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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시각

성공과 실패 요인이 공존하는 윤석열의 모순적 언동

감동적인 취임사, 이해할 수 없는 집무실 용산 이전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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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퇴근하는 대통령은 위험하다!

⊙ 문재인 정부가 형해화했던 자유와 국민 復權
⊙ ‘세계 시민’을 의미 있게 쓴 것은 이승만 이후 처음
⊙ 숙소·집무실 분리는 이래서 위험하다
⊙ 動線 노출로 케네디는 암살되었고, 드골·레이건·전두환·박정희는 運이 좋아 살았다!
⊙ 대통령 중심제 나라에서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출퇴근하는 나라는 없다. 차기 대통령들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권리는 없다
⊙ 관저 신축하든지 청와대로 복귀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 사진=조선DB
  전임(前任) 대통령을 곁에 앉혀놓고 한 지난 5월 10일 윤석열(尹錫悅) 제20대 대통령 취임 연설은, 자유(自由)의 가치로써 문재인(文在寅)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연설문에선 ‘자유’가 의도적으로 억압되었는데 이날 연설에선 ‘자유’가 서른 번 이상 나왔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규정하고 ‘세계 시민’이란 말도 여러 번 썼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첫 문장의 ‘재건’이야말로 대한민국과 김일성 세력의 대결에서 조국 편에 서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의 종족주의적이고 반(反)자유적인 좌익 이념을 규탄하는 핵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계급투쟁론으로 ‘사람’을 해석, ‘사람이 먼저다’라고 해놓고는 ‘우리 편 사람만 먼저’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던 문재인 정부하에서 ‘국민’은 형해화(形骸化)되었는데 그 국민을 다시 주권자로 복권시키겠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어서 좌파 정치 세력을, 진실과 과학을 부정하는 ‘반(反)지성주의’로 몰아세우고, 이런 독선이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자유의 공세적 해석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이라 했는데, ‘세계 시민’을 의미 있게 쓰기로는 이승만(李承晩) 이후 처음이다. 그는 한국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도 ‘자유’에서 찾았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확대하면 번영과 풍요를 꽃피울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정치, 양극화(兩極化), 국제분쟁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는 아주 거창한 논지(論旨)였다. 자유의 이런 공세적 해석도 이승만 이후 처음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시민’은 다른 나라의 자유까지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이 주장은 6·25 남침 때 트루먼과 이승만 대통령이 공유하였던 고귀한 가치이고 우크라이나에서 또다시 실천되고 있다. 1950년 7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영문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 ‘세계 시민’이 등장한다.
 
  〈이곳 한국 땅에서 죽고 다친 미국 병사들의 모든 부모, 처자(妻子),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弱者)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해방과 자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생명을 내걸고 싸우고 피 흘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귀국(貴國)의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세계 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 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들,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나라 사랑의 한계를 초월하면서까지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식 무조건적 평화주의도 비판한다. 이승만이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에 쓴 《일본의 내막》이란 책에서 미국에서 팽배하던 반전론(反戰論)에 대하여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를 비호하는 위선이라고 공격하면서 ‘무조건적 평화론은 간첩과 같다’고 비꼬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면서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김일성의 남침 때 그런 자유의 국제연대에 의하여 살았고 그런 연대의 대표적 장치인 한미 동맹에 의하여 번영했으며 우크라이나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이 써주었나?
 
  윤 대통령의 국제주의는 구호가 아니라 국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기도 하다. 취임사의 마지막 문단은 이승만 이후 처음 보는 세계사적 관점이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자유의 힘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확신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하여 1948년 8월 15일 건국 기념사에서 이렇게 피력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민권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적 요소이므로 남과 대치되는 의사를 발표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량분자들이 민권 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한 지인이 나에게 “조 대표가 써준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써준 겁니다. 그런데 좋은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차원입니다.”
 
  좋은 연설이 다 현실화된다면 이 세상은 이미 천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세계의 웃음거리, 국민의 걱정거리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존 힝클리의 저격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는 대한민국의 진로가 다시 이승만의 해양문화권 전략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하는데 같은 날 그는 이승만 국가노선의 조종실이었던 청와대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매도하고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겼다. 이 모순된 언동(言動) 속에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실패의 요인이 공존(共存)하고 있는 것 같다.
 
  5월 10일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매일 사는 집과 집무실을 같은 경로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동선이 매일 두 번 5년간 노출된다. 역대 한국 대통령이 직면했던 여러 차례 암살 기도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위험한 출퇴근길은 국민들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출퇴근하는 대통령은 없다. 청와대, 엘리제궁, 백악관, 터키·멕시코·브라질 대통령궁은 집무실과 숙소가 같은 건물이나 경내에 있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소유물로서 소통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선(動線) 사전 노출로 암살되었고 레이건, 드골,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운이 좋아 살았다.
 
  1963년 11월 리 하비 오스왈드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텍사스 댈러스를 방문, 딜리 플라자 거리를 지나가게 될 것이란 기사를 현지 신문에서 읽는다. 해병대 출신으로 사격에 능한 그는 마침 이 거리에 면해 있는 교과서 창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별 생각도 없이 소련에 가서 살 정도로 정서가 불안정한 그는 사격 솜씨가 좋았다. 그는 11월 22일 낮 망원경이 달린 이탈리아제 카빈 소총을 들고 6층 창가에서 기다리다가 81m 떨어진 거리를 지나가는 차량에 탄 케네디를 저격, 두 발을 명중시켰다. 그중 한 발이 머리를 맞혀 케네디는 사망했다. 동선 노출이 치명적인 것은 동선 정보가 암살을 생각도 하지 않던 오스왈드에게 동기를 부여한 때문이다.
 
  1981년 3월 28일 미국 청년 존 힝클리는 워싱턴에 들렀다가 우연히 신문에 난 기사에 주목했다. 이틀 뒤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노동계 인사들과 만나기 위하여 힐튼 호텔을 간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성적 망상장애를 앓던 그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여러 번 보고는 여배우 조디 포스터를 일방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리 편지를 써 보내도 답이 없자 미국 대통령을 쏘면 냉담한 포스터도 자신에게 관심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3월 30일 오후 그는 호텔 앞에서 레이건을 기다렸다. 연설을 마치고 나온 레이건이 대기 중인 리무진으로 다가가는데 힝클리 5m 앞을 지나갔다. 그를 향해서 권총 여섯 발을 쏘았는데 측근들이 피격당하고 레이건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자동차 안으로 밀어 넣는 쪽을 향해 쏜 총탄이 차체(車體)를 맞고 튕겨서 레이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피해 가 레이건은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동선 노출이 힝클리의 암살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그 뒤 레이건의 부인 낸시는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남편의 일정과 동선을 관리했다.
 
 
  드골도 동선 노출로 죽을 뻔했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차량의 동선이 암살단에게 파악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1962년 8월 22일 오후 파리에서 드골 대통령 부부가 탄 시트로엥 승용차가 암살단의 기관단총 집중사격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따르던 경호원 두 명은 사살되었지만 드골 부부는 살았다. 대통령 승용차는 14발을 맞고 타이어가 터졌으나 노련한 운전자가 가속(加速)하고 시트로엥의 서스펜션 시스템이 뛰어나 사지(死地) 탈출에 성공했다.
 
1970년 6월 22일 북한공작원 두 명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 위에 폭탄을 설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드골의 알제리 독립 방침에 분노한 군인들이 그날 12명의 암살단을 조직, 넉 대의 차량에 타고 파리 중심부 길가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엘리제궁 내부의 협력자로부터 드골의 동선을 파악했다. 저녁 8시10분, 대통령 일행이 군사박물관 앵발리드 앞을 지나는 도로를 이용, 공항으로 갈 것이란 제보를 받은 암살단은 길목을 지키다가 100발 넘게 총탄을 퍼부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드골의 사위가 “숙이세요”라고 외쳤고, 뒷 창문을 뚫은 총탄은 드골의 숙인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드골 부부는 깨진 유리조각 세례를 받았다. 드골이 목숨을 잃을 뻔한 것도 동선이 노출된 때문이었다. 드골은 고향인 콜롱베와 엘리제궁을 자주 오갔는데 암살단은 이 사실을 알고 그 길목을 노린 것이다.
 
  1992년 5월 23일 토요일 오후, 시칠리아 팔레르모 근교 고속도로. 마피아 수사 담당 지오반니 팔코네 판사 부부가 탄 차량과 경호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망을 보던 마피아 행동대원이 원격조종 단추를 눌렀다. 도로 밑 수로(水路) 위에 묻어두었던 수백kg의 폭약이 터져 그 위를 지나던 차량 두 대가 날아갔다. 판사 부부와 경호 경찰관 3명이 즉사했다. 마피아 수뇌부는 팔코네 판사가 수백 명의 마피아 범죄자들을 잡아 가두는 데 복수를 한 것이다. 그들은 판사가 주말에 집으로 갈 때 지나다니는 길을 알아두었으므로 치밀한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동선이 고정되면 암살을 면밀하게 준비할 수 있다. 미리 정해진 동선은 암살자에게 준비와 연습할 시간을 주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고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출퇴근길이 위험한 이유다.
 
  1970년 6월 22일 북한공작원 두 명이 국립현충원의 현충문 지붕에 올라가 폭탄을 설치하던 중 터져 설치에 실패하고 달아났다가 사살되었다. 6월 25일 남침기념일에 참석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노린 암살기도였다. 암살이 동선을 따라서 계획된다는 이야기이다.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은 광복절 기념식이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날 외국인 행세로 식장(式場)에 잠입, 박정희 대신 육영수 여사를 암살했다.
 
 
  국가와 軍수뇌부 동시에 無力化될 뻔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당시 자칫했으면 정부와 軍의 수뇌부를 동시에 잃어 국가가 無力化될 뻔했다.
  1983년 10월 9일, 북한공작원들이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묘소를 참배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묘소 지붕에 폭탄을 설치, 당일 원격조종으로 폭파시켜 한국방문단의 장차관급 17명이 죽었다.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은 중상을 입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도착이 늦어 다행히 살아남았다. 만약 대통령과 합참의장이 동시에 당했더라면 안보 공백이 생길 뻔했다.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집무실로 쓰면 합참 건물과 가까워 북한의 공격으로 국가 및 군사 지휘부가 같이 무력화(無力化)될 위험이 있다.
 
  동선의 상시적 노출은 이처럼 위험하다. 잠재적 암살자들에게 암살 동기를 자극하거나 확산시킨다. 정치적 암살 위험보다도 정신장애자에 의한 암살 위험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 동선이 고정되어 있으면 고정표적처럼 되어 타격을 준비하고 훈련까지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시간이 길면 암살 방법도 저격, 폭발물 설치, 드론 등 다양하게 동원 가능하다. 이런 위험 때문에 윤석열 다음 대통령은 집무실과 공관을 통합하려 할 것이다. 대통령은 소통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5년 임시직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음 대통령들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권한은 없다.
 
 
  한 경호 전문가의 경고
 
대통령집무실로 개조된 국방부 청사 건물 앞에는 대통령 휘장이 나붙었다. 사진=조선DB
  우리나라 최고의 대통령 경호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한 원로(元老)의 견해를 소개한다.
 
  1. 같은 동선을 오가는 대통령의 출퇴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매우 위험하다.
 
  2. 대통령 경호의 가장 큰 원칙은 동선 보안인데 이를 미리 공개하는 것 자체가 암살기도(暗殺企圖) 유발이 될 수 있다.
 
  3. 특히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 대통령이 위치하게 된다는 점이 저격 표적으로는 최고이다.
 
  4. 요사이 기술 발달로 저격수는 먼 거리에서 파괴력이 강한 총탄을 정확하게 쏠 수 있다. 대통령 승용차를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당할 수가 없다.
 
  5. 사회가 다양한 만큼 암살의 동기도 다양하다. 특히 공격성 정신질환자 그룹이 위험하다.
 
  6. 윤석열 대통령이 공관과 국방부를 오갈 때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 대통령 승용차는 멈출 수 없다. 앞뒤로 상당한 거리를 비워놓아야 한다. 통제에 5분이 걸리면 이로 인한 교통체증이 풀리는 데는 30분 이상이 걸린다.
 
  7. 암살 방법도 저격, 폭탄 설치, 드론 등으로 다양해지는데 대응도 이에 따라야 한다. 출퇴근 동선의 상시적 노출은 대응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
 
  8. 윤석열 대통령이 머무는 시간은 집무실보다는 공관이 더 길다. 거기에도 비서실, 경호실, 미사일 방어망 등이 설치되어야 하니 청와대가 두 개가 되는 꼴이다.
 
  9. 항공 통제가 중요한데 청와대는 등 뒤에 북한산이 있어 미사일이나 항공기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나 용산은 트여 있어 불리하다.
 
  10. 집무실과 공관의 분리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保守가 박수를 쳤다!
 
  윤석열 당선인이 밀어붙이고 김건희씨가 거든 청와대 이전은 보수적 가치와 동떨어진 행위였는데도 보수 언론까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야 할 우리 사회의 심판관들까지도 진영논리에 물든 팬클럽, 혹은 패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윤석열의 반(反)보수적 행태를 보수가 지지한 것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이다.
 
  현대사 부정: 윤석열 당선인은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고 불통의 구조라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흉가(凶家)처럼 매도했다. 청와대 74년 중 약 60년을, 보수 대통령들, 즉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가 차지했었고 이들은 국가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를 통째로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매도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좌파적 역사관에 가깝다. 그럼에도 다수 보수 인사는 박수를 쳤다.
 
  국군 부정: 느닷없이 국방부 청사를 지정, ‘내가 살겠으니 두 달 안으로 짐 싸서 나가라’는 식으로 밀어붙인 것은 국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부모도 자식에게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을까? 한국 보수의 핵심 세력은 국군을 중심으로 한 안보 부문인데 당선인이 이들을 홀대해도 다수 보수 인사(예비역 장성들까지도)가 박수를 쳤다.
 
  법과 상식과 관례 무시: 청와대 이전(移轉)을 전문가 검토와 국민 동의 없이 결정하고 이를 국가기관에 강제하는 것은 인수위의 법적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행위였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낡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외교부 장관 공관을 비우라고 한 것도 법 이전에 상식을 무시한 오만이고 관례를 어긴 것이다. 보수적 가치를 위반한 행위였는데도 보수가 박수를 쳤다.
 
  안보 무시: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의 안전은 국가 안보의 핵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안전한 청와대를 버리고 덜 안전한 용산으로 이전, 위험한 출퇴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는 좌파에 앞서 반대했어야 했다.
 
 
  保守의 팬클럽화
 
  사실 무시: 윤석열 후보는 청와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근거로 이전을 공약했고, 사실이 아님이 확인된 후에도 계획 수정을 거부했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미신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당선인과 주변이 합리성이 결여되고 정보판단 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보수는 사실과 법과 과학을 근거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데 이를 다 무시한 청와대 이전에 박수를 보냄으로써 자아(自我) 상실에 빠져버렸다.
 
  국제적 시야 실종: 제대로 된 나라들 중에서 대통령이 출퇴근하는 데가 없다는 것 정도는 구글 검색만 해도 알 터인데 국내적 시각으로 접근, 일을 그르쳤다.
 

  수정 능력과 계산력 부족: 여론조사에 의하여 청와대 이전 반대가 많고 윤석열 지지율 저조의 가장 큰 요인임이 밝혀진 후에도 궤도 수정을 하지 않은 것도 반보수적 행태이다.
 
  결국 보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와 중국군 전승절 참석에 반대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동조한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한 셈이다. 보수의 팬클럽화는 윤석열, 보수, 나라를 함께 망가뜨릴지 모른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이렇게 된다!
 
  청와대 졸속 이전은 일을 두서없이 할 때, 즉 첫 번째 단추를 잘못 꿸 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연구감이다.
 
  1. 첫 번째 단추: 윤석열 후보,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공약.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 배치와 기능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광화문 지역에 대한 사전조사 미비 상태에서 광화문 이전 졸속 발표.
 
  2. 두 번째 단추: 취임 첫날부터 청와대를 버리고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근무하겠다고 약속. 정부청사의 타당성에 대한 사전조사 없이 즉흥적 발언, 여기에 얽매이게 되었다.
 
  3. 세 번째 단추: 당선 후 광화문 지역에 대통령집무실을 마련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면 청와대로 입주, 시간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별건수사하듯이 용산 국방부 청사를 지정, ‘두 달 사이에 짐 싸서 나가라’고 한 뒤 당선인이 직접 발표, 퇴로를 스스로 차단했다.
 
  4. 네 번째 단추: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재임기간 내 국방부 이전을 거부했을 때 ‘청와대 앞에 천막이라도 치겠다’고 오기를 부리면서 유턴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5. 다섯 번째 단추: 관저로 찍은 육군총장 공관이 사용불가로 밝혀졌으면 청와대로 들어가 시간을 벌고 추후 대책을 내어놓아야 할 터인데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들어가겠다고 밀어붙여 연쇄 민폐 발생.
 
  6. 여섯 번째 단추: 5월 10일 취임식 후의 외빈 만찬을 청와대 내 영빈관에서 하면 될 터인데 호텔에서 하겠다고 발표.
 
  7. 일곱 번째 단추(예상): 집무실과 공관의 분리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함. 집무실과 공관에 경호 및 비서실을 2중으로 두어야 함. 사실상 두 개의 청와대를 운영하는 꼴이 됨. 신축할 경우, 예산낭비란 비난을 부를 것이고, 국방부 건물이 임시 청와대인지 영구 청와대인지도 불투명해짐.
 
  8. 여덟 번째 단추(예상): 출퇴근하는 대통령은 동선이 상시적으로 알려져 저격 위험에 노출된다. 하루에 두 번 교통통제로 국민 불만 고조. 차기 대통령 후보는 청와대 복귀나 신축을 공약할 것이다.
 
  9. 나가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45%, 들어오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42%! 윤석열에 대한 부정평가의 제1 이유는 압도적으로 용산 이전 문제였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란 점이다.
 
 
  保守의 분열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식을 마치고 국방부 내 집무실로 첫 출근을 했다. 사진=조선DB
  문재인 전 대통령은 헌법이나 국민을 보고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히 계급적 관점에서 지지자들에게 충성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후 지지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보여주니 지지자들도 김이 샜다. 청와대 이전 소동으로 좌파를 단결시키고 우파를 분열시켰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이전을 견제한 문재인에게 매달려 예비비라도 먼저 좀 쓰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여기서 윤석열의 약점을 간파한 문재인이 그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보수 언론도 팬클럽화해 윤석열의 실수나 배신까지 변명해주니 문재인이 이를 보고 더욱 자신만만하게 되었다. 보수가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비판, 독려하여 싸우게 만들어야 문재인이 겁을 낼 터인데 문재인과 민주당 공격만 하고 윤석열을 감싸기만 하니 국민의힘은 과보호받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보수는 다수의 윤석열 팬클럽(약 60%)과 극소수의 윤석열 반대자(약 10%), 그리고 상당수의 비판자(약 30%)로 분열되어 있다. 팬클럽 안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많다. 윤석열 진영에서 가장 싫어하는 그룹이 이 음모론자들이다. 사전투표 반대운동으로 질 뻔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로서도 실수(청와대 이전)를 해도, 배신(검수완박 중재안 수용)을 해도 박수만 치는 팬클럽을 존중해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보수 지도층에 속하는 60대 이상이 팬클럽의 주류를 이루니 젊은 보수나 좌파로부터는 경멸의 대상이 되고 윤석열 진영의 눈엔 경원(敬遠)이나 이용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보수의 영향력은 국가와 헌법을 기준으로 삼는 비판정신과 객관성에서 나오는데 한국 보수의 팬클럽화는 스스로 영향력을 축소했다.
 
 
  대안은 있다!
 
  청와대 이전 대소동 수습의 대안(代案)은 청와대 이전 계획을 백지화하고 청와대로 들어가든지, 숙소를 국방부 청사 안으로 정하여 출퇴근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과 숙소로 겸용하되 5년 계획으로 근사한 대통령궁을 신축, 차기 대통령부터 쓰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궁은 미학적으로도, 한국의 대표적 건물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윤석열 부부는 국방부 청사를 임시 집무실로 이용하는 것이 된다.
 
  5년 임시직인 대통령은 본인이 편하게 사는 방안보다는 후임 대통령들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하는 게 맞다. 이게 외교부 장관 공관을 외교부로 돌려주고 출퇴근에 따른 민폐 위험도 없애는 길이다. 국가의 두뇌에 해당하는 대통령집무실 문제가 오래가면 나라가 뒤숭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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