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鏞碩의 지구촌 이야기] 현장에서 본 프랑스의 인구증대 정책 : 월간조선

위대한 프랑스를 지향하면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집권하던(1958~1969) 제5공화국은 인구를 1억명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국정지표의 우선 순위로 삼았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기술 혁신을 위해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만들어 내면서도 당시 5000만명이던 프랑스 인구가 1억명을 달성해야만 위대한 프랑스가 될 수 있다고 드골 대통령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골 대통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프랑스의 인구는 나날이 감소 추세에 있었다. 과거 식민지에서 귀국하는 프랑스인들과 캐나다와 미국에서 프랑스로 다시 돌아오는 逆(역)이민이 있었지만,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드골 정부는 물론, 뒤를 이은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 시라크 정부는 국가가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프랑스의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의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3명의 자녀를 키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지켜본 프랑스의 인구 증가를 위한 施策(시책)은 세심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가가 베푸는 여러 가지 배려를 모두 누리지는 못했지만, 3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직간접으로 받은 혜택은 수없이 많았다.

큰아이가 만 두 살이 되었을 때, 파리 시청이 직접 운영하는 탁아소를 찾아갔다. 당시 아내는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증을 제시하는 것으로 큰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것이 가능했다.

제대로 된 과정을 이수한 보모들이 근무하고 있는 탁아소는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는데, 첫날 만나 본 원장의 인상도 좋았을뿐더러 보모 모두가 믿음직스러웠다.

명목상의 등록비만 내고 탁아소에서는 추가 비용을 청구하지도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어린아이의 우유는 물론, 간식과 기저귀 등도 모두 파리市(시)에서 부담했다. 파리에서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고, 아내는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수료하고 계속해서 파리5대학에서 香粧學(향장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동네 탁아소에서 어머니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보아주지 않았다면, 프랑스 말 공부는 물론 박사과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大가족 증명서’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우리 가족은 ‘大(대)가족 증명서’를 받게 됐다. 3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는 가정을 대상으로 구청이 발급하는 대가족 증명서는 여러 곳에서 활용 가치가 있었다. 우선 시내 지하철과 버스표를 절반값으로 살 수 있었고, 당시 국내선 항공사 에어 앙테르에서도 항공요금을 반값으로 할인해 주는가 하면, 프랑스 국영철도(SNCF)에서도 운임을 대폭 할인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대가족 증명서를 지니고 다니면 아동용품 가게나 일부 레스토랑에서도 할인 혜택을 주었다. 프랑스 정부가 발급하는 대가족 증명서는 3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 대한 ‘특혜’인 동시에 일종의 ‘재정 보조 수단’이었다.

프랑스 국적도 아닌 한국인 신문사 특파원에게까지 대가족 증명서를 발행해 주는 것은 국적, 인종, 종교의 차이를 불문하고 현재 프랑스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혜택을 줌으로써 프랑스 國是(국시)인 ‘자유’, ‘평등’, ‘박애’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큰아이가 네 살이 돼 유치원에 다닐 때가 되었을 때, 파리 시청은 유치원 입학 신청서를 내라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1972년 봄날 아침, 만 네 살이 된 큰아이를 데리고 파리 16구에 위치한 파크 데 프랭스 유치원에 가서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새로 유치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마중하기 위해 원장과 유치원 선생님들이 입구에 서서 아이들을 정답게 맞으며, 부모들과 첫 인사를 나누던 정경은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 원장과 선생님들은 유치원 시설을 설명하고 보여주면서 유치원 교재와 색연필 등을 정성스럽게 작은 가방에 넣어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작은 가방에는 ‘파리시(Ville de Paris) 제공’이라는 글씨와 함께 파리시의 문양인 파도에 떠 있는 帆船(범선)이 그려져 있었다.

‘파도는 거세지만 배는 破船(파선)하지 않는다’는 라틴말과 함께 그려져 있는 파리시의 문양을 보면서 유치원 아동들에게까지 여러 가지 교재를 무료로 챙겨주고 무상 교육을 시키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2년 동안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아내는 파리5대학에서 학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유치원에서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맡아주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을 위해 오후 3시경이면 끝나는 유치원 시간을 연장해 6시까지 맡아준 것이다.

아이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여순경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2008년 4월 파리의 한 산부인과 병원을 방문해 신생아를 안아보고 있다. 프랑스는 파격적인 재정 투입으로 출산율 2%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한 번은 아내가 대학에서 늦게 일이 끝나게 되어 6시 정각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게 되자 유치원에다 급히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유치원 측은 인근 경찰서의 여순경에게 부탁해 큰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마침 필자가 집에 들어와 있어서 여순경과 만났다. 여순경은 “왜 아이 어머니가 유치원에 오지 못했는지 사유서를 작성해 경찰서로 보내달라”고 하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파리 유치원에서는 직장을 가진 엄마들의 자녀들에게 점심식사도 마련해 준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인 경우,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이고 다시 유치원으로 보내야 한다. 국가가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맡아서 보살펴 주고 가르쳐 주지만, 직장이 있는 어머니들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해 주고 있는 것이 프랑스적인 ‘평등’사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배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다른 배려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평등이라고 믿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제공받은 어린이들에게도 부모들의 소득 수준에 따라 식사값을 차등 징수하고 있었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 둘째와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체험한 국가의 배려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국적이 아닌, 임시로 거주하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갓난아이가 필요한 기저귀나 분유 등이 무료로 제공됐다.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게 되는 경우, 産母(산모)가 분유를 선택할 수도 있었고, 퇴원할 때까지 병원비 역시 무료에 가까웠다.

국가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파리 주재 외국 특파원 클럽에서 주선하고 있었던 간이 보험에만 가입하고 있었는데도 분만비와 입원비를 거의 내지 않고 퇴원했다.

인구 1억명을 지향하는 프랑스가 자국민들에게 베푸는 정책적 배려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후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고 유치원에 보내면서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구를 늘리기 위한 끈질긴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프랑스 국민인 경우, 첫 아이부터 국가에서 양육 보조금을 받고 있었다. 당시 화폐로 첫 아이의 경우가 300프랑 정도, 둘째가 태어나면 500프랑이 추가되고, 대가족으로 인정받게 되는 셋째는 1000프랑 정도가 지급됐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당시 프랑스 근로자들의 최저 임금과 비슷한 금액을 국가로부터 지급받고 있었다.

배우자에게도 출산 휴가

프랑스 카앙시의 한 보육원 시설에서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프랑스는 자녀 셋을 두면 프랑스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받는다.

이 같은 국가의 자녀 양육 보조금 때문에 후진국 출신 이민 가족들의 경우,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많은 자녀를 갖는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녀 양육 보조금 지급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고 도와주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산모들의 유급 휴가 기간을 계속 연장해 왔다. 국가나 기업 모두가 임산부들의 유급 휴가기간을 연장할수록 부담이 늘어남으로써 자주 사회문제로 대두했지만, 프랑스의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명분 앞에는 모두가 수긍하면서 재정적 부담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임산부들 뿐만 아니라 배우자(남편)에게도 본인이 희망하면 유급 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인이 아이를 낳는 데 남편도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프랑스 정부의 이 같은 획기적인 발상에 公共(공공) 부문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기업 쪽에서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정부는 기업의 재정상 불이익을 일부 보전해 준다는 조건으로 남성의 출산 휴가 제도를 현실화시키고 계속 보완해 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보람과 책임을 부부가 실질적으로 함께하는 것이 多(다)출산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남성 출산 휴가 제도의 기본이념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두 차례에 걸쳐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인구 증가를 위한 새로운 정책 개발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정부정책만으로 오늘날 인구 증가율을 유럽 최고로 끌어올린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 사회가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전통적인 결혼 제도에서 탈피하면서도 가정 친화적인 분위기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함으로써 다출산 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未婚母(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관대함, 그리고 국가의 보호와 배려는 여성 인권의 존중과 직결된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실질적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가정에 대해서도 프랑스는 차별을 하지 않고 부부로 인정하고 있고,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성장하고 학교에 다닌다. 더구나 가정 중심의 사회 분위기는 가족의 중요성은 물론 자녀 키우는 보람과 기쁨을 당사자인 부부들 뿐 아니라 가까운 인척들이나 주변에서도 함께 나누게 한다.

가족의 소중함 일깨워야

프랑스에서 근무하면서 바캉스(휴가) 때는 물론,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특파원 근무 초기에 가까운 프랑스 친구들에게 주말에 함께 운동이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의를 했다가 번번이 거절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은 가족도 없느냐” “한국에서는 휴일에 친구들하고 놀러다니느냐”는 반문과 함께 완강히 거절을 당하면서 가족 중심적 프랑스인들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低(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가 한국의 국가적 현안이 됐다. 선진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배려는 물론, 안심하고 학교에 맡길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 약간의 금전적 배려로 출산 장려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 정부와 국민들이 끈질기게 개발하고 집행해 왔던 정책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일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교육 현장을 과감히 수술하고, 사회 전체가 가정 중심의 분위기로 바뀌지 않는 한 인구 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21세기 초 대한민국이 당면한 냉엄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