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수백 배가 되는 핵탄두와 미사일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세계 평화가 핵확산으로 더욱 위태롭게 되고 있음을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관람객들에게 경고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 특파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 특파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 나가사키 원폭 투하장면.
일본 규슈(九州)에 위치한 항구 도시 나가사키(長崎)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항구 도시다. 포르투갈에 의해 1571년 개항된 나가사키는 유럽과의 무역항이 됐고, 기독교 선교사들의 선교 무대가 됐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의 반란으로 禁敎令(금교령)이 내려졌고 포르투갈 상인들도 추방됐다. 이어 도착한 네덜란드인들과 중국 상인들에 의해 나가사키는 당시 일본 유일의 국제 무역항으로서 일본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거점이 됐다. 일본 유일의 국제 무역항으로서 나가사키의 입지는 그 후 200년 동안 계속됐다. 이에 따라 나가사키에는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됐고, 기독교가 다시 번성하는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가 갖춰졌다.
나가사키항은 한국과의 교역 거점이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원산, 부산, 인천, 목포항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인천과 나가사키 간에는 정기 항로가 개설됐고, 나가사키 사람들은 대거 인천에서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았다. 나가사키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던 영국인 프레드릭 링거는 제물포(인천)에 지점을 차리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미국 페리 제독의 黑船(흑선)에 의해 일본이 요코하마, 고베, 하코다테, 니가타항을 차례로 개항하면서 외국 무역의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던 나가사키의 입지는 바뀌었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은 계속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에는 히로시마(廣島)에 이어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나가사키 중심부는 초토화됐다. 근 400여 년 동안 외국인들이 거주하면서 유럽과 미국 등 외부 세계와의 교류 거점이었던 나가사키는 원폭이 투하되는 비극적 도시가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나가사키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근년에는 인천에 있는 근대 건축물들을 복원하고 舊(구)도심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는 계획에 참고하기 위해 인천의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차례 나가사키를 찾기도 했다.
추석 연휴 직후 나가사키를 다시 찾기로 결심한 것은 원폭 자료관을 관람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확인하면서 핵무기에 대한 집단 불감 증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싶어서였다.
나가사키시 히라노마치(平野町)에 자리 잡고 있는 原爆資料館(원폭자료관)은 피폭 50주년이 되던 1996년에 개관됐다. 그때까지 피폭 자료를 전시하던 나가사키 국제문화회관을 개축하여 개관된 자료관에는 피폭 자료와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를 비롯해 원폭이 투하된 경위와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평화를 희구하는 나가사키 시민들의 염원이 체계적으로 전시돼 있다.
자료관을 찾았던 날에는 제법 많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입구는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인솔 교사를 따라온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시하여 중·고등학생들과 성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람객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우라카미 천주교회당 파편도 전시
입구에 들어서자 전국 각지의 학교와 단체에서 보내온 여러 색깔의 ‘평화 기원’ 깃발들이 눈길을 끌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나가사키 방문을 請願(청원)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가사키를 찾아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자는 캠페인이었다.
필자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린 서명운동 담당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함께 노력하자”면서 “당신의 서명은 매우 귀중하고 고맙다”고 여러 차례 인사를 건넸다.
원폭피해 전시가 시작되는 전시실에는 원폭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 우라카미(浦上) 지역의 초토화된 대형 흑백 사진이 피폭 전 평화롭던 우라카미 마을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들판에 뒹구는 사체와 함께 건물도 나무도 모두 없어진 황량한 들판이 가공할 만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全破(전파)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의 모습과 파편들을 모아서 교회당의 일부를 복원해 놓은 전시실도 인상적이었다. 나가사키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서 30년간의 役事(역사)로 1925년에 완공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은 당시 극동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이었다.
피폭 당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에는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수십 명의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신부 두 명이 이들의 고백을 듣고 있었는데 원자폭탄이 500m 지점에서 폭발해 전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자폭탄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난 가톨릭 聖者(성자)들의 조각들을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서 전쟁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가사키의 비극
나가사키가 기구한 운명의 도시라는 것은 본 전시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원폭 투하 직전의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지 사흘 만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되기 전의 상황을 한 도시의 生死(생사)가 전쟁의 와중에서 어떻게 운명지어지는가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1944년 9월 18일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윈스턴 처칠과 회담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원자폭탄을 사용하겠다고 통보하고 묵시적인 동의를 얻었다. 당시 미국은 원자탄 개발의 막바지에서 조만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때였다.
같은 해 美(미) 공군은 일본에 원자탄 투하 준비에 돌입했고,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1945년 8월 1일을 준비완료일로 설정했다.
1945년 4월 27일 국방부에서는 제1회 원폭 투하 목표 검토위원회가 소집됐다. 위원회에서는 목표 도시로 도쿄(東京), 가와사키(川崎), 요코하마(橫濱),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阪), 고베(神戶), 교토(京都), 히로시마, 구레(吳), 야하타(八幡), 고쿠라(小倉), 시모노세키(下關), 야마구치(山口), 구마모토(熊本), 후쿠오카(福岡), 나가사키, 사세보(佐世保) 등 일본의 17개 도시를 선정했다.
제1회 목표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지 며칠 후,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했고, 이어 5월 10일 소집된 2차 목표위원회에서 17개 목표 도시를 대폭 줄여 교토, 히로시마, 고쿠라 등 3개 도시로 압축했다.
5월 18일 제3차 회의에서 교토, 히로시마는 그대로 남고 고쿠라 대신 니가타(新潟)가 새로운 목표도시가 됐다. 5월 30일은 교토가 생존하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전쟁 전 일본 방문 시 교토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게 됐던 헨리 스팀슨 국방장관은 “교토를 목표도시에서 제외하라”고 명했다. 다음날 원폭 투하와 관련된 문제를 전담했던 잠정위원회에서는 일본과 투하 목표도시에 사전 경고 없이 원폭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7월 16일 미국은 뉴멕시코에서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으나, 69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은 사전 경고 없는 원폭 투하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원폭 실험에 성공한 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7월 23일 목표위원회는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를 목표 도시로 스팀손 장관에게 보고했고, 다음날 그로브스 장군은 “나가사키를 추가하라”고 명령한다.
구름 사이로 나가사키 시내가…
나가사키에는 미군 포로수용소가 있기 때문에 원폭 투하시 포로가 된 미군들이 위험하다는 공군본부의 건의도 묵살됐다. 다음날인 7월 24일 포츠담에서 스탈린 및 처칠과 회담하고 있던 트루먼 대통령은 스탈린에게 원자폭탄 개발 성공을 처음으로 알렸고, 7월 25일 원폭 사용을 정식으로 재가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은 미군은 7월 31일 타이니안 섬에서 원폭 조립을 시작했고, 8월 2일 공군은 히로시마에 8월 6일자로 원폭을 투하하라는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운명의 날이 된 8월 6일 타이니안 섬을 오전 1시45분에 이륙한 ‘이노라게이’ B-29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에서 “전쟁의 고통과 수천 수만의 젊은 미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원폭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나가사키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8월 8일 두 번째 원폭이 B-29에 탑재됐고, 괌에 있던 제20공군사령부에서는 작전 명령 17호를 발부했다. 제1목표는 고쿠라의 병기 공장, 제2목표는 나가사키로 하달했다.
바로 그날 소련은 느닷없이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극동 전선에 참전하기에 이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조만간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극동 지역에서 판도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드러냈고, 이것이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원인이 됐다.
8월 9일 오전 2시49분 원자폭탄을 실은 B-29기는 타이니안 섬을 이륙해 제1목표인 고쿠라로 향했다. 고쿠라 병기 공장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장은 나가사키로 機首(기수)를 돌렸다. 나가사키 역시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이때가 오전 10시58분, 기장과 함께 탑승하고 있던 기술 장교는 視界(시계) 불량과 연료 부족으로 귀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나가사키 시내가 보였고, 순간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됐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는 순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피폭 당시 나가사키시의 인구는 24만명이었고, 그중 7만4000여 명 사망, 7만5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수치는 피폭된 해 12월의 추정 수치로 그 후 부상자 중 많은 사람이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核 집단 무감각증 걸린 한국인들
나가사키시의 운명과 참상, 이를 바탕으로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의지는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전시실을 통해서 실감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64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수백 배가 되는 핵탄두와 미사일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세계 평화가 핵확산으로 더욱 위태롭게 되고 있음을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관람객들에게 경고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을 적시하면서 핵무기 확산을 우려하고 있는 이웃나라의 전시실에서 핵문제에 집단 무감각증에 걸린 듯한 한국인 필자의 심경은 착잡하고 자괴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의 반란으로 禁敎令(금교령)이 내려졌고 포르투갈 상인들도 추방됐다. 이어 도착한 네덜란드인들과 중국 상인들에 의해 나가사키는 당시 일본 유일의 국제 무역항으로서 일본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거점이 됐다. 일본 유일의 국제 무역항으로서 나가사키의 입지는 그 후 200년 동안 계속됐다. 이에 따라 나가사키에는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됐고, 기독교가 다시 번성하는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가 갖춰졌다.
나가사키항은 한국과의 교역 거점이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원산, 부산, 인천, 목포항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인천과 나가사키 간에는 정기 항로가 개설됐고, 나가사키 사람들은 대거 인천에서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았다. 나가사키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던 영국인 프레드릭 링거는 제물포(인천)에 지점을 차리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미국 페리 제독의 黑船(흑선)에 의해 일본이 요코하마, 고베, 하코다테, 니가타항을 차례로 개항하면서 외국 무역의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던 나가사키의 입지는 바뀌었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은 계속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에는 히로시마(廣島)에 이어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나가사키 중심부는 초토화됐다. 근 400여 년 동안 외국인들이 거주하면서 유럽과 미국 등 외부 세계와의 교류 거점이었던 나가사키는 원폭이 투하되는 비극적 도시가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나가사키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근년에는 인천에 있는 근대 건축물들을 복원하고 舊(구)도심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는 계획에 참고하기 위해 인천의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차례 나가사키를 찾기도 했다.
추석 연휴 직후 나가사키를 다시 찾기로 결심한 것은 원폭 자료관을 관람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확인하면서 핵무기에 대한 집단 불감 증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싶어서였다.
나가사키시 히라노마치(平野町)에 자리 잡고 있는 原爆資料館(원폭자료관)은 피폭 50주년이 되던 1996년에 개관됐다. 그때까지 피폭 자료를 전시하던 나가사키 국제문화회관을 개축하여 개관된 자료관에는 피폭 자료와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를 비롯해 원폭이 투하된 경위와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평화를 희구하는 나가사키 시민들의 염원이 체계적으로 전시돼 있다.
자료관을 찾았던 날에는 제법 많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입구는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인솔 교사를 따라온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시하여 중·고등학생들과 성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람객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우라카미 천주교회당 파편도 전시
입구에 들어서자 전국 각지의 학교와 단체에서 보내온 여러 색깔의 ‘평화 기원’ 깃발들이 눈길을 끌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나가사키 방문을 請願(청원)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가사키를 찾아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자는 캠페인이었다.
필자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린 서명운동 담당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함께 노력하자”면서 “당신의 서명은 매우 귀중하고 고맙다”고 여러 차례 인사를 건넸다.
원폭피해 전시가 시작되는 전시실에는 원폭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 우라카미(浦上) 지역의 초토화된 대형 흑백 사진이 피폭 전 평화롭던 우라카미 마을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들판에 뒹구는 사체와 함께 건물도 나무도 모두 없어진 황량한 들판이 가공할 만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全破(전파)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의 모습과 파편들을 모아서 교회당의 일부를 복원해 놓은 전시실도 인상적이었다. 나가사키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서 30년간의 役事(역사)로 1925년에 완공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은 당시 극동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이었다.
피폭 당시 우라카미 천주교회당에는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수십 명의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신부 두 명이 이들의 고백을 듣고 있었는데 원자폭탄이 500m 지점에서 폭발해 전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자폭탄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난 가톨릭 聖者(성자)들의 조각들을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서 전쟁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가사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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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실물크기로 전시돼 있다. |
1944년 9월 18일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윈스턴 처칠과 회담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원자폭탄을 사용하겠다고 통보하고 묵시적인 동의를 얻었다. 당시 미국은 원자탄 개발의 막바지에서 조만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때였다.
같은 해 美(미) 공군은 일본에 원자탄 투하 준비에 돌입했고,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1945년 8월 1일을 준비완료일로 설정했다.
1945년 4월 27일 국방부에서는 제1회 원폭 투하 목표 검토위원회가 소집됐다. 위원회에서는 목표 도시로 도쿄(東京), 가와사키(川崎), 요코하마(橫濱),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阪), 고베(神戶), 교토(京都), 히로시마, 구레(吳), 야하타(八幡), 고쿠라(小倉), 시모노세키(下關), 야마구치(山口), 구마모토(熊本), 후쿠오카(福岡), 나가사키, 사세보(佐世保) 등 일본의 17개 도시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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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나가사키 방문을 기원하는 서명 운동 코너. 5만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5월 18일 제3차 회의에서 교토, 히로시마는 그대로 남고 고쿠라 대신 니가타(新潟)가 새로운 목표도시가 됐다. 5월 30일은 교토가 생존하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전쟁 전 일본 방문 시 교토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게 됐던 헨리 스팀슨 국방장관은 “교토를 목표도시에서 제외하라”고 명했다. 다음날 원폭 투하와 관련된 문제를 전담했던 잠정위원회에서는 일본과 투하 목표도시에 사전 경고 없이 원폭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7월 16일 미국은 뉴멕시코에서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으나, 69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은 사전 경고 없는 원폭 투하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원폭 실험에 성공한 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7월 23일 목표위원회는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를 목표 도시로 스팀손 장관에게 보고했고, 다음날 그로브스 장군은 “나가사키를 추가하라”고 명령한다.
구름 사이로 나가사키 시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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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관 입구에 일본 각지의 학교에서 보내온 평화기원 기치들이 전시돼 있다. |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은 미군은 7월 31일 타이니안 섬에서 원폭 조립을 시작했고, 8월 2일 공군은 히로시마에 8월 6일자로 원폭을 투하하라는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운명의 날이 된 8월 6일 타이니안 섬을 오전 1시45분에 이륙한 ‘이노라게이’ B-29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에서 “전쟁의 고통과 수천 수만의 젊은 미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원폭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나가사키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8월 8일 두 번째 원폭이 B-29에 탑재됐고, 괌에 있던 제20공군사령부에서는 작전 명령 17호를 발부했다. 제1목표는 고쿠라의 병기 공장, 제2목표는 나가사키로 하달했다.
바로 그날 소련은 느닷없이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극동 전선에 참전하기에 이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조만간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극동 지역에서 판도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드러냈고, 이것이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원인이 됐다.
8월 9일 오전 2시49분 원자폭탄을 실은 B-29기는 타이니안 섬을 이륙해 제1목표인 고쿠라로 향했다. 고쿠라 병기 공장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장은 나가사키로 機首(기수)를 돌렸다. 나가사키 역시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이때가 오전 10시58분, 기장과 함께 탑승하고 있던 기술 장교는 視界(시계) 불량과 연료 부족으로 귀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나가사키 시내가 보였고, 순간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됐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는 순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피폭 당시 나가사키시의 인구는 24만명이었고, 그중 7만4000여 명 사망, 7만5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수치는 피폭된 해 12월의 추정 수치로 그 후 부상자 중 많은 사람이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核 집단 무감각증 걸린 한국인들
나가사키시의 운명과 참상, 이를 바탕으로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의지는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전시실을 통해서 실감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64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수백 배가 되는 핵탄두와 미사일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세계 평화가 핵확산으로 더욱 위태롭게 되고 있음을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관람객들에게 경고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을 적시하면서 핵무기 확산을 우려하고 있는 이웃나라의 전시실에서 핵문제에 집단 무감각증에 걸린 듯한 한국인 필자의 심경은 착잡하고 자괴스럽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