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에는 유럽 인구의 25%, 佛 대혁명 직후에는 3000만명으로 세계 3위의 인구대국
⊙ 19세기 이후 러시아·독일·영국·이탈리아에 인구 뒤지면서 유럽의 覇權 상실
⊙ 1932년 세계 최초로 가족수당 신설, 드골 이후 ‘인구 1억명’ 목표로 꾸준히 출산장려 정책
⊙ 현재 인구 6280만명으로 유럽 3위의 인구대국, 2050년이면 독일 앞지를 것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특파원·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 19세기 이후 러시아·독일·영국·이탈리아에 인구 뒤지면서 유럽의 覇權 상실
⊙ 1932년 세계 최초로 가족수당 신설, 드골 이후 ‘인구 1억명’ 목표로 꾸준히 출산장려 정책
⊙ 현재 인구 6280만명으로 유럽 3위의 인구대국, 2050년이면 독일 앞지를 것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특파원·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 지속적인 출산장려 정책으로 프랑스는 유럽 3위의 인구대국으로 올라섰다. 사진은 프랑스의 보육원.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인구 대국(大國)이었다. 중세기(中世紀)에는 유럽 총 인구의 25%가 프랑스인이었다. 17세기에는 비율이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프랑스 인구는 유럽 전체의 20%에 달했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직후인 1795년의 인구는 이미 3000만명에 육박해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의 인구 대국이었다.
그러나 1795~1866년 사이에 러시아 인구가 프랑스를 앞서기 시작했다. 1806~1911년에는 독일이, 1911~1931년 사이에는 영국이, 1931~1991년에는 이탈리아가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됐다. 프랑스의 인구증가가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 최강의 루이 왕조가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18세기 말 프랑스가 유럽의 맹주(盟主)가 됐을 때 영국의 인구는 800만명으로 추산되며 독일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국 프랑스의 인구증가는 19세기 들어와 주춤하기 시작했다. 1815~2000년 사이에 프랑스 인구증가율이 독일과 같았다면 현재 인구는 1억1000만명, 영국과 같은 인구증가율로 계산한다면 1억5000만명이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의 인구를 루이 14세 때 수치로 비교한다면 현재 3억명에 달하는 미국 인구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게 인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佛, 인구 줄면서 국력 쇠퇴?
19세기에 들어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영국과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프랑스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처럼 미국행(行) 이민선을 타지 않았다. 광대하고 비옥한 국토를 바탕으로 비교적 유복한 생활이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민으로 인한 인구감소 요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 프랑스의 출산율은 이웃나라에 비해서 크게 저하되고 있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30만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것이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지만 이웃 유럽 국가들이 인구팽창을 거듭할 때 프랑스가 저조한 인구증가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아직도 인구학자들의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보불(普佛)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붕괴된 것도 인구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1911년에 4140만명이던 프랑스 인구는 1936년에도 4150만에 머물고 있었다. 인종 문제가 유럽의 주요 화두(話頭)였던 당시 특히 나치 독일과 영국의 일부 보수 세력들은 프랑스 인종의 유전적 특성이 게르만이나 앵글로-색슨에 비해 열성(劣性)이기 때문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이 같은 프랑스의 인구 문제는 고전적인 인구변천이론으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출산율의 저하가 국력에 결정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부터 출산율의 저하가 국력을 쇠퇴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맬서스의 과잉인구 문제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출산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세계 최초로 가족수당제 도입
그러나 프랑스의 출산율 저하는 결과적으로 국력쇠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이 늘어나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1932년에 세계 최초로 가족수당 제도를 법률로 정하고 부양(扶養)가족을 가진 근로자들에게 가족수당 지급을 의무화했으며, 1939년에 채택된 가족법전은 출산장려를 강화하기 위해 가족수당에 누진제(累進制)를 도입했다.
프랑스의 인구증가 정책은 1940년 독일 점령하의 비시 정부에 의해서도 계속됐다. 3자녀 이상을 둔 가족을 우대하는 가족정책을 채택하는 한편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자녀를 많이 갖는 경우 감세(減稅)혜택을 주고 주택대부금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終戰)과 함께 등장한 사를 드골 장군의 해방정부는 인구증가 정책을 국정(國政) 우선 지표로 삼고 출산장려를 위한 기구를 만들고 법령을 제정했다. 1945년에는 고등인구가족위원회를 창설하고 국가인구연구소(INED)도 발족시켰다. 인구문제를 전담하는 국가 최고위 기구와 연구소를 세우고 출산장려를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은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20세기에 들어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구문제에 얼마나 고심(苦心)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고등인구가족위원회는 사회보장 일반제도와 가족급부헌장을 제정해 종전의 가족수당을 연금(年金)과 같이 사회보장의 일부로 제도화했으며, 가족급부 비율을 인상하는 등 가족정책을 통해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출산촉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58년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대통령이 된 드골 장군은 ‘위대한 프랑스’를 주창하면서 독자적인 외교노선과 첨단산업의 발전과 함께 1억 인구의 프랑스가 되어야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독자적 외교노선을 정립하기 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탈퇴하고 데탕트를 통해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과의 해빙을 모색하는가 하면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초음속 여객기, 핵무기 개발 등에 전력하면서도, 그는 인구증가를 위한 정책을 항상 국정의 우선과제로 삼았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구에 달렸다”고 생각한 드골
11년간에 걸친 드골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프랑스의 인구를 1억으로 만들자’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위대한 프랑스를 지향하는 드골 대통령에게는 1800~1920년의 120년 동안 영국은 3.6배, 독일은 2.6배의 인구증가가 있었지만 프랑스는 1.4배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드골 대통령은 또한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인구증가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1790년 프랑스의 인구가 2800만명에 달했을 때 미국 전체 인구는 400만명에 불과했고 그중 20%는 흑인 노예였다. 50년이 지난 1840년, 미국의 인구는 대부분 출산에 의한 자연증가로 1700만명이 되었고, 40년이 지난 1880년에는 자연증가와 함께 유럽 각국으로부터의 이민으로 5000만명이 됐다. 90년 만에 인구가 400만명에서 5000만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 후 미국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890년에는 6200만명, 1900년에는 7500만명, 1910년 프랑스 인구가 4120만명일 때 9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미국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50여 만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북미(北美) 대륙이 수백 배에 달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데다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민족이동(이민)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며 과거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자는 드골 대통령으로서는 독일이나 영국 같은 주변국들의 인구증가와 함께 세계 최강 국가로 부상한 미국 인구가 정말 부러웠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구에 달렸다고 드골 대통령은 확신한 것이다.
드골 대통령이 1억 프랑스 인구를 꿈꾸고 이를 실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1947년부터 프랑스 인구가 예상외로 증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미(歐美) 각국에서는 베이비붐의 여파로 출산율이 대부분 증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유럽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높았으며, 또한 장기간 지속됐다.
기적과도 같은 프랑스의 현상을 인구학자들은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차원의 인구증가 정책과 드골이라는 지도자의 집념, 계속된 정책개발이 주효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婚外출산에도 가족수당과 보육비 지원
1950년에서 1960년에 이르는 1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인구는 매년 1%씩 증가해 1970년 드디어 5000만명을 돌파하는 국가적인 경사를 맞게 됐다. 이 같은 인구증가는 프랑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인구증가율이 높았던 18~19세기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었다.
필자는 1969년 드골 대통령이 향리인 콜롱베·레·되·제글리즈로 낙향(落鄕)하기 직전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필자는 외국인이었음에도 프랑스 정부의 다양한 대가족 우대(大家族優待)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프랑스 국적이 없었으므로 가족수당이나 주택보조금 등은 받지 못했지만, 자녀를 3명 둔 대가족증명서는 외국인도 발급받을 수 있었으므로 시내 교통비는 물론 국영철도(SNCF)와 국내 항공 요금도 큰 폭으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 각급 학교에서도 대가족에게는 각종 혜택과 특례가 적용되었고 아동복이나 학용품 구입에도 특혜가 베풀어졌다.
1975년부터 프랑스의 인구증가율은 다시 둔화(鈍化)되기 시작했지만,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프랑스의 인구증가율은 아일랜드,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수위(首位)를 달리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의 인구증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여 유럽에서 가장 높은 인구증가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 정책을 유연하게 손질하고 보완해 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는 예상 밖의 인구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인구를 제대로 교육하고 부양하는 쪽으로 인구정책의 방향을 서서히 전환시켜 나갔다. 출산장려를 위한 가족수당이나 주택보조금 같은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녀를 가진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게 가족수당이나 자녀양육 보조금이 더 많이 지급되도록 하는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이다.
여성들의 취업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서는 탁아소와 유치원 시설 확충이 절실했으며, 취업하고 있는 여성이 3세 이하의 자녀를 가졌거나 3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보육비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결혼제도의 변화로 90% 이상의 프랑스 남녀가 혼전동거(婚前同居·Cohabitation)를 경험하고 있고 40%에 달하는 신생아가 혼외(婚外) 출산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들 부부에게도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들과 동일하게 가족수당과 보육비 등을 지급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인구감소 위기극복에 80년 걸려
1995년에 취임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 정부는 그동안 복잡하고 여러 가지로 분산되어 있던 출산장려 제도를 유아환영정책(PAJE)이라는 통합체제로 묶어 자녀를 가진 모든 가족에게 기본지원금을 지급하고 소득과 계층별로 선택적 추가지원을 하는 한편 양육 시스템을 개선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 같은 시라크 정부의 기본지원금에 따라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임신한 모든 여성에게는 임신 7개월째 800유로의 임신축하금을 지급하고 출산 후에는 자녀 1인당 매달 160유로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200만 가구에 달하는 저소득층 중 0~6세의 자녀를 가진 근로여성에게는 각종 양육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자녀양육을 위해서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 매월 360유로를 6개월간 지급함으로써 법정휴가에 따른 소득손실을 보전해 주고 있기도 하다.
1932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80여 년 동안 프랑스 정부가 진지하고 꾸준하게 추진해 온 출산장려 및 가족보호 정책에 따라 프랑스의 인구는 계속 증가해 왔다. 한때는 유럽 최대의 인구를 가진 막강했던 프랑스가 상대적인 인구감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8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인구를 프랑스의 국력으로 인식했던 드골 대통령의 신념이 없었다면 2010년을 기점으로 6280만명에 달하는 현재의 인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드골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했던 1억 인구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2000년에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제치고 유럽 3위의 인구 대국이 됐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경 프랑스는 독일을 앞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된다.
2013년 부산에서 세계인구총회 개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인 인구감소의 악몽에 시달렸던 프랑스에 이어 갑작스런 출산율 저하에 충격받고 있는 우리나라 부산에서 2013년 세계인구총회(IUSSP)가 열리게 된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인구총회는 1945년에 설립된 프랑스 국가인구연구소(INED)가 주축이 되어 출범한 국제회의로 80여 개국 2000명의 인구문제 전문가와 학자, 교수들이 모여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문제 현안과 정책개발을 논의하게 된다.
18세기 이후 유럽과 세계를 제패했던 프랑스·독일·영국, 그리고 미국의 인구증가 추이가 국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세계사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인구문제를 국가의 미래와 국력의 측면에서 인식하면서 80여 년간 정책개발을 계속하고 이를 시대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개선해 온 프랑스의 축적된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 또 세계인구총회 등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정책을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출산율 저하는 여성의 취업 확대에 따른 자녀양육의 사회적 인프라 부재(不在)와 교육현장의 지나친 과열현상 및 바늘구멍 같은 취업현장의 극심한 경쟁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인정하고 함께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1795~1866년 사이에 러시아 인구가 프랑스를 앞서기 시작했다. 1806~1911년에는 독일이, 1911~1931년 사이에는 영국이, 1931~1991년에는 이탈리아가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됐다. 프랑스의 인구증가가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 최강의 루이 왕조가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18세기 말 프랑스가 유럽의 맹주(盟主)가 됐을 때 영국의 인구는 800만명으로 추산되며 독일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국 프랑스의 인구증가는 19세기 들어와 주춤하기 시작했다. 1815~2000년 사이에 프랑스 인구증가율이 독일과 같았다면 현재 인구는 1억1000만명, 영국과 같은 인구증가율로 계산한다면 1억5000만명이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의 인구를 루이 14세 때 수치로 비교한다면 현재 3억명에 달하는 미국 인구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게 인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佛, 인구 줄면서 국력 쇠퇴?
19세기에 들어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영국과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프랑스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처럼 미국행(行) 이민선을 타지 않았다. 광대하고 비옥한 국토를 바탕으로 비교적 유복한 생활이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민으로 인한 인구감소 요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 프랑스의 출산율은 이웃나라에 비해서 크게 저하되고 있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30만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것이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지만 이웃 유럽 국가들이 인구팽창을 거듭할 때 프랑스가 저조한 인구증가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아직도 인구학자들의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보불(普佛)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붕괴된 것도 인구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1911년에 4140만명이던 프랑스 인구는 1936년에도 4150만에 머물고 있었다. 인종 문제가 유럽의 주요 화두(話頭)였던 당시 특히 나치 독일과 영국의 일부 보수 세력들은 프랑스 인종의 유전적 특성이 게르만이나 앵글로-색슨에 비해 열성(劣性)이기 때문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이 같은 프랑스의 인구 문제는 고전적인 인구변천이론으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출산율의 저하가 국력에 결정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부터 출산율의 저하가 국력을 쇠퇴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맬서스의 과잉인구 문제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출산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세계 최초로 가족수당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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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14세 당시 프랑스는 유럽 인구의 20%를 점하는 인구대국이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의 覇者가 됐다. |
프랑스의 인구증가 정책은 1940년 독일 점령하의 비시 정부에 의해서도 계속됐다. 3자녀 이상을 둔 가족을 우대하는 가족정책을 채택하는 한편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자녀를 많이 갖는 경우 감세(減稅)혜택을 주고 주택대부금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終戰)과 함께 등장한 사를 드골 장군의 해방정부는 인구증가 정책을 국정(國政) 우선 지표로 삼고 출산장려를 위한 기구를 만들고 법령을 제정했다. 1945년에는 고등인구가족위원회를 창설하고 국가인구연구소(INED)도 발족시켰다. 인구문제를 전담하는 국가 최고위 기구와 연구소를 세우고 출산장려를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은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20세기에 들어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구문제에 얼마나 고심(苦心)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고등인구가족위원회는 사회보장 일반제도와 가족급부헌장을 제정해 종전의 가족수당을 연금(年金)과 같이 사회보장의 일부로 제도화했으며, 가족급부 비율을 인상하는 등 가족정책을 통해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출산촉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58년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대통령이 된 드골 장군은 ‘위대한 프랑스’를 주창하면서 독자적인 외교노선과 첨단산업의 발전과 함께 1억 인구의 프랑스가 되어야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독자적 외교노선을 정립하기 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탈퇴하고 데탕트를 통해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과의 해빙을 모색하는가 하면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초음속 여객기, 핵무기 개발 등에 전력하면서도, 그는 인구증가를 위한 정책을 항상 국정의 우선과제로 삼았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구에 달렸다”고 생각한 드골
11년간에 걸친 드골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프랑스의 인구를 1억으로 만들자’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위대한 프랑스를 지향하는 드골 대통령에게는 1800~1920년의 120년 동안 영국은 3.6배, 독일은 2.6배의 인구증가가 있었지만 프랑스는 1.4배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드골 대통령은 또한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인구증가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1790년 프랑스의 인구가 2800만명에 달했을 때 미국 전체 인구는 400만명에 불과했고 그중 20%는 흑인 노예였다. 50년이 지난 1840년, 미국의 인구는 대부분 출산에 의한 자연증가로 1700만명이 되었고, 40년이 지난 1880년에는 자연증가와 함께 유럽 각국으로부터의 이민으로 5000만명이 됐다. 90년 만에 인구가 400만명에서 5000만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 후 미국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890년에는 6200만명, 1900년에는 7500만명, 1910년 프랑스 인구가 4120만명일 때 9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미국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50여 만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북미(北美) 대륙이 수백 배에 달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데다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민족이동(이민)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며 과거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자는 드골 대통령으로서는 독일이나 영국 같은 주변국들의 인구증가와 함께 세계 최강 국가로 부상한 미국 인구가 정말 부러웠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구에 달렸다고 드골 대통령은 확신한 것이다.
드골 대통령이 1억 프랑스 인구를 꿈꾸고 이를 실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1947년부터 프랑스 인구가 예상외로 증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미(歐美) 각국에서는 베이비붐의 여파로 출산율이 대부분 증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유럽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높았으며, 또한 장기간 지속됐다.
기적과도 같은 프랑스의 현상을 인구학자들은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차원의 인구증가 정책과 드골이라는 지도자의 집념, 계속된 정책개발이 주효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婚外출산에도 가족수당과 보육비 지원
1950년에서 1960년에 이르는 1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인구는 매년 1%씩 증가해 1970년 드디어 5000만명을 돌파하는 국가적인 경사를 맞게 됐다. 이 같은 인구증가는 프랑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인구증가율이 높았던 18~19세기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었다.
필자는 1969년 드골 대통령이 향리인 콜롱베·레·되·제글리즈로 낙향(落鄕)하기 직전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필자는 외국인이었음에도 프랑스 정부의 다양한 대가족 우대(大家族優待)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프랑스 국적이 없었으므로 가족수당이나 주택보조금 등은 받지 못했지만, 자녀를 3명 둔 대가족증명서는 외국인도 발급받을 수 있었으므로 시내 교통비는 물론 국영철도(SNCF)와 국내 항공 요금도 큰 폭으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 각급 학교에서도 대가족에게는 각종 혜택과 특례가 적용되었고 아동복이나 학용품 구입에도 특혜가 베풀어졌다.
1975년부터 프랑스의 인구증가율은 다시 둔화(鈍化)되기 시작했지만,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프랑스의 인구증가율은 아일랜드,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수위(首位)를 달리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의 인구증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여 유럽에서 가장 높은 인구증가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 정책을 유연하게 손질하고 보완해 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는 예상 밖의 인구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인구를 제대로 교육하고 부양하는 쪽으로 인구정책의 방향을 서서히 전환시켜 나갔다. 출산장려를 위한 가족수당이나 주택보조금 같은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녀를 가진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게 가족수당이나 자녀양육 보조금이 더 많이 지급되도록 하는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이다.
여성들의 취업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서는 탁아소와 유치원 시설 확충이 절실했으며, 취업하고 있는 여성이 3세 이하의 자녀를 가졌거나 3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보육비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결혼제도의 변화로 90% 이상의 프랑스 남녀가 혼전동거(婚前同居·Cohabitation)를 경험하고 있고 40%에 달하는 신생아가 혼외(婚外) 출산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들 부부에게도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들과 동일하게 가족수당과 보육비 등을 지급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인구감소 위기극복에 80년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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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 인구’를 목표로 강력한 출산장려정책을 편 드골 대통령. |
이 같은 시라크 정부의 기본지원금에 따라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임신한 모든 여성에게는 임신 7개월째 800유로의 임신축하금을 지급하고 출산 후에는 자녀 1인당 매달 160유로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200만 가구에 달하는 저소득층 중 0~6세의 자녀를 가진 근로여성에게는 각종 양육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자녀양육을 위해서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 매월 360유로를 6개월간 지급함으로써 법정휴가에 따른 소득손실을 보전해 주고 있기도 하다.
1932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80여 년 동안 프랑스 정부가 진지하고 꾸준하게 추진해 온 출산장려 및 가족보호 정책에 따라 프랑스의 인구는 계속 증가해 왔다. 한때는 유럽 최대의 인구를 가진 막강했던 프랑스가 상대적인 인구감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8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인구를 프랑스의 국력으로 인식했던 드골 대통령의 신념이 없었다면 2010년을 기점으로 6280만명에 달하는 현재의 인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드골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했던 1억 인구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2000년에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제치고 유럽 3위의 인구 대국이 됐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경 프랑스는 독일을 앞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된다.
2013년 부산에서 세계인구총회 개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인 인구감소의 악몽에 시달렸던 프랑스에 이어 갑작스런 출산율 저하에 충격받고 있는 우리나라 부산에서 2013년 세계인구총회(IUSSP)가 열리게 된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인구총회는 1945년에 설립된 프랑스 국가인구연구소(INED)가 주축이 되어 출범한 국제회의로 80여 개국 2000명의 인구문제 전문가와 학자, 교수들이 모여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문제 현안과 정책개발을 논의하게 된다.
18세기 이후 유럽과 세계를 제패했던 프랑스·독일·영국, 그리고 미국의 인구증가 추이가 국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세계사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인구문제를 국가의 미래와 국력의 측면에서 인식하면서 80여 년간 정책개발을 계속하고 이를 시대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개선해 온 프랑스의 축적된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 또 세계인구총회 등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정책을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출산율 저하는 여성의 취업 확대에 따른 자녀양육의 사회적 인프라 부재(不在)와 교육현장의 지나친 과열현상 및 바늘구멍 같은 취업현장의 극심한 경쟁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인정하고 함께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