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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시대로 退行하는 한국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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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從中정책 고집하는 문재인은 ‘열강의 公敵’ 러시아 편에 섰던 高宗과 닮은꼴
⊙ 일본 유학했다고 친일파면 일본 유학하고 러일전쟁 당시 일진회 만들어 일본 지원한 손병희는?
⊙ 美 하원에 중국공산당을 ‘최고 국제범죄조직 대상’으로 규정하는 法案 발의돼
⊙ 국제적 급변의 와중에 문재인 정권은 민주화운동자 자녀 大入 우대 등 ‘신판 양반제’ 꿈꿔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지금은 중국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서 “중국이 세계에 한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진=AP/뉴시스
  온갖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진다. 문재인(文在寅) 정권과 그 무리에 의해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은 국내외, 공식·비공식을 가리지 않는다. 어제 그런 일로 혀를 차던 게 끝나기도 전에 오늘은 저런 일로 개탄을 하고, 그러기가 무섭게 또 다른 일로 분노를 하게 된다.
 
  우리 국민이, 그것도 공무원이 해상에서 사살당하고 시신이 소각당하는 엽기적 만행을 당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북한의 김정은 일당에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아예 “그래서 어쩌라고”다. 그런데 그에 대한 개탄과 분노를 채 다 터뜨리지조차 못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난데없이 ‘종전(終戰)선언’을 들고나왔다. 완전히 “배 째라”다.
 
  미국은 곧바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그래도 엽기 언행을 또 이어갔다. 김정은이 야밤에 열병식을 벌여 눈물 쇼와 함께 대륙간탄도탄(ICBM)을 과시했다. 그런데 또 “종전선언” 운운이었다. 한 여당 의원은 “북한이 미국에 미사일을 쏠 수도 있다. 종전선언이 답이다”고 떠들어댔다. 국립외교원장이라는 사람은 “김정은의 눈물은 ‘인간적 신(神)’의 면모”라고까지 했다.
 
  그 지지 패거리들도 가관의 언사를 늘어놓는다. 이번에는 소설가 조정래다. 《태백산맥》이라는 ‘그야말로 소설’에 지나지 않는 ‘썰’로 한 시절을 풍미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 유학 갔다 오면 다 친일파(親日派) 된다. 150만 친일파 단죄(斷罪)해야 한다. 반민특위(反民特委) 다시 해야 한다” 운운했다.
 
  곧바로 힐난이 나왔다. “문재인의 딸도 일본 유학을 했는데, 그렇다면 그녀도 친일파냐?”라는 것이었다. 뭐라 답하게 될 것인가?
 
 
  손병희의 일본 유학
 
손병희.
  조정래의 눈에는 일본 유학파는 다 친일파로 보이는 모양인데, 일본을 다녀오고도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을 남긴 인물도 수두룩하다. 대표적 인물로 손병희(孫秉熙)를 꼽을 수 있다. 동학(東學)의 3대 교주(敎主)이자 천도교(天道敎)의 창시자, 그리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필두(筆頭)였던 그 손병희다.
 
  손병희가 처음 일본에 간 것은 1901년이었다. 동학란(東學亂) 실패 이후의 망명(亡命)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유학이었다. 당시 동양 문명개화(文明開化)의 선두 주자였던 일본 현지에서 그에 대해 배우고 견식을 넓히고자 함이었다. 본래 일본을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일본의 발전 양상을 보고 아예 머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손병희는 잠시 귀국했다가 1902년 다시 도일(度日)했다.
 
  손병희는 이 두 번째 도일 기간 중 놀라운 기록을 남긴다. 1903년 일본과의 협력론을 제창하고 그 뜻을 국내의 동학도들에게 알린 것이다. 동학은 본래 척양척왜(斥洋斥倭)의 노선이었다. 그 동학의 지도자가 일본과의 협력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조정래의 기준으로는 두말할 것 없는 반민족적(反民族的) 친일(親日)이겠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손병희가 주목한 것은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었다. 손병희는 러일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며,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게 될 일본에 협력하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유일하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았다.
 
 
  일진회와 손병희
 
  이에 대해 《천도교 백년 약사》(천도교중앙총부 교사편찬위원회 편, 1981)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노일(露日)의 전쟁은 곧 한만(韓滿)이 관련되는 전쟁이다. 일본이 승리하면 한국은 일본에 귀속하고 노서아가 승리하면 한국이 노서아에 귀속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만일 내가 지금 한국 정부의 요직에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계책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만일 노일이 개전(開戰)한다면 어느 나라가 승리할까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 결정에 도달하면 승전(勝戰)할 만한 편에 가담하여 공동 출병(出兵)하여 전승국(戰勝國)의 지위를 얻어야 될 것이다. 그 지위를 얻은 뒤에는 강화(講和) 담판에 전승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국가 안전의 조약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천고(千古)에 얻지 못할 기회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다음의 이유로 일본의 승리를 확고하게 점칠 수 있다. 즉
 
  ① 노서아는 지리적 관계로 불리하다.
 
  ② 노서아의 개전 목적은 수천 리 밖에서 단지 부동항(不凍港)을 얻는 데 있으므로 전쟁에 대한 동기가 극히 박약하다. 일본으로 말하면 생명을 내기하는 싸움이니 정신적 동기가 강하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승패의 분기점(分岐點)이 되는 것이다.
 
  ③ 군략(軍略)과 병기(兵器)의 문제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일청(日淸)전쟁 당시의 일본과 다르다. 왜냐하면 일본은 독일의 군략과 무기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경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노서아에 선전(宣戰)하여 전승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무상(無上)의 책(策)이다.”
 
  손병희의 이 같은 정책 결정은 국내 동학에 전달되어, 일본군을 돕는 계획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또한 그 스스로 대한제국 정부에 그 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의 전개 양상은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만큼 꽤 알려져 있다. 진보회(進步會)가 만들어지고 일진회(一進會)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손병희의 지시대로 러일전쟁 중 적극적인 일본군 지원 활동이 있었다.
 
 
  고종의 친러노선이 亡國의 원인
 
러시아식 제복 차림의 고종과 순종.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손병희가 반민족적 친일 행각을 벌인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든 나라를 구하고자 한 치열한 분투(奮鬪)의 일환이었다. 그것을 매국적(賣國的) 친일 행각이라 하는 건 손병희에 대한 모독이다. 오히려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그의 안목이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국내의 고종과 양반 족속들은 대부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1896~1897)을 할 만큼 친러노선에 치우쳐 있던 당연한 행태였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손병희의 예측대로 일본의 승리였다. 그 귀결(歸結)도 손병희의 예측대로였다.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이 일본의 속국(屬國)이 되는 운명은 결정돼버렸다.
 
  손병희의 선택은 매국적 판단이 아니었다. 3·1운동의 민족지도자로 나설 만큼 손병희의 애국은 일관된 것이었다. 오히려 당시 고종(高宗)을 비롯한 조선 지배층의 친러노선이 조선의 망국(亡國)을 가속화시킨 주범(主犯)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들은 당시의 그 같은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국사에선 가르치지도 않는다. 조정래는 어떨까?
 
 
  또다시 국제 정세의 격변이 오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또다시 당시와 같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정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격변으로 향해가고 있다. 세계적인 반중(反中)의 흐름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친중(親中)을 넘어 완전히 종중(從中)이다.
 
  마치 1905년 러일전쟁 전후 시기의 고종 등을 방불케 한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 열강(列强)의 입장에선 국제적 공적(公敵)이었다. 그럼에도 고종은 그 러시아에 대한 밀착을 이어갔다.
 
  고종이 그처럼 친러에 몰두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제정(專制政)의 국가라는 익숙함과 러시아의 국력(國力)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었다. 지금 문재인 정권과 그 무리도 비슷하다. 이들은 좌익 전체주의(全體主義) 체제인 중공(中共)에 대한 친밀감을 내면화(內面化)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당시 고종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정권은 지금 중국의 국력을 굳건히 믿고 있다.
 
  역사의 진행 과정은 합리적인 판단도 때때로 좌절케 하는 심술을 부리기 일쑤다. 잘못된 판단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미중(美中) 사이의 신냉전(新冷戰) 운운하지만 이건 사실 과장된 착시(錯視) 현상의 결과다. 중국은 미국에 단독으로 맞설 국력이 전혀 못 된다. 더욱이 중국은 지금 국제적으로 고립 양상이다. 그리고 그 고립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중국이 그렇듯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大選)에서 트럼프의 낙선(落選)을 확신하고 그게 지금의 흐름을 바꾸어줄 것으로 믿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같은 기대는 착각이다. 미국 대선에서 설사 트럼프가 패배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세계적인 반중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기든 지든 反中은 돌이킬 수 없다
 
  ‘반중국’의 흐름은 이미 터진 봇물이다. 한번 터진 봇물은 제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트럼프가 패배한다 하더라도 ‘반중’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시절 중국으로 갔던 일자리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일자리가 또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상황을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까? 만약 미국의 민주당 정권이 그 같은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면 거센 반발이 일어날 것임은 명확하다. 때문에 설사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현재의 대중(對中) 경제 압박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기는 어렵다.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외교·안보 전반에서도 그렇다. 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의 세계적인 반중은 결코 트럼프의 작품이 아니다. 중공이 자초(自招)한 것이다. 초창기 트럼프가 반중 정책을 추진할 때 유럽 등은 그에 반발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그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즉 ‘중공폐렴(우한폐렴)’이었다.
 
  중공은 트럼프가 낙선하기만 하면 상황에 변화가 오리라 기대한다. 하나 그 바람은 시진핑(習近平)의 ‘중국몽(中國夢)’만큼이나 망상이다. 스스로 초래한 것인 만큼 중국 자신의 변화가 없으면 상황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중공은 그럴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反美는 직업, 親美는 생활!”
 
  미국은 지난 10월 2일 중국공산당과 그 유사조직 가입자의 경우 이민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 이민국(USCIS)이 “전체주의 정당 가입자의 이민 자격 조정”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전체주의 정당 당원이었거나 관련 기관에 소속된 사람 또는 소속됐던 사람은 별도의 예외(例外)를 인정받지 않은 경우 미국 이민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중화권 매체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 조치는 “중국공산당을 겨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래도 중국 정부는 “그동안 공무원 부패 척결 과정에서 미국 영주권자를 색출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조치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짐짓 침착한 척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과 달리 실제로는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난리가 났다. 미국 등에 자녀를 유학 보내고 재산도 빼돌리는 나관(裸官)의 행각은 중국공산당 고위급 간부들부터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게 봉쇄된 것이다. 이들은 “반미는 직업, 친미는 생활!(反美是工作, 親美是生活)”이다.
 
  정례 기자회견 때마다 미국에 욕을 해대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호화저택을 구입했다. 논란이 일자 그녀는 “미국 유학 중인 중학생 딸의 거주용으로 구입한 것”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 이건 따질 것도 못 된다. 시진핑부터가 딸을 미국에 유학 보냈었고 서열 2위인 총리 리커창(李克强)의 딸도 하버드대에 유학을 했다. 그 유학 생활은 당연히 호화판이었다. 그런 만큼 출처 불명의 유학비 조달은 물론이요 그 정도는 또 가볍게 넘어서는 규모의 재산 도피도 있다.
 
  이게 중공이다. 중공이 국내적으로 야만적인 인권 탄압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갖은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일말의 양심도 없이 구는 것은 단순히 타락이나 일탈이 아니다. 그 본색이 본래 그렇다. ‘타락이나 일탈’은 시작에는 좋은 의도가 있었다는 함의가 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을 그렇게 보는 것은 낭만적 착시다. 중국공산당의 본색은 그 등장 당시 도처에 난립했던 군벌(軍閥) 야심가들과 본질에서 차이가 없었다. 단지 당시 세계적 유행을 탔던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념적 치장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이념을 앞세운 정치운동에 대해선 당대(當代)에도 그렇고 후대(後代)에도 이념적 치장에 혹하여 속아 넘어가는 ‘쓸모 있는 바보’들은 늘 줄을 잇는다. 물론 일부 순진한 이념가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듯이 결국에는 이념의 숭고함보다는 세속적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야망에 불타는 야심가들이 주도권을 잡기 일쑤다. 대개의 이념적 혁명운동은 거의 언제나 그랬다.
 
 
  中共黨을 ‘범죄조직’으로 규정하는 法案 발의
 
스콧 페리 美 하원의원.
  그런데 중국공산당의 경우는 그 같은 양상이 특히 더했다. 순박한 이념가들은 일찌감치 도태(淘汰)돼갔으며 이념적 비장함보다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는 난세적(亂世的) 야심이 더 강한 동기가 됐다. 아무리 순수한 이념적 동기로 시작한 혁명운동이라 해도 타락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처음부터 이념은 취약하고 난세적 야심이 더 현실적 역할을 했다.
 
  미국 이민국의 조치가 있던 비슷한 시기에 중국공산당을 직접 겨냥한 법안(法案)이 하나 제기되었다. 미국 공화당 소속의 스콧 페리(Scott Perry) 하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이 지난 10월 1일 중국공산당을 최고 국제범죄조직 대상(TICOT・Top International Criminal Organizations Target)의 하나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發議)한 것이다.
 
  이념적 대립과 정치적 대결은 아무리 격화된다 해도 타협과 조정의 여지를 갖는다. 하지만 ‘범죄’로 규정짓게 되면 그런 여지는 원천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범죄행위와 범죄조직은 정치적 대화나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단죄와 척결의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공세의 측면도 있을 것이며 이 법안이 통과될지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을 직설적으로 범죄조직으로 규정하는 논리가 공식 제기된 것은 간단치 않다.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서 이렇게까지 치달은 반중공의 흐름을 그냥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반중 정서는 이미 트럼프만의 것이 아니다. 반중은 이제 미국민 일반의 정서가 됐다. 민주당의 경우도 그 정치 엘리트층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대중은 반중으로 기울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트럼프에 대한 평가는 세계적으로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호불호(好不好)가 그처럼 극명한 경우가 있었던가 싶다. 하지만 그 평가의 시시비비가 어떻든 그의 등장에는 간단히 해소될 수 없는 미국 내의 사회적 배경이 있다. 이것은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안 되든 쉬이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强者가 된 흑인
 
  미국에서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는 계층의 대명사(代名詞) 격은 흑인이다. 그러나 흑인이 정치적으로도 여전한 핍박 아래 놓여 있다는 통념은 과장된 혹은 강요된 PC(Political Correctness)다. 정치적으로는 흑인 계층은 이제 전혀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흑인이라는 존재’는 정치적으로는 아무도 감히 건드릴 수조차 없는 강자(Powerful Black)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에 대한 역사적 죄책감이 위력을 행사한다. 한때 흑인을 노예로 삼았었고 그 뒤로도 짧지 않은 기간 제도적 차별이 이어졌다는 도덕적 부채(負債)의식이다. 백인이라면 그 같은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그 반대편에 ‘흑인이라는 존재’는 거역할 수 없는 정치적 힘으로 존재한다. 미국의 민주당은 윤리적 의도에서든 정치공학적 의도에서든 그 힘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資産)으로 굳히는 데 진력(盡力)해왔다.
 
  공화당이 흑인 차별의 정당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이 미국을 진동케 했던 1960년대 케네디-존슨 시대 이래 미국에선 민주당은 흑인을 옹호하는 정당인데, 공화당은 그 반대의 정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아이러니다.
 
  흑인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건 공화당의 링컨이었다. 민주당은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흑인 노예제를 지속하려던 당시의 남부 민주당까지 맥(脈)이 닿는다. 인종차별주의 집단으로 악명을 떨친 KKK단도 정치적 출발은 민주당이었다. 이런 역사적 내막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지금 자신들이 마치 태생적으로 흑인들을 대변(代辯)해온 정당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리고 트럼프와 공화당을 인종차별주의 집단인 듯 몰아세우는 것을 정치적 공세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그런데 역설(逆說)은 또 다른 역설을 부르기 마련이다. 민주당이 그렇게 변신하는 반대편에서 또 다른 변화가 진행되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서였다.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미시간·위스콘신·인디애나 등 미국의 오대호(五大湖) 인근의 주(州)들이다. 이 지역들은 과거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공업지대로 번영을 누린 스틸 벨트(Steel Belt)였다. 공업지대였던 만큼 노조(勞組)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런 만큼 정치적으로는 항상 민주당이었다. 이들 ‘강철 지대’가 제조업 퇴조로 ‘녹슨 지대’가 되어가면서 정치 성향의 변화가 잉태되었다.
 
 
  ‘가난한 백인’
 
  백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가난한 백인(Poor White)’이 되어갔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타개의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곧바로 정치적 이별이 오지는 않았다. 존재 조건의 변화가 있어도 인간은 그 때문에 급작스럽게 의식과 태도를 잘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적 관성(慣性)은 완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건의 변화는 결국에는 의식(意識)의 변화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그 지역들을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텃밭으로 늘 자신했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맞붙었던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는 이들 지역의 하나인 위스콘신주에는 아예 유세를 가지도 않았다.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승리를 자신하던 이들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일리노이를 제외하고는 다 이겼다. ‘가난한 백인’들의 분노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현상은 사실 ‘러스트 벨트’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이 문제는 미국의 전체적인 문제였다.
 
  민주당은 노동자들을 당연히 자기편으로 간주하고 다른 층들을 포섭하는 데 몰두했다. 흑인과 이민자들이 바로 그 주(主)대상이었다. 덕분에 특히 흑인층은 역사적 요인까지 더해져 정치적으로는 거의 언제나 1순위의 배려를 받는 강력한 존재가 돼갔다. 하지만 백인 노동자들은 몰락해 ‘가난한 백인’이 되어갔지만 그들의 고통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역차별이었다. 그러나 흑인은 분노를 터뜨려도 되지만 백인은 그럴 수 없었다. 흑인은 원초적 피해자이지만 백인은 그렇지 않다는 통념(通念)이 억누르고 있었다. 이제 미국에서 ‘백인이라는 존재’는 사회적·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니다. 오히려 ‘백인’은 만사를 조심해야 한다. 범죄자 체포 과정에서의 압박 조치도 그 대상이 흑인이라면 자칫하면 말썽이 난다. 흑인 범죄자의 목숨은 소중하지만 백인 경찰의 목숨은 그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이면에는 그 같은 상황에 대한 ‘가난한 백인’들의 누적된 불만이 있었다. 이들은 이번에는 어떨 것인가? 트럼프가 패배한다고 해서 그냥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까? 지켜봐야겠지만 터진 봇물이 그냥 돌아가지 않는 건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판 노멘클라투라’
 
  세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격변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 정치도 국제 정세도 이미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게 됐다. 그 와중에 일어나는 몇 가지 변수가 이 도도한 격변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그 흐름에 반하는 착란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적으로는 또 다른 희한한 일을 벌이려 하고 있다.
 
  여당 의원 하나가 대학 입학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 자녀를 우대하자는 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특권층화(特權層化) 야욕(野慾)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이미 현재진행형이었다. 이들은 ‘그들끼리’의 ‘우리나라’에서 신판 양반제, 한국판 노멘클라투라를 꿈꾸고 있다. 이제 욕심을 더 이상 숨기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그 지지층을 향해 끝없이 ‘피해자 의식’과 ‘남 탓’의 르상티망(앙심)을 부추겨왔다. 그런데 그게 결국 자신들의 특권층화로 향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거리낌이 없다. 그들에 매달린 자들이 그렇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귀결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 tive Action) 제도가 있다. 소수(少數)인종 우대입학 정책인데 반세기를 이어온 정책이다. 말할 것도 없이 흑인을 주대상으로 시작된 정책이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배려정책이 제공됐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그러나 이것은 언젠가부터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도구 역할만 할 뿐 흑인들에겐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배려의 역설’이었다. 배려는 권리로 여기기 시작하면 반드시 역습(逆襲)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배려를 받은 당사자를 타락시킨다. 그래서 자수성가(自手成家)에 성공한 보수주의적 흑인 인사들은 그 배려가 오히려 자조(自助)·자립(自立)을 해치는 독소가 되고 있다고 개탄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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