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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厚黑의 나라’ 中共을 닮아가는 문재인의 ‘우리나라’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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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이 “코로나 극복” 선언하던 날, 한국에서는 중국인 3명 등 중국 입국자 5명 확진 판정
⊙ 中共이 내거는 ‘中國夢’이라는 新중화주의는 내부의 전제주의와 짝을 이뤄
⊙ ‘厚黑의 나라’ 中共을 찬미했던 리영희의 제자들… 中共에 대해 이념적·정서적 호감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개막 전날인 2019년 6월 27일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만나 韓中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지난 9월 8일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은 자국인(自國人) 4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이날 수여식 자리에서 “전 세계에서 중국이 가장 빨리 코로나 전염병을 극복했다”며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시진핑의 이런 자신만만한 선언은 지난 “8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중국에서 지역감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데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코로나 방역 표창대회’ 행사를 하던 같은 날 한국의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8월 16일부터 9월 7일까지 중국에서 입국한 사람 가운데 5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중 3명은 중국인이었다. 중국의 ‘지역감염이 0명’이라는 주장이 거짓말임이 들통 난 셈이었다.
 
  시진핑은 이날 표창대회 행사에서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중국이 전염병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코로나와의 투쟁에서 성취한 큰 전략적 성과를 통해 중국공산당의 지도력과 사회주의의 장점이 증명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 억제를 위한 행동에 앞장서 전 세계의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자평(自評)했다. “중국이 투명한 조치로 국제적 의무를 다했다”고 했다.
 
 
  뻔뻔한 중국
 
  뻔뻔했다. 코로나19의 진원지(震源地)는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이 은폐에 급급해했기 때문에 전 세계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그에 대해선 단 한마디의 형식적 유감 표명도 없이 되레 “중국공산당이 잘 했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줬다”고 운운한 것이다.
 
  그런데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코로나19가 중국발(發)임이 명백해도 “미국이 진원지일 수 있다”는 기상천외의 생떼를 부리기도 하는 중국이었다. 그런 중국에 다른 어떤 면모를 기대했다면 그게 오히려 순진한 것일 터였다.
 
  국제정치라는 게 본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국익(國益)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거짓말도 해야 하고, 우기기도 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도 그 같은 안면몰수는 ‘때로는’이어야 하며 ‘정도껏’이어야 한다.
 
  물론 국제정치는 근본적으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며 궁극의 지점에는 막장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막장은 말 그대로 마지막 순서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도 ‘신뢰(信賴)’는 소홀히 할 게 아니다. 신뢰를 위해 최소한 ‘연기(演技)’라도 해야 하는 건 개인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그게 ‘외교(外交)’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과 뻔뻔함에 대해 부담을 갖는 모습이 없다. 그런데 중국의 이런 면모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거기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中華主義
 
  현대 외교의 원리는 유럽 30년전쟁 이후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에서의 ‘주권(主權)국가 간의 평등에 기초한 국제체제’가 출발점이다. 거기서 시작된 ‘주권평등’의 원리는 지금도 그대로 통용되는 현대 국제정치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적인 대외(對外)관계 원리에는 그 같은 주권평등의 개념이 전혀 없었다. 이른바 중화체제(中華體制)는 중국이 상국(上國)으로서 주변 국가들을 거느리는 구조였다. 대표적으로 조선(朝鮮)이 그 아래에 편입돼 있었다. 중국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서구 열강과 조우하면서 그 같은 체제의 포기를 요구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일본에 패하고, 그 결과 조선이 ‘독립’함으로써 상하 위계의 중화질서는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런 과정을 근대적 국제정치 원리의 수용이기보다는 굴욕으로 간주했다. 그 점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일으켜, 1912년 중화민국을 세우고 국민당을 창립한 쑨원(孫文)이나 그 후계자 장제스(蔣介石), 그리고 나중에 장제스의 국민당을 꺾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을 위시한 중국공산당 등 모두가 좌우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한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전근대적(前近代的) 중화질서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산 중국도 그 국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보이듯 ‘중화’를 버린 게 아니었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으로 힘을 키웠다고 생각한 중공은 시진핑 들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함께 ‘3동심원(三同心圓)’ 전략을 추진했다. 3동심원은 ▲대만·홍콩·마카오·동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자치구)·티베트의 완전통합 영토정책 ▲인접국인 북한·파키스탄·미얀마의 종속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60여 개 주변국과 경제권 구축이 핵심 내용이다. 결국 중국몽의 완성은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21세기 판 조공(朝貢)·책봉(冊封) 체제로 만들어 중화제국을 재현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중화주의적 관념은 단지 패권주의적(覇權主義的) 야심으로 국제관계를 어지럽힌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명적 가치 문제와 연결돼 있다. 바로 자유를 근본에서 부정하는 전체주의(全體主義) 문화다.
 
 
  전체주의적 제국주의
 
히틀러와 스탈린은 ‘전체주의적 제국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부류에 속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 이래 제국주의적 야심과 패권의 추구는 자본주의가 빚어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일반화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좌익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좌익적이지 않은 정치인·지식인들도 그것을 통념으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대외적 패권 추구의 폭주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일하게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썼지만, 근대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서구의 제국주의와 그 후 나치 독일의 광적(狂的)인 대외팽창 추구는 내용이 다른 것이었다. 히틀러 독일의 제국주의는 내적으로는 나치즘 전체주의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나치 독일의 게르만 민족주의 폭주는 내적으로는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의 부정을 담고 있었다. 당시 독일에선 자유의 가치는 회의(懷疑)에 직면하고 전체주의적 결속이 독일과 독일인을 구원할 것이라는 사고가 지배했다. 전체주의는 전제정(專制政)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포기하고 숭배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결속은 그 지도자의 전제정일 수밖에 없다. 뒤집어 말하면 내적으로 그런 정치문화와 체제가 굳어지게 되면, 외적으로는 패권 추구의 길로 돌입하는 것도 예정된 코스가 된다.
 
  좌익들은 서구 각국의 제국주의적 경향과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적 제국주의를 동일 범주로 간주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적 제국주의는 사실은 소련과 동일 범주였다. 소련이 스탈린 개인숭배로 치달은 것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 현상과 다른 게 아니었다.
 
  소련의 경우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자유의 가치를 배격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치닫게 된다. 더욱이 소련은 이전 러시아가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의 성숙과 정착이 미비했던 문제도 함께 안고 있었다. 그 두 원인이 겹쳐 소련의 전체주의를 가속화시켰다. 소련은 내적으로는 개인숭배 체제로 치닫고, 외적으로는 전 세계의 공산화라는 명분으로 패권을 추구했다. 나치즘과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적 제국주의였다.
 
 
  僞善의 체제
 
  오늘날 중공(中共·공산중국)이 보이는 행태도 그와 마찬가지의 범주다. 현재 중공이 대외적으로 중국몽이라는 신(新)중화주의에 몰두해 있는 것은 내부의 전제주의와 짝을 이룬다. 우선 중국은 근대화의 시기를 건강하게 치러내지 못하여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가 성숙하고 정착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당시 세계적 유행을 타고 있던 공산주의 운동이 중국을 장악하게 되면서 중국의 그 같은 문제점은 굳어지게 됐다.
 
  그런데 근대 이전 시기의 중화주의도 내적으로는 전제정과 완전히 하나의 짝이었다. 대외적으로 중국 중심의 위계적 서열의 천하질서는 내적으로는 천자(天子)를 정점으로 한 전제적 정치질서의 대외적 확장판이기도 했다.
 
  중국의 천자정은 전제정이었음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과거(科擧)로 선발된 관리들은 천자라는 전제군주의 수족 노릇을 하는 대가로 백성, 즉 인민을 전제적으로 지배하는 과두적(寡頭的) 지배집단이었다.
 
  그 아래의 백성은 존중받는 권리를 갖는 존재가 아니라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다. 그래서 목민(牧民)이었다. 목(牧)은 본래 가축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민(民)에게도 목(牧)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민(民)이 자립적인 자조(自助) 자유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같은 상태에서도 사람이 사는 장(場)인 만큼 나름의 애환이 있고, 인문(人文)의 발전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전제주의적 위계(位階)가 존재하는 속에서 그 같은 발전은 양극단이 함께 가는 위선(僞善)의 체제가 된다. 한편으로는 전제적 지배 질서에 대한 순응(順應)의 논리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속에서도 욕망을 추구하는 요령, 즉 처세술(處世術)이 발달하는 것이다.
 
 
  중국의 거짓말 문화
 
몽테스키외.
  서구 사회에선 전통적으로 거짓말은 사회적 배척의 심각한 사유가 된다. 하지만 중국에선 전통적으로 그런 긴장이 약하다. 물론 중국도 사람 사는 세상인 만큼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이 환영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선 ‘도덕’은 내적 긴장이기보다는 외적으로 보여주는 ‘체면’의 문제이기 일쑤다. 내적 고뇌보다는 잘못이 드러나 체면이 깎이는 데 더 민감해하는 것이다.
 
  중쭈캉(鍾祖康)이라는 홍콩 출신의 문화학자가 있다. 그는 2006년 중국의 그런 속성을 비판하는 《다시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지 않겠다(來生不做中國人)》라는 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의 지적은 근본적으로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애정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매우 신랄했다. 중국에선 아예 금서(禁書)로 지정될 정도였다. 중쭈캉이 일찍부터 홍콩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바 있으며, 대만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쭈캉은 저서에서 중국인은 무엇보다도 잔꾀와 권모술수에 능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런 비판은 사실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일찍이 몽테스키외(Montesquieu·1689~1755)가 이미 그런 비판을 한 바 있다. 중쭈캉은 몽테스키외의 “중국인은 세계에서 남을 가장 잘 속이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중국의 거짓말 문화를 비판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Esprit des Lois)》(1748)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근대 정치체제와 법사상의 고전이다. 그런데 몽테스키외는 이 저서에서 중국의 전제정치와 거짓말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중국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윤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사기를 치며 불성실하다고 비판했다. 예(禮)를 강조하면서 사기를 치는 이중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중국에서 상업을 하려면 자신의 저울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물건 살 때의 저울, 팔 때의 저울, 감시자에게 보여주는 저울을 가지고 항시 사람을 속여서 장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중국인이 그런 습성을 갖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전제군주정 때문이라고 보았다.
 
  몽테스키외의 비판은 서구인 특유의 편견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결코 서구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중국 근현대 격동기의 시인 후스(胡適·1891~1962)도 같은 비판을 했다. 후스는 중국이 “입만 열면 도덕을 말하고, 고상한 규범과 공평무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거짓 군자와 더러움이 온 사방에 널려 있는 나라”라고 했다.
 
 
  兵者詭道
 
  중국은 표면적으로 유교(儒敎) 가치관이 기본을 이루는 문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후스의 지적처럼 유교적 가치 이면에는 그것을 그저 껍데기가 되게 하는 요소가 오랜 세월 동안 굳어져오고 있었다.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 《손자병법(孫子兵法)》 시계(始計) 제1편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이란 적(敵)을 속이는 도(道)’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속임과 기만의 전술이 중요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속임이 병자(兵者), 즉 전쟁의 영역을 넘어 통상적인 처세의 지혜로 간주되기 시작한다면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중국에선 일찍이 그렇게 됐다.
 
  초월적 가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도덕과 윤리가 세속주의 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러면서 도덕은 체면으로 탈바꿈해버리고 외적으로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위선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된 데는 전제정이 장구하게 이어지면서 자존과 자기 책임의 문화보다는 힘에 굴종하는 문화가 굳어져 간 탓이 컸다.
 
  이런 경향은 그저 일반의 생활습성 차원만이 아니었다. 중국의 정치 문화는 당연히 먼저 그렇게 돼 있었다. 궤도(詭道)는 직접적인 전쟁이라는 비상한 경우만이 아니라 평시의 정치에서도 일반적인 게 돼 있었다. 서양에서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이 등장하기 전 중국에선 그 정도는 이미 일상이었다.
 
  중국의 거짓말 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것이 있다. 후흑(厚黑)이다.
 
  “얇지 않은 것을 두껍다 하고 희지 않은 것을 검다고 한다. 두껍다는 것은 천하의 두꺼운 낯가죽을 가리키는 것이고, 검다는 것은 천하의 시커먼 속마음을 말한다. …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다. 지극한 후흑의 단계에 이르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귀신도 무서워한다.”
 
 
  厚黑學
 
《厚黑學》의 저자 리쭝우.
  청(淸)나라 말기에 태어나 혁명의 격동기를 살다 간 중국의 사상가 리쭝우(李宗吾・1879~1944)라는 사람이 갈파한 말이다.
 
  “당초 나는 글을 알아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영웅호걸이 되고자 했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24사(史)를 통해 얻고자 했으나 이 또한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영웅호걸이 된 자는 분명히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비술(秘術)이 있었을 텐데, 다만 내가 못나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흥망성쇠와 사신(史臣)의 논단이 완전히 상반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비결을 알기 위해 무진 고생했음에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연구를 거듭한 끝에 옛사람의 성공 비결은 낯가죽이 두꺼운 ‘면후(面厚)’와 속마음이 시꺼먼 ‘심흑(心黑)’에 지나지 않는다는 천고(千古)의 비결을 찾아내게 되었다.”
 
  리쭝우가 《후흑학(厚黑學)》을 쓴 의도는 중국 문화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쓰촨(泗川)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쑨원이 세운 반청혁명조직인 동맹회(同盟會)에 가입해 활동한 바 있다. 신해혁명이 시작된 1911년 봉건적 유교사상을 통렬히 풍자한 《후흑학》을 발표했다. 그 이력이 말해주듯 그가 후흑을 논한 것은 중국이 난세의 격동을 이겨내기 위해 유교적 공리공담(空理空談)을 넘어서는 방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외세(外勢)를 물리치기 위해선 지도자가 뻔뻔함과 음흉함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중국판 마키아벨리즘이었다.
 
  어떻든 이런 게 중국의 행태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근대 중국의 격동기에 등장한 것인 만큼 그 시기와 이후의 정치문화와 관련해 헤아릴 바가 있다. 마오쩌둥도 《후흑학》을 보고 익혔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언제 《후흑학》을 접하고 익혔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떻든 마오쩌둥에게는 확실히 ‘후흑의 달인’다운 면모가 있었다. 항일전(抗日戰)과 국공내전(國共內戰) 때에도 그랬지만 나중의 문화혁명(문혁) 당시에도 그런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장악한 뒤 대약진운동의 실패 책임으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의 권력 회복을 위해 일으킨 소동이 문혁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마오가 자신에게 장애가 되는 인물을 몰아내면서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후흑했다.
 
  문혁이 한창이던 1967년 1월, 마오쩌둥이 자신에게 맞섰던 류사오치(劉少奇)를 상대했을 때다. 당시 류사오치가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며 백기(白旗)를 들었을 때, 마오는 미소를 머금고 “진지하게 학습하고 몸을 돌보라”고 했다. 그러나 류사오치는 마오의 말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2년 후 허난성(河南省)의 한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리영희의 제자들
 
‘厚黑의 달인’ 마오쩌둥.
  지금 한국에서 중국과 마오쩌둥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 가는 거짓말과 후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다. 조국(曺國)에 이어 법무부 장관이 된 추미애(秋美愛)는 연일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때와 마찬가지로 추미애를 변호하는 데 열을 올린다. 끊임없이 거짓말이 들통나도 방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행태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공을 찬양하는 리영희의 저서를 읽고 감복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지금 문 정권의 주력(主力)을 이루고 있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다 그랬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선 반감을 표하기 일쑤이면서도 중국, 특히 공산중국에 대해선 이념적·정서적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수법도 닮았다.
 
  물론 이들의 후흑은 그저 중국산 수입품만은 아니다. 따지자면 그들 나름의 전통도 있다. 현 정권 세력이 그들의 정치적 뿌리로 떠받드는 한 인물은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일생 동안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바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어록이다. 중국식 후흑 못지않다.
 
 
  이 정권의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
 
  지금 문재인 정권이 기상천외의 뻔뻔함을 보이는 것은 그렇게 배우고 익힌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행태의 문제는 단순히 통상적인 도덕과 윤리 차원만의 것이 아니다. 그 내면에는 이념적 편향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술수가 결합해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정권의 친중(親中) 행태는 그저 국제정치의 물정을 모르는 판단착오가 아니다. 거기에는 이념적 확신에 따른 편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일찍이 그런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2017년 12월 15일 베이징(北京)대학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와 같은 나라”라며 “대국(大國)”이라고 하고 한국은 스스로 “작은 나라”라고 칭했다. 그리고 “마오쩌둥 주석이 이끈 대장정(大長征)에도 조선 청년이 함께했다”면서 그처럼 “중국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신(新)중화 체계의 상하 질서 아래로 자발적으로 들어가겠다는 투의 말을 거리낌 없이 한 것이다.
 
  자신의 자존(自尊)을 버리고 남의 아래에 복속되기를 자청하는 자는, 단지 자신의 자유를 소홀히 한다는 차원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자존감을 소홀히 하는 자는 결국에 타인(他人)의 자유도 소홀히 여기게 된다. 남 아래 굴종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자는, 또 다른 타인을 자신 아래에 두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 우리 자유민주 헌정(憲政)의 기본 원칙을 유린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덕적·윤리적으로도 파렴치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전혀 부담을 갖지 않는다.
 
  이 정권은 얼마 전 공식 행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가 아닌 ‘우리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정권의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이념적 경향은 물론 행태와 술수 모두 중국을 닮아가는 것을 보면 이 나라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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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현    (2020-09-28) 찬성 : 2   반대 : 3
그런 중공의 인민 해방군 열병식에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유일하게 참석한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공의 상징인 황금색 원피스를 입고 천안문 망루에 올라 시진핑 바로 옆자리를 차지해 감격해 했습니다.
그녀는 중공 인민해방군이 지날때 시진핑과 함께 인민해방군을 향해 90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칭와대에서 대학생들 앞에서 절친인 최순실이 써준 중국어로 인사를 하고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당시 메이저 신문들은 그런 모습을 1면 기사화 하고, 이제 중국과 형제의 나라가 됐다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이제 우리의 물품을 팔 수 있는 커다란 시장이 되었다고 앞다투어 그녀의 업적을 칭송 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박근혜 대통령 이십니다.
참고로, 몇 년전 그녀는 정적인 김무성, 장재원, 나경원, 유승민 등 이명박계에 의하여 탄핵이 되었습니다.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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