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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독일 통일 30주년

독일 통일과 미국

독일 통일은 미국의 ‘힘의 정치’의 소산

글 :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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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통일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을 때 미국의 결정적인 힘과 의미를 깨달았다”(헬무트 콜)
⊙ 대처, “소련이 독일 통일 막아달라”
⊙ 미테랑, “독일 통일 막기 위해 佛·蘇 군사동맹 가능”
⊙ 한국, 中·蘇에 접근하고 ‘점진적 통일’ 여유… 미국 一極 체제하 통일 호기 놓쳐버려
⊙ 미국의 힘이 한반도 통일 반대하는 中·日 압도해야 통일 가능… 방법은 韓·美·日 동맹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1990년 2월 25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면서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를 강조했다.
  1990년 10월 2일 밤, 동·서독 정치 지도자들은 복원된 베를린의 독일 의회 건물에 모여 중대한 사건을 축하했다. 이날 자정을 기해 독일은 다시 통일된 나라가 된 것이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통일 1년 전 “한데 속한 것은 함께 모인다”고 하면서 통일은 새로운 독일의 쇼비니즘적 표현이 아니라 자유와 자결에 대한 열망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독일 지도자들은 재(再)통일은 특히 소련과 미국 등 4대 열강의 원조와 격려를 받아 동·서독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이상의 설명은 독일 현대사의 권위자 디트리히 올로(Dietrich Orlow) 교수가 쓴 《독일 현대사: 1871년 독일 제국 수립부터 현재까지》라는 책 중의 독일 통일에 관한 장에 두루뭉술하게 기술된 독일 통일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독일 통일은 독일 지도자들이 말한 4강의 원조와 격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독일 지도자들이 말하는 4강이란 미국을 비롯해 독일 통일 당시 해체되기 이전의 소련, 영국, 프랑스를 의미한다. 사실 이 나라들 모두가 독일의 통일을 원조하고 격려하지는 않았다. 독일 통일은 소련·영국·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힘은 미국의 힘이었다.
 
  즉 독일 통일은 권력정치(power politics)야말로 국제정치에서의 진수(眞髓)라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독일 통일은 파워 폴리틱스의 결과라는 말이다. 국제정치의 과정과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힘(power)’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국제정치를 파워 폴리틱스(힘의 정치)라고도 말한다. 필자는 독일의 통일을 파워 폴리틱스의 결과라 보며, 이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인은 미국의 힘이라고 본다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프러시아의 탁월한 전략가인 비스마르크에 의해 지리멸렬 상태로 존재했던 게르만족 나라들이 독일제국으로 통일을 이룩한 1871년 이후 유럽의 정치는 독일에 의해 좌우되었다. 중부 유럽에 자리 잡고 있는 막강한 강대국 독일제국이 어떤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유럽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인지 혹은 평화를 유지할 것인지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독일이라는 막강한 국가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수단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왕의 강대국인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제국 등 막강한 나라가 이웃에 출현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일의 통일을 꿈꾼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과 피(iron and blood), 즉 철혈(鐵血)정책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62년 의회 연설에서 비스마르크는 “의회의 연설이나 다수결로 작금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며… 중요한 문제들은 철과 피로 결정된다”고 역설했다.
 
  결국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위해 프랑스와의 일전(一戰)을 피할 수 없었다. 1871년 프랑스를 격파한 비스마르크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장소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독일제국을 건설한 직후 수십 년 동안 독일은 신생 제국의 존속을 위해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대외 정책을 실시했지만, 강대국 독일이 유럽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라도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독일 통일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본 이유
 
  힘이 막강해진 독일은 결국 20세기 초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야기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 프랑스는 1871년 독일로부터 당한 모욕을 되갚아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오히려 반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모욕을 당했던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아냈고, 차제에 독일을 완전히 거덜내버리겠다는 조치를 취했다. 프랑스는 독일이 멸망하지 않는 한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부과했다. 이는 배상금을 갚다가 망할 바에는 차라리 복수하자는 히틀러의 출현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격파한 4대 강국, 즉 미국·소련·영국·프랑스는 차제에 독일을 4등분해버리고자 했다. 온전한 하나로 놔두기에 독일은 너무나 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진영-공산 진영의 분열은 독일의 4등분을 동독과 서독의 2등분 상태로 바꾸어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과정의 국제역학(國際力學) 구도와 그 이후 야기된 미·소 냉전(冷戰)의 여파로 한국・베트남 등이 분단국이 되었지만 분단 성격은 달랐다. 한국과 베트남은 약한 탓에, 독일은 너무나 강한 탓에 분단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독일 통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웃 강대국들의 타협을 통해 분단이 해소될 수 있지만, 독일의 분단 해소는 막강한 강대국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웃 어떤 강대국도 독일의 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統獨 되면 화성 가서 살겠다”
 
1990년 3월 30일 영독정상회담. 대처 영국 총리는 독일 통일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런 예상과 달리 독일이 갑작스런 통일을 이룩한 후 수많은 학자가 그 과정을 설명했는데,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독일을 동·서독으로 나누고 있던 미·소 냉전이 와해되었다는 사실은 독일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막강한 독일이 20세기 동안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야기한 원흉(元兇)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기억하는 강대국들이 독일 통일을 바라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점에서 독일의 통일은 미국의 힘이라는 변수(變數) 없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독일 통일에 대해 영국·프랑스·소련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통일된다는 사실은 소련의 공산주의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계기도 되고, 자유주의의 힘을 훨씬 깊숙이 동쪽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프랑스·소련은 독일의 통일이 너무나 두려웠다. 차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 통일 반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미국 정치가들과 친한 것으로 소문난 영국의 대처 총리는 “우리는 독일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없게 되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소련이 막아달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은 “독일의 통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프랑스와 소련의 군사동맹도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테랑의 보좌관이던 자크 아탈리는 “독일이 통일되면 화성에 가서 살겠다”고 말할 정도로 독일 통일이 몰고 올 위험을 두려워했다. 물론 몰락한 소련은 독일의 통일을 저지할 별 방법이 없었다. 국가가 해체되어 소련이 산산조각이 날 판국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 요소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반대를 꺾어줄 나라가 오로지 미국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독일은 미국에 통일을 간청했다. 당시 독일 총리와 외교담당 관리들은 미국을 제집 다니듯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독일의 통일을 지켜본 학자·정치가들이 한결같이 증언해주고 있는 사실들이다.
 
  한국인으로 독일에서 오랫동안 대학교수를 하며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본 박성조 교수의 글을 인용해본다.
 
  “누가 나에게 독일 통일을 이루어낸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것이다. 미국의 지원과 서독의 경제력, 그리고 서독인의 단결력이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도움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진실로 통일을 원한다면 이 세 가지 요인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한반도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한반도 붕괴: 위기의 남북관계 그 새로운 전략과 해법》 중)
 
  독일이 통일을 이룩하고 7년 반 정도 지난 무렵인 1998년 5월 14일 베를린 템펠호프공항에서 열린 ‘공중다리 기념식’(베를린공수 기념식) 연설에서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우애와 파트너십은 독일 대외정책의 근간입니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을 때 미국의 결정적인 힘과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동구 사회주의권에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불고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는 순간, 미국과 같이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박성조 교수와 콜 총리의 언급은 사실 국제정치의 역사에 끊임없이 나타난 진실의 반복이었을 뿐이다. 미국이 독일의 통일을 막았더라면 다른 모든 변수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어버린다. 미국이 독일을 통일시키겠다고 결심했기에 다른 요소들이 독일 통일을 위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왜 독일 통일을 허용했나
 
1990년 4월 25일 독불정상회담. 프랑스도 독일 통일에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독일을 통일시켜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독일이 과거를 뉘우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체제 변환한 나라가 되었다는 확신이다. 물론 프랑스와 영국은 통일 독일의 막강함이 초래할 힘을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의 근거가 독일이 야기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지만, 미국은 독일이 이제 변했다는 사실에 더 큰 방점을 두었다.
 
  두 번째 요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독일이 통일되어 나토 일원이 되는 경우 소련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전략적 계산이었다. 통일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현재 러시아가 ‘분노하는 강대국’으로 다시 출현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가는 마당에 승리를 만끽하고 있던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통일 독일을 나토에 편입시키는 정책을 완전한 승리의 지름길로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이 독일을 통일시키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압도적인 힘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성공한 미국은 상대적으로 국력이 대폭 증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미국의 힘은 거칠 것이 없었다. 미국의 힘을 발목 잡았던 소련이라는 힘은 와해되었다. 양극(兩極) 체제는 미국 주도의 일극(一極) 체제가 되었다. 미국은 이제 꿈에도 그리던 패권국(hegemonic power)이 된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20세기 초반과 같은 야욕을 가지게 될 경우, 그것은 막강한 미국의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독일이 통일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동안 미국은 4만명 이상의 미군을 독일에 지속적으로 주둔시켜오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駐獨)미군을 1만명가량 감축시키겠다는 것은 독일에 스스로 더욱 강해지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미국이 독일의 막강해짐을 두려워했다면 결코 주독미군을 감축시키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통일을 이룩한 후에도 상당수 미군이 독일에 주둔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주변국들에 통일을 수용해달라고 호소했다. 미국 역시 영국·프랑스에 독일은 미국이 계속 장악하고 있을 터이니 독일 통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전통적으로 반미주의적(反美主義的) 성향이 농후한 프랑스는 때때로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미국이 원하는 데 반하는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반(半)농담식으로, 그러나 심각한 의미가 들어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독일의 목줄을 풀어줘라. 멋모르고 까부는 프랑스에 겁을 줘라.”
 
 
  한국이 통일의 호기를 놓친 이유
 
  수많은 한국 사람은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우리도 곧 통일될 것을 염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독의 접근법을 따르지 않았다.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힘이 가장 막강해진 나라는 미국인데, 동맹국 미국과 서서히 소원해지는 한편 러시아·중국 등과 잘 지내면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위정자(爲政者)들은 전략적 실수와 패착을 범했다. 결국 정치가들의 전략적 실수와 외교적 패착은 독일이 통일된 후 3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가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가장 큰 패착은 통일 과정이 국제정치의 역학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독일과 같이 막강한 힘도 없는 처지를 모른 채 ‘우리 민족끼리 잘하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한 ‘독일은 준비 없이 통일을 이룩했기에 고생한다’며 우리는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통일하면 될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가 모처럼 형성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 즉 미국에 의한 일극 구조가 진행되던 대략 1990년부터 1995년 동안 지속된 통일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러는 동안 중국이 급부상(急浮上)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구조가 다시 냉전시대의 양극 구조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 분단이 국제정치적 원인에서 야기된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도 국제정치적 조건이 충족될 때 이룩될 수 있다. 우선 한반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정학적으로, 권력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통일 반대는 마치 독일 통일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힘만으로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구조적인 반대를 설득하거나 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통일을 꿈꾸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구조적으로 반대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반도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미국의 힘이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힘을 압도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미·일 세 나라가 강력한 동맹 협력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통일의 기회 다시 왔는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트럼프 시대 이후 형성된 한반도 주변의 역학 구도는 한반도 통일이 다시 가능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리멸렬해지는 작금의 상황, 중국이 자신의 대내(對內) 문제 해결에 급급한 현 상황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조건 형성에 대단히 긍정적이다.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대전략 목표가 되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하여 견실한 중견 강대국이 생기는 것을 미국은 전략적 자산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통일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때 한반도 통일의 시간은 생각보다 대폭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룩한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통일은 이미 너무나 늦어버린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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