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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포커스

2022년 대선에서 ‘제3지대’ 가능할까

5%의 고정 지지층 가진 안철수, 대선 승패 좌우할 수도

글 : 김형준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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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와 連帶 시 국민의힘의 중도 외연 확대 도와줄 수 있어
⊙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에 잘 대처할 정당’ 묻는 질문에 ‘그런 정당이 없다’ 또는 ‘모르겠다’가 39.3%
⊙ 연대하는 세력은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세력은 실패

金亨俊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8월 16일 국민의힘과의 합당 무산을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2022년 대선(大選)이 이제 6개월도 채 안 남았다. 여야(與野) 모두 대선 후보 경선(競選)에 돌입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李在明) 경기도지사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첫 순회경선 지역인 충청에서 과반인 54.7%를 득표했다. 이 지사는 대전·충남 경선에서 54.8%, 세종·충북 경선에서 54.5%를 얻었다. 이낙연(李洛淵) 전 대표는 총 28.2%를 기록하면서 2위를 차지했다.
 
  역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에서 이재명 지사가 과반 득표로 압승한 것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세론’이 입증됐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심(黨心)을 반영하는 권리당원도 이 지사에게 몰표를 줬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의 2배에 해당된다. 이 지사가 대세론을 기반으로 친문(親文) 지지층까지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의힘은 한 인터넷 매체가 ‘국민의힘 윤석열(尹錫悅)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야당을 통해 여권 인사를 검찰에 고발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큰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후보 측은 비열한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지만, ‘고발 사주(使嗾) 의혹’은 대선 판도를 좌우할 만한 초대형 이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윤 전 총장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윤석열 대세론’이 흔들리면 그 최대 수혜자는 홍준표(洪準杓)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결국 내년 대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홍준표 혹은 또 다른 국민의힘 후보 간의 양강(兩强)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대선에서는 늘 일정한 정도의 ‘제3지대’가 존재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崔在亨) 전 감사원장의 국민의힘 전격 입당과 민주당-국민의힘 양강 구도 속에서 제3지대의 공간은 좁혀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내년 대선에서도 안철수(安哲秀) 국민의당 대표와 지난 9월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이 제3지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서 제3지대의 가능성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김대중·이인제·유승민의 경우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선 역대 한국 대선에서 나타난 제3지대 후보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오른쪽 〈표〉는 1987년 대선 이후 전개된 제3지대 후보들의 다양한 유형, 행보와 평가, 그리고 결과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제3지대 후보 유형은 크게 4 가지로 분류된다.
 

 
  창당–총선–대선 출마형
 
  첫째, 정당 후보로 출마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기존 정당에서 탈당해 신당(新黨)을 창당한 후 대선에 출마한 경우와 독자 신당을 만들어 대선 전 총선에 참여한 다음 정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6공화국 헌법에 따라 치른 1987년 대선은 유신 이후 중단된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다.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 서로 갈등을 빚다가 후보 단일화 협상에 실패한 후, DJ는 10월 18일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였다. DJ는 11월에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당하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27.0%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야권 분열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36.6%의 역대 최저 득표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가 집권당인 한나라당을 탈당해 1997년 10월 국민신당을 창당한 후 12월 대선에 뛰어들었다. 이인제는 19.2%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여권 분열 덕분에 김대중 후보(40.3%)가 이회창 후보(38.7%)를 약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17년 5월 대선 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2017년 1월 바른정당을 창당한 유승민 후보가 제3지대에서 대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6.8%의 저조한 득표로 4위를 차지했다.
 
  한편, 199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에서는 제3후보들이 대선 전에 독자 신당을 창당하고 총선에 참여해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다음 대선에 참여했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그해 2월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다. 통일국민당은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31석(지역구 24석 + 전국구 7석)을 얻어 명실상부한 제3당 정당의 위상을 갖추었다. 12월 대선에서 정 후보는 16.3%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정주영의 제3후보 출마로 보수진영은 분열되었지만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는 42.0%의 득표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안철수 후보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2015년 12월 탈당한 후, 2016년 1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총 38석(지역구 25석 + 전국구 13석)을 얻어 제3정당의 위상을 확보했다. 특히 호남 지역구 총 28석 중 23석을 차지했고, 비례대표에서는 26.7% 득표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25.5%)을 제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안 후보는 2017년 5월 대선에서는 21.4%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보수는 자유한국당(홍준표)과 바른정당(유승민)으로 분열되고, 안철수 후보가 중도를 대표하는 정당 후보로 직접 대선에 참여하는 다자(多者) 대결 속에서 진보의 문재인 후보가 41.1% 득표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DJP 연대
 
1997년 11월 3일 김대중과 김종필 두 사람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 결국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사진=조선DB
  둘째, 연대(連帶) 유형이다. 199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종필(JP) 후보는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새정치국민회의 DJ와 맞서는 강력한 제3후보였다. DJ는 JP에게 대대적인 정치적 양보를 하면서 DJP 연대를 성사시켰다. DJP 연대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총재로 하고,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자민련) 총재로 한다 ▲제16대 국회에서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합의하며 실세형 국무총리로 한다 ▲경제부처 장관의 임명권은 국무총리가 가지며 지방선거 시 수도권 광역단체장 중 한명을 자민련 소속으로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DJP 연대에 힘입어 DJ는 JP의 정치적 텃밭인 충청에서 이회창 후보보다 43만 표를 더 얻어 총 40.3% 득표로 이회창 후보(38.7%)를 약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셋째, 후보 단일화 유형이다. 2002년 대선에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은 3월 9일부터 4월 27일까지 한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국민 참여 경선을 실시하고 과반 득표자인 노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정몽준 의원이 대선의 강력한 제3후보로 등장했다. 정 의원은 2002년 11월 5일 창당대회를 열고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당시 여론조사에선 ‘1강(이회창) 2중(노무현·정몽준)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었다. 가령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가 11월 6일에 실시한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이회창 36.0%, 노무현 16.8%, 정몽준 22.4%였다.
 
  노무현 후보는 11월 11일 자신에게 불리한 것으로 여겨지던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정식으로 제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할 때 그 여론조사는 무효 처리하자는 정몽준 캠프의 주장도 수용하였다.
 
  이에 따라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46.8%)가 정몽준 후보(42.2%)에 앞서 승리했다. 정 후보는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배함에 따라 사퇴하고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노무현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계기로 대선에서 48.9% 득표로 이회창 후보(46.6%)를 약 57만 표 차이로 제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가 긴급 발표를 통해 민주당과의 선거 공조 파기를 선언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제3후보 없이 치른 2012년 大選
 
  한편, 2012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협상 당사자의 돌연 사퇴로 ‘아름답지 못한 잘못된 단일화’로 기록되었다.
 
  이때 안철수 후보는 집권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제1야당인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맞서는 강력한 제3후보로 등장했다. 당시 리얼미터 9월 넷째 주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35.9%, 9월 1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후보는 31.7%,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9%를 기록했다.
 
  문재인 후보는 같은 해 9월 16일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안철수 원장과 단일화는 꼭 필요하다. 민주당 중심의 단일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두 가지다.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국민이 그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11월 6일 백범기념관에서 처음 만나 단일화 협상을 시작했지만, 11월 23일 안철수 후보는 전격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 대표는 사퇴 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할 것을 선언합니다.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저는 의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제 마지막 중재안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 후보는 사퇴 후 일주일 이상 칩거(蟄居)에 들어가면서 실제로 문재인 후보 지원유세를 하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문재인 후보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정권교체에 적신호가 켜졌다.
 
  제3후보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2012년 대선은 범(汎)진보와 범보수 분열 없이 총집결해서 치른 최초의 선거였다. 결과는 보수의 박근혜 후보가 51.6% 득표로 진보의 문재인 후보(48.0%)를 누르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2012년 문재인 패인은 후보 단일화 실패
 
  SBS와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대선 직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공동으로 실시한 대선 패널 조사(2012년 12월 20~22일) 결과, ‘박근혜 당선인이 승리하고 문재인 전 후보가 패배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50.1%가 ‘기대에 미흡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꼽았다. 이어 ‘민주통합당이 잘못해서’ 18.2%, ‘박근혜 후보가 잘해서’ 15.4%, ‘문재인 후보가 잘못해서’ 4.7% 순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잘해서’라기보다 ‘단일화 실패와 민주통합당이 잘못해서’ 승패가 갈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단일화였으며, 안철수 전 후보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많은 유권자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무소속 출마 유형이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BBK 주가 조작 논란에 휘말려 여권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자, 11월 7일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12월 대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15.1%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비록 보수진영이 분열되었지만 이명박 후보가 48.7% 득표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5.1%)를 약 531만 표의 압도적 차이로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심층분석한 결과, 역대 한국 대선에선 제3지대 후보와 관련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제3후보 단독으로 집권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둘째, 정당 또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경우 대선 득표율에서 3위 이하를 차지하며 실패했다. 기존 정당을 탈당해 신당 후보로 출마할 경우 분열을 촉발시키면서 모태(母胎) 정당 후보의 패배에 기여했다.
 
  셋째, 선거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참여할 경우 상대 후보의 선거 승리에 기여했다.
 
 
  여권 대선 주자 지지율 합이 야권보다 높아
 
  현재의 선거 상황에서 제3지대 후보에게는 4가지 유형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 정당 후보로 출마하거나, 다른 후보와 연대하거나, 후보 단일화를 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때같이 보수와 진보가 총집결해 거대 양당이 박빙(薄氷)의 대결을 펼칠 것이기 때문에 제3당은 독자적 생존이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
 
  현 정국에서 제3지대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를 계기로 합당(合黨) 논의를 시작했지만 큰 진척을 보지 못했다. 결국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8월 16일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의 통합을 위한 노력이 여기에서 멈추게 되었음을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드린다”고 합당 무산(霧散) 선언을 했다. 안 대표는 합당 무산의 명분으로 ‘더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안철수 대표는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나 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들 지지율의 총합이 예전에는 여권 주자들보다 높았지만 지금은 역전당해 여권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야권보다 높다”며 “나름대로 야권에서 열심히 하고 현 정부는 수많은 실정(失政)을 하는데도 왜 이런 상황이 생기는지의 성찰이 야권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KBS-한국리서치 지난 8월 조사(12~14일)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비율이 50.7%인 반면, ‘정권 연장을 위해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38.5%였다.
 
  그런데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범여권 진보 후보들의 지지도는 41.9%인 반면, 안철수 대표를 제외한 범야권 보수진영 후보들의 합은 32.4%에 불과했다. 만약 범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범진보 후보들보다 월등히 높다면 안 대표의 독자 행보는 관심을 끌지 못하겠지만, ‘닥치고 정권교체’를 해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선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다.
 
  양자 대결 구도에서 이재명 후보(44.2%)가 윤석열 후보(36.9%)를 크게 앞섰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외 다른 후보’(2.5%), ‘없다’(11.1%), ‘모름’(5.3%) 등 여야 어느 쪽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제3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 규모가 20% 정도 된다는 것이다.
 
  동일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에 잘 대처할 정당’으로 국민의힘(25.9%)과 민주당(22.8%)이 1·2위였지만, ‘그런 정당이 없다’ 또는 ‘모르겠다’가 39.3%로 상당히 많았다. 이것은 기존 거대 정당에 실망한 중도층이 제3지대를 향한 관심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안철수의 공간
 
지난 7월 7일 오찬을 같이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두 사람이 협력할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사진=조선DB
  따라서 ‘중도 실용 정당’을 표방하는 안철수 대표의 공간이 열릴 수도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DJP 연대로 김대중 후보는 열세 지역이었던 대구·경북으로 지지세가 확산되고,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색깔론 시비를 차단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만약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 간 연대가 이뤄질 경우, 안 대표는 국민의힘이 중도로 외연(外延)을 확대하고 중도층이 이탈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내년 대선도 진보-보수의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면 ‘48(패자)대 52(승자)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결국 2~3% 포인트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내년 대선에서 제3지대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 대표가 이끈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26.7%를 얻었다. 2017년 대선에서 안 후보는 21.4%를 득표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19.6%를 얻었다. 2020년 총선에서 안 대표가 이끈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6.8%를 득표했다. 이른바 ‘대깨안(대가리가 깨져도 안철수)’의 규모가 최소한 5%는 될 수 있다.
 
  분명 현 선거 환경은 2012년 대선 때같이 제3정당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내년 대선에선 진보-보수 간 박빙의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안 대표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김동연의 모델은 마크롱?
 
지난 9월 9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진=조선DB
  한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9월 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아무런 세력도 없이 도와주는 몇 분과 함께 단기필마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지지율에 실망하고 있지 않다”며 “비전과 콘텐츠로 승부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과 함께하면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비전과 콘텐츠로 승부하겠다”는 김 전 부총리의 말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대선 직전 ‘앙 마르슈’ 신당을 창당해 정권을 잡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영국 BBC 방송은 마크롱 승리의 5가지 이유를 분석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프랑스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마크롱은 2016년 경제장관 사퇴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청년들과 함께 앙 마르슈 운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 자원봉사자들을 전국 각지로 보내서 30만 가구를 직접 방문해 2만5000여명의 유권자들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를 통해 캠페인의 우선순위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만들어졌다. 그러고 나서 1년 만에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이를 벤치마킹해서 한국 사회에 새로움을 보여준다면 의외의 힘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시간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김 전 부총리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는 만날 계획이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건전한 생각을 하는 분들과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선거는 연대다. 연대하는 세력은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세력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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