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 誠 珉
1963년 출생. 서강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 케임브리지大 세인트 존스 대학 연구소에서 「현대 영국과 국제문제」 과정 이수.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장·국회의원(제16代) 역임. 저서 「한국의 대통령과 권력」, 「강대국의 유혹」,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리포트」,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등.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는 다르다』 1963년 출생. 서강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 케임브리지大 세인트 존스 대학 연구소에서 「현대 영국과 국제문제」 과정 이수.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장·국회의원(제16代) 역임. 저서 「한국의 대통령과 권력」, 「강대국의 유혹」,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리포트」,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등.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한창 증폭되고 있던 올해 2월 필자는 韓美정상회담 관계로 서울에 온 백악관의 한 관리를 만났다. 대화 도중 필자는 한반도 위기설을 거론하면서 『미국이 왜 북한과 미사일협상을 再開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불량국가(Rogue State) 북한과 무슨 협상을 벌이라는 것인가?』라며 오히려 나에게 反問하는 것이었다.
몇 주 전 미국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포럼에서 필자는 워싱턴의 공화당 정책 브레인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을 설명하면서 『만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또다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 Tactic)을 펼친다면 미국은 바로 군사공격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며칠 후 林東源 特使의 訪北과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再開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4월24일 콜린 파월 美 국무장관은 上院 歲出(세출)위원회에 출석해서 북한의 대화재개 메시지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제 美北관계는 지난 15개월 간의 지루한 탐색과 힘 겨루기를 끝내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이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 역시 그 성격과 含意(함의)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美北대화는 단순히 「교착-대화-교착」으로 이어지는 주기적 사이클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美北대화의 주도권이 북한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국면」이다.
클린턴 행정부 8년 동안 美北협상의 주도권은 사실상 그리고 항상 북한이 쥐고 있었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의 非확산이라는 脫냉전기 미국 세계안보전략의 핵심의제를 「벼랑 끝 전술」로 先占함으로써 미국의 타협을 유도해 냈으며, 이 과정에서 경제적 實利와 美北관계 정상화를 추구해 왔다.
예컨대 1993년 북한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특별사찰을 둘러싸고 美北간에 교착국면이 발생하자 NPT(핵확산금지협정) 탈퇴라는 超강수를 선택했다. 이는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봉쇄냐, 아니면 타협을 통한 개입이냐는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클린턴 행정부를 몰아갔다. 주지하다시피 클린턴 행정부는 後者를 선택함으로써 1994년 美北관계 개선의 礎石(초석)인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가 도출됐던 것이다.
1998년 8월에도 북한은 美北 미사일 협상을 앞두고 금창리 지하 核시설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多단계 長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는 윌리엄 페리 前 국방장관을 對北정책조정관에 임명하고 對北정책을 再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페리 프로세스」라는 對北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의 로드맵(Road Map)을 확정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과 정책 브레인들은 「북한에 끌려 다녔던」 클린턴 행정부 8년 간의 對北외교 경험을 미국 외교사의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다소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네바 합의와 페리 프로세스에 대한 공화당 강경파와 부시 행정부의 근본적인 不信 역시 여기에 기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세계 유일 超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 불량국가, 경제마저 파탄난 한반도 반 쪽의 조그마한 공산주의 국가에게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끌려 다녔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 청사진이라 할만한 「아미티지 보고서」는 이미 1999년에 다음과 같이 처방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對北 포용정책을 대체할 「새로운 접근법」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외교적 주도권을 다시 잡는 것이다. 미국의 對北정책은 거의 북한의 도발(또는 요구)과 미국의 반응이라는 循環(순환)고리 속에서 반사적으로 대응해 온 것이었다.
이제 우리가 한 걸음 앞서 행동하고, 의제를 우리가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 보강된 군사적 억제장치를 통해 만일 외교가 적합하지 않다고 입증될 경우 우리가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표명함과 동시에, 안보에 도전하는 요인들을 모두 통합시켜서 외교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5개월 동안 부시행정부의 對北외교는 무엇보다 대화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링 밖의 신경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6월6일 「對北정책 再검토 결과」를 통해 4개항의 「협의」 아젠다를 북한에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북한 核동결에 관한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계획에 대한 검증 가능한 억제 ▲북한의 미사일 수출 금지 ▲북한 재래식 武力의 위협 감소 등이다.
부시 행정부의 「봉쇄적 포용정책」
이후 미국은 『우리는 이미 대화의 아젠다를 제시했다. 대화재개 여부는 북한이 그것을 수용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취해 왔다. 그리고 때로는 냉담함으로, 때로는 화해의 제스처로, 때로는 군사적 위협의 메시지로 자신들이 차려놓은 대화의 테이블에 북한이 나오기를 압박해 왔던 것이다. 요컨대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차린 테이블에 우리가 불려갔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차린 테이블에 너희들이 불려올 차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간 부시 행정부가 발표해 왔던 冷湯·溫湯式의 혼란스러운 對北성명들은 단순히 强·溫派의 정책 갈등이나 對北 無대책의 발로가 아니라 주도권의 확보를 일관되게 지향하는 전략적 발언들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美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의 대화재개 메시지를 수용하면서 『북한이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여 이를 반영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그간의 소회를 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제 미국은 분명 對北 외교의 주도권을 확보함으로써 아미티지가 말한 「첫 번째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對北 외교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지 15개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미국의 對北 정책을 적절히 표현할 용어를 찾지 못한 채 막연히 「강경정책」(Hawkish, Hard-line Polic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은 강경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 혹은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한 반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일 뿐, 부시 행정부 對北정책의 본질과 내용을 표현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필자는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을 「봉쇄적 포용정책」(Con-gagement Policy)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용어를 랜드연구소의 잘메이 칼리자드(Zalmay Khalilzad)가 사용한 「봉쇄·포용 정책」(Congagement Policy)과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북한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
1999년 칼리자드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The United States and a Rising China)이라는 랜드재단 연구보고서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설정한 클린턴 행정부의 對중국 포용정책을 비판하면서 「봉쇄정책과 포용정책의 조건부 적용」이라는 「봉쇄·포용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下에서는 만일 중국이 미국의 國益에 반하는 非협력적 태도를 보이더라도 미국은 기껏해야 경제적 혹은 외교적 제재 이상의 수단을 사용할 수 없으며, 最惡의 경우에는 중국의 협력적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 더 큰 대가를 지불하는 「포용의 惡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일단 중국에 대한 「제한적 포용」을 통해 중국의 국제사회 편입을 유도하되, 만일 중국이 좀더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변화한다면 「완전한 포용정책」(전략적 동반자 관계)을, 반대로 지역 헤게모니를 추구하거나 대만에 대한 무력도발을 감행한다면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칼리자드의 「봉쇄·포용 정책」은 사실상 클린턴 행정부의 對北 포용정책과 유사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적용한 포용정책은 「제한적 포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現 부시 행정부 對北정책의 「强硬性(강경성)」은 바로 이 「제한적 포용」의 단계마저 배제하는 데 있다.
「포용정책」은 주고받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대화」와 「협상」을 엄격히 구분하면서, 『북한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적 노력 실패時 억제·봉쇄·선제공격
즉 작년 6월6일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4개항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 인민들을 돕고 對北 제재를 완화하는 한편 기타 정치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하는 보상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제가 해결된 이후」의 보상이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상」의 보상이 아닌 것이다.
필자는 이 「협상 없는 대화」가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 첫 번째 敎理(교리)라고 본다.
빅터 차(Victor D. Cha) 교수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포용정책」(Hawkish Engagement)의 목적은 주고받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위기감을 달래고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깐깐한 조건으로 협상함으로써 북한의 불순한 의도를 폭로하고 장래에 북한을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하는 데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재래식 武力 감축이라는 불가능한 문제를 협상 아젠다로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 대화는 진지한 외교적 노력이라기보다는 외교적 노력 실패의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아미티지 보고서」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의 對北정책을 대체할 「포괄적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이 실패할 경우,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평양임을 분명히 하는 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을 때 북한에게는 어떠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것은 부시 행정부 對北정책의 두 번째 교리와 관계되어 있다. 그것은 만일 외교적 노력(협상 없는 대화)이 실패로 끝나거나, 북한이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예의 그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다면, 북한에게 돌아가는 것은 경제적 實利가 아니라 봉쇄 혹은 군사적 자멸이라는 것이다. 「아미티지 보고서」는 『만일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미국은 두 가지 代案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억제와 봉쇄 강화… (둘째) 선제공격…』이라고 적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부시 행정부 對北정책의 세 번째 교리는 「군사적 억지력의 강화를 통해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아미티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어떠한 군사적 사태도 강력히 억제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자세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한, 북한이 미국의 외교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군사적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常時的(상시적)으로 주입시킨다는 것이다. 파월 국무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惡의 軸」의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북한의 변화기류를 진지하게 주목한다』는 것이다.
「봉쇄적 포용」은 一方主義의 産物
우리는 「봉쇄적 포용」이라는 강경노선이 단순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정세상의 필요에 의해 표출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일방주의(Unilateralism)와 國益우선이라는 공화당의 뿌리 깊은 철학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의 國益 증진이라는 모토 아래 교토 기후협약, 탄도미사일 조약(ABM), 생물무기 협약(BWC), 포괄적 核실험 금지 협약(CTBT) 등 국제 多者체제를 탈퇴하거나, 비준을 거부하는 一方主義的 행보를 계속해 왔다.
이들에게 多者主義的 국제제도와 기구는 미국의 國益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며, 또한 국제사회의 공동이익 증진이라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國益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차적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윌슨의 理想主義를 부활시킨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맹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미국의 독자적 외교역량을 제한하고 미국의 안보위협을 증가시켰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이들은 레이건과 舊부시 행정부의 소련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봉쇄가 冷戰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다는 공화당의 역사 해석을 믿고 있다. 공화당의 외교철학은 군사력의 우위를 기반으로 한 國益의 추구이다. 이들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미국의 國益을 수호하기 위해 군사력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것을 공화당 외교정책의 제1원칙으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되었던 「核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 보고서는 이러한 공화당의 외교철학을 구현한 하나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맥나마라 前 美국방장관은 先制 核공격을 포함하는 이번 核태세 검토 보고서는 미국의 核전략이 「상호 확증파괴」가 아니라 「일방적 확증파괴」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의 일방주의적 외교전통은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에서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對北협상의 원칙으로 「검증가능한 상호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협상의 「과정」이 아니라 협상의 「최종결과」에서의 상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협상의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상호주의가 아니라 미국이 제시한 의제에 대한 북한의 일방적 수용이 요구되며, 북한의 실천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진 후에야 보상이라는 상호주의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검증가능한 상호주의」는 사실상 상호주의가 아니라 일방주의로 봐야 한다. 북한의 核·미사일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작년 6월6일 부시 대통령은 「제네바 합의의 이행개선」을 美北간의 「협의」 의제로 제시한 바 있다. 제네바 합의의 이행개선은 IAEA(국제원자력 기구) 특별사찰을 앞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경수로의 상당부분이 완공되었을 때, 그러나 核 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북한은 IAEA 核안전협정의 의무(특별사찰)를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특별사찰 개시시점이 지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공사진척대로라면 경수로의 상당부분이 완공되는 시점이 2005년이고, 특별사찰에는 최소 3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특별사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Tit for Tat」
그러나 제네바 합의를 탄생시킨 갈루치 前 대사에 따르면, 이러한 해석은 제네바 합의의 문구와 정신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恣意的(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 4월10일 美 군축협회 세미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증언을 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의 강석주는 만일 미국이 경수로의 상당부분을 완성해 준다면 核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IAEA의 사찰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겠다고 제안했고,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 제네바 합의가 탄생했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의 문구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언제 사찰이 시작되어야 할지는 (경수로의 상당부분이 완성된 이후에) 북한과 미국이 새롭게 합의를 봐야 할 부분이지, (경수로의 상당부분이 완공되기도 전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니다. 제네바 합의의 정신은 한마디로 「Tit-for-Tat」(보복, 욕지거리에 대한 욕지거리)이다>
갈루치 대사가 말한 「Tit-for-Tat」 이야말로 상호주의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당신이 A를 해준다면 나도 B를 해주겠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A를 해주지 않는다면 나도 B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서 게임이론에서 양측의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발견해 나가는 문제해결 방식의 하나이다. 즉 B라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A라는 보상이 확인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의 「검증가능한 상호주의」는 『B라는 문제해결이 先行되어야 A라는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검증가능한 상호주의」는 「상식적 상호주의」와 정반대의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해결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문제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문제해결을 필요로 하는 측에서 먼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6월6일 북한 미사일개발 계획의 검증가능한 억제와 수출금지를 「협의」의제로 제시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는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이미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美외교협회의 한반도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미사일 수출문제에 대해서는 3년 간 10억 달러의 현금(현물)보상을 대가로 미사일 및 관련 기술의 수출 금지에 합의했고, 미사일 실험·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현금(현물)보상과 상업위성 발사지원을 대가로 일정한 射거리를 넘는 (장거리) 미사일의 국내 실험과 생산 금지에 합의했다. 북한의 旣배치 미사일에 대해서도 북한은 현재의 미사일 배치(일본과 駐日美軍을 타격할 수 있는 100개의 노동미사일 포함)를 동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구체적인 협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미사일 협상은 협상대상에 포함되는 미사일의 사거리와 검증방식을 제외하고는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개발·실험·수출 금지를 요구하면서도 보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오히려 『불량국가와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해 협상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일방적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강경정책이 북한 변화 유도 인정 분위기
현재 워싱턴 朝野에서는 대화 재개라는 북한의 태도변화와 그에 따른 한반도 대화 무드가 부시 행정부 對北 강경정책(Big Stick Policy)의 성과라고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논지의 핵심은 그것이 북한의 벼랑끝 외교를 유도해 美北관계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나아가 「제2의 영변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그간의 강경정책, 특히 올해 1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惡의 軸」(Axis of Evil)으로 지목한 이후 표출되었던 超강경정책은 세간의 예상과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북한의 「진지한 대화자세」를 유도했으며, 이유야 어쨌건 그리고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분명 美北관계와 南北관계에 새로운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는 「對北 無대책」이라며 비판 일색이던 미국 언론의 논조도 「일단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부시 행정부의 對北 강경정책은 강·온파의 불안정한 세력관계 차원을 넘어 공고화의 단계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의 교착국면을 타협이 아닌 힘으로 타개한 경험은 하나의 학습효과로 작용해서 향후 또 다른 교착국면이 발생하더라도 對北 강경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관성을 형성할 것이다.●








































