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인물] 李秀赫

北核 6者회담 한국 수석대표

  • : 권경복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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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조율사」, 「北核 문제 한국 대표」
 
  지난 8월27~29일 중국 北京(북경)에서 열렸던 北核 6者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李秀赫(이수혁·54) 외교통상부 차관보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駐유고 대사를 지내다 盧武鉉(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만인 3월28일 차관보로 발탁된 그는, 5월 중순 韓ㆍ美, 6월 초 韓ㆍ日, 7월 초 韓ㆍ中 정상회담 등 새 정부의 세 차례 頂上회담에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이들 세 나라와 頂上회담을 한 결과인 공동성명을 각국의 핵심 외교 당국자들과 진통 끝에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또한 多者(다자)해결 구도를 통한 북한 核문제의 해결과정에서 그는 韓·美·日 對北정책협의회(TCOG)의 우리 측 대표도 겸직,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일본의 야부나카 미토지(♥中三十二) 외무성 아시아대양洲 국장과 5개월여 호흡을 맞춰 왔다. 당초 4월 말 北京 3者(美·北·中)회담에서 배제된 뒤 궁지에 몰렸다가 7월 초 워싱턴에서 열린 美·日과의 對北정책 협의회 때 현상동결 용의표명(standstill) ▲원상회복 조치(rollback) ▲北核과 안보우려에 대한 포괄적 해결(cruise)이라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해 美·日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내는 등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
 
  李차관보는 6者회담이 열리는 동안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영일 외무성 副相(부상)과 별도의 南北접촉을 갖고 미국의 對北정책에 대해 「훈수」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는 한반도 多者 회담의 틀 내에서의 남북간 외교접촉과는 인연이 깊은 편이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서울大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제9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에 발을 들여놓은 李차관보는 유엔 3등 서기관, 유엔 참사관 등을 거치며 비교적 뉴욕 사정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돼 왔다. 뉴욕은 사실상 미국內 북한 대사관 역할을 하는 駐유엔 북한 대표부가 있는 곳이고, 때문에 1997년 남북한과 美·中이 참여한 4者회담 때부터 당시 駐유엔 북한 공사였던 한성렬(現 차석대사), 한 공사의 후임인 리근 외무성 부국장(現 6者회담 차석대표)과 두터운 친분을 형성해 왔던 것.
 
  이번 6者회담 때도 「은이빨」(보통의 경우 썩은 치아를 치료할 때 금니를 하는 대신 은니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로 불리는 리 부국장과는 北核 문제에 관한 의견을 솔직하게 교환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나름대로의 「영광」 뒤에는 「시련」도 적지 않았다. 가령 4월 말 北京 3자 회담에서 한국이 배제됐을 때, 그는 『한국이 北核 회담에 반드시 참여한다』고 말했다가 한 방송 토론회에 참석한 盧대통령으로부터 『외교부 차관보가 「우리가 꼭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억지로 참여하려고 해서 (北核 회담) 판을 깨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고 직격탄을 맞았던 것.
 
  지난 7월 초, 2010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金雲龍(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아들 정훈씨를 救命(구명)하기 위해 정부 고위층의 지시를 받고 정훈씨가 체포됐던 불가리아로 출국하기 직전,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아 출국을 취소하기도 했다.
 
  李차관보에게는 희비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부담이 있다. 北核 문제로 對美 접촉이 많은 그에게 내부적으로 親美(친미)적 성향이 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對北 경수로 지원사업과 관련, 6월 중순 미국이 TCOG에서 기술적 이유 때문에 8월 말 경수로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했을 때 「경수로 중단 불가」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몇 달 후에는 더 이상 경수로 공사를 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가 있다』고 TCOG의 결과를 발표해 국내적으로 반발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李차관보는 이런 분위기에 담담한 편이다. 미국과 북한이 사실상 北核 문제의 키(key)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 집착하면 北核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논리에서다.
 
  실제로 『6者회담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 6者회담이 갖는 한반도의 장래에 영향 등을 생각할 때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그는 어떠한 비판보다도 현시점에서는 北核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라고 했다. 얼마전 주한 미국 대사관 공사참사관(부대사)으로 부임해 온 마크 민턴(Minton)씨는 1990년대 후반 4者회담 때부터 손발을 맞춰 온 李차관보의 오랜 知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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