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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포커스

관료 출신 大選 후보들의 浮沈을 통해 보는 윤석열의 미래

윤석열, 대통령과 맞짱 뜨면서 ‘소신’ 이미지 만든 이회창과 유사

글 : 김형준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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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서울·50대·중도층·화이트칼라·무당층·충청권 등 大選 판세 결정하는 계층에서 지지율 높아
⊙ 고건, ‘행정의 달인’ 소리 들었지만 권력 의지 약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정치 학습 과정에서 능력 취약해 실패
⊙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 위광 업고 제3지대 만들어 대권 도전하려 했으나 지지세력 확보 못 해 早期 落馬
⊙ 황교안, 정당에는 안착했지만 시대정신 따라가지 못해 총선 참패

金亨俊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 계량정치학 박사 / 前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2022년 대선(大選)을 1년여 남긴 시점에서 대선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그 중심에 윤석열(尹錫悅) 전 검찰총장이 있다. 그는 집권 여당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립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하려는 시도에 반발하면서 지난 3월 4일 사퇴했다. 사퇴 입장문에서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의(辭意) 표명 후 전국의 검찰 직원들에게 전한 입장문에서는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검찰이 해체되면 70여 년이나 축적돼온 국민의 자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며 “특권층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영역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 입는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정계 진출’과 관련한 명시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사실상의 ‘정치 참여’ 또는 ‘대선 출마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상발언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일방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초를 언급했다. 가령,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 원칙대로 길을 계속 뚜벅뚜벅 걸었더니 아예 포클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 없애려 한다”고 했다. 이런 발언은 ‘정치 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둘째, 시종일관 ‘국민’을 강조했다. 그는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통상 대권(大權)을 향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행보의 명분으로 국민을 내세운다.
 
  셋째, 윤 전 총장은 중수청에 대해 “민주주의의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100번이라도 직(職)을 걸겠다”고 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직을 걸겠다는 것은,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못하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투쟁하겠다는 뜻이다.
 
 
  윤석열 지지율, 수직 상승
 
윤석열 前 검찰총장이 사퇴한 지난 3월 4일, 대검 청사 앞에는 윤 前 총장을 응원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사진=조선DB
  윤 전 총장의 사의 표명에 여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낙연(李洛淵) 전 민주당 대표는 3월 5일 “공직자로서 상식적이지 않은 뜬금없는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온 이재명(李在明) 경지도지사는 3월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에 대해 “착잡하다”면서 윤 전 총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선 “한명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표현도 충분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합리적 경쟁을 통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다. 그 직후 윤석열 전 총장 지지율은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사퇴를 발표한 후에는 복수(複數)의 대선 주자 선호도(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수직 상승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TBS-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3월 5일)에서 윤 전 총장은 32.4%를 얻어 이재명 경기지사(24.1%),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14.9%)에 앞섰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 지지율은 KSOI 2020년 11월 조사(11.1%)보다 무려 21.3%포인트 오른 반면, 이 전 지사는 20%대에서 정체(停滯)했고, 이 전 대표는 10%대로 추락했다. 《문화일보》-리얼미터 조사(3월 6~7일) 조사에서도 윤 전 총장은 28.3%로 이재명 지사(22.4%), 이낙연 전 대표(13.8%)를 앞섰다.
 

 
  “정치권에 새판 짜일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윤 전 총장이 한국 대선에서 판세를 좌우하는 핵심 계층에서 모두 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TBS-KSOI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서울(39.8%), 50대(35.3%), 중도층(35.0%), 화이트칼라(30.2%), 무당층(無黨層·35.0%)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후보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자유 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3월 9~11일) 결과,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윤석열 전 총장 선호도는 15%포인트 상승(9% → 24%)했고, 이재명 지사는 3%포인트 하락(27% → 24%)하면서 양강(兩强) 구도가 구축됐다. 특히 윤 전 총장의 고향이라는 충청에서는 지지율이 3배 상승했다(10% → 30%).
 
  《문화일보》-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윤 총장은 보수층(50.9%)뿐 아니라 충청(37.5%), 대구·경북(35.3%)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金泳三) 민주자유당 후보가 3당 합당을 통해 영남과 충청의 지역연대로 승리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여하튼 윤석열 전 총장의 등장과 지지율 급상승으로 기존 여권(與圈) 주도의 판이 흔들리면서 “정치권에 새판이 짜일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태풍인가, 거품인가
 
  이런 민심 변화의 기저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의혹도 한몫했다. LH 사태는 공공주택 공급 기관의 내부자들에 의해 자행됐다는 점에서 공공부문의 도덕적 타락이며 신뢰 훼손 사건이다.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잘 잡은 것 같다”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장관으로 일하다 집권당과 결별하고 중도 신당을 창당해 대통령에 당선된 과정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마크롱이 ‘나는 프랑스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듯 윤 전 총장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윤 전 총장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현재 지지세가 유지될 것인가? 태풍인가 거품인가? 윤 전 총장 지지세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문재인 정부의 대척점(對蹠點)에 섰던 상징성 때문에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과 단지 ‘반문(反文) 정서’에 편승한 반쪽효과라 곧 추락할 것이라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야권은 “윤 전 총장이 상식과 정의, 공정이라는 기본 가치를 바탕으로 헌법정신을 지키는 이미지를 스스로 형성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지사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급등한 것에 대해 “지지율은 바람과 같은 것이어서 언제 또 어떻게 갈지 모르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역대 한국 대선 국면에서 특정 정치인의 지지율 급상승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메시지), 상황, 그리고 새로움’ 등의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전 총장은 자신의 사퇴와 정치 참여 명분으로 ‘민주주의와 법치 위기’를 내세웠다. 이런 메시지는 분명히 국민들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중앙일보》-입소스 조사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법치 위기’ 발언에 대해 56.6%가 ‘공감한다’고 응답한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37.6%였다. 중도층에서는 ‘공감’ 비율이 61.6%나 됐다.
 
  더구나 윤 전 총장이 던진 현 정부의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는 국민을 공분에 빠뜨린 예기치 못한 LH 사태라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국민 정서와 통했다. 국민들에게 “윤석열이 옳았다”는 것을 깊이 각인시켜주었다.
 
 
  ‘윤석열 현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선에서 일종의 ‘메시아’를 기다린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서는 이른바 ‘바람’이 많이 불고, 특정 인물의 이름을 붙인 ‘○○○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2020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하면서 나타난 ‘노무현(盧武鉉) 현상’,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번진 ‘안철수(安哲秀) 현상’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윤석열 전 총장은 기존 정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윤석열 현상’을 잉태하고 있다.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높은 인지도, 소신과 원칙의 긍정 이미지, 충청과 영남의 지역 기반, 부패 척결 적임자 등의 긍정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어서 당분간 윤석열 지지율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상응해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윤석열 전 총장의 메시지와 결합되면 더 큰 ‘바람’이 불 수 있다. 물론 반론(反論)도 있다.
 
  첫째, 정치적 능력과 자질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고, 국민들의 ‘정치 검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기는 수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둘째, 완주(完走)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선 역대 대선 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표2〉에서 보듯이 과거 오랜 기간 공직에 있었던 관료 출신들이 좋은 이미지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대권 행보를 펼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미미했다. 대선에서 패배하거나 중도에 출마를 포기했다.
 

 
  ‘대쪽 이회창’의 도전과 좌절
 
김영삼 前 대통령은 자신에게 항명하고 나간 이회창 前 국무총리를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사진=조선DB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에 출범한 문민(文民)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대쪽’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이회창(李會昌) 전 대법관을 발탁했다. 율곡비리 등 성역 없는 수사로 인기를 얻은 이 감사원장은 1993년 12월에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총리가 제외되자, ‘통일원 장관 등 회의 구성원들이 총리의 직할이라는 법적 근거를 들며 총리 승인을 받지 않은 회의는 무효(無效)’라고 주장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다. 이 총리는 4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는 사퇴하면서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대통령을 대신해 의전(儀典) 역할이나 맡던 국무총리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는 국민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1996년 1월 이회창은 집권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해 4월 총선의 선거대책위원장이 됐다. 그 이후 1997년 3월에 신한국당 대표최고위원에 임명되었다. YS계의 집중 견제를 뚫고 집권당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자유 경선을 거쳐 1997년 7월 21일 대선 후보가 되어 야당의 김대중(金大中) 후보와 경쟁했다. 그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이인제(李仁濟) 전 경기지사 탈당, IMF 사태, DJP 연합 등의 악재로 약 39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대권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평생을 법조계에 몸담았던 이회창은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강한 권력 의지와 대쪽 이미지, 그리고 집권당 입당을 정계 입문의 발판으로 삼아 조직력을 갖춘 것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
 
 
  天時가 없었던 ‘행정의 달인’ 고건
 
고건을 국무총리에 기용했던 노무현 前 대통령은 나중에 ‘그를 기용한 것은 실패였다’고 규정했다. 사진=조선DB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는 세 번의 장관, 두 번의 서울시장에 이어 국무총리도 두 번 역임했다.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국을 안정시키고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잘 해 ‘미스터 안정(Mr. Stability)’ ‘행정의 달인(Master Administrato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중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후 장관 임명 제청을 둘러싸고 고건 총리와 갈등이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2월 21일 열린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중간에 선 사람(고건 총리)이 양쪽을 다 끌어당기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됐다. 오히려 나와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됐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였다”고 했다.
 
  고건 전 총리 쪽은 즉각 “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범여권 유력 후보인 고 전 총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의 기용을 ‘실패했다’고 규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고 전 총리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고 전 총리는 대선을 1년 앞둔 2007년 1월 돌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당시 그는 이명박·박근혜·정동영·손학규 등 여야의 경쟁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선두주자였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2017년)에서 “제일 큰 불출마 요인은 중도실용의 기치를 내걸고 내 정치 세력을 못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호남 출신의 한계론”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중도 실용개혁을 표방하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대안(代案)정당을 만들자고 호소했지만 호응이 미약했다. 결국 비(非)정당 출신 제3의 정치인이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지 못해 좌절했다.
 
  고 전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천시(天時), 지리(地利) 중에 지리는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천시가 맞아야 하는데 당시는 새 정치에 대한 열망보다는 보수의 잃어버린 10년, 영남의 잃어버린 10년의 정서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천시도 안 맞았어요.”
 
  고건 전 총리의 실패는 ‘행정의 달인’ 소리를 들었지만, 결국 권력 의지가 약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정치 학습 과정에서 능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는 격동의 한국 정치에서는 잘 부합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은 대통령감으로 카리스마를 갖춘 강한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독자 세력화’ 실패한 반기문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후 대선 행보를 밟다가 2017년 2월 1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진=조선DB
  반기문(潘基文)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도전 과정도 비슷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2013년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국인 중 가장 높은 32번째로 선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대권 과정은 험난했다. 2016년 12월 31일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그는 2017년 1월 12일 귀국하면서 대선의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정치 행보를 시작하자 반 전 총장은 보수층의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浮上),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됐다. 하지만 그는 고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지 20여 일 만인 2월 1일 돌연 대권 도전 포기 선언을 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주도해 정치결사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결론은 현실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독자 세력화를 통해 정치결사체를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접는다는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판을 치는 한국 정치에서 수십 년 외교관의 길만 걸어온 그의 정치 경력은 너무 취약했다. 더구나 권력 의지도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고 빠르고 현명하게 중단 결정을 한 것 같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 경력이 전무(全無)한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들어가지 않고 제3지대에서의 대권 행보를 한 데 있었다. 당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새누리당은 분열되었고, 탄핵에 찬성하는 김무성·유승민 등이 중심이 되어 바른정당이 창당되었을 무렵이었다.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이 입당하기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반 전 총장은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고 독자 세력화를 시도하려는 자신의 의지와 부합되지 않는다고 이를 거부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지지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데다 지지율 상승 기미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대권 중단 선언의 중요 요인이었다. 반 전 총장의 지역 기반이었던 충청권에서조차 지지율은 미지근했다.
 
  여하튼 기존 정치인과 정당들을 불신하고 제3지대에 남아 활동하려고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조직이 없다 보니 자금의 압박을 받고 야당의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정당에는 안착했지만 총선 참패한 황교안
 
황교안 前 총리는 야당 당수로 안착했으나, 2020년 4·15 총선에서 참패한 후 물러났다. 사진=조선DB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던 황교안(黃敎安)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도 관료 출신으로서 실패한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황 전 대표는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총장과는 달리 정계 입문을 제1야당 대표로 시작했다. 정당에 둥지를 텄다. 그는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관, 공안 검사로서의 전문성과 실력을 칭찬하는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정신과는 맞지 않았다. 더구나 당대표 시절 극우(極右) 성향의 태도를 보이고 위기 대처 능력의 한계를 보이면서 지난해 총선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 3월 10일 황 전 대표는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정계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와 늑대의 시간’은 지났다. ‘늑대의 시간’, 나쁜 권력자는 염치도 없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의 상식을 훼손했다”며 “만물이 되살아나는 새봄, 실체가 분명히 보이는 새벽이 왔으니 우리 힘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는 ‘헌법 존중’ ‘상식 회복’ ‘염치 회복’에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참패의 책임이 있는 황교안 전 대표의 대권 행보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렇다면 법조계 관료 출신인 윤석열 전 총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윤 전 총장은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총장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현재까지는 이회창 전 총리와 유사하다. 무서운 집념으로 무장한 ‘진검승부(眞劍勝負) 정치’로 절대 권력인 대통령과 맞장을 뜨면서 ‘소신과 원칙’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범(汎)야권 ‘킹메이커’를 자임하는 김무성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에 대해 “정권을 잡으려면 뱃속에 불타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타고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검찰의 수장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정과 정의에 대해, 특권과 반칙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국민들이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퇴 이후 정치 상황도 윤 전 총장에게 우호적이다. LH 투기 의혹으로 윤 전 총장이 사퇴 전에 제기했던 ‘부패 척결’이 시대정신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야권에 유력 대권 후보가 아직 부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행운이다.
 
 
  ‘제3지대 신당’의 리스크
 
  이제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권의 대기권에 진입한 단계다. 대선 주자로서의 연착륙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당장 ‘4·7’ 보궐선거 결과가 여야 모두 대권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변곡점(變曲點)이 될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재명 지사-윤석열 전 총장-이낙연 전 대표의 3강 구도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만약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와 승리한다면 야권의 제3지대 정계 개편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또한 여당이 서울·부산 시장 선거 모두에서 패배할 경우, 여당 내에서는 정세균 총리,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제3후보론이 나오는 등 대선판 ‘리셋’이 시작될 수 있다.
 
  향후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등 기존 정당과 손을 잡을지,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조직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윤 전 총장 주변에선 제3지대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는 행보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제3지대론은 ‘실패 리스크’를 갖고 있다. 제3지대 정치운동이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1992년 대선에서 고(故) 정주영 회장의 국민당 창당,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후 탈당한 이인제의 국민신당 창당, 2020년 대선에서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정몽준 의원이 창당한 국민승리21,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갈등의 부산물로 김무성 전 대표가 창당한 바른정당 등이 모두 제3지대에서 활동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여하튼 제3지대에서 대선 후보로 나설 경우, 기존 정당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조직력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윤석열 전 총장이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 갈 경우, 여권 성향의 중도층 확보에 실패하고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윤 전 총장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대선에서의 성패를 좌우할 것 같다.
 
  《문화일보》-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국민의힘 소속으로 나서야 한다’(41.9%)가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14.4%)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야 한다’(13.7%)보다 높게 나온 것도 부담이다.
 
 
  관료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
 
막스 베버.
  그렇다면 윤석열 전 총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고건, 반기문, 황교안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회창의 길을 갈 것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윤석열 총장의 정치 의지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사퇴한 것은 대권에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본인이 검찰총장으로 있는 한 중수청 출범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9년 뮌헨대학의 학생 집회에서 있은 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관료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문관료는 선동가가 아니며 선동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선동가가 되려 한다면 대체로 그는 매우 나쁜 선동가가 되고 만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정만 하게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베버는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강조했다. 정치가 국가의 운영을 떠맡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후보의 경력을 포함한 전 생애를 통해 구현된 가치 자체가 비전”이라며 “어떤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왔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능력을 보여주었는가가 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3월 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사람이 바르고 국가를 경영할 만한 원칙과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윤석열 전 총장이 베버와 윤여준 전 장관이 열거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여부가 그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부패, 폭정(暴政)과 위선으로 민생이 파괴되고, 국민들의 정권 교체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분출되고, 야권에 유력한 대권 후보가 부각되지 않으면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러브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윤석열의 운명’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문 대통령을 정치판으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운명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한국 대선판에 어른거리는 ‘운명’ 시즌2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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