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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우리 歷史의 改革을 말한다

생산과 安保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김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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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 1%의 하락이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과 얼마나 더 많은 가정에 부부싸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은 차마 잠이 오지 않아야 정상이다. 명분론 없는 개혁이 개혁이다

金 光 東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고려大 정치외교학과·同대학원 졸업. 한국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美 스탠퍼드大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고려大·숙명女大 강사 역임.
국민적 술안주가 된 「개혁」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개혁론자로 불리고 싶어한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이가 없다. 개혁은 역사적 당위가 되었고, 국민적 술안주가 되었다. 긍정적 변화를 의미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이론을 달며 거부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개혁은 금방 혁명적으로 완수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개혁의 목표와 내용이 다르다는 데 있다. 개혁과 변화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가치지향적 용어인 개혁을 말하고 있는데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곧 反改革(반개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盧武鉉 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민주당은 「개혁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反개혁적 정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이구동성으로 개혁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盧대통령과 민주당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美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었던 글렌 허버드는 『盧대통령은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개혁 세력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통치자에게 그 요구를 물리치고 반대로 가는 것이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개혁은 자체로 抽象(추상)이고 명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의 힘이 강해도 단 하나의 具體(구체)를 못 이기는 법이다. 抽象이 具體와 만나면 그 즉시 갈 길을 잃는다. 예를 들면 전북의 새만금 사업을 완료시키는 것이 개혁인지, 포기하는 것이 개혁인지는 구체적 현실의 문제다. 교육정보화시스템(NEIS)을 도입해야 하는지 아니면 좌절시켜야 하는 것인지, 일산-퇴계원 간의 순환고속도로를 계획대로 완료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는 모두 실존적 구체의 문제인 것이다. 개혁의 잣대를 들이대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허구적 논쟁을 좋아하는 명분론적 개혁론
 
  우리 사회에 개혁론이 창궐하는 것은 유교적 명분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유교적 세계관은 세계를 善(선)과 惡(악)으로 나누고, 옳은(正) 세력과 그른(邪) 세력으로 나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은 늘 善과 정의로운 세력이라고 자부하며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공격하게 마련이다.
 
  正과 反이 있어야 合으로 갈 수 있다는 헤겔(Hegel)의 변증법적 발전논리나, 파벌이란 자연스런 것이고 부분 진리를 갖고 있기에 파벌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공동선을 찾자는 메디슨(Madison)적 사고가 살아남기 힘들다.
 
  이와 같은 善惡논리의 근원은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며, 「하늘의 명」(天命)이 발현될 수 있도록 수양해야 한다는 맹자의 人性論(인성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하늘의 품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논리는 한편으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法家(법가)나 荀子(순자) 사상, 혹은 서양의 原罪論(원죄론) 등과 달리 인간 자신에 대해 과대망상에 빠지도록 만들며, 다른 한편으론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문물이나 인간을 견제해야 할 제도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관념적 명분론은 문물과 제도의 발전을 통해 국민의 후생을 증진시키고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사고가 사라지고, 어떻게 자기가 머리 속에 그린 이상적 도덕국가를 이 땅에 실현시킬 것이냐에 몰두하게 만든다. 나아가 명분론은 보이는 것과 구체적인 것을 무시하고 보이지 않고 추상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식론으로 발전하며, 다른 인식과 논리를 가진 상대방을 배제·척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회에는 決死鬪爭(결사투쟁)이 난무하고 衛正斥邪(위정척사)가 대단해 보인다. 구체적 현실을 극복해 나가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正義와 善의 세력이기에 결국 이길 것이며 지금 지더라도 명분에서 이기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도 개혁을 가장 앞세운 「개혁국민정당」은 당 강령을 통하여 『사익과 당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투쟁을… 단호하게 배격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누가 봐도 파당적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투쟁임에도 자신들은 단연코 그런 것이 아니며 반면에 남들은 모두 파당적 이익의 추구자라고 거리낌없이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관념적 명분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정부라는 盧武鉉 정부가 安熙正은 「정치적 양심수」이고 廉東淵은 「시대적 희생양」이라 떳떳이 말한다.
 
  후원회장 李基明을 비롯한 주변 사람의 행위는 「우호적 거래」이며 「선생님이 겪는 고초」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율곡 이이는 『영예와 치욕이 뒤바뀌니 어찌 붕당을 만들어 싸우지 않겠느냐』고 한탄했던 것이다.
 
  명분론적 개혁론은 格物致知(격물치지)를 배격하고 무엇이 「근본」(本)이냐는 허구적 논쟁을 좋아한다. 무엇을 했고, 해야 하느냐보다 그가 어디 출신이냐 혹은 적자냐, 서자냐를 따지기부터 한다. 혈통과 코드를 따지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자신이 축적해 온 家産(가산)을 이어받아 갈 사람을 중시하고, 일본사람이 자신이 일구어 오던 家業(가업)을 이어갈 사람을 중시하는 사고와 달리 우리는 오직 혈통적 家系(가계)를 중시하는 이유도 관념적으로 근본을 따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누구와 가장 많이 피를 나누었느냐 하는 적통을 중시한다. 그만큼 「일」 중심이 아니라 「피」(血統) 중심이다. 결과는 혈통을 중시하는 譜學(보학)이나 예절을 중시하는 禮學(예학)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학에 들어가 민족해방(NL)계 선배를 만나면 NL파가 되고 민중혁명(PD)계 선배를 만나면 PD파가 되어 그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상논쟁이 객관적 사실과 투쟁의 결과를 검증하기 전에 NL이냐, PD냐를 먼저 따지는 풍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을 지향한다는 학자들의 학술회의를 하는 데도 토론자가 호남 출신이냐, 영남 출신이냐를 먼저 따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4800만 인구에 세계 12위 규모의 국가를 통치하는 데도 盧武鉉 정부는 코드가 맞는 사람이냐를 따지는 일도 다 역사적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개혁을 관념적 명분에 빠지게 한 조선왕조
 
  우리 역사의 개혁이 방향성도, 구체성도 없는 관념적 명분에 빠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역사를 짓누르는 조선왕조가 士大夫(사대부)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는 나라를 구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수도 없는 파벌과 파당이 명멸했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인 것처럼 비춰졌던 士禍(사화)와 換局(환국)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조선 사대부가 결국은 명분의 늪에 빠져 끝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라의 안보를 남에게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셋째는 변화하는 세계로부터 은둔하는 폐쇄주의적 태도다.
 
  사대부는 백성들의 삶의 바탕이자 부국강병의 요체인 농업, 공업, 상업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그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오히려 천하게 여겼다.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이를 천히 여기면서 개혁을 말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조선 정치사의 「개혁」이 근본적으로 결코 개혁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구체적 생산과 동떨어지고 백성의 삶에 吾不關焉(오불관언)이었기 때문이다. 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니 생산적 학문이 필요할 리 없었고, 힘든 노역에 시달리는 일을 하지 않으니 기계를 만들거나 무역을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理氣一元論(이기일원론)이니 四端七情論(사단칠정론)이니 하는 空論(공론)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에게는 그들이 떠받들던 맹자가 강조한 不恒産, 不恒心(불항산에 불항심)도 다 남의 얘기였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 역사의 주도세력은 자기 나라를 자기가 지키지 않으려는 잘못된 습성을 가져 왔다. 大國(대국)에 의존해서 자신을 지키겠다는 준노예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임진년(1592) 일본의 침략도 明나라에 구걸해 겨우 해결했다. 불과 40여 년 지난 병자년(1636)에는 明나라가 淸나라의 침략을 막아 주지 못하자 인조 대왕은 淸 태종 앞에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굽히며 새로운 신하 나라가 되겠다고 했던 것이다.
 
  국토가 참화를 입고 백성이 죽고 노예가 되는 大전란을 겪고도 사대부는 태연했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時에 貞操(정조)를 잃은 여인들을 가문에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조정의 탁상공론은 끊이지 않았다. 처참히 유린된 국가와 왕조의 貞操에 대한 얘기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19세기에 들어 일본 진출을 더 이상 막을 길이 없게 되자 또다시 淸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실패했고, 다음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다 결국 식민지의 길을 가고 말았다.
 
  자기 자신을 자기 힘으로 지키려고 하지 않는 근성은 그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먹고 사는 것을 겨우 미국의 도움을 얻어 해결하면서도 『평양 가서 점심 먹고, 신의주 가서 저녁 먹는다』고 큰소리만 치더니 북한 공산주의의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내주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 후에도 주한미군에 의존해 나라를 지키더니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하자 급기야 북한의 핵무기는 우리 문제가 아니고 북한과 미국 문제라며 남의 일처럼 여기는 뻔뻔함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땅에 머리를 처박고 보지 않으면 된다라는 식의 「꿩」과 같은 유약함과 비겁함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국가주권의 가장 기본적 문제인 안보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남에게 맡기는, 긴장이 없는 나라의 주도세력이 할 수 있는 것은 空理空論(공리공론)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명분을 움켜쥔 사대부는 밖에서 펼쳐지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밖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인 1492년에 벌써 작은 나라인 포르투갈이 대륙 발견에 나서고 식민지 경영에 나선 것이나, 이미 일본이 네덜란드 등과 교류하던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활」이라는 전통무기로 일본 조총에 맞서야 했던 충격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淸나라로의 東아시아 세력교체 과정에 처참한 굴욕을 겪었으면서도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고민은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국토를 유린시키고, 백성을 노예로 보내고, 나라의 재물을 실어보내는 일을 통해 해결해 온 것이다.
 
  세계가 어떻게 가고 있고, 백성의 삶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직 자기主義(주의)만을 펼치면 되었다. 사라지고 있던 明나라에 충성을 변치 말자며 淸과의 화전론을 공박하며 결사항전론을 주장하던 金尙憲의 명분은 역사에 빛나게 되었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며 『싸우지 않으면 화해요, 화해는 나라를 파는 것(非戰則和 主和賣國)』이라고 했던 대원군의 기개는 타의 귀감이 되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세상을 논하고 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개혁은 不姙者들의 몫
 
  구체적 개혁은 생산을 증진하는 것이고, 나라를 확고히 지키는 것이고, 세계 변화를 따라잡고 주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활동에 참여하지도 않고, 나라를 지키지도 않고, 또 세계변화에 문을 닫아 건 사대부가 해야 할 일은 권력투쟁이다. 할 일 없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권력이다.
 
  더구나 개혁의 구체적 목표도 없고 그 목표에 관심도 없는 세력에게 가장 큰 개혁은 명분을 가진 우리가 상대방을 권력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그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고, 그것이 개혁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것이다.
 
  개혁을 내건 권력투쟁은 권력으로 남보다 많이 가질 수 있고 남의 것을 빼앗자는 것이지만 그 내면에 깔린 것은 虛名(허명)의식이다. 만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관직이라는 직위를 차지해야 했던 것이다. 무엇을 했느냐는 묻지 않는다. 오직 어떤 직위와 직책에 있었느냐가 중시될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관직을 향한 투쟁이 되었고, 그 방법은 파당을 만들고 우리 파당이 권력투쟁에서 이기는 일이다.
 
  그 결과 개혁의 구체적 내용을 만든 사람들은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란 공통성을 갖는다. 개혁은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이거나 적서차별로 소외된 사람, 혹은 선진문물이 소개되고 있던 중국 北京에 다녀온 사람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당파투쟁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하거나 농민과 어민의 생활을 어깨 너머로 보며 실학사상을 펼치게 되었다. 또 중국 燕行(연행)에 끼어 갔다 온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감지하게 되어 북학파가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개혁은 不姙者(불임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사대부가 중심이 된 유교적 정치이념의 틀은 王道政治(왕도정치)로 가게 만든다. 정치를 윤리와 도덕으로 전환시켜 버린다. 왕도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聖君(성군)이 나타나야 하고 哲人君主(철인군주)의 도래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성군도, 철인군주도 나타나지 않는 현실에 비분강개하며 결국은 자기가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하고 자기가 善이고 개혁세력이므로 남이 하는 것은 邪(사)한 것이고 명분에 어긋나는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연산군의 패륜을 딛고 일어선 중종이나, 광해군의 反윤리를 뒤엎고 일어난 인조시대 이후의 정치가 그것이다. 새로운 세력이 문제시한 것은 늘 도덕과 윤리의 문제였고 도덕을 바로 세우는 문제, 나아가 禮를 바로잡는 문제를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에 따라 사림파를 등용하게 되며 명분론적 도덕국가를 지향하게 된다. 그래서 유교적 도덕규범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유교윤리를 내면화시키면서 향약으로 향촌질서를 잡아 나간 결과 국가는 도덕국가라는 명분과 달리 삼포왜란,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을 겪으며 해체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왕도정치는 德治(덕치)고 覇道政治(패도정치)는 法治(법치)다. 왕도정치는 仁(인)을 실천하는 것이고 패도정치는 힘(力)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德과 仁이 추상이요, 법과 힘이 구체라는 데 있다. 세계 인류사에서 그 어느 나라에 왕도정치가 실현되고 도덕국가가 완성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오직 이상론적 국가상이었을 뿐 실현되지 않는 현실이다. 오히려 법가사상에 기반한 秦(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사회에 안정과 질서를 부여했으며 12동판법이라는 보편적이고 확고한 법에 기반했던 로마제국이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고 그 문화가 천년간 세계를 좌우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패도정치다. 패도 없이 펼쳐진 왕도도 없다. 부국강병론을 대체하고자 하는 도덕국가의 완성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패도정치의 대표적 성공사례였던 齊(제)나라의 管中(관중)은 의식이 족하고 창고가 가득 차야 비로소 예절과 영욕도 알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패도정치라 비판을 받더라도 백성과 국가의 富를 확대시키기 위한 경제정책을 펼쳐 나가고 분업을 장려하고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화폐유통을 장려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왕도를 말하면서 衣食(의식)을 만들지 않고 창고를 채우지 않으며 벌이는 조선 사대부의 禮訟(예송)논쟁이야 말로 德과 仁을 말하면서 백성의 삶을 팽개치고 오직 자기 권력의 확대와 상대방 권력의 쟁취에만 몰입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空論的 개혁과 국민후생
 
  개혁은 구체적으로 국민의 厚生(후생)과 관련되어야 개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종대왕의 통치다. 훈민정음의 창제논리는 너무도 간단했다. 『사람들이 익혀서 쓰기에 편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 최초라는 측우기나 앙부일기(해시계) 등의 발명과 보급이 그것이다. 그와 같은 국민후생에 대한 노력은 기득권 폐지와 투명 조세를 위한 大同法(대동법)의 도입에 목숨을 건 金堉(김육)이나 기계의 원리를 이용해 성을 쌓는 부역자의 노동력을 감축시키기 위해 만든 정약용의 擧重機(거중기)로 이어져 왔다.
 
  개혁론이 가진 고도의 추상과 명분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구체성의 사다리」를 타고 끝까지 내려가는 일이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오른쪽 세 집과 왼쪽 세 집의 구체적 삶을 살피는 일이다. 세탁소를 하는 집도 있고 무역회사에 다니는 직원도 있을 것이며 옷장사를 하거나 건설업체 노무자도 있을 것이다. 개혁이란, 커다란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며 단지 주변 이웃의 삶을 윤택하게 개선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일 뿐이다. 그렇기에 정치세력이 내거는 개혁이란 명분은 이웃의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 개혁이란 「선혈이 낭자한 권력투쟁」을 감추는 명분이란 가면일 뿐이다.
 
 
 
 지표화되고 겸손한 개혁
 
  명분이 무서운 이유는 권력을 좇는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고 자신은 남다른 무언가를 지향하는 중심세력이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혁은 명분이 아니라 지표로 나타나야 한다. 지표로써 그 목표를 분명히 하지 않을 때 개혁의 방황은 시작된다. 그러다 보면 개혁은 어느덧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과시와 집착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새만금 사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경인운하 건설도 재검토하자, 교육정보화시스템(NEIS)도 재검토하자, 일산-퇴계원 간의 순환고속도로도 재검토하자, 대구-부산 간 고속철도도 재검토하자는 것 등이 그것이다.
 
  어느덧 개혁이 기존 논의를 중단시키거나 바꾸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목표는 크게는 경제성장률, 실업률, 물가상승률 혹은 1인당 국민소득 등으로 나타나야 하고, 좀더 작게는 해외투자유치 규모, 국제 투명성기구의 투명지수(TI)의 提高(제고)나 부패지수의 개선, 혹은 국제기구의 국제경쟁력 순위나 투자여건 지표의 개선 등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그것은 개혁을 한다며 또다시 「역사 바로 세우기」나 「제2의 건국」으로 비약하여 가슴만 부풀게 만드는 막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기계파괴운동인 러다이트 운동도 개혁처럼 보이고, 세계화반대운동도 개혁처럼 보이고,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도 개혁처럼 보이는 법이다. 개혁의 목표가 분명하고 지표화할 때 써야 할 사람도 분명해진다. 개혁적인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개혁적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개혁세력일 뿐이다. 당파냐 코드냐와 같은 출신을 따질 것이 아니라 당면 목표를 완수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을 털어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혁하겠다며 펄펄 뛸 때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예가 없다. 역사 앞에 겸손한 권력만이 역사에 기여했다. 모든 실질적 개혁은 국민후생만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나아갈 때 가능한 것이다.
 
  경제성장률 1%의 하락이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10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과, 얼마나 더 많은 가정에 부부싸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은 차마 잠이 오지 않아야 정상이다. 명분론 없는 개혁이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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