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鏞碩의 지구촌 이야기] 內戰 종식하고 새 질서 모색하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 스리랑카 : 월간조선

3년 만에 다시 찾은 스리랑카는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2007년에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인천으로 유치하기 위해 유치위원장 입장에서 콜롬보를 찾았었다. 이번에는 인천아시안게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조직위원회 대표로 스리랑카 체육회(NOC) 페르난도 회장의 초청을 받아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싱가포르에서 저녁 10시40분에 출발한 SQ468편은 4시간 정도 비행 후 콜롬보에 도착했고, 공항에는 NOC 페르난도 회장을 비롯해 간부들이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중나와 있었다.

아시안게임 유치 활동 과정 때부터 알고 지내게 된 페르난도 회장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때 사격 선수로 참가했던 스포츠맨 출신이다. 그는 스리랑카 수상 비서실장을 지냈고, 국제공항과 통신회사 사장을 역임한 후 체육회장이 돼 14년째 NOC를 이끌고 있다.

3년 전 유치활동을 위해 콜롬보를 방문했을 때, 마침 남(南)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을 때다. 아시아 각국 체육회장의 한 표가 아쉬울 때였기에 대회에 참가한 8개국 대표들과의 만남 등으로 스리랑카를 제대로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쉬운 감이 많았다. 그 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와 회의에서 만난 페르난도 회장으로부터 “다시 한 번 스리랑카를 찾아달라”는 우정어린 초청을 여러 차례 받았고, 30여 년간 계속된 내전(內戰)도 작년에 끝난 터여서 스리랑카 방문을 결심하게 됐다.

2박3일로 계획된 스리랑카 방문은 의외로 준(準)국빈 대우로 계획돼 있었다. 싱가포르항공 SQ468편이 착륙한 후 VIP전용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고,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데도 앞뒤로 경찰 사이드카가 호위하는가 하면 호텔에 묵는 동안에도 24시간 사복경찰관이 밀착 경호를 맡고 있었다. 지난 40여 년간 언론계와 스포츠 외교계를 거친 필자는 지나친 프로토콜(예우)보다는 실용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의 접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선지 페르난도 회장의 VIP 대우는 작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그는 필자의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10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選擧區도 있어

콜롬보에서 캔디로 가는 길에 안내를 맡았던 스리랑카 체육회 타마라 여성위원회 회장.

페르난도 회장은 “30여 년에 걸친 내전상황도 지난해 타밀타이거(LTTE)의 지도자였던 벨루피아이 프라바카란의 전사(戰死)로 끝이 났지만, 지금도 치안상태가 안전하지 않다”면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인천조직위원회의 대표를 국가차원에서 예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경찰관들의 차량 선도와 경호원들의 밀착 경호를 받으면서 스리랑카의 이곳저곳을 찾아보는 색다른 순방(巡訪)이 되고 말았다.

마침 스리랑카에는 지난 4월 8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다. 내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전을 5000루피(약 6만원)만 내면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고, 중대선거구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지역에 따라서는 100여 명에 가까운 후보가 난립하는 선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의 총독관사를 그대로 쓰고 있는 총리 관저에서 만난 위크라마나야케 총리와 로쿠게 체육장관도 입후보자의 입장에서 선거유세에 바쁜 일정이었다. 스리랑카의 지도자들은 한국과의 경제 협력은 물론 관광객 유치와 스포츠 교류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적인 불교 유적과 자연 생태 관광 자원을 지닌 스리랑카에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주기를 정부 지도자들은 물론 방문 기간 중 만났던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수도 콜롬보 시내는 몇 해 전보다도 활기차고 시가지도 많이 정돈된 인상이었다. 하지만 야간에는 요소요소에 군경 합동순찰대가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필자가 투숙했던 시나몬레이크 호텔은 물론 힐튼 호텔 등 특급 호텔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내전 종식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지만 인도 대륙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여서 ‘인도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로 태어난 섬’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한 방울의 아름다운 눈물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섬’의 대표적인 곳은 캔디(KANDY)가 아닌가 한다.

콜롬보에서 캔디로 가는 길은 잘 포장된 일반도로였으며, 교통량이 의외로 많았다. 경찰사이드카가 앞뒤에서 크고 작은 자동차 사이를 이리저리 뚫고 나갔지만, 도중 아침식사와 휴식 시간을 포함해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캔디에 가까워지면서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風光)은 동남아시아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열대우림이었다. 야자수와 잡목들이 섞여 있는 밀림지대는 이 나라가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아기 코끼리 ‘고아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캔디는 1815년 영국군에 의해서 왕조(王朝)가 막을 내릴 때까지 중부지방을 통치했던 마지막 스리랑카 고대왕국의 수도였다. 고도(古都) 캔디에 도착하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끼리 고아원’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어미 코끼리와 헤어진 새끼 코끼리를 모아서 키우고 있는 이곳에는 80여 마리의 어린 코끼리가 떼지어 살고 있었다.

경작지대가 점차 확대됨에 따라 과거 야생 코끼리들이 살고 있던 지역에도 농민들이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그 과정에서 농사를 망치는 코끼리가 수난(受難)을 겪게 됐고, 어미 잃은 코끼리 새끼가 늘어나면서 고아원이 생겨난 것이다.

사육사는 “집단 생활과 가족 보호 본능이 강해서인지 어미 잃은 새끼들을 다른 코끼리들이 보살펴준다”면서 “이들을 다시 밀림으로 보내기도 쉽지 않다”며 애태우고 있었다. 농민들은 “코끼리들이 애써 일구어 놓은 농작물들을 마구 훼손한다”며 “스리랑카 정부는 국민(농민)들보다도 코끼리가 더 귀하냐”고 항의하고 있다.

살생(殺生)을 금하는 불교 국가 스리랑카에서 농민이나 밀렵꾼들에 의해 어미 코끼리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고아원에서 성인이 된 코끼리를 처리하는 데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코끼리 고아원 부근에 있는 하천에서는 마침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순간을 놓칠세라 유럽인들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앞으로 캔디를 찾는 외국인들이 고아원을 더 많이 찾음으로써 이것이 중요한 자연친화적 관광자원이라는 것을 현지 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 코끼리 고아원의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끼리 고아원 부근의 강에서 목욕을 즐기는 코끼리 무리.

60여 년 역사의 왕립식물원

고아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왕립식물원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수한 식물원이었다. 캔디 일대가 영국의 지배하에 편입된 후 19세기 중엽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왕립식물원은 스리랑카에서 자생하는 식물 이외에도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자라고 있는 열대식물 4000여 종이 대부분 자연 상태로 전시돼 있는 대규모 식물전시장이었다.

이곳에서 본 한 개에 10kg이 넘는 열매가 열리는 야자수도 신기했지만, 100여 년에 걸쳐 영국 출신의 열대 식물원 책임자들이 열과 성을 다해서 가꾸어 놓은 식물원을 독립한 지 60년이 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오랫동안 내전을 겪으면서도 왕립식물원 당시에 확보된 나무 이외에도 새로운 품종을 새로 심고, 세계 각국의 난(蘭)을 모아놓은 온실을 살펴보면서 박봉(薄俸)에도 불구하고 식물원을 지키고 가꾼다는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설명하는 관계자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광대한 식물원 이곳저곳에는 과거 영국 통치 시대에 영국 왕실 귀족들이나 러시아 황제, 심지어는 일본 황태자가 기념 식수(植樹)한 나무들도 잘 자라고 있었는데, 식민지 당시에 왕립식물원에서 일하던 영국인들의 자세와 전통이 스리랑카인들에게 계승된 것을 보면서 영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콜롬보에서 체육회의 연락을 받고 일행에게 식물원의 역사와 현황을 전문적으로 설명한 후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직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왜 스리랑카 정부가 식민지 시대에 영국왕실을 상징하는 ‘왕립’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독립된 지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스리랑카의 지도급 인사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적대시하는 대신 영국의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심지어는 명칭까지 그대로 쓰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것을 현장에서 보고 느끼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聖地, 불치사

스리랑카 사람들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불치사(佛齒寺)는 캔디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처님의 치아가 담긴 사리함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스리랑카 사람들은 물론 외국의 불자(佛子)들과 일반 관광객들도 캔디를 찾는 것은 불치사 순례를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부처님의 치아가 스리랑카에 들어온 것은 4세기경으로 알려졌다. 오리사의 한 왕자가 쿠시나라가에서 다비(茶毘)되었던 부처님의 이(齒)를 머리카락에 숨겨와 왕에게 바친 후 국민 통합의 상징물이 됐다.

440여 년에 걸친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 중에도 불교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불치사 때문이었다. 불치사 입구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이 사리함에 예배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페르난도 회장의 배려로 우리 일행은 VIP 대우를 받으면서 부처님께 바치는 꽃을 받아들고 삼배를 한 후 사리함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의 치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7~8월의 페라헤라 축제 때뿐이며 평상시에는 몇 달 전부터 예약한 사람 중 하루에 80명 정도를 뽑아 사리함만 보여준다는 설명이었다.

불치사의 또 다른 보물인 크리스털 불상과 부처님 치아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비롯해 우리나라 불교 단체에서 보낸 불상들을 보면서 불교국가 스리랑카의 또 다른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때는 불교를 말살시키기 위해 부처님 치아를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고, 최근에도 타밀 반군이 불치사 공격 계획을 세웠으나 스리랑카 국민들의 성지를 없애지는 못했다.

불치사 예방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서 절 밖에서 공양물로 꽃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수많은 스리랑카 불자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먼길을 찾아온 외국인의 입장을 그들이 이해해 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공식 방문 일정이 포함된 2박3일의 짧은 스리랑카 방문이었지만, 내전이 종식되고 어려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새 질서를 모색하면서 의욕을 보이고 있는 스리랑카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밝은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