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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친 포퓰리즘 지도자 - 에스트라다와 차베스

「대중 인기 영합주의」로 집권한 지도자들이 국가에 남긴 것은 피폐해진 경제와 國論분열뿐

윤희영    hy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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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트라다(필리핀): 빈민층을 구제한다면서도 집권 30개월간 2500억원 축재
● 차베스(베네수엘라): 언론과의 전쟁 선포하고 정치비평도 금지시켜
에스트라다 망령이 되살아나다
필리핀의 前 대통령 조지프 에스트라다(左),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右)
  7월27일 새벽 필리핀에서 발생한 청년 장교·병사들의 쿠데타 기도 사건에, 2000년 1월 임기 도중 사퇴했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前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배후 세력으로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에스트라다(66) 前 필리핀 대통령은 우고 차베스(49) 現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포퓰리즘(Populism·대중 인기 영합주의)으로 집권·통치해 국가의 命運(명운)을 그르쳤다는 평을 듣는 대표적 인물이다. 뇌물수수, 공금횡령, 여성편력에 온갖 奇行(기행)을 일삼다가 「피플 파워」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건만, 정치가 혼란에 휩싸이고 경제가 피폐해지다 보니 그의 포퓰리즘 망령이 부활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필리핀과 베네수엘라의 경우에서 여실히 나타나듯이 사회계층 간 갈등과 알력이 극에 달하고 국가의 흥망성쇠가 기로에 처하게 되면 일반 대중들은 「메시아」와 같은 영웅의 등장을 갈망하게 된다. 이때 그 틈을 비집고 발호하는 것이 군사 쿠데타 모의자 또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개혁과 변화 구호를 앞세운 화려한 레토릭(rhetoric·修辭)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그러면 의지할 곳 없이 절망에 빠져 있던 대중은 여지없이 그에 현혹되고 신봉자가 된다. 「최소한 지금보다야 낫겠지」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에 앞뒤 가리지 않은 채 스스로 盲信(맹신)에 빠져들고 만다.
 
  문제는 포퓰리즘의 폐해를 깨닫는 데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되고, 그 사이 국가의 정치·경제·사회와 국민의 생활은 역사의 발전을 거슬러 오히려 퇴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음주, 도벽, 여성관계도 문제 안 돼
 
  에스트라다 前 필리핀 대통령은 1998년 6월30일 취임식 날 全국민의 가정에 칫솔 한 개씩을 기념품으로 선물했다. 『국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통령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며칠 후엔 가장 먼저 경찰에 개혁의 칼을 내밀었다. 『우리나라 경찰은 너무 뚱뚱하고 둔하다. 그들도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 몸무게를 줄이든지 경찰을 그만 두든지 택일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자 당시 수도 마닐라 경찰청장은 『체중을 줄일 수 있고, 동작도 민첩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모든 경찰에게 춤을 배우라는 지시를 내리는 해프닝을 벌였다.
 
  에스트라다는 자신이 외국 인사들과 대화할 때는 영어 대신 필리핀 토착어인 타갈로그語를 사용할 것이라며 모든 국립대학과 공립학교에서도 타갈로그語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국어 사용은 필리핀인의 단결을 강화하고 민족·문화·역사를 보호하는 원천이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대통령 관저로 이사하면서는 『아버지가 같으면 嫡子(적자)·庶子(서자) 구분은 필요없다』며 이복 자녀 10명을 모두 함께 살게 했다. 대통령宮 말라카냥 관저의 샹들리에가 떨어졌을 때는 액땜을 해야 한다며 聖水(성수)를 뿌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로빈후드」의 이미지를 내세운 영화배우 출신 에스트라다의 파격적 언행이나 기행을 비웃거나 비난하는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大選 이전부터 사회 지도층은 그의 통치력 부족과 방종한 생활 등을 결격사유로 지적했지만, 8100만 인구의 30~40%를 차지하는 빈민층은 기득권층에 반기를 들었고, 덕분에 에스트라다는 총 유효투표의 40%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인구의 83%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이지만,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와 정부의 失政(실정)에 염증을 느낀 서민층에게 에스트라다의 여성편력과 음주, 도벽 등 윤리적 문제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그들은 피델 라모스 전임 대통령이 집권 6년 동안 심화시켰다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나선 에스트라다에게 몰표를 던져 주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 「서민들의 옹호자」를 선거 구호로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된 에스트라다에 대한 빈민층의 기대는 대단했다. 마닐라의 슬럼街인 톤도 출신인데다 영화배우 시절에 악랄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義賊(의적) 역할을 자주 맡았던 그는 빈민들의 영웅이었다. 대통령 당선 후에도 자신을 「친구」라는 뜻을 가진 별명 「에랍」으로 부르도록 했던 그는 취임 후 한 연설에서 『대통령이라는 배역은 까다롭고 힘든 역할』이라며 고충을 토로했지만, 그의 國政 운영능력을 의심하기보다는 동정과 격려를 보냈다.
 
 
 
 빈민들의 절대적 성원을 받으며 집권
 
  40여 개 家門이 정치·경제적 권력을 틀어잡고 있는 「족벌체제」의 필리핀에서 3류 대학교 중퇴 학력에 영화배우 출신의 「배경」 없는 인물인 에스트라다에게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절대 다수 빈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모두 명문가 출신이었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 부정부패와 독재를 일삼다가 1986년 피플 파워에 의해 축출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前 대통령은 루손 섬 북부의 명문가 출신이며, 그의 부인 이멜다는 중부지역 명문가인 로무알데스家 출신이었다.
 
  시민혁명으로 집권한 코라손 아키노 前 대통령도 대지주 가문인 코후앙코家 출신이며, 그의 후계자인 피델 라모스 前 대통령 또한 마르코스의 친척이었다. 에스트라다가 물러난 뒤 대통령에 취임한 글로리아 아로요 現 대통령은 1960년대 중반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반면 젊은 시절 B급 코미디·액션영화 배우로 활동했던 에스트라다는 1937년 수도 마닐라의 슬럼가에서 태어나 시장, 상원의원, 부통령에 이어 1998년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는 입지전적 성장으로 도시 빈민과 지방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술자를 家長으로 둔 집안의 10형제 중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낙제생으로 퇴학당했는가 하면, 어렵사리 진학한 한 3류 대학(토목과)에선 배우가 되겠다며 중퇴했다. 그러나 영화배우로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어 1971년 산 후안 시장선거에 당선된 뒤 18년간 내리 시장직을 역임하면서 「필리핀의 로빈후드」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범죄가 들끓던 산 후안을 「활기찬 공동체」로 변모시키는 수완을 보였다. 도로포장, 학교 보건센터 등 공공건물을 신축하고, 출생·장례 의료비를 무료화해서 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마치 약자 편에 선 영화 주인공처럼 비리 경찰관들을, 시장인 그가 직접 혼내는 「쇼맨십」을 보이기도 했다.
 
  1987년 상원에 손쉽게 진출한 그는 빈곤층 편에 서서 물소보호법과 관개법을 제안해 다수 의원들로부터는 사소한 데 신경 쓴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 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령 당선자인 피델 라모스 후보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어 화제가 됐다.
 
  그는 부통령 시절 밤마다 술판을 벌여 물의를 빚었으며, 술에 취해 간통한 사실까지 자인할 정도로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잦은 구설수에 올랐다. 여성편력이 심한 그는 영화배우·여대생·스튜어디스 등 7명의 여성 사이에 공식적으로만 12명(8남 4녀)의 자녀들을 두었다. 바람둥이 또는 알코올 중독자로 불릴 만큼 문란한 사생활로 결국 의사인 본처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그는 1998년 빈민층의 절대적인 지지로 필리핀 역사상 가장 큰 득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선거 유세에선 여성편력과 사생아를 낳은 사실을 자인하면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등을 돌린 적이 없다며 오히려 떳떳함을 내세워 거침없이 행동했다. 자신의 출신배경과 前歷을 둘러싼 숱한 비판에도 불구,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과 특유의 대중 친화력 덕분에 오히려 기득권층에 혐오감을 가진 빈곤층과 서민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30개월 임기 동안 2억 달러 축재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에스트라다를 둘러싼 갖가지 醜聞(추문)이 꼬리를 잇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품행에 문제가 있었던 그는 취임 이후 달콤한 권력의 유혹에 탐닉하면서 온갖 비리에 연루됐다.
 
  『절친한 친구들 중에는 수배 중인 밀수업자들도 포함돼 있고 그들과 자주 술을 마시곤 했다』 『친구들과 심야에 술 파티를 연 자리에서 정부 정책을 결정하곤 한다』 『아침 늦게 술에 절어 깨어나 약속 시간조차 지난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라도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편두통에 시달린다고 한다』는 등의 소리가 대통령궁에서 새났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1월 에스트라다는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분노한 피플 파워에 밀려 下野(하야)했고, 실패한 전형적 포퓰리스트가 국가와 국민에게 남긴 폐해는 너무나도 엄청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리아 아로요 신임 대통령 정부의 특별조사팀이 수사한 바에 따르면 에스트라다는 불과 30개월(934일)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무려 2억 달러(약 2500억원 상당)를 축재·은닉했으며, 최소한 17채의 호화 맨션과 기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부정축재 사실은 익명을 요구한 측근과 기업인들의 증언을 통해 속속 확인됐다.
 
  그는 친구인 루이스 싱손 일로코스수르州 주지사가 의회 청문회에서 불법 도박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대통령과 친척들에게 전달해 줬다고 폭로했다. 도박업계의 代父인 싱손 주지사는 불법 도박업자 주에텡으로부터 4억 페소(약 110억원)의 뇌물을 받아 에스트라다와 친척들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에스트라다는 그중 주에텡으로부터 1998년 11월부터 2000년 8월까지 매달 100만 페소씩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트라다는 엽연초 재배 농민을 위해 마련된 영농자금 1억3000만 페소와 복권판매 기금 4억3030만 페소를 술·도박을 함께 하는 단짝 친구의 은행계좌로 빼돌려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대리인을 내세워 마닐라와 만달루용 등에 時價 10억 페소의 땅을 구입하는 등 부동산 투기까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에스트라다는 뇌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유령회사 2개를 설립해 접수창구로 활용하면서 검은돈을 세탁·관리토록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에스트라다가 심지어 분리주의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해 필리핀 남부 졸로 섬에 억류됐던 인질 21명의 몸값으로 지불된 2000만 달러(약 230억원) 중 40%를 가로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의사와 분쟁에 휘말린 아들과 호텔비를 내지 않은 다른 아들을 법 절차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두둔해 물의를 빚는 등 에스트라다와 그 측근들은 국민을 포퓰리즘으로 현혹시킨 채 온갖 非理(비리)를 저질렀고, 그 결과 국가 경제는 도탄에 빠지고 국가 질서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에스트라다의 포퓰리즘을 선호하는 빈곤층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산층 이상의 부류로 양분돼 내부 갈등이 고질화됐고, 이는 수시로 발생하는 시위대와 反시위대의 유혈충돌, 군사쿠데타 기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의 빈곤층은 아직도 국가의 富를 독차지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이 에스트라다를 내쫓고 상층부 출신을 대통령에 내세우려고 부패혐의를 날조해 에스트라다를 몰아냈다고 믿고 있다.
 
 
 
 외국 기업 제품 몰수해 빈곤층에 배급
 
  또 다른 전형적 포퓰리스트 지도자 중 하나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그 역시 평범한 출신 성분을 내세우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빈곤층을 매료시켜 통치수단이자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지난 1월엔 생필품 부족현상이 벌어지자 군인들을 동원해 외국 기업 제품들을 몰수, 빈곤층에 배급토록 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無産계급의 환호성을 받았다.
 
  베네수엘라는 국민 한 명당 가지고 있는 열쇠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그만큼 경제와 사회가 불안하다. 2400만명 인구 중 80%가 빈곤층이다. 중산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자이고, 직업이 있는 사람들도 3분의 1은 야간 부업을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인디오 피를 타고 난 차베스가 빈곤층에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일단 여기서 차베스가 작성한 경제 성적표를 보자.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심각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7.0%를 기록한 가운데, 소비자 물가는 2001년의 12.3%를 훨씬 상회하는 30%를 기록했다. 실질임금은 지난해 1월~9월까지 월평균 -7.6%의 하락세를 보였다. 한편 2002년 재정적자는 高유가 지속에도 불구하고 GDP의 4%에 달해 재정적자는 매우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공수부대 출신인 차베스는 1992년 당시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힌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테타를 감행했으나 실패해 감옥에서 2년을 보냈다. 武力의 한계를 느낀 그는 정계를 통한 집권을 도모했고, 마침내 1998년 12월 大選에서 부패한 정부에 반기를 든 前 쿠데타 지도자라는 명성과 인디오 특유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 좌파연합의 폭넓은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에서 승리한 차베스는 『나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 민중을 위해 싸울 것이며, 나의 정부는 민중의 정부가 될 것』이라는 一聲(일성)을 내뱉었다. 개혁 차원을 넘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꿨다.
 
 
 
 財界·노동계에 이어 「언론과의 전쟁」 선포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시간 열정적인 마라톤 연설을 하고 어떤 계층 사람들이든 대담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기구 축소, 부정부패 척결, 빈민층 지원을 주요 골자로 한 새 헌법을 채택하고,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게 했다.
 
  쿠바의 지역단위 감시조직인 「혁명옹호위원회」를 본떠 각 지역마다 11명씩으로 이루어진 「볼리바르 조직」을 배치, 정권 유지와 지지 여론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지난해 4월 국가권력과 富의 私有化 기도와 경제 失政(실정)에 반발한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이틀 만에 권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빈곤층과 이들의 여론을 몰아간 볼리바르 조직의 힘 덕분이었다.
 
  정권의 토대인 빈곤층을 내세워 급진적인 포퓰리즘 정책과 좌파 실험을 해 온 차베스는 재계·노동계·종교계·언론계와 잇달아 충돌했다. 2001년부터는 한 TV 방송의 연쇄 택시강도 살인사건 보도를 계기로 「언론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실제 사망자는 1명인데 8명으로 부풀려 보도, 정국 불안을 부채질해 「혁명사업」을 방해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貧民들의 지지로 권력 계속 유지
 
  차베스는 『언론사들이 공모해 개혁을 위한 혁명을 가로막는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한 명의 기자도 투옥시키지 않은 것을 보면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완벽히 보장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같은 해 차베스 휘하의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언론은 정치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 정치평론가의 라디오 뉴스쇼와 관련, 『어떠한 신문·방송도 정치적 성향을 미리 공표하지 않는 한 사설·칼럼을 통해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판시했다.
 
  차베스는 요즘에도 직접 빈민가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방송이 나가는 상황에서 다리가 아픈 사람에겐 목발이나 휠체어를 구입해 주라고 즉석에서 지시한다. 이가 안 좋은 이들에겐 補綴(보철)을 하게 해 주고, 질병이 심한 사람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있는 쿠바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하라고 지시한다.
 
  때문에 빈민들은 차베스에게 누가 어떤 소리를 해도 그를 열렬히 옹호한다. 차베스가 국민을 직접 상대함으로써 대통령 한 사람으로의 권력집중과 포퓰리즘 경향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 있다. 하지만 빈민들은 『어느 지도자가 차베스만큼 우리에게 대해 줬느냐』며 목청을 돋운다.
 
  차베스는 자신의 측근들을 대통령궁과 정부의 요직에 앉혀 친위세력을 형성하고, 혁명적 조치들의 대리인 역할을 맡기고 있다. 집권 초기엔 전임 대통령 정부의 부정부패를 파헤쳐 자신의 당선을 도와준 언론인을 외무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늘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한 조치이며, 국민의 뜻과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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