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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영원한 在野’, 자칭 ‘정치문화재’ 장기표

7戰 7敗, ‘창당전문가’ 汚名에도 “할 줄 아는 건 정치뿐, 꿈 이룰 때까지 죽지 않겠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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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수요일, 정권 퇴진 촉구대회 열고 “전체주의 독재인 文 정권 끝장낸다”
⊙ 對與 투쟁력 없는 김종인 비대위는 종식 마땅, ‘조기전당대회’ 열어야
⊙ “‘黨員反正’ 쿠데타로 국민의힘 환골탈태에 일조하겠다”
⊙ 올해 76세… 민주화운동하던 20대 장기표와 思想은 변함없어
⊙ 한 달 수입 95만원에도 민주화운동보상금 10억원 거부, “받으면 안 되는 돈”
⊙ 외롭고 험난한 길 끝에 이루고자 하는 건… ‘新문명·자아실현정치’

張琪杓
1945년생. 마산공업고, 서울대 법학과 / 민중당 정책위원장,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개혁신당 부대표,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전태일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상임공동대표,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녹색통일당 대표 역임 / 現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국민의소리 공동대표
사진=조준우
  역사적인 인물이다. 식상한 관용구가 아니다. 어쩌면 역사, 그 자체다. 현대사는 그를 ‘민주화 투사’로 기록한다. 1967년 어느 겨울밤, 23세 청년 장기표가 한 말이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고, 나로서는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책을 덮고 만난 장기표(76). 53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역사의 현장에 있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국정파탄 문재인 정권 퇴진 촉구대회’. 마이크를 잡은 손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지만,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있었다. 2020년 겨울의 초입, 서울 용산구 남영동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봤다.
 

  ― 현대사에서 인정한 ‘운동권 대부’가 ‘운동권 정권’에 물러나라고 하는 셈인데요.
 
  “문재인 정부는 ‘수구적 진보’ ‘전체주의 독재 정권’입니다. 이 정권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사이비 진보이념인이고요. 사회주의의 미몽(迷夢), 망상에 빠져 있어요. 사회주의의 기본은 평등사상입니다. 노동자, 농민, 빈곤층을 위한다는데 흉내만 내다 보니 결국 더 어려워졌어요. 민노총? 민노총이 노동자입니까. 기득권 세력이에요. 빈곤층, 저임금 노동자 위한다며 최저임금 인상했죠. 실상은 그 언저리 노동자들만 대거 실직했어요. 비정규직 철폐? 인천공항공사 사람들은 잘됐지만, 나머지는요. 평등을 외치면서 불공정을 낳았습니다.”
 
 
  “文, 대통령감 안 돼”
 
지난 11월 4일 문재인 정권 퇴진 촉구대회 현장.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장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이던 2017년부터 반(反)문재인 운동을 펴왔다. 그해 2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했던 기자회견 내용 중 하나다.
 
  “박근혜에게는 최순실이 한 명, 문재인에게는 ‘최순실’이 열 명.”
 
  ― 지금은 실정(失政) 때문이라지만, 후보 때는 왜 반대했습니까.
 
  “첫째, 그는 실패한 정권의 실세(實勢)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의 부정부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에요. 권력층 부정부패의 원흉에게 ‘국정운영 잘하라, 부정부패 없애 달라’는 게 말이 됩니까.
 
  둘째, 1984년에 이 사람을 만났는데 정치할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요. ‘깜’이 안 된다고 하죠.”
 
  ―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건 어떤 겁니까.
 
  “자기 생각대로 국정운영을 못 한다는 겁니다.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잖아요. 그건 문 대통령이 악(惡)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복심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명박만 넣지 박근혜는 왜 넣어요. 무능해서 그런 겁니다. 둘을 석방시키는 건 오직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인데, 그걸 못 하는 거예요. 왜? ‘운동 열심히 안 했다’는 소리 들을까 봐요.
 
  문 대통령은 운동권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학생 데모를 잠깐 했을 뿐이지,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여기도 응, 저기도 응, 하니까 온갖 군데 ‘적폐청산위원회’가 생겼잖아요. 정부부처, 공기업에 200개가 넘잖아요. 지금 보니까 최순실 열 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에요.”
 
 
  변호사 문재인과의 만남
 
  “선배님, 저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19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조직하려고 전국을 돈 적이 있다. 후배 하나가 ‘부산에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변호사가 있다’며 문재인 변호사를 소개시켜줬다. 내려가 만났다. 같이하자 했더니 돌아온 말이다.
 
  “어지간하면 한 번 더 제안했을 텐데, 두 번 다시 말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생김새나 뭐로 보나 정말로 안 할 사람이구나… 실제로 안 했고요.
 
  이 얘길 하면, ‘그래도 인권변호사 아니었냐’고 하는데, 그는 인권변호사가 아니었어요. 1987년 6월 항쟁 이전에는 노동변론을 안 했다고요.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되면서 시국 사건과 노동 사건들이 터져나왔는데, 그때 돈을 받고 사건들을 맡았는지 모르나, 인권변호사 역할을 한 건 아닙니다. 부림사건(1981년)도 안 맡았는데 무슨 인권변호사입니까.”
 
  그간 문재인 대통령은 부림사건을 맡았다고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33년 만에 무죄를 받은 재심(2014년)의 변호였다.
 
 
  “현 정권은 전체주의 독재”
 
  장 대표의 이런 지적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이던 그는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70년부터 1990년 초반까지 주요 노동운동, 민주화 투쟁마다 이름을 새겼다. 전태일의 서울대 법대학생장(葬) 추진(1970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1971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 청계 피복노조 사건(1977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1980년), 5·3인천사태(1986년), 중부지역당 사건(1993년) 등이 대표적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서 이재오 전 의원, 이부영,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4인방으로 꼽히며 재야 세력 결집의 주역으로 주목받았다.
 
  그 과정에서 다섯 번 수감돼 총 9년을 살았고, 호된 고문도 당했다. 12년간은 수배자로 보냈고, 절에 들어가 스님으로 산 적도 있다. 영화 〈1987〉의 실제 인물이자 ‘인혁당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한 김정남은 “장기표는 1970년대와 80년 학생운동, 더 나아가 민주화 투쟁의 신화요, 전설이었다. 그가 잡히지 않고 견뎌낸 오랜 도피 생활은 그를 신출귀몰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했고, 잡혀서 법정에서 행하는 도도한 진술은 그야말로 민주화의 장전(章典)이요, 현하(懸河)의 웅변이었다”고 했다.
 
  ― 과거 군부 독재와 전체주의 독재, 뭐가 다릅니까.
 
  “군사 독재는 눈에 보여요. 과제와 대상이 분명합니다. 전체주의 독재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론을 조작·통제해서 국민 다수에게 같은 이데올로기를 심는 겁니다. 요즘 KBS 보세요. 매일 저녁 9시 뉴스에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교묘하게 세뇌를 시키지 않습니까. 무슨 시민의사 관계자가 나와서 독일의 공공의료를 얘기하질 않나, 최재성 정무수석이 나와서 집값 오르는 이유가 박근혜 정부 때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거라 하질 않나.”
 
  ― 테스 형이 ‘잘 할 거다’라고 했는데….
 
  “그러니까요. 이명박 정권 때 집값 떨어진 건 노무현 때 잘해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 참…. 그럴 거면 주택정책을 왜 23번이나 바꿉니까. 그래놓고 문재인 대통령은 ‘기필코 안정시키겠다’ 하잖아요. 전 정권 때 잘못한 걸 어떻게 기필코 잡아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거예요, 그냥.”
 

  ― 그 자리에 가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지는 걸까요.
 
  “큰 문제예요. 김대중, 김영삼, 하물며 노무현 대통령까지 다 잘못을 인정했어요. 이 정권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집권하고 1년 반 동안은 사과를 열심히 했습니다. 가는 데마다요.”
 
  ― 제가 놓치고 있는 사과가 있나 봅니다.
 
  “전(前) 정권 사과요. 박근혜 정권 때 일을 자기가 사과하고 다녔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참으로 간사스럽지요. 세월호 사건을 왜 자기가 사과합니까. 제주 4·3항쟁. 70년 전에 한 것 가지고 사과를 하고 있고, 박종철씨 죽은 거는 왜 자기가 사과하는 건데요? 막상 본인 잘못은 사과를 안 하고 언론 탓, 야당 탓, 국민 탓만 하죠.”
 
  ― 언론 탓, 야당 탓은 알겠는데 국민 탓은 어떤 겁니까.
 
  “아주 교묘하게 말을 합니다. 예컨대 임금소득이 37% 떨어졌다는 통계청 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국민들이 아직도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의 옳음을 ‘체감’하지 못했다’고요. 원래 체감은 좀 늦잖아요. ‘체감’이라니.”
 
  ― 그런 언사(言辭)로 대응하는 것이 정치 전략적으로는 점수를 받을 만한 거지 않습니까.
 
  “그게 꼭 똑똑해서, 재기발랄하게 대응한다기보다 ‘공식’처럼 돼 있어서 문제예요. 일상처럼 계속 그러잖아요.”
 
  ― 한때 ‘선배님’이라 불렸는데 문 대통령을 만나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 가장 최근에 만난 게 언젭니까.
 
  “나는 만날 일이 없었죠. 1984년 이후에는.”
 
  ― 문 정권의 다른 관계자는요.
 
  “그것도 안 했어요. 여당 쪽은 제가 김대중·노무현을 굉장히 비판했기 때문에 친하지 않아요.”
 
 
  “국민의힘 환골탈태해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지지율은 굉장히 공고해 보입니다. 큰 변화가 없어요.
 
  “여당이 사회주의, 운동권 코스프레하는 동안 거기에 들러리 서주는 국민의힘 때문입니다.”
 
  ― 들러리요.
 
  “경제가, 교육이, 환경이 엉망이다. 이러이러한 부정부패가 있다. 이렇게 공격해야지, ‘김대중 빨갱이’ ‘노무현 빨갱이’ 이런 말밖에 못 합니다. 빨갱이라고 하는 순간 프레임에 갇혀서 다른 건 다 묻혀요. 문 정권 싫다, 싫다 하는 우파들도 자기 못난 걸 알아야 해요. 이번에도 공수처장 추천을 왜 합니까. 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추천 안 하면 (여당에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추진할 것’이랍니다. 그게 이유가 됩니까. 아니, 법 개정하라면 하라죠? 결국 정권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가고 있잖아요. 야당이 주장해서 바꿔낸 게 하나도 없습니다.”
 
  ― 말씀대로 집권당을 교체하려면 대안 세력이 있어야 할 텐데, 국민의힘도 답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서울시장·부산시장 선거에서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런 말은 사실 하면 안 되지요. 자괴감이 들 만한 일이에요. 서울시장이 권력형 성추행으로 자살한 뒤 치르는 선거면 야당이 백번 이겨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걸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말이에요. 부산시장도 마찬가지고요.”
 
  이날(11월 2일)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지역 3선 이상 전·현직 의원들과 만찬을 가진 날이다.
 
  ― 오늘 만찬 참석자들도 시장 후보감으로 거론되는데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인물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인물 모두 시장을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그 인물들을 띄워내야 하는데 오히려 죽이고 있어요. 자꾸 ‘인물이 없다’면서 외부로 돌지 않습니까.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를 찾아가는가 하면 백종원씨 이름을 거론하면서 당을 희화화했어요. 엄청난 해당(害黨) 행위죠.”
 
  ― 인재 영입도 인물을 띄워내는 과정이라 볼 수 있지 않나요.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안에서 후보를 키워내야지요. 치열한 경선을 통해 시의 발전을 위한 비전, 정책을 내고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내면 훌륭한 후보가 되는 것 아니에요? 지도부가 자꾸 외부에서 인물을 찾는다는 건 이 당에는 인물이 없다고 전제하는 건데, 그러면 당력(黨力)이 엄청 약해진다고요.”
 
 
  “5·18법은 생색내기용”
 
  장 대표는 “기본적으로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국민의힘은 대여(對與) 투쟁력이 없다”고 했다.
 
  ― 김종인 위원장과 인연이 깊죠?
 
  “잘 알죠. 4·15 총선 직전까지도 만나고 김해에도 내려오시고 그랬어요. 그동안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공적(公的)으로 살아야지, 사적 친분 때문에 할 말 못 하면 안 되겠다 싶어요.”
 
  ― 출범 당시에는 김종인 비대위를 지지하지 않으셨습니까.
 
  “가까운 사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5월 8일 주호영씨가 원내대표로 선출되고 비대위원장으로 김종인씨를 추대한다는 얘기가 나오기에 주 대표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선거 직후라면 몰라도 한 달이나 지난 지금 외부인에게, 당의 운명을 맡기는 건 당 스스로 ‘자생력 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 애초에 자생력이 없어서 비대위를 꾸린 것 아닌가요.
 
  “비대위라는 것은 말 그대로 ‘비상대책’위원회예요. 두서너 달 안에 새로운 지도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요. 김종인 위원장은 이를 1년간 상시(常時)로 운영하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건 비대위가 아니죠. 그리고 당대표 할 사람 하나 없으면 당 해산해야죠. 안 그래요?”
 
  ― 비대위의 광주 방문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내일(11월 3일)은 다섯 번째 방문인데요.
 
  “김종인씨 본인 노후(老後) 대책 하러 가는 겁니다. 그분이 할 일은 당이 정말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안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또 당이 뭘 잘못했습니까. 당 차원에서 5·18을 폄훼한 적이 있습니까. 몇몇 개개인의 잘못이죠. 이런 행보를 하니까 외부에서 마치 당이 5·18을 폄훼한 것처럼 돼버렸잖아요. 웃기는 일이죠.”
 
  ― 노후대책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죠.
 
  “이 당에 오래 있을 분도 아니고 나이 들면 고향 사람들이랑 친해야 할 거 아녜요. 이분이 호남 사람인데 본인이 전두환 신군부 국보위 전력도 있고, 그러니까 개인적인 부채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거 희석시키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여요. 당 차원이라고 하면 당원들이 움직이도록 해야죠.”
 
  5·18 특별법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5·18은 민주화운동 중에서도 정말 자랑스러운 운동입니다. 그런데 자꾸 이러면 타 지역 사람들의 광주에 대한 반감만 살 뿐이에요. 비방하는 사람을 그냥 둬야 한다는 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5·18법 이런 거 만들면 안 됩니다. 이 법 만드는 사람 중에 민주화운동 제대로 한 사람 하나 없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의 데모는 하늘과 땅 차이인 걸 알아야 해요. 그 후에 데모하면 안 두들겨 맞았다고요. 징역 살았다고요? 징역이 뭐가 겁납니까. 맞는 게 겁나지. 5·18법은 생색내기 용이에요. 이낙연씨만 하더라도 전두환 장군을 ‘위대한 영도자’라고 하지 않았어요? 군사 독재를 규탄해야 민주 세력이 되니까 자꾸만 저런 걸로 폼을 잡는 거예요.”
 
 
  ‘쇼’라도 할 줄 알아야
 
2007년 영등포을에 공천이 확정된 장기표 대표가 자신의 공천을 반대했던 노무현 당시 후보를 만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비대위는 내년 4월 보궐선거까지가 정해진 임기입니다. 4개월 남짓 남았군요.
 
  “그전에 전당대회를 열도록 할 겁니다. 조기전당대회를 여는 데 제가 일조하려고 합니다. 비대위는 김종인 위원장이 설령 잘한다고 해도 오래 끌면 안 됩니다. 외려 잘할수록 당은 찌그러지게 돼 있어요.”
 
  ― 조기전당대회를 열어 비대위가 일찍 종식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당이 이렇게 된 데는 기존 중진 의원들 때문이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래서 당원반정(黨員反正)을 하겠다는 겁니다. 당원들이 들고일어나야 합니다. 쿠데타를 해야 해요. 기존 주도 세력이 아닌 비주류 인사가 대표도 잡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자는 거예요. 김무성・정진석과 같은 중진이 대결하면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두 사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동을 못 준다는 얘기예요.
 
  지금 원외가 160명, 원내가 80명으로 딱 2배수입니다. 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과감하게 인사를 하고 정책, 전략도 과감하게 펴내고 당원들이 그걸 지지해주면 국민들이 ‘저 당이 변하려고 하는구나’ 하지 않겠어요? ‘생전에 대표감이라 생각도 못 했던 사람이 당을 좌지우지한다’면서요.”
 
  ― 한배를 탄 사람은 누굽니까. 많이 있습니까.
 
  “주로 원외 위원장들이에요. 다선 의원도 있고요.”
 
  ― 가능하겠습니까.
 
  “어려워요, 어렵죠. 한 후배가 그럽디다. ‘선배님, 이 당(국민의힘)은 안 움직입니다. 자기 이해관계는 손톱만 한 것까지 다 따집니다.’ 안 되면 혼자라도 치고 나갈 겁니다. 지구당마다 찾아가서 ‘집권 못 할 정치 뭐하러 하느냐’고 할 겁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이 좋으면 동의하라’ 할 겁니다.”
 
  ― 되겠습니까.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해보세요. 김종인씨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보다 못한 사람이 있나요? 그러면 정치를 때려치워야죠. 진보 세력한테 ‘쇼’한다고 손가락질하잖아요. 쇼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전부 무사안일(無事安逸), 웰빙족이 돼버렸어요.”
 
 
  김종인과 창당 계획 무산 비화
 
  ― 소위 말해 ‘비대위 흔들기’를 가만히 보니 흔드는 주체들도 결국 당권 등 또 다른 사욕(私慾)을 위한 것일 뿐 진정 당의 미래를 위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원내에서는 ‘결국 지가 해물라꼬 저란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죠. 근데 원외에서는 그런 거부감이 없어요.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결국 ‘자기 뜻을 실현하는 것’이 정치예요.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힘들어요.”
 
  ― 이렇게 같은 보수 안에서 문제점이 제기되는 걸 분열이라 보십니까, 자성의 움직임으로 보십니까.
 
  “분열이죠. 기본적으로 이기심이 개입돼 있으니까요. 통합이 안 되는 것도 그래서예요.”
 
  ― 말씀하신 계획도 일종의 ‘비주류 계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분열에 일조하는 거 아닐까요.
 
  “이건 친박, 비박과 같은 계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계파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야 경쟁도 할 거 아닙니까. 지금은 도토리 키 재기로 계속 시비(是非)가 붙는데, 제대로 된 세력이 하나 쫙 올라오면 이질 있는 세력이 영향을 못 미칩니다. 그 세력에 나머지가 수렴돼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맞다, 옳다 밤새 따져봐야 안 된다 이거예요.”
 
  ― 원희룡 지사 포함 몇몇 중진은 적서논쟁 그만하고 세력을 합칠 때라며 비대위에 힘을 실어줬는데요.
 
  “김종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적서논쟁의 시작이에요. 아니라면 홍준표나 이런 사람들 다 불러들여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김종인 위원장입니다. 비대위를 지지하면서 적서논쟁 말자는 건 모순이죠.”
 
  ― 정치권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원래는 함께 당을 만들기로 했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입니까.
 
  “2017년도에 김종인씨가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가기 전에 나와 정당을 같이하기로 했었어요. 구정(舊正) 앞두고 만나기로 했는데, ‘감기에 걸려서 못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이틀인가 삼일 뒤에 비대위원장으로 갔어요. 이분이 저와 약속을 총 세 번 어겼습니다.”
 
  ― 전화는 다시 왔습니까.
 
  “구정 아침에 미안하다면서 ‘따로 정당을 만드는 것보다 민주당에서 같이 확 바꾸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기존 정당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니까 ‘김 박사는 그러시오, 나는 안 합니다’ 그랬죠.”
 
 
  ‘창당전문가’
 
지난 2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정병국, 이언주 의원, 장기표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당 로고를 공개하고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조선DB
  그의 첫 창당은 1990년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과 함께한 민중당이다. 그로부터 2년 뒤 14대 총선에서 민중당 후보(서울 동작갑)로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군소 야당 후보로 6차례 총선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2020년 처음으로 거대 정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해을로 출마해 7번째 고배를 마셨다.
 
  ― 혹시 인터넷 댓글을 보십니까.
 
  “많이 봐요. 다는 못 보고, 내 페이스북에 달린 건 다 보죠.”
 
  ― 조금 아픈 얘길 수 있는데, 최근 올라온 기사에 창당전문가, 낙선전문정치인, 정치낭인이라는 ‘악플’이 달렸더군요.
 
  “창당전문가 빼고는 많이 들어보진 못한 말인데, 다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얘기죠.”
 
  ― 그간의 행보를 결국 ‘배지’ 달기 위한 것으로 치부하는 건요.
 
  “그거는 사실이 아니에요. 그랬으면 기존 정당에서 오라고 했을 때 갔겠죠.”
 
  ― 김영삼·김대중·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의 영입 제안에도 거리를 두신 걸로 아는데 왜 안 갔습니까.
 
  “제가 가면 그쪽 물이 안 들겠습니까. 혹자는 ‘당신이라면 물이 안 들 것’이라고 해요. 근데 물이 안 들면 거기서 외톨박이가 돼서 결국 아무것도 못 해요.
 
  MB가 서울시장 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난 일이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폼도 안 잡고 참 소탈하다 했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 사람이 너무 가볍다, 우리끼리 솔직한 말로 좀… (조심스럽게) 경망스럽다 싶어서 ‘이제 안 만나야지’ 했어요. 서울시장 되고 나서 김문수나 이재오씨가 ‘시장실 가서 차도 마시고 그러자’고 했는데 일절 안 갔어요.”
 
  ― 그때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습니까.
 
  “전혀요. 이재오, 김문수, 이부영, 김근태… 이들과 저를 비교하는데, 제가 그분들에 비해 못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회의원과 장관이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제가 가진 정치 이념을 다른 사람도 갖고 있다면, 기존 정당에 갈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유일한 사람인데 이걸 저버리면 누가 합니까.”
 
  ― 그런 신념을 잘 알아선지 이번에 미래통합당에서 출마한다고 했을 때 놀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계속 내 정당을 하며 살았는데 주변에서 말하더군요. ‘국회의원이 돼야 주변에 사람도 모이고 그런다’고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국회의원이 되려고 보니까 거대 정당에 가야겠더라고요. 그럼 왜 미래통합당이냐. 문재인 정권을 끝장내려면 범야권을 통합해야겠다 싶었어요. 범야권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에 개인적인 실리를 더한 겁니다.”
 
  그는 지난 2월 사회단체 대표 자격으로 ‘국민통합신당 창당준비위’에 참여했다.
 
  ― 기존 자유한국당에서는 개혁정치를 할 수가 없어서 미래통합당 출범에 일조한 후 그곳에서 출마를 하신 건데, 그래서 통합당이 한국당과 달라진 게 있던가요.
 
  “없어요. 변화시키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도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한테 ‘쇼’라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아무도 안 해요. 자기 거는 손톱만큼도 양보 안 하는 사람들이에요.”
 
  ― 그런 경험을 하시고도 또 환골탈태를 계획하십니까.
 
  “그래도 해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고향 출마
 
4·15 총선 미래통합당 김해을 출마 당시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조선DB
  ― 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출마하게 됐습니까.
 
  “나이도 있고 하니까 솔직히 비례대표 자리 주면 못 이기는 척 받아야겠다 했어요. 그래서 공천신청도 안 했는데, 비례대표 하려면 당적을 (미래한국당으로) 바꿔야 했잖아요. 내가 미래통합당을 만든 주역 중 하나인데,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한다고 했을 때 비례대표 정당을 ‘꼼수 정당’이라고 비판했었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할 수 없이 지역구로 출마한 거죠.”
 
  ― 김해을, 험지였죠.
 
  김해는 장 대표 고향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으로 여당 텃밭이다. 이전 선거에서는 여당 후보가 60% 이상 득표했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험지에서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장 대표 고향인데 나가시오’ 하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꼭 험지라서 그렇다기보다 고향이라서요. 중학교 졸업한 이후에 고향에 한 일도 없는데 출마한다고 얼굴 비추기가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정말로 안 갈라고 했는데 몇 번 설득 끝에 결국 이것도 운명 아니겠나 싶어서 나갔어요.”
 
  ― 그래도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며 ‘친노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는데요.
 
  “지역에서는 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역구 24만명 유권자 중에 16만명의 평균 연령이 34세예요. 그분들은 저를 알지도 못해요. 그래도 고향이 좋긴 좋더라고요. 내 고향 한림면 사람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어요. 발 달린 사람들은 다 찾아오고 입 달린 사람들은 다 전화를 했다니까요. 졸업한 지 60년 된 초등학교 친구들도 다 만났고요.”
 
 
  7번째 낙선
 
  그의 제1공약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였다. 보좌관 수를 대폭 줄이고 국회의원 월급을 평균임금 330만원으로 만들자는 게 골자였다. 당선 시 자신부터 330만원만 받겠다고 했다.
 
  ― 너무 바른말만 해서 낙선했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국회의원 특권 폐지하자고 하면 정치 야심 있는 사람들이 지지를 해주겠습니까.
 
  “한 달에 33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활동비는 또 따로 청구해서 받을 수 있어요.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의 몇 표일 뿐이고 더 중요한 대중, 국민들에게는 충분히 어필한 공약이었습니다.”
 
  ― 이번이 7전7패죠. 낙선할 때마다 상심이 커집니까, 아니면 덤덤해집니까.
 
  “이전까지는 떨어질 줄 알고 나간 겁니다. 군소정당이라 처음부터 안 될 줄 알았고요. 이번에는 되려고 나갔는데 안 되니까 실망감이 있었죠.”
 
  ― 떨어질 줄 알고 나가는 건 어떤 겁니까.
 
  “제 눈에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이나 다를 게 없어요. 기성정치가 아닌 ‘내’ 정치를 하려니까 계속 독자(獨自)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럼 물어요. 10%의 지지도 못 받는데 왜 하느냐. 두 가지예요. 국민들이 영 살기가 힘들면 언젠가 내 말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려면 목소리를 계속 내야지요. 또 하나는, 0.1%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서예요.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계속한 겁니다. 장기표는 안 될 정치만 한다? 지금까지는 그 말이 맞습니다. 되도 안 할 정치를 한 게. 그러나 절대로 되지도 않는 건 아니에요. 될 수 있을 때가 올 수도 있다 이겁니다.”
 
 
  ‘자아실현 정치론’
 
  ― 보통 정치인들은 상대편을 지적하는 건 잘하지만 정작 자신의 확고한 정치철학을 펼치는 경우는 잘 없더군요. 이렇게 길고 외로운 싸움 끝에 결국 이룩하고자 하는 게 어떤 건지요. ‘내 정치’라는 게 궁극적으로 뭔가요.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겁니다. 21세기는 신(新)문명의 시대입니다. 산업문명에서 정보문명으로 바뀌면서 대량실업과 소득양극화가 구조화됐어요. 신기술 하나로 소득을 독점하고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지니까요.
 
  이럴 때 실업자와 무(無)소득자에게는 소득을 재분배해야 합니다. 사회보장제도가 필수죠. 그럼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겠죠. 그때 가장 중요한 게 자아실현입니다. 먹고살 게 풍부한 곳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제 정치의 목적입니다.”
 
  ―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존중하면서 국민 복지를 강화하자는 게 요지군요. 이를 통해 다 같이 잘살게 됐을 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게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 특성이에요. 석가의 해탈도 결국 자유를 의미하고, 기독교에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합니다. 이런 자유의지를 관철시키는 게 뭐냐, 자아실현이라는 겁니다. 이걸 내 정치에서 구현하겠다는 겁니다. 20세기는 소련·미국의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였어요. 이 대립이 가장 격렬하게 나타났던 곳,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한반도입니다. 6·25전쟁이라는 대결로 가시화됐죠. 그걸 극복할 새로운 이데올로기 또한 한반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이치 아니겠습니까.”
 
  ― 토크빌은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현 정부 아래 국민들이 ‘자아실현 정치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어려워요. 그러니까 정치 권력부터 잡아야죠. 그리고 임계점(臨界點)이라는 게 있잖아요. 국민들도 당하다, 당하다….”
 
  ― 혹자는 ‘장기표가 변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목숨 건 민주화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한 바와 현실정치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세상을 바꾸려고 민주화운동을 했고, 정치 활동도 한 겁니다. 본래 인간 해방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것이고 정보문명 시대야말로 인간 해방의 시대가 되리라 확신하는 터라 이를 실현할 정치를 하는 겁니다. 19세 때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76세까지 산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정치 이념이 아니고 역사적 소명의식인 겁니다.”
 
 
  한 달 수입 95만원
 
  고(故) 조영래 변호사는 1988년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라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내게 물을 때면 나는 한마디로 ‘순수한 사람’이라고 답한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어부의 노래를 그는 알지 못한다. 세상이 다 취해도 홀로 깨어 있으려고 하는 그 지나친 순수함이 그의 병이요, 그의 죄이다.〉
 
  ― 지금 김해을 당협위원장이시죠. 다음 출마 생각도 있습니까.
 
  “선거 때 고향에 오랜만에 간 것도 부끄러운데 끝났다고 쏙 올라와버릴 수 없잖아요. 김해에서 야당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김해시장, 김해의 지방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겁니다. 지방에서는 지방 권력이 왕입니다. 제가 계속 이러면 그 사람들이 신경 쓰이겠죠.”
 
  ― 앞으로 출마 계획이 없다는 겁니까.
 
  “세상일은 알 수 없지만, 제가 올해 일흔여섯입니다. 다음에 출마하면 여든입니다.”
 
  ― 여지를 두십니다.
 
  “꼭 출마해야지만 정치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정치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 정치가 후회된 적은 없었습니까.
 
  “대한민국 기존 정치 세력이 이렇게 지탄받는데 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치 세력 하나 못 만들었을까, 나는 역사 앞에서 뭐라고 답할 건가 자문해봤습니다. 제가 무능해서 그런 겁니다. 사실 제 정치 환경은 굉장히 좋은 거거든요. 기존 정당이 국민 지지를 잘 받고 욕도 안 먹고 잘하면 새로운 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항상 좋은 조건이었는데, 사람들이 안 달라붙어서….”
 
  ― 요즘 생활은 어떻게 하십니까. 수입이 있습니까.
 
  “관악구에 25평짜리 아파트 담보대출, 역모기지라고 하지요. 그걸로 매월 95만원 받고 있어요.”
 
  ― 한 달 95만원이 전부입니까.
 
  “그전에는 집사람이 살림을 꾸렸는데 근 7~8년 전부터 소득이 없으니까요. 국민연금 17만원인가 나오고요. 그거면 충분해요. 굶어 죽지는 않아요.”
 
  부인 조무하 여사는 교사였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1976년, 아무도 모르게 다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잠깐 같이 살다가 곧바로 구속됐고 수감 생활을 하며 아내와 편지를 엄청나게 주고받았다. 매번 원고지 100매 분량을 썼다. 이 편지들은 1987년 《새벽노래》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김대중의 《옥중서신》에 비견되는 책으로 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전청연) 등에서는 이 책을 교재로 쓰기도 했다. 편지 중 한 구절이다.
 
  〈세상이 다 나를 칭송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칭송은 내게 헛된 것이며, 세상 사람이 다 당신에게 위로의 말을 할지라도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비길 수 있겠소?〉
 
  ― 부인께서는 정치 활동을 지지하십니까.
 
  “지지가 아니고 방치죠, 방치.(웃음)”
 
 
  민주화보상금 받아선 안 돼
 

  ― 활동하시면서 금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내가 한 몇억원만 있었으면, 한 적은 있었어요.”
 
  ― 10억원가량의 민주화보상금을 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인지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만, 결국 더 대승적인 용도로 쓰인다면 나름 의미 있는 거 아닙니까.
 
  “받아도 되는 것을 안 받은 게 아닙니다.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안 받은 거예요. 애당초 독재 정권 아래서는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투쟁을 해놓고 뒤늦게 합법성을 인정받는 건 자가당착입니다. 그래도 기어이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때의 행위가 민주화투쟁이 아니었거나 그 정권이 독재가 아니었다는 뜻이니 이것은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어긋나요. 재심 청구로 무죄가 된다면 민주화투쟁도 무효가 되는 거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는요, 그 사람이 노동운동을 했건, 실업자건, 농민이건, 똑같이 해결되어야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독립운동 하고 노동운동 했다고 더 잘 먹고 잘살면 되겠어요?”
 
  그는 이어 “민주화운동 보상금 거부 이야기가 너무 회자되는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사석에서 한 이야기가 어느 날 기사화돼서 알려졌는데, 사람들이 ‘장기표는 만날 자기 돈 안 받았다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허허.”
 
  ― 혹시 ‘영원한 재야(在野)’라는 호칭 때문에 계속 재야에 계신 거 아닙니까. 이 타이틀 싫지 않습니까.
 
  “재야 출신 모두 정당에 들어갔는데 저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서 그런 명칭이 붙은 것 같은데, 과분하다면 과분하고…. 제 스스로는 건방지게 들릴지 몰라도 ‘정치문화재’라는 명칭을 붙여봤습니다.”
 
  ― 정치문화재요?
 
  “사람들이 장기표한테 ‘나이 팔십 다 돼서 아직도 꿈을 못 버렸네’ ‘정신이 조금 이상한 거 아닌가’ 뭐 이런 얘기를 할 거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변명이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런 명칭을 지어봤어요. 인간문화재는 자기만의 우월성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정치밖에 모르고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이거든요. ‘아직도?’라고 했을 때 ‘나는 정치문화재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하려고요. 상당히 설득력 있지 않나요?(장난스럽게 웃으며)”
 
  ― 체력도 받쳐줘야 할 텐데요. 건강은 어떠십니까.
 
  “내가요, 아주 지독한 사람입니다. 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안 죽으려면 안 늙어야 되고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겁니다.”
 
  문득 어느 책에서 본 그의 일화가 떠올랐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달리기 시합에 나갔을 때다. 다른 사람은 이미 결승점에 다 도달했는데, 장기표는 느렸다. 만장(滿場)의 박수와 폭소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한 바퀴를 다 뛰었다. 후에 누군가 ‘실력도 안 되면서 왜 참가했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가을 하늘 아래서 한번, 마음껏 달려보고 싶습디다.”
 
  ‘장기표’라는 역사책은 아직도 미완(未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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