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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이제야 밝히는 ‘야인’ 시절 오세훈의 진짜 속마음

서울시장 사퇴 배경, 인간 박원순과 박원순 서울市政에 대한 분노…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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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선거(2018년) 때 박원순과 일전 벌이고 싶은 걸 참으려니 피눈물 날 지경”
⊙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눈시울 붉힌 오세훈의 ‘속마음’
⊙ 다른 사안에는 온화한 표정과 차분한 어조… ‘박원순’ 얘기할 때는 격정적
⊙ “박원순이 ‘자식’ 같은 내 정책들 뒤집는 거 보며 혀 깨물고 참은 게 한두 번 아니다”
⊙ “박원순의 ‘오세훈은 빚냈고, 나는 빚 갚았다’는 주장은 패륜적”
⊙ “박원순의 ‘보여주기’식 행사 보며 ‘박원순스럽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
⊙ “2018년 당시 서울시장 선거 출마 제안 없었고, 홍준표 전화도 없어”
⊙ “박원순과 토론해 그가 엉터리로 한 일들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었지만…”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 종료 직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자신이 큰 표 차로 이긴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뉴시스
  오세훈(吳世勳) 전 서울시장이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정치적 침체기를 보내야 했다. 그사이 정치지형이 바뀐 영향도 크지만, ‘오세훈’이란 이름에는 으레 “서울을 박원순(朴元淳)한테 가져다 바쳤다”는 힐난이 함께했다. 이를 포함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유력한 ‘차세대 주자’ 평가를 받았던 ‘재선’ 서울시장 출신 정치인은 이후 낙선을 거듭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서울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자유한국당 측에서 “소중한 자산”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끝내 나서지 않았다. 2019년 2월에는 자유한국당 대표직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는 서울시 광진구 을에서 출마했지만 “문재인의 숨결까지 잘 안다”고 하는 지금의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졌다. 이후 오 시장은 틈만 나면 고 의원에게 “나한테 패한 사람”이란 취지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대권 주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그 지지율은 5%도 되지 않았다.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가 ‘정치적 재기’를 할 수 있는 ‘묘수’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 시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 나서 역전승을 거듭한 끝에 서울시정을 다시 맡게 됐다. 그 과정에서 오 시장은 수차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원래 자신보다 앞서 있던 나경원(羅卿瑗) 전 의원을 꺾고 후보가 된 오 시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지난 10년 동안 많이 죄송했다.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시장으로서 10년간 살아오면서 죄책감, 자책감이 있었다”며 “그 모든 것을 늘 가슴에 켜켜이 쌓으면서 여러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날을 저 나름대로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3월 23일, 안철수(安哲秀)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오 시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시민 여러분께 진 마음의 빚을 일로써 갚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왔다”고 말했다.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가 끝나고 나서 “오세훈이 박영선을 21.3%포인트 차로 이긴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그는 고개를 떨구고 지난 10년을 회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018년 11월 인터뷰 당시 오세훈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사진=《월간조선》
  이런 장면을 보면서 2018년 11월 당시 ‘야인 오세훈’을 인터뷰한 일이 떠올랐다. 당시 그는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지만, 그해 《월간조선》 12월호(11월 17일 발간)에 기사화된 내용은 절반 정도였다.
 
  오 시장이 비(非)보도를 전제로 얘기한 대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미소를 잃지 않고 조곤조곤 얘기하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당시 오 시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격정적인 어조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오 시장은 “내가 소상하게 다 얘기할 수 없다. 정치를 하는 이상 이런 얘기는 참아야 한다”며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정치인’의 차분한 어조로 전환해 답변을 이어갔다.
 
  당시 그가 표출한 ‘박원순’에 대한 울분, 서울시장 사퇴에 대한 회한은 ‘비보도’ 약속에 묶여 한동안 밝힐 수 없었지만, 그가 서울시장에 다시 취임한 지금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에 오 시장 측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후임 시장 박원순’에 대한 ‘인간 오세훈’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등을 공개한다.
 
 
  “오기 생겨 시장직 걸었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
 
오세훈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서 “야당의 ‘나쁜 투표’ 공격과 여당의 외면 탓에 오기가 생겨 서울시장직까지 걸었다”며 이를 후회했다. 사진=뉴시스
  당시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오세훈 시장의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담은 기사의 제목 역시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 ‘고민’ 밝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었다. 관련 문답이 오가고서는 그의 대표 경력인 ‘서울시장’ 시절 성과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오 시장이 밝힌 본인의 업적은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 대폭 감소(60㎍/㎥→47㎍/㎥) ▲‘청렴도 1위’ 서울(오세훈 취임 전 서울시 청렴도는 전국 15개 광역단체 중 15위) ▲서울의 세계 도시 경쟁력 급상승(2006년 27위→2010년 9위) ▲한강르네상스(수변 관광도시화) ▲친수(親水)·녹지공간 확충 ▲‘디자인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문화관광 도시 서울(외국인 관광객 1200만명 유치 목표) 등이다. 다음은 당시 공개하지 못했던 오 시장과의 문답이다.
 
  — 본인의 시장 재임 시절에 서울시가 확 달라졌다고 자평합니까.
 
  “그건 뭐 자평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서울시민의 평가가 중요한 거죠. 잠깐만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이게 참 재밌는 게…. 내가 보여줬다고 하지 말고. 보세요, 말이 필요 없어요. 이게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보낸 문자입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오세훈과 박원순 시정 수행 긍정률) 결과인데요.”
 
  — 75(오세훈) 대 25(박원순)네요.
 
  “변변치 않게 보일까 봐, 이런 거 절대 누구한테 보여주질 않는데요. 좌우간, 그러니까 무슨 얘기 하다가….”
 
  — 서울시가 확 바뀌었다….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라 나는 공무원들이 제일 잘 안다고 봐요. 공무원들은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원순이) 시민은 속일 수 있지만,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은 못 속여요. 이 공무원들이 지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임기 3년 남은 현직 시장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지금 이런…. 3년이 뭐야? 뽑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았죠. 박 시장이 처음에는 공무원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알았다고.”
 
  — 서울시장 재임 당시 시의회에 출석한 영상을 보면, 평소 온화한 표정을 짓던 것과 달리 찡그린 얼굴을 자주 하던데요. 답변도 신경질적으로 하고요. 그때 민주당이 주도하던 시의회와 자주 대립했죠.
 
  “그렇죠. 뭐, 아까 그런 식이에요. 하여튼 뭘 하겠다고 하면 예산 안 주겠다고 그러지. 서울의 ‘디자인’을 고급화하겠다고 하면 ‘페인트칠한다’ ‘겉멋 든 강남시장이라서 멋 내기 좋아한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고, 예산도 깎으니까 시의회와의 관계가 좋을 수 없었죠.”
 
  — 그 갈등이 폭발한 게 바로 ‘무상급식’ 아니겠습니까.
 
  “내가 참…. 수차례 얘기했는데도 진심을 안 믿어주는 경향이 있어요. (사전 질의서를 보며)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대권 출마용 아니었느냐?’란 식의 질문이 있던데, 뭉뚱그려서 답변하면 이래요. 그때 ‘내가 정치적으로 손해를 좀 보더라도 분명한 복지의 기준선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어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좀 과하게 자리를 걸고 그렇게 진행된 건데, 처음부터 자리를 걸고 시작한 싸움은 아니에요. 정말 순수한 의도로 ‘우리 국민은 그렇게 간단한 국민이 아니다. 그러니 서울시에서 주민투표 한번해보자’고 한 건데요. 계산 착오였던 거죠. ‘민주화 세력’이란 사람들이 ‘나쁜 투표’라고 하면서 ‘투표 거부 운동’을 할 거라고 상상을 못 했죠.
 
  아무리 다급해졌어도 그렇지. 그러다가 야당에서 주민투표 의미를 헐뜯기 위해 ‘저거 대권 노리고 저런 거다’라고 해요. 그런 오해 받을까 봐 나는 대선 불출마 선언을 먼저 했어요. 그때 기사 찾아보세요. 그런데 같은 당 안에서도 ‘저게 MB(이명박 전 대통령)와 짜고 박근혜(朴槿惠)한테 대권 안 주려고 저 짓 한다ʼ면서 안 도와줬던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래? 그럼 나 혼자 할게. 너희가 안 도와준다고 해서 내가 못 싸워?’란 식으로 슬슬 오기가 생겼죠. 그 과정에서 결국 자리까지 걸고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요. 어쨌든 대권욕 때문에 그랬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
 
 
  “‘서울시장 박원순’을 예상한 사람 있었겠나?”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 그 결과 지금의 박원순 시장이 서울을 맡게 됐고, 이후 “오세훈이 박원순한테 서울을 넘겨줬다”며 원망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죠.”
 
  — 2011년 당시 시장직을 사임할 때 국내 정치 판도가 지금처럼 바뀔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아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서 그게 ‘박원순 3선’까지 이어지니까 다들 마음이 섭섭한 건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때 ‘안철수 현상’이 있을 거라고 미리 예측한 사람이 있었냐고요? 또 엉뚱하게 그 덕분에 박원순 시장이 당선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겠어요?”
 
  —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민심이 당시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고요. ‘안철수 현상’은 201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니, 그건 지나치게 단순화한 거예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지금 보수 정권이 이렇게 이른바 폭망하는 계기를 자꾸 ‘그때(오세훈 사임)부터 시작됐다고 얘기하는데요, 한번 객관적으로 되돌아봅시다. 실제로 지난 총선(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에 뭐 ‘180석을 먹네’ 그랬잖아요. ‘친박(親朴)을 넘어서서 진박(眞朴)을 감별하겠다’고 나서고, ‘옥새 나르샤’를 해서 총선 때 망한 거 아니에요? 저도 그때 떨어졌고요. 그런데 왜 자꾸 오세훈을 거기 가져다가 찍어 붙이냐고요. 정치인이 반성하는 모습,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안 해요. 인터뷰에서도 안 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때 상황을 되돌아보세요. 내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요.
 
  “서울시를 결과적으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이건 내가 수용하지. 수용할 수밖에 없지.”
 
  인터뷰에 배석한 ‘오세훈 최측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2011년 시장직 사퇴 이후 2012년에 총선, 대선이 있었다. 그때 한나라당이 모두 이겼는데, (보수 몰락의) 발단을 거기서 잡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어지는 오 시장의 발언이다.
 
  “무상급식은 같이 싸워야 할 사안인데, 왜 안 도와줬느냐? 나중에 대선 때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말 매몰차게….”
 
  — 그럴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만일 주민투표 결과 ‘전면 무상급식’을 막았다면, 그걸 바탕으로 당내 대선 주자로 부상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될 수는 있었는데요. 그래도 싸울 때는 같이 싸웠어야죠.”
 
  — 그렇게 안 하다가 결국 자유한국당이 지금 이 꼴 된 거 아닙니까.
 
  “남 탓 하는 거 같아서,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사실 그 속이 어떻겠어요. 나도 부글부글, 하고 싶은 말이 많죠. 오세훈 때부터 기울었다? 참… 그런 식의 시각은 말이 안 돼요.”
 
 
  “박원순 이후 서울시의 ‘일하는 분위기’ 사라져”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직 사퇴 이후 10년 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서울시 광진구 을에 출마했지만, 지금의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하기까지 했다. 사진=뉴시스
  —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요즘으로 따지면 ‘적폐청산’식으로 본인이 추진했던 사업들을 보류·취소하는 걸 볼 때 그 심정은 어땠습니까.
 
  “생병이 날 정도로 아프지. 그때 병도 나고. 내가 정말 10개월 동안 배 아파서 낳은 자식 같은 정책들이, 다 애착이 가고 정말 자부심이 느껴지는 그 정책들이 새로 들어온 시장에 의해 별 고민도 없이 다 뒤집어지고, 취소되고, 무효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 심정이 어땠겠어요? 뭐, 반성을 떠나서 정말 내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던 게 사실이죠.”
 
  — 그때 당시에 식사는 제대로 했습니까.
 
  “식사를 제대로 하고를 떠나서, 디스크도 오고, 위장병도 오고, 건강이 망가져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 서울시를 위해 정말 이 사업은 계속 추진했어야 하는 게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서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투자환경 개선에 예산을 배정하고 추진해야죠. 그런데 그게 ‘표’가 되는 일은 아니에요. 서울에 들어오는 외국인, 서울에 꼭 유치하고 싶은 외국 기업이 있는데 주거비가 비싸요. 그럼 그 사람들한테는 싼값에 임대주택 줘도 돼요. 제가 양재동에 외국인 전용 임대주택을 지었어요. 그거 박원순 시장이 들어와서는 홀라당 가난한 사람한테 주겠다고 하며 분양했어요. 시민 입장에서는 ‘아니, 왜 우리 세금으로 외국인들 싼값에 살라고 집을 지어줘?’ ‘왜 우리 돈으로 서울시 땅에 외국인학교 지어줘?’라고 반감을 갖겠죠. 내가 한 건 표가 안 돼요. ‘표’만 따지면요, 박 시장이 옳은 겁니다.”
 
  — ‘표’가 안 되는 일을 왜 했습니까.
 
  “이건 서울 경제를 돌리는 데 진짜 도움이 되는, 도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정책이에요. 서울을 ‘투자 적격지’로 만들기 위해 이런 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했으니까 도시경쟁력 순위가 세계 27위에서 8~9위로 올라선 것 아니에요?
 
  당시 서울시와 서울시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객관적으로 한번 돌아보세요. 도시경쟁력을 비롯한 각종 순위도 그렇고, 120 민원전화 시스템 등 서울시민이 지금 체감하는 많은 변화가 그때 이뤄졌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세계 최초로 4년 연속 유엔 공공행정상(공공행정 분야 국제 최고 권위 상)을 받았어요. 서울시 공무원들이 신바람 나서 일하는 분위기였어요. 그게 박 시장이 들어오면서 다 없어진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 ‘박원순 서울시’가 정책을 수출했다고 하면서 보도자료 내고 자랑하던데요. 그 수출했다는 정책 53건 중 49건이 전임 시장 때 추진·결정했던 것이고, 또 그중 상당수는 오세훈 시정 당시에 이뤄진 것들이던데요.
 
  “실제로 그래요. 비교해보면 압니다. 내가 있을 때 서울시가 유엔 공공행정상도 타고, 무슨 상 네댓 개 받았는데요. 그때부터 서울시의 변화가 시작된 겁니다. 그전에는 서울시가 그런 상을 받은 일이 없었어요.”
 
 
  “박원순과의 논쟁 여부 놓고 참모들과 매일 싸워”
 
  — 박원순 시장은 2011년 당시에 “이명박(李明博)·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만든 서울은 두 사람의 대권 꿈이 커가는 지난 10년”이라고 깎아내렸는데요.
 
  “그건 자기 기준이죠. 자기 속마음이고요.”
 
  — 그렇게 얘기한 그 사람도 대권 도전하려다가 지지율이 안 나와서 포기했습니다. 지금도 대권을 계속 생각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쓰진 마세요.”
 
  — 박 시장은 “오세훈 시장 시절 서울시 재정이 ‘파탄’ 났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기자 주: 당시 서울시는 재정자립도, 부채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건전한 재정 상태 유지)
 
  “전혀 그렇지 않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 빌미가 두 개예요. 하나는 그때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터졌어요. 전 세계가 다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대한민국만 그래도 마이너스 성장 안 하고 플러스 성장했습니다. 나는 그게 다 MB의 ‘공(功)’이라고 봐요. MB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다 같이 확장재정 정책을 펴서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확장재정이란 게 뭡니까. 세입보다 세출이 많은 거예요.
 
  하나가 또 있어요. 택지 개발에는 투자기가 있고, 회수기가 있어요. 땅을 사들이고, 거기에 상하수도를 놓고, 정리정돈하고 나서 분양해야 돈이 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시장을 할 때는 마곡지구를 비롯한 곳곳에 조 단위 돈이 투입되는 시점이었고, 박 시장 때는 이미 택지 개발이 끝나고 자금을 전부 회수하는 단계였어요. 그걸로 ‘전임 시장은 빚을 냈는데, 나는 빚을 갚았다’고 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죠.”
 
  —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습니까. 인내심이 강한 모양입니다.
 
  “혀를 깨물고 참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박 시장 취임하고 1년 안 됐을 때인데, 내가 했던 걸 다 지우고, 다 반대를 하니까. 내가 매일같이 참모들이랑 싸웠어. ‘입장을 내자’고 하면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참으세요. 지도자는 참아야 합니다. 지금 싸우면 똑같은 사람 됩니다. 그런 걸로 일일이 논쟁하면 격 떨어집니다. 언젠가 다 밝혀집니다’라고 말렸어요. 나는 ‘그때마다 반박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주워 담지 못한다’고 했어요. 백날 그렇게 내부적으로 의견 충돌을 했어요. 그렇게 말 못 하고 몇 년을 보낸 사이에 마치 그게 ‘사실’로 굳어졌는데요. 실제로는 다 그렇게 된 겁니다. 객관적인 자료들이 다 있으니까요.
 
  나는 절대 그렇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사람이라서 못 참을 때도 있죠. 지금 이런 얘기를 내가 작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반박을 안 하잖아요.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에요, 저 사람들이?”
 
  인터뷰에 배석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박원순 시장이 저렇게 해서 오래갈까 생각했다. 오래가지 않을 사람과 논쟁해봐야 역풍만 맞는다고 생각했다”면서 “박 시장이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어지는 오 시장의 발언이다.
 
  “실제로 그랬어요. 뭐 하나 나올 때마다 누가 잘했다고 싸우는 건 국민 마음과 거꾸로 가는 거예요. 그때는 박 시장 인기가 좋을 때였으니까요. (강철원: ‘그럼 네가 왜 나갔어?’라고….) 그러니까 항상 결론은 그렇게 되는 거라고. 그게 뻔한데 어떻게 싸우겠어요.”
 
 
  “서울시민, 박원순의 ‘오세훈 지우기’ 탓에 피해 봐”
 
  — 박원순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내놨던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도 사실 ‘오세훈 시정’ 때 추진됐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게 시장을 재선까지 한 사람이…. 3선 된 다음에 했나? 재선 이상 한 사람은 초선과 달라야 합니다. 일 머리가 있어야 해요. 국내 부동산 현황, 가격 변동 추이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있어야 해요. 서울시장 정도 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한마디 하면 그것이 시장에 어떤 파급 영향을 미치는지를 봐 가면서 세상에 내놓는 거죠. 정책의 당부(當否)를 떠나서 부동산 가격 앙등기에, 정부는 그걸 잡으려고 애쓰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 사업은 언젠가 해야 합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런 발표는 부동산 가격이 내려갔을 때 내놔야죠. 그 시점에 그런 얘기 하는 거 보면서 ‘저 사람은 시장을 몇 년 했는데도 저런가?’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죠.”
 
  — 박 시장은 ‘도시개발’보다는 ‘도시재생’을 강조합니다. 재생이랍시고 어디 벽에다 그림이나 그리는 식인데요. 이렇게 하면 도시가 발전하겠습니까.
 
  “서울시의 많은 예산이 결국 ‘헛수고’로 판단되는 ▲마을 만들기 사업 ▲마을 공동체 사업에 들어갔어요.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게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도요. 박 시장 임기가 끝나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박 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업적이 많다”는 식으로 주장하겠죠.
 
  “그렇죠. 눈에 안 보이는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을 하겠지만, 쉽게 검증할 수 있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8년에 건립 추진) 잘 활용하고 있잖아요? DDP는 예정한 기간에 공사를 끝냈으면 되는데, 돈을 찔끔찔끔 주는 바람에 공사기간이 늘어났어요. 그것 때문에 원래는 들어가지 않아도 될 돈이 나갔어요. 활용 못 하게 한 기간도 그렇고. 서울시민께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친 겁니까.”
 
  — 박 시장 들어와서 마곡지구 설계 변경도 몇 차례나 했죠.
 
  “그렇죠.”
 
  — 아까 미세먼지 감축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박 시장이 최근에 제일 비판받은 게 바로 미세먼지 많은 날 통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공짜로 운행한 겁니다.
 
  “좋게 보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자가용 이용하는 시민을 유도하겠다는 건데요. 버스비 1000원 안 내도 된다고 해서 자가용 이용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습니까. 그런 분은 많지 않다는 게 현실적인 한계입니다.
 
  더 기막혔던 건 ‘미세먼지 저감 대토론회’를 한다면서 광화문광장에 수천명 모아놓고 토론한 겁니다. 하, 정말 기가 막혔어요. 전임 시장이 했던 거 이어받아서 심화·발전만 시키면 되는 일인데, 마치 해법을 전혀 모르고 지냈던 사람처럼 시민의 지혜를 구한다?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를 보면서 ‘시중에 박원순스럽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세먼지는 그런 시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경유’란 미세먼지 발생원을 최소화하는 게 지금까지 유효했던 저감 방법이라는 사실을 시민께 고백해야죠.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이걸 못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기에 투자하고 싶은데, 그럼 돈이 들어갑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게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 아닐까요?”
 
 
  오세훈은 왜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지켜보기만 했을까?
 
오세훈 시장은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 배경에 대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전화도, ‘제안다운 제안’도 없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 ‘박원순 시정’에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면서 왜 지난 서울시장 선거(2018년 6월)에 출마하지 않았습니까. 선거 전에 홍준표(洪準杓) 대표가 “오세훈은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하면서 “나와달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아는데, 왜 안 나왔습니까.
 
  “이건 ‘비보도’를 전제로 하는 얘기인데요. 그때 마치 대단한 제안이 있었던 것처럼 질문들 하고, 저는 또 적당히 맞춰서 답해오긴 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면, ‘제안다운 제안’이 없었습니다. 홍준표 대표와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요. ‘같이 일하자’는 전화 한 통 없었는데,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홍 대표하고 싸우자는 얘기밖에 안 되니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김○○ 의원이 내게 와서 그러는 거예요. ‘홍 대표는 당신에 대해서 아직 떨떠름하다’고.”
 
  —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져서요?
 
  “여러 사연이 있어요. 홍 대표는 정치적으로 판단했겠죠. 제가 나오는 게 뭐 즐거운 일이겠어요? 김○○ 의원도 많이 애썼는데, 얘기가 같았어요. ‘홍 대표는 좀 떨떠름한데, 우리가 생각할 때는 형님이 하셔야 한다. 나와주십시오’라고 해요. 그럼 나는 ‘지방선거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준표 대표다. 내가 당선되려면 지금부터 반홍(反洪·반홍준표) 캠페인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럼 공천받자마자 반홍 캠페인 해도 되느냐?’라고 하죠. 그럼 그분들은 그다음부터 말이 없어요. 내가 세부 내용을 다 말할 수가 없어요.”
 
  — 한번 떠본 거네요?
 
  “모르겠어요. 떠본 건지 진심으로 나오기를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들어와서 나를 밟고 가도 좋다’고 하는 게 진심으로 영입하는 자세 아니에요? 그런데 전화 한 통도 안 한다는 건…. ‘너 들어와서 나 밟지 마. 나는 너 원한 적도 없어. 들어오겠다면, 네가 원해서 들어오는 거야’라고 나중에 그럴 거 아니에요? 그렇게 싸움이 붙으면 선거는 어떻게 합니까.”
 
  —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면, 박 시장을 이길 자신은 있었습니까.
 
  “박원순 시장에 대한 내 감정을 이제 알게 됐을 거예요. 단적으로 얘기해서, 내가 박원순한테 지고 싶겠어요? 내가 한번 붙어서 다 깨버려? 지금까지 엉터리로 한 거 백일하에 다 드러내? 토론하면 그거 다 나올 텐데? 내가 왜 그게 하고 싶지 않았겠느냐고요. 그런데 지난 선거는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피눈물이 나요. 그걸 참고 있으려니 오죽하겠어요. 역사는 승패만 기록합니다. 그사이에 누가 토론을 잘했다, 이런 건 지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 내가 그때 언제 깨달았느냐?”
 
  — 언제 깨달았습니까.
 
  “정세균(丁世均) 의장한테 지고 나서 깨달은 거야. 자기들이 무슨 ‘옥새 나르샤’ 하고 ‘진박 감별’ 하고 이렇게 해서 졌는데, 나중에 ‘오세훈도 종로에서 정세균한테 지더라’ ‘자기 행보는 안 하고 밖에 나돌아다니면서 지원유세하다가 졌다’고 하더란 말이야. 아니, 그럼 서울시 선대본부장을 왜 맡겨? 나는 그 의무를 하려고 나가다가 반응이 안 좋아서 사흘 만에 그만뒀어요. 그리고 내 선거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는 것은 ‘오만해서 졌다’는 거야. 역사는 그렇게 기록돼요. 내가 그렇게 기록되고 싶겠어요?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입 제안을 왜 비겁하게 피했느냐’고 한다 말이야. 할 수 없어. ‘내가 나가고 싶어 죽을 뻔했다’ ‘내가 팔 걷어붙이고 얼마나 박원순하고 일전(一戰)을 벌이고 싶었겠느냐’, 이걸 다 얘기할 수도 없고. 아마 자서전 쓰거나 죽을 때는 하겠지만, 정치를 하는 이상 이런 얘기는 참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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