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의 인물] 嚴弘吉

세계 최초 히말라야 巨峯 15座 완등

한필석    pshan@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베이스캠프, 여기는 頂上입니다. 너무나 힘이 듭니다. 얄룽캉 頂上에 올랐습니다』
 
  2000년 히말라야 8000m급 14개 巨峯(거봉)을 완등한 「탱크」 嚴弘吉(엄홍길·44·한국외국어大 중국어과 3·파고다아카데미 이사)이 또 하나의 쾌거를 올렸다.
 
  지난 5월5일 오후 3시10분경(네팔 현지시각·한국 시각 6시25분) 세계 제5위 높이의 고봉인 얄룽캉(8505m) 頂上에 올라선 것이다. 얄룽캉은 14座(좌)로 일컬어지는 히말라야 8000m급 巨峯 하나 하나를 대표하는 主峯(주봉)이 아닌 3위 고봉인 캉첸중가(8586m)의 衛星峯(위성봉)이지만 등반성을 높게 인정받는 고봉으로, 14좌 완등자 가운데 얄룽캉을 등정한 산악인은 엄홍길이 처음이다.
 
  출국에 앞서 嚴弘吉은 2000년 봄 頂上 300m 직전까지 루트가 같은 캉첸중가를 등반했기에 무난히 성공하리라 낙관했지만 실제로는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頂上 공격은 강풍에 밀려 포기해야 했고, 두 번째 공격 때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은 오히려 점점 희박해졌다. 4월30일 제3캠프(7300m)에 도착했을 때까지 멀쩡하던 날씨가 자정을 넘어서면서 강풍으로 돌변하더니 이튿날 5월1일에는 텐트 안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嚴弘吉은 베이스캠프와의 무전교신을 통해 강풍이 2~3일 더 계속된다는 예보를 확인하고도 캠프에서 버텼다. 평지에 비해 공기 중 산소의 비율이 40% 이하로 떨어지는 高지대에서 여러 날 지낸다는 것은 뛰어난 고소 적응력과 강인한 체력은 물론이고 초인적인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곳에서 사흘간이나 버텼는데도 바람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嚴弘吉은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5월4일 오후 마지막 캠프(7800m)에 올라 頂上 등정을 엿보았다. 자정을 넘어서도 바람이 잠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5일 새벽 3시30분 히말라야의 여신의 뜻에 따르는 심정으로 頂上을 한 발씩 올라섰다.
 
  이에 히말라야의 여신이 嚴弘吉의 마음을 받아주었는지 결국 그는 해냈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지 12시간이 다 돼 가는 오후 3시10분경, 출국 전 『욕심을 버리고 예를 다해 산에 오르다 보면 히말라야의 여신이 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받아주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2000년 여름 K2(8611m) 頂上에 올라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巨峯 완등자로 등극한 직후 엄홍길의 히말라야 등반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1985년 에베레스트 등반 이후 15년간 히말라야에서 펼쳐 온 30여 회의 등반 중 후배 3명과 셰르파 4명이 목숨을 잃고, 그 자신은 동상으로 발가락 일부를 잘라내는가 하면 발목이 부러지는 등 모진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는 쉬운 산이나 찾아다니리라 생각됐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8000m급 고봉이지만 주봉에 가려 빛을 못 보고 있는 얄룽캉과 로체샤르(8400m)였다. 그에 앞서 새로운 루트로 고봉을 오르는 등반에도 몰두했다. 2001년 가을 남동벽을 타고 시샤팡마 頂上에 올라서고, 1988년 14좌 중 첫 번째로 오른 에베레스트를 2002년과 2003년에 또다시 올라 세계 최고봉 3회 등정이라는 셰르파가 아닌 등반가로서는 희귀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嚴弘吉은 등반 열정을 향학열로 잇기도 했다. 2002년 불혹의 나이에 수시 특별전형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했다. 네팔 등지에서는 영어로 웬만큼 통했지만 초오유나 시샤팡마와 같은 중국령 내의 고봉을 오를 때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그였다. 「8000m의 희망과 고독」이란 자서전도 펴내기도 했다.
 
  2001년 봄 로체샤르 등반은 폭풍설 등 악천후에 밀려 등반 대상지를 아예 바꾸어야 했고, 지난해 가을에는 頂上을 200여m 앞두고 앞장서 오르던 후배 대원 2명이 눈사태와 함께 수천m 아래 빙하로 사라지는 비극을 겪고 말았다. 당시 귀국 직후 嚴弘吉은 사고자들의 가족들과 함께한 영결식에서 『모든 게 대장인 제가 부덕한 탓』이라며 비통해했고, 이후 여러 날 동안 슬픔에 젖어 지내야 했다.
 
  이렇게 히말라야는 잔인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혹독했지만 嚴弘吉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올 가을 후배 두 명의 영혼이 떠도는 로체샤르 頂上도 올라설 것』이라고 굳은 결심을 밝혔다. ●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