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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내년 大選은 상식과 정상의 회복을 위한 싸움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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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중재법’ ‘사학법 개정’의 목표는 ‘패거리의, 패거리에 의한, 패거리를 위한’ 特權 체제 구축
⊙ 자신들의 특권 체제 위해 자조·자립을 무너뜨려 자유를 잊은 존재로 길들이려 해
⊙ 그릇된 이념이 몰염치·몰상식과 한 덩어리의 ‘괴물’이 되고, 그 비정상의 괴물이 정상을 파괴
⊙ 마르크스주의는 근대적 성취의 위대함과 고마움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 언론인 단체 등도 반대하는 언론중재법을 상임위에서 날치기 통과시켰다. 사진=국회기자단
  얼마 전 여당은 ‘언론중재법’ 상임위원회 통과를 날치기로 처리했다. 새벽이었다. 부지런하다고 해야 하나? 며칠 뒤에는 ‘사학법 개정안’도 부지런하게 전격적으로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의석수의 위세를 맘껏 휘둘러대고 있다. 입법(立法)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정상적 입법 자체를 아예 부숴버렸다.
 
  언론중재법의 목적은 뻔하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언론의 자유가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권력의 견제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폭주한다. 언론의 자유는 그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그래서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까지 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개척자이자 미국 건국 주역의 한 사람인 제퍼슨의 말이다.
 

  이 정권의 사람들도 과거에는 언론자유 수호를 주장하고 앞세우곤 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조차도 그것이 토론되고 하는 과정에서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하는 것이 옳은 방향.”(2014년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
 
  “언론의 자유가 정권도 지켜주는 거예요. 언론이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면 권력이 부패할 수가 없잖아요.”(2017년 YTN)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의 말이다. 이러던 자들이 언론 자유를 짓밟으려 한다.
 
  사학법 개정안도 기괴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사학을 없애라”는 말이 당연하다. 모조리 국공립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나? 그런데도 밀어붙인다. 목적이 있다. 전교조 세력으로 사학의 교원 채용까지 전면 장악하려는 것이다.
 
  현 정권의 패악 정치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정권 사람들은 늘 민주주의를 앞세워왔다. 당명부터 아무튼 ‘민주당’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전매특허마냥 앞세워오던 자들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自助정신이 죽으면 자유도 죽는다
 
2020년 12월 29일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코로나19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조선DB
  이 정권의 ‘민주’가 장식에 지나지 않는 기만임은 이미 다 드러났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안중에도 없다. 이들이 새벽 날치기까지 하며 부지런하게 추구해온 것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패거리의, 패거리에 의한, 패거리를 위한’ 정치요, 그에 올라탄 특권(特權) 체제의 구축(構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국(曺國) 전 법무장관의 후안무치한 행태가 드러났을 당시 이철희 의원(현 정무수석비서관)은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라고 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의 한 구절을 방불(彷佛)케 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평등하다.” 이런 식 아닌가?
 
  이 정권은 앞에서는 평등·공정·정의를 팔면서 뒤로는 지위와 권력을 사익(私益)과 특권의 기회로 써먹고 있다. 이들이 그 같은 파렴치를 저지르는 동안 국민들의 삶은 다 무너졌다.
 
  ‘소득주도성장’을 말하더니 수많은 일자리만 날려 먹고 소득도 뺏어버렸다. 청년들은 제대로 된 취업은커녕 ‘알바’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더니 집을 구하는 사람만 잡았다. 특히 중소자영업자들이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 내몰려 있다. 그러면서 온갖 방법으로 세금을 올려놓고는 돈을 살포한다.
 
  국민정신의 건강을 파괴하고 있다. 정부가 베풀어주는 보조금에 길들게 되면 국민 스스로의 자립적(自立的) 삶의 동력이 사라진다. 그런 일이 거듭되면 국민의 자조(自助)정신이 파괴된다. 그렇게 자조정신이 죽으면 자유도 죽는다. 지금 현 정권은 그렇게 끌고 가고 있다. 자신들의 특권 체제를 위해 국민의 자조·자립을 무너뜨려 자유를 잊은 존재로 길들이려 하는 게 아닌가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이 정권은 국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전례 없이 격화시켜왔다. 이 정권에 국민이란 존재는 없다. 오직 자신들의 지지 세력만을 위한 패거리 정치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다. 한국의 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0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지금 찢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고 했다. 취임사 제목부터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였다. 과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되기는 했다.
 
 
  몰염치와 몰상식
 
  국민권익위원회도 가관이었다. 권익위는 국민의힘 의원 12명에 대해 부동산거래법령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5명에 대해선 탈당을 권고하고 1명을 제명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권익위 조치에는 ‘짜 맞추기’ 의도가 보인다. 권익위는 지난 6월 여당 의원들의 부동산 위법 거래 의혹을 밝힌 바 있다. 그 수가 12명이었다. 여야의 수가 딱 맞아떨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그 모두에 대해 탈당(脫黨) 권고 조치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자신이 직접 관련된 사안이 아님에도 즉각적으로 의원직과 대선 후보를 모두 사퇴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두 달여를 마냥 뭉개던 자들이 그에 대해 “속 보이는 쇼”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사퇴 처리는 소식도 없다.
 
  현 정권의 이 같은 행태는 어제오늘도 아니며 몇몇만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양산 농지 문제로 비판이 쇄도했을 때 그는 “좀스럽게”라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해당 3개 필지는 실제로는 아스팔트 도로라고 한다. 11년 동안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게 된다. 말이 안 된다.
 
  내로남불과 후안무치의 극을 보여주고 있다. 양심은커녕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정권의 이런 행태는 정권 자신의 타락은 물론 나라와 사회 전반에 헤아릴 수 없는 악영향을 준다. 우선 그 지지층부터 감염시켜 상식에서 멀어지게 한다. 몰염치가 몰상식을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국민 전반이 상식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다.
 
  상식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사회적 신뢰’도 ‘법과 제도에 대한 믿음’도 차례로 붕괴한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 나라는 지금 그런 위기로 치닫고 있다. 지금 이 정권의 문제는 단지 그 이념과 노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없다. 그릇된 이념이 몰염치·몰상식과 한 덩어리의 ‘괴물’이 되었다. 그 비정상의 괴물이 정상을 파괴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게 된다. 인간다움과 문명다움을 모두 파괴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의 삶의 양식은 결코 당연했던 게 아니다. 인류문명의 근대적 성취의 결과로, 그리고 그에 발맞춰 이룩한 우리 한국의 근대화 성취의 결과로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파괴돼가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희대의 몰염치·몰상식이 한국인이 천신만고로 이룩한 문명적 성취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냥 정치적 독선(獨善)이 아니다. 악(惡)이다. 단순한 탈선(脫線)을 넘어선 문명 파괴적 악이다.
 
 
  악은 평범하지 않다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惡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진=퍼블릭도메인
  ‘악의 평범성’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렌트가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전범(戰犯) 중 한명인 루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받은 재판을 지켜보며 저술한 책이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적 인간이 아니라 다만 선(善)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타성(惰性)과 관례에 따라 명령을 수행한 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아렌트가 본 것은 평범한 개개인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게 되는 전체주의적 위세의 위험이었다.
 
  일리 있다. 그런데 허점이 있다. 흔한 지적의 하나인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연기에 속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우선 진짜로 이용당한 평범한 사람들을 손쉽게 공범(共犯)으로 보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혹은 정반대로 명백하고 특정한 악에 오히려 면죄부(免罪符)를 주게 될 수도 있다.
 
  악은 어떻게 정의하든 그 발현은 분명하고 특정적이다. 아니 악의 문제는 그렇게 엄격히 특정해야 한다. 사회적·정치적 악은 특히 그렇다. 모두의 잘못이라거나 구조 탓 운운은 허무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매우 위험한 원망이 될 수 있다. 특정하지 않게 되면 책임도 극복도 없다.
 
  이것은 대중(大衆)의 경우도 그러하다. 대중은 휘둘릴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 체제의 국민은 대중이라는 존재 양태를 면책(免責)으로 삼아선 안 된다. 주권자(主權者)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배제하면 그 자체로 이미 주권자적 존재감을 부정하는 게 된다.
 
 
  ‘대가리가 깨져도’의 뿌리
 
  지금 문재인 정권과 그 패거리의 행태는 명백히 사회적·정치적 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지도는 여전히 40%를 넘나든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저 알게 모르게 감염(感染)된 그런 것으로만 간주해야 할까?
 
  지금 여당의 후보로 유력시되는 한 인물의 경우 갖은 논란이 있다. 수많은 문제가 오르내리며 그 주변 집단과 관련해서도 갖가지 엽기적 이야기가 나돈다.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그러나 여당의 기존 지지층은 지금 그리로 집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평범’하게 보아야 할까? 대중이기에 책임은 물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까? 하지만 이른바 ‘대깨’라는 행태는 이미 ‘평범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들이 사활적(死活的) 집결을 하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기왕에 확보한 패거리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양식도 염치도 상식도 다 젖혀두고 집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양상은 ‘포섭당한 평범성’으로 헤아려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하는 주범(主犯)들이 있다. 하지만 그저 어떤 대중적 현상으로만 간주되어선 안 된다. 그 진원은 소수(少數)의 악한 무리에서 시작되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알고도 함께 가는, 말 그대로 ‘대가리가 깨져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있다. 한국의 ‘독특한’ 정치 지형의 상황이 있다. 거기에 오랜 기간 진행된 악적(惡的) 담론의 영향이 겹쳐 있다. 끈질기고 완강한 좌익적 담론의 악영향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이념적 대결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이 세계적으로 한동안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이념은 끝났고 이제는 실용”이라는 얘기가 한동안 그럴듯하게 행세를 했다. 그러나 안이한 착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다 되살아났다.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도 그랬다. 특히 지금 한국은 아예 좌익이 정권을 장악해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종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공통점은 反근대
 
엥겔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민족’이라는 종족주의적 담론도 위세다. 이 대목을 보면 일반적인 좌익적 현상과는 달리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특수해 보이지만 결국은 상통해 있는 문제점이 포착된다. 전(前)근대 나아가 반(反)근대라는 동일한 특성이다.
 
  종족주의적 담론이 근대의 반대편에 있음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논리는 일단 민족주의적·종족주의적 경향을 반동적으로 본다. 그런데 진보 운운이 어떻든 마르크스주의적 담론도 결국에는 반(反)근대다.
 
  마르크스주의는 근대적 성취의 위대함과 고마움에 대한 통찰이 없다. 마르크스의 후견인이자 동료인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1845년)에서 근대 자본주의 세계의 참상을 절절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당시 아동노동의 참혹함은 그 자체로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게 있다. 그 참혹한 시기 동안 영국 인구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전근대사회의 인구는 거의 정체(停滯) 상태였다. 이따금 전쟁·천재지변·전염병이 있으면 크게 줄기도 했다.
 
  그런데 1700~1740년 600만명에 머물렀던 영국 인구가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00년 830만명, 1850년 1680만명, 1900년에는 3000만명을 돌파한다. 산업화와 함께 영국 인구는 50년마다 2배씩 증가한 것이다. 1815~1880년 기간 중 영국에서 800만명 이상이 영국을 떠났다. 그럼에도 그렇게 인구가 증가했다.
 
  이 같은 인구 증가는 생활 수준 향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전반적인 영국인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무엇보다도 증기력의 발전으로 인해 식량이 좀 더 빠르게 운송될 수 있다는 게 컸다. 도시공장 노동자가 늘고 농업인구는 줄었지만 식량 사정은 오히려 나아진 것이다. 이런 생활 수준 향상은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이걸 비참하다고 할 수 있나?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 산업혁명
 
  근대 이후 오늘날 이제 당연한 상식처럼 여기고 누리고 있는 삶의 양식은 결코 늘 그런 게 아니었다.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삶이 없었다. 자본주의의 극심한 노동 착취와 계급 대립을 말하지만 사실은 그 근대적 발전의 역사는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그 어느 때보다 나은 삶이었다.
 
  다른 한편 정신문화적 발전도 획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신사(紳士)’로 상징되는 근대의 새로운 상류층의 독특한 가치관이 영국 사회 전반에 퍼지자 영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용감함과 근면·성실과 함께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계층이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영국의 역사적 운명이 크게 바뀌었다.
 
  19세기의 영국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이러한 가치관이 영국의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1837~1901)였다. 그런데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쓰고, 마르크스가 《자본론》(1867년)을 썼을 때가 바로 그 시대이기도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못 비장하게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참혹성을 드러내고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비전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비판한 그 시대는 오히려 인구가 경이적으로 증가하면서 동시에 삶의 여건도 전에 없이 개선되어가던 때였다. 오늘날 서구의 노동자는 17세기 귀족보다 윤택하다. 산업혁명 이래 근대적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인류의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한 결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참혹함으로 묘사하던 때에 이루어진 일이다.
 
 
  근대의 새로운 주도층은 건강했다
 
  사회계층 구조 변화의 결과도 건강했다. 이전 봉건시대의 혈통에 따른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실력에 따른 계층이 탄생했다. 과거에 수공업자나 상인이란 직업으로만 불리던 이들이 기업인·자본가라는 새로운 명칭을 획득하게 됐다. 이들이 부르주아다. 이들 근대 부르주아는 신사가 되고자 했다.
 
  산업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부르주아 신사들은 사회의 중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각종 사회조직의 중간관리자, 기업이나 전문기관의 전문직·사무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의 정체성(正體性)을 갖게 되었다. 이런 집단은 전근대사회에서는 특별한 사회적 위치가 없이 그저 부속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이 직업군(職業群)은 사회적 핵심이 되었다.
 
  이들은 도시에 거주했으며 나름의 생활양식을 가졌다. 이들을 기준으로 한 사회적 인프라도 형성됐다. 정부기관·기업·금융기관뿐 아니라 박물관·음악당·백화점·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과거 귀족신분제 시대에는 여가(餘暇) 향유의 시설은 귀족 개인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계층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중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편 이들은 매우 근면했다. 노동을 신성시하고 자기관리에 엄격하며 가족 부양에 열심이었다. 남자들은 검은색이나 군청색의 소박하고 단정하지만 근엄하고 예의 바른 양복을 선호했다. 화장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던 귀족들의 문화와 확연하게 대조됐다. 여성들은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자 했다. 근대적 모성(母性)의 탄생이다.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1859년)은 이때 등장해 전 유럽을 휩쓰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의 정신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때가 남성우월주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여성도 등장했으며 찬사를 받기도 했다. 크림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나이팅게일이 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여성 명사가 등장하고 각광받았다. 아직 선거권은 없었지만 적어도 여성의 지위는 이전 전근대와는 달랐다. 동양이나 이슬람 세계의 여성과는 비교가 무의미했다.
 
  물론 굳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을 수는 없었다. 엥겔스가 고발한 아동노동의 문제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참혹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토록 분노의 시선으로 보았던 그 비참함의 와중에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수명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도 점차 개선돼가기 시작했다.
 
 
  아동과 가족
 
  1833년, 1844년 공장법이 통과되면서 아동노동에 대한 규제도 시작됐다. 물론 여전히 미흡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동에 대한 관념이 근대적으로 형성돼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어린이·아동’에 대해 당연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관념은 특별히 없었다. 그저 아직 덜 자란 어른과 마찬가지의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근대사회가 발전해가면서 아동은 점차 특별한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근대 시민사회의 부르주아적 가족문화가 성장하고 전 사회로 일반화돼가면서였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1973년)은 그런 점을 지적한다. 아리에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동기에 대한 의식이 근대 초까지도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었고, 이후에야 아동기를 ‘발견’하여 이들이 신(神)의 취약한 피조물(被造物)이며,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리에스는 아동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알고 있는 가족 의식도 중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과 같은 가족의식은 17세기 근대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 이후 부모와 자식이 중심인 핵(核)가족이 형성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아동은 가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존재이자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16~17세기 이전에는 서양의 지배계층조차 아동기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전근대 시대에는 ‘어린 왕자’ 이야기는 없었다. 그때는 아동을 그저 ‘어른의 축소판’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과연 어땠을까? 그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어느 만큼 충실한 아버지였을까? 엥겔스는 어떻든 이런 사실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선동적 논문을 썼다.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1884년)이다. 엥겔스는 고대(古代)의 모계(母系)사회를 낭만적으로 이상화(理想化)하고 근대의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계급과 그 제도들에 의해 관철된 가족 형태”라고 매도했다. 그는 일부일처제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家父長制)의 정점(定點)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행복해지는가?
 
 
  ‘먹물’도 근대의 産物
 
  19세기는 이전의 서구사(西歐史)에 비춰보면 드문 장기적인 평화의 시대였다. 나폴레옹전쟁이 끝나고 빈 체제를 수립하는 빈회의(1814~1815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년)이 발발하기까지 딱 100년이다. 이 시기 동안 따지자면 유럽에선 큰 전쟁은 없었으며, 발전의 시대였다.
 
  그런데 19세기는 다른 한편으로는 좌익혁명운동의 시대다. 이것은 평화와 번영의 이면에 숨겨진 고통, 그로 인한 불가피하고 당연한 갈등의 분출로 묘사되기도 한다. 영국의 고집스러운 공산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등의 시리즈 역사서로 그 시대를 그렇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것은 뒤틀린 편향이다.
 
  근대 이래로 또 다르게 본격적인 한 계층을 형성한 지식층이라는 먹물 분자들 가운데 좌경화(左傾化)한 이들이 시대에 대한 부정적 진단을 계속 이어갔다. 복에 겨운 행태였다. 먹물들이 사회적으로 독립적 존재가 되어 살고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 지식층은 독립된 계층이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돼 있는 일종의 부속적 존재였다.
 
  근대 이전에는 독립된 학자·작가 등은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없었다. 독립적인 지식층의 등장은 근대의 성장과 함께 그 지적(知的) 소산물을 소비해주는 ‘지적 소비시장’, 즉 부르주아 시민의 지적 욕구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독립적 영역을 갖게 된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들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어떻든 문제점을 들추는 데 몰두했다.
 
  19세기는 그런 불평불만의 지식인들이 기세를 부린, 문명사적으로는 일종의 사춘기적 열병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래로 특히 좌익 먹물 분자들의 행태는 역사적 흐름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 곡절을 겪고 심지어 현실 사회주의의 분명한 실패라는 역사적 경험을 했지만 그 경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잠시 숨을 죽이거나 치장을 달리할 뿐 재등장하여 소란을 벌이는 일이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大選 지면 미래가 사라진다
 
  그러는 가운데 근대가 이룩한 건강한 성취가 매도되고 훼손됐다. 세계적으로도 그러하며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에선 가히 체제 위기를 현실적으로 느끼게 할 만큼 난폭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왕에 나라와 사회를 지탱해왔던 상식적 가치관이 해체 수준의 위협을 받고 있다.
 
  특권 체제 구축에 혈안이 된 무리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위선(僞善)조차도 벗어던지고 폭정(暴政)을 노골화하는 부류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나라의 상태가 정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즈음에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지방의 한 시립미술관으로부터 1500만원의 지원금을 타냈다는 뉴스가 나왔다. 본인이야 할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여러 차례 지원금을 타낸 것이 그만큼 논란이 됐으면 이제 조심할 법도 한데, 여기서도 몰염치와 몰상식을 본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다가오는 대선은 모든 것 이전에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상의 회복’을 위한 싸움이다. 거기서 지면 비전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미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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