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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死文化됐던 법규정들을 수시로 꺼내 드는 문재인 정권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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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김명수 대법원장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제기한 시민들에게 소송담보비용제공 요구
⊙ 수사지휘권 발동 사례 가운데 4분의 3이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발동
⊙ 기소율 0.1%에 불과한 직권남용죄, ‘적폐수사’에 동원… 잇따라 무죄판결
  법원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시민들에게 이례적으로 소송담보비용제공을 요구했다. 지난 4월 5일 중앙지방법원 민사49단독 강영훈 판사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정교모)’ 소속 회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 “원고들은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로 이 명령을 고지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원고 개인별로 각각 10만원을 공탁”하라고 명했다.
 
  민사소송법 제117조 제1항은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소장·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피고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원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원고 패소(敗訴)판결과 함께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아서 피고가 소송 관련 비용을 원고로부터 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하거나, 남소(濫訴)를 방지하기 위해 생긴 규정이다. 원래는 피고의 신청에 의해 법원이 해당 명령을 내리도록 되어 있었으나(제1항), 2010년에 법원의 직권으로 명할 수도 있도록 하는 제2항이 신설되었다.
 

  이번에 법원이 소송담보비용제공을 요구한 것은 제117조 제2항에 따라 판사 직권으로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판사 직권으로 소송담보비용제공을 요구하는 것은 판사 출신 변호사들조차 의아해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라는 데 있다.
 
  지난 2월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김태규 변호사는 “20여 년 동안 판사와 변호사로 일했지만, 그런 명령을 내려본 적도, 주위에서 내리는 것을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차기환 변호사 역시 “소송담보비용제공 요구는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가 없을 때에나 하는 것으로,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명령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정교모는 법원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면서 즉시항고(卽時抗告)를 제기했다. 정교모는 4월 9일 낸 성명에서 법원에 대해 “피고의 신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에게 직권으로 소송비용담보제공을 명한 사례가 지금까지 몇 건이나 있었고, 어떤 사건에서 있었는지 묻지 아니할 수 없다”고 따지면서 “피고가 현직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로 법원의 직권에 의한 소송비용담보제공 결정이라는 우산을 쓰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법원이 豫斷과 편견 갖고 있다”
 
  정교모는 담당 판사가 직권으로 소송비용담보제공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그 주소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므로, 결국 법원은 스스로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라고 판단하였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재판을 통해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다툼을 통해 종국적으로 판단에 이르러야 할 사안에 대하여 법원이 이미 일방 당사자인 피고(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유리한 심각한 예단(豫斷)과 편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교모는 “민사 소송에 있어서는 당사자주의의 대원칙에 쫓아 법원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심판자로서 당사자 쌍방의 주장과 입증을 쫓아 판단하여야 함이 마땅하고, 피고의 요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피고의 경제적 이익에 귀착되는 소송비용을 법원이 앞장서서 원고들에게 담보제공토록 함으로써 사실상 원고들의 소(訴)제기권, 재판청구권을 제한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서 “민사재판권마저 사실상 제약하고 재갈 물리려는 이 시도가 강영훈 판사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것인지, 피고 김명수의 요구에 의한 것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정교모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이 벌어진 후인 지난 2월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거짓말, 사법권 전체의 신뢰를 실추시키고도 그 자리를 고수하는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120만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정교모는 2019년 조국(曺國)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의 위선과 독선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 온 단체로 전·현직 교수 6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수사지휘권 발동 남발하는 文 정권 법무부 장관들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이렇게 법조인들조차 생소해하는 법규정을 꺼내 드는 일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직접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일선 검사들에게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법규정상으로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게 되어 있기는 하지만, 1949년 검찰청법 제정 이래 56년간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내에는 그 사례가 없기에 법학 교과서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해 설명할 때. 1954년 일본에서 ‘조선의혹사건(造船疑惑事件, 사토 에이사쿠·이케다 하야토 등 집권 자유당의 간부들이 조선업계로부터 국가보조금을 늘려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사건을 예로 들곤 했다.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된 규정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처음 발동된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10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을 때였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지시를 수용한 후 스스로 사퇴했다. 천정배 장관은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한 장관’이라는 비판을 받다가 이듬해 7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법무부 장관들은 수사지휘권 발동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그 수사지휘권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조자룡 헌 칼 쓰듯’ 자주 발동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임기 1년 동안 두 차례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그는 작년 7월 이른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검언유착사건)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려 하자 그 절차를 중단하고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면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의혹 및 윤 전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의 수사 지휘에서 빠지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두 번 모두 ‘윤석열 찍어내기’를 위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셈이다.
 
  추미애 장관의 후임인 박범계 현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17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 조남관 대검 총장 직무대행에게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한 전 총리에 대한 재소자 김모씨의 모해위증 혐의 여부와 기소 가능성을 재심의하라”고 지휘했다.
 
 
  기소율 0.1%인 직권남용죄도 애용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고 있는 직권남용죄 역시 실제로는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정권에 의해 애용되고 있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드물었다. 이 죄 관련 고소·고발이 되는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의 경우 4553건이나 됐다. 그러나 기소율은 0.1%에 불과했다. 판례나 학계 다수설 모두 직권남용죄와 관련, “구성요건이 까다롭고 직권의 범위에 대한 해석과 관련한 논란도 많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죄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박근혜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적폐수사’ 과정에서 ‘조자룡 헌 칼’처럼 수시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죄로 기소됐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병기 전 국정원장, 안종범 전 경제수석비서관 등은 1, 2심 재판과정에서 무죄(無罪)선고를 받았다.
 
  법조인들조차 머리를 갸웃할 정도로 법전 구석에서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되어 있던 법조문들이 활용되는 사건들은 모두 정권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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