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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戰場으로 나간 총리 후보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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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10월 1일 일본 참모본부 차장 다무라 이요조(田村怡與造) 소장(少將)이 세상을 떠났다.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그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 야전군(만주군) 총참모장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다무라의 후임을 선정하는 것이 화급한 숙제였다.
 
  이때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郎· 1852~1906년)가 그 자리를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당시 고참 육군 중장(中將)이던 그는 곧 대장 진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고다마는 문부대신·육군대신을 역임한 후 내무대신과 대만총독을 겸임하고 있던 인물로, 차기 총리대신 물망에 오르내리던 거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육군 소장이 맡고 있던 자리에 취임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몇 계급 강등을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겁에 질려 있었다. 고다마는 그런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작가 시바 료타로는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그를 “성격이 활달하고 막힌 데가 없으며, 작전가인 동시에 높은 경륜의 소유자였고 더욱이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재능은 같은 시대의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평했다. 만주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는 상당 부분 고다마 덕분이었다.
 
  전쟁 중의 노심초사(勞心焦思) 때문이었을까? 전후(戰後) 고다마는 참모총장으로 승진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9개월 후인 1906년 7월 뇌내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1950년대에 야당을 이끌었던 조병옥(趙炳玉) 선생은 “나보다 당(黨), 당보다 국가”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야당 정치인들을 보면 나라나 당보다는 자신을 앞세우는 것 같다. 심지어는 설사 내년 대선에서 지더라도 자기는 내년 서울시장 선거나 그다음 대선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내년 대선에서 패하면 지방선거도 물 건너가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는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없는 듯하다. 러일전쟁 때 고다마 겐타로처럼 자기를 내려놓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 아쉬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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