 동맹은 그리스의 해상 진출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자 목적이기도 했다. 그리스 당시의 전함이나 수송선은 주기적(週期的)인 보급을 필요로 했다. 아무리 길어도 출항(出港) 후 일주일에 한 번은 물과 양식을 찾아 다른 섬에 들러야만 했다. 동맹 도시국가라면 빨리,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집단 동맹의 핵심은 군사적 영역에 있다. 오늘날과 같은 경제 동맹, 문화 동맹 같은 개념이 애초부터 없다. 죽느냐 사느냐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 해결 방안이 동맹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몰락은 동맹국에 대한 아테네의 폭정(暴政)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기원전 477년에 결성된 그 유명한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은 최전성기에는 330개 도시국가가 참가한 동맹이었다. 그리스 전체 도시국가의 3할 정도가 참여한, 당대 최고(最高) 최대(最大)의 동맹이었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아테네가 주도해서 결성된 군사 동맹이었다. 전함(戰艦) 건조에 필요한 비용을 동맹국 모두가 공동 지출하면서 서로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종주국 아테네는 점차 자기보다 약한 도시국가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전함 건조 비용을 아테네 신전 건립에 전용(轉用)하기도 한다. 현재 아테네에 남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전함 건조 비용 횡령의 증거다.
 
  이처럼 아테네가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동맹 관계도 흔들리게 됐다.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 같은 배경하에서 터졌다.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전횡(專橫)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도시국가들의 대표주자로 나서면서 전쟁이 터진 것이다. 기원전 404년, 27년간의 전쟁 끝에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점령했다. 이와 함께 델로스 동맹도 사라졌다.
 
 
  펠로폰네소스 동맹 vs. 델로스 동맹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전사자 추모 연설을 하는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아테네의 성공과 실패는 ‘동맹’과의 관계에 달려 있었다.
  그리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의 상황은 머릿속에 저장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고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기까지, 약 70여 년간의 역사는 공백으로 처리하기 십상이다.
 
  어떤 역사가 나타났을까? 스파르타가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장기간 국력(國力)을 소모한 탓에 그리스 전체가 힘의 진공(眞空) 상태로 들어갔다. 필자는 이 ‘힘의 진공 상태’ 속에서 아테네의 의미와 위상에 관해 주목하고 있다.
 
  놀랍게도 기원전 377년 아테네를 중심으로 ‘제2차 델로스 동맹’이 부활했다. 적(敵)은 당시 그리스 전체 실력자 스파르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 상황에서 역전된 셈이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스파르타의 기반이 된 집단군사 협력체다. 기원전 550년에 결성된 동맹으로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보다 무려 72년 전에 세워졌다. 그러나 두 동맹은 출발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참가 도시국가가 10여 개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스파르타가 지배하는 도시국가들이 참가한, 수직적 관계의 동맹이다.
 
  아테네 델로스 동맹은 다르다. 서로가 필요로 하고,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창조된 수평적 차원의 자유 동맹에서 출발한다. 아테네의 기금 횡령 이후 신뢰가 깨지고, 결국 동맹도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은 서로가 수평적 관계에서, 자유롭고도 자발적으로 탄생했다는 점에 있다. 자유·수평·자발이 제2차 델로스 동맹을 부활시킨 동인(動因)이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에는 그 같은 요소가 ‘전혀’ 없다.
 
  제2차 델로스 동맹은 이후 기원전 355년 사라진다. 동맹국 내 반란을 틈타 페르시아가 중재자로 나서면서 아테네의 영향력도 줄어든다. 그리스 탄생 집단 동맹의 역사 자체가 사라진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 등장과 함께 그리스 시대가 저물고, 헬레니즘 새 시대가 열린다.
 
 
  동맹 개념이 없는 아시아
 
중국과 러시아는 2021년 8월 중국 서북부 닝샤회족자치구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사진=AP/뉴시스
  그리스 동맹의 역사는 2022년 현재 한국이 참고할 나침반이다. 한미 동맹 같은 1대 1 관계가 아닌, 집단 동맹 체제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십자군 전쟁, 중세유럽,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듯, 서방 역사 자체가 집단 동맹이 진화(進化)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체제도 집단 동맹국 사이의 약속과 의무를 통해 발전돼왔다. 집단 동맹 속의 법과 의무가 국제질서의 근간이 된 것은 물론이다. 기원전 5세기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델로스 동맹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서방은 실패한 집단 동맹을 보면서 수많은 교훈과 모델을 발견·발전시켜왔다.
 
  중국의 경우에서 보듯, 아시아는 동맹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강한 나라가 나타나면 주변 모두 힘을 합쳐 대항하기보다, 조공(朝貢)을 바치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기에 급급했다. 아시아는 집단 사이의 균형에 근거한 힘이 아닌, 혼자 독식(獨食)하는 데 익숙한 문화다. 물론 상대에 대한 신뢰도 없고, 서로 간에 지켜야 할 법이나 의무 같은 것도 간단히 무시했다. 결론적으로 입으로만 떠드는 대의명분(大義名分)만이 발달해왔다. 중국과 북한이 동맹이라고 하지만,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관계에 불과하다.
 
 
  파티는 끝났다
 
  한국산 반도체를 미국과 중국에 동시에 팔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 경제 전반이 디커플링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의 진영은 집단 동맹 체제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냉전 당시 소비에트 이상의 프랑켄슈타인으로 변해가고 있다.
 
  양비론·양시론으로 대응하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끝났다. 독일과 일본이 재무장에 들어가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자유무역이 훼손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2022년의 현실이다.
 
  ‘빅 프랑켄슈타인’ 중국의 모습은 지난 30년간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뻔한 수법이지만, 회유·공갈·압박도 번갈아가면서 행할 것이다. 경제·문화제재는 물론, 중국 군함이나 전투기의 한반도 침범도 일상화될 것이다.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리다가 당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결의와 자세를 미리 분명히 밝히면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강조했듯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자유·인권·법치가 향후 30년간 중국과 함께할 한국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좋은 게 좋다’면서 파티를 벌이던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좋더라도, 자유·인권·법치에 어긋날 경우 나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상위(上位) 문명과 품격의 문화로 나아가는 기본이자 기반이다.
 
  2022년 중국의 문명·문화에 감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한국 2030세대에게 물어보라. 반대로 중국 2030세대에게 21세기 한국의 문명·문화를 얼마나 동경(憧憬)하는지 확인해보라. 힘자랑이나 일삼는 프랑켄슈타인이 민주주의 문명과 문화를 지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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