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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의 거짓말과 망가진 사법부

현 主流 법관들 ‘홍위병’ 소리 들어

글 : 김태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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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는 거짓을 가려내는 직업… 대법원장의 배신과 거짓에 시민·법관들 충격
⊙ “정치적 상황을 살핀다”는 대법원장의 말은 권력분립 규정한 헌법의 근본원리 부인
⊙ 청와대가 ‘이재용 집행유예 판결 판사 파면’ 국민청원 법원에 전달한 후 비판성명 준비하자 법관대표회의가 부결시켜
⊙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부 대표기구나 최고의결기구가 아니라 건의기구에 불과
⊙ 법원 시스템상 ‘재판간섭’은 불가능… 현 정권에 불리한 판결들 나오자 꼬투리 잡아 탄핵

金泰圭
1967년생. 연세대 법과대학 법학과, 同 대학원, 미국 인디애나대학 로스쿨 졸업. 한국해양대 법학 박사 / 前 헌법연구관, 부산·창원 지방법원 판사, 부산고등법원 판사, 울산·대구 지방법원 부장판사 / 現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2021년 2월 22일 퇴직) / 저서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판사라는 직업은 애초에 거짓말을 찾아내는 직업이다. 거의 거짓말과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둘의 주장이 다르니 그 어느 한쪽은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 맞고,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증거를 조사하고 증언을 청취하는 것이다. 소송 당사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판단이 쉬울 것이고, 거짓말을 잘하거나 거짓말을 많이 할수록 판사들의 업무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판사들이 거짓말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판 중에 그 어느 구석에서 거짓말이 나오면 그 사람 진술 전체의 신빙성이 흔들리고, 피고인의 범행에 대하여 거짓이 드러나면 양형(量刑)에서 불리해진다. 그러니 법관에게 거짓말이라는 것은 법관 자체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시민들이 법관에게 고도의 염결성(廉潔性)을 요구하는 것은 법관의 이러한 생래적(生來的) 특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거짓이 법관들의 수장(首長)인 대법원장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면, 시민들은 의당 분노하고, 이런 자신들의 수장을 지켜보는 법관들은 수치심이 생긴다. 그리고 원망하는 데까지 이른다.
 
 
  대법원장의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진술
 
  현재 확인되는 사실관계는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하였다는 점, 이에 대하여 대법원장은 사직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대법원장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한 점, 대법원장이 마지막으로 밝힌 입장은 “기억이 불분명해 다르게 답변하였다”는 점 정도다. 이 사실관계는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밝힌 입장이 ‘기억의 불분명’인데 이 변명의 파괴력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이 발언 자체가 앞의 거짓을 덮기 위한 2차 거짓으로 이해될 공산이 크다.
 
  기억이라는 것이 사람의 두뇌가 어떠한 사실을 각성하고 인식해 내장하는 것이라서, 다분히 사람의 내면 작용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래서 객관적인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그 존부(存否)를 따질 수 없으니,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로 그만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내면의 심리적 작용도 나타난 사실관계를 모두 모아 추론하는 것은 가능할 텐데, 이것이 전혀 대법원장의 진술(陳述)을 납득(納得)할 수 없게 만든다.
 

  사직서를 제출한 주체가 그리 존재감 없는 평범한 법관이라고 해도 기억을 잃어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상대는 소위 사법농단에 관여하였다고 지목되는 법관이자,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고위 법관이다. 주체의 특이성이 강하다. 사표를 제출한 시기도 정기 인사철이 아니었고, 사표를 제출한 사유도 담낭절제술을 할 정도의 중한 병환이었다. 시기와 사유의 특이성이 강하다.
 
  사직서를 제출한 시기와 대법원장의 진술 사이에 시간도 불과 9개월 정도다. 시간적 간극(間隙)이 크지 않다. 이러한 정도의 사정이 드러난 상태에서 법관들에게 “이 사람이 실제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으냐?”라고 물으면, 그 법관 중에서 “그렇다”라고 말할 사람은 몇 되어 보이지 않는다. 굳이 매일 분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법관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해서 질문을 해도 그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장의 거짓과 배신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거짓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진술을 번복하여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도 거짓일 여지가 넉넉하여졌다. 판사들이 재판하면서 증인들에게 자주 주의를 주면서 하는 말이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위증(僞證)입니다”라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장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한 번의 허위에 더하여, 기억나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두 번의 허위를 범하였다고 볼 여지가 커졌다. 만약 대법원장이 두 번째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고 싶었다면 애초 “사직서를 제출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 역시도 의심은 가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망각(忘却)의 영역으로 피해갔으니 그나마 추적이 여의치 않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추어도 임성근 부장판사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면서 반박할 때라도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인정했어야 한다. 너무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다가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비로소 기억의 불분명을 언급한 것은 아무것도 주워 담을 수 없는 너무 엉성한 변명이다.
 
  실제 언론의 취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도 임성근 부장판사가 문제가 된 2020년 5월경뿐만 아니라, 같은 해 4월경과 12월경에도 각각 사직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첫 번째 진술보다 오히려 이를 수습하겠다고 말한 두 번째 진술이 더 거짓이라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언론은, 대법원장이 자신에 대한 국회 인준(認准) 절차에서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의혹, 그리고 이렇게 요청한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국회 인준이 끝난 후에 관련 자료를 디가우징(degaussing·자기장으로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복구 불가능하게 지우는 과정)하였다는 의혹까지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실제 있었는지, 또 이러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지는 추가적인 사실 확인과 법리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의혹을 통해 그것이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측면이 시민들에게 대법원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더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거짓과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법원장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 속에 쉽게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대법원장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일반 법관들에게까지 전이(轉移)되어 오염되는 느낌이다. 모든 공정성과 염결성(廉潔性)의 화체(化體)로 비추어져야 할 대법원장에게서 그러한 이미지가 무너졌으니, 그 무너진 흙더미가 법관들 머리 위로 뒤덮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治者와 被治者는 同一하다지만…
 
  여기까지가 대법원장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지만 반면 그 행위에 딱 부러지게 헌법이나 법 위반이 무엇인가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대법원장의 진술에 관해 법적인 접근으로 넘어가 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장의 녹음파일 내용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하고…”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왜 문제인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안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과 이를 통한 사법부 독립의 달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권력분립의 대원칙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은 항상 많이 이야기되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잘 실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에 관한 짧은 법이론 하나를 간단히 소개하여 그 중요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동일성 이론(同一性 理論)이 있다. 루소의 ‘일반의지(一般意志)’나 ‘총의(總意)’ 이런 용어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이론이다. 국민은 그 본성상 통치의 대상인데, 한편 그런 국민이 주권자이기 때문에 피치자와 치자가 동일하게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통치한다고 하니 국민주권의 원리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이론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항상 지배만 받는 객체(客體)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지배자이니 직접 권력을 행사하라고 하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많지 않다. 직접 국민이 주인 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오직 하나의 정치적 意思’
 
  그런데 이 이론의 가장 큰 맹점(盲點)은 지배자가 복수(複數)라는 사실이고, 그 수가 소수(少數)가 아니라 전(全)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군주가 지배자인 군주주권에서는 군주 한명만 의사를 결정하면 된다. 그러니 의사결정 사이에 모순이 없다. 그런데 국민주권에서 지배자인 국민은 한명은 이리 하라 하고, 또 한명은 저리 하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이도저도 아닌 것을 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도통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통치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의 의사를 ‘오직 하나의 정치적 의사(意思)’로 통일시켜야 한다. 그래야 통치가 가능하게 된다.
 
  하나의 정치적 의사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권력분립은 안 된다. 국민의 유일한 정치적 의사는 권력이 하나로 모여야 가능하다. 그러니 다양성이 필요 없다. 그리고 굳이 소수를 보호할 필요도 없다. 국민의 총의나 일반 의지가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정당성이기 때문에 굳이 법이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법치주의(法治主義)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약 국민의 의사가 하나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굳이 다수결(多數決)로 정하는 절차조차도 필요 없다. 그리고 하나의 정치적 의사를 모으기 위하여 국민을 유도할 필요가 있으니 선전이나 선동도 나쁘지 않다. 정당도 여러 개의 정당이 있으면 방해되고 하나의 정당이면 충분하다. 그 정당이 국민 전체의 총의를 담고 있으면 모든 국가기관은 그 정당의 하부기관이 되어도 된다. 국민 전체가 중요해서 국민 개개인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치부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국민 개개인의 자유도 천부(天賦)의 권리로 인식되기 어렵다. 완전한 국민주권이 실천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그러한 정치체제를 원하는 사람은 소수의 과격분자를 제외하고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장, 임성근 판사의 기본권 침해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사진=뉴시스
  권력분립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대의정치체제(代議政治體制)이다. 그래서 국민은 자신들의 주권에서 파생(派生)하는 통치권을 담당할 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그리고 그중에서 선택하여 통치하게 한다.
 
  그 통치권을 담당할 자들이 한통속이면 그들이 국민을 제 맘대로 하려고 들 것이므로, 그들의 권력을 나누어 놓는다.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정치인과 관료로 나누며, 중앙과 지방으로 나눈다. 복수정당제를 채택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치를 담당할 자를 갈아치운다.
 
  그래서 권력분립의 원리에서 나오는 사법권 독립, 그리고 정치와 무관한 사법 관료에 의한 사법권 담당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원리다. 이러한 근본원리를 흔들면 헌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정치적 상황을 살핀다”는 말 한마디는 그 근본원리에 대한 몰이해나 부정으로 보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화들짝 놀라고 분노하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거짓을 따라가다 보면 또 만나게 되는 법적 쟁점이 개인의 기본권 침해다. 사회적 분노나 헌법 원리의 위반이라는 거시적(巨視的) 측면은 아니지만, 개인의 기본권이라는 미시적(微視的) 접근에서 보면 기본권을 침해당한 본인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아프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터무니없는 사법적폐라는 허울로 사람을 몰아치는 바람에 그 심리적 고통으로 몸까지 망가져 담낭절제술까지 한 사람이다. 당연히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자 몸부림을 쳤을 것이고, 또 인생의 대부분을 천직(天職)으로 알고 지내온 직장이지만 이제 자신에게 온갖 불명예만 안겼으니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그에게 너무나 중대하고 절박한 기본권을 ‘자신이 일부 여당 국회의원에게 입장이 곤란하다’는 미미한 명분을 이유로 거부하였다. 더욱이 조직의 수장이 외부에 대한 정치적 불편함을 이유로 자신의 소속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권리, 그리고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점은 그 누구의 동의도 받기 힘든 행위다.
 
 
  나라도 녹음했을 것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녹취한 것을 두고 그 인격까지 문제 삼으면서 날것 그대로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 흥분하는 정도가 자신들 스스로 당혹감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들의 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장은 그저 물타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도 그런 짓(녹음)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질문해온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의향이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상상만 해보자.
 

  자신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청하다가, 사법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숙청의 칼바람이 불 때는 외면을 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말이 바뀐다. 법원 내에서 살벌한 분위기로 받은 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고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사표를 제출하러 한 번 갔는데 거절당한다. 이번에는 이런 말로 시도해보고, 안 되면 다음에는 다른 말을 시도해보자고 다짐하고 자신의 말을 메모용으로 녹취하였다. 또 아니면 진짜 상대를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다음에 다른 말을 하면 반박하려고 녹취하였다. 상대는 조직의 수장이라서 내가 감히 대적하려니, 이러한 방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녹취를 하는 게 다소 부적절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이것을 두고 내 인격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수긍할 수 없다. 그건 다소 부적절하다는 생각에서 녹음파일을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굳이 내가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면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摘示)하며 반박하였다. 그렇지만 상대는 여전히 그 입장을 지킨다. 이 상태로 그대로 가면 나는 영문도 없이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대법원장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도, 법관의 정치적 중립이나 사법부 독립의 원칙을 침해하지도 않고 정직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된다.
 
  굳이 이런 장황한 가정에 기초한 행동을 예측할 것도 없다.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을 가장 주도했던 국회의원이 법관 시절에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대화에서 그 대화 내용을 녹취하고, 그것을 공개한 전례가 있다.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이 과하게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일부 의원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유도하였다고 하나, 그 역시도 수긍하기 어렵다. 공직사회이고, 상대는 대법원장이고, 본인은 비록 고등법원 부장판사라고 하나 일개 재판장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는 사법부 전체를 총괄하는 권한을 가진 반면에 자신은 사법적폐라는 굴레로 크게 말 한 번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묘한 화술(話術)로 대법원장으로부터 불리한 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대법원장의 일방적인 진술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권력이 된 전국법관대표회의
 
2018년 7월 23일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2차 전국법관대표회의. 법관대표회의는 건의기구에 불과하다. 사진=조선DB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이 일어났을 때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침묵은 충분히 예상하였다. 혹여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의견을 내더라도 그것은 여론에 밀려 지극히 소극적인 형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예상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그대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그 구성원들을 보면 예견되는 일이었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렇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대여섯 차례 사법파동이 있었다. 대개 정권에 의한 사법부 간섭이나, 사법부 수뇌부에 대한 판사들의 저항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을 통하여 일어난 사법파동은 촛불시위로 만들어진 새로운 정권을 등에 업고, 사법부 수뇌부의 지지를 받아 직전의 사법부 수뇌부를 공격하려 조직된 회의체의 모양새를 취하였다.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신들이 권력이 되어 반대파를 단죄(斷罪)하는 데 힘을 모으기 위해 형성된 조직이라 불러도 좋다.
 
  물론 2017년 당시 이 회의체는 상설조직이 아닌 임시조직이었다. 또 2017년 9월 2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양승태(梁承泰)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이었던 것도 맞다. 그렇지만 2017년 전반기에 이미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양승태 대법원장도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제 법원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시기였다. 오히려 특정 성향 법관들의 주도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조직하고 그러한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들이 요구하는 법원 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탄압했다는 의혹과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를 수용하였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상설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받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상설기구로 만들어진 것이 전국법관대표회의이다.
 
 
  홍위병 법관들
 
  이 회의체의 태생 자체가 특정 성향 법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유래한다. 그런 과정에서 생성되었으니 그 구성원들, 특히 그중에서도 집행부는 그 성향이 선명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 다수를 점한다. 상설화가 된 2018년부터 현재까지 그 회의체 의장이 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법연구회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행동방식은 정해져 있다. 자신들과 성향이 같은 대법원장을 위해서는 전위대(前衛隊) 역할을 한다. 2018년도에 필자가 이 회의체에 울산법원 법관대표로 참석하면서 본 느낌은 이렇다. 특정 성향 판사들이 이 회의체의 주류(主流)를 형성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회의 대부분을 덮는다. 이 주류 판사들은 많은 안건(案件)을 제안하는데, 그것이 당시 사법부 수뇌부가 중점을 두거나 추진하려는 사업과 딱 맞아떨어진다. 마치 법원 행정처에서 직접 제안했다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제안 내용이나 구체적인 자료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항상 이런 안건이 다른 일반 법관들이 제안하는 안건보다 우선 처리되고, 처리될 당시 표결도 거의 7대 3 또는 8대 2의 차이로 압도적인 표 차이를 보인다.
 
  그러니 비주류 법관들이 모여 대화하는 가운데 주류 법관들을 ‘홍위병(紅衛兵)’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전(前) 대법원장이나 전 법원 행정처 근무 법관들을 잡는 데는 범같이 덤비다가, 현 대법원장 아래의 법원 행정처 의견에는 거의 수족처럼 움직인다. 어느 회의 때 한 법관이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러한 짓을 했어도, 우리 대법원장님에게서 그러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냥 웃어버렸다.
 
 
  청와대 역성 든 법원 행정처 심의관
 
  2018년 2월경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장을 파면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23만명에 달하자 이것을 핑계로 청와대가 그 내용을 법원 행정처에 전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조차 이것이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법원이 당사자가 된 사건인데, 정작 법관의 대표기관이라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가만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 채택을 제안하였다. 그 구성원들의 성향상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문장을 가능한 한 순화시키고 문장의 수도 줄였다. 그래서라도 통과시켜야 최소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체면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류 법관들은 애초에 이것을 의안(議案)으로 상정하는 것 자체를 미루려고 하였다. 고집을 피워 어렵게 의안으로 상정하였다. 그러자 법원 행정처 심의관까지 나와 청와대가 부당하지 않았다고 역성을 들면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 의안을 부결시켰다. 변호사들도 우려하는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의 우려를 정작 사법부 내 법관 대표라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이 회의체의 편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 일례이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지면을 이유로 이 정도로 그친다.
 
  하나 더 이 회의체에 대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회의체의 위상에 대한 오해이다. 마치 그 명칭만 보면 전국법관대표회의라고 하니 법관 조직 중에 최고 의결기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법부 내 최고 의결기구는 대법관회의다. 대법관회의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고, 법원의 최종 결정은 이곳 의결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반면에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헌법뿐만 아니라 법률에도 근거가 없고, 단지 대법원 규칙으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관 기능도 의결기구로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건의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법원장회의가 자문기구인 것에 비교해보면 그 위상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한민국 대법관 수가 14명에 그치기 때문에, 그 수에 비해 전국 약 3000명 법관의 대표인 120명의 법관 대표가 모이는 이 회의체가 더 많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대법관들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인준 절차를 거쳐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일반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결국 14명이 가지는 국민으로부터의 민주적 정당성이 120명이 일반 법관들로부터 받은 민주적 정당성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의미이다.
 
  법관들 내부의 다수결 원리가 작동하여 120명이 선정되었고 그 수도 훨씬 많지만, 그 회의체가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실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국민이 국회에, 국회가 대법관들에게, 대법관회의가 법관들에게, 그리고 그 법관들이 이 회의체에 그 민주적 정당성을 전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기관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 회의체가 의견을 내는 데 대하여 언론이나 국민 대중이 큰 비중을 두는 것 자체가 과분한 대우라고 볼 수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해산해야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해산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는 국민이 자신의 사건을 맡은 판사의 성향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는 신뢰받는 법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연구회의 해산이 필요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입장으로도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다 이루었다. 그들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을 추대하였고,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시켰으며, 그들의 구성원이 국회의원 등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결과도 보았다. 법원의 주요 보직에 그들의 구성원이 충분히 포진되어 있고, 법원 내의 주요 의사결정이 대부분 그들 의지대로 이루어졌다. 이미 이 연구회는 설립된 목적을 대부분 달성하여 그 공이 이미 높다. 만족함을 알고 스스로 해산하여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작금의 법원 현실에 대해 침묵하는 법관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물론 목소리를 내면 좋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선다는 주변의 시선이 싫을 것이고, 대법원장이 그 자리에 건재하는 한 눈 밖에 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현 정권에 우호적인 대법원을 지키고자 하는 일단의 극성 무리가 이른바 ‘좌표’라는 것을 찍고,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다.
 
  동료 법관들이 사담(私談) 중에 이런저런 의견을 많이 표하고, 또 듣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와중에 대법원장을 호위하고 있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큰 목소리가 아쉽기는 하지만,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해서 목소리를 내다가 힘들어하고 오래 버티지 못하게 되면, 그래서 그렇게 희생되는 법관이 많아지면, 오히려 바른 법관들의 수(數)만 법원 안에서 줄어들지 않겠냐는 생각 말이다. 그냥 몹시 답답하더라도 침묵하고 견뎌내는 것이, 그래서 오로지 판결로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바람직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묵을 종용(慫慂)한다고 나무라는 이도 있겠지만, 단지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 것이다.
 
 
  판결문의 방론을 근거로 탄핵
 
여당은 2월 4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 속에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사진=조선DB
  모든 것을 떠나 임성근 부장판사는 제1심에서 무죄(無罪) 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비위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공직자에 대하여 국회 여권은 탄핵을 가결하였다. 큰 틀에서 상응하지 않는 행위를 한 것이다.
 
  탄핵을 가결한 국회 여권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제1심 형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그 판결의 이유에 나타나는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자신들의 논거를 전개하고 있다. 판결문은 이유가 없어도 성립될 수 있지만, 주문(主文)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주문이 아닌 이유에서 언급된 쟁점, 그중에서도 죄의 성부(成否)와 무관한 부차적(副次的)인 쟁점에 대하여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한 것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탄핵 추진에 필요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와 국회 차원에서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오로지 법원 판결문의 판결 이유에 나오는 방론만을 근거로 탄핵을 추진한 것인데, 그 방론이 가지는 의미를 알면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
 
  판결문에서 방론이라는 것은 당연히 법적 구속력이 없다. 부차적이어서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굳이 쓰는 이유는 나름 판결의 설명과 이해의 기능을 높이려는 측면이 강하다. 사건의 대중적 관심이 높아 비록 주된 쟁점은 아니지만 대중이 관심 가지는 쟁점에 대하여 그 내용을 이해시키려는 이유로, 또는 비록 어느 일방에게 패소(敗訴) 판결을 해야 하지만 그 일방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어 그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면 판결의 수용력을 더 높일 수 있겠다는 이유로, 때로는 참 불필요하지만 정권이나 권력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어 비록 법리(法理)로는 편을 들어주지 못해도 달래기용 표현이라도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굳이 쓴 것이다. 그 밖에 얼마든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개 표현 방식도 ‘A의 주장을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A의 주장을 …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 ‘A의 주장을 수긍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다른 사정에 비추어 보면…’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임성근과 노무현
 
  이런 방론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면 안 된다. 혹여 방론이 어떤 의혹이나 조사의 단초(端初)는 제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잘못이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는 별도의 조사를 거쳐 확정되어야지 방론으로 언급된 것을 최종적인 판단 근거로 사용하면 안 된다.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고, 그렇다 보니 달리 그것에 대하여 이의(異議)를 제기하거나 다툴 방법도 없는데, 이런 것을 근거로 법적 제재를 가하면 그것은 법의 기본틀을 흔드는 것이다. 또 당사자는 정당한 조사를 받거나, 정당한 항변할 기회를 잃은 상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번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정작 판결문의 방론으로 불이익은 고스란히 받았는데, 무죄를 받았으니 그 방론을 수정해달라고 항소(抗訴)할 방법이 없다. 다른 법적 구제수단도 없다. 이런 법제도를 만들어놓았을 리 없다. 그런 엉터리 해석을 할 거라고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헌적 행위라고 해서 모두 탄핵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 행위에 위법이 없다는 이유로 탄핵이 기각(棄却)된 것이 아니다. 위법은 있지만, 공직에서 물러나게 할 정도로 위법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보아 기각한 것이다. 판결 이유에서 주요 쟁점도 아닌 방론으로 언급된 사정에 대하여, 그것도 직접 ‘위헌행위’라고 표현하지 않고 ‘위헌적 행위’라고 비껴가면서 쓴 문구를 가지고 탄핵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판간섭’은 불가능
 
  짐짓 위헌적 행위라고 하니 마치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단한 위법을 저지른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짐짓 선배의 노파심(老婆心)이거나 괜히 걱정이 너무 앞서간 것이다.
 
  법원 안의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재판간섭이라고 하고, 또 전직 판사로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목적으로 굳이 현실을 과장하고 외면하면서 재판간섭이라고 한다.
 
  법원 안에서 현실적으로 재판간섭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법원 안에는 결재(決裁)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다. 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하고 그것을 수석부장판사나 법원장에게 결재를 받아야 판결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개별 판사 또는 개별 재판부가 스스로 판결문을 작성하고 그 판결문에 서명날인 한 후에 선고하고, 그 후에 법원 내 판결문 등록 시스템에 등록하면 끝나는 것이 판사가 하는 업무다. 그러면 판결은 종결된다.
 
  그러니 사후(事後)에 판결문을 바꾸라는 압력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전(事前)에도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담당 판사나 재판부의 심한 저항을 받게 된다. 판사의 존재 이유 자체를 공격하는데 가만히 있을 바보는 없다. 또 때로는 유리하게 판단받게 해달라고 청탁하는 당사자에게 그런 청탁이나 부탁하러 다닌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걸어 더 불리하게 판결할 위험도 있다(물론 괘씸죄를 고려한 판단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 압력이라는 것이 잘 성립이 안 된다. 이 사건에서도 담당 재판부의 재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로부터 아무런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았고, 권고나 권유 정도로 인식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미 판결의 결론을 내리고 있던 상태라서 그로 인해 결론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법원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당연히 알고 그 의미를 바로 수긍한다.
 
 
  임성근 판사 ‘재판 관여’의 실상
 
  임성근 부장판사가 재판 관여를 하였다고 주장되는 사건은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하여 분명히 오보(誤報)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방(誹謗)의 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안이었다. 비방의 목적이 없어서 무죄를 선고하지만, 무죄라는 그 의미 때문에 대중은 《산케이신문》의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처럼 판결에 대한 대중적 오독(誤讀)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담당 재판부도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판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임성근 부장판사는 노파심에 담당 판사에게 조언했던 것이 사달이 난 것이다. 선배가 ‘혹시 판결문이 오해되지 않을까?’라며 걱정하고 조언했다고 재판간섭이라고 하면 대부분 판사는 재판간섭을 일상적으로 하거나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법관이 초인(超人)의 관찰력과 사람의 심중(心中)을 뚫어 보는 혜안(慧眼)으로 오로지 혼자서 그렇게 판단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매일 자신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 법전을 뒤지고, 법서를 참고하며 판례를 검색한다. 점심시간에 법조 동료 판사들과 사안에 대하여 던져놓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전에 그런 사건을 처리해본 선배에게 자문도 구하며, 때로는 그 선배가 나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틀린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외부의 전문가와도 상담한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단지 사건 외의 사람이 그 사건에 대하여 입에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간섭이라고 하면 너무 간 것이다. 시민들은 판사가 혼자서 벽 보고 생각한 끝에 도달한 결론을 더 신뢰할지, 판사가 리서치를 하고 주변의 조언을 구해 내린 결론을 더 신뢰할지 고민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왜 법관 탄핵을 강행했을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이탄희 의원(왼쪽)은 2월 4일 헌법재판소에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엉뚱한 꼬투리를 잡고는 재판간섭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법관을, 그것도 대법원장이 퇴직하지 못하도록 사표를 거부한 상태에서 여권 국회의원들이 의기투합하여 탄핵을 가결한 것이다. 그것도 전 법무부 장관 아내의 입시비리에 대하여 실형(實刑)이 선고되고, 여권(與圈)이 견제하던 검찰총장에 대한 두 차례의 징계 관련 집행정지신청이 인용(認容)되며, 서울시 공무원의 성폭행 사건 관련 판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서울시장의 성(性)추행 사실이 적시되고, 여권 정당 대표의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그즈음에 급하게 탄핵이 제안·가결된다. 건국 이후 유례 없는 일을 유례 없는 속도로 처리한다.
 
  그러고 나서도 거기에 아무 저의(底意)가 없었으니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인지(認知) 능력과 추론(推論) 능력을 망가뜨리는 수밖에 없다. 건국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탄핵이라는 칼로 정권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탄핵이 아주 편한 수단이 되었다. 칼 끝이 항상 반대편만을 향할 것이라는 그 확신이 틀렸다는 것이 확인될 날이 올 수 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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