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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도적이 정의를 훔쳐 의적 행세를 하면…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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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익무리와 범죄집단의 간극은 종이 한 장
⊙ 홍길동·임꺽정·장길산, 작가들 덕분에 단순한 도적에서 3大 義賊으로 미화
⊙ 스탈린은 은행강도 행각, 마오쩌둥은 황건적 찬양…, 남민전도 강도짓
⊙ 작금의 현대판 三政문란의 원흉은 586 세도정치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그러면 어느 계통이시오, 추설이요, 목단설이시오. 북대요?”
 
  1911년 경성감옥, 김(金) 진사(進士)는 김구(金九)에게 이렇게 물었다. 《백범일지》의 한 대목이다. 김 진사는 ‘삼남(三南) 불한당(不汗黨)의 괴수’로 유명하다는 자였는데 마침 백범의 감방으로 전방(轉房)을 오게 돼 말을 나누기 시작하던 차였다.
 

  백범은 “이게 다 무슨 소린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백범이 미처 알아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103년 뒤 영화가 돼 나왔다. 2014년 작 〈군도: 민란의 시대〉라는 영화다.
 
 
  群盜
 
  〈군도〉는 조선 말 철종 13년인 1862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조선 각지 70여 개 고을에서 연속적으로 민란이 발생한 해였다. 임술민란(壬戌民亂)이다. 이 민란들은 그해 내내 조선 천지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해를 넘기지는 못하고 진압되었다. 영화는 그때부터의 이야기다.
 
  “진압된 백성들은… 참수를 면치 못했으며 나머지 산으로 도망친 이들은 도적이 되어 생을 영위해야 했다.”
 
  주인공인 백정 돌무치는 민란 가담자는 아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群盜)에 합류한다. 그 패거리가 바로 ‘지리산 추설’이다. 〈군도〉는 이 ‘추설’ 무리가 임술민란 2년 뒤 나주에서 다시 민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그린다.
 
  《백범일지》에 이 추설에 대한 김 진사의 설명이 나온다.
 
  “이 도적의 떼는 근본이 하나요, 또 노사장(老師丈)이라는 한 지도자의 밑에 있으나, 그중에서 강원도에 근거를 둔 일파를 ‘목단설’이라고 부르고, 삼남에 있는 것을 ‘추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설에 속한 자는 서로 만나면 곧 동지로 서로 믿고 친밀하게 되었다.”
 
  나름 규율도 갖추고 있었다 한다. 영화 〈군도〉에는 추설, 노사장 등 《백범일지》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의 민란들이 ‘추설’ 등 군도 패거리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862년의 임술민란 상황을 기록한 《임술록(壬戌錄)》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추설’에 대한 기술은 《백범일지》가 유일하다.
 
  한편 1862년 임술민란의 대표적인 민란은 3월 14일 발발한 진주민란이었다. 진주민란은 3개월 이상 삼남(경상·전라·충청) 일대를 휩쓴 연속적인 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영화 〈군도〉에서 추설 무리가 나주를 무대로 일으키는 봉기의 양상은 진주민란의 경우와 가장 많이 닮았다. 하지만 임술민란 때는 물론 그 2년 뒤에도 나주에서는 민란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적 메시지는 실재(實在)보다는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바에 의한다. 《백범일지》같이 후광(後光)을 품은 저술이 도적떼 패거리를 저항적 의적(義賊)처럼 서술하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영화도 그렇다. 영화는 실재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경우에도 여러모로 허구적 변주를 한다. 실재 역사에 대해 애써 짚지 않으면 대개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뒤섞인 이야기는 그런 경향이 더하다. 야사는 추론(推論)을 넘어 상상을 허용하여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 수 있게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도적과 의적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은 그렇다. ‘로빈 후드’가 그렇듯 추설도 그런 경우일 터다. 우리의 또 다른 옛이야기들도 비슷하다. 홍길동·임꺽정·장길산 이야기다.
 
 
  조선의 대표적 도적 홍길동·임꺽정·장길산 3大 의적으로 미화
 
  실학자 이익(李瀷·186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조선의 대표적인 도적으로 홍길동·임꺽정·장길산 3인을 거론했다. 그에게 이 3인은 흉적(凶賊)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의적(義賊)으로 기억되고 회자된다. 조선조 당시에도 그런 기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더욱이 확연하다. 소설 등의 영향이 크다.
 
  우선 홍길동의 경우는 허균(許筠·1569~1618)의 《홍길동전(洪吉童傳)》 이래 의적의 대명사 격이 되었다. 홍길동이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그 무리가 발호했던 때가 조선조 최악의 폭군으로 꼽히는 연산군 시절이었음과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사료상의 기록에선 의적다운 면모의 행적은 없다. 오히려 한동안은 “항간에서 욕을 할 때 홍길동의 이름은 그 대상의 하나였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조선 말기로 접어들면서 정반대로 바뀌었다. 홍길동은 ‘구원자’의 이미지를 갖게 되고 활빈당(活貧黨)은 조직 모델이 되었다. 고종 때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건 무리가 발호했다는 기록도 있다.
 
  임꺽정(林巨正)은 조선 명종 때의 인물인데 3대 도적 가운데 그 행적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다. 활동 범위도 광범위하고 관군과 맞서 싸워 이기기도 하는 등 나름 세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임꺽정이 의적 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민가를 습격하고 살상까지 일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종실록》은 임꺽정 무리가 자신들을 고발했던 어떤 이를 나중에 배를 갈라 죽이는 것으로 보복했다는 기사까지 남기고 있다. 이를 의도적인 악평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다음과 같은 반성적 평가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貪汚)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 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구전(口傳) 전승의 민담에선 임꺽정은 서서히 의적이 돼가고 있었다. 그러다 임꺽정도 홍길동 못지않은 대표적 의적으로 이름을 확고히 하게 됐다. 홍명희(洪命熹·1888~1968)가 일제(日帝)시대인 1928~1939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 《임꺽정》 덕이 컸다.
 
  홍명희는 해방공간 시기 월북(越北)하여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다. 물론 그 정치적 행적을 이유로 소설 《임꺽정》의 문학적 평가를 재단(裁斷)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의 임꺽정이 실재인물 임꺽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소설적 작화(作話)로 형상화된 이미지가 널리 회자되면서 그 인상은 실재처럼 굳어지게 됐다.
 
 
  실록 속의 장길산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장길산(張吉山)은 더욱이 그런 경우다. 장길산은 조선 시대 3대 도적 가운데 기록이 가장 적다. 장길산은 숙종 당시의 도적인데, 실록에는 그를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빼고는 별다른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시대 의금부(義禁府) 추국청(推鞫廳)의 수사재판 기록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에 따르면 “말을 탄 병사 5000명과 걸어 다니며 싸우는 보병 1000여명이 있었다” 하니 그 패거리의 규모는 작지 않았던 듯하다
 
  특이한 대목이 하나 있긴 했다. 이영창(李榮昌)이라는 인물의 역모 행적 기록 부분에서 장길산의 이름이 나온다. 이영창은 운부라는 승려를 비롯한 전국의 승려 세력과 지방의 유력자를 포섭하였고, 장길산 집단과도 관계를 맺어 조선뿐 아니라 중국까지 점령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였다. 재판 결과 장길산의 이름을 집어넣은 것도 이영창이 자신의 계획을 과장하기 위한 것임이 밝혀졌다.
 
  장길산에 대해선 그 외에는 기록도 없을뿐더러 의적다운 민담도 별달리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장길산도 이제는 홍길동·임꺽정급의 의적이다. 역시 소설 덕분이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이다. 1974~198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1984년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그 시절 소위 386세대들에겐 민중문학의 총아(寵兒)로 받아들여지고 읽혔다.
 
  황석영 《장길산》의 허구적 작화의 정도는 《임꺽정》을 훨씬 넘어선다. 임꺽정에 대해선 그나마 사료도 비교적 풍부하며 민담 전승도 꽤 있는 편이지만 장길산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우선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찬사의 평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실과는 거리가 먼 ‘구라’라는 얘기가 된다. 작가 황석영의 별명이 ‘황구라’라 하니 그 평에 어울린다.
 
 
  구라와 카타르시스
 
  그런데 《장길산》은 대단한 구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선 홍명희 작 《임꺽정》의 오마주(hommage·존경)라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장길산》을 소개하며 “그 앞에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전범(典範)이며 영향원으로 우뚝 서 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홍명희의 《임꺽정》은 그가 월북 작가인 탓에 오랫동안 금서(禁書)였다가 1985년에 처음으로 출간됐다. 그러니 황석영이 《장길산》을 쓰기 전에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은밀히’ 유통되던 것을 접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떻든 《장길산》은 《임꺽정》 이후 민중적 영웅담의 계보를 잇는 소설로 자리매김했다.
 
  그리하여 이제 홍길동·임꺽정·장길산 3인은 우리 역사의 3대 의적이 돼 있다. 그 이야기들은 소설은 물론 영화로 드라마로 때로는 만화로 각양각색으로 극화(劇化)되곤 한다. 대중은 그것을 보고 즐기면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허구가 적잖은 이야기라 여기는 이들도 비슷하다.
 
  이런 현상 자체는 우리만의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동서세계 도처에 그렇게 낭만적으로 소비되는 의적 신화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낭만적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거꾸로 진행된 이야기도 있다. 의적이 도적이 된 경우다. ‘마피아(Mafia)’와 ‘삼합회(三合會)’의 경우다.
 
 
  마피아와 가족주의
 
마피아 영화의 대표작 〈대부〉.
  마피아는 기업형 범죄조직 일반을 칭하는 보통명사 마냥 사용되더니 지금은 의미가 더 확장되어 분야를 막론한 이익집단을 일컫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본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미국 범죄조직 명칭이다. 그 기원과 명칭의 어원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다. 그러나 어떻든 일종의 의적으로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는 수백 년간 다양한 세력의 외침을 겪고 지배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 시칠리아인들은 결사를 만들어 외세에 맞서기도 하고 하층민 집단은 귀족과 영주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19~20세기 초에는 뒤늦게 자본주의화도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진 유럽 지역들과는 달리 산업화가 미약하여 농지의 집적을 통한 농업 자본의 형성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었다. 그 때문에 대지주와 소작민, 자영농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살바토레 줄리아노〉(1962), 〈시실리안〉(1987)은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다. 살바토레 줄리아노(Salvatore Giuliano·1922~1950)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는 시칠리아에서 빈농을 대변하는 활동에 앞장섰다. 그냥 정치 활동만 한 게 아니라 총을 쏘고 도둑질을 하며 조직을 이끌었다. 그러다 1950년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의적으로 일컬어졌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온 마피아는 확연하게 범죄조직화했다. 그런 가운데 마피아는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조직원들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에 버금갈 만한 연고(緣故)가 있어야 했다. ‘출신 지역’이라든지 아니면 최소한 ‘누군가의 소개’가 필수였다. 일종의 확장 가족이었다. 특정 마피아 조직을 ‘○○ 패밀리’라고 한 것은 거기서 유래했다.
 
  마피아의 문화는 그처럼 무엇보다도 가족주의였다. 연고 패거리의 힘에 기반해 이권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근대 산업사회에 적응하여 그 기본적인 부문들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 개신교 와스프(WASP·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가 주도하는 미국에서 이탈리아 가톨릭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문화 자체가 달랐다는 것도 무관치 않다. 그들의 문화는 와스프적 근대성과는 결을 달리했다.
 
  마피아는 〈대부〉 3부작(1972~1990)을 비롯한 영화들 덕분에 낭만적 인상이 있다. 현대가 상실해가고 있는 가족 문화와 권위, 의리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듯한 이미지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금주법(禁酒法) 시대에는 주류 밀매, 그리고 매춘, 도박 나아가 마약까지도 그들의 사업 영역이었다. 그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끼리 항쟁도 하고 그들을 방해하는 이들은 매수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처리도 했다. 살해였다. 마피아는 살인을 밥 먹듯 했다. 그 기원이 어떻든 마피아는 결국 범죄조직이다.
 
 
  三合會
 
  미국에 마피아가 있다면 중화권에는 삼합회(三合會)가 있다. 영어로는 ‘트라이어드(Triad)’라 불리는데 역시 범죄조직이다. 그런데 이것도 그 기원과 관련해선 의적 신화를 빠뜨리지 않는다. 삼합회는 천(天)・지(地)・인(人) 3요소의 조화를 일컫는 데서 유래한 명칭인데, 그 기원과 관련해선 다양한 설이 있다. 많이 오르내리는 얘기는 청(淸) 제국 시절 그에 맞선 저항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근현대사는 격렬한 굴곡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곡절과 상관없이 그들의 사업은 늘 일관돼 있었다. 아편 밀매는 처음부터 기본이었으며 도박, 매춘, 사채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신매매에다 청부살인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업에 대한 방해물은 그게 개인이든 단체든 제거가 기본이었다. 죽인 것이다. 그 기원이 어떻든 삼합회는 시종일관 범죄조직이었다.
 

  그런데 마피아의 경우처럼 삼합회에 대한 영화도 그 특유의 문화를 낭만적으로 그린다. ‘관시(關係)’ 문화다. 혈연이 아니라도 ‘다거(大哥·형님)를 중심으로 그 이상의 강한 결속을 보이는 의리가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런데 관시 문화의 실체는 아름답지 않다. 삼합회뿐 아니라 중화권의 각종 범죄조직들의 조직적 기둥 노릇을 하는 게 관시다.
 
  마피아의 가족주의가 그렇듯 관시문화도 역시 근대에 적응하지 않은 전근대적 문화였다. 마피아의 가족주의, 연고주의가 그랬듯 그들의 관시문화도 근대적 경제 관계와 법치 원칙의 바깥으로 벗어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했다. 그렇게 하여 마피아와 삼합회는 의적에서 도적이 됐다.
 
  도적이야기가 의적이야기가 된 것과는 다른 역설적(逆說的) 교차다. 그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저 다른 종류의 이야기일 뿐일까 아니면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까? ‘인간과 그 이야기’를 헤아려보자.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인간은 의미의 존재다. 삶은 과학이기보다는 의미의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는 우선적으로는 로고스(logos·논리)다. 고대 그리스어 로고스는 본래 말 자체를 뜻한다. 그런데 로고스는 동시에 이성적 원리다. 고대 그리스의 사고방식으로는 이성적(理性的)이지 않으면 ‘말’일 수가 없었다. 논리를 뜻하는 로직(Logic)도 여기서 유래했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 이야기는 논리의 전개만이 아니라 의미의 박동(搏動)이다. 이야기는 전해지고 회자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전해질 수 있으려면 듣는 이의 감성이 공명해야 한다. 바로 파토스(Pathos·감성)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修辭學)》에서 로고스와 함께 파토스도 말하고 있다.
 
  그런데 파토스는 듣는 이의 마음이다. 대상의 실체가 아니라 인식 주체의 기대와 갈망이 먼저다. 갈망의 파토스는 로고스에만 만족하지 않고 미토스(Mythos)도 요청한다. 미토스도 이야기다. 로고스와는 또 다른 방식의 이야기, 신화와 전설 등이다. 미토스는 신화(Myth)의 어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로고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기술(記述)하고, 로고스의 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미토스를 말했다.
 
  낭만적 영웅담은 거기서 형성된다. 대중의 파토스는 로고스적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미토스적 이야기를 요청한다. 없으면 찾고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윤색해나간다.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갈망과 상상력이 더해진다. 대중의 갈망의 파토스와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의 결합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과도하면 탈선이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는 이의 신뢰할 수 있는 면모 에토스(Ethos·성품)라 결론지었다. 핵심은 윤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에토스에서 ‘윤리적’이란 의미를 지닌 ‘에티케(ethike)’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윤리(ethic)의 어원이다. 그런데 낭만이 이성을 압도하면 어느덧 에토스가 지루하고 허망해 보이게 된다.
 
  도적이 의적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는 그런 심리적 흐름이 동반된다. 그런데 역으로 의적이 도적으로 돼가는 타락도 마찬가지다. 그 둘 모두 윤리적 에토스가 힘을 잃고 감성적 파토스만 힘을 발하면서 이루어진다.
 
 
  586 세도정치와 현대판 三政문란
 
  이야기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현실 정치에서도 그 같은 일이 벌어진다. 좌익 정치세력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좌익의 이념적 믿음의 출발은 의적 심리다. 그러나 타락이 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독선이 부르는 필연이다. 의적이 도적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윤리적 에토스는 상관없다. 꾸미고 기만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감성적 파토스를 자극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선전・선동은 이제 그런 악적(惡的) 기술로 전락한다. 그렇게 하여 ‘빠돌이’를 만들어내고 그에 기대어 명백한 범죄 행각도 감성적 언사로 호도(糊塗)한다. 지금 한국의 현 정권 패거리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홍길동 등의 의적과 민란들의 배경에는 삼정문란(三政紊亂)이 있다. 삼정(三政)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으로 조선 시대 국가의 재정 민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3대 부문이다. 이것이 파탄을 보이면서 조선은 몰락으로 치달아갔다. 이 같은 조선 시대의 삼정문란에 필적하는 국정문란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조선 시대의 삼정문란은 양반 특권정치와 세도정치로 인한 것이었다면 작금의 현대판 삼정문란의 원흉은 586세도정치다. 586세도정치는 그 파렴치하기가 조선 시대의 세도정치를 뺨친다. 범죄적이면서 뻔뻔하다. 숙명적 귀결이다. 좌익 이데올로기의 바탕에는 피해자 의식이 있다. 피해자 의식의 르상티망은 죄의식을 증발시킨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심리가 선을 넘게 만든다.
 
 
  좌익무리와 범죄집단
 
젊은 시절 강도행각을 벌이던 무렵의 스탈린에 대한 러시아 경찰 자료.
  범죄조직도 마찬가지다. 범죄조직도 욕망 충족을 위해 수단에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좌익무리와 범죄집단의 간극은 종이 한 장이다. 시칠리아의 저항집단으로서 마피아는 결국 범죄조직 마피아가 된다. 삼합회도 정치적 저항을 내걸고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범죄조직화한다. 스탈린은 무장강도를 했다. 레닌의 지시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황건적(黃巾賊)을 찬양했고, 그 행각은 《수호전(水滸傳)》의 양산박(梁山泊) 무리를 빼다 박았다.
 
  김일성도 그랬다. 1935년 김구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한국국민당의 기관지 《한민(韓民)》 제9호, 1936년 11월30일자는 김일성 부대가 만주의 동포들을 대상으로 비적(匪賊)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들은 촌리로 다니면서 곡식과 재물은 있는 대로 빼앗고 그래도 조금만 불만하면 집을 불사르고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기도 하는데 금년 일 년 동안에 그들이 동포의 촌락을 습격한 회수가 428회요 피해자의 수효는 2204명이며 10월 한 달 동안에만 잡혀가서 인명의 손해 받은 것이 204명이라 한다.… 손해 받는 자는 가련한 한인뿐이다.”
 
  해방공간 당시도 그랬다. 남로당은 위조지폐를 만들어 뿌렸다. 그때만이 아니다. 1979년 남민전은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강도를 했다. ‘죽창가’를 작사하고 보수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한 김남주는 남민전 패거리였다. 그러나 한국의 좌익 정치 패거리들은 그런 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허위의식의 이야기꾼
 
  대중의 파토스적 갈망은 본능이다. 그러나 이야기꾼의 경우는 작위(作爲)다. 그래서 윤리적 에토스를 상실한 이야기꾼은 악적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앞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詩人)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의 시인이란 그냥 시인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 함의는 에토스 없이 파토스만을 겨냥하는 이야기꾼이다.
 
  전쟁을 아는 군인은 전쟁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전쟁을 글로만 아는 이들이 종종 호기를 더 부린다. 칼을 만져보지도 않은 자가 칼잡이를 더 우상화하고, 주먹질을 모르는 자가 주먹에 더 낭만을 품는다. 콤플렉스가 낳는 허위의식이다. 이런 자들이 악적인 이야기꾼이 된다.
 
  의적 행세를 하려면 정의라는 장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타락으로 상실한 정의는 회복이 없다. 그래서 훔쳐야 한다. 허위의식에 젖은 먹물, 윤리의 고삐를 팽개친 선전・선동 이야기꾼들이 앞잡이가 된다. 이들이 끊임없는 ‘정의팔이’로 대중의 감성을 훔쳐 갖다 바친다. 그러나 그것은 반성과 회복이 아니다. 위장된 행세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기만적 행세가 통하면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망(亡)으로 간다.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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