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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분석

탄핵 비화로 본 박근혜와 우병우, 문재인과 추미애의 운명

우병우 감싼 朴의 미래에서 文과 추미애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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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우 사태 때 그의 말만 믿은 朴
⊙ JTBC 태블릿PC 보도와 관련한 박근혜 섣부른 사과, 우병우 작품이란 소문 돌아
⊙ 핵심 측근들의 “(우병우) 내쳐야 한다”는 보고에 朴, “지금 밀리면 레임덕”이라 판단
⊙ 추미애에게 힘 실어준 文… 본인 대신 악역 맡아 檢 장악한 것에 대한 보은?
⊙ 민심 거슬러 잘된 대통령 없어… 박근혜 때와 과정 같아 결론은?
⊙ “대통령이 지금 밀리면 레임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레임덕”(前 靑 핵심 관계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2013년 2월 25일 시작) 3년 가까이 되던 2016년 1월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수직 승진했다.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된 지 7개월 만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40대의 우 전 수석을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영한 전 수석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낙점한 것이다.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전 수석은 똑똑하지만, 명예욕과 경쟁심이 강했다고 한다. 명예욕 때문이었을까. 임명되고 곧장, 우 전 수석의 인사개입설이 유력 일간지 칼럼을 통해 제기됐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인사에 우 전 수석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한다는 의혹이었다.
 
 
  “우병우의 청와대란 이야기 나와”
 
  이 언론 보도를 보면 2015년 장관급 기관장 1, 2순위 후보가 민정라인의 검증을 거치면서 순서가 바뀌자 해당 부처를 관장하는 수석이 바로잡았다. 그런데 민정비서관이었던 우 전 수석이 다시 민정수석실이 올린 대로 순서를 되돌렸다고 한다. 압권은 보안 정보를 맡는 국가정보원(국정원) 2차장 인사였다.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였던 최윤수 전 차장은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발탁되고 한 달 후쯤 이뤄진 국정원 인사 때 국정원 2차장으로 임명됐다. 우 전 수석이 밀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967년생 동갑내기인 우 전 수석과 최 전 차장은 서울대 84학번 동기다. 사법연수원은 우 전 수석(19기)이 최 전 차장(22기)보다 선배였지만 사석에서는 말을 트고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 인사가 있고 국정원 내부는 멘붕 상태에 빠졌었다는 후문이다. 우 전 수석의 파워를 경험한 관계자들 입에서 ‘우병우의 청와대’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우병우 의혹 보도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3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일한 지 6개월쯤 되던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는 1~2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妻家) 부동산 넥슨, 5년 전 1326억원에 사줬다” “진경준은 우병우·넥슨 거래 다리 놔주고 우병우는 진경준의 넥슨 주식 눈감아줬나” “진(陳) 검사장 승진 때 ‘넥슨 주식 88억’ 신고… 우(禹) 민정수석, 문제 안 삼아” 등의 기사를 보도했다. 다음 날인 19일 《경향신문》은 우 전 수석이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경향신문》은 “(우 전 수석이) 2013년 5월부터 1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수임계를 내지 않은 채 홍 변호사와 함께 정 전 대표를 변론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법조 브로커 이민희씨 측근의 말을 인용해 “우 수석이 변호사 시절, 이씨를 만나 강남 팔래스호텔과 청담동 등지에서 2~3차례 식사를 하는 등 어울려 다녔다”고 전했다.
 
  민정수석 취임 이후 기자들의 취재에 거의 응하지 않았던 우 전 수석은 기사 보도 뒤인 20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무려 1시간에 걸쳐 본인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해명을 했다.
 
  최고 수준의 법률전문가였던 우 전 수석이 말했다.
 
  “(넥슨) 김정주 회장한테 진경준 검사장을 통하든 말든 부탁을 했느냐, 아니냐 부분이 핵심 아니냐. 땅에 대해 김정주한테 사달라거나 한 적 없다.”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서도 “100% 허위보도다. 지라시 수준의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우 전 수석은 “정운호와 이민희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전화통화도 한 적이 없다”면서 “정운호를 전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사건을 수임한 적도 없다. 이민희와 일면식도 없으므로 식사를 했다든지, 형님이라고 불렀다든지 하는 것도 완전한 허구”라고 반박했다. 훗날 우 전 수석이 의혹 보도를 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그의 일부 승소로 결론 났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언론에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정치적·도덕적으론 논란이 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쏟아진 의혹 보도
 
  보도와 관련 우 전 수석이 ‘법적’으론 아무 잘못,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힌 후 그와 관련한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한겨레》의 ‘우 전 수석의 아들 의무경찰 보직 특혜 의혹’ 보도가 치명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민감한 군(軍)복무 문제가 제기되면서 국민감정을 자극한 것이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국민 갈등이 증폭하던 때였는데 우 전 수석에 대한 여러 의혹이 불거지면서 20~30대 민심이 돌아섰다. 당시 야당인 현 여당(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이슈로 꺼내 드는 등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 지지율을 올렸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매일경제》·MBN·레이더P 의뢰로 시행한 2016년 7월 4주 차 주중 집계(25~27일 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1.3%포인트 오른 27.2%를 기록했다. 반면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5.1%포인트 내린 26.3%로, 19대 국회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로 추락했다. 이 시기 TV조선은 2016년 7월 26일 ‘안종범 수석, 미르재단 500억 모금 지원’ 보도를 시작으로 28일에는 ‘안종범,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퇴 종용’ 등을 단독으로 내보냈다. 최서원(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서막을 알리는 보도였다.
 
 
  “죄 없는 제가 왜 나가서 구속돼야 합니까?”
 
  이 기사에 대해 청와대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몇몇 빼고는 최씨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우 전 수석 의혹과 맞물렸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으며 언론은 각종 기사와 사설, 칼럼들을 통해 우 전 수석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시점 우 전 수석을 포함,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회의가 있었다. 몇몇 수석이 이야기했다.
 
  “(사퇴)결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사실상 사퇴를 종용받은 우 전 수석은 이렇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아무 죄가 없는데, 왜 나가야 합니까. 검찰 속성상 (제가) 나가면 곧장 구속될 겁니다. 왜 제가 사퇴해서 구속돼야 합니까?”
 
  우 전 수석은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 와중인 9월 20일 《한겨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서원씨가 개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법사 볼드모트는 작품에서 ‘그 사람(You-Know-Who)’이나 ‘이름을 불러선 안 되는 사람(He-Who-Must-Not-Be-Named)’으로 불린다. 누구나 알면서도 감히 이름조차 입 밖에 낼 수 없는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최씨가 그랬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파견 근무를 했던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최순실’이란 세 글자는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일종의 ‘금기어’ 같은 거였다”고 했다.
 
  ‘금기어’나 다름없던 최씨의 이름 세 글자가 공개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이 최씨의 측근들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밀리면 끝이라 생각한 朴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고 판단한 몇몇 핵심 참모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의혹을 차단하지 못한 우 전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 등을 올렸다.
 
  보고를 받고 박 전 대통령이 보인 반응에 핵심 측근들은 놀랐다.
 
  “아무 잘못이 없는 분이 왜 나가야 하는 거죠?”
 
  이런 반응에 대해 박근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 수석이 물러나면 레임덕이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밀리면 끝이란 생각을 하신 거죠.”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우 전 수석과 관련된 의혹이 많기는 했지만 팩트(사실)로 확인된 것이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계속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이죠. 또 본인이 워낙 강하게 의혹을 반박하는 데다 그 내용도 타당하니 믿고 넘어간 겁니다.”
 
  국면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 전 수석을 물러나게 한다면 야권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여론의 원심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한번 믿은 사람은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정면 돌파 기류의 한 배경이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성완종 게이트’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인 적이 있지만, 그때는 구체적인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시와는 상황이 달랐다”고 했다.
 
  게다가 우 전 수석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다. 머리 회전이 빠른 그는 추진력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정권 핵심으로 부상했다.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관계자의 말이다.
 
  “(우 전 수석이) 일 하나는 똑소리 나게 잘했다. 언제까지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다 해왔다.”
 
  우 전 수석은 ‘VIP(대통령) 관심 사안’이 잘 집행되지 않으면 격한 발언으로 상대를 질타했다고 한다.
 
  한국형 양적 완화를 둘러싸고 한국은행이 ‘한은의 독립’을 거론하자 “‘검찰의 독립’은 없는 줄 아느냐”며 회의 때 역정을 낸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도 “박 대통령이 우 수석을 자신이 퇴임할 때까지 곁에 둘 확실한 ‘순장(殉葬) 참모’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에 “대통령과 정권 흔들려는 것”이라 보고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자신의 의혹과 더불어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를 통해 대통령과 정권을 흔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만 믿으란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 같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의혹과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일방적인 정치 공세나 국정 흔들기는 자제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우 수석이 실세라고는 하나 우 수석에 대한 의혹 제기와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는 ‘국정 흔들기’이고 국민 단합을 해친다는 청와대 시각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됐겠느냐”며 상황을 떠올렸다.
 
  우 전 수석이 언론과 여론의 압박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사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2016년 10월 초에는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자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씨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여전히 청와대는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여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 “비상시국에 비방과 폭로성 발언이 난무한다”며 보도들을 일축했다.
 
  그러다 진짜 일이 터졌다. 10월 24일이었다. JTBC가 최씨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를 입수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하고 수정했다는 식의 뉴스를 보도했다. 이 보도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날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측근들은 대국민 사과가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사실 참모들은 사과 기자회견을 말렸습니다. JTBC의 소위 최순실 태블릿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대통령이 무턱대고 인정해버린 겁니다. 국민께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정치 9단’이라고 하는 대통령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죠.”
 
  당시 청와대에는 우 전 수석의 ‘조언’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섣부르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우 전 수석이 (태블릿PC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니, 사과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도 된다는 식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증언이다.
 
  “우 전 수석의 판단 기준은 오직 ‘법’이었는데 이 점이 대통령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정치는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니다. 때때론 정무적 판단도 해야 했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최씨는 10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제의 태블릿PC를 지칭해 “내 것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자신은 태블릿PC를 다룰 줄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씨의 인터뷰가 나온 다음 날인 28일 성난 민심과 검찰의 움직임을 우려했던 안종범 전 수석이 우 전 수석을 찾았다.
 
 
  “혹시 저에게 압수수색이 들어오는 거 아닐까요?”(안종범)
 
성난 민심과 검찰의 움직임을 우려했던 안종범 전 수석(오른쪽)이 우 전 수석을 찾았다. 그는 우 전 수석에게 혹시 자신의 집과 사무실이 압수 수색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이에 우 전 수석은 괜찮다는 식으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16년 8월 25일 신임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 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다.
  그는 우 전 수석에게 혹시 자신의 집과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이에 우 전 수석은 괜찮다는 식으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을 놓고 있던 안 전 수석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29일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당시 검찰은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압수해갔는데, 이는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됐다.
 
  우 전 수석이 검찰의 압수수색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안 전 수석에게 증거 인멸을 시도하라고 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정수석이자 법률전문가라면 검찰이 ‘수첩’을 확보할 경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여론몰이할 가능성이 크니 이를 대비하라고 귀띔해줬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대비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의 업무수첩과 안종범 업무수첩을 대하는 검찰의 온도 차가 하늘과 땅인 것을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송 전 부시장은 “개인적 메모장일 뿐”이란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송 전 부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절친인 송철호 울산시장의 핵심 측근이다. 송병기 업무수첩에는 ‘VIP’ ‘비서실장’ ‘조국 수석’ ‘비서관’ ‘행정관’ ‘청와대 회의들’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박근혜, 1300일 넘게 구치소에 수감
 
  청와대가 ‘악수’만을 거듭할 때인 11월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사상 최저 수준인 5%로 떨어졌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를 이틀 앞둔 2016년 12월 7일 한때 최씨 측근이었던 고영태씨가 “정확하게 얘기해 최씨는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튿날인 12월 8일 최씨 측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도 “태블릿PC는 최씨 것이 아니다”며 “(JTBC 기자에게로의)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12월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찬성 234표 대 반대 56표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렇게 박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1300일 넘게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결론적으로 우 전 수석을 계속 안고 간 결정이 탄핵 폭탄을 맞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된 셈이다.
 
 
  ‘우’를 ‘추’로 ‘경찰’을 ‘군’으로 바꿔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월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2016년 10월 5일자, 2020년 9월 7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여주며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잖아요. 4년 전 일이 데자뷔처럼 떠오르네요.”
 
  2016년 기사의 제목은 〈“우병우 아들 운전병 발탁 코너링이 좋아서 뽑았다”〉였고, 2020년 기사 제목은 〈국방부·육본 ‘秋아들 특혜 요구’ 정황〉이었다.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으로 ‘우병우’를 ‘추미애’로 ‘경찰’을 ‘군’으로 바꾸면 똑같은 기사가 됩니다.”
 
  2019년 11월 중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급부상했다. 당초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이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지명이 지연되는 사이 추 전 대표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것이다. 11월 말 정치권에서는 추 전 대표가 사실상 법무부 장관으로 낙점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언론 보도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12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판사 출신인 추 전 대표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50여 일 만이었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른 지 2년 7개월 즈음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우병우 전 수석을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던 때와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추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서 12월 30일 열릴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12월 19일 《일요신문》은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중 휴가 미복귀 무마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제목은 〈[단독] 추미애, 카투사 군 복무 아들 휴가 미복귀 무마 의혹, “휴가 연장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접 전화”… 청문회준비단 “입원하느라 아들이 직접 요청, 전화 안 해”〉였다.
 
  12월 30일 청문회 때 야당 의원들은 이 내용으로 공세를 취했다. 추 후보자는 발끈하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2020년 1월 2일 추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재가했다. 3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아들 병역 관련 외압 행사 의혹으로 추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권 관련 수사팀 좌천 인사 단행한 추미애
 
  1월 8일 법무부는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추 장관의 임기가 시작된 지 엿새 만이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보임됐다.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조남관 서울동부지검장이 기용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좌해 주요 수사를 지휘하던 대검 참모들은 대부분 한직(閑職)으로 밀려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윤석열 총장의 핵심 참모들은 모두 고검 차장이나 지방 검사장으로 좌천됐다. 대표적으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으로 각각 전보됐다. 강남일 대검 차장도 대전고검장으로, 이두봉 대검 과학수사부장은 대전지검장으로 이동한다.
 
  윤 총장과 가까운 사이로 꼽히는 윤대진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보임됐다. 대부분 수사권이 없는 자리다. 이 인사를 신호탄으로 세 번의 검찰 인사가 더 있었는데, 정권 관련 수사팀의 핵심을 좌천시키거나 흩어놓는 식으로 분해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를 맡았던 신봉수 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평택지청장으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맡은 송경호 전 3차장검사는 여주지청장으로 옮겼다.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한 홍승욱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는 지난 2월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으로 발령 났다. 손혜원 전 의원을 부동산 투기 혐의로 기소한 권익환 서울남부지검장은 지난해 옷을 벗었고, 당시 수사를 지휘한 김범기 당시 남부지검 2차장검사는 검사장 인사에서 탈락했다. 최근까지 추 장관 아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김남우 동부지검 차장도 지난 8월 사표를 냈다.
 
 
  추미애의 자신감은 어디서?
 
  정권을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됐기 때문일까. 검찰은 추 장관 아들의 ‘군(軍) 휴가 미복귀 의혹’ 수사를 7개월간 뭉갰다. 이 사이 국민의힘 의원들은 연일 추 장관 아들의 의혹에 대해 폭로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여론도 추미애 사퇴 쪽으로 쏠렸다.
 
  9월 17일 여론조사기관 앨앤써치가 ‘데일리안’ 의뢰로 14~15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추미애 장관 자진 사퇴 및 해임’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이 55.7%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 100%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응답률은 6.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www.rnch.co.kr)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어디로 튈지 모를 언행을 보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을 가리켜 “저 사람은 검사 안 하고 국회의원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죄 없는 사람 여럿 잡을 것 같아”라는 막말을 했다. 마이크가 꺼진 줄 알았다지만 국무위원이 할 말이 아니란 지적이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공정은 근거 없는 세 치 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치받았다.
 
  추 장관의 파워 때문일까. 검찰도 올 1월 야당이 추 장관 아들 병역 의혹을 고발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압수수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러다 9월 초 야당에 의해 ‘조서 누락’ 사실 등이 폭로되자 급히 관련자 소환을 하고 압수수색을 했다. 이 의혹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9월 28일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무려 23일간 이어진 서씨의 병가와 휴가는 추 장관 측 압력이나 청탁이 아니라 정상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에 이목이 쏠리고 추석 연휴를 목전에 둔 시점을 골라 기습적으로 추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위기의 추미애에 힘 실어준 문재인
 
  심지어 불기소 발표를 하면서 검찰이 공개한 추 장관 아들과 최 전 보좌관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추 장관이 아들이 근무한 부대의 상급부대 지원 장교 휴대전화 번호를 최 전 보좌관에게 전달한 내용이 담겼다. 이는 그간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라고 시킨 적이 없다”고 해왔던 추 장관의 국회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회 속기록상 추 장관은 아들 문제와 관련해 9월 한 달 동안 모두 27차례나 “보좌관이 전화한 적 없고, 지시한 적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발표 이틀 전 추 장관에 대한 서면 조사만 하고 “법무장관이 청탁에 직접 관여한 뚜렷한 정황이 없었다”고 했다.
 
  검찰이 추 장관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기 직전 이런 일이 있었다.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 기관장 회의를 주재하면서 회의장에 추 장관과 동시에 입장한 것이다. 국정원장, 행안부 장관 같은 다른 참석자들은 미리 대기하는 상태에서 대통령은 보란 듯이 추 장관과 나란히 회의장에 들어섰다.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어떤 자리에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대통령이 권력 기관장 중 추 장관 한 사람만 선택해서 함께 입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최근의 ‘추미애 논란’에 대해 대통령은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추 장관은 행사장 바깥에서 대통령 영접 목적으로 대기하다가 만나서 들어온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 대신해 악역 맡은 데 대한 보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는 추 장관이 자신을 대신해 악역을 맡아 정권 수사를 하던 검사를 무더기로 좌천하는 방법으로 검찰을 장악해준 것이 꼽힌다. 실제 옵티머스 사건과 관련 내부 문건에는 청와대(5명)와 국회의원(5명), 민주당(3명) 등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나와 있지만 검찰은 수사에 소극적이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의 모습.
  문 대통령은 왜 이렇게 추 장관에게 집착할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추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중 한 명인 것, 이해찬 전 대표와 각별한 관계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추 장관이 우 전 수석과 비슷한 논리를 폈을 가능성도 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야인이 되는 자신을 검찰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버텼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는 추 장관이 자신을 대신해 악역을 맡아 정권 수사를 하던 검사를 무더기로 좌천하는 방법으로 검찰을 장악해준 것이 꼽힌다. 만약 정권 범죄에 대한 수사를 모두 막지 못했다면 레임덕은 벌써 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 현재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든 옵티머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이 펀드 사기꾼들의 로비 실상이 담긴 내부 문건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문건에는 청와대(5명)와 국회의원(5명), 민주당(3명) 등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나와 있다. 7월에는 펀드 관계자가 다른 문건을 스스로 제출했다.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참여” “펀드 설정·운용 과정에 관여”라고 돼 있는 문건이다. 이 사건이 단순 펀드 사기가 아니라 ‘권력형 게이트’일 수 있다는 중요 단서다. 하지만 수사팀은 추가 수사는커녕 문건 확보 사실조차 대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펀드 관련자들은 수사팀에 금감원 국장 등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했다는 진술도 했다. 그런데 이 진술은 정식 조서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경질 여론이 높지만, 문 대통령이 귀를 닫은 이유가 4년 전 박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박 전 대통령 사례를 설명하면서 우 전 수석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우 전 수석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는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여론이 등을 돌린 측근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고집으로 감싼 것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지금의 추미애 논란을 보면 불과 4년 전에 있었던 우 전 수석 사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정이 비슷하면 결과도 닮을 수밖에 없다. 전 정권을 ‘적폐’라 규정한 문재인 정권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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