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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북한의 경제개혁 예언한 朴振煥 前 대통령 경제特補

『시장경제에 발목잡힌 金正日 정권에 退路는 없다』

김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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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外貨 부족→原油 수입 중단→電力難→水利시설 가동 중단→식량난
● 북한도 수출주도형 경제로 전환해야 식량난 등 극복가능
● 1개 郡當 暗 시장 2~3개, 북한 전역에 약 450개
● 러시아에서는 농지 私有化 後에도 농업주식회사 형식의 집단영농 고집, 농업생산성 향상에 실패,중국에서는 토지이용권 부여 통한 家族農허용으로 성공
●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는 러시아처럼 惡性 인플레이션에 휘말릴 가능성 높아
● 對北농업투자는 북한의 계획경제,집단농업 개혁 후에
● 外資유치 위해 신의주 特區 설치했으나 사회간접자본 미비 등으로 투자할 기업 없을 것
시장경제로의 둑은 터졌다』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남포직할시 용강군 성암협동농장 농민들이 옥수수를 탈곡하는 모습
  朴正熙 대통령 시절 대통령 경제담당특별보좌관으로 새마을 운동의 전개에 一助했던 朴振煥(박진환) 박사는 지난 4월 「북한의 파탄된 계획경제와 暗시장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朴振煥 박사는 非공식적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과 북한당국이 사들이는 곡물 수매가의 차이가 수백 배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농민들의 增産(증산) 의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당국도 낮은 곡물가격을 유지하며 배급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손실을 감수해야 하는데 결국 버틸 수 없어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朴振煥 박사가 그런 예상을 한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북한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대대적인 가격조정을 했다. 쌀값을 무려 200배나 올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약 18배 올리는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배급체계의 근간인 곡물을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을 포기하고 배급가격을 시장가격과 동일하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시장가격에 정부가격을 맞춘 것이 되었다. 이를 두고 朴振煥 박사는 『북한이 시장경제로의 길에 들어섰고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이라고 단언한다. 『시장경제로의 둑은 터졌다』는 것이다.
 
  지난 9월6일 7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농촌경제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朴振煥 박사를 관악산 기슭에 있는 자택에서 만나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의 의미와 그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所有는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는 위력을 나타낸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朴正熙 대통령 서거 後 어떻게 지내오셨는지 그 동안의 근황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1979년 朴대통령 서거 후 9년간 일했던 경제특보 자리에서 물러나 1980년부터 1992년까지 農協대학 학장으로 일했습니다. 사실 朴대통령 서거 이후 10여년간은 朴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풍토 속에서 제가 설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 바람에 아무데도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농업문제만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5년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다 퇴직한 10여 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북방농업연구소」를 설립, 극동러시아와 중국 흑룡강성의 농업과 농촌에 관한 현지 실험사업과 답사를 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농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연구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앞으로 중국의 농업과 농촌에 관한 연구는 계속할 것입니다』
 
  ―왜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농업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내 전공이 농업경제학이다 보니,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단농업을 하게 되면 왜 생산성이 떨어지는가? 그리고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는 왜 오히려 농촌인구가 증가하는가?」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집단농업이 폐지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향후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규명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朴振煥 박사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러시아의 沿海州(연해주) 및 아무르州에 체류하면서 현지의 농업실태에 대한 연구를 했고, 중국 흑룡강성內 조선족의 벼농사와 삼강평원 등 국영농장의 벼농사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고 한다.
 
  ―중국은 토지 소유권만 없지 자본주의 체제의 농업과 다를 바가 없고, 러시아도 땅이 커서 企業農 형태이기는 하나 이미 토지의 私有化까지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分組 관리제 같은 농업개혁조치가 있었는데, 북한 농업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북한 식량문제의 근본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공산주의 체제 자체에 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초기에는 理想國家(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의욕이라도 있었지만, 몇십 년이 흐르면서 이제 국민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서양 속담에 「所有는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는 위력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듯이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일할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충성다짐의 시대는 벌써 지났고 이제 자기가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外貨 부족→原油 수입 중단→電力難→水利시설 가동 중단→식량난
 
  ―북한에서는 그동안 30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최근의 식량사정의 현황은 어떻다고 보아야 합니까?
 
  『북한의 糧穀(양곡)은 쌀과 옥수수인데, 1996~2000년 북한에서 생산된 양곡은 年평균 300만t입니다.
 
  북한에서 생산된 옥수수 중 가축사료용으로 배당되는 것은 年間 30만t(10%)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食用으로 소비됩니다. 食用으로 이용되는 270만t의 쌀과 옥수수를 북한 인구로 나누면 결국 1인당 소비할 수 있는 양곡의 量은 1년에 123㎏에 불과하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축산물 등 고기나 밀가루 음식, 생선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양곡이 먹을 것의 거의 전부인데 1인당 한 달 약 10kg으로 버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1996~2000년 동안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곡류는 연간 175만t 정도인데, 이는 북한의 양곡 생산량의 58%나 됩니다. 북한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 대부분 외국이나 국제기구로부터의 無償원조에 기대고 있는 것입니다.
 
  논과 밭이 비교적 많은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는 그런대로 버틸 만하지만, 인구에 비해 농토는 거의 없는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등의 지역은 대부분 기아상태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럭저럭 지난 50년간 버텨 오던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식량사정이 이렇게 급속도로 악화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 外貨 부족 때문입니다. 외화가 없으니 原油 輸入(수입)이 감소되고, 나아가 비료, 농약, 그리고 농업용 비닐의 원료까지도 수입이 중단되게 됩니다. 무엇보다 원유 수입의 감소는 電力難(전력난)을 가져왔고, 電力 부족은 비료공장의 가동률을 떨어뜨렸지요.
 
  북한의 水利시설은 높은 곳에 저수지를 건설하여 물을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게 하면서 논에 물을 공급하는 체계가 아니라, 낮은 곳의 저수지에 물을 가두었다가 電力을 이용해서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電力 부족으로 揚水場(양수장)의 모터들이 가동되지 않게 되자 높은 곳에 있는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原油 부족으로 트랙터와 농업용 트럭의 가동이 중단되고 소달구지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필요한 원유를 국제시장으로부터 수입하기 위해서도 하루 빨리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출주도형 경제로 전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북한의 농업을 비롯한 경제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의 暗시장 : 郡당 2, 3개, 북한 전체적으로 약 450개
 
  ―지금 북한에서는 농민시장이 활성화되어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커졌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국가가 제정하는 가격을 暗시장 가격에 맞추는 7·1 경제조치까지 단행하였습니다. 暗시장인 농민시장(장마당)의 규모와 활성화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농민시장이란 것은 원래 소비에트 공산주의 시작부터 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국가계획경제로 해도 매일매일 먹는 채소나 副食 같은 것까지 계획경제와 배급제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련에서 농민시장을 허용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 중 남는 것을 농민시장에 내면서 점차 확대되다가 배급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1990년대 중반기에 들어 식량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품까지 거래되는 정도로 커졌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暗시장은 본래 물자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暗시장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북한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식량과 소비용품들을 제대로 배급해 줄 수 있었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싹이라고 할 수 있는 농민시장을 강권으로라도 없애 버렸을 것입니다. 脫北者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통 1개 郡당 2,3개씩, 북한 전체에 약 450개 정도 있고 큰 시장은 웬만한 남한 시장만 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暗시장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요인은 실업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아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실업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아무라도 뛰어들 수 있는 暗시장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함경도 일부지역에서 가구당 400평까지 개인영농제가 시범 실시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농민 시장에 출하되는 농산물들을 생산해 내는 「텃밭」과 「뙈기밭」의 규모, 그리고 그것이 농민시장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시죠.
 
  『舊소련의 텃밭은 가구당 1500평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소련 농민들은 채소도 기르고, 가축도 길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텃밭의 크기는 가구당 15평에서 30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작은 평수이지만 북한 농민들은 텃밭에서 자기가 먹을 것은 물론이고 농민시장에 내다 팔아 현금수입이 될 만한 작물들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텃밭과는 달리 뙈기밭은 음성적으로 조성된 임야나 산간지역의 밭을 말합니다. 북한 당국도 식량 수입이 어려워지자 경사진 산지에까지 옥수수를 심기 위해 합법적으로 개간을 허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산림 개간은 취사와 난방용 땔감을 구하기 위해서 더 적극화되었습니다.
 
  1976년부터 실시해 온 다락밭 조성사업이 있기는 했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배급이 실질적으로 중단되자 농민들 사이에서는 생존차원에서 주변 산지를 개간하는 뙈기밭 가꾸기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뙈기밭은 북한의 식량난을 완화하고 농민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무차별적인 개간으로 산림 훼손과 土砂(토사) 流失(유실), 그리고 그에 따른 한발과 홍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배급중단으로 직장에는 출근 도장만 찍고 뙈기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됐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장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 근처나 산에 일군 뙈기밭 농사에 인생을 건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뙈기밭이 없는 집이 없고, 이제 협동농장은 副業이고 뙈기밭 농사가 本業이 된 것입니다』
 
 
 
 집단영농 전통 강한 러시아에서는 個人農육성에 실패
 
  ―러시아에서 개혁 개방 이후 집단농장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舊소련 집단농장의 평균 농경지 면적은 약 7000ha였고 여기에 종사하는 세대수는 평균 400호 정도였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개혁과정에서 집단농장에 근무하던 종업원들에게 1인당 15~20ha 정도의 農地私有증권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農地私有증권으로 자기 몫의 농지를 분할받아 개인농장을 시작한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다수 농민은 자기 몫의 토지를 持分(지분)으로 하여 집단농장을 주식회사 형태의 농장으로 개편하여 사실상 집단농업을 그대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식회사 농장은 주인들이 너무 많은 대신에 아무도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거대한 농장일 뿐입니다.
 
  그 때문에 농민들은 私的 소유의 위력을 나타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주식회사 농장들의 생산성은 계획경제 시대의 그것보다도 낮아졌고, 농민들의 생활 수준도 높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1917년 이래로 오랜 기간 계획경제와 집단농업을 해 왔기 때문에 시장경제에 알맞은 개인농업으로 가는 데 제약 요인들이 너무 많아 그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러시아 농민들은 家族農 또는 個人農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적은데, 평생토록 집단농장에서 分業化된 농업노동만 해 왔기 때문에 혼자서 농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경영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최근 「농지거래법」이 통과되었는데, 이것이 個人農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중국은 일찍부터 집단농업을 폐지하여 가족 단위로 독립경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도한 鄧小平(등소평)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국인구의 약 80%를 차지한 농민들에게 가족 단위로 자기 농사를 짓게 해 줌으로써 농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지를 기반으로 중국 정부는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할된 농지는 所有權(소유권)은 아니고 45년간의 利用權(이용권)이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토지시장에서도 토지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토지이용권에 대한 매매(농지 이용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ha당 농지이용료(일종의 소작료)는 쌀 생산량의 약 20%,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10% 정도입니다. 이렇게 농지 이용료를 내고 농지를 빌려 영농규모를 확대하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의 길에 들어선 북한에게 退路는 없다』
 
  ―북한이 지난 7월 시장가격과 정부 배급가격을 일치시켰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관측들도 있습니다. 향후 북한 경제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북한의 총체적 물자부족 현상의 원인은 전적으로 북한이 지구촌에서 유독 계획경제를 고집하고 있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길 이외는 없다고 봅니다. 시장경제로 전환하면 집단농업은 생산성이 낮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북한농업도 家族農 또는 個人農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2002년 7월1일 물가와 봉급을 인상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인지, 아니면 파탄된 계획경제를 좀더 연명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시장경제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고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 이외는 그 어떤 退路(퇴로)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그 동안 경제발전보다는 전쟁준비와 체제유지를 위해 한정된 자원들을 배분해 왔습니다. 북한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면 전쟁준비를 위해 배분되던 자원을 시장경제의 개발을 위해 투입하는 개혁부터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계획경제를 실시하던 나라들이 시장경제로 전환될 때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시장경제에 알맞게 바꾸어지는 속도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계획경제를 포기하고서 시장경제로 전환하였을 때 중국 국민들은 시간적인 차질이 거의 없이 시장경제에 알맞은 생각과 행동으로 바꾸어짐으로써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자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에서도 체제전환 과정에서 시장경제에 맞는 제도와 행동양식의 변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북한도 惡性 인플레이션에 말려들 가능성 높아
 
  ―러시아, 중국과 비교할 때 북한은 어느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까?
 
  『러시아에서는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시장쇼크(Market shock)를 겪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시장경제로 전환하자 총체적인 물자부족으로 소비자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자는 증산되지 않는데 통화량만 늘어나면서 惡性 인플레이션에 말려든 것입니다. 그 결과 1992년 러시아의 소비자 물가는 前年대비 무려 26배로 높아졌고, 1993년도의 물가는 前年대비 8배 증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루블화 환율은 1991년에 美貨 1달러當 6.5루블이던 것이 1995년에 와서는 美貨 1달러當 6500루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惡性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러시아 국민 모두가 가난해졌습니다.
 
  북한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의 중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적지 않은 시장쇼크를 겪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총체적인 물자 부족상태에 있기 때문에 惡性 인플레이션에 말려 들어갈 소지가 높은 것이 가장 우려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30만t의 쌀을 지원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군량미로 사용될 것이다」, 「평양시민들에게 배급될 것이다」 등 말이 많은데 어떻게 분배되는지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先軍정치의 의미를 농업과 관련해서 보면 軍이 농업생산을 통제하고 농업생산물의 우선적 처분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원되는 쌀에 軍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평양市에 거주하는 사람들 자체가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기에 평양市부터 배급받는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평양市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와 내륙지방으로 갈수록 권력으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은 한국쌀은 구경도 못 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당국이 主穀의 가격과 임금을 높인 이번 조치에 대해 식량난에 허덕이는 공업도시 주민들, 특히 북한의 동부지방에 있는 함경 남북도, 강원도, 그리고 내륙 산간지역의 식량난을 가중시킬 것이며, 이 지역은 그 동안에도 정부의 식량배급이 미치지 못한 지역이었다고 보고했는데 맞는 사실일 것입니다』
 
 
 
 對北 농업투자에 앞서 계획경제·집단농업부터 개혁되어야
 
  ―우리가 본격적으로 북한의 농업부문에 투자 혹은 지원을 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시켜야 될 것으로 보십니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견해를 달리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농업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계획경제와 집단농업이라는 제도개혁이 투자보다도 先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획경제와 집단농업下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투자해도 결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 한국에서 농업부문에서의 外資는 주로 농업 관련 교육자·연구원·공무원들의 해외연수, 농업연구 및 교육시설 현대화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농업부문의 外資는 한국 농업의 物的 자본 형성에 투입되기보다는 농업부문의 人的자본을 형성하는 데 투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 농업 지원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선진화되면 농업도 선진화되는 것이 농업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농업의 비료·농약문제, 농기계 문제, 양수장 시설의 현대화, 電力공급 등의 문제들은 북한이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수출주도의 공업화가 이룩되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입니다. 산업이 발전하면 농업은 당연히 발전하기 때문에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해서 對北 지원이 농업부문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투자대상을 북한이 外貨를 벌어들일 수 있는 공업부문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농업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농민들이 50년 이상을 계획경제下에서 집단농업을 하면서 바깥 세상과는 단절되어 살아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북한의 농업인과 농업관련 인사들이 중국이나 남한에 와서 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 북한 농업을 빨리 발전되게 하고 식량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신의주 特區 앞날 어두워
 
  朴桭煥 박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인 9월12일 북한은 전격적으로 신의주 경제特區 설치를 발표하였다. 신의주 特區 설치는 한때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나, 신의주 特區장관으로 임명된 楊斌(양빈) 歐亞(어우야) 그룹 회장이 돌출적 言動 끝에 10월4일 非理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되면서, 일단 초기의 기대는 상당히 식었다. 朴桭煥 박사에게 신의주 경제特區 설치 등에 대해 추가로 물어보았다.
 
  ―DMZ를 일부나마 허무는 東海線 철도연결 착공도 그렇고, 그 이후 신의주 경제特區다, 개성공단 계획이다, 최근 북한이 각종 발표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이 왜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 경제는 이미 파탄난 계획경제입니다. 그 파탄상태에서 벗어나 경제개발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역시 외국자본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신용도가 낮아 外資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다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신의주 特區나 다 그런 맥락입니다.
 
  특히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外資가 투입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이 그 부분에서 엄격한 요건을 부여하고 있어 진전되는 것이 없자 더 다급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진·선봉 特區의 실패에 이에 이번에는 신의주 特區를 파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시작부터 차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의주 特區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홍콩은 100년 前 영국 租借地(조차지)로 되면서부터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한 기간도 비교적 짧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50년 이상 계획경제와 집단농업, 그리고 배급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단지 특정 지역인 신의주에만 자유기업을 보장해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에 의한 신의주 特區가 북한의 경제발전에 미칠 파급효과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에 투자한 남한 기업들이나 외국기업들 모두가 큰 손실만 입고 철수했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런 경험이 있는 기업 등 해외 경제주체들은 북한의 경제제도, 관료, 북한 주민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위탁가공 생산이나 하면서 북한이 변할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투자의 기본요소인 금융·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이 결여되어 있는데, 투자하라고 투자할 기업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特區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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