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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문재인의 終戰선언

終戰선언 이후 간접 침략에 따른 低강도 內戰 벌어질 수도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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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부인까지 나서 敎皇에게 終戰선언 지지·訪北 요청
⊙ ‘종교는 人民의 아편’… 김정은 敎皇 訪北 원치 않아
⊙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停戰협정이 ‘사실상 종전선언’
⊙ 종전선언문에 開戰 주체, 國軍포로·납북자 문제 등 명시해야
⊙ 北韓과 국내 左派, 유엔司에 적개심 드러내며 정통성 否定
⊙ 잘못된 神話, 한국은 停戰협정 당사자 아니다? 韓國도 당사자
⊙ 終戰선언 문구만큼 장소도 중요… 中國이나 北韓 지역은 절대 안 돼
  지난 9월 22일 미국 뉴욕(현지 시각 21일)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終戰)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며 종전(終戰)선언을 제안했다. 이어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非核化)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제73~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네 번째 종전선언 언급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매년 유엔총회에 참석해 임기 첫해를 제외하곤 매번 종전선언을 말했다.
 

  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끝나고 7시간 뒤 북한 김여정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 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며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미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다”고 밝혔다.
 
  4·27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 당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停戰)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로 (김정은과)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했다.
 
 
  UN 갈 때마다 종전선언 타령한 文 대통령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식 당시 모습. 왼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 오른쪽 책상에 앉은 이는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다. 사진=NARA
  제73차 유엔총회(2018년 9월 26일)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포함한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할 용의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며 북한을 옹호했다.
 
  그러면서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핵개발을 지속했고 그해 종전선언도 실현되지 못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미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싱가포르 회담(1차·2018년 6월 12일), 하노이 회담(2차·2019년 2월 27일)에 이어 세 번째였다. 문 대통령도 판문점을 찾았다. 존 볼턴은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백악관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모두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 오지 않길 바랐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세 차례나 완곡하게 판문점 방문 반대 의사를 표했으나 결국 남·미·북 세 정상이 한데 모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자기 페이스북에 “사실상(de facto) 종전선언을 천명한 역사적인 날”이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 열린 국무회의(7월 2일)에서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 행동으로 적대 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미북 정상은 판문점 만남 이후 더는 만나지 않았다. 북한은 미북 협상 중에도 핵무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극초음속미사일 개발 등 북핵 투발(投發) 수단을 고도화했다.
 
  문 대통령은 제74차 유엔총회(2019년 9월 24일)에서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가 반년 남은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에 국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등 유럽 순방에 나선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하며 방북(訪北)을 권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영부인까지 나서 교황에게 종전선언을 선전했다. 지난 11월 6일 자 《중앙일보》는 “대통령 유럽 순방에 동행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교황을 만나 종전선언 지지와 평양 방문을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외교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모든 외교 역량을 종전선언에 쏟는 중”이라며 “한일 관계 복원이나 미중 갈등 대응 등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前文에 해당… 정치적 선언에 불과
 
천영우 전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법적 효력이나 강제성이 없다.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기에 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관문’처럼 추상적인 용어를 써가며 선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2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제73차 유엔총회)”이라고 말하며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전 단계로 규정했다.
 
  전쟁을 법적으로 종료하기 위해서는 ‘평화조약(Peace Treaty)’ 또는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을 맺어야 한다.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당사자가 포함된 종전 합의는 주로 평화협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전문(前文·preamble)이나 협정 제1조에 들어간다. 조약이 발효되면서 전쟁 상태가 종식(종전)된다.
 
  평화협정에는 종전선언 외에 영토와 국경선 확정, 배상청구권 문제, 포로 및 전범 교환, 전후(戰後) 처리 등을 다룬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전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는 “한반도 종전선언은 의미도 없고 부가가치도 별로 없다”며 “1953년 7월 27일 휴전(休戰)협정 이후 휴전 상태가 68년간 지속했기에 휴전협정을 사실상 종전선언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남·미·북이) 평화협정 체결 의지는 여러 번 밝혔지만 아직 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이유는 서로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되풀이한다고 해 법적 종전에 가까워지지도 않고 평화가 더 공고해지지도 않는다.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선언만 되풀이하면 그 선언이 지닌 가치만 떨어질 뿐”이라고 했다.
 
 
  종전선언은 盧武鉉이 남긴 遺訓
 
  ‘종전선언’이라는 용어는 2006년 처음 등장했다. 그해 11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The US is willing to declare the formal end to the war and establish a peace treaty, if North Korea abandons its nuclear weapons program)”고 밝혔다.
 
  이듬해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나 10·4 남북공동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하며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10·4 남북공동선언 제4항)
 
  이는 앞서 문 대통령이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밝힌 내용과 유사하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2007년 9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은 APEC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나 ‘종전선언’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비핵화가 우선’이라며 종전선언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 당시 미 국무부도 종전선언이 왜 필요하냐는 입장이었다. 종전선언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휴전선이 유지될 텐데 ‘선언’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느냐는 입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자격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올해 1월 출범한 미 바이든 행정부 역시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전임 정부와 같다. 지난 10월 24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우리 목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이를 위해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선언, 제값 받고 파느냐가 중요해”
 
유엔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조선DB
  천영우 전 수석은 “현 정부가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이유는 14년 전에 시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한(恨)과 미련 때문”이라며 “종전선언을 그렇게도 원하면 (문 대통령은) 북한에 ‘종전선언이 내 꿈이니 핵 물질 추가 생산만이라도 중단해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이 목숨을 걸고 매달릴 만한 물건은 못 된다”고 했다.
 
  천영우 전 대사는 “보수 진영에서는 종전선언을 하면 큰일 날 줄 알고 결사반대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종전선언을 한다고 대한민국이 망하거나 종말이 오진 않는다. 미북 간 협상이 재개될 때 종전선언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데 무조건 반대할 필요는 없다. 종전선언을 제값에 파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 대사는 지난 11월 6일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종전선언’을 이렇게 설명했다.
 
  〈종전선언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원천 개념인 평화협정 문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김일성 시대 이래로 줄곧 주장해온 평화협정의 논리적 구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선물 거래와도 같은 파생 상품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법적으로 종식할 평화협정 문구에 응당 포함되어야 할 영토 경계 문제, 전쟁 책임 문제, 포로 문제, 전후 체제 문제 등 오랜 시간이 소요될 세부 사항 논의를 모두 뒤로 미룬 채 ‘전쟁이 끝났다’는 서론과 결론만 우선 앞당겨 발표하자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2007년 종전선언 제안 배경이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종전선언을 했음에도 북한이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주 큰 위험이 된다”며 “종전선언 이후 북한은 ‘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빌미로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대북제재 완화 등을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의제의 핵심에 있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 효과는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비핵화와 종전선언은 아무 상관 없어”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사진=조선DB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관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문 대통령은 근거를 대라”며 “비핵화와 종전선언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전성훈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벌인 비핵화 사기극을 알면서도 방조하고는 우왕좌왕했다”며 “지난 5년간 실패한 대북정책을 은폐하기 위해 허황된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 들었다”고 했다.
 
  전성훈 전 원장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통해 핵무력과 독재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남한 내부 국론 분열과 대북 경계감 약화를 조성할 수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와 대규모 대북(對北) 지원 등 무리한 주장을 펼치리라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종전선언을 하면 미국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곳에 미군을 주둔시켜야 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황 방북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어 폴란드를 사례로 설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모국(母國) 폴란드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동유럽 공산권에 속했죠. 교황은 폴란드 주요 도시를 돌며 공산주의(共産主義) 체제를 비판하고 민주화(民主化)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14개월 뒤 폴란드에서 ‘자유노조(Solidarity)’가 결성됐죠.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를 두 번째로 방문했어요. 이후 1989년 6월 열린 선거에서 자유노조가 승리하면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했습니다.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는 북한에서 교황을 초청하고 천주교를 소개한다? 아편 공장 사장을 불러들여 아편을 소개하고 나눠주는 격이죠. 대북제재부터 코로나19 방역 문제까지 현재 북한 내부가 온전치 않은 상태이기에 교황을 초청할 여력이 없습니다. 교황 방북 이후 벌어질 후폭풍을 김정은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교황을 만나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momentum·동력)이 될 것”이라며 방북을 요청했다.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을 돕기 위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답했다. 전 전 원장은 “교황은 원론적으로 답했을 뿐”이라고 했다.
 
  전성훈 전 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김정은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가 국내 정치를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체제 보장’ ‘제재 해제’ 등 각종 성과를 보장하겠다며 북한을 미북 대화장으로 끌고 나왔지만 북한은 미북·남북 회담으로 얻은 결과물이 없다.
 
  종전선언을 비판하는 이들은 종전선언을 하면 이후 주한미군 철수, 유엔군사령부(유엔사·UNC) 해체, NLL 무력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주체인 유엔사가 종전 이후에는 존립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 6·25 참전 16개국 군대와 한국군으로 구성돼 있다. 유엔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과 한미연합군 사령관을 겸직한다. 유엔사를 구성하는 핵심은 주한미군이다.
 
 
  文 유엔 연설 직후 北, “유엔司는 不法”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과 한미동맹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문제, 종전선언 문제와 주한미군의 지위는 관련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월 23일 제76차 유엔총회를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은도 2018년 9월 5일 남한 특사단을 만나 “한미동맹이 약화한다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종전선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1월 4일과 지난 10월 27일 유엔총회에서 한국에 주둔 중인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은 “1950년 불법으로 창설된 유엔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사령부와 다를 게 없고 유엔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유엔은 유엔사에 대한 지휘권도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뿐만 아니라 집권 세력도 유엔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적개심을 갖고 있다. 대통령 외교통일안보 특보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019년 9월 8일 고려대 강연에서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유엔사가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며 “(남북협력사업을) 통과하는 거 확인만 하면 그만인데 통과를 시킬지 말지를 무슨 권한이 있는 것처럼 한다. 빨리 정상화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지난해 8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유엔사는 법률적으로 문제 있고 주한미군에 외피를 입힌 것” “족보 없는 유엔사가 남북 관계에 간섭하지 못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시민단체 연합은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을 조직해 유엔사 해체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
 
  유엔사는 6·25전쟁 때문에 탄생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31일 사이에 결의 82~85호를 연속으로 채택했다.
 
  그중 세 번째 결의인 84호 결의(7월 7일 자) 제3항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군사력 및 기타 지원을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사령부가 병력 및 기타 지원 제공을 가용하도록 권고한다(Recommends that all Members providing military forces and other assistance pursuant to the aforesaid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make such forces and other assistance available to 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고 했다.
 
  제5항은 “북한군과 교전할 때 각국 국기와 동시에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통합사령부에 부여한다(Authorizes the unified command at its discretion to use the United Nations flag in the course of operations against North Korean forces concurrently with the flags of the various nations participating)”고 밝혔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유엔사령부는 오늘날 유엔이 분쟁 지역에 파견하는 유엔 평화유지군과는 성격이나 임무가 다르다.
 
 
  “종전선언과 北韓 비핵화 원칙, 맞바꿀 수 없어”
 
경제사회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 사진=조선DB
  국립외교원 교수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 담긴 종전선언”이라며 “엄밀한 의미에서 종전선언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큰 위협인 북핵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주변국과 협력하지도 않은 채 섣부르게 종전선언을 추진하면 한반도 평화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관문’이라는 정부 입장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보리는 유엔사를 창설하고 유엔사에 평화를 회복하라고 결의했습니다. 종전선언은 곧 평화가 회복됐다는 의미이고 유엔사는 임무를 달성했으니 해체해야만 합니다. 북한은 종전선언 이후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겁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이러한 논리를 펴왔습니다. 중국도 유엔사 해체에 동조할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오히려 북한 비핵화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죠.”
 
  지난 9월 23일 김여정이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밝히자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제시하는) 종전선언과 정상회담의 조건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내용”이라며 “임기 말 성과에 목마른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종전선언을 이용해서 그간 추구해온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비핵화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이간하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신 센터장은 “정부가 체면 유지용 성과를 위해 지난 30년간 이어온 비핵화 원칙이라는 국익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는 지난 11월 4일 한반도선진화재단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 ‘종전선언 왜 문제인가’에서 “종전선언을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적극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나 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 세리머니로 생각할지 몰라도 선언 이후에는 계속해서 그 효력을 갖게 돼 전쟁 억지력을 약화시키고 국제사회 여론 오도(誤導)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전쟁 억지력은 유엔사를 통해 확보한다”며 “전시(戰時)에 만들어진 국제연합군의 법적 근거가 종전선언 이후에는 약화돼 전쟁 억지력 약화와 한미동맹 균열을 초래한다”고 했다. 또 “당장은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지위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법적인 판단에 불과하다”며 “결국 정치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확산돼 간접 침략에 따른 저강도 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종전선언을 할 경우, 6·25전쟁 발발 원인 등 정전체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평양에서는 6·25전쟁을 ‘이승만과 미 제국주의자가 일으킨 전쟁’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일본 교과서 왜곡에는 관심을 갖지만 정작 평양에서 일어나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6·25전쟁 원인을 두고 한때 남침유도설, 쌍방책임설 등이 퍼졌습니다.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된 후 이러한 주장은 국제적인 지지 기반을 상실했습니다. 그럼에도 9000만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항미원조전쟁처럼 6·25 책임 소재를 왜곡하는 데) 동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식 6·25전쟁 해석이 최근 영화 〈장진호〉나 〈1953 금성대전투〉처럼 영상 공정(工程) 형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反반공주의 도그마에 빠지면 안 돼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 사진=조선DB
  김 교수는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는 잘못된 신화가 있다고 했다. 북한은 ‘한국(남한)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전협정에 이승만 대통령 서명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전협정은 원래 국가 정상이 나서는 게 아닙니다. 이 대통령 서명이 없는 것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마오쩌둥 서명이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정전협정은 현장에 있는 최고사령관이 하는 겁니다. 그러면 김일성은 왜 있느냐. 김일성은 수상(Prime minister) 자격이 아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서명을 한 겁니다.
 
  한국이나 국군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선전인데, 여기에 동조해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국은 아니었지만 종전선언 당사자는 되겠다’는 주장은 애초에 잘못된 주장이죠.”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한국 측 대표로는 최덕신 1군단장이 참여했다. 최덕신은 박정희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냈고, 1986년 월북(越北)했다.
 
  김명섭 교수는 ‘정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종전선언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정전협정 장소는 현재 인민군 관할”이라며 “북한은 정전협정을 맺은 곳에 비석을 세워 선전하고 있다. 이곳에서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이 주장해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반(反)반공주의 도그마(dogma·독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종전선언에 반대하면 호전(好戰)선언으로 비칩니다. 잘못된 종전선언은 냉전의 종점(終點)이나 평화의 입구가 아닌 열전(熱戰)의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6·25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반공주의(反共主義) 도그마에 반대하기 위해 반반공주의 도그마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정전은 냉전의 산물이므로 냉전은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2차 세계대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김명섭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 체결을 반대한 이유와 1953년 이후 유지된 정전체제를 이렇게 분석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이 휴지 조각에 불과해 지켜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한국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힘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봤죠. 지금 정전체제는 협정으로 맺어진 게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실질적 조치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정전체제는 ‘3중 봉쇄체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공산군 재침(再侵) 봉쇄 ▲한국군 북진(北進) 방지 ▲일본군 재무장화 봉쇄.”
 
  김 교수는 《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2015)으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종전선언문에 보편적 인권 선언 담아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사진=조선DB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종전선언에 앞서 ▲국군포로 송환 ▲전시(戰時) 민간인 학살 ▲전시 납북자 ▲전후 납북자 등 인권 문제 해결 방안과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고 했다. 또 “종전선언문에 보편적 인권 선언을 담아 북한이 북한 주민에게 보편적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강제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문 대통령이 임기 초인 2018년에는 ‘선(先) 비핵화, 후(後) 종전선언’ 방식을 제안했지만, 올해 종전선언에선 ‘선 종전선언, 후 비핵화’로 바꿨다”며 “종전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북한 입맛에 맞는 종전선언을 제안해 대선용 남북 이벤트를 추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태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연동하지 않은 종전선언을 체결하면 차기 정부는 종전선언을 지렛대로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할 방법이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억지로 체결한 종전선언은 1991년 12월 남북이 체결했던 비핵화 공동선언처럼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태 의원은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비무장지대 관리권을 한국군이 UN사에서 회수하라고 요구할 것이고 우리 정부도 여기에 동의하리라고 본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종전선언 채택하면 北中은 항복으로 여겨
 
  태 의원은 “종전선언 이후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으나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주둔하므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당장은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본다”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종전선언에 들어갈 문구도 중요하지만 장소도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미국과 중국이 배석해 종전선언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베이징이 종전선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 체결 장소가 중국이어선 절대 안 된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피해국이다. 북한과 중국은 전쟁 주범(主犯)과 공범(共犯)이다. 1972년 닉슨이 방중(訪中)하자 북・중은 이를 ‘백기 투항’이라고 조롱했다. 베이징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면 이는 ‘항복선언’ ‘백기 투항 선언’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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