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젊은이의 시각

한계 드러내고 있는 K-방역의 민낯

朴正熙식 총력전 체제가 K-방역의 실체

글 : 임명묵  작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방역 이유로 국가 권력이 개인의 일상 영역으로 대대적 침투… 자유주의 후퇴
⊙ K-방역은 文 정부의 민주주의적 방역 방식이 아니라 ▲생산 역량 ▲총력전 체제 ▲디지털 멍석말이 덕분
⊙ 디지털 정보를 수집해서 격리 조치 취하는 것은 중국, 집단적 감시체제는 일본의 이지메 방식과 유사
⊙ ‘록다운 없이 각종 통제 수단 작동해 확진자 수를 억누르는’ K-방역 한계 도달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저서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정부가 ‘K-방역’의 성공, ‘백신허브화 전략’ 같은 화려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K-방역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지난 7월 12일부터 수도권에 개편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서, 저녁 무렵 길거리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각종 만남과 모임으로 왁자지껄하던 길가에는 적막만이 가득하고, 간간이 두 사람이 테이블을 잡고 조용히 얘기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한국 번화가 특유의 왁자지껄함을 낯선 고요가 대신한 것이다. 일견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는 풍경이지만, 사실 이 풍경은 이면(裏面)에 수많은 사람, 특히 자영업자들의 절규와 비명이 도사리고 있는 잔인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모든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2주간의 거리 두기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는 유의미하게 감소하기는커녕 미동도 없다. 일별 확진자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언제든지 튀어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사회는 그 성격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위기에서 어떤 것을 학습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정보와 학습에 기반해서 다시 위기에 대처한다. 이 과정은 각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어디에 사회적 합의를 강하게 두고 있는지, 또 어떤 합의가 구성원들 사이에서 취약한지까지 보여준다.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적 방식’인 K-방역(防疫)도 마찬가지다. K-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 네 번의 대유행에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K-방역은 한국 사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경시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 보자. 정부가 내세우는, 한국적 방역 정책이라는 K-방역의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한창 K-방역이 홍보될 때 그것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었다. 개방성・투명성・민주성 등 ‘가치’가 이야기되었다. 그 수단으로서 검사, 철저한 역학(疫學)조사 등 고도의 밀착 행정이 논해졌으며, 거리 두기 정책과 마스크 착용에 대한 시민들의 협조도 언급되었다. 정부는 이 같은 고유한 특성을 바탕으로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 구분되는 ‘K-방역’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 록다운은 없다”
 
  단순히 이런 구성요소만 보아서는 K-방역의 또 다른 핵심적 요소를 찾아낼 수 없다. 바로 K-방역의 ‘목표’다. 정부의 방역 정책이 목표로 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속하게 바이러스를 잡아내고 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인가? 집단 면역(免疫)을 최대한 빠르게 달성하여 이 사태를 끝내는 것인가? 방역 정책이 목표하는 것을 알아야지만 K-방역이 상기(上記)한 구성요소들이나 정부의 화려한 홍보문구를 넘어서 실제로 구체적 양상 속에서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사실 목표는 단순한 것 같다. ‘한국에는 록다운(Lockdown)이란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목표다.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봉쇄, 록다운 등 대신 거리 두기로 대표되는 방역 정책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꾸준히 선전했다. 서방 국가에서 확진자 수가 하루 수만명에 달하는 대혼란이 찾아오고, 정부가 어떻게든 혼란을 잠재우고자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봉쇄를 선언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방역은 확실히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이 대비는 K-방역을 정권의 가장 인상적 치적(治績)으로 만들어주었다. 이후 여기에 록다운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이유가 추가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될수록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통도 커지는데, 록다운은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K-방역(거리 두기와 적극적 행정)만이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최적(最適)의 선택지라는 의미였다.
 
 
  K-방역을 승리로 이끈 요인들
 
세계가 한국의 개방적·민주적인 방역에 주목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청와대 카드뉴스.
  그러나 세상에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완벽한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2020년의 여러 위기 국면에서 K-방역은 록다운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바이러스 창궐(猖獗)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 또 한국 사회는 막대한 정치·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간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겨져 온 자유주의의 후퇴가 그것이었다. 사회적 접촉과 이동의 감소를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바이러스의 확산만을 잡아내기 위해서, 국가 권력이 개인의 일상 영역으로 대대적으로 침투했기 때문이다.
 
  이는 K-방역을 둘러싼 정부의 홍보성 수사(修辭)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K-방역을 ‘승리’로 이끈 요인들은 정부가 강조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 등보다는 훨씬 실제적이고 강력한 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크게는 세 가지로 이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 역량 ▲총력전(總力戰) 동원체제 ▲디지털 멍석말이가 그것이다.
 
  먼저, K-방역의 생산 역량의 힘은 아주 명확하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는 특이하게도 고부가가치(高附加價値) 산업 영역과 가치사슬의 말단에 있는 단순 제조업을 모두 지닌 나라다.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이런 촘촘한 국내 공급망은 톡톡히 역할을 했다. 사태 초기에 다수 서방 국가들이 마스크를 비롯한 기초적인 의료 물자 수급(需給)에 난항을 겪었는데, 한국은 그 난항을 재빨리 수습하고 전국 각지에 산재(散在)한 공단에서 물자를 말 그대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제조업 역량은 전쟁으로 치면 군수(軍需) 물자 생산과 병참(兵站), 보급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바이러스를 향한 전쟁인 방역에서도 그 위력은 금세 입증되었다.
 
 
  朴正熙식 동원체제의 힘
 
1968년 새로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살펴보는 박정희 대통령. 주민등록증은 1968년 1·21사태 후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졌다.
  K-방역의 두 번째 힘은, 한국 특유의 행정과 동원 시스템에 있었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 전반의 특징이면서도, 동시에 북한이라는 유례를 찾기 힘든 군사 국가와 수십 년째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요컨대 한국은 중앙 관료제가 국민에게 밀착하여 행정력을 투사하는 동아시아 국가군(群) 중에서도, 총력전 병영국가 체제의 잔재를 근래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전국 각지에 위치한 동사무소와 파출소 같은 행정 기관과 그 행정 기관에서 통제하는 주민 식별을 위한 정보, 즉 주민등록번호의 존재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효용성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그 존재 자체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주민등록번호는 북한 공작원들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음모를 벌이자 그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1968년에야 만들어졌다. 즉 제도 자체가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대내외적 안보적 필요성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일이 없는 이례적인 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식별하고 분류하고, 합당한 행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정보 및 행정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혹은 않은) 국가들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인 것이다. 한국은 공산주의를 막고자 만들었던 동원과 통제 시스템을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감시·배제·격리·사적처벌
 
  K-방역의 세 번째 힘은, 정부가 상찬(賞讚)했던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실제 작동 양태(樣態)는 자유민주주의적 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국은 확진자의 동선(動線)을 공개하고, 밀접 접촉자들을 격리하면서 이들을 사회적 비난에 노출시켰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서 누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는지 여러 정보를 맞춰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고, 바이러스에 불운하게 걸리게 된 이들의 부주의함을 비난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과 거리를 멀리하는 것도 정당화했다. 이런 사회적 비난과 공격은 때때로 바이러스 감염 자체보다 두려운 것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조성된 상호 감시의 분위기는, 인간 활동을 크게 억누르면서 바이러스가 통제 불능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대적 개인주의와 시민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과거 촌락 사회 혹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감시・배제・격리・사적처벌 등의 논리와 더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종합하였을 때, 록다운을 어떻게든 피하면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은 다양한 방면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희생하면서 성공한 것이었다. 자유주의나 민주적 가치 같은 휘황찬란한 언어들 대신 활용된 ‘실제적 자원’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전부터 국가 건설과 방어를 위해 쌓아 올렸던 행정·통제·동원·감시 등의 기제였다. K-방역에 있어서 홍보의 영역과 실제 작동의 영역은 전혀 다른 것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K-방역을 둘러싼 논쟁에서 승리한 것은 실제 작동보다는 그런 홍보였다. 정부는 한국이 글로벌 개방과 다자주의(多者主義) 등의 가치를 대변하는 국가로서 새로운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국제사회에서 계속되는 홍보에 나섰다. 사태 초기 한국이 중국발(發) 입국 제한을 하지 않은 것 또한 그런 가치의 맥락에서 정당화되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나 리더십이 상실된 유럽연합이 혼미함을 보이는 상태에서, 한국은 ‘자유주의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K-방역, 中日과 흡사
 
  문제는 이런 말들의 잔치 속에서, K-방역이 2월이나 8월의 대유행을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게 한 실질적인 힘들은 거의 평가되지 않거나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을 대신하는 ‘자유주의 소중화’여서 코로나19를 막아낸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요인을 적절한 방향으로 조합한, 자유주의의 희생 위에서 코로나19를 막아냈는데 말이다.
 
  개인 식별 번호를 바탕으로 디지털 정보를 수집해서 격리 조치를 취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대적자(對敵者)라고 할 수 있는 중국식 시스템과 유사한 것이었고, 시민의식으로 찬사받는 집단적 감시, 혹은 ‘디지털 멍석말이’는 일본에서 빈번하게 벌어진 감염 위험군에 대한 이지메와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방역의 핵심적 자산들을 방치하거나 해제했다. 일선 자원을 보강하는 데 인색했고, 특별 차출된 의료 자원들에 대한 수당 지급도 차일피일 미루었다.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쓴 무리한 의료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지휘 인력과 현장 인력의 감정의 골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한국의 촘촘한 총력전 동원체제가 놀라운 수준이라고 하여도, 평시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큰 인력 및 자원 보강 없이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확진자 동선 공개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난의 부작용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부는 동선 공개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바꾸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비난의 두려움으로 이동이 제한되는 효과는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조치들이 K-방역이 제기하는 질문, 자유주의 가치와 안전 및 편의성의 교환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내려진 것이라 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2월 이후 정부가 일관되게 보인 입장은 K-방역이 자유주의나 민주적 가치의 상징으로 한국이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작년 여름의 어느 순간부터 정부는 상당히 여유롭게 상황을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수차례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행정력을 동원하고 확진자 클러스터를 잡아내서 격리하니 유행이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K-방역의 역량에 대한 이 같은 확신, 그리고 그 성공 요인에 대한 잘못된 분석이 추가적인 자원 보강과 확충, 제도적 기반 등을 고려하지 않고 관성적(慣性的)인 방역 대책을 밀고 나가도록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理想보다 앞선 국가주권
 
  그런 와중에 결국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바로 백신 수급에 손을 놓았던 것이다. 정부는 지금은 백신 접종률을 국가적 치적으로 내세우고자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백신 수급 논란이 터졌던 작년 연말만 하더라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많은 국민과 야당이 백신 수급 상황을 비판하자, 당국은 한국은 방역을 잘 하고 있기에 백신이 그렇게 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백신 부작용을 서구 국가들 등지에서 먼저 관찰할 수 있다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곧 백신 수급에 대한 불안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고, 정부는 부랴부랴 백신을 최대한 사 오고자 뒤늦게 구매 행렬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미스터리한 점은, 숱한 선진국들이 선(先)구매를 하던 때에 한국은 전혀 선구매를 안 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이 미스터리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갯속에 갇힌 것이 많으니 어떻게 확정적인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K-방역을 둘러싼 정부의 자기 평가와 자기 인식이 백신 수급에 상당한 난항을 빚어냈다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각국의 백신 수급 협력을 위한 다자 협의체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를 통해 계약했다고, 백신 수급은 안정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각국이 겨우 마스크를 둘러싸고 아귀다툼을 벌인 상황은 그 같은 국가 간 협력이라는 이상(理想)이 막강한 국가주권의 힘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바가 있었다. 선진국들이 그들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투입하면서 개발도상국들보다 백신을 더 먼저 가져가려는 상황에서 코백스는 그 가치와 구호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가치와 구호 때문에 더욱 무력(無力)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아마 ‘자유주의 소중화’라는 한국의 새로운 위상에 코백스가 내세운 다자 협력의 가치가 부합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연말까지 백신 선구매를 손 놓고 있던 상황이 어떤 식으로 발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논리가 누구에 의해서 개입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모든 것은 추측만 가능할 따름이다. 어쩌면 국내 생산의 힘을 과시하고 그를 통해 지지를 제고(提高)하고자 하였던 정부가 ‘국산’ 치료제와 백신에 과도하게 도박수를 건 것일 수도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언젠가는 관련 자료와 정보를 공개하여 그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복기(復棋)하고 재구성해내야 할 것이다.
 
 
  한계 드러난 K-방역
 
지난 2월 28일 일부 보수단체가 3·1절 집회를 열려고 하자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했다. 사진=조선DB
  불행 중 다행으로, 어떻게든 끌어모은 백신을 정부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신속하게 접종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것처럼 보였다. 2차 접종 물량까지 소진하며 1차 접종에 일단 투입하고, 추가 투입 분량을 그사이에 어떻게든 구해오는 아슬아슬한 곡예까지 구사해가면서 말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물량이 들어오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소진하는 놀라운 접종 속도를 보여주면서 총력전 동원체제와 한국인들의 속도지상주의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백신이 제때 수급되면서 접종률을 높이고 집단 면역을 향해 갈 수 있다면, 한국은 여름이 끝나감과 동시에 차근차근 팬데믹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 이것이 6월이 끝나가기 무렵에 점점 고개를 들던 희망에 찬 전망이었다.
 
  안타깝게도 백신 수급은 예상된 속도로 원활히 풀리지 않았고, 접종률 그래프는 급속한 상향에서 횡보(橫步)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여름철의 이동량 증가, 델타 변이의 유입과 맞물려 확진자 그래프가 꿈틀대고 있었다. 국민들을 다시 괴롭힐 4차 대유행의 시작이었다.
 
  4차 대유행의 1일 평균 확진자가 3차 대유행의 정점(頂點)보다 많은 천수백명으로 지속되면서, 사태는 다시 위험한 수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기존 K-방역의 기조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자원을 동원하고,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망을 작동시키는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서 바이러스를 다시 잡고자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4차 대유행 국면에서 제대로 통하지 않게 된 듯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유례없는 (개편된) 4단계 거리 두기를 발표하면서, 수도권에서 저녁 이후로 3인이 만나지 못하게 하고 체육 시설의 음악 속도까지 제한하였지만, 확진자 추이는 전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에게 고강도의 스트레스를 강제함으로써 확진자를 억누르는 K-방역 모델의 지속 가능성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일 수 있다. 그간 K-방역은 시민의 자유를 억제하고, 자영업자의 경제적 출혈을 강제함으로써 유지되었다. 록다운을 하지 않고 확진자 수를 누르기 위하여 각종 수단을 총동원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상시적인 압박을 줌으로써 만들어낸 성과였다.
 
 
  지속 불가능한 K-방역
 
지난 2월 1일 대전 지역 노래방 업주들은 ‘코로나로 죽기 전에 생활고로 먼저 간다’ ‘공무원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청에서 항의를 했다. 사진=조선DB
  문제는 이런 고통 감내가, 고통을 차별적으로 더 받는 사람을 위주로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들이었다. 매출이 수직 낙하하고, 경영이 위태로워진 이들은 이제 방역을 위해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게 되었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인식 자체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일상적으로 느끼게 되면서, 감염 확산에 무감각해졌고, 이런 자체적 규율과 압력의 이완 또한 오래된 스트레스의 강제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백신 수급이 당장에 원활해지지 않는다면, 확산력이 강해진 변이체의 도전과, 사회적 인내라는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을 이끈 K-방역의 통제 수단은 이번의 위기를 또다시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생긴 것 같다. K-방역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없는 것인가를 논하기 이전에, K-방역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고 이것이 무한정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인지 반문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록다운을 하지 않은 채 각종 통제 수단을 작동하여 확진자 수를 억누르는’ K-방역의 목표를 그대로 달성하기엔 이제 점점 출혈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K-방역의 가장 약한 고리다. 자영업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출혈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팬데믹 국면에서 이익을 얻은 이들과 대신 정부로부터 희생물로 지정된 채 버려진 이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상상 이상으로 벌어질 것이다. 과연 정부는 K-방역으로 인해 차별적으로 부과되는 고통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마땅한 복구 방안이 있는가?
 
 
  K-방역의 전략적 목표 재검토해야
 
  이제는 방역의 목표를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백신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집단 면역이 신속하게 달성되고, 어려운 결정에 직면하기 이전에 사태가 급속히 호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될 가능성도 고려를 해야 하고, K-방역을 지탱하는 여력 자체가 고갈된 시점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확진자 수를 통제하는 것이 목표라면, ‘록다운 없이 일상을 지키며 방역을 하는’ 신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미 영업 제한 등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은 준(準)록다운이나 다름없으며, 일상은 파괴될 대로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명확하고 신속한 손실 보상 계획에 바탕을 둔 사회적 고통 분담을 논의할 때이다.
 
  아니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 50대까지 백신 접종이 완료되면,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이 하나의 변곡점(變曲點)을 지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한 자유 통제, 손실 보상 없이 특정 집단에 대한 고통의 일방적 강제를 거두기 위해서, 확진자 수의 증가를 감수할 수도 있다(위중증자 및 사망자 전환 비율이 백신 대량 접종 덕택에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면). 물론 이런 것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였을 때의 이야기다. 현행 거리 두기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백신 접종이 빠르게 전개된다면 이런 선택을 고민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도둑처럼 찾아드는 법이다. 그 시점이 온다면 K-방역의 전략적 목표 자체를 재검토하며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다시 분간하고, 구성원들을 설득하며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고전적인 정치적 과정과 결단이 필요해진다.
 
 
  코로나19 경험에 대한 성찰 필요
 
  K-방역의 제도적・행정적・법적 근거의 많은 수는 박근혜 정부 시기 메르스(MERS) 대처를 반성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처가 표류했던 이유는, 민관 TF를 중심으로 논의가 공회전하는 와중에 자원을 어떻게 동원하고 특정 국면에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리더십이 부재(不在)했기 때문이다. K-방역이 제도와 행정의 관성으로, 자유를 통제하고 희생을 강제하며 돌아가는 지금, 정치적 리더십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 아닐까.
 
  이 난국이 끝난 뒤에, 위기에 대처하였던 한국 사회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분명 서구 국가들에 비하여 성공적인 방역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추구해왔다고 생각한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안전과 편의성, 자유와 개인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와중에, 위기 후의 한국 사회가 이 잔인할 수도 있는 교환 관계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종류의 위기가 또다시 도래하고, 그와 같은 교환이 요구된다면, 우리 공동체와 국가는 어디까지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혹은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까? 언젠가 코로나19라는 재난은 백신과 함께 물러가겠지만, 이 질문을 피해가는 이들은 곤경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는 이들로 남게 될 것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