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중순쯤 盧武鉉 대통령의 외교보좌관(차관급) 하마평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에, 徐차장의 이번 발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身言書判(신언서판)」. 그를 잘 아는 외교관들에게 『徐차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여러 사람이 이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신수와 말씨, 문필과 판단력 등 네 가지 덕목을 골고루 갖췄다는 얘기다.
徐차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마라톤」이다. 그는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는데 뭘 못 하겠느냐』는 말을 하곤 한다. 徐차장은 지금까지 42.195km를 다섯 차례 완주했다. 마라톤으로 다진 건강이 외교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든든한 밑천이 됐다고 한다.
1998년 초 유엔 차석대사로 부임하고 나서의 일이다. 50세(1949년생) 생일을 기념할 특별한 뭔가를 찾던 그는 마라톤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학창 시절 단거리를 잘 뛰었던 실력을 살려, 마라톤 선생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과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역이자 연설문 담당자였던 테드 소렌슨 박사와 연이 닿아 그로부터 마라톤 走法(주법)을 사사했다. 마라톤을 통해 미국內 많은 인사와 교분의 폭을 넓혔다는 후문이다.
당시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徐차장과 함께 달리기 연습을 하던 이가 스웨덴 출신인 한스 달그렌 유엔 사무차장이었다. 훗날 그는 스웨덴 외무차관으로 승진해 2001년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북한을 방문, 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頂上회담을 하도록 토대를 마련했다.
徐차장은 1999년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첫 완주에 도전, 5시간 11분이란 기록으로 대회를 마쳤다. 徐차장은 다음날인 월요일 출근해서야 『내가 뉴욕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고백, 駐뉴욕 대표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사전 준비가 철저한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徐차장은 바둑을 잘 둔다. 그는 바둑을 『흑백으로 나뉘어 중원평정을 위해 반상에서 때로는 격렬하게 싸우고 때로는 부드럽게 타협하면서 조화를 찾아나가는 두뇌 게임』이라고 정의하면서 『외교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정부부처 대항 바둑대회가 있으면 그는 외교부 대표로 참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수장·강훈씨 등 지금의 高手들과 한국기원에서 바둑을 배웠다.
젊은 시절 파이프 담배를 즐겨서 「영국 신사」라는 별명이 아직까지 따라다닌다. 徐차장은 업무 처리가 치밀하다. 작년 말, 보통사람들 같으면 閑職(한직)이라 여겼을 「東海표기 담당대사」를 맡았을 때 그는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主무대인 유엔에서 각국을 상대로 동해가 「日本海」라는 명칭과 함께 쓰여야 한다는 주장을 역설했다. 그 결과 유엔이 처음으로 「동해 표기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고, 따라서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공식 인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련된 매너에 상하 간에 친화력이 뛰어나,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텍사스州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부시 행정부 쪽에 지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으로 꼽힌다.
경기高·서울大 외교학과 출신으로 1973년 외무고시 7회로 입부했다. 이후 첫 근무를 유엔과에서 했고 이어 유엔공사, 유엔국장, 유엔 차석대사, 헝가리 대사를 거쳐 2004년 12월29일까지 연세大 특임교수로 일해 왔다.
마지막 경력인 연세大 특임교수직 때문에 연세大 총장 출신인 金雨植(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徐대사를 국정원 1차장에 천거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崔圭夏 前 대통령의 사위다. 부인 崔鍾惠(최종혜·52)씨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