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鏞碩의 지구촌 이야기] 하노이의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Asian Indoor Games) 참관기 : 월간조선

지난 10월 30일부터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Asian Indoor Games)을 며칠 동안 참관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 창안한 실내아시안게임은 2005년 태국 방콕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후 2007년에는 마카오에서 제2회 대회가 치러졌고, 세 번째로 하노이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실내아시안게임은 볼링이나 권투 등 전형적인 실내게임을 위시해 체스나 바둑,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게임에 이르기까지 총 26개 종목을 놓고 OCA 산하 아시아 45개국 4000여 명의 선수들이 기량을 겨룬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태동된 경기 종목들을 많이 포함시키고 있어서 인기가 높다. OCA는 실내아시안게임을 아시아 무술(Martial Arts)게임과 통합시키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하노이 실내아시안게임은 ‘실내아시안게임’이란 이름으로 열리는 마지막 대회가 됐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IAG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대표해 OCA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필자는 베트남이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을 주최하기로 결정된 후부터 준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베트남은 인구 9000만명에 육박하는 아시아의 大國(대국) 중 하나지만, 그동안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의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저력이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 멋지게 대회를 치러 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특히 베트남올림픽위원회(VOC) 부위원장으로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중심 인물인 황 빈지 앙 교수는 4년 전 필자가 인천아시안게임유치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부터 자주 만나던 인물이다.

그는 말수는 적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믿음이 갔다. OCA 각종 회의 때마다 필자의 옆자리에 앉았던 황 부위원장에게 하노이 대회 준비 상황을 물어보면 항상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OCA의 수뇌부를 위시해 아시아의 몇몇 체육 지도자들은 하노이 게임에 대해 간혹 염려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필자는 황 교수를 중심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대회를 잘 준비하고 치를 것이라고 믿었다.

개막식이 열리는 10월 30일 오후 7시 OCA 간부, IOC 위원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국립경기장으로 향할 때는 기대감과 함께 약간의 염려스러움이 교차했다. 어느 대회나 마찬가지로 개막식 행사가 본 경기 이상으로 관심의 초점이 되고 대회 전체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국제 스포츠계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감동적이었던 개막식 행사

4만명을 수용하는 제법 규모가 큰 미딘국립스타디움에는 VIP들을 위한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마침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파키스탄 알리 IOC 위원, 북한의 장웅 IOC 위원, 시리아의 무달랄 IOC 위원 등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 역시 베트남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국제대회 개막식에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이제는 경제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베트남의 모습을 개막식 행사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오후 8시 정각에 시작된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의 개막식 행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떠오르는 아시아(Rising Asia)’라는 구호가 대형 전광판을 수놓으면서 베트남의 응웬밍찌엣(67) 주석의 개회 선언, 알사바 OCA 회장과 홍투안안 문화관광체육 장관의 축사가 끝난 후 ‘청소년 스포츠 축제’를 상징하듯 청소년들이 베트남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自祝(자축)하며 각종 실내스포츠 종목을 음악에 맞추어 실연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아시아’와 함께 대회의 또 다른 구호인 ‘아시아의 발전(Developing Asia)’이 번갈아 가며 전광판을 수놓고 있었다.

개막식 2부의 주제는 ‘베트남 전통 문화’였다. 다양한 전통 문화를 선보이면서 외세 침략을 물리친 베트남 정신의 상징인 대나무와 함께하는 행진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경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시아의 독립과 발전’이라는 주제의 3부 공연은 아시아 45개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단들이 우애와 협력을 통해 화합하면서 파도를 헤쳐 나가며 발전을 도모하는 생생한 드라마였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4만여 관중은 열광하고 있었고 VIP석에서 개막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베트남 고위 인사들과 세계 각국의 스포츠 지도자들도 큰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옆자리에서 개막식을 함께 지켜보던 하비브 매키 오만 출신 IOC 위원도 “훌륭한 연출이었다”며 만족해 했다. 매키 씨는 지난 10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OCA 대표로 IOC 위원에 선출된 인물이다. 그는 내년 오만에서 열리는 제2회 비치(Beach)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베트남 대회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통킹만의 추억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도한 베트남 관영 10월 31일자 <베트남뉴스>.

그날 저녁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대우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키 씨와 함께 베트남의 저력과 가능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필자는 매키 IOC 위원에게 “베트남 사람들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끈질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뒷받침도 대단하다”고 말하며 1999년부터 10년 이상 한국에서 베트남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팜 띠엔 반 대사를 예로 들었다.

1967년 國費(국비) 유학생으로 북한에 가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남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5년 대사로 승진해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말 실력 또한 유창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키 IOC 위원도 “이번 실내게임 행사를 진두지휘한 황 빈지 앙 교수 역시 오랫동안 스포츠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스포츠 쪽의 중심인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개막식이 끝난 지 며칠 후 황 교수는 기자들과 만나 “베트남은 2016년에 비치아시안게임을, 2018년에는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표는 스포츠 강국을 지향하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확고한 정책과 함께 황 교수가 계속해서 스포츠 분야를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을 동시에 시사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매키 IOC 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전문 분야에서 계속 일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특히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개막식 행사가 있던 다음날 필자는 에어로빅 경기가 열리는 하이퐁市(시)로 향했다. OCA와 실내아시안게임조직위 측에서 하이퐁 방문을 권한 데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도 하이퐁 경기장에서 만나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하이퐁港(항)까지는 2차선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승용차 수와 맞먹는 대형 화물트럭과 수많은 오토바이로 인해 대부분의 구간에서 시속 60km 이상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반,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던 필자는 외신부에 근무하면서 베트남전 관계기사를 자주 썼던 기억이 난다. 특히 월남전이 확전되고 있을 때 통킹만 사건이 계기가 돼 하노이와 하이퐁에 대한 폭격이 焦眉(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덕분에 하이퐁은 외신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地名(지명)이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후, 실내아시안게임의 에어로빅 경기가 열리는 하이퐁에 OCA 부회장 자격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한국기업 1700여개 진출

베트남역사박물관 앞에서의 필자. 프랑스총독의 사저를 개조한 것이다.

실내 아시안게임 기간 중 필자의 안내를 맡은 녹 앙(22) 양은 베트남 북부 라오카이 지방 출신으로 하노이 대학에서 국제무역을 전공하고 있는 才媛(재원)이었다.

영어 수준도 상당한 녹 앙 양과 하이퐁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1954년 프랑스軍(군)이 호찌민군에게 항복했던 디엔 비엔 푸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녹 앙 양은 디엔 비엔 푸의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반세기 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도이모이(개혁개방)를 통해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한 1986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구세대들의 전쟁과 군대 이야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의 대학생들은 교양 필수 과목으로 ‘베트남 역사’와 ‘마르크스·레닌 사상’을 이수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는 구세대들이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해 오랫동안 힘든 전쟁을 치러 왔던 과거 역사보다는 보다 잘사는 베트남과 자신들의 장래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하이퐁까지의 도로 양쪽에는 신축된 주택들은 물론 크고 작은 공장들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베트남 누적 투자액이 200억 달러로 베트남 제2위의 투자국이다. 1700여 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한국 회사들의 현지공장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한국계 기업이 베트남에서 40여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는 통계도 오늘날 두 나라 사이의 경제 협력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하노이 못지않게 하이퐁도 활기 넘치는 대도시였다. 에어로빅 경기가 열리고 있는 하이퐁 실내체육관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40여 년 전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미군기의 폭격 대상 도시에서 아시아 45개국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도시로 탈바꿈한 사실이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졌다.

프랑스 총독 私邸에 들어선 베트남 역사박물관

다음날 하노이에서 베트남 역사박물관을 관람했다. 호찌민기념관과 전쟁박물관 등은 몇 해 전 하노이를 찾았을 때 관람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역사박물관을 택했다. 프랑스 식민지 당시 총독 私邸(사저)로 건립된 박물관 건물 자체도 문화재급이었지만, 선사시대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규모는 작지만 수준급의 박물관이었다.

제3회 실내아시안게임 초반에는 교통과 정보통신, 경기장비 등 이곳저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OCA 측에서는 체면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조용히 설득해 신속하게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갔다. 따라서 대회 막바지에 열렸던 선수단장 회의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처음으로 대규모 국제 스포츠행사를 순조롭게 치러낸 베트남 조직위원회 측에 박수를 보냈다.

하노이에 머물면서 베트남 경제성장의 현장을 보고 감동적인 개막식과 함께 아시아 45개국 선수들이 오랜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평화와 화합을 위해 기량을 겨루는 모습은 인상적이었고 뜻있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